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볼라 확산, 아프리카 3개국(라이베리아·기니·시에라리온) 초토화, 제2의 에이즈 가능성
⊙ 세계은행, 에볼라 조기 제압 못 하면 내년 말까지 326억 달러(35조원)의 경제적 피해 예상
⊙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등은 세계 역사를 바꿔
⊙ 코로나 바이러스, 뎅기열, 뇌척수막염,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등도 주목해야 할 전염병
李長勳
⊙ 57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 세계은행, 에볼라 조기 제압 못 하면 내년 말까지 326억 달러(35조원)의 경제적 피해 예상
⊙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등은 세계 역사를 바꿔
⊙ 코로나 바이러스, 뎅기열, 뇌척수막염,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등도 주목해야 할 전염병
李長勳
⊙ 57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 1918~19년 발생한 스페인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이 사망했다.
서아프리카 기니의 남부 열대우림 지역인 게케두의 멜리안두 마을에서 지난해 12월 2일 에밀 우아무노라는 두 살배기 남자아이가 고열, 구토, 설사의 증세를 보이다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뒤 나흘 만에 숨졌다. 이어 아이의 엄마와 네 살배기 누나, 할머니가 차례로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증상을 보였지만 당시에는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후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이 숨졌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쓰러져 갔다. 당시에는 에볼라인지 몰랐던 이 질병은 다른 감염자를 통해 인근의 게케두로 전염됐다. 게케두는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의 국경이 모두 만나는 위치에 있는 인구 10만의 도시다. 게케두에 거주하는 보건소 직원이 멜리안두 마을에 들렀다가 에볼라에 걸렸다. 이 직원이 80km 떨어진 마센타의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면서 에볼라는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상이 의학 전문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의 연구진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추적 조사해 밝혀낸 ‘페이션트 제로(patient zero·첫 번째 감염자)’와 초기 감염경로이다. 정체 모를 질병이 에볼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갈수록 환자들은 늘어갔고 사망자들이 속출했다. 에볼라에 감염되면 갑작스런 발열, 권태감, 근육통, 두통 등이 나타나고, 2~3일 후 인두염, 구토, 설사 등이 발생한다. 대개 1~2일 후 출혈 증상, 간부전과 신부전, 중추신경계 증상, 쇼크 증상을 호소하다가 다발성 장기부전이 생기며 7~10일 사이에 사망한다. 에볼라 환자의 혈액을 검사하면 간 기능 이상, 혈소판 감소, 림프구 감소 등의 증상이 보인다. 잠복기는 2~21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첫 환자가 발생한 지 3개월여가 지난 뒤인 3월 24일에야 기니에서 에볼라 환자 86명이 발생해 60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36년간 에볼라 사망자 2387명 불과
WHO는 두 살배기 에밀이 어떻게 에볼라에 걸렸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에볼라에 걸린 과일박쥐가 전염시켰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한다. 과일박쥐는 기니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동물이다. 고추와 함께 넣어 수프로 끓여먹는다. 매콤한 맛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과일박쥐를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宿主)로 추정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동물 감염, 동물 접촉 및 섭식(攝食)을 통해 인체에 감염하며 콧물, 침, 혈액, 정액 등 사람의 체액을 통해서도 전염한다. 환자의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의 피부 상처나 입, 코, 눈 등을 통해 침투한다. 공기 중으로는 전염하지 않는다. 증상 가운데 기침 등의 호흡기 증세가 없어 감기처럼 퍼질 가능성은 낮다. 다만 환자가 재채기 등을 하게 되면 체액의 입자가 다른 사람의 피부나 입, 코로 들어갈 수 있다. 특히 환자가 회복한 후에도 정액에는 최대 82일간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치사율(致死率)은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 증후군), 신종플루와 비교해 매우 높다. 치사율은 발병 사례에 따라 대체로 50~90% 선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치료약이나 예방 백신은 없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면 이달 말까지 에볼라 감염 환자는 1만4000여 명, 사망자는 5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볼라가 발생한 국가는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세네갈, 말리, 미국, 스페인 등이며 다른 국가에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난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강(江) 주변에서 처음 발견됐다. 발견 지역이 에볼라강 주변이어서 에볼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가봉과 코트디부아르, 수단, 우간다 등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들 국가가 다른 나라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 에볼라가 인근 국가로 크게 번지지 않았다. 1976년 이후 2012년까지 에볼라로 사망한 환자가 2387명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볼라를 확산시킨 요인들
지난해까지 에볼라 발생은 소규모이고 국지적(局地的)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다.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에볼라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들 3개국에서 에볼라가 급속도로 퍼진 것은 버스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볼라에 걸린 환자의 버스 이용에 이웃 마을이나 도시, 나아가 국경 밖으로 퍼졌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짧은 데다 발병 이후 10일 이내에 사망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전염될 틈이 없었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에볼라가 크게 확산되지 않은 것도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아프리카 오지에도 버스가 다니면서 에볼라가 확산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장례 풍습이다. 시신에 입맞추는 관습이 다른 감염자를 발생시킨다. 더욱이 에볼라로 숨진 환자는 죽기 전 피를 엄청나게 토한다. 유족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피로 범벅이 된 시신을 씻기다가 에볼라에 감염된다. 에볼라 희생자 4명 가운데 3명은 여성이다. 서아프리카 여성들은 가족 가운데 사망자가 있을 때 장례 절차를 주로 준비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이들 3개국의 의료체계와 의료진 부족도 에볼라 확산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라이베리아의 경우 에볼라 발병 전부터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1명에 불과하다. 시에라리온 2명, 기니 10명이다.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의 지난해 보건 분야 정부 지출은 국민 1인당 7달러, 18달러, 13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에볼라 환자를 격리 치료할 시설도 거의 없다.
서아프리카 지역에는 아직도 주술과 전통의술이 만연해 있다. 이들 3개국의 농촌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대부분 현대의학을 불신하고 미신을 믿고 있다. 이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고 주술을 통해 병을 치료하려다가 전염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정부와 해외 의료진을 믿지 못하고 환자를 숨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국민 상당수가 에볼라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전(內戰)에 시달려온 이들 3개국에서 죽음은 일상이 됐다.
라이베리아 등, 국가 붕괴 위기 직면
국제사회의 늑장과 부실 대응도 에볼라 확산의 원인이 됐다. 국제사회는 에볼라를 서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된 상황으로 치부하고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에볼라가 전(全)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간과했다. 일각에선 WHO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WHO의 예산은 국제민간구호단체인 ‘국경 없는 의사회’의 2배 수준이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조앤 리우 회장은 WHO가 회원국들의 보건 비상사태 대처를 지원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이들 3개국은 현재 국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에볼라 통제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1월쯤 서아프리카 3개국의 에볼라 감염자가 50만명에서 많게는 140만명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문제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은 서아프리카 3개국의 국가 경제는 사실상 마비됐다면서 국제사회가 이들 3개국에 대규모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엄청난 인도적(人道的) 재앙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들 3개국 정부의 재정은 이미 고갈 상태이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이들 3개국에서 에볼라 확산을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의 단어 ‘빈곤’으로 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3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에 속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3개국 합산 GDP는 130억 달러로 아프가니스탄의 210억 달러보다도 적다. 기니의 총부채는 GDP의 38%, 라이베리아는 30%, 시에라리온은 33%였다.
이들 3개국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내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라이베리아에서는 1989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내전이 벌어졌다. 내전 기간에 25만여 명이 죽었다. 시에라리온도 1960년대부터 거듭된 군부 쿠데타 등으로 내전이 계속 이어져 왔다. 기니에서도 종교와 종족 간 분쟁이 일상사처럼 벌어졌었다.
‘피의 다이아몬드’
이들 3개국은 자원부국(富國)이기도 하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는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용어가 나온 주 무대이다. ‘피의 다이아몬드’는 분쟁지역에서 생산돼 그 수입금이 전쟁 수행을 위한 비용으로 충당되는 다이아몬드를 지칭한다. 시에라리온은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다이아몬드는 국가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재앙이었다. 정부와 반군(叛軍) 등 모든 정치세력이 다이아몬드 생산지를 점령하려고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였다. 런던과 앤트워프에 거점을 둔 보석 메이저들은 레바논 상인을 통해 밀반출한 다이아몬드를 인도에서 세탁한 뒤 미국과 유럽 각국에 팔았다. 다이아몬드가 나올수록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2002년 내전이 종식될 때까지 20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 내전의 참상은 2007년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제작되기도 했다.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 이외에도 원유, 금, 알루미늄 원광인 보크사이트, 티타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라이베리아에도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 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돼 있다. 특히 독재자로 악명 높은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은 이웃인 시에라리온의 내전까지 깊숙이 관여해 다이아몬드를 챙겼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시에라리온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에 무기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를 받았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2003년 라이베리아에서 반대 세력에 의해 축출된 뒤 나이지리아로 망명했으나 2006년 3월 체포, 2013년 9월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5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기니는 알루미늄의 원료인 보크사이트의 최대 생산국이며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이들 3개국은 최근 들어 정치적 안정을 찾으면서 그동안 방치했던 천연자원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활발하게 보여왔지만, 에볼라 확산으로 또다시 최악의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오바마, ‘국가적 안보위협’으로 규정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은 서아프리카 3개국에 한정돼 있다. 에볼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첫 번째 에볼라 감염 사망자가 나오고 두 번째 확진 환자까지 나오면서 에볼라(ebola)와 공포(fear)의 합성어인 ‘피어볼라(fearbola)’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가 에볼라 확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공포가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으로 번져가면서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에볼라가 확산하면 무엇보다 항공과 관광 업계가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 2003년 사스가 유행했던 때 공포가 확산되면서 항공과 관광 업계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사스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홍콩과 중국에선 여객기가 승객 없이 텅텅 빈 채로 운항했었고, 호텔들도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 상황에 빠졌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제활동이 부진하고 주식시장도 급락했다. 당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경우 2003년 2분기 성장률은 1992년 이후 가장 낮은 6.7%를 기록, 1분기 9.9%에 비해 2.2%포인트나 하락한 바 있다.
에볼라에 따른 경제적 충격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항공 운송 정보 제공업체 OAG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 서아프리카로 연결된 항공편 운항은 64% 줄었다. 브리티시항공, 델타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들은 이들 지역으로 연결된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있다. IMF는 에볼라로 시에라리온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1.3%에서 8%로, 라이베리아는 5.9%에서 2.5%로, 기니는 3.5%에서 2.4%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은행은 에볼라가 조기에 제압되지 못하면 내년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326억 달러(35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추정했다.
에볼라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까지 크게 확산된다면 경제적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또 중국이나 인도처럼 인구가 많고 전 세계와 무역, 투자 등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된 나라로 전염이 확산될 경우 그 피해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에볼라를 국가적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톰 프리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장은 “에볼라가 제2의 에이즈가 되지 않으려면 확산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볼라 공포 현상을 보면 1980년대 에이즈가 발생했을 때와 비슷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역사를 바꾼 전염병들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는 1980년대 전염이 시작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36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치명적인 바이러스이다. 현재도 3500만명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5만명의 새로운 에이즈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에볼라와 에이즈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두 바이러스는 모두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발견됐다는 점, 치료약이 없다는 점, 동물을 매개체로 해서 전염된다는 점, 공기가 아닌 접촉에 의해 전염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최대 피해지역이 아프리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이즈의 경우 지금까지 집계된 전 세계 감염자 중 70%가 사하라 이남에서 나왔다. 이 지역에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가난한 국가들이고, 기본적인 공중보건 시설도 없다. 에이즈 확산의 원인인 경제적 빈곤과 공중보건 문제는 에볼라를 확산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에이즈는 ‘20세기의 흑사병(黑死病)’이라고 불린다. 흑사병은 페스트를 말하는데, 과거 사례를 보면 페스트는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흑사병은 1346년 몽골군이 크림반도 카파를 공략하면서 병들어 죽은 시체를 도시 안으로 던지는 바람에 유럽 각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1350년까지 중세(中世) 유럽 인구 중 3분의 1인 2000만명이 흑사병으로 숨졌다. 워낙 많은 인명이 희생되면서 노동 인력의 부족으로 중세의 봉건제가 점차적으로 소멸하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무서운 전염병으론 유럽이 남미 대륙을 정복할 때 유행했던 천연두 바이러스를 들 수 있다. 스페인이 1519년 고작 600명의 병사로 2500만명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천연두 바이러스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면역을 가진 스페인 사람들과 달리 아스테카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아스테카의 인구는 1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천연두는 남미 전역으로 퍼졌고, 잉카 제국마저 이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됐다. 남미 대륙이 유럽의 식민지가 된 것은 바로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윌리엄 맥닐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처럼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疫病, 콜레라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전염병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다.
최초의 국제적인 전염병은 AD 165~180년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 유행한 역병을 꼽을 수 있다. 근동 지역(현재의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파병됐던 로마 병사들이 병에 걸려 귀국하면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전염병이 퍼져 500만명 이상이 숨졌다. 특히 이 역병으로 안토니우스 황제가 사망해 ‘안토니우스 역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의학 전문가들은 당시의 역병이 천연두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D 541년부터 750년까지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도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이 역병은 페스트였는데,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옮아갔다. 이 역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만 하루에 1만명씩 숨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 세력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奧地)로 진출하면서 전 세계에서 콜레라가 대유행했다. 인도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1817년 인도 전역으로 퍼졌고 이후 세계 각지로 확산됐다. 콜레라는 장티푸스, 이질과 함께 제국주의 시절 가장 기승을 부린 전염병이었으며,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팬데믹’
현대에 들어서도 전염병은 인류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생한 전염병 중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병은 스페인 독감이다. 1918~19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경우 당시 한창이던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 850만명보다 많은 5000만명이 감염돼 사망했다. 스페인 독감처럼 지구촌 전체를 위협하는 대규모 전염병 대유행을 ‘팬데믹(pandemic)’이라고 부른다.
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에서 6단계까지 나누는데 최고 경고 등급인 6단계를 팬데믹이라고 한다. 팬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고 데믹은 사람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질병에 걸린다는 뜻이다.
팬데믹이라는 말을 들은 전염병들을 보면, 1957년 유행한 아시아 독감으로 100만명이 숨졌다. 1968년에는 홍콩 독감으로 70만명이 사망했다. 2003년에는 사스가, 2009년에는 신종플루로 불렸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전염병은 한 사회 내에서 인구 구조와 노동 조건, 정치적 역학관계를 바꿀 뿐만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형성·전파와 인간의 대규모 이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대의 전염병들은 여행, 항공기, 이주, 지역 간 식량교환, 밀림 등 자연파괴, 기후 변화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의 전염병들은 과거에 비해 예방 시스템과 치료제가 발달해 희생자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주목해야 할 전염병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에볼라만큼 치명적인 전염병들도 있다. 지난해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도 무서운 전염병이다. WHO에 따르면 폐렴과 신장 부기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는 이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70%다. 감염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낙타가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 간의 접촉으로 감염되며,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의견들도 상당히 있다. 이 바이러스는 사스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이다.
뎅기열도 무시할 수 없는 전염병이다. 뎅기열은 모기에 의해 전염되며 고열과 근육통, 관절통을 동반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전염병이다. 뎅기열은 1970년까진 9개국에서만 발생했지만 최근엔 수십 개국에서 매년 5000만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뇌척수막염은 척수와 뇌에 바이러스가 침투할 경우 발병하는데, 재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뇌손상을 초래하거나 죽게 된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도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다. 주로 모기에 의해서 전파되는데, 1938년 우간다 웨스트 나일 지역에서 처음 발견돼 현재 미국에도 널리 퍼져 있다. 지금까지 백신이나 치료약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해 서아프리카에 의료진을 대거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역 지원에도 각국의 국익(國益) 챙기기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영국·프랑스 서방 3개국은 에볼라로 국가 붕괴 위기에 빠진 서아프리카 3개국에 대해 각각 과거 종속관계였던 국가를 우선해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정부는 1849~1958년 자국령이었던 기니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기니에 치료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영연방의 일원인 시에라리온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은 영국에서 이송돼 온 해방노예들이 세운 국가로, 1896년 영국이 내륙지방을 보호령으로 삼았다. 영국은 1924년 시에라리온을 식민지와 보호령으로 나눠 수도 프리타운과 연안지방을 식민지로 삼았다. 영국 국방부는 해군 함정 아거스호와 함께 군(軍) 의료진 등 병력 750명을 파견했다. 영국 정부는 환자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치료시설 건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해방노예들이 주축이 돼 건설한 라이베리아에 대한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라이베리아의 수도인 몬로비아에 에볼라 지휘 센터를 설치하고, 군 병력 4000명을 파병했다. 국제사회의 지원활동을 조정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에볼라 퇴치에 앞장섬으로써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온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현재 아프리카와의 교역 규모가 유럽연합(EU)과 중국에 이어 3위에 그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3개국에 뒤질세라 서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서아프리카 3개국에 병상, 구급차, 개인보호장비, 소각로 등 물자를 대거 공급하고 있고, 라이베리아에 100개 병상을 갖춘 진료센터 건립을 지원하고 160명의 의료진도 파견했다. 중국 정부는 또 7억5천만 위안의 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수도
에볼라 확산사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생물학무기가 적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무기로 사용되는 바이러스는 탄저균,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등이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의사당에 2g 정도의 탄저균이 들어 있는 편지가 우편물로 배달된 적이 있었다. 당시 22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했다. 만일 우편물이 아닌 탄저균 10kg을 상공에서 살포한다면 30만명을 감염시키거나 살상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972년 생물학무기의 개발, 생산, 보관을 금지하는 유엔 협약에 가입한 이후 공식적으로는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부 국가들이나 테러 단체들의 생물학무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바이러스 연구 등을 계속해 왔다. 특히 북한의 경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생물학무기를 개발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7월 발표한 군축·비확산 이행 연례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이 생물학무기 사용을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는 생물학무기금지협약(BWC)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정보를 취합해 봤을 때 북한은 생물학무기 연구와 개발을 계속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북한은 1987년 3월 BWC에 가입했으나 관련 신뢰 구축 조치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0년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연례 보고서 등을 통해 경고해 왔다. 북한은 현재 탄저균,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등의 각종 병원균을 배양해 다량의 생물학무기를 확보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생물학무기를 제조하는 곳은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250km 떨어진 자강도 만포시 별오동에 있는 공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러·중 모두 군사적 목적으로 에볼라 연구
에볼라도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옛 소련이 냉전시대인 1970년대 말부터 에볼라 바이러스를 생물학무기로 개발하기 위해 비밀리에 연구해 왔다면서 러시아도 이 연구를 계속해 왔다고 보도했다(10월 24일자). 옛 소련의 비밀 군사시설에서 진행된 에볼라 바이러스 연구는 백신을 비롯해 전염성이 훨씬 강한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의 개발과 에볼라 바이러스 유전자의 복제 시도 등도 포함됐다. 이 연구들은 모두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옛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에볼라 바이러스의 무기화 연구는 공식 중단됐다. 하지만 1991년 이후에도 적어도 네 곳의 비밀 연구시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한 병원체 연구가 계속됐고, 1996년과 2004년에는 연구원이 감염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미국도 육군 전염병연구소(USAMRIID)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연구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제약사인 테크미라사는 지난 2010년 보스턴대학 전염병연구소 및 미국 육군 전염병 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유전자제어기술을 활용해 영장류를 에볼라로부터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서를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에 실은 적이 있다. 테크미라사는 현재 에볼라 치료약 ‘TKM-에볼라’를 개발 중이다. 미국 국방부는 ‘TKM-에볼라’ 개발에 1억4000만 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볼라에 감염된 환자들에 투여돼 효과를 본 실험용 치료제 지맵(ZMapp)의 개발사인 미국 맵바이오제약도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과 연구를 공동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쓰환의약그룹도 군사의학·과학원과 공동으로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모두 에볼라가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WHO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소로 식량부족, 기후변화와 함께 팬데믹을 들었다. 바이러스는 계속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인류와 전염병과의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상이 의학 전문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의 연구진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추적 조사해 밝혀낸 ‘페이션트 제로(patient zero·첫 번째 감염자)’와 초기 감염경로이다. 정체 모를 질병이 에볼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갈수록 환자들은 늘어갔고 사망자들이 속출했다. 에볼라에 감염되면 갑작스런 발열, 권태감, 근육통, 두통 등이 나타나고, 2~3일 후 인두염, 구토, 설사 등이 발생한다. 대개 1~2일 후 출혈 증상, 간부전과 신부전, 중추신경계 증상, 쇼크 증상을 호소하다가 다발성 장기부전이 생기며 7~10일 사이에 사망한다. 에볼라 환자의 혈액을 검사하면 간 기능 이상, 혈소판 감소, 림프구 감소 등의 증상이 보인다. 잠복기는 2~21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첫 환자가 발생한 지 3개월여가 지난 뒤인 3월 24일에야 기니에서 에볼라 환자 86명이 발생해 60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36년간 에볼라 사망자 2387명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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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볼라 바이러스의 宿主로 알려진 과일박쥐. |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면 이달 말까지 에볼라 감염 환자는 1만4000여 명, 사망자는 5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볼라가 발생한 국가는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세네갈, 말리, 미국, 스페인 등이며 다른 국가에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난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강(江) 주변에서 처음 발견됐다. 발견 지역이 에볼라강 주변이어서 에볼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후 가봉과 코트디부아르, 수단, 우간다 등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들 국가가 다른 나라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 에볼라가 인근 국가로 크게 번지지 않았다. 1976년 이후 2012년까지 에볼라로 사망한 환자가 2387명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볼라를 확산시킨 요인들
지난해까지 에볼라 발생은 소규모이고 국지적(局地的)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에볼라가 창궐하고 있다.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에볼라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들 3개국에서 에볼라가 급속도로 퍼진 것은 버스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볼라에 걸린 환자의 버스 이용에 이웃 마을이나 도시, 나아가 국경 밖으로 퍼졌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짧은 데다 발병 이후 10일 이내에 사망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전염될 틈이 없었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에볼라가 크게 확산되지 않은 것도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아프리카 오지에도 버스가 다니면서 에볼라가 확산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장례 풍습이다. 시신에 입맞추는 관습이 다른 감염자를 발생시킨다. 더욱이 에볼라로 숨진 환자는 죽기 전 피를 엄청나게 토한다. 유족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피로 범벅이 된 시신을 씻기다가 에볼라에 감염된다. 에볼라 희생자 4명 가운데 3명은 여성이다. 서아프리카 여성들은 가족 가운데 사망자가 있을 때 장례 절차를 주로 준비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이들 3개국의 의료체계와 의료진 부족도 에볼라 확산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라이베리아의 경우 에볼라 발병 전부터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1명에 불과하다. 시에라리온 2명, 기니 10명이다.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의 지난해 보건 분야 정부 지출은 국민 1인당 7달러, 18달러, 13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에볼라 환자를 격리 치료할 시설도 거의 없다.
서아프리카 지역에는 아직도 주술과 전통의술이 만연해 있다. 이들 3개국의 농촌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대부분 현대의학을 불신하고 미신을 믿고 있다. 이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고 주술을 통해 병을 치료하려다가 전염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정부와 해외 의료진을 믿지 못하고 환자를 숨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국민 상당수가 에볼라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전(內戰)에 시달려온 이들 3개국에서 죽음은 일상이 됐다.
라이베리아 등, 국가 붕괴 위기 직면
국제사회의 늑장과 부실 대응도 에볼라 확산의 원인이 됐다. 국제사회는 에볼라를 서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된 상황으로 치부하고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에볼라가 전(全)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간과했다. 일각에선 WHO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WHO의 예산은 국제민간구호단체인 ‘국경 없는 의사회’의 2배 수준이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조앤 리우 회장은 WHO가 회원국들의 보건 비상사태 대처를 지원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이들 3개국은 현재 국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에볼라 통제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1월쯤 서아프리카 3개국의 에볼라 감염자가 50만명에서 많게는 140만명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문제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은 서아프리카 3개국의 국가 경제는 사실상 마비됐다면서 국제사회가 이들 3개국에 대규모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엄청난 인도적(人道的) 재앙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들 3개국 정부의 재정은 이미 고갈 상태이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이들 3개국에서 에볼라 확산을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의 단어 ‘빈곤’으로 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3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에 속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3개국 합산 GDP는 130억 달러로 아프가니스탄의 210억 달러보다도 적다. 기니의 총부채는 GDP의 38%, 라이베리아는 30%, 시에라리온은 33%였다.
이들 3개국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내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라이베리아에서는 1989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내전이 벌어졌다. 내전 기간에 25만여 명이 죽었다. 시에라리온도 1960년대부터 거듭된 군부 쿠데타 등으로 내전이 계속 이어져 왔다. 기니에서도 종교와 종족 간 분쟁이 일상사처럼 벌어졌었다.
‘피의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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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놓고 내전이 벌어졌던 시에라리온의 참상을 그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
라이베리아에도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 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돼 있다. 특히 독재자로 악명 높은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은 이웃인 시에라리온의 내전까지 깊숙이 관여해 다이아몬드를 챙겼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시에라리온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에 무기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를 받았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2003년 라이베리아에서 반대 세력에 의해 축출된 뒤 나이지리아로 망명했으나 2006년 3월 체포, 2013년 9월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5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기니는 알루미늄의 원료인 보크사이트의 최대 생산국이며 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이들 3개국은 최근 들어 정치적 안정을 찾으면서 그동안 방치했던 천연자원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활발하게 보여왔지만, 에볼라 확산으로 또다시 최악의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오바마, ‘국가적 안보위협’으로 규정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은 서아프리카 3개국에 한정돼 있다. 에볼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첫 번째 에볼라 감염 사망자가 나오고 두 번째 확진 환자까지 나오면서 에볼라(ebola)와 공포(fear)의 합성어인 ‘피어볼라(fearbola)’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가 에볼라 확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공포가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으로 번져가면서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에볼라가 확산하면 무엇보다 항공과 관광 업계가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 2003년 사스가 유행했던 때 공포가 확산되면서 항공과 관광 업계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사스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홍콩과 중국에선 여객기가 승객 없이 텅텅 빈 채로 운항했었고, 호텔들도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 상황에 빠졌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제활동이 부진하고 주식시장도 급락했다. 당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경우 2003년 2분기 성장률은 1992년 이후 가장 낮은 6.7%를 기록, 1분기 9.9%에 비해 2.2%포인트나 하락한 바 있다.
에볼라에 따른 경제적 충격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항공 운송 정보 제공업체 OAG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 서아프리카로 연결된 항공편 운항은 64% 줄었다. 브리티시항공, 델타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들은 이들 지역으로 연결된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있다. IMF는 에볼라로 시에라리온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1.3%에서 8%로, 라이베리아는 5.9%에서 2.5%로, 기니는 3.5%에서 2.4%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은행은 에볼라가 조기에 제압되지 못하면 내년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326억 달러(35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추정했다.
에볼라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까지 크게 확산된다면 경제적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또 중국이나 인도처럼 인구가 많고 전 세계와 무역, 투자 등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된 나라로 전염이 확산될 경우 그 피해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에볼라를 국가적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톰 프리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소장은 “에볼라가 제2의 에이즈가 되지 않으려면 확산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볼라 공포 현상을 보면 1980년대 에이즈가 발생했을 때와 비슷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역사를 바꾼 전염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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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봉건제 소멸 등 유럽 역사를 변화시켰다. |
에볼라와 에이즈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두 바이러스는 모두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발견됐다는 점, 치료약이 없다는 점, 동물을 매개체로 해서 전염된다는 점, 공기가 아닌 접촉에 의해 전염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최대 피해지역이 아프리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이즈의 경우 지금까지 집계된 전 세계 감염자 중 70%가 사하라 이남에서 나왔다. 이 지역에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가난한 국가들이고, 기본적인 공중보건 시설도 없다. 에이즈 확산의 원인인 경제적 빈곤과 공중보건 문제는 에볼라를 확산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에이즈는 ‘20세기의 흑사병(黑死病)’이라고 불린다. 흑사병은 페스트를 말하는데, 과거 사례를 보면 페스트는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흑사병은 1346년 몽골군이 크림반도 카파를 공략하면서 병들어 죽은 시체를 도시 안으로 던지는 바람에 유럽 각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1350년까지 중세(中世) 유럽 인구 중 3분의 1인 2000만명이 흑사병으로 숨졌다. 워낙 많은 인명이 희생되면서 노동 인력의 부족으로 중세의 봉건제가 점차적으로 소멸하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무서운 전염병으론 유럽이 남미 대륙을 정복할 때 유행했던 천연두 바이러스를 들 수 있다. 스페인이 1519년 고작 600명의 병사로 2500만명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천연두 바이러스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면역을 가진 스페인 사람들과 달리 아스테카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아스테카의 인구는 1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천연두는 남미 전역으로 퍼졌고, 잉카 제국마저 이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됐다. 남미 대륙이 유럽의 식민지가 된 것은 바로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윌리엄 맥닐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처럼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疫病, 콜레라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전염병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다.
최초의 국제적인 전염병은 AD 165~180년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 유행한 역병을 꼽을 수 있다. 근동 지역(현재의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파병됐던 로마 병사들이 병에 걸려 귀국하면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전염병이 퍼져 500만명 이상이 숨졌다. 특히 이 역병으로 안토니우스 황제가 사망해 ‘안토니우스 역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의학 전문가들은 당시의 역병이 천연두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D 541년부터 750년까지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도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이 역병은 페스트였는데,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옮아갔다. 이 역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만 하루에 1만명씩 숨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 세력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奧地)로 진출하면서 전 세계에서 콜레라가 대유행했다. 인도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1817년 인도 전역으로 퍼졌고 이후 세계 각지로 확산됐다. 콜레라는 장티푸스, 이질과 함께 제국주의 시절 가장 기승을 부린 전염병이었으며,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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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레라가 창궐하던 1930년대 초 일본 순사들은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임검을 하면서 사람들의 이동을 차단했다. |
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에서 6단계까지 나누는데 최고 경고 등급인 6단계를 팬데믹이라고 한다. 팬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고 데믹은 사람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질병에 걸린다는 뜻이다.
팬데믹이라는 말을 들은 전염병들을 보면, 1957년 유행한 아시아 독감으로 100만명이 숨졌다. 1968년에는 홍콩 독감으로 70만명이 사망했다. 2003년에는 사스가, 2009년에는 신종플루로 불렸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전염병은 한 사회 내에서 인구 구조와 노동 조건, 정치적 역학관계를 바꿀 뿐만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형성·전파와 인간의 대규모 이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대의 전염병들은 여행, 항공기, 이주, 지역 간 식량교환, 밀림 등 자연파괴, 기후 변화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의 전염병들은 과거에 비해 예방 시스템과 치료제가 발달해 희생자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주목해야 할 전염병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에볼라만큼 치명적인 전염병들도 있다. 지난해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도 무서운 전염병이다. WHO에 따르면 폐렴과 신장 부기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는 이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70%다. 감염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낙타가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 간의 접촉으로 감염되며,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의견들도 상당히 있다. 이 바이러스는 사스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이다.
뎅기열도 무시할 수 없는 전염병이다. 뎅기열은 모기에 의해 전염되며 고열과 근육통, 관절통을 동반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전염병이다. 뎅기열은 1970년까진 9개국에서만 발생했지만 최근엔 수십 개국에서 매년 5000만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뇌척수막염은 척수와 뇌에 바이러스가 침투할 경우 발병하는데, 재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뇌손상을 초래하거나 죽게 된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도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다. 주로 모기에 의해서 전파되는데, 1938년 우간다 웨스트 나일 지역에서 처음 발견돼 현재 미국에도 널리 퍼져 있다. 지금까지 백신이나 치료약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에볼라 확산을 막기 위해 서아프리카에 의료진을 대거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역 지원에도 각국의 국익(國益) 챙기기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영국·프랑스 서방 3개국은 에볼라로 국가 붕괴 위기에 빠진 서아프리카 3개국에 대해 각각 과거 종속관계였던 국가를 우선해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정부는 1849~1958년 자국령이었던 기니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기니에 치료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영연방의 일원인 시에라리온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은 영국에서 이송돼 온 해방노예들이 세운 국가로, 1896년 영국이 내륙지방을 보호령으로 삼았다. 영국은 1924년 시에라리온을 식민지와 보호령으로 나눠 수도 프리타운과 연안지방을 식민지로 삼았다. 영국 국방부는 해군 함정 아거스호와 함께 군(軍) 의료진 등 병력 750명을 파견했다. 영국 정부는 환자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치료시설 건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해방노예들이 주축이 돼 건설한 라이베리아에 대한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라이베리아의 수도인 몬로비아에 에볼라 지휘 센터를 설치하고, 군 병력 4000명을 파병했다. 국제사회의 지원활동을 조정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에볼라 퇴치에 앞장섬으로써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온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현재 아프리카와의 교역 규모가 유럽연합(EU)과 중국에 이어 3위에 그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3개국에 뒤질세라 서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서아프리카 3개국에 병상, 구급차, 개인보호장비, 소각로 등 물자를 대거 공급하고 있고, 라이베리아에 100개 병상을 갖춘 진료센터 건립을 지원하고 160명의 의료진도 파견했다. 중국 정부는 또 7억5천만 위안의 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수도
에볼라 확산사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생물학무기가 적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무기로 사용되는 바이러스는 탄저균,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등이다.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의사당에 2g 정도의 탄저균이 들어 있는 편지가 우편물로 배달된 적이 있었다. 당시 22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했다. 만일 우편물이 아닌 탄저균 10kg을 상공에서 살포한다면 30만명을 감염시키거나 살상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972년 생물학무기의 개발, 생산, 보관을 금지하는 유엔 협약에 가입한 이후 공식적으로는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부 국가들이나 테러 단체들의 생물학무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바이러스 연구 등을 계속해 왔다. 특히 북한의 경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생물학무기를 개발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7월 발표한 군축·비확산 이행 연례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이 생물학무기 사용을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는 생물학무기금지협약(BWC)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정보를 취합해 봤을 때 북한은 생물학무기 연구와 개발을 계속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북한은 1987년 3월 BWC에 가입했으나 관련 신뢰 구축 조치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0년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연례 보고서 등을 통해 경고해 왔다. 북한은 현재 탄저균,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등의 각종 병원균을 배양해 다량의 생물학무기를 확보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생물학무기를 제조하는 곳은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250km 떨어진 자강도 만포시 별오동에 있는 공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러·중 모두 군사적 목적으로 에볼라 연구
에볼라도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옛 소련이 냉전시대인 1970년대 말부터 에볼라 바이러스를 생물학무기로 개발하기 위해 비밀리에 연구해 왔다면서 러시아도 이 연구를 계속해 왔다고 보도했다(10월 24일자). 옛 소련의 비밀 군사시설에서 진행된 에볼라 바이러스 연구는 백신을 비롯해 전염성이 훨씬 강한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의 개발과 에볼라 바이러스 유전자의 복제 시도 등도 포함됐다. 이 연구들은 모두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옛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에볼라 바이러스의 무기화 연구는 공식 중단됐다. 하지만 1991년 이후에도 적어도 네 곳의 비밀 연구시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한 병원체 연구가 계속됐고, 1996년과 2004년에는 연구원이 감염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미국도 육군 전염병연구소(USAMRIID)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연구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제약사인 테크미라사는 지난 2010년 보스턴대학 전염병연구소 및 미국 육군 전염병 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유전자제어기술을 활용해 영장류를 에볼라로부터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서를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에 실은 적이 있다. 테크미라사는 현재 에볼라 치료약 ‘TKM-에볼라’를 개발 중이다. 미국 국방부는 ‘TKM-에볼라’ 개발에 1억4000만 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볼라에 감염된 환자들에 투여돼 효과를 본 실험용 치료제 지맵(ZMapp)의 개발사인 미국 맵바이오제약도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과 연구를 공동으로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쓰환의약그룹도 군사의학·과학원과 공동으로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모두 에볼라가 생물학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WHO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3대 요소로 식량부족, 기후변화와 함께 팬데믹을 들었다. 바이러스는 계속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인류와 전염병과의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