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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들여다보기

암살자(assassin)들의 원조 하시시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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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아의 일파인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12이맘 시아) 이끌던 하사네 삽바,
    이란 북서부 알마무트 요새에서 암살단 조직
⊙ 셀축튀르크의 재상 니잠 알물크, 십자군 악코 국왕 꼬르라도 등 암살
⊙ 마르코 폴로가 마약쟁이들을 암살자로 양성했다고 주장하면서 ‘어새신assassin’은
    ‘대마초hashish’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1092년 왼쪽 하얀 터번 쓴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 청년 부 타히르 아르라니가 셀축 재상 니잠 알물크를 죽이는 장면. 터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박물관 소장.
  지난 2월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당하였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공공장소에서 죽음을 당한 것도 놀라운데, 공공보건에 치명적인 화학무기 VX를 사용하여 목숨을 앗아 갔다고 하니 더욱 충격이 크다. 보나 마나 암살의 배후는 김정남의 이복동생 김정은일 터이니 말 그대로 패륜(悖倫)도 이런 패륜이 따로 없다. 고모부를 죽였지만 그래도 ‘백두혈통’은 죽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제는 김정은 치하에서 안전한 목숨은 김정은 외에는 없는 셈이다. 저런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이 수치스럽다.
 
  암살자를 영어로 ‘어새신(assassi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어원(語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하시시(hashish)’ 또는 ‘하샤시(hashash)’다. 하시시는 아랍어에서 원래 마른 풀을 가리키는데,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인도산 대마(cannabis sativa)를 부르는 용어로 정착하였다. 대마를 피우는 사람을 하샤(hashshashun), 하시시윤(hashishiyyun), 하시시야(hashishiyya)로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시아파 중 하나인 니자리 이스마일리(Nizari Ismaili) 시아를 하시시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10~13세기에 이들은 정적(政敵)을 암살하는 테러를 감행하였는데, 십자군이 이들을 ‘아사신(assasin)’이라고 하였고, 이 말이 유럽 본토로 퍼져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는 불명예스럽게도 암살의 대명사가 되었다.
 
 
  5이맘 시아, 7이맘 시아, 12이맘 시아
 
  그렇다면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는 누구인가? 우선 다소 복잡한 시아파 계보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시아파는 5이맘 시아, 7이맘 시아, 12이맘 시아, 이렇게 셋으로 크게 나뉜다. 5이맘 시아는 자이디(Zaydi) 시아라고 하는데, 오늘날 예멘의 후시(Huthi) 반군이 대표적인 자이디 시아다. 7이맘 시아는 이스마일리 시아라고 한다. 현대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이스마일리 시아 인물은 영국에서 활약 중인 아가 칸(Agha Khan)이다. 전 세계 시아 중 12이맘 시아 다음으로 큰 분파다. 12이맘 시아는 이란, 이라크, 레바논의 주류 시아로, 보통 시아라고 하면 이들 12이맘 시아를 가리킨다.
 
  7이맘 시아를 이스마일리 시아라고 하는 이유는 6번째 이맘의 후계자 문제로 12이맘 시아와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6번째 이맘 자으파르 앗사디끄(Jafar al-Sadiq)는 큰아들 이스마일을 다음 이맘으로 지명하였는데, 불행히도 이스마일이 일찍 죽는 바람에 작은아들 무사(Musa)를 7번째 이맘으로 다시 지명하였다. 그러나 이스마일을 따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이맘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마일리 시아를 형성하였다.
 
  이스마일리 시아는 10세기 무슬림 세계의 강국 파티마(Fatimah) 칼리파(Khalifah)조를 건립하였다. 909년 오늘날 튀니지 지방에서 시작하여 969년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오늘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이들이 세운 도시다. 카이로의 아랍어명은 ‘까히라(Qahirah)’인데, ‘승리자’를 의미한다. 이집트를 차지한 파티마 칼리파조의 자부심이 돋보이는 도시명이다. 또한 이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현대 순니 세계 최고 교육기관으로 불리는 알아즈하르(al-Azhar)를 세웠다. 아즈하르는 ‘가장 빛나는’이라는 뜻인데,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딸 파티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파티마의 다른 이름이 자흐라(Zahrah)였다. 970년 모스크로 건설되었는데, 972년부터는 교육기관으로도 사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스크는 예배소 외에도 교육기관의 기능을 겸비하였으니 특별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스마일리 시아가 세운 시아 교육기관이 오늘날 순니 최고 기관이 된 것은 흥미롭다고나 해야 할까 보다.
 
 
  하사네 삽바의 암살단
 
알라무트 성채.
  그런데 무슬림 세계 서쪽을 장악하던 이스마일리 시아는 알무스탄시르(al-Mustansir, 1036~1094) 칼리파가 죽으면서 분열되었다. 알무스탄시르는 큰아들 니자르(Nizar, 1045-1097)를 후계자로 정하였지만, 궁내(宮內) 권력 다툼에서 작은아들 알무스타을리(al-Mustali)가 칼리파가 되었다. 니자르는 알렉산드리아로 피신하여 권력 회복을 꾀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어 카이로에서 처형당하였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12이맘 시아) 분파를 형성하였다.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는 적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이란과 시리아의 험난한 지역에 요새와 성채를 구축하며 살았다. 강력한 제국의 무력(武力)에 직면하여 조롱받는 소수(少數)로 살면서 안전을 도모하며 살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알라무트(Alamut) 성채다. 종교지도자이자 뛰어난 전략가였던 하사네 삽바(Hasan-e Sabbah, 1124년 죽음)는 이곳에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 공동체를 건설하고 강력한 셀축튀르크 제국에 맞서 생존할 수 있도록 청년들을 전사로 키웠다.
 
  무기나 전력 면에서 철저히 열세였던 하사네 삽바가 채택한 작전은 요인을 암살하여 적이 전의를 잃도록 하는 이른바 ‘비대칭(非對稱) 전력(戰力)’ 양성이었다. 하사네 삽바의 가르침을 받은 청년 용사들은 살해 대상에 접근하여 길게는 수년씩 기다렸다가 살해하고 난 후 도망치지 않고 장엄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먼 곳에서 활을 쏘거나 독살하지 않고 대상을 마주보고 바로 앞에서 과감하게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과감하게 암살을 하되, 대상은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를 괴롭히거나 중상모략을 일삼던 적의 지도층 인사였다. 하사네 삽바 당시 이렇게 죽은 주요 인물의 수가 50명에 달한다. 이 중 역사 속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저명한 피해자는 셀축튀르크(Selçuk Türk)의 재상(宰相) 니잠 알물크(Nizam al-Mulk, 1018~1092)다.
 
 
  셀축튀르크의 재상 암살
 
  니잠 알물크는 이슬람 역사에서 사재(私財)를 털어 기숙대학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압바스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세운 니자미야(Nizamiyyah)는 여전히 이슬람 세계 최고 지성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알가잘리(al-Ghazali, 1058~1111)가 첫 교수로 임명되어 가르치던 곳이다.
 
  그런데 그는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는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를 소탕하겠다면서 “반란의 고름을 짜고 나태의 병균을 없애겠다”고 공언하였다. 이에 하사네 삽바는 니잠 알물크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고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누가 사악한 니잠 알물크를 없애겠는가?”라는 하사네 삽바의 질문에 타히르 아르라니(Bu Tahir Arrani)라는 청년이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그러겠노라며 의지를 표명하였다.
 
  1092년 10월 니잠 알물크가 술탄 말리크샤(Malikshah)와 함께 셀축튀르크의 수도 에스파한에서 압바스제국 칼리파의 바그다드 궁전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압바스제국의 칼리파는 명목상으로는 칼리파였고, 실질적 힘은 셀축튀르크의 술탄이 쥐고 있었다. 945년 12이맘 시아인 부예(Buyeh)조에 바그다드를 내어 준 압바스 칼리파(Khalifah)조를 1055년 셀축튀르크가 구원하였다. 압바스 칼리파조와 셀축튀르크는 순니파였다. 셀축튀르크는 스스로를 칼리파라고 선언하지 않고 술탄이라는 명칭을 쓰면서 압바스 칼리파조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1092년 10월 16일 저녁 니잠 알물크는 술탄 말리크 샤의 텐트에서 라마단 단식 종료를 기념하는 식사를 하고 난 후 가마를 타고 자신의 텐트로 가던 중 수피 영성가(靈性家) 복장을 한 젊은이 부 타히르가 청원할 것이 있다고 외쳤다. 이에 니잠 알물크는 청을 들어주고자 가마에서 청년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기회를 놓칠세라 이때 청년은 니잠 알물크의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경비병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암살 소식을 들은 하사네 삽바는 만족스러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 악마를 없애니 축복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마르코 폴로의 기록
 
몽골군의 알라무트 성채 포위. 라시둣딘 하마다니의 책 《자미으 앗-타와리크(집사,集史)》 삽화.
  알라무트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암살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 공동체에 절대적인 존속 수단이었다. 수세에 몰리다가도 일단 암살에 성공하면 상대는 공세를 멈추었다. 1113년 알렙포에서 수백 명의 이스마일리를 죽인 지도자는 6년 후 암살자의 손에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1126년 이스마일리를 소탕하려던 한 셀축튀르크 재상은 마구간 일꾼으로 위장 취업한 두 명의 암살자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1129년 다마스쿠스에서 이스마일리 시아를 학살한 튀르크 장군은, 그의 경비병으로 들어가 2년 동안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던 암살자에게 역시 치명상을 입었다. 십자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1192년 3차 십자군 꼬르라도(Corrado del Monferrato)는 악코(Acre) 왕국의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랍 그리스도교 수도사로 알고 신뢰하던 두 명의 암살자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는 정말 마약을 먹고 암살을 하였을까? 마약 하시시와 암살과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를 연결시킨 사람은 마르코 폴로다.
 
  그는 1256년 몽골군이 파괴한 알라무트의 이스마일리 성채를 1273년 방문하면서 남긴 기록에 알라무트에서 하시시를 먹이면서 암살자를 키웠다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종교지도자가 훗날 용감한 남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12살 소년들에게 하시시를 먹이며, 이들은 3일 동안 잠을 자는데, 깨어 보면 황홀한 것들에 둘러싸여 마치 천국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처녀들이 시중을 들고 원하는 것은 모두 얻으며 지극히 만족스럽게 머무니 결코 자의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이때 지도자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으면 “가서 이렇게 하여라. 너를 천국에 들여보내기 위해 이러는 것이다”라고 명령을 내리고, 천국의 맛을 본 암살자는 기꺼이 살인 명령을 따른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 때문에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는 마약을 먹고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의 대명사로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오늘날 학자들은 이들의 암살을 하시시와 무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 교리상 하시시는 술과 같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기에 금지 품목이다. 하사네 삽바와 같이 교리를 철저히 지키던 사람이 마약을 복용하였을 리 만무하다. 또 그런 기록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하시시는 마시는 것이 아닌데, 마르코 폴로는 마신다고 했으니 더더욱 이상하다.
 
 
  ‘어새신’은 마약쟁이?
 
2008년 3월 26일 두바이 이스마일리 센터 개소식. 안나흐얀(왼쪽) 현 장관, 아가 칸(가운데), 알막툼(오른쪽) 아랍에미리트 항공 대표.
  그렇다면 어새신의 어원은 무엇이었을까?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쓴 ‘하시시’가 ‘마약쟁이’로 곡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122년 파티마조 알아미르 칼리파가 시리아 지역 니자리 이스마일리를 조롱하고 폄하하면서 ‘하시시’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는 ‘쓰레기 같은 놈들’, ‘어중이 떠중이들’이라는 의미다. 이 말이 와전되었을 수 있다. 또 니자리 이스마일리의 교의에서 신앙의 근간을 의미하는 ‘아사스(Asas)’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아사스를 지키는 사람 ‘아사시(Asasi)’가 마약을 먹는 ‘하시시’로 발음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원이 어찌되었든 간에 확실한 것은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가 마약을 먹고 암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적의 요인들만 죽였다. 무고한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아간 알카에다, IS와 같은 현대 폭력적인 이슬람주의자들과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살인을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암살이라고 다 같은 암살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김정남의 죽음은 그 점에서 정치적 암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의 비대칭 전략 암살 작전과는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상대 요인만을 제거한 니자리 이스마일리 시아와 달리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구축을 위해 고모부, 형 할 것 없이 아무나 가리지 않고 마구 죽이니 말이다. 하사네 삽바는 니잠 알물크의 죽음을 두고 축복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김정남의 죽음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저 사악한 북한 정권 붕괴의 시작이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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