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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아베의 담화’가 내비친 가시밭길 韓日관계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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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아베의 美의회 연설은 케리 美 국무장관의 助言 받아 작성, 과거사문제 등에 대한
    미국의 중립적 태도 달라져
⊙ “韓·中과 싸울 수 있다는 생각 확산…, ‘이제 일본은 잃을 것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잃을 것도 없는 나라’라는 인식 일반화”(60대 일본 언론인)
⊙ 서점에는 일본 자화자찬하는 책들 봇물… 아키히토 천황 죽고, 1960년생인 새 천황 즉위하면
    민족주의 더욱 거세질 것

劉敏鎬
⊙ 54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일본을 자화자찬하는 책으로 가득한 일본 서점. 1930년대 무사도를 통해 자화자찬하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과거와 미래’
 
  지난 6월 22일 한일(韓日) 국교(國交) 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접한 축하 메시지의 키워드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서울의 일본대사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도쿄(東京)의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축하리셉션에 참석해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교차 방문은 2012년 12월 이후 지속돼 왔던 한일 두 나라의 어색한 관계를 풀기 위한 ‘깜짝 이벤트’다. 박 대통령은 과거에, 아베는 미래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20세기 전반 불행했던 관계, 과거사의 무거운 짐, 화해와 상생 같은 단어가 박 대통령 축하 메시지의 근간이다. 미래라는 말도 등장하지만,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한문을 예로 들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내일을 강조했다.
 
  아베의 경우, 수교 과정에서 보여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역할, 양국 간의 활발한 인적 교류, 국제사회에서의 협력 필요성에 대한 얘기가 전부다. 메시지 전체를 통틀어 ‘역사’라는 말은 딱 두 번 등장한다. 그나마 종군위안부나, 식민지지배 과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일수교(修交) 이후 이어진 ‘50년’의 역사다. 1965년 이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는 역사라는 말을 할 때 반드시 ‘50년 동안의’라는 수식어를 집어넣었다. 아베는, 박 대통령이 메시지 서두에 강조한 ‘20세기 전반 불행했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1965년 수교 이전에 벌어진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얘기를 피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6월 22일 행사에 대해 한일 양국 언론 모두 엄청난 관심을 표명했다. 두 나라의 거의 모든 전국지(全國紙)들이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다룬 사설이나 칼럼을 내보냈다. ‘과거는 잊지 말고 미래도 중시하자’는 논조의 글이 대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 언론은 종군위안부 같은 과거문제에, 일본 언론은 북한·중국문제를 고려한 한·미·일(韓美日) 3국 협력 강화의 필요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Forced Labor’ 對 ‘Forced to work’
 
  언론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은 쉽게 해빙(解氷)무드로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7월 초 독일 본에서 열린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登載)문제와 관련해 한층 더 틈이 벌어졌다. 한국은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강제징용 관련 표현을 둘러싸고 양국 간 인식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들의(조선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일하도록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to forced to work)’이란 표현이다. 한국은 일본이 강제징용을 인정했다고 말하고,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일본은 강제노동(Forced Labor)과 강제징용(Forced to work)은 전혀 다른 의미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제징용은 전시(戰時) 중 인정된 것이지만, 강제노동은 국제노동기관(ILO)에 의해 금지돼 있다고 한다. 강제징용(Forced to work)은 했지만, 강제노동(Forced Labor)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조선인의 강제노동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노동이 아니라, 전쟁 중에 이뤄진 강제징용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월급도 지급했다면서 당시 급여표를 제시하기도 한다. 내막이 드러나자 한일 양국 언론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성토했다. 결국 양쪽 간에 앙금만이 남게 되었다.
 
 
  ‘無效’와 ‘이미 無效’
 
1965년 6월 22일 한일국교정상화 조약 비준식. 양국은 한일합방조약 등의 효력, 청구권문제 등으로 의견충돌을 빚었다.
  강제노동과 강제징용을 둘러싼 양국 간의 이견(異見)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50년 전 한일국교정상화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 일본의 과거 한반도 지배의 법적 효력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관해 양국 간 의견이 엇갈렸다. 한국 측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처음부터 무효 (ab inition Null and Void)’라고 주장했다. 을사보호조약은 물론, 한일 간에 이뤄진 모든 협약이 처음부터 전부 무효라는 의미다. 이에 맞서 일본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Have no effects)’라는 말로 맞섰다. 처음부터 무효인지 여부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이 해방되면서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졌다는 현재 상황을 강조한 말이다. 일본 측 주장에 따를 경우 을사보호조약이 정당한 조약이었다는 해석으로 갈 수 있다. 두 나라는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합의점을 찾았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이미 무효다(Already Null and Void)’라는 말이었다.
 
  원래 한국이 마지막까지 관철하려 한 말은 ‘무효(Null and Void)’라는 말이었다. 해방 전에 이뤄진 한일 간의 모든 조약이 아예 무효였다는 생각이었다. 일본은 그에 맞서 ‘이미(Already)’라는 말을 하나 덧붙였다. ‘원래 합법적이었지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면서 무효가 됐다’는 의미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역사적 대의명분(大義名分)보다 청구권(請求權) 자금에 목을 매고 있었다. 결국 한국이 양보했다. 일본은 ‘이미’라는 말을 하나 집어넣어 “해방 전 한일 간 협약은 합법이었다. 따라서 불법행위에 따른 보상(報償)이나 배상(賠償)을 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다.
 
  무상(無償) 3억 달러와 유상(有償) 2억 달러, 금융차관 1억 달러로 이뤄진 일본의 지원은 불법 식민지 청산에 따른 배상금이 아니었다. 경제협력이란 미명(美名)하에 제공한 특별기금에 불과하다.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 아니기에 청구할 것도 없다”는 것이 일본 측 논리다. 경제협력기금 6억 달러를 통해 식민지시대와 관련된 모든 청구권이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完全かつ最終的)’ 끝났다는 조항도 조약문에 들어갔다.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지난 6월 22일 평통사 등 일부 단체 회원들은 한일협정 폐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근 국내에서 한일조약 무효론이 제시되고, 개인적 청구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한일조약 조항을 살펴보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해석할지가 궁금해진다. 이런 소리를 하면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친일적(親日的) 사고’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50년 전 조약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 해석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민족주의 슬로건을 내걸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다가 아니다. 외교능력이나, 국제법에 능통한 학자는 필수적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력(國力)이다. 일본이 이리저리 피해갈 수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국력이 따라주지 않는 한, 우리의 주장은 골목대장 논리에 그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구현할 힘도 없으면서, 국제무대에서도 “그게 아니고, 진짜 의미는…” 운운하면서 국내 여론에 호소하던 방식으로 우리 주장을 하다가는 더 큰 화(禍)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
 
  외교문서를 만들 때 자구(字句) 하나, 단어 하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시간에 쫓겨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적당히 타협할 경우, 그 피해는 후세로 넘어간다.
 
  강제노동과 강제징용에 관한 한일 간의 상이(相異)한 주장이 어디까지 타당한지는 알 수 없다. 의문인 것은 ‘과연 한국 측이 협의문안의 단어 하나하나에 주목하면서 협상에 임했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이 이번 협상에 완벽하게 임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연 한국은 ‘Forced Labor’와 ‘Forced to Work’의 국제법적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국내 반일(反日) 애국주의 수준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한국 외교부의 행태를 보면, 그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나온다.
 
 
  ‘아베담화’와 ‘아베의 담화’
 
  2015년 한국의 가장 큰 외교현안 중 하나는 8월 15일 아베 일본 총리가 ‘종전(終戰) 70주년 기념 담화’에 어떤 내용을 담느냐 하는 것이다. 아베가 역사문제, 특히 종군위안부나 독도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에 따라 한일외교의 향방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식민지 역사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 및 고노(河野)담화의 계승 여부는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아베는 일찍부터 8월 15일 담화를 준비해 왔다. 총리 관저 내 참모들과는 물론, 지식인, 정당 지도자들과 이에 대한 협의를 계속해 왔다. 특히 미국과의 협의는 아베가 가장 중시하는 과정 중 하나다.
 
  지난 6월 23일 《아사히신문》은 8월 15일 아베담화의 내용을 점칠 수 있는 보도를 했다. 이날은 한일 정상이 상대방 나라 대사관을 교차방문을 한 바로 다음 날이다. 《아사히신문》 기사의 키워드는 ‘아베담화(安倍談話)’와 ‘아베의 담화(安倍の談話)’ 두 개다. 《아사히신문》은 아베가 발표할 메시지가, ‘아베담화’가 아닌, ‘아베의 담화’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글의 ‘의’로 풀이되는 일본어 소유격 조사 ‘노(の)’가 있느냐 없느냐가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양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베담화’는 각료회의에서의 논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아베의 담화’는 각료회의와 무관한 총리 아베만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 ‘총리담화(總理談話)’와 ‘총리의 담화(總理の談話)’의 경우도 비슷하다. 전자(前者)는 각료회의에서 논의한 뒤 통과되어 일본정부가 공인(公認)한 것이다. 반면에 후자(後者)는, 예를 들어 아베가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를 시찰한 뒤 현지 주민들에게 전하는 위로 메시지 같은 것을 말한다.
 
  과거 ‘무라야마담화’나 ‘고노담화’는 총리 개인이 아닌, 장관 모두의 입장을 반영한 각료회의를 거쳐 결정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메시지다. 만약 ‘무라야마의 담화’ ‘고노의 담화’라고 할 경우, 그 의미는 크게 줄어든다.
 
 
  ‘아베 담화’의 양면성
 
  그렇다면 아베가 종전 70주년 메시지를 ‘아베의 담화’로 만들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앞으로는 ‘종전 80주년’, ‘종전 100주년’처럼 일정 주기(週期)를 맞이할 때마다 ‘총리담화’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반영이다. 아베는 주기별로 돌아오는 종전 메시지를 아예 폐지하길 원하고 있다. 그때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고, 외교적 수세(守勢)에 처하게 되거나 외교분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사 관련 담화를 아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그 의미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아베의 담화’가 대안(代案)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아베의 소신이다. 평소의 아베의 행적을 보면 종전 70주년 메시지는 반성과 무관한 내용이 될 듯하다. 그 같은 내용을 ‘총리담화(아베담화)’에 담기 위해 각료회의에 넘길 경우 일부에서 반발이 생길 수 있다. 이 사실이 외부에 누설되면 국민적 반감(反感), 혹은 한국이나 중국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아베 혼자서 생각을 가다듬은 뒤, 8월 15일 당일 발표하기 위해 ‘아베의 담화’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아베가 한국과 중국의 주문을 무시한 발언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베’라는 정치가 개인의 생각이지 ‘일본정부’의 생각이 아니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반대로 ‘아베의 담화’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충분히 담는 데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 우익 세력들이 아베의 그런 발언을 비난하더라도, “각료회의를 통과한 것이 아니기에 정부 전체의 입장은 아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사죄 발언을 했지만, 아베 개인의 생각에 그치는 단편적인 메시지일 뿐이다”라고 둘러댈 수 있기 때문이다.
 
 
  各論에 강한 일본 외교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6월 22일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제공=《마이니치신문》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례-즉 ‘For-ced to work’ ‘Already Null and Void’ ‘아베의 담화’-는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뭔가 솔직하지 못하고 직설적이지 못한, 믿기 어려운 일본’이라는 이미지와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같은 생각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일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미국 외교관은 “일본 외교관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외교관도 없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허점을 치는 이런저런 묘안(妙案)들이 협상과정에서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체적으로는 양보하는 듯하지만, 미국이 생각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각론(各論)에 주목하면서 거기서 실익(實益)을 챙긴다는 것이다. 미·일(美日)협상은 대체로 큰 틀은 미국이, 각론에 해당되는 부분은 일본이 실익을 챙기는 선에서 매듭지어진다고 한다.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협상을 준비하지 않으면, 두 눈 뜬 채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외교무대에서 ‘솔직하고 직설적’이라는 말은 ‘바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본은 이미 20세기 초에 영국과 동맹을 맺는 등, 구미(歐美) 열강과의 외교에 익숙한 나라다. 상대를 기쁘게 만들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국익(國益)을 챙기는 외교에 능숙하다.
 
  종전 70주년 기념 ‘아베의 담화’의 구체적 내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전망이 무성하다. 일부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무라야마담화와 고노담화를 ‘전체적으로 이어가기(全體として引き續ぐ)’는 하겠지만, ‘사죄(お詫び)’나 ‘식민지지배(植民地支配)’와 같은 구체적인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아시아문제 담당 상급연구원은 이런 얘기를 했다.
 
 
  케리가 손봐 준 아베의 美의회 연설문
 
  “지난 4월 26일 아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들른 곳이 보스턴이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베는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駐日) 미국대사의 아버지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에도 들렀지만, 그가 보스턴을 방문한 더 큰 이유는 케리 국무부 장관 집에서의 만찬을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만찬 3일 뒤, 즉 4월 29일 아베의 미 의회 연설내용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아베는 케리에게 조언(助言)을 원한다면서 미 의회에서 행할 자신의 연설문을 보여줬다. 특히 과거사문제에 대한 케리의 의견을 물었다. 이날 만찬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장관도 참석했다. 만찬이 끝난 뒤 양국 전문 참모들은 아베의 미 의회 연설문에 대해 논의했고, 다음 날 새벽 연설문이 수정 보완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과거사에 관한 아베의 미 의회 연설문은 케리가 보태고 고친, 미국의 의사가 적극 반영된 결과물이란 점이다. 한국·중국은 아베가 미 의회 연설에서 과거사문제를 외면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연설문은 케리가 도와준 연설문이다. 사실상 미국의 의향이 적극 반영된 연설문이라는 얘기다.”
 
  미 의회 연설에서 아베가 사용했던 단어 하나, 문구 하나가 케리의 도움과 보증하에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일 역사문제에 대해 중립적(中立的)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 언론을 보면, 종군위안부·독도 문제에 대해 친한적(親韓的) 입장을 취하는 미국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크게 보도되곤 한다. 그 배경을 보면 너무도 간단하다. 지역구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거나 한국 기업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의원들은 10여 명이 전부다. 이들은 대세(大勢)를 움직이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케리 미 국무장관이 아베의 미 의회 연설문을 다듬었다는 것은 역사문제에 대한 미국의 중립적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는 케리, 즉 미국이 다듬어 준 역사관을 모범답안으로 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기념행사에서 ‘과거’라는 말의 의미를 ‘1965년 이래의 50년’으로 한정한 아베의 메시지도 케리의 모범답안을 참고로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8월 15일 ‘아베의 담화’의 내용은 한국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거나 오히려 반대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일지가 문제일 뿐이다. 역사문제와 관련해 아베는 결코 주저하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특명위원회의 위안부 대책
 
  7월 2일 자민당 정치인 모임인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의 정책제안이 발표됐다. 이 위원회는 전후(戰後) 보수(保守) 정치인의 대명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아들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명칭에서 보듯, 이 위원회는 아베를 응원하는 우향우(右向右) 정책 발굴로 유명한 곳이다. 이날 정책제안의 핵심은 종군위안부문제였다. 한국이 미국에 설치하고 있는 종군위안부 기념비와 조각상(像)에 대한 대응방안이 주된 내용이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반론(反論)을 행하면서 내외의 인식을 바르게 고쳐 나간다.
 
  둘째, 전후의 평화국가로서의 일본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린다.
 
  셋째, 배외주의(排外主義)를 버리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간다.
 
  필자는 특명위원회의 정책제안을 접하면서 아베의 ‘엄청난 성장’을 감지했다. 아베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12년 12월 두 번째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내각제인 일본은 총리 한 명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다. 정책 하나 구체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우정(郵政)개혁을 하는 데 들인 시간만도 3년에 달했다. 그나마 원래 생각했던 개혁안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아베의 경우, ‘불과’ 출범 32개월 만에 한국에 맞대응하는 정책을 만들어 모두에게 공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본은 종군위안부 관련 문제가 발생하는 미국이나 유럽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정책홍보와 역사가들과의 교류와 정보교환을 확대할 계획이다.
 
  자민당의 정책제안은 곧바로 정부로 넘어가 ‘국가정책’으로 굳어진다. ‘국가정책’이라는 말은 관련 예산이 지속적으로 지원된다는 의미다. 보다 조직적·체계적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 한국을 표적으로 한, 미국과 외국에서의 반(反)종군위안부 활동이 공식화할 것이다.
 
 
  더 이상 ‘부자 몸조심’ 하지 않는 일본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종군위안부 대응방안이 나온 것도 놀랍지만, 한국과의 정면승부에 나선 아베 아바타들의 열기가 무섭게 느껴진다. 전후 일본 정치사를 보면, 일본이 특정 국가의 특정한 활동에 맞서는 정책을 추진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정도가 유일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여기에 한국과 관련해 종군위안부 대응방안이 추가된 것이다. 남북한 전체가 일본의 싸움 상대가 된 것이다.
 
  일본 속담에 ‘부자는 싸움을 안 한다’는 말이 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인데, ‘경제동물’ 일본인의 처세술이 배어 있는 말이다. 돈이 있으면 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 부자의 경우 싸울수록 손해만 보게 된다. 한국처럼,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지도 않는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내 주머니 속이 두둑한 상태에서는 굳이 상대와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역설적으로 상대에게 싸움을 건다는 것은 그가 부자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만난 60대 신문기자 출신 일본인은 최근 동아시아 상황을 ‘부자는 싸움을 안 한다’는 속담을 가지고 설명했다.
 
  “경제적·심리적으로, 일본은 더 이상 부자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중국과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이 일본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작은 섬(센카쿠/댜오위다오-편집자 주) 하나를 두고 중국과의 신경전(神經戰)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판 붙어 보자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작은 섬이니까 인명 희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믿고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진 것은 미국과 소련에 진 것이지, 중국에 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섬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중국은 해상전(海上戰) 경험이 전무(全無)한 나라이다. 덩치만 크지, 첨단기술과 정보에 의존하는 실전(實戰)에 나설 경우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나는 중국과의 전쟁을 지지하거나, 이기거나 지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아베 출범 후 많은 일본인이 ‘싸울 수 있다’는 발상을 갖게 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지만, 20세기 일본은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풍요로운 나라였다. 21세기는 다르다. 여러 가지로 쫓기고 다급해지고 있다. ‘이제 일본은 잃을 것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잃을 것도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일반화하고 있다. 아베는 그 같은 생각의 원점(原點)에 있는 인물이다.”
 
 
  1930년대 일본과 유사
 
1936년 극우청년장교들이 일으킨 2·26사건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가속화시켰다.
  아베의 우향우 정책이 가속화하면서 2015년의 일본이 1930년대 공황기(恐慌期)의 일본과 비슷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공황을 맞은 당시 일본인의 의식이 어떠했고, 일본이 어떤 식의 행보를 보였는지를 살펴보면 비슷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고 한다. 무기수출을 통한 경제활로 개척, 가상적(假想敵)으로 중국 상정, 동남아시아 제국(諸國)과 벌이는 활발한 교류, 적극적인 통화(通貨)정책을 통한 경기부양(浮揚), 집권 정당에 의한 매스컴 장악, 국민들의 외국에 대한 무관심….
 
  2015년의 일본이 1930년대와 크게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미국의 지지와 후원하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1929년 월스트리트 주식이 곤두박질 치기 직전, 이미 일본은 공황상태에 들어갔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戰勝國)이었지만, 금(金)본위제를 해제하면서 경제구조가 붕괴했다. 미국으로의 생사(生絲)수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일본기업들의 도산과 실업자가 폭증했다. 디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서 농작물 가격도 떨어지고, 농촌에서의 인신매매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나온 것이 1931년 육군의 만주침략이다. 1932년 괴뢰정권인 만주국을 건설한 뒤, 일본은 중공업개발을 통한 공황탈출에 들어갔다. 사실 군부(軍部)의 만주침략을 통한 경제회생은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일본인의 만주 이주도 본격화했다. 그 같은 상황하에서 통화가 급팽창했다. 일본 전체 예산의 절반이 군비(軍費)로 들어갔다. 당시 대장성(大藏省·재무부) 장관 다카하시 고레키리(高橋是淸)는 급증하는 군사예산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 군사예산 증가를 위한 특별예산안에 반대했다. 돈줄이 막히면서 만주에서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소문이 군부 내에 확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 1936년 2·26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위관(尉官)급 젊은 군인들이 벌인 극우(極右) 쿠데타로 사실상 내각이 군부체제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군비확장에 반대하던 다카하시 장관은 2·26 사건 당시, ‘국적(國賊)’이라는 이유로 쿠데타군에 의해 살해됐다. 일본인들 중에는 아직도 2·26 사건을 위관급 청년장교들의 애국충정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세계정세에 무지한 시골 출신 장교들의 소영웅주의 하극상(下剋上)에 불과했다.
 
  2·26 사건을 계기로 일본정치는 군부의 손아귀로 떨어졌다. 군사예산은 크게 늘어났다. 군부의 광란(狂亂)을 막을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 군부에 반하는 발언을 할 경우 언제 어디서 암살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1937년 7월 7일의 중국침략은 바로 그런 ‘우물 안 개구리’들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중국과의 전쟁 때문에 미국이 경제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전략자원의 확보가 어려워지자, 일본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진주만을 기습하고 동남아(東南亞)를 침략했다. 능력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오지랖을 넓히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한 패전이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일본
 
  워싱턴 싱크탱크 연구원 경력을 가진 일본인 정책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싸울 수 있는 일본이란 의식을 낳은 배경이나 환경에 주목할 경우, 현재 일본은 1930년대 대공황 전후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일본이 스스로를 찬미하던 1930년대 사회적 분위기가 2015년 일본에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자신을 뽐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문화는 가능하면 자신을 숨기는, 이른바 ‘부끄러움의 문화(恥の文化)’다. 특별히 남보다 튀는 순간 모두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부끄러움의 문화’는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집단으로서의 일본’은 얘기가 다르다. 위기에 직면하거나, 위기의식에 빠질 경우 일본찬미가 극에 달한다. 1930년대 공황 당시 무사도(武士道) 정신 찬양이나, 추신쿠라(忠臣藏) 47인의 집단 할복 스토리 찬미가 유행했다.
 
  이런 게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라고 흘려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러한 자기찬양이 집단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생활 속에 정착되면서 개개인의 가치와 원칙으로 자리 잡아 간다는 점이다.
 
  1975년생 다케다 쓰네야스(竹田恒泰)가 쓴 일련의 베스트셀러는 1930년대 풍미했던 무사도 시리즈와 같은 맥락의 책들이다. 《일본은 왜 세계에서 인기 최고를 달릴까》 《일본인은 언제부터 일본을 사랑하게 됐을까》 《일본인은 왜 (대단한 나라) 일본을 잘 모르는 것일까》….
 
  일본 서점에 가면 추천도서로 만날 수 있는 책들이다. 제목만 봐도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혐한(嫌韓)과 반중(反中)이 일본 출판계의 대세라고 하지만, 진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는 책들은 일본을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것들이다. 가히 나르시시즘 수준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자랑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몇 줄 읽어 보면 낯이 간지러워지는, 너무도 유치한 자화자찬 서적들이 2015년 일본 서점가의 주류다.
 
  다케다 쓰네야스의 아류(亞流)에 해당되는 책들도 넘치고 넘친다. 《그래서 일본경제가 세계의 희망이 된다》 《드디어 일본의 시대가 도래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왜 그토록 대단할까》 《에도(江戶)시대 일본은 세계최고의 원더랜드였다》 《세계가 사랑하는 일본의 미덕》 《세계가 격찬하는 메이드 바이 재팬》 《세계가 감탄하는 일본인》….
 
  아마존 닷컴 일본 서적란에 실린 자화자찬 행렬의 책들을 보면 특이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공동집필이다. 일본인이 혼자서 다루는 것도 있지만, 최근에 나온 책일수록 미국이나 유럽인과 함께 쓰는 식으로 이뤄진다. ‘위대한 일본’의 자화상을 아시아나 아프리카 유색인이 아닌, 선진국 백인의 눈으로 확인하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戰犯 국가의 終焉
 
지난 2008년 4월 21일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난 아키히토 일본 천황(오른쪽).
  앞에서 말한 일본인 정책전문가는 “자화자찬은 심해질 경우 국수적(國粹的)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멀지 않은 시기에 접할, 82세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죽음과 그에 따른 승계과정은 21세기 일본 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황의 죽음과 황태자의 승계는 20세기 일본의 탈피인 동시에, 전쟁책임의 멍에를 뒤집어쓴 전범국가의 종언(終焉)을 의미합니다. 나루히토(德仁) 차기 천황은 1960년생입니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은 앞으로 한층 더 악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천황을 맞아 심기일전(心機一轉)하는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열기가 확대될 것입니다.
 
  일본을 자화자찬하는 책들은 라멘 하나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것도 자랑합니다. 전국 방방곡곡 유서 깊은 라멘을 만들어 내는 나라, 묵묵히 줄을 지어 질서를 지키는 시민의식 같은 것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이야말로 문화강국·문명대국이라고 자랑합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기도 하지요. 이런 것들이 웃기는 얘기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타국(他國)과 비교해서 스스로 확신하는 자화자찬의 힘은 위기 시에 발휘됩니다.
 
  새로운 천황이 탄생할 때 나타날 사회적 분위기는 그 같은 극적인 상황을 목격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게 한국·중국의 민족주의와 부딪칠 가능성이 아주 높겠지요? 당분간 동아시아에서 바람 잘 날이 없을 듯합니다.”
 
  도쿄와 워싱턴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앞으로 펼쳐질 한일관계는 한층 더 악화될 듯하다. 부분적으로는 웃고 축배를 들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가시밭길이다. 일본의 우향우는 머리가 아니라, 발로 현실화하고 있다. 과거사는 안중에도 없다. 한국을 고려하기는커녕, 일본 전체의 대세가 한국의 생각과 반대로 나아갈 가능성이 한층 더 높다. 한동안 ‘박근혜 대통령 스토커’라는 소리를 듣던 아베의 모습은 어느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외교 포퓰리즘은 곤란
 
  필자가 알고 지내는 워싱턴 주재 일본 기자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 측이 더 한일정상회담에 목을 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버블경제 붕괴가 본격화한 중국은 일본을 절실히 필요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이 기대하는 ‘중국카드’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호언한다.
 
  케리 미 국무장관이 제시한 과거사 모범답안에 따라 행동할 경우 일본이 한국에 밀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일본의 생각이다. 한국이 아무리 떠들더라도, 미국이 뭐라고 말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미·일동맹은 군사·외교만이 아니라, 과거사와 같은 역사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사문제’만을 놓고 보면, ‘아베의 담화’는 한국의 부아를 북돋우는 메시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미래’에 주목할 경우에는 한일 양국이 공유할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역사와 미래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하나만을 딱 골라 선택할 수는 없다.
 
  일본은 아베 혼자만이 아니라, 집권여당과 정책브레인, 외교관, 군사전문가 모두가 합심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청와대 내 고위 관료와 외교부 장관 몇 명이 한국외교를 맡고 있는 형국이다. 외교 현장의 목소리가 청와대 정책결정자에게 전달되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시련이 아무리 강해도 중지(衆智)를 모을 경우 혜안(慧眼)이 나올 수 있다. 위의 눈치만 보는, 대통령 주변 몇 명이 결정하는 ‘책상 외교’는 당장은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오래갈 수는 없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정치만이 아니라 외교무대에도 포퓰리즘이 횡행하고 있다. 대략 일을 벌여 놓은 뒤 민족주의 감정이나 국민여론에 맡겨 적당히 넘어가는 식이다. 장기적 차원의 국익은 안중에도 없다. 한국 외교는 지금 현장 중심의 중지를 모아 장기전(長期戰)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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