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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 보는 예수는 위대한 예언자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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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의 아들 예수’ 호칭, 《코란》에 16번 등장
⊙ “예수를 존경하지 않는 자는 무슬림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예수의 신성(神性) 부인
⊙ 예수, 갓난아기 때 마리아를 변호, 아이 때 진흙으로 참새를 만들어 날게 하는 기적 행해
⊙ 예수는 자기 다음에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가 올 것을 예언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무함마드(오른쪽)와 여러 예언자. 왼쪽에 선 사람 중에서 터번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아브라함, 모세, 예수라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세상에 유일신(唯一神)을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미국 퓨(Pew)연구소의 2010년 세계종교인구조사에 따르면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0.2%), 그리스도교(31.5%), 이슬람교(23.2%)의 신도 수를 합칠 경우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인 54.9%가 유일신을 믿는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는다는 큰 틀에서 보면 다를 바 없지만 예수에 관해서는 아주 다르다. 유대교에서는 예수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기본적으로 신(神)을 모독한 범죄자로 보고 극소수 학자만이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예수의 존재는 유대교에서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스도교의 예수는 유일신의 아들, 즉 성자(聖子)로 성부(聖父), 성령(聖靈)과 함께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룬다. 예수는 온전한 신성(神性)을 지닌 신이자 온전한 인성(人性)을 지닌 인간이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유일신이 보낸 위대한 예언자로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결코 신성을 지닐 수는 없는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의 예수관은 이슬람교의 입장에서 보면 신성모독으로 유일신 신앙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자고로 이슬람교가 발흥한 7세기 이래 그리스도교인과 무슬림이 유일신관을 두고 벌인 해묵은 싸움은 한마디로 하자면 “도대체 예수는 누구인가?”로 압축할 수 있다.
 
 
  마리아, 《코란》에서 본명 드러낸 유일한 여성
 
야자수 옆에 선 마리아. 마리아는 《코란》에서 이름으로 불리는 유일한 여성이다.
  무슬림의 예수관은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에 명백히 잘 드러난다. 《코란》 전체를 통틀어 예수가 신성을 지닌 존재로 표현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명명백백하게 예수는 인간이다. 신의 아들일 수도 없다. 《코란》은 신이 “낳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으신다”고 하니 어찌 신에게 아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코란》 112장 3절).
 
  그런데 흥미롭게도 《코란》의 예수는 무함마드가 행하지 못한 엄청난 기적을 행한다. 또 《코란》에서 질책하는 이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신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예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함마드가 《코란》에 딱 4번 언급되는 것에 비해 예수는 무려 25번이나 나온다. 예수의 이름은 《코란》에서 이사(Isa)다. 이븐 마르얌(Isa ibn Maryam), 즉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호칭과 함께 16번 나온다. 그리스도교에서나 이슬람교에서나 예수의 부친 요셉은 열외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아들로 표기되는데 예수는 어머니의 아들로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마르코(마가) 복음서》 6장 3절도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로 부른다. 마리아는 《코란》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코란》에서 유일하게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이 마리아다. 마리아 외의 여성을 《코란》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유부녀일 경우에는 누구의 아내로 지칭한다. 더군다나 코란 19장의 이름은 마리아다.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예수의 출생 얘기도 여기에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신약성서》와 달리 《코란》에는 마리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마리아는 이므란(Imran)의 딸로 나온다. 아이가 없었던 이므란 부부는 아이를 낳으면 신께 바치겠다고 맹서하였다. 딸을 낳자 마리아라고 이름을 짓고 약속대로 성전에 바쳤고 신은 어린 마리아를 보호해 주었다.
 
 
  《코란》 속 마리아
 
  서양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코란》에 나오는 마리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성서》로는 채택되지 않은 《야고보 원복음서(Protevangelium Jacobi)》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150년경 시리아 지방에서 쓰인 것으로 알려진 이 복음서는 마리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동방교회의 유년 시절 예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마리아는 천사들로부터 메시아 예수 수태 고지를 받은 후, 가족을 떠나 홀로 동쪽 조용한 곳에 있을 때 신이 보낸 성인 모습의 영(靈)이 나타나 두려워하는 그녀에게 흠 없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저는 처녀로 아무도 저에게 손을 댄 일이 없는데 어떻게 제가 아들을 갖겠습니까?”라고 응대한다(《코란》 19장 20절).
 
  《코란》은 다른 구절에서 마리아는 순결을 지켰고 신이 그녀에게 영을 불어넣었다고 표현한다(《코란》 66장 12절). 또한 신은 마리아를 선택하여 정결한 여인이 되게 하였고 모든 여인의 위에 두었으며(《코란》 3장 42절), 그녀가 낳을 아들 예수는 신의 사도요, 신이 마리아에게 주신 말씀이고 신으로부터 나온 영이라 말한다(《코란》 4장 171절).
 
  아이를 밴 마리아는 먼 곳으로 떠나 지냈고 출산을 앞두고 진통이 너무 심하여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이라고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자 신이 함께하신다는 위로와 함께 대추야자 열매를 먹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누구와도 말을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듣는다(《코란》 19장 22~26절).
 
  이에 편안한 마음으로 출산을 한 마리아가 갓난 예수를 안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모두 놀라며 비난을 퍼붓는다. 《코란》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마리아가 속한 유대 사회에서는 간음녀를 돌로 쳐 죽이거나(신명기 22장 20~21절), 화형에 처한다(창세기 38장 24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마리아를 변호하고 나선 이는 바로 예수다. 비난에 직면한 마리아는 손으로 아기 예수를 가리킨다. 이에 사람들이 “갓난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며 어리둥절해 하자 예수가 자신이 신이 보낸 사도라고 말하며 태어난 날, 죽는 날, 부활하는 날 자신에게 평화가 있으리라고 선언한다(《코란》 19장 33절).
 
 
  《코란》 속 예수, 진흙으로 새를 만들다
 
  이야기 전개 과정이나 세부 내용에서 《코란》과 《신약성서》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둘의 차이는 없다.
 
  예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말을 하는 기적을 보였다. 이 외에도 《코란》에는 그가 행한 기적이 여러 가지 나온다. 맹인과 나병 환자를 치료하고, 죽은 이를 살리고, 제자들이 요구하자 하늘에서 식탁이 내려오도록 한다. 《코란》은 이러한 예수의 기적이 모두 신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기적들 중에서 특히 진흙으로 새를 만들어 날린 것은 흥미롭다. 《코란》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를 위해 진흙으로 새의 모양을 만들어 숨을 불어 넣으니 신께서 허락하셔서 새가 되었다.”(《코란》 3장 49절, 5장 110절)
 
  그리스도교 성서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신약성서》에 포함되지 않은 《토마스(도마)의 예수 유년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정양모 신부는 이 책을 두고 “150년경에 시리아 지방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한 나머지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를 참고하고 거기에 상상의 날개를 펴서 예수 소년 시절을 소재로 해서 그리스어로 예수 공상 소설을 썼다고 보면 무난하겠다”고 평가한다. 이 책 2장에 진흙으로 만든 새를 날리는 기적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아기 예수가 다섯 살 때 있었던 일이다. 안식일에 아기 예수가 냇가 얕은 여울에서 진흙을 개어 참새 열두 마리를 만들며 놀았다. 어느 유대인이 지나가다가 이를 목격하고 곧장 예수의 아버지 요셉에게 가서, 아기 예수가 참새를 열두 마리나 만들었으니 안식일법을 어겼다고 고자질했다. 이에 요셉이 와서 보고 예수를 꾸짖으니 예수는 가타부타 일절 대꾸하지 않고 손뼉을 딱딱 쳤다. 그러자 진흙으로 빚은 열두 마리 참새가 모두 날개를 쫙 펴고 짹짹거리면서 훨훨 날았다.(정양모 역)
 
 
  《코란》이 말하는 ‘예언자 예수’의 최후
 
마리아와 예수. 《코란》은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의 허락하에 행했다고 강조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기적을 행해보라고 사람들이 요구하였을 때 무함마드보다 《코란》에서 예수는 확실히 수적으로 훨씬 많은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신이 예수를 세상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코란》은 예수 이전에 신이 유대인들에게 내린 경전인 《토라》가 신의 말씀임을 증명하고 천지창조 때부터 신이 가르친 유일신 신앙을 사람들에게 다시 확인시켜 주고자 예수가 세상에 왔다고 가르친다. 새로운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유일신 신앙을 다시금 반복하면서 믿음을 굳게 하여 분열하지 말라고 가르치러 왔다는 것이다.
 
  이슬람에 따르면 천지창조 때부터 신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유일신 신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들이 신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바르게 살지 않았기에 그럴 때마다 신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예언자를 보내어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였다. 예수 역시 그러한 임무를 안고 온 예언자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이전에 계시된 《토라》를 확증하고 너희에게 금지된 것을 일부 허락하기 위해 왔다. 나는 너희의 주님으로부터 징표를 받고 왔으니, 신을 두려워하고 내게 복종하라.(《코란》 3장 50절)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신이 마지막으로 다시 세상에 보낸 예언자가 이슬람의 무함마드라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그렇다면 예수의 삶은 실패한 것일까? 그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코란》은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고 주장하나 《코란》은 이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하는 억측이라고 반박한다. 유대인들이 십자가형에 처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와 닮아 보이는 자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세우는 간교한 계책을 미리 아시는 신께서 훌륭한 계획을 먼저 세우시고 예수를 당신께 끌어올리셨다고 한다(《코란》 3장 54절, 4장 156~157절).
 
 
  예수·마리아를 신으로 숭배 마라
 
9세기 이슬람 달력에 그려진 예수(오른쪽)와 죽은 개.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 죽지 않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기 예수가 요람에서 자기가 “죽는 날”이라는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전승(傳承)은 이를 두고 예수가 죽지 않은 상태로 신께 들어 올림을 받은 후 때가 차서 세상에 다시 와 적(敵)그리스도를 무찌르고 자신의 임무를 다한 뒤 자연사(自然死)하고 인류 최후의 심판일에 부활하여 자신과 마리아를 신적(神的)으로 숭배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고 한다.
 
  《코란》은 예수를 지극히 위대한 예언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예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지 결코 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코란》 5장 116절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라, 신께서 말씀하시리라. “마리아의 아들 예수여, 그대가 사람들에게 신과 함께 나와 나의 어머니를 신으로 숭배하라고 하였는가?” 그가 답할 것이다. “당신께 영광을 바치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할 수도 할 자격도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신께서 아셨을 것입니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저는 당신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아십니다.”
 
  《코란》은 예수와 마리아가 음식을 먹고(5장 75절), 신께서 언제든지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5장 17절)인데 어떻게 신성이 있을 수 있느냐며 유일신의 가르침을 훼손하면서 예수와 마리아를 존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한다. 예수는 《코란》 19장 30절에서 자신이 ‘신의 종’이라고 하고, 3장 51절에서는 “진정 신은 나의 주님이요 너희의 주님이니, 그분을 숭배하라. 그것이 바른길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신이 아니라 신이 자신의 주님임을 밝힌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잘 아는 독자라면 다소 의아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인데, 《코란》에서 비판하는 삼위일체는 신, 예수, 마리아인가? 왜 마리아를 신으로 섬기지 말라고 이야기하는가?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이슬람 이전인 5세기 초 팔레스타인 태생 키프로스 대주교 에피파니우스(403년 사망)의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 요르단과 시나이 반도 동쪽 지역에는 마리아를 숭배하며 마리아상에 빵(kollyris)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고 비잔틴의 레오니투스(543~4년 사망) 또한 마리아를 존숭하는 사람들을 언급한 바 있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을 《코란》이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코란》에서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온 예수는 자신 뒤에 또 다른 아흐마드(Ahmad)란 인물이 올 것임을 예언한다.
 
  오, 이스라엘 자녀들이여, 진정 나는 신의 사도로 너희에게 와서 내 이전에 내린 토라를 확증하고 내 뒤에 올 사도 아흐마드가 가져올 기쁜 소식을 전하노니.(《코란》 61장 6절)
 
  아흐마드를 전통적으로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라고 해석한다. 아흐마드나 무함마드나 사실 단어의 어근은 같다.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이 코란 계시의 아흐마드를 《요한서》와 《요한 1서》에 나오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영어 Paraclete)’를 변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협조자라는 의미를 지닌 파라클레토스는 우리말 《성서》에서 ‘보혜사(保惠師) 성령’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만일 아흐마드가 이 용어의 변용이라면, 《코란》이 성서를 참고했을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물론 무슬림들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학설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무슬림들
 
미나레트(이슬람교 사원의 첨탑) 위에서 천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예수.
  《코란》의 예수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신약성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많아 더욱 흥미롭다. 《코란》과 《신약성서》 둘이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차이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점에 대해 무슬림의 입장은 확고하다. 예수의 가르침이 그대로 전해졌더라면 이슬람의 《코란》과 일점일획 다를 바 없었을 터인데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서》의 내용을 왜곡하였기 때문에 두 경전 사이에 차이점이 생겼다고 믿는다. 하늘에 있는 경전을 그대로 받은 것이 《신약성서》와 《코란》인데 무슬림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에 손을 대 내용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든 간에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비록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무슬림은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예수를 존경하지 않는 자는 무슬림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불만스럽겠지만 그래도 예수를 저토록 깊이 사랑하니 신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꼭 밉게 볼 일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예수가 신이냐 아니면 인간이냐 라고 얼굴을 붉히면서 다투기보다는 예수가 세상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게 살았는지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진정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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