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해외포커스

급진좌파 시리자가 집권한 그리스

‘增稅 없는 福祉’의 종착역 보여줘

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집권 시리자당 2004년 급진좌파 11개 정당의 연합체로 출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진
⊙ 시리자, 최저임금 인상, 빈곤층 電力 무상공급, 중산층 減稅, 부채탕감 및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 공약
⊙ 그리스, 국민 1인당 평균 세금납부액 8300유로, 1인당 복지지출은 1만600유로(2010년)
⊙ 스페인에서도 反긴축 정당 포데모스 돌풍, 그리스·스페인 모두 기성 정치권의 무능에 대한
    반발이라는 측면 강해

李長勳
⊙ 58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 선 알렉시스 치프라스 신임 그리스 총리.
  그리스가 또다시 유럽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정책 폐기를 주장하는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Syriza)당이 승리하면서 유럽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시리자당은 지난 1월 25일 실시된 그리스 총선에서 득표율 36.4%를 기록하며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49석을 얻어 집권 여당(與黨)인 신민당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신민당은 27.8%(76석)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極右) 정당인 황금새벽당이 6.3%(17석)로 3위가 됐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 정당이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사상 최초다. 과반의석(151석)에 2석 모자라는 대승을 거둔 시리자당은 지난 1월 26일 득표율 4.75%(13석)로 6위를 기록한 그리스독립당과 손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리스독립당은 우파(右派) 정당이지만 긴축정책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시리자당이 다른 좌파(左派)나 중도(中道) 성향의 정당이 아닌 우파 정당 그리스독립당을 연정(聯政)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로써 그리스 역사상 처음으로 급진좌파가 주도하는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의원 수 6명으로 출발
 
  급진좌파연합의 그리스어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말인 시리자당은 2004년 좌파운동과 생태운동당, 그리스공산당기구(KOE), 좌파행동통합운동(KEDA) 등 급진좌파 성향 11개 정당의 연합체 형태로 결성됐다. 당시 총선에서 의원 6명(3.3%)을 배출한 데 이어 지난 2007년에는 득표율 5.04%를 얻어 14명을, 지난 2009년에는 4.6%의 득표율로 13명의 의원을 확보하며 세(勢)를 키워 왔다. 특히 시리자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16.78%의 득표율로 52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으로 올라서면서 일약 그리스 정계의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시리자당은 지난 2013년 7월 대의원총회에서 당헌(黨憲)을 개정해 연합체를 단일정당 체제로 바꾸었다.
 
  시리자당이 불과 11년 만에 집권당이 된 것은 그리스의 재정위기 때문이다. 재정위기는 그리스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서 비롯됐다. 과도한 복지혜택과 공무원 수(數) 늘리기, 연금(年金) 올려주기 등 정치권은 좌·우를 막론하고 총선 때마다 국민들에게 달콤한 사탕을 제시했다. 과잉복지와 기형적 세금지출에 따른 재정파탄으로 그리스 재정은 거덜이 났다.
 
  그리스는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2450억 유로(297조원)라는 엄청난 자금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대신 그리스는 이른바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국제채권단인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연합(EU) 및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강력한 긴축정책을 수용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는 각종 복지정책 축소 등 지출 삭감,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임금 삭감 및 감원, 연금 축소, 국유재산 매각 등 긴축정책을 실시해 왔다. 그 결과 재정적자(赤字)는 지난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5.2%에서 2013년엔 1.8%까지 줄어 들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실업률은 2010년 12.5%에서 지난해 10월 25.8%로 두 배나 뛰었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2010년 32.2%에서 지난해 57.5%까지 치솟았다. 전기가 끊기는 가정집들이 늘었고 많은 어린이가 영양실조에 허덕였다. 긴축정책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임금이 반(半)토막 난 노동자들의 항의시위와 집회가 그리스 전역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벌어졌다. 77세 노인이 수도 아테네 의사당 인근에서 머리에 권총을 쏴 자살하는 등 연금생활자들이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잇따라 발생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다 보니 기성 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반감과 혐오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됐다. 특히 국민들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해 국가부채는 2009년 GDP 대비 130%에서 지난해 175%로 오히려 늘어났다. 체감(體感)경기가 수렁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는데도 국제채권단인 트로이카는 예산삭감과 연금에 대한 추가삭감을 요구하는 등 그리스 정부를 더욱 압박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좌절했고 분노했다. 시리자당은 바로 이 기회를 파고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당은 최저임금 인상, 빈곤층 전력(電力) 무상공급, 중산층 감세(減稅) 등 긴축정책 폐기와 부채탕감 및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빚도 갚지 않고, 허리띠도 졸라매지 않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은 그리스 국민들의 표심을 뒤흔들었다. 시리자당의 승리는 ‘떼 논 당상’이었다. 그리스 국민들은 긴축을 중단해 일자리를 늘리고 트로이카와 재협상해 채무를 탕감하겠다는 시리자를 믿고 전폭적인 힘을 실어 줬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포퓰리즘으로 거덜난 병을 포퓰리즘으로 치료하겠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兩大 정당의 포퓰리즘 경쟁
 
그리스 포퓰리즘의 물꼬를 튼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
  시리자당의 집권은 지난 1974년 군부독재 종식 이후 41년간 그리스를 교대로 통치해 온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兩黨)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중도 우파인 신민당과 중도 좌파인 사회당은 1974년 창당한 이래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재정위기를 초래했고, 구제금융이 시작된 2010년 이후에도 긴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앞에 제대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두 당의 몰락은 포퓰리즘이 어떻게 국가와 국민 전체를 불행하게 하고 스스로 몰락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의 포퓰리즘은 1981년 사회당 집권과 함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면서 시작됐다. 취임 직후 파판드레우 총리는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고 의료보험을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덕분에 사회당은 8년간 집권했지만 1970년대 연(年)평균 4.7%였던 그리스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회당 집권 전 GDP의 28%였던 국가부채 비율은 80%까지 뛰었다.
 
  이후 양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각종 복지혜택을 남발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운 연금이 더해져 그리스의 국가연금은 13개까지 늘었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대학 교수는 “1981년 이후 모든 정당이 사회주의화했고 그리스는 펑펑 쓸 줄 만 아는 ‘중동(中東) 산유국(産油國)’을 닮아 갔다”고 지적했다.
 
  그리스가 지난 2001년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모임)에 가입한 이후 씀씀이는 더욱 커졌다. 신민당이 집권한 2004년부터 5년간 공무원은 5만명이나 늘었고 이들은 매년 5% 이상의 임금인상을 보장받았다. 인구 1100만명인 그리스에서 공무원은 98만명이나 됐다.
 
 
  구제금융 받고도 못 고친 낭비벽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포퓰리즘 정책을 펴다 그리스를 파산시킨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
  돈을 펑펑 써댔지만 쓸 돈을 걷지 않았다. 그리스의 조세부담률(GDP 대비 세수 비중)은 지난 2011년 기준 20.4%로 한국(24.3%)보다 낮았다. 세금을 걷는 것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증세(增稅)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지난 2010년 통계를 보면 그리스 정부는 국민 1인당 평균 세금납부액 8300유로보다 1.3배 많은 1만600유로를 각종 복지비용으로 지출했다. 국가가 국민 한 사람당 2300유로(251만원)씩 돈을 더 쓴 셈이다. 당연히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리스 정부는 분식(粉飾)회계까지 했다. EU는 각 회원국에 GDP 대비 3%의 재정적자를 요구해 왔다. 그런데 그리스 정부는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EU에는 실제와 다른 통계를 제출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 2009년 10월 총선으로 집권한 사회당 정부가 GDP의 12.7%에 이르는 재정적자 규모를 밝히면서 드러났다. 당시 국가부채 비율은 143%에 달했다.
 
  구제금융을 제공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당과 신민당은 경제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기는커녕 긴축에 공공연히 반대해 왔다. 1차 구제금융이 소진된 2011년 11월 추가 구제금융 제공의 조건으로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트로이카에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의 아들)는 긴축 여부는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의회의 불신임으로 파판드레우 총리는 물러났다.
 
  신민당은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사회당과 연정을 구성했다. 당시 신민당 대표였던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총선에서 긴축정책을 반대했고,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증세 대신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승리했다. 하지만 사마라스 총리는 집권 이후 2013년 민간부문 임금을 16% 삭감하는 등 구조조정과 긴축에 나섰다. 결국 사마라스 총리의 긴축 반대 주장은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이 됐다. 그 결과, 신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시리자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아들 이름을 체 게바라에서 따와
 
  시리자당의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40)가 그리스의 새 총리로 취임했다. 그리스 역사상 최연소(最年少) 총리가 된 치프라스는 한마디로 말해 데마고그(demagogue·선동가)다.
 
  아테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치프라스는 고등학생 시절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학교 점거 농성을 주도하는 등 일찍이 강경좌파 운동에 몸담았다. 그는 당시 중도우파 정부의 교육개혁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일었던 대규모 학생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교과서 무료 제공과 학생 복지 혜택을 없앤 정부 조치에 항의하는 학생시위는 날로 격화돼 시위 중 교사가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당시 흥분한 학생들은 시험 폐지 등과 같은 급격한 요구사항들을 쏟아 냈으나 치프라스는 정부 조치 철회라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결국 그의 요구사항이 관철되고 교육부 장관이 물러나는 선에서 시위는 진정됐다.
 
  고등학생 시절 학생운동에서 거둔 승리의 경험은 이후 그의 일생을 바꿔 놓았다. 토목공학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따라 국립 아테네기술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치프라스는 전국대학생연합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학생운동에 앞장서 왔다. 졸업 후 한때 건축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치프라스는 아테네시장에 도전해 득표율 10.5%로 3위를 기록해 정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2009년에는 시리자당 대표로 선출돼 그리스 사상 최연소 정당 지도자가 됐다. 당시 총선에 당선되면서 의원으로 활동해 왔다. 치프라스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시리자당을 제1야당 위치로 끌어올리면서 일약 그리스 정계에서 유력한 정치인으로 부상(浮上)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 솜씨와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인 치프라스는 고교(高校)시절 만난 좌파운동 동지인 컴퓨터 전문가 페리스테라 바치아나와 동거(同居)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둘째 아들의 중간 이름을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본명인 에르네스토로 지었으며 아테네 프로축구팀 파나티나이코스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치프라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넥타이를 절대 매지 않는 것이다. 치프라스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을 때도 노타이 차림이었다. 그가 이런 패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실용성과 탈(脫)권위주의를 강조한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권 출신인 다른 좌파 지도자와 달리 부채(負債)가 없는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그를 ‘해리 포터’에 비유하며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와 같은 약속으로 유권자들을 홀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는 호감을 주는 잘생긴 외모와 침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완벽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의회에서 폭언(暴言)을 서슴지 않는 독설가(毒舌家) 이미지도 있다. 이상주의적 주장을 과격하게 밀어붙인다는 지적이 많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치프라스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치프라스가 실용적 개혁노선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처럼 될 수도 있고,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좌파 포퓰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치프라스는 지난 1월 26일 총리 취임식에서도 파격적 모습을 보였다. 넥타이 없이 흰 셔츠에 감색 재킷 차림으로 나선 치프라스 총리는 전통적으로 그리스정교(正敎) 교리에 따라 거행해 온 취임선서를 “언제나 그리스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맹세로 대신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는 지난 5년간의 치욕과 고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서 “그리스를 파괴한 긴축정책의 각서를 없애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취임 후 역대 총리들이 참배하는 무명(無名)용사들의 묘가 아닌 레지스탕스 묘소를 방문했다.
 
 
  그렉시트 현실화되나?
 
  치프라스 총리와 시리자당의 그리스 경제위기에 대한 해결방안은 긴축과는 정반대인 돈 풀기이다. 공공(公共)지출을 늘리고 최저월급도 580유로(70만 원)에서 751유로(90만6000원)로 인상해 경기를 부양(浮揚)하는 방안이다. 최소 30만 가구가 무료 전기 및 식품 쿠폰을 받는 것도 시리자의 공약이다. 이외에도 무상 의료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난방연료에 대한 세금을 철폐하는 것도 있다. 시리자당은 이런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120억 유로가 필요하다면서 부채상환 비용을 줄이고, EU 펀드를 전용하고, 탈세(脫稅)와 밀수를 단속함으로써 재원(財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U 회원국들 중 북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독일은 치프라스 총리와 그리스 새 정부의 긴축정책 폐기와 부채탕감 등의 주장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동안 그리스에 대해 “방만한 국가운영 때문에 재정위기를 맞았으니 고강도(高强度) 긴축을 통해 부채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원하지만 부채에 대한 의무와 긴축 약속 등은 준수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부채탕감은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치권도 여야(與野) 관계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독일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가장 많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독일로선 부채를 탕감해 줄 경우 엄청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독일은 또 그리스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 주면 다른 구제금융 대상국들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 유럽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독일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그렉시트(Grexit)이다. 그렉시트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말한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제채권단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렉시트라는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국제채권단은 그리스에 수혈(輸血)한 막대한 구제금융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에 유럽 금융시장이 상당히 불안해질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그렉시트가 벌어지면 유로존의 GDP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유로존이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 재정 상태가 나쁜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의 행보에 따라 추가 탈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치프라스 총리가 경제위기에 빠진 EU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와 독일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과거사(過去史)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강탈당한 돈을 그리스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탈당한 돈’은 그리스가 아직 정산(精算)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독일의 전쟁배상금을 말한다. 독일은 1960년대 그리스에 배상금으로 1억1500만 마르크를 지불하고, 이와 별도로 강제노역에 동원된 희생자에게 개별 배상을 했다. 하지만 이 배상금에는 나치의 강요에 의해 그리스국립은행이 무이자(無利子)로 제공한 4억7600만 마르크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스의 주장이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2013년 이 차입금(借入金)과 사회 기반 시설 복구비용 등을 포함해 현재 가치로 독일이 그리스에 총 1620억 유로(197조원)를 전쟁배상금으로 더 지불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는 그리스가 국제채권단에서 지원받은 구제금융 2450억 유로의 67.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반면 독일은 전후 배상 문제는 국제조약에 따라 이미 끝났다는 입장이다. 마르틴 야거 독일 재무부 대변인은 “그리스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추가배상 요구가 없었으며, 전후(戰後)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런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리스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좌파 성향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독일과 프랑스도 2차 대전 후 부채가 GDP의 200%에 달했다”며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에 부채의 마지막 한 푼까지 모두 상환하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反긴축동맹 형성되나?
 
  치프라스 총리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과 함께 취임 1주일 만에 파리·런던·베를린 등 유럽 주요 7개 도시를 돌며 구제금융 재협상 지지를 호소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탈리아와 영국·프랑스 등에서 재협상에 대한 지지를 얻어 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2월 3일 치프라스 총리와의 회담에서 그리스의 구제금융 재협상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렌치 총리는 “그리스가 막대한 부채상환과 관련해 EU 관련 기관과 타협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면서 “그리스를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도 “그리스의 구제금융 재협상 요구는 정당하다”며 “그리스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도 “그리스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지만, 유로존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위한 더 나은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리스의 반(反)긴축 주장에 어느 정도 동조했다.
 
  ‘반긴축 동맹’이 형성되는 것은 유럽에 긴축정책을 강요해 온 독일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 각국은 지난 5년간의 긴축정책에도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독일에 대한 반감을 보여 왔다.
 
  그리스는 또 새로운 제안도 했다. 바루파키스 장관은 3150억 유로(391조8000억원) 규모의 부채를 탕감해 달라는 요구를 더 이상 않겠다면서 ‘채무 스와프(debt swap)’ 카드를 꺼내 들었다. 채무 스와프는 그리스 명목성장률에 연동(連動)된 채권으로 기존 구제금융 채권을 대신하고, 또 만기(滿期)가 정해져 있지 않은 ‘영구채권(perpetual bond)’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國債)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은 다 갚되 긴축재정으로 쥐어짜 내듯 갚는 게 아니라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겼을 때 차근차근 갚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스 재무장관, ‘狂人이론’ 활용
 
바루파키스 신임 그리스 재무장관.
  하지만 독일과 국제채권단인 트로이카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독일과 그리스 재무장관들은 지난 2월 5일 처음 대면하자마자 설전(舌戰)을 벌였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독일이 그리스의 부채탕감 협상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리스에서 신나치 정당이 발호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에 대해 쇼이블레 장관은 “그리스가 걷는 여정의 어려운 이유를 그리스에서 찾아야지, 독일에서 찾으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쇼이블레 장관은 “그리스는 부채를 줄여 달라고 애원하지 말고, 탈세부터 봉쇄하라”면서 “독일 세금징수원 500명을 그리스로 파견해 그리스 부자들로부터 세금징수 업무를 돕겠다”고 역공(逆攻)했다. 쇼이블레 장관은 “자신과 바루파키스 장관이 합의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합의했다”며 그리스의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바루파키스 장관도 “의견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의견일치가 되지 않았다”고 맞받아쳤다.
 
  양국 재무장관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쇼이블레 장관은 점잖은 회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모습을 보인 반면 바루파키스 장관은 짙은 푸른색 셔츠를 바지 바깥으로 뺀 채 노타이 차림이었다. 게임이론을 전공한 경제학자 출신인 바루파키스 장관은 ‘광인(Mad man)이론’을 협상에서 활용하는 듯했다. 광인이론은 이쪽이 최대한 미친 것처럼 보이도록 해 두려움을 느낀 상대로부터 양보를 이끌어 내는 전략이다. 하지만 쇼이블레 장관은 바루파키스 장관의 주장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양국의 이런 입장을 볼 때 앞으로 메르켈 총리와 치프라스 총리가 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메르켈 총리가 원칙을 고수할 경우 그리스는 자칫하면 국가부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고 유로존을 탈퇴할 수도 있다.
 
  독일 정부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독일 유력 싱크탱크인 독일경제연구소(DIW)는 그렉시트를 수용해야 한다며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그리스가 재정개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구제금융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그리스가 강경하게 나오면 유럽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시리자당과 함께 연립정권을 출범시킨 그리스독립당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리스독립당은 “독일의 빚 때문에 그리스가 빈곤에 떨어졌다”면서 반 독일 입장을 보여 왔다. 양국의 이런 상황을 볼 때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스페인의 시리자’ 포데모스
 
  그리스 급진좌파가 일으킨 반 긴축이라는 포퓰리즘은 유럽의 정치 지형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긴축정책을 추진해 온 스페인에서도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가 부상하고 있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8년 대선 구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포데모스는 2011년 5월 15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긴축조치와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데서 시작한 ‘분노하라(Indignados) 시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시위는 ‘15-M 운동’으로도 불린다. 5월(May) 15일 시작된 운동이란 뜻이다. 당시 뉴욕 월가 점거 시위(Occupy) 등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탐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었다. 당시 ‘분노하라 시위’에 참가했던 지도자들이 뭉쳐서 지난해 1월 포데모스를 창당했다.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 만에 치러진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8%의 득표율로 5석을 확보하면서 스페인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시리자당과 마찬가지로 포데모스는 긴축 반대를 앞세우면서 지지기반을 넓히고 있다. 포데모스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집권 국민당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을 제치고 지지율 27%로 1위를 차지하는 등 오는 5월 지방선거와 11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포데모스는 지난 1월 31일 수도 마드리드에서 ‘변화를 위한 행진’이라는 집회를 개최하면서 세를 과시했다. 당시 집회에는 무려 30만여 명이 참여해 긴축 반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37) 대표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유럽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면서 “스페인에서도 그리스처럼 포데모스가 집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데모스는 온라인 기반 정당
 
스페인의 급진좌파 정당 포데모스의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스페인도 극심한 재정위기로 2012년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으며 혹독한 긴축과 구조조정 끝에 2013년 말 구제금융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로 7년새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실업률은 25%에 이르고, 젊은 층 실업률은 56%를 넘어섰다.
 
  게다가 정치권의 부패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도 우파인 국민당과 중도 좌파인 사회노동당의 양당 체제에 대한 스페인 국민들의 실망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불행히도 스페인에서 급진주의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면서 “스페인 국민들이 포데모스를 지지하는 ‘러시안 룰렛(목숨을 건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반면 이글레시아스 대표는 총선에서 승리하면 1조 유로(1240조원) 규모의 부채를 스페인 경제규모에 맞는 수준으로 재조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글레시아스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는 뒤로 질끈 묶은 말총머리와 턱수염이다. 정장 양복을 입고 앞 뒷머리를 짧게 자른 ‘라 카스타’(엘리트)로 불리는 스페인 주류 정치권에 도전하겠다는 ‘반항’을 상징한다.
 
  캐나다 출신 가수 레너드 코헨의 노래 ‘우리는 먼저 맨해튼을 친다. 다음에 (미국을 추종하는) 베를린을 접수한다’가 울려 퍼지는 그의 집회는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지지자 수천 명이 추운 날씨에도 집회장 밖에서 소리치며 열광할 정도다.
 
  이글레시아스는 그리스의 총선 당시 아테네를 찾아가 치프라스와 손을 잡고 유럽 좌파의 연대(連帶)를 과시했다. 그는 이윤을 내는 기업의 노동자 해고금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신설, 기업 법인세 인상, 에너지 기업과 병원, 교육 부문의 국유화(國有化) 등의 공약을 내걸어 긴축과 생활고에 지친 스페인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포데모스는 당 재정의 절반은 대중모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정기후원으로 해결하고 있다. 모든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을 ‘아고라 보팅(Agora Voting)’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해 당원들이 직접 뽑고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1978년 역사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스페인 노조연맹(CCOO)의 변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부모가 19세기의 ‘스페인 사회주의의 아버지’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글레시아스는 14살 중학생 시절부터 스페인공산당에서 청년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반 세계화 시위에 적극 참여해 온 철저한 좌파 정치인이다.
 
  이글레시아스는 2008년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국경이 사라진 시대의 집단행동〉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위스의 유럽대학원(EGS)에서 영화에 대한 정치적 분석 연구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콤플루텐세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2002년 이후 학술잡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해박한 지식과 달변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포데모스 창당과 함께 대표를 맡았고 현재는 유럽의회 의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스페인 정치권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복지확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해고금지 정책에 대해서는 스페인 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리자 돌풍,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보듯이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이 EU 회원국들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의 득세로 이어지고 있다. 긴축정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프랑스 등에도 시리자당의 집권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독일·핀란드·네덜란드 등에선 시리자당의 영향력이 확산될까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독일 집권 연립 여당인 기사당(CSU)의 한스-피터 프레데릭 의원은 “그리스 국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뽑을 권리가 있듯이, 독일 국민들도 더 이상 그리스의 돈줄 노릇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유럽 경제가 유례없는 침체에 빠지면서 반 긴축 정당들이 힘을 얻을수록 EU의 결속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시리자당을 비롯해 긴축에 반대하는 각국 정당들이 연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유럽은 다시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EU가 그리스 발(發) 돌풍을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207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