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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트럼프 시대의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

글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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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당 주류 등 기성세력이 트럼프에게 비정상적으로 분노를 표하고 있는 것은
    그들 모두가 위협에 떨고 있다는 방증(傍證)”(윌리엄 버넷)
⊙ 러시아와 잘 지내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접촉을 막겠다는 것으로
    지극히 현실적
⊙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는 것은 김정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同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했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소위 미국의 ‘주류’ 언론사들과 이를 그대로 베낀 한국의 언론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이변’ 혹은 ‘대역전극’ 등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대선은 11월 8일 단 하루 동안 진행된 단판 승부의 게임이었다. 단판 승부에 무슨 역전이 있고 이변이 있을 수 있는가.
 
  ‘이변’은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이변’이라는 말 대신 자신들의 생각이 ‘모자랐다’고 말해야 옳다.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한 언론과 분석가들도 적지 않았으며 한국에서도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트럼프의 당선은 이변도 아니고 역전승도 아니다.
 
  필자는 선거 전문가는 아니지만 국제정치학자로서 미국의 대선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미국 대선이 진행되면서 상식적으로 도무지 정상적인 정치가처럼 보이지 않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출현, 공화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으며 승승장구하는 상황을 보고 경악했다. 트럼프가 하는 말들은 보통이라면 그 말을 한 당일 정치판에서 퇴출당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퇴출은커녕 인기가 수직 상승했다.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 ‘거짓말 정치인’보다는 ‘막말 정치인’ 선택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은 사실은 다 맞는 말들이었다. 정치가들이 감히 할 수 없는 말들이었을 뿐이었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열광하는 한 백인 중년 여인은 왜 트럼프에 열광하느냐는 질문에 “그의 말은 진솔(authentic)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투박하고 상스러웠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안 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국민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했지만 미국 국민들은 힐러리 클린턴 말을 정직하기는커녕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보다는 막말일지라도 진솔한 말이 더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 미국 사회의 기본 규칙이다.
 
  힐러리는 미국 국민의 분노를 이해하며 어루만져줄 듯이 말했지만 트럼프는 미국 국민의 분노(anger)를 대변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16년 미국 대선의 키워드를 ‘분노’라고 정의했다. 분노의 주역은 고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백인 노동자 계층이었다.
 
  분노한 미국 하층 백인 노동자들은 이제는 문을 닫고 쇠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녹슨 벨트(Rust Belt)’ 지역인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막강한 노조(勞組)를 형성하고 있었고 대체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었다. 트럼프는 이들을 공략한 것이다.
 
  여론조사에 잘 참여하지도 않는 이들은 두고 보자며 투표 날을 벼르고 있었다. 11월 8일 다른 선거라면 응당 민주당 후보를 찍었을 이들이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아성이 트럼프로 간 것이고 트럼프는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미국 언론들은 2016 대선을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사실상 기성세력에 속하는 언론들이 트럼프 후보와 전쟁을 벌였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를 낙선시키기 위한 행동대처럼 행동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보수 논객 윌리엄 버넷은 “공화당 주류 등 기성세력이 트럼프에게 비정상적으로 분노를 표하고 있는 것은 그들 모두가 위협에 떨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라고 진단했다. 기성세력인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를 앵무새처럼 베껴 대었던 한국 언론은 자성(自省)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FTA 폐기하지는 못할 것
 
  트럼프의 당선은 다른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상황에 대해 불만인 국민들의 지지 때문이었다. “미국 대선은 4년 전보다 햄버거 값이 얼마나 비싸졌느냐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은 국민들에게 “4년 전보다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상대방인 부시(41대) 대통령이 쿠웨이트 해방 전쟁의 치적을 내세울 때 “문제는 경제라고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외쳤다.
 
  트럼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세계화 물결 속에서 소외된 계층에 호소했다. 세계화를 통해 부유하게 된 계층이 있고 미국의 국부(國富)가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의 분배는 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미국으로 공장을 옮겨 올 것이라고 말했으며, 미국의 일자리를 뺏어갔다며 중국과 멕시코를 비난했다. 특히 중국의 불투명한 경제를 비난하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중국이 수출하는 품목의 관세를 무려 45%나 올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트럼프가 말한 경제정책이 그대로 실행되기는 어렵다. 세계화는 하다 말다 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피해를 입었지만 미국의 소비자들은 값싼 중국제 물건 덕분에 윤택한 삶을 즐겼다.
 
  미국은 노동자의 나라인 동시에 소비자의 나라다. 그래서 트럼프의 정책은 그대로 실현되기보다는 조정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앞으로도 자유무역은 지속될 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자유무역 협정(FTA)들이 갑자기 모두 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세계화가 당분간 삐걱거릴 것이다. 이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출은 1차 신호탄이었다. 트럼프 현상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이어받은 사건이다. 곧이어 프랑스도 EU를 탈퇴하고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대통령을 선출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이다. 집을 짓는 사람이며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전자산업, 실리콘 밸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미 건설한 지 너무나 오래되어 낡아빠진 미국의 인프라(infrastructure)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손봐야 할 부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여러 차례 인프라의 보수, 확충 필요성을 호소했었다.
 
  아마도 트럼프는 이런 일을 더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경제는 대대적인 인프라 재구축 사업에 덕을 입어 지금보다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개발로 경제상황이 대폭 호전된 미국은 첨단산업 및 금융산업의 우위도 고수할 것이다.
 
 
  트럼프에게 적대적 합병당한 공화당
 
미국 대선 전날인 11월 7일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패를 끝내자. 트럼프에게 투표하자”고 적은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미국 국내 정치에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트럼프는 부패하고 자기의 이득만 취하며, 월가 금융인들 및 재벌로부터 돈을 받아 그들의 이익과 요구를 만족시키는 기성 정치권에 반기를 들었다. 공화당을 적대적으로 접수한 트럼프는 공화당의 핵심 세력들을 몰아낼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외연(外延)을 확대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공화당에 들어갔고, 공화당의 기성 권력은 그들을 공화당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으려 했다. 기존 공화당은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을 당한 꼴이니 기존의 사장단은 물러나는 게 순리다. 41대 대통령 부시는 트럼프에게 점령당한 공화당에 있기가 민망해서 힐러리를 찍겠다고 선언했다. 선거 당일 그는 대선 후보 누구에게도 표를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에서도 외부인사나 마찬가지인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켰지만 역부족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힐러리는 샌더스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의 대선은 아웃사이더 트럼프 대(對) 울트라 인사이더(Ultra Insider) 힐러리의 싸움이 되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대 공화당, 보수 대 진보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지난 8월 초 50명의 공화당을 지지하던 국제정치 브레인이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기성 권력에 속하던 그들이 능히 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 동안 워싱턴 주변을 맴돌던 인물들이 아닌, 새로운 인사로 채워질 것이다.
 
  기성 정치 권력자들 중에서 각종 방법으로 트럼프의 당선을 도와주었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등은 내각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조지 부시 시절 네오콘의 대표 중 하나인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도 물망에 오른다.
 
  미국의 정치판은 상당 부분 물갈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다시 인용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보수 논객 윌리엄 버넷은 “트럼프는 자기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다”며 “모두가 그를 제거하려고 일어서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여타 정치인 대다수는 부패한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권을 잡는 순간 그런 부패와 공생 관계로 이뤄진 워싱턴 기성 체제는 무너지거나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었다. 주류 언론을 포함한 미국 정계 기성 정치권(Establishment)에 큰 변화가 일어날 개연성은 아주 높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합법 이민한 히스패닉은 트럼프 지지
 
미국 뉴멕시코 선랜드파크 쪽에서 11월 10일 국경 철조망을 강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국경 장벽의 확대 건설과 멕시코 불법 이민자 추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진=AP/뉴시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한국을 향한 미국의 정책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결정하는 더 큰 요인은 외교정책이 아니라 국내 정치 혹은 경제에 관한 것이다. 외교정책은 미국이 테러리즘 공격을 받은 이후에도 경제와 국내 정치적 이슈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2016년의 대선 역시 미국 국민들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트럼프의 당선은 힐러리가 당선되었을 경우와 다른 종류의 충격을 미국의 경제와 사회 및 국내 정치에 가하게 될 것이다.
 
  많은 학자가 역사상 대제국은 포용적인 나라였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다. 제국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나라인데 억압만 가지고는 성공적인 지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국가주의 및 고립주의를 말하는 트럼프는 미국의 퇴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트럼프는 거꾸로 생각했다. 미국의 지나친 개방과 포용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병들게 하고 살기 어려운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을 강간범과 살인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불법 이민자들이 모두 강간범이나 살인범은 아니지만 1년에 약 3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멕시코인 불법 이민자 중 약 5분의 1 정도가 멕시코에서 범죄를 저지른 그래서 멕시코 경찰에 쫓기고 있는 인간들이라는 사실은 알려진 비밀이다. 트럼프가 멕시코 정부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민정책을 엄격하게 강화할 것이다. 임신을 한 멕시코 여인들이 미국으로 불법 입국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는다. 불법 입국한 엄마가 몇 년을 이민국 관리들에게 적발되지 않는다면 불법 이민자의 아기는 미국의 복지시설 혜택을 받고 미국의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이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시켜야 한다. 이런 골치 아픈 문제가 미국 사회의 심각한 고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단행할 것이다. 트럼프가 합법 이민도 막는다면 그건 성공적인 대제국의 포용성을 거역하는 일이 될 것이다. 스스로 이민자의 후손이며 이민자인 아내와 살고 있는 트럼프가 합법적 이민을 막겠다고 한 적은 없다. 트럼프의 정책은 합법적으로 이민 온 히스패닉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불법 이민자들과 경쟁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서 트럼프의 정책을 오히려 자신들을 지켜주는 안전판으로 인식했다.
 
 
  독서인 트럼프
 
  이민 문제 다음으로 트럼프는 미국 사회를 보수화시키는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는 도가 넘치는 극단적 자유주의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미국 사회를 보는 정반대의 시각이 존재하는데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힐러리가 집권할 경우 그동안 알고 있던 미국은 끝장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정도로 도가 넘치는 좌파적 자유주의가 만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국기를 보면 기분 나쁘다며 국가가 울려 퍼지는 축구시합 개회식에서 선 채로 가슴에 손을 대지 않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미식축구 선수를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며 두둔하는 분위기, 자기가 배달하는 화물에 술이 들어 있다며 배달을 거부하다 회사에서 추방된 아랍계 이민자에게는 두둑한 위로금을 주고 그를 해고한 사장은 무자비한 징벌적 벌금으로 처벌하는 것이 현재 미국의 분위기다.
 
  대부분 미국의 TV 방송 뉴스 시간에는 뉴스를 읽어주는 앵커 두 명, 일기예보 및 스포츠 뉴스를 전달해 주는 아나운서 각각 1명씩 4명이 데스크에 앉아 있는데 이들 중 거의 절반 정도는 흑인이다. 최근 백인 여성 앵커가 자기는 백인이기 때문에 쫓겨났다고 항변했다.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합법화한 주(州)가 점차 다수가 되고 있다. 그것이 모든 인간의 자아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천륜(天倫)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어떤 일이든 도가 넘치면 문제가 생긴다.
 
  트럼프의 당선은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뭉친 결과다. 더 이상 국기를 모독할 수 없고 더 이상 소수가 다수를 능멸하는 상황을 인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슬람교도를 비롯한 다른 종교 신자들을 분노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Merry Christmas!’라고 말할 수조차 없게 된 오늘의 미국은 몇 달의 항해 끝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미국 건국의 선조들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상륙한 지점에 큰 십자가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그런 나라는 분명히 아니다.
 
  트럼프는 이런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다중(多衆)의 분노를 읽고 있었다. 트럼프를 ‘또라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현재 17권의 책을 저술했고 하루에 최소 4시간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한다는 독서인이다.
 
  그가 쓴 책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은 1987년 저술,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백만 권이 팔렸으며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던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이라는 책이다. 선거 유세에 참석한 지지자 한 사람이 《거래의 기술》을 들고 흔들었다. 그것을 본 트럼프가 “그 책은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무엇이지요?”라고 물었다. 지지자들은 “성경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칠 수 있을 것”
 
  미국의 대통령은 대법관을 임명하는 권한이 있다. 대법관들은 국기에 대해 예를 표시하지 않는 게 헌법에 저촉이 되는지 아닌지 등을 최종 결정한다. 현재 보수, 진보가 반반으로 되어 있는 미국 대법관이 앞으로 몇 년 후 어떤 모습일지를 결정하는 것이 이번 미국 대선이었다.
 
  트럼프는 보수적인 대법관들을 임명할 것이며 축은 보수 쪽으로 기울 것이다. 물론 힐러리가 되었으면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힐러리의 당선을 우려한 선거 전략가 딕 모리스는 “힐러리가 당선되면 우리가 알던 미국은 끝날 것”이라고 목청 높였던 것이다.
 
  아직도 미국은 밥 먹을 때마다 기도하고, 일요일 되면 교회 가고, 성경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성경책에 손 올려놓고 자신이 선정한 성경 구절을 읽으며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나라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어머니가 물려준 오래된 성경책에 손 올리고 선서했다. 트럼프는 유세 중 “내가 대통령이 되면 여러분은 지칠 정도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 보수주의의 새 물결을 일으킬 것임이 분명하며 미국 사회는 지금보다 경건한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의 세계와 한국
 
지난 10월 22일 유세에 앞서 게티스버그 국립공원을 찾은 트럼프. 이날 유세에서 트럼프는 취임 후 100일 동안 펼 정책구상을 밝혔다.
  트럼프 현상은 세계 선진국들에서 대두되는 고립주의, 국가주의의 일환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중에 잠깐 멈칫거리는 순간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나타난 현상인 트럼피즘(Trumpism)은 곧이어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로 이어질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일관성 있는 현실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잘 지내겠다는 트럼프의 생각은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다. 러시아를 중국 편에 붙도록 몰아붙이는 것은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힐러리는 러시아와 친한 트럼프를 비난했지만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을 실제로 구상한 주인공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잘 지내는 것은 유럽의 안정에 도움이 되며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러시아는 최상의 협력국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행정부가 지속되는 동안 중국과는 경제 전쟁, 러시아와는 안보 협력을 특징으로 하는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의 관심은 물론 트럼프의 대한반도 정책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트럼프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선거 과정에서 그가 했던 말들 때문이다. 한국 관련 트럼프의 언급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은 상당히 잘사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방위비 분담에 인색하다. 분담금을 대폭 올려야 (100%로) 할 것이다.
 
  둘째, 만약 한국이 분담금 인상을 주저한다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셋째, 한국이 핵무장 하는 것을 미국이 막을 필요가 없다.
 
  넷째, 북한을 통치하는 자는 미친 인간(Maniac)이다.
 
  다섯째, 김정은과 대화할 수 있다.
 
 
  해외 미군 철수는 쉽지 않아
 
트럼프는 한국이 충분한 방위비 분담을 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고 했다.
사진은 2004년 8월 이라크로 투입되기 위해 오산기지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주한미군 2사단 2여단 장병들.
  이런 언급을 보고 놀랄 필요는 없다. 트럼프의 정책은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된 후 정리될 것이다. 선거 과정 중에서 한 말들은 대개 표를 얻기 위한 것이며 그것이 틀린 것이라도 선거 과정 중에는 사과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우리는 후보가 한 말이 정말 정책인지 선거용인지도 구분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 국제정치의 본질적 정책은 강한 미국을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의 국방정책은 간단명료하다. “나는 미국의 군사력을 재건하겠다. 미국의 군사력은 너무나 막강하고 위대하기 때문에 누구도 미국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I will rebuild our military. It will be so powerful and so great that we will never have to use it. Nobody's going to mess with US).”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의 군대는 본질적으로 원정군(expeditionary force)이지 국토방위군이 아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만든 후 그들을 해외로부터 철수시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동맹국들의 더 큰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한국에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가 보기에 한국은 잘사는 나라다. 그가 지은 각종 건물과 호텔에 납품된 대부분 가전제품들은 한국제가 아닌가? 한국이 처한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은 국방비를 그렇게 많이 지출하는 나라는 아니다.
 
  특히 한국의 경제력(GDP)과 비교할 때 한국의 국방비 지출 비율은 세계 평균 수준이며 복지비용이 국방비보다 훨씬 높다는 특징마저 보인다. 그동안 미군의 한국 주둔으로 이런 것들이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에게 고유한 것은 아니다. 힐러리가 당선되었어도 혹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된다 해도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브레진스키 등도 한국 핵무장 허용 말한 적 있어
 
  한국의 핵무장 허용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국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미어샤이머 교수와 브레진스키 교수 등이 이미 오래전에 했던 말들이다. 이들이 한국의 핵무장을 말하는 것은 자신들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을 (혹은 못할) 상황이 되었을 때 한국이 중국에 종속되기보다는 혼자서 안보와 독립을 지키는 것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키신저 박사는 “어떤 나라가 핵무장 하는 경우 그것은 이웃 나라들과 무언(無言)의 불가침 조약을 맺는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어느 날 정말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우리의 전략 옵션은 당연히 핵무장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허락하에 한국이 핵무장 하는 날 한국은 사실 국가안보 문제를 영구히 해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북한 문제만 해결되면 안보가 해결되는 줄 알고 살았던 한국인들이 트럼프의 한국 핵무장 허용론에 황당해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 후 우리의 안보는 즉각적으로 중국의 위협에 당면하게 될 것임을 잘 생각해 보자.
 
  트럼프의 대북정책 역시 세련된 상태는 아니다. 다만 김정은을 미친 인간이라고 비유한 것은 그와 대화하기 힘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며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는 것은 김정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필자는 작년 가을 이래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지금 전혀 놀라지 않는다. 《월간조선》 금년 8월호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기고했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소중한 나라다. 미국의 지정학적 특징,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 특징은 미국만이 우리의 진정한 동맹국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다. 흥분할 필요도, 겁먹을 필요도 없다.
 
  트럼프는 미국 주류 언론이 말한 또라이도 깡패도 아니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그 트럼프가 과연 선거 기간 중의 트럼프와 같은 사람인지를 의심했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국익을 추구한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국익을 추구할 것이다. 거기서 타협점을 극대화하고 충돌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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