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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이슈

檢事 疑問死 사건으로 혼돈에 빠진 아르헨티나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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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발생한 아르헨티나-유대인 친선협회(AMIA) 폭탄테러 수사하던 검사 알베르토 니스만,
    지난 1월 의문사
⊙ 니스만 검사, 사건 은폐 대가로 한 아르헨티나-이란 정부 간 비밀거래 밝혀내고 페르난데스
    대통령 체포 계획 세워
⊙ 니스만 후임 검사, 대통령·외교장관을 수사방해 혐의로 기소, 법원 棄却했지만 정국 혼란,
    10월 대선에 영향 클 듯

李長勳
⊙ 58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아르헨티나 시위대가 니스만 검사 의문사의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푸에르토 마데로에 있는 한 아파트 욕실에서 알베르토 니스만(51) 검사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엔 22구경 권총과 탄피 1개가 있었다.
 
  니스만 검사는 아르헨티나 국민이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니스만 검사는 지난 1994년 7월 18일 발생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아르헨티나-유대인 친선협회(AMIA)에 대한 폭탄테러 사건을 수사해 왔다. 중남미(中南美) 최악(最惡)의 테러로 기록된 당시 폭탄테러로 85명이 숨지고 300여 명이 다쳤다. 2004년 9월부터 이 사건을 조사해 온 니스만 검사는 2년 만에 레바논 무장정파(武裝政派)인 헤즈볼라가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테러를 사주(使嗾)한 이란 정부의 조직적인 개입을 밝혀낸 바 있다. 니스만 검사는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前) 대통령, 아흐메드 바히디 전 국방장관, 알리 베라야티 외무장관, 알리 팔라히얀 정보부장, 모흐센 바라니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전 문화담당관 등 이란 주요 인사 8명을 기소했으며, 인터폴을 통해 수배했다. 또 니스만 검사는 이들의 신병(身柄)을 인도해 줄 것을 이란 정부에 요청해 왔다. 이후 용의자 체포, 재판 회부 등과 관련해 10년 가까이 진행된 아르헨티나와 이란 정부 간 협상은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니스만 검사는 AMIA 폭탄테러 사건의 진상을 계속 파헤쳐왔다. 특히 니스만 검사는 그동안 벌여온 조사 결과를 담은 289쪽 분량의 수사보고서를 1월 19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밝힐 예정이었다. 니스만 검사는 청문회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 등이 AMIA 폭탄테러 사건의 진상조사를 방해했다는 증언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검찰·보안부, 自殺이라고 주장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
  니스만 검사의 죽음이 자살(自殺)이냐 타살(他殺)이냐를 놓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 연방검찰은 아파트의 문이 안에서 잠겨 있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다면서 니스만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수사를 지휘한 비비아나 페인 검사는 니스만 검사의 죽음에 제3자가 연루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보안부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부검에서는 니스만 검사의 시신에서 반항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격이 가해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과 보안부의 발표와 달리 니스만 검사가 타살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니스만 검사의 손에서 화약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유서(遺書) 또한 남기지 않은 점이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게다가 니스만 검사의 친구인 디에고 라고마르시노가 사건 발생 이틀 후 기자회견에서 타살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라고마르시노는 “니스만 검사가 딸의 안전을 걱정하며 경찰이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면서 “니스만 검사에게 총을 빌려주었다”고 밝혔다. 라고마르시노가 빌려준 총은 니스만 검사의 시신 옆에 있었다. 또 니스만 검사가 사망한 현장에 세르히오 베르니 아르헨티나 보안부 장관이 신속하게 나타난 점도 의문을 더한다.
 
 
  특종 보도한 기자는 이스라엘로 도피
 
  야당의 파트리시아 불리치 하원의원은 “지난 1월 17일 니스만 검사와 세 차례 전화 통화를 했으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니스만 검사가 타살됐다고 주장했다. 라우라 알론소 하원의원도 “니스만 검사가 숨지기 나흘 전 개인적으로 만났다”면서 “그가 대통령과 맞섰기 때문에 검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알론소 의원은 “니스만 검사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니스만 검사의 죽음을 첫 보도한 기자가 신변 위협을 이유로 국외 피신하며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헤럴드》의 다미안 파치테르 기자는 1월 19일 새벽 트위터를 통해 니스만 검사의 사망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우루과이를 거쳐 이스라엘로 도망간 파치테르 기자는 아르헨티나 일간지 《클라린》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내 전화가 도청당했다”면서 “상황이 바뀌면 돌아올 것이지만 현 정부에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파치테르 기자는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유대인이다. 언론단체인 ‘아르헨티나 언론포럼(Fopea)’은 파치테르 기자가 미행을 당했으며 신변에 두려움을 느껴 아르헨티나를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오락가락 발언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 1월 19일 SNS에 “니스만은 정부 음해세력의 노리개”라며 “니스만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단정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 1월 22일에는 “사인(死因)을 자살인 것으로 추정했지만 속단한 것이 잘못이었다”면서 “자살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사건 직후 自殺 단정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사흘 만에 타살을 주장하고 나서자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입장 번복은 국민들의 여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Ipsos)와 온라인 매체 《인포바에(Infobae)》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니스만 검사가 살해됐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니스만 검사의 죽음에 정부가 개입됐을 것으로 본다는 응답이 50%를 넘었고, 82%는 니스만 검사가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대해 제기한 의혹을 믿는다고 답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여론이 갈수록 악화하는 점을 의식해 니스만 검사의 사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사인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히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국민들이 자신을 의심하는 듯하자 정보사무국(SI)에 책임을 돌렸다. 니스만 검사가 작성한 수사보고서는 정보사무국의 감청자료를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니스만은 정보사무국의 최고 책임자로부터 얻은 수백 시간의 통화 감청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과거 군사 독재시절 악명을 떨쳤던 정보사무국은 역대 정권마다 주요 개혁 대상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정보사무국은 도・감청으로 축적한 정보력과 정권에 대한 충성을 통해 개혁의 칼날을 피해왔다.
 
  니스만 검사에게 감청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은 지난해 말 인적 쇄신 조처에 따라 물러난 안토니오 하이메 스티우소 전 정보부장(정보사무국 내 도·감청 책임자)이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측근들은 “요직에서 밀려난 스티우소가 니스만 검사를 통해 앙갚음하기 위해 거짓 정보와 감청 자료를 제공했다”면서 “니스만 검사가 스티우소에게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남편인 고(故)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 대통령(2003~2007년 재임) 시절부터 결코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대통령과 대립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아 온 정보부장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 또한 나오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니스만 검사의 죽음에 대한 희생양으로 스티우소 전 정보부장을 내세운 것이란 관측이다.
 
 
  느닷없는 정보기구 개혁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정보사무국을 해체한다는 법안을 보이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 1월 26일 느닷없이 정보사무국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AFI)을 설립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연방정보국 국장과 부국장은 대통령이 추천해 의회 승인을 받겠다”면서 “정보기관이 독자적으로 행사해 온 도·감청 권한도 법무장관의 책임 아래 두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정보기관 개혁 문제를 외면해 오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갑자기 정보기관 해체를 들고나온 데는 다른 속셈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니스만 검사의 죽음에 자신과 정부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 정보국은 1976~83년 군부독재 시절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 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렀다. ‘더러운 전쟁’은 쿠데타로 집권한 당시 군사정권이 좌익 게릴라 척결을 명분으로 각종 테러, 고문, 납치 등을 통해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것을 말한다. 이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는 9000~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아르헨티나 하원은 지난 2월 26일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제출한 새 정보기관 창설 법안을 찬성 131표 대 반대 71표로 가결했다. 하원은 여당이 장악하고 있다. 야당의 마누엘 가리도 의원은 “현 정부가 지난 10년 집권 기간 내내 정보기관의 불법 도청 등을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개혁을 법제화했다”면서 “이번 법안은 국민을 속이려는 연막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니스만 검사가 그동안 조사해 온 수사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니스만 검사는 지난 1월 14일 재판부에 수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재판부가 지난 1월 20일 공개한 수사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이 보고서는 에너지 문제로 고민하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교장관 등은 아르헨티나의 곡물 및 쇠고기와 이란의 석유를 교환하는 협상에 힘을 쏟았다고 적시(摘示)했다.
 
  이란은 핵 문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폭탄테러 수사를 무마해 주고 비밀리에 이란산(産) 석유를 들여오려 했다는 것이었다.
 
  니스만 검사는 수사를 방해한 인물로 안드레스 라로케 하원의원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 전직 연방검사와 연방판사, 대통령의 개인 비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1989~99년 집권)을 지목했다. 니스만 검사는 정부가 이란 용의자들에 대한 수배령을 거두도록 인터폴을 설득하려 하는 등 수사를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양국 협상단이 AMIA 폭탄테러를 아르헨티나 극우(極右) 세력의 소행으로 덮어씌우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수사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AMIA 폭탄테러 사건을 은폐했을 뿐만 아니라 수사 방해까지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니스만 검사는 이 수사보고서에 따라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체포해 조사할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아르헨티나 일간지 《클라린》은 지난 2월 1일자에서 니스만 검사의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교장관 등에 대한 26쪽 분량의 체포영장 초안(草案)이 발견됐다고 특종 보도했다.
 
  《클라린》의 보도가 나가자 페인 검사는 성명을 통해 체포영장 존재 사실을 부인했고, 호르헤 카피타니치 수석장관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클라린》 신문을 찢으며 ‘쓰레기 저널리즘’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클라린》은 체포영장 초안을 모두 공개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페인 검사는 “조사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실수가 있었다”면서 체포영장 존재 사실을 인정했다. 페인 검사는 니스만 검사가 사망하기 나흘 전에 체포영장을 작성했으나 곧바로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거리로 나선 검사들
 
  체포영장 초안의 존재로 니스만 검사 사인을 둘러싼 논란은 다시 가열됐다. 체포영장 초안은 AMIA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 당국자들에 대한 수사를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방해했다는 의혹을 담고 있다. 니스만 검사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로 석유를 확보하려고 이란 당국자들에 대한 인터폴 수배령을 철회하도록 밀약을 시도하는 등 사건 조사를 방해했다고 적시했다. 수사보고서 내용과 체포영장 초안이 일치하는 셈이다.
 
  체포영장 초안까지 공개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8일 오후 6시30분부터 아르헨티나 의사당 앞 광장에서 대통령궁(Casa Rosada) 앞 ‘5월의 광장’에 이르는 도로에 수많은 시민이 운집했다. 천둥을 동반한 폭우 속에도 시민들은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의사당 앞 광장에서 ‘5월의 광장’까지 1.5km를 행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 경찰 추산 40여만 명, 연방경찰 추산 5만명의 시위대는 니스만 검사 사망 30일을 맞아 “나는 니스만” “우리는 모두 니스만”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운 채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침묵의 행진’ 시위를 벌였다. ‘침묵의 행진’ 시위는 코르도바, 마르델 플라타, 멘도사, 로사리오 등 전국의 대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침묵의 행진’ 시위는 니스만 검사의 동료들인 현직 검사들이 주도했다. 카를로스 스토르넬리 검사는 “니스만 검사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침묵의 행진’ 시위에는 현직 검사들은 물론 판사들, 야당 의원들, 인권단체와 노동계 인사들, 유대인 단체 회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브라질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이스라엘, 칠레, 우루과이 등에 있는 아르헨티나 대사관 앞에서도 ‘침묵의 행진’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 ‘司法쿠데타’라며 반발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거세지자 알레한드로 힐스 검찰총장은 니스만 검사를 대신해 검사 3명을 AMIA 폭탄테러 사건 조사에 투입했다. 후임으로 임명된 헤라르도 폴리시타 검사는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티메르만 외교장관 등을 AMIA 폭탄테러 사건 조사 방해 혐의로 기소(起訴)했다. 폴리시타 검사는 니스만 검사가 사망하기 전까지 조사한 내용을 거의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반면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최측근인 카피타니치 수석장관은 “대통령에 대한 사법(司法) 쿠데타가 시도되고 있다”며 반발했다. 정부의 강력한 로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법원은 일단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니엘 라페카스 연방판사는 지난 2월 26일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대한 폴리시타 검사의 기소를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棄却)했다. 라페카스 판사는 “AMIA 폭탄테러 사건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페르난데스 대통령 등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폴리시타 검사는 증거를 보강해 다시 기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까지 상황을 감안할 때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일단 검찰의 칼날을 피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니스만 검사 의문사 사건은 물론이고 AMIA 폭탄테러 사건의 진상이 나중에라도 밝혀질 경우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자칫하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설상가상으로 아마도 보우도우 부통령도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 2012년 5월 보우도우 부통령을 기소했는데, 현직 부통령이 비리 혐의로 기소된 것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이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인 보우도우 부통령은 그동안 집권당의 유력한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아 왔다.
 
  아틸리오 보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교수는 “니스만 검사 의문사로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집권 이래 가장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면서 “검찰과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페르난데스, 이사벨 페론 가장 존경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이사벨 페론.
  올 62세인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에서 선거로 선출된 첫 여성 대통령이자 재선(再選)한 첫 여성 대통령이기도 하다. 또 남편과 함께 세계 최초의 ‘직선 부부 대통령’이다. 변호사 출신인 페르난데스는 ‘남미(南美)의 힐러리’ ‘파타고니아의 표범’이라고 불리며, 긴 머리에 화려한 패션과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아 온갖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페르난데스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이사벨 페론이다. 이사벨은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이다. 후안 페론의 첫째 부인은 결혼 9년 만에 병사(病死)했다.
 
  두 번째는 뮤지컬 〈에비타〉로 더 잘 알려진 에바 두아르테 페론이다. 국가사회주의를 뼈대로 한 ‘페론주의’를 내세우며,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파격적인 복지정책으로 대중적 인기를 확보한 에바는 ‘아르헨티나의 영적(靈的) 지도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장기집권과 이로 인한 정치 부패로 가톨릭교회와 군부(軍部)로부터 신망을 잃은 후안 페론은 쿠데타로 실각해 해외로 망명했다.
 
  카바레 무용수이던 이사벨은 파나마의 한 클럽에서 후안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61년 35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정식으로 결혼했다. 이후 이사벨은 남편의 정치적 동반자를 자처했으며, 1973년 대선(大選)에서 남편의 러닝메이트로 뛰면서 승리에 일조했다. 후안은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1년 만에 건강악화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을 할 수 없게 되자 부통령인 이사벨에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사망했다. 43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이사벨은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 파탄과 각종 사회 갈등 및 폭동으로 혼란이 증폭되자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고, 이사벨은 실각한 뒤, 5년간의 가택연금 후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夫婦 대통령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 운전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페르난데스는 라 플라타 국립대학 법학과에 재학하는 동안 ‘페론주의 청년회’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영웅인 이사벨이 1976년 쿠데타로 실각했을 때, 후일 남편이 될 키르치네르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하고 산타크루스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1983년 군사정권이 몰락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면서 남편 키르치네르는 주(州)정부 공무원이 되고, 1987년 지방선거에서 리오 갈레고스 시장에, 1991년에는 산타크루스 주지사에 당선됐다.
 
  페르난데스도 1989년 지방선거에 도전해 36세에 주의회 의원에 당선했다. 1993년에 주의원에 재선하고 1995년에는 산타크루스 상원의원이 되었다. 페르난데스는 1997년 하원에 진출했으며, 2001년 상원에도 입성했다. 2년 후 남편이 대통령이 됐고 페르난데스는 영부인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2005년 상원의원으로 재선했다.
 
  2007년 남편이 대선에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페르난데스가 대신 나서 45.3%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올랐다. 여당 대표로 활동하던 남편은 2010년 심혈관 수술을 2차례나 받았고, 결국 2011년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대선에 도전한 페르난데스는 54.1%로 재선에 성공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다. 2013년 10월 뇌출혈의 일종인 만성경막하혈종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40여 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지난해 7월에는 급성 인후염 진단을 받고 파라과이 공식 방문 일정을 취소한 데 이어 아르헨티나 북부 투쿠만시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에도 건강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올해로 임기가 끝나면 퇴임(退任)한다. 3선을 노려왔지만 2013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과반의석을 가까스로 넘기며 신승(辛勝)하는 바람에 페르난데스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3선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헌법을 고치기 위해서는 하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할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 중남미 3위 경제국인 아르헨티나가 계속 추락하는 것은 페론주의 때문이다.
 
  페론주의는 후안 전 대통령이 내세운 정책으로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國有化),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 등이 주요 골자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미국 헤지펀드와 채무 관계 해결에 실패해 디폴트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1.5%로 예상했다. 현재 물가상승률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외환보유고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달러화 사재기를 막기 위해 월 1000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소득의 20%까지만 달러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블루 달러’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암달러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달러 값은 계속 뛰고 있다. 달러가 부족하니 해외에서 물건을 사오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수입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부족한 달러를 벌어들이려면 수출이 늘어야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주요 교역국인 브라질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져 있어 더욱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야당들은 페르난데스 통치기간 중 물가상승과 경제 악화가 심화됐으며 부정부패도 크게 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10월 大選에서 정권교체 가능성 높아져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경제 위기와 맞물린 정국 불안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니스만 검사 의문사는 아르헨티나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중도우파 야당 후보의 지지율이 약진하면서 벌써부터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우파 야당인 공화주의제안당(PRO) 소속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의 지지율이 27.9%를 기록하면서 선두를 달리는 등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마크리 시장은 아르헨티나 명문 프로축구 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구단주 출신으로 중도우파 진영에서 인기가 높다.
 
  반면 중도좌파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PV)’ 후보로 거론되는 다니엘 시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는 23.6%로 2위를 기록했다. 시올리 주지사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남편인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냈다.
 
  야당인 혁신전선(FR) 대표 세르히오 마사 하원의원이 18.8%로 3위를 기록했다. 마사 의원은 현 정부에서 수석장관까지 지냈으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결별하고 나서 야권에 가세했으며 노동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오는 8월 중 후보를 확정하고 본격적인 대선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아르헨티나 대선은 10월 25일 1차 투표가 시행되고,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득표자 2명이 11월 22일 결선투표에서 승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 대통령의 취임식은 12월 10일이다.
 
  니스만 검사 의문사에 따른 파장이 대선 때까지 이어지면 야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야권은 올해 대선을 정권교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듯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경제 성장 둔화와 재정 악화, 외국인 투자 감소, 외환보유고 감소, 높은 물가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가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으로 나왔다. 이 때문에 야권은 니스만 검사 사인 규명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아르헨티나-유대인 친선협회 건물 벽에 쓰인 당시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
  니스만 검사 의문사 사건은 이란과 이스라엘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아르헨티나 정부가 니스만 검사가 해오던 AMIA 폭탄테러 사건의 진상조사를 계속 수행해 테러 공격의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정의를 구현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출신인 니스만 검사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아르헨티나는 미주 지역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중남미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유대인 사회가 형성돼 있는 나라다. 아르헨티나 유대인 거주자는 25만~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아르헨티나 유대인들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박해를 피해 스페인 등 남유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하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80여 명에 불과했던 유대인 공동체의 인구는 이후 계속 늘어 지금과 같은 규모를 유지하게 됐다.
 
  유대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의 상권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폭탄테러로 붕괴된 AMIA는 아르헨티나 유대인들의 산역사가 기록된 곳이었다. AMIA에 입주했던 유대인 상조회(相助會)와 교민회는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까지 정치적 대표기구의 역할을 맡아왔다. 유대인 상조회는 경조사 절차 안내와 문화 전파를 비롯해 직업까지도 알선하는 유대인들의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1994년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반드시 범인들을 찾아내 복수하겠다고 경고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92년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22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부상한 바 있다. 이 폭탄테러는 헤즈볼라가 당시 최고지도자 압바스 알 무자위가 살해되자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으로 벌인 것으로 밝혀졌었다.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및 아르헨티나 3국 국경지대에 1980년대 말부터 세력을 구축, 활동해 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와 공조수사에 나섰지만 AMIA 폭탄테러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헤즈볼라 2인자 보복 살해
 
헤즈볼라의 2인자였던 이마드 무그니야.
  미궁에 빠져들던 이 사건은 2006년 당시 니스만 검사의 활약 덕분에 실마리를 찾게 됐다. 니스만 검사는 이란의 배후 지원 아래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저지른 것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자폭테러범이 당시 나이 29세의 레바논 남부 출신 시아파 무슬림인 이브라힘 후세인 베로이며, 테러 공격이 발생한 날, 그의 고향에서는 ‘순교(殉敎)’를 기리는 명판(名板)이 새겨졌다는 사실 또한 밝혀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년 만에 테러범의 신원이 밝혀지고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이란 대사관이 이를 지원했다는 증거가 나옴으로써 이란은 궁지에 몰리게 됐다. 모사드는 2008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헤즈볼라의 제2인자인 이마드 무그니야를 AMIA 폭탄테러의 배후로 간주해 보복 살해했다.
 
  무그니야는 헤즈볼라 내에서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로, 해외 테러와 비밀 군사작전의 총괄 책임자였다. 미국이 현상금으로 2500만 달러를 내걸 정도로 무그니야는 각종 테러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1983년 4월 63명이 숨진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 차량 폭탄테러, 같은 해 10월 미군 241명이 목숨을 잃은 베이루트 미국 해병대 기지 폭탄테러, 1985년 미국 TWA 여객기 납치 사건, 1992년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테러 등을 배후 조종한 인물이 무그니야였다.
 
  이란 정부는 니스만 검사 의문사에 상당히 당혹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니스만 검사의 수사 결과에 대해 상당히 반발해 왔다. 이란 정부는 2013년 아르헨티나 정부와 합의해 수사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양국은 합동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니스만 검사와 아르헨티나 유대인 사회가 “이란과의 합동 조사위원회가 사건을 맡으면 투명한 조사를 기대할 수 없다”고 반대해 양국의 합의가 사실상 무산됐었다.
 
  그러다가 니스만 검사가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는 대신 이란의 폭탄테러 용의자들의 처벌을 막아주기로 밀약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란 정부는 더욱 난처해졌다.
 
  니스만 검사는 2013년 수사보고서에서 1994년 폭탄테러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이란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모센 라바니라는 인물이 테러 네트워크 구축을 담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니스만 검사는 이란이 1980년대부터 중남미 전역에 광범위한 테러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니스만 검사의 사무실 금고에서 폭탄테러 용의자로 지목된 이란 당국자들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이들의 추방을 촉구하는 문건을 유엔 안보리에 보낼 계획이라는 문서까지 뒤늦게 발견됐다.
 
 
  아르헨티나 정보요원의 배신?
 
  이란 정부는 니스만 검사 의문사 사건이 자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야권은 이란 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폭탄테러 사건 의회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불리치 하원의원은 “니스만 검사와 가족에 관한 정보가 이란 당국자에게 넘어갔으며, 니스만 검사는 이란 측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불리치 하원의원은 또 니스만 검사에 관한 정보를 이란 측에 넘긴 인물로 아르헨티나 정보요원을 지목하면서 “니스만 검사는 아르헨티나 정보요원의 행동을 배신으로 여겼으며, 자신의 심장에 화살이 박힌 것과 같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니스만 검사의 수사와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번 사건이 어떤 극적인 결말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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