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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地政學的으로 고립되어 가는 한국

美 의회, “朴槿惠의 親中정책보다 反日정책 더 불편”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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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脫냉전 이후 지정학적 중요성 떨어진 상황에서 경제는 歐美, 군사는 러시아로
    양다리 걸치다가 경제위기 맞아
⊙ “유럽까지 중국의 해상팽창에 대해 걱정을 하는데, 한국은 별로 그런 반응이 없다”
    (CSIS포럼에 참석한 유럽 외교관)
⊙ “朴槿惠 대통령의 親中정책은 일본과 등을 돌리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
    미국의 글로벌정책에 전면 배치”(미국의 한 에너지 전문가)

劉敏鎬
⊙ 54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미국의 전략가들은 박 대통령의 親中행보를 일찍부터 우려해 왔다. 사진은 지난 2013년 6월 27일 중국을 방문,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중국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7월 29일 오전, 워싱턴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www.csis.org)에서 흥미로운 포럼이 하나 열렸다. ‘아세안과의 협력강화를 위한 범(汎)대서양 전략개발(Developing a Transatlantic Strategy to Strengthen Southeast Asian Cooperation)’이라는 긴 타이틀의 회의. 토론 참가자는 5명이었다. 네덜란드·유럽연합(EU)·베트남을 대표하는 대사급 인사 3명과, 미국 국무부 고위간부 2명이다. 특히 베트남 대사 ‘팜 쾅 빈(Pham Quang Vinh)’이 나온 것은 인상적이었다. 미·월(美越) 양국 관련이나 베트남 국경일 같은 날이면 몰라도 다국적(多國籍) 포럼에 사회주의 대사가 얼굴을 내민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이날 포럼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 유럽·아세안의 관계증진에 관한 것이다. 유럽과 아세안은 경제협력에 주력하는 아셈(ASEM)이란 지역 간 협의체를 갖고 있다. 무려 56개 나라가 포함된 아셈은 대서양과 남중국해, 나아가 동중국해로 연결되는 다자간(多者間) 경제체제다. 별로 주목할 것이 없는 통상적인 포럼처럼 보이지만, 연사들의 발언이 시작되는 순간 회의의 ‘진의(眞意)’가 와 닿았다. 키워드는 ‘중국’이다. 아세안은 중국의 해양팽창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중국의 남중국·동중국 해상팽창에 대한 유럽의 생각은 무엇인가, 중국의 해군력 강화에 맞선 유럽과 아세안의 공동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등등이 이 포럼의 핵심이다.
 
 
  베트남 대사, 미국·EU에 러브콜
 
  네덜란드·EU·베트남을 대표한 연사들은 외교관답게 중국을 자극하는 극단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경제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깔면서 안보문제는 부수적 문제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대화가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일방적 주의주장을 배제하면서’, ‘국제질서에 맞도록’ 같은 수식어를 앞세우면서도 팽창적으로 나오는 중국에 대한 유럽의 생각과 향후 대응책에 관한 얘기가 쏟아졌다. 베트남 대사는 “아세안이 중국의 해상팽창에 대응해 미국은 물론, 유럽의 도움과 지혜를 필요로 한다”면서 “미국과 유럽은 아세안의 평화·번영·법제화·신뢰 등의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러브콜에 대해 유럽의 반응은 적극적이었다.
 
  “유럽은 아세안의 안보망 구축을 기꺼이 도울 것이다. 아세안에 있어서 유럽과 미국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결국 아세안이 필요로 하는 최후의 문제는 더 많은 무장해군(Gunboat)으로 집약될 것이다.(EU대사)”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다. 아세안의 안보문제는 역내(域內) 바다보다 훨씬 광범위한 글로벌 범위에서 거론될 것이다.(네덜란드 외무부 아세안 담당 국장)”
 
  아세안의 유럽에 대한 기대에 발맞춰, 유럽의 아세안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Engagement)’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본전제로 통했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애매한 외교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다자간 협조체제를 통해 중국의 팽창정책에 대응하겠다는 유럽의 의지는 확고하게 와 닿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중국은 아세안을 비롯한 분쟁지역의 문제를 양자 간 대화나 회의로 풀어 나가자고 주장한다. 토지·영해·영공과 관련해, 제3자인 미국이나 유럽은 손을 떼라고 주장한다. 유럽은 양자 간 대화도 중요하지만, 다자간 협력체제를 통해 유럽과 아세안의 공동이익이 증진될 수 있다고 본다.
 
 
  남·동중국해 문제에 EU도 관심
 
지난 7월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CSIS포럼. 중국의 해군력 강화에 맞선 유럽과 아세안의 공동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아세안의 러브콜과, 유럽의 적극적인 호응과 더불어 미국의 입장도 확고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국무부 관리는, 국장대리(Deputy Assistant Secretary)급 인사다. 아세안만이 아니라, 한국·중국·일본을 관할하는 동아시아 담당관도 참석해 국무부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밝혔다. 그들은 “미국과 유럽의 아세안정책은 일체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라면서 “아세안 안보구축을 위해 미국과 유럽 간의 고위급 회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의 두 간부는 보다 빠르고 적극적인 유럽의 관여, 특히 군사적 차원의 협조관계를 주문했다.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아세안 사이의 안보체제만이 아니라, 유럽·아세안·미국을 하나로 엮는, 대서양-남중국해-동중국해-태평양으로 이어지는 해상라인 전체의 안보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아세안의 러브콜, 유럽의 적극적인 대응, 미국의 글로벌 안보망 구축. CSIS에서의 논의 결과를 지켜보면, 지난 세기 아시아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가 떠오른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공격과 함께 일본은 동남아시아 점령에 나선다.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은 당시 동남아시아 식민지 종주국들이었다. 일본의 공격은 한 세기 이상 통치해 왔던 유럽의 식민지 통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초기에 동남아시아 각국은 백인을 쫓아낸 일본군을 ‘해방의 첨병’으로 환영했다.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자, 일본을 대신해 다시 유럽의 군대가 몰려온다. 동남아 국가들은 독립운동을 통해 유럽 제국주의를 전부 몰아냈지만, 불과 반(半)세기가 흐른 시점에서 다시 유럽이 밀려든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중국에 대응하려는 아세안의 적극적인 요청에 의한 것이다. 10년 이상 싸운 미국과 베트남조차 중국에 맞서 함께 손을 잡고 있다.
 
 
  그리스는 왜 외면당했나?
 
  유럽과 미국이 아세안을 대하는 태도는 지난 7월 그리스 사태를 다룰 때와는 180도 다르다. 그리스 국가부도와 아세안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한국의 신문·방송은 그리스 사태를 많이 다루었지만, 포퓰리즘 때문에 그 지경에 이른 그리스를 훈계하는 조의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그리스 사태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경제적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관한 논의에는 관심이 없다. ‘지정학적(地政學的)’ 관점에서 관심이 있을 뿐이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나라는 그리스만이 아니다.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처지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가 터지면서 이들 나라의 상황에 대한 경보(警報)는 갑자기 해제됐다. 그리스 사태 이후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경제상황은 갑자기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그리스만 난리를 겪고 다른 나라들은 대충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까? 지정학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워싱턴 뉴 아메리카 시큐어리티센터(CNAS:www.cnas.org) 상임연구원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은 그리스 사태를 경제외적 이유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키신저 박사를 잇는 21세기 글로벌 폴리틱스의 거두로, 지정학을 키워드로 세계의 변화와 미래를 분석하고 있다.
 
  “그리스는 발칸반도와 지중해를 연결해 주는 중간다리에 해당한다. 냉전(冷戰) 당시 발칸반도 위의 소련 위성국과 소련을 막는 나토의 최전선 기지였다. 그러나 서방에 대한 그리스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냉전 종언과 함께 추락했다. 구 소련 위성국이 무너지고, 발칸 자체가 유럽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반공전선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사라졌다.
 
  그리스는 그 같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스는, 경제는 유럽과 미국에, 외교·군사는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그리스 경제상황은 한층 더 악화되었다. 동(東)과 서(西) 모두로부터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보면 지정학적 의미를 상실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라가 그리스다. 이들에게는 발칸이나 그리스가 아니라, 지중해를 통해 중동-인도양-남중국-동중국-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안보망이 한층 더 중요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가 탈락하면서 경제난에 봉착한 것이다.”
 
 
  美軍철수 후 침몰한 그리스
 
  필자는 카플란의 분석에 맞춰, 지정학적 관점에서 그리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봤다. 그리스가 유럽의 나토체제에 들어간 것은 1952년이다. 그리스는 1949년 12개 나라가 나토를 만든 지 3년 만에 터키와 함께 특별히 들어갔다. 처음부터 나토의 주류(主流)가 아니라, 변방에 속하는 나라였던 셈이다. 이후 EU에 가입한 것은 1981년, 유로체제에 들어간 것은 2001년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중요성은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리스의 군사적 중요성이 격감했다. 냉전 당시 그리스에는 4개의 나토군 기지가 있었다. 아테네 주변 공군기지인 헬레니콘(Hellenikon)과 그리스 신화의 산지인 크레타 섬의 소우다(Souda) 해군기지가 중심이었다. 그리스의 미군기지는 한반도로 치자면 동부 최전선에 해당되는 곳들이다.
 
  1990년 2월 미군은 헬레니콘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를 폐쇄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인들은 반미(反美)감정이 강하다. 당시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을 축하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아무도 미군 주둔에 따른 선물인 3억5000만 달러의 대(對)그리스 무상(無償)원조는 생각하지 않았다.
 
  2015년 현재 그리스에 남은 미군기지는 크레타 섬의 해군기지 하나뿐이다.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900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그리스에서 미군과 나토가 전부 떠났다고 보면 된다. 지정학적 가치가 떨어지면서 군사적 가치도 낮아진 것이다.
 
  카플란은 그런 지정학적 변화가 그리스 침몰의 가장 큰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경제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모두 그리스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러나 지정학적 의미는 전혀 다르다. 물론 그리스의 경제력이 다른 유럽의 나라를 뛰어넘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할 경우 지정학적 가치도 부수적으로 올라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그리스의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나타났다. 냉전 후 나타난 국제정세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하고, 고대(古代) 그리스의 자존심을 내세워 미국과 유럽을 상대해 온 겸손치 못한 세계관이 국가부도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 국가부도와 아세안 부상의 인과(因果)관계는 너무도 간단하다. 미국은 현재 국방비 감축에 따른 전력(戰力)약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라도 줄이고 절약해야 할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해상팽창에 맞서는 아세안 전략보강이 한층 더 필요하게 되었다. 이른바 ‘리밸런싱(Rebalancing·재균형)’ 전략이다. 미군전력의 유럽 대 아시아 비율을 종래의 5 대 5서, 4 대 6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5월 21일 국내 한 포럼에서 “2017년까지 미 해군의 60%가, 2020년까지 미 공군의 60%가 아시아로 전진배치될 것”이라면서 “리밸런싱을 통해 동맹강화, 신흥 파트너와의 대화, 다자적(多者的) 구조 활성화에 주목하겠다”고 말했다.
 
  외교적 수식어를 제외할 경우 리퍼트 대사의 말은 ‘대(對)중국 방어선’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의 몰락은 미국이 리밸런싱 전략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 볼 수 있다.
 
  리퍼트 대사의 발언은 단순히 미국의 계획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포함된 발언이다.
 
 
  한국은 핀란드化할 것인가?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한국내에서 핀란드화(Finlandization)에 관한 논의가 있는가?”
 
  앞서 CSIS 포럼에 참석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유럽 외교관으로부터의 질문이다. 그는 필자가 들고 간 한국책을 보고 내가 한국인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싱가포르와 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한국의 갈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핀란드화’의 의미를 약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그가 말하는 핀란드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되물어 봤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국이 강해지면서 중국에 반대를 못하는 자세, 초(超)강대국 옆에 붙은 소국(小國)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핀란드화는 냉전 당시 핀란드가 소련을 대하던 외교행태다. 당시 소련은 핀란드를 점령하거나 위성국가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만약 핀란드가 반소(反蘇)국가로 돌아설 경우 언제든 핀란드를 집어삼킬 수 있었다. 당연히 핀란드는 외교·국방 문제에서 소련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종속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핀란드는 국내정치에서는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했지만, 나중에는 소련의 입김이 국내정치에까지 미쳤다.
 
  설명을 듣는 순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이 중국의 먹잇감이 된다는 가정 자체가 탐탁지 않았다.
 
  “순서로 볼 때 당하는 한국이 아니라, ‘핀란드화’라는 깡패의 논리를 국제정치에 끌어들이는 중국 측에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상식에 맞을 듯한데?”
 
  필자의 역질문에 대해 그 유럽 외교관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응답했다.
 
  “유럽까지 중국의 해상팽창에 대해 걱정을 하는데, 한국은 별로 그런 반응이 없는 듯해서 물어본 말이다.”
 
  집에 돌아와 유럽 외교관의 질문에 대해 되새겨보았다. 중국이 동남아시아 주변을 핀란드화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중국은 통 큰 경제지원을 동남아시아에 제공하면서, 영해(領海)보호와 자원개발이란 미명하에 섬·바다·하늘을 유린하고 있다. 중국과 긴장관계에 있는 베트남·필리핀 정도가 직접 나서서 유럽·미국·일본에 SOS를 치고 있을 뿐,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주한미군의 위상변화에 대한 논의 시작될 것”
 
미국의 리밸런싱 전략은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지난 2004년 8월 이라크전선으로 가기 위해 오산비행장에서 비행기에 탑승하는 주한미군 2사단 2여단 병사들.
  한국은 어떨까? 유럽 외교관은 한국이 이미 중국 앞에서 낮은포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런 시각은 최근 필자의 10년 친구인, 미 의회 에너지 관련 상임연구원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텍사스 출신인 그는 원래 싱크탱크에서 의회 관련 일을 하다가 상원의원의 추천으로 에너지 관련 전문가로 돌아선 인물이다.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아시아 관계자들을 수시로 만나고, 현지 방문도 잦다. 그의 말이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친중(親中)노선을 걸을 것이란 얘기는 이미 2012년 여름, 한국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떠돌던 얘기다. 워싱턴 아시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식적인 얘기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을 포함해 모든 국가가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정책은 일본과 등을 돌리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하다.”
 
  그는 “아시아 리밸런싱에 따라 약 절반 정도의 전력이 일본과 연결된다”면서 “리밸런싱이 본격화하면 주한미군의 역할도 급속히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전략은 일본과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 이건 타협할 수 있거나, 논의 중인 문제가 아니다. 백악관·의회·국무부·국방부 모두가 이미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국방예산을 계속 줄여 나갈 것이다. 그렇게 줄어드는 부분을 뒷받침해 줄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인도·인도네시아도 중요하지만, 이들과의 협력관계는 제로(0)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호주는 지정학적으로 다소 멀다. 일본은 테러의 위협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친미국가다.
 
  한국이 경제적 관점에서 친중정책을 펴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담을 쌓으면서 적대시하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위상변화에 대한 얘기는 아직 본격화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런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敵이 되어 가고 있다”
 
  그는 워싱턴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인공섬을 만들어 불침(不沈) 항공모함을 무려 9개나 만들었다. 전부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의 백악관·의회·국방부 모두가 반대하지만, 중국은 전혀 개의치 않고 진전시키고 있다.
 
  현재 워싱턴에서 중국이 미국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친구가 아닌 것은 좋은데, 적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중국이 저렇게 나가는 상황에서, 미군의 리밸런싱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안보망 재구축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한국이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대응할 경우 미 의회의 한국에 대한 지지는 급속히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5년 월남(남베트남) 공산화는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닉슨과 키신저의 오판(誤判)이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당시 의회에 있다. 포드 대통령이 월남 지원금 연장을 호소했지만, 의회가 거부했다. 월남군에 대한 무기공급이 끊어지면서 지도부가 동요했다. 탈영병이 하루에 1만명 이상 나오면서, 월남은 한순간에 붕괴했다.
 
  한국의 친중정책보다, 반일(反日)정책이 더 미 의회를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이 미국의 리밸런싱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그런 시각에서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보는 중심적 인물이다.”
 
 
  ‘투키디데스의 덫’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있는 투키디데스상.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이상론이 아닌, 현실론에 입각해 해석한 서구 최초의 역사학자다.
  ‘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 Trap)’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역사관을 뜻하는 것으로, ‘소프트 파워’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박사를 통해 더 유명해진 말이다. 조지프 나이는 2002년 국제정치학계의 명저 《국제분쟁이해법-역사와 이론 개론(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의 첫 부분에서 ‘투키디데스의 덫’에 대해 언급한다.
 
  ‘투키디데스의 덫’이란 “신흥파워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기존의 파워는 그 같은 신흥파워를 두려워한다. 결국 양자는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전쟁을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다.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과의 전쟁은 필연적’이라는 것이 그 핵심이다.
 
  조지프 나이는 펠로폰네소스전쟁 당시의 교훈을 미국 군사외교사에 적용했다. 그는 “페르시아를 꺾고 강대해진 아테네는 주변국들을 무시했다. 이러한 태도는 다른 모든 나라의 반감과 함께 기존 강국인 스파르타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가 펠레폰네소스전쟁이다”라면서 “강대국일수록 약한 나라에 잘해 줘야 하고, 다른 나라와의 동맹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등장한 직후까지만 해도, “미·중(美中)은 ‘투키디데스의 덫’을 피해 갈 수 있다, ‘투키디데스의 덫’은 과거의 도그마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정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아시아 전체로의 영향력 확산에 나서는 중국을 보면서 미국의 입장은 변해 가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덫’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피해 갈 수 있는 방안이 극도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일본의 아베는 바로 그 순간에 등장한 인물이다. 미국의 입장을 파악한 일본은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리밸런싱 정책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아베만이 아니라, 관료·재계·학계 나아가 야당조차도 전부 이에 동의했다.
 
  일본의 야당은 역사문제 등과 관련해 아베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일본이 미국과 함께 21세기 안보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워싱턴에 들른 일본 내 대학의 한 교수는 미국이 일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유를 다른 차원에서 분석한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직접 전선(戰線)을 맞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직접 대치한다는 것은 미국에는 악몽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공격에 의해 본토에서 숨진 미국인은 전부 6명에 불과하다. 오리건주에서 길을 가던 어머니와 5명의 자식이 일본에서 날려 보낸 풍선폭탄에 사망한 사건이다. 전쟁 말기 일본은 특공대를 조직해 미국 본토에 투입할 계획도 있었다.
 
  9·11 테러사건을 논외로 할 때, 아직 본토에서 공격을 당한 적이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21세기 무기는 20세기 때와 차원이 다르다. 바다와 하늘에서 중국과 직접 전선을 마주한다는 것은 미국에는 상상 밖의 일이다. 미국은 일본에 그 자리를 맡기자는 것이다. 사실 일본 외에 그 같은 역할을 맡을 나라도 없다.”
 
 
  ‘地政學’이 아닌 ‘地理學’에 매달리는 한국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反日노선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모습.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악수하는 모습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지정학은 20세기 흑백필름 시대 국제정치의 유산(遺産)’이란 것이 최근까지의 평가였다. 2005년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의 대부(代父)인 조지 캐넌이 101살의 나이로 숨졌을 때 냉전 당시의 외교정책의 근간이 된 지정학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듯했다. 글로벌 시대에 지정학은 별 의미가 없게 되었고, 지정학을 배운다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행태로 느껴졌다.
 
  최근 지정학은 다시 21세기 새로운 버전으로 진화해 재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팽창을 불안하게 받아들이는 아세안과 유럽·미국·일본이 21세기 지정학 신봉자들이다.
 
  2015년 여름의 한국을 보면 지정학이 아니라, 지리학에 집착하는 듯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의미와 가치를 더 두는 듯하다. 한국의 신문들은 중국이 언제 미국을 추월할지에 대한 뉴스를 계속해서 다룬다.
 
  그런 ‘특별한’ 지리적 관계에 부응해 한국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새해인사를 중국어 비디오로 만들어 인터넷에 띄우고, 중국인 관광객에게 메르스 걱정 말고 방문해 달라고 호소하고, 중국인으로부터 받은 그림과 편지를 휴가 중에 SNS에 공개하는 사람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유럽·일본·유럽 그 어떤 나라를 상대로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19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직면했을 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나섰다. IMF와 세계은행 고위 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국에 편의를 봐주도록 압력을 넣었다.
 
  당시 워싱턴에 있던 필자는 알고 지내던 일본기자들로부터 “저토록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강력하게 지원하다니, 부럽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당시 클린턴의 설득근거는 두 가지였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고, 민주주의를 이뤄 낸 국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아직 결정 안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총부리를 겨누었던 중국군의 9월 3일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필자는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지금과 같은 외교행보를 계속할 경우, 만일 제2의 IMF사태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클린턴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 한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할지는 의문이다.
 
 
  한국만 세계 흐름에 역행
 
  앞에서 소개한 미국 에너지 전문가가 말했듯이 미 의회는 이미 한국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2의 IMF 가능성을 과장해 미국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동댕이쳐진 그리스, 프랑스의 베트남 철수 이후 60년 만에 다시 동남아로 진출하는 유럽, 이미 확정된 미국의 리밸런싱 전략 등을 감안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戰勝節)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이 국익(國益)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유럽, 동남아 국가들까지도 중국을 경계하면서 대중(對中)전선을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 홀로 중국을 중심으로 세상에 맞서고 있는 형세다.
 
  한국의 미래는 지리학이 아니라 지정학에 기초해 설계해 나가야 한다. 어제가 아니라 내일, 감정이 아니라 이성(理性)에 근거해 국가전략을 펼쳐 나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간절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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