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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들여다보기

무함마드의 여인들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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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의 전승(傳承)을 종합하면 무함마드의 아내 13명, 일부 시아파 전승에 의하면 21명에 달해
⊙ 25살 때 40살의 과부 사업가 카디자와 결혼, … 9살 소녀, 며느리(양자의 아내)도 아내로 삼아
⊙ “예언자께서는 세 가지를 좋아하셨다. 예배, 향수, 여자” (이븐 사으드)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는 무함마드.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슬람교 신자들, 즉 무슬림들에게 신앙의 표본이다.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 33장 21절은 무함마드를 ‘하나님과 최후의 날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자주 기억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훌륭한 모범’이라고 강조한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신(神)이나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 삶의 모범으로 따라야 할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이슬람교 초창기부터 무슬림들을 가까이에서 접하여 이슬람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마드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에 근거하여 신의 아들이자 신으로 믿는 예수는 평생 독신(獨身)으로 산 데 비해 무함마드는 많은 아내를 두었으니 위대한 예수와 달리 천박한 욕정에 휩싸인 인간으로 보았다. 중세(中世)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무함마드에게 늘 따라다닌 별명이 호색한(好色漢)이었다. 대체 무함마드는 얼마나 많은 아내를 두었고, 왜 그렇게 여러 번 혼인을 해야 했을까?
 
 
  《코란》은 아내를 4명으로 한정
 
  무함마드의 아내 수는 정확히 셀 수 없으나 이슬람교의 전승(傳承)을 종합하면 약 13명으로 볼 수 있다. 이슬람교의 일부사처(一夫四妻), 즉, 최대 네 명의 아내를 동시에 둘 수 있다는 규칙을 알고 있는 독자는 다소 의아해할는지도 모른다. 《코란》 4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고아가 된 소녀들을 공평하게 대할 자신이 없다면 네 맘에 드는 여인 둘, 셋, 또는 네 명과 혼인하라. 그러나 공평하게 대할 자신이 없다면 한 명이나, 또는 네가 소유하고 있는 여인들과 혼인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불공평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낫다.〉
 
  소유하고 있는 여인들이란 몸종을 의미한다.
 
  이처럼 《코란》은 아내의 수를 4명으로 규정하는데, 무함마드의 아내 수는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전승에 따르면 632년 무함마드가 죽었을 때 모두 열 명의 아내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무함마드에게 아내를 네 명으로 제한한 《코란》 계시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무슬림들은 많은 수의 아내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내린 특권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 현대 무슬림 학자는 4명으로 아내를 제한한 《코란》 계시가 내리기 전에 무함마드가 아내를 많이 두었다고 이해한다. 반면 일부 서양학자들은 무함마드의 아내가 네 명이었을 때 《코란》 계시가 내렸기에 네 명으로 적혀 있다고 보기도 한다.
 
 
  ‘40’이라는 숫자의 의미
 
  무함마드의 아내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코란》 33장 50절은 무함마드가 혼인할 수 있는 여성의 범위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혼례금을 주고 혼인계약을 맺은 여인, 전쟁에서 얻은 여성포로, 메디나로 함께 이주해 온 친척이나 외척인 여인, 무함마드에게 혼인을 제안하고, 무함마드가 받아들인 신앙인 여성과 혼인의 연(緣)을 맺을 수 있다. 그런데 무함마드는 이러한 《코란》 계시가 내리기 이전, 즉 예언자 소명을 받기 전에 첫 번째 혼인을 하였다. 무함마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한 카디자(Khadija)가 바로 첫 번째 아내다.
 
  전승에 따르면 카디자는 두 번 혼인을 한 과부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무함마드는 카디자가 고용한 종업원이었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성실함에 매료되어 혼인을 제안했고, 무함마드가 받아들여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때 무함마드의 나이가 25세, 카디자는 40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둘 사이에 아들이 셋, 딸이 넷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카디자의 생물학적 나이가 40살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중근동(中近東) 문화에서 40은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고,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를 하고, 무함마드가 40살 때 예언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40의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었을 때를 두고 “내 나이 40이었을 때”라고 말했다. 이처럼 숫자 40은 완전, 완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카디자와 아이샤
 
14세기 초 이란 화가가 그린 무함마드와 예수. 무함마드는 낙타, 예수는 당나귀를 탄 것으로 그렸다.
  카디자는 무함마드가 강렬한 종교체험을 하고 왔을 때 그를 믿어 준 최초의 무슬림으로 알려졌다. 6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무함마드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든든하게 후원하였다. 카디자와 혼인하기 전까지 무함마드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 《코란》 93장 8절에서 무함마드를 두고 “곤궁한 너를 보고 부유하게 해 주지 않았는가?”라고 한 말은 카디자와 부부가 되기 전 무함마드의 궁핍한 삶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카디자, 카디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파티마(Fatima),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파라오의 아내 아시야(Asiya)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네 명의 여인으로 꼽았다고 한다.
 
  또 카디자가 죽은 후 3번째 아내로 받아들인 어린 아이샤(Aisha)는 무함마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카디자에게 강력한 질투심을 느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어느 날 무함마드가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돕고 있을 때 왜 그런 일을 하냐고 아이샤가 물었다고 한다. 이에 무함마드는 “카디자가 친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했지. 마지막 유언이었어”라고 답하자, 아이샤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카디자! 카디자! 당신에게는 이 세상에 카디자 외에 다른 여자는 없군요”라고 소리쳤다. 평소 참을성이 뛰어난 무함마드였지만 질투하는 아이샤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말을 건네지 않았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카디자가 살아 있을 때에는 다른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디자가 죽고 난 후 무함마드는 재혼 대상으로 과부 사우다(Sawda)와 여섯 살 된 아이샤를 추천받았는데, 둘 모두와 혼인하게 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두 번째 아내 사우다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피해 부부가 함께 에티오피아로 이주했다가 남편이 죽은 후 메카로 돌아온 과부였다. 세 번째 아내 아이샤는, 무함마드가 예언자로 부름을 받을 때부터 흔들림 없이 늘 곁에서 도움을 주던 오랜 친구이자 무함마드 사후 제1대 칼리파가 되어 무슬림 공동체를 이끈 아부 바크르의 딸이었다.
 
  무함마드와 정혼(定婚)할 때 아이샤의 나이는 6살이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버지가 무함마드의 무릎에 앉혀 놓았다고 한다. 혼인이 성사되었을 때 무함마드는 약 53세, 아이샤는 약 아홉 살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이 차다.
 
  이 때문에 서구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무함마드를 “소아성애자(Pedophile)”로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혼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1세기 현대 서구(西歐)나 우리 사회의 입장에서 7세기 아라비아 사회의 관습을 마음대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흔드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무함마드가 천상여행을 하기 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여러 천사가 보는 가운데 무함마드의 가슴을 정결하게 닦아 주고 있다. 16세기 터키.
  당시 사회에서 논란이 컸던 것은 자이납(Zaynab bint Jahsh)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일이다. 자이납은 무함마드의 외사촌인데, 무함마드가 노예에서 해방시킨 후 양자(養子)로 삼은 자이드(Zayd ibn Haritha)와 부부가 되었다. 무슬림 역사가 따바리(Tabari, 839-923)에 따르면, 어느 날 무함마드는 자이드 집에 갔다가, 제대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자이납을 보고 눈길을 돌렸다. 이에 자이납은 얼른 옷을 챙겨 입고서 남편은 없지만, 무함마드는 자신의 부모와 같이 친근한 사람이기에 들어오라고 말했다. 무함마드는 거절하면서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소리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마음을 흔드시는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며 속삭였다. 자이납은 남편 자이드가 돌아오자 이러한 이야기를 전했다. 자이드는 곧바로 무함마드에게 달려가 자신이 아내와 갈라설 터이니 자이납을 아내로 맞으라고 권하였다. 무함마드는 그러지 말라고 거절하였다. 자이드는 아내와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무함마드에게 이혼하겠다고 거듭 말하더니 결국 그녀를 떠났다. 무함마드는 아이샤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자이납과 혼인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홀로 된 자이납과 부부가 되었다. 이때가 626년경으로 무함마드가 약 56세, 자이납이 38세 되던 해였다.
 
  당시 아랍 사회에서 양자를 친자(親子)와 다를 바 없는 아들로 간주하였다. 결국 무함마드가 며느리와 혼인하여 근친상간(近親相姦)을 저지른 셈이다. 《코란》(33:37-38)은 자이드에게 아내 자이납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지만, 실은 무함마드가 마음속에 감추는 것이 있었고 자이드가 이혼을 하자 하나님이 무함마드와 자이납의 혼인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당시 사회의 관습과 달리 믿는 자들이 양자가 이혼한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을 때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면서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명령하신 일을 할 때 예언자가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33:38)’고 명시한다. 이로써 이슬람 사회는 이전 아랍 사회와 달리 친자와 양자가 같지 않다고 규정하면서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무함마드와 자이납의 혼인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 무슬림들에게도 불편한 일이다. 양자가 친자와 같은가 같지 않은가가 문제가 아니라 따바리가 남긴 기록의 신빙성이 관건이다. 예언자가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여성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는 전승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먼저 이 이야기의 출처가 거짓말쟁이로 유명한 와끼디(Waqidi, 748-822)라고 비판한다. 또 미인으로 알려진 자이납은 무함마드의 외사촌으로 무함마드가 그녀의 미모를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그때서야 비로소 아름다움에 반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자이납이 탁월한 미녀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무함마드가 혼인을 결정했을 때 어린 아내 아이샤는 자이납이 예뻐서 걱정했다고 하니 말이다.
 
  무슬림들은 이처럼 무함마드와 자이납의 혼인이 무함마드의 욕정과 관계없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서구 그리스도교 학자들이 이 사건을 무함마드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호색한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로 들며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언자가 어쩌면 그렇게 성적(性的)으로 타락할 수 있느냐며 조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것은 몹시도 불편한 일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무함마드가 윤리적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보다는 무슬림 역사가인 따바리가 예언자에게 유리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대로 싣고 있는 것이 더 놀랍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에게 전해 오는 그대로 전하는 역사가의 자세는 실로 위대하다.
 
 
  여종 마리야
 
생애 마지막 메카 순례에서 최후의 설교를 하고 있는 무함마드(맨 오른쪽). 11세기 페르시아 학자 알-비루니(al-Biruni)의 천문학 서적에 삽입된 그림.
  여러 아내 중 특히 무함마드가 좋아했던 아내로 꼽을 수 있는 여인은 무까우끼스(Muqawqis)라는 직위명으로 불리는 이집트 통치자가 선물과 함께 보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 마리야(Mariya)다. 그녀는 이집트 그리스도교를 뜻하는 콥트(Copt)교인으로 불렸는데, 정식 혼인을 거친 아내가 아니라 여종으로 무함마드의 여인이 됐다. 첩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자 주인은 남종과 성관계를 맺을 수 없지만, 남자 주인은 여종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627년경 메디나로 온 마리야는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에 어린 아내 아이샤가 다음과 같이 시기하였다고 한다.
 
  “나는 마리야만큼 질투심을 느껴본 여자가 없다. 그녀는 정말 예뻤고, 사도 무함마드는 마리야가 우리 동네에 처음 왔을 때 만나러 가서 밤낮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그가 마리야에게 잘해 준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아내들의 숙소를 순번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방문하였는데, 4번째 아내 하프사(Hafsa)와 보내기로 한 날 마리야와 함께 있다가 하프사에게 들켰다고 한다. 이에 무함마드는 마리야와 더 이상 관계를 가지지 않겠다고 하였고, 하프사는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하프사가 아이샤에게 일러바쳐 소동이 일었고, 이에 무함마드는 아내 모두와 이혼하고 더 경건한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결국 무함마드는 마리야를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취소했다. 둘 사이에는 이브라힘이라는 아들이 생겼지만, 아기 때 죽었다. 이브라힘은 무함마드가 카디자 외에 여인에게 낳은 유일한 아이였다. 무함마드가 죽을 때까지 마리야는 여종의 신분을 유지했다.
 
 
  유대인 아내도 있어
 
무함마드가 죽기 전 최후의 모습. 1595년 오스만 제국의 예술가 루프티 압둘라가 그린 예언자의 일생 그림 중 하나.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소장.
  마리야처럼 여종의 신분으로 무함마드의 여인은 된 자로는 아랍 여인 주와이리야(Juwayriyya)와 두 명의 유대인 사피야(Safiyya), 라야나(Rayana)가 있다. 주와이리야는 627년 20살 때 무슬림군에 포로로 잡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무함마드의 아내가 됐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여종으로 있다가 무함마드가 죽기 직전 온전한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사피야는 628년, 라야나는 627년에 각각 무슬림군에 포로로 잡혔다. 사피야는 여종이었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종의 신분을 벗고 정식 아내가 됐다. 라야나는 무함마드의 여인이 되었지만, 631년 죽을 때까지 여종의 신분으로 있었던 듯하다.
 
  모두 13명의 여인 중 처녀의 몸으로 무함마드의 여인이 된 이는 아이샤가 유일하다. 나머지 12명은 모두 과부거나 이혼녀였다.
 
  무함마드가 여러 아내를 둔 이유는 과부가 된 여인들을 복지 차원에서 돌보고, 다른 부족과 정치적으로 화평을 이루기 위한 정략적(政略的)인 목적 때문이었다. 두 번째 아내 사우다, 네 번째 아내 하프사, 다섯 번째 아내 움 살라마(Umm Salama), 여섯 번째 아내 자이납 빈트 쿠자이마(Zaynab bint Khuzayma)는 이슬람을 믿고 따르다가 과부가 된 여인들이었다. 열 번째 아내 움 하비바(Umm Habiba)와 열두 번째 아내 마이무나(Maymuna)는 두 여인이 속한 집안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소위 정략적으로 한 혼인이었다.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예언자 무함마드
 
낙원에서 미인들에게 둘러싸인 예언자 무함마드. 18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그림.
  632년 세상을 떠날 때 무함마드는 여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최후의 날을 아이샤의 숙소에 머물다 그녀의 품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무함마드의 죽음을 끝까지 지킨 여인은 모두 열 명이다. 이 중 마리야만 여종의 신분이었으니, 정식 아내는 아홉 명이었다.
 
  무슬림 공동체는 이들 아홉 명의 여인을 “신앙인의 어머니”로 부르며 존경했다. 《코란》에 따르면 무함마드 아내들은 보통 여인들과 다르고(33:32), 선한 일을 하면 보상을 두 배로 받으나, 나쁜 일을 하면 벌 또한 두 배로 받으며(33:30-31), 재혼을 할 수 없다(33:53).
 
  무슬림 전승을 비교하면서 대체로 13명의 아내를 정리해 보았지만,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시아파 전승에 다르면 21명까지 그 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중국 무슬림들은 예언자에게 9명의 정식 아내와 여종으로 여인이 된 자, 즉 첩이 7명이 있었는데, 이는 구천칠지(九天七地)를 위대한 예언자가 포용하는 우주론적 의미를 지닌 것이지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참으로 인간적인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꾸 예수와 비교하여 쾌락의 유혹에 약했다고 무함마드를 폄하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서 지난 1400여 년 동안 무슬림들이 하나님을 향하는 인간의 길을 찾은 것은 아닐까 한다.
 
  “예언자께서는 세 가지를 좋아하셨다. 예배, 향수, 여자.”
 
  이븐 사으드(Ibn Sa‘d, 784-845)가 전하는 예언자 전승이다. 약점으로 보이는 것까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초기 무슬림 전승자들의 모습에서 인간 무함마드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무슬림 전승의 탈(脫)현대적인 자유로움을 본다면 감상이 과한 것일까? 참으로 인간적이고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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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기    (2020-03-06) 찬성 : 0   반대 : 1
아이샤에 대해서 9살에 결혼한 것에 대해 당시에는 별 문제가 안 됐다고 하셨는데,, 크흠
일단 9살의 미성년자와 결혼한 사례는 메카와 메디나 사이에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무함마드의 4딸도 모두 성년 때 결혼했죠
특히 이 결혼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는 아이샤의 아버지 아부바크르의 반응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Sahih al-Bukhari 7. 18(Ursa의 이야기)에 보시면 무함마드의 딸을 달라는 요청에
그러나 나는 당신의 형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무함마드는 종교에서는 당신과 내가 형제이나 나는 당신의 딸과 결혼하기 적법하오
라고 말했다죠 ㅋㅋ
http://www.koreaislamjihadwatch.com/board/bbs/board.php?bo_table=muhammad1wr_id=55
여기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무함마드 평전이라는 책도 추천드립니다.
이슬람 문헌에 나와있는 그러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잘 나와있습니다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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