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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급물살 타기 시작한 日北修交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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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北수교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요코타 메구미 부모, 지난 3월 몽골에서 손녀 등 만난 후
    유화적으로 변화
⊙ 日, 北과 修交회담하는 것만으로도 韓中 견제 효과, 아베 임기 내 修交할 수도
⊙ 日은 크림사태 등 관련해 美 입장 적극 지지, 美는 센카쿠 문제 등에서 日 입장 대변

劉敏鎬
⊙ 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메구미의 딸 김혜경을 만나고 돌아온 후인 지난 3월 17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집단적 자위권 확대, 해외무기수출 3원칙 대폭 완화,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탄생, 특정비밀보호법안 국회 통과, 인공위성 40개를 통한 남중국 감시망 확보(MDA)….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군사안보 관련 성적표들이다. 아베는 이전 내각에서 10~20년 동안 토론만 해오던 민감한 문제들을 집권 17개월 만에 전부 실천에 옮겼다. 한반도와 동(東)아시아 나아가 전(全) 세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지각(地殼)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2014년 4월, 아베는 또 하나의 카드를 가지고 동아시아 전체의 흐름을 바꾸려 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 직격탄이 될 새로운 카드는 일북(日北) 국교 정상화 교섭이다(이하 일북수교).
 
  지난 3월 10~14일 몽골 울란바토르발(發) ‘빅 뉴스’는 아베가 추진하는 일북수교의 서막(序幕)에 해당한다. 울란바토르 무대에 오른 주인공은 전부 5명. 일본인 2명, 북한인 3명이다.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橫田めぐみ)의 부모, 메구미의 딸인 김혜경과 생후 10개월 된 그녀의 아들, 메구미의 남편이자 김혜경의 아버지인 김영남이다. 요코타 메구미는 없지만, 4대(代)로 이어지는 가족이 함께 만난 셈이다.
 
  한국 언론도 보도했지만, 요코타 가족의 만남은 일북 간의 비밀접촉 끝에 이뤄졌다. 1월 25일 베트남 하노이, 2월 22일 홍콩에서 일북 외교관의 비밀접촉, 3월 초 중국 선양(瀋陽)에서 일북 적십자 대표들의 만남. 그 후 불과 일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가족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메구미 부모의 변신
 
  일본 외무성은 요코타 가족의 만남을 극비로 진행했다. 외무성은 지난 1월 26일 《아사히(朝日)신문》이 하노이 일북회담에 대해 보도하자 이를 전면 부정했다. 일본에서는 언론이 비밀사항에 대해 보도하면 그것이 사실일 경우에는 ‘노 코멘트’로 일관하는 것이 외무성과 신문사와의 묵시적(默示的) 관행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 기자로부터 ‘언관(言官) 관행’이 깨졌다는 얘기를 접했을 때, 필자는 일북 간에 뭔가 큰일이 이뤄지고 있다고 직감했다.
 
  ‘요코타 가족의 울란바토르 상봉이 무슨 큰일인가’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한국 신문을 보면 일본과 북한에 사는 요코타의 가족이 울란바토르에서 만났다는 식의 단순보도에 그치고 있다. 일북회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같은 평면적인 분석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울란바토르 상봉 뉴스의 핵심은 일본에 돌아온 지 열흘 뒤에 있은 메구미 부모의 기자회견에 압축돼 있다. 메구미 부모는 시종 웃음을 띤 모습으로 손녀와 증손자에 대한 얘기를 이어나갔다. 첫 대면한, 메구미의 남편 김영남(고교 시절 납북)에 대해서는 “착한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손녀인 김혜경의 원래 이름이 김은경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렸다.
 
  일본의 모든 언론은 3월 24일 메구미 부모의 기자회견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80대를 전후한 노(老)부부의 기뻐하는 모습은 열도 전체를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필자는 1시간 이상 진행된 기자회견 내용을 지켜보면서 곧 닥칠 일본 외교의 큰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정치가와 외교관들을 짓눌러온 큰 난제 하나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바로 메구미 부모의 ‘변신’이다.
 
  메구미의 부모는 일본 정치와 외교의 치부(恥部)를 고발해 온 사람이다. 그들은 1977년 메구미가 납치된 이래 37년간 딸을 찾아달라고 탄원해 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 그 누구도 이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2002년 북한이 공식적으로 메구미 납치를 인정하자, 이들 부부는 17명에 이르는 납치피해자가족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메구미의 부모는 보통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理想的)인 부모상(像) 그대로다. 필자도 가까이서 봤지만, 배경이나 언동, 소박한 외모와 겸손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신뢰를 중시 여기는 일본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의 국민도 지키지 못하는 정부를 맹비난해 왔다. 일본인 모두가 이들의 응원단으로 나섰다. 메구미의 부모는 그동안 외무성 장관은 물론, 수상보다도 발언권이 강한, 사실상 일본 외교 ‘최대 실세(實勢)’였다. 2005년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도 무려 100여 명 이상의 기자단이 동행했다. 미국 국무부·국방부의 고위 관리들도 이들을 기꺼이 만나주었다.
 
  지난 3월 말 기자회견장에서 메구미의 부모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 일본 정부에 대한 비난이나 서운함을 표시하지 않았고, 딸 메구미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드시 찾아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딸을 납치한 테러국가 북한에 대한 원망이나 비난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손녀와 증손자에 대한 얘기로 정신이 없는, 이른바 ‘오야 바카(親馬鹿·자식 사랑과 자랑에 눈이 먼 부모)’로 변했다. 메구미의 어머니는78세, 아버지는 82세이다. 세상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진 나이다. 이들로서는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메구미보다, 손녀와 증손자의 내일을 걱정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메구미의 부모는, 딸의 납치사건을 ‘이미 지나간 어제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日北수교는 메구미 부모에게 달려’
 
  그동안 일본 외교가에서는 농담처럼 “일북수교는 메구미 부모의 생사(生死)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메구미 부모가 자연사(自然死)하기 전까지는 일북수교, 나아가 일북 접촉에 관한 그 어떤 얘기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외무성의 분위기였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지낸 다나카 히토시(田中均)라는 일본 외교관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수상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킨, 막후(幕後)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고이즈미와의 평양 방문 후 매국노(賣國奴)라는 비난에 우익(右翼)의 폭탄테러 위협까지 받았다.
 
  이유는 2004년 5월 고이즈미의 제2차 평양 방문 직후 도쿄에 돌아온 5명의 일본인 때문이다. 이들은 납북(拉北) 일본인들로 김정일의 허락을 받고 일본을 잠시 방문하고 있었다. 당초 이들은 2~3주간 가족과 만난 뒤 평양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일본에 남기를 원하자 고이즈미는 이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약속이 깨지자 북한은 격하게 항의했고, 후속 조치의 이행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언론은 북한과 이들 납북 일본인 5명을 일시방문 후 돌려보내기로 합의한 장본인이 다나카라는 사실을 보도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흘린 리크(leak) 기사였다. 다나카는 외교관으로서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었지만, 한순간 납북 일본인 5명을 북한에 되돌려보내기를 원하는 친북(親北) 매국노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다나카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북한에 대해 호의적 발언이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매장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조금 과장하자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일북수교 문제를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메구미 부모의 변신은 이러한 터부의 종언(終焉)을 의미한다.
 
 
  납치피해자가족회 힘 빠질 듯
 
2006년 6월 14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나온 김혜경(맨 오른쪽). 왼쪽은 납북된 김영남의 누나 김영자(가운데)씨.
  아베는 이번 메구미 가족의 만남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아베는 관방장관 시절, 고이즈미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납북 일본인 5명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데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아베이다.
 
  아베는 지난 3월 28일 메구미의 부모를 수상관저로 초대, 식사를 같이했다. 이 자리에는 납치피해자가족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메구미의 부모는 수상에게 납치자 문제에 대해 특별한 이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무렵 손녀인 김혜경을 특별대우하고, 원한다면 증손자와 함께 일본에도 보내주겠다는 달콤한 제의가 북한발 외신(外信)으로부터 전해졌다.
 
  이날 식사 자리에서 아베는 3월 30일부터 이틀간 베이징(北京)에서 정부 차원의 일북 접촉이 이뤄진다고 밝히고 “납치된 일본인 전원을 반드시 귀국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에서는 아베를 일본 극우(極右)의 화신(化身)으로 보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베는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리더’다.
 
  아베와의 식사를 기점(起點)으로 메구미 부모의 영향력은 대부분 사라지게 됐다. 가장 상징적인 존재인 두 사람을 정점으로 움직이던 납치피해자가족회도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남은 것은 메구미의 딸 김혜경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는 대형 이벤트뿐이다. 납치된 일본인 가운데 몇 명이 실제로 돌아올지는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日北修交의 前兆들
 
아베 정권 출범과 함께 등장한 납북 일본인 관련 공익 포스터. 납북 일본인들을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대신 지금까지 납치자 문제가 주된 의제이던 일북협상의 성격은 수교(修交) 문제를 다루는 회담으로 바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3월 말 베이징에서의 회의에 이어, 4월 5일과 6일 다시 북한과 만났다. 북한 측 파트너는 송일호 일북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이다. 일본 측 대표는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아시아대양주국장이다. 회담장소는 베이징이란 소문만 무성하지, 실제 어디에서 열렸는지는 알 수 없다. 울란바토르란 소문도 들린다. 일북 간의 대화는 4월을 기점으로 비밀회담으로 변한 것이다. 일북회담이 앞으로 일북수교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지난 3월 말 일북회담에서, 매각 위기에 처한 도쿄 조총련 건물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조총련 건물을 되돌려주라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는 일본과 수교할 경우, 이 건물을 주일 북한대사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북한은 3월 말 회의에 참석한 일본 외교관에게 곧 있을 미사일 발사 사실을 통보했다. 놀랍지 않은가? 북한은 일본이 자신의 핵과 미사일의 주된 타격 대상 중 하나라고 위협해 왔다. 북한 대표단은 ‘친절하게도’ 가능하다면 군(軍)에 사정(射程)거리가 짧은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요청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사일 발사나 핵문제는 2002년, 고이즈미가 추진했던 일북수교회담 당시 주된 의제 중 하나였다.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일본에 ‘특별 보너스’를 하나 안겨준 것이다.
 
  셋째, 비밀회담이 끝나자마자 일본은 4월 28일~5월 6일 열리는 도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북한선수단에 신속하게 비자를 발급했다. 2006년 10월 이후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이 일본 땅을 밟은 것은 처음이다. 더불어 2020년 열릴 하계올림픽 때 북한선수단 참가도 허락할 것이란 보도가 흘러나왔다. 미중(美中) 국교 정상화 이전에 있었던 핑퐁외교, 스포츠외교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북수교는 갈 길이 멀다. 현재의 상황은 수교를 위한 탐색전 정도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일북 간의 대화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일까?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하라의 워싱턴行
 
  잘 알려진 대로 4월 7일 워싱턴에서는 한·미·일 3국 간의 북핵(北核)회담이 열렸다. 6자회담 수석대표에 해당되는 3국 대표가 만나 북핵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일본 측 대표로 나선 인물은, 현재 일북수교를 담당하는 이하라 국장이다. 이하라 국장은 북한과 비밀회담을 한 직후 워싱턴으로 날아간 것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 회의 중 한미(韓美) 수석대표가 일북회담의 투명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원칙론적인 얘기지만, 일북회담의 투명성은 한국 대표가 관심을 갖고 제기했을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는 일북회담의 내용을 바로 얘기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을 제쳐놓고 북한과 수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일북수교 과정에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수상이 1972년 전격적으로 중국과 수교했던 것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다나카의 중일수교는 닉슨 독트린이란 충격적인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은 다나카가 미국을 뛰어넘어 중국·소련과 관계 개선에 나선 ‘죄(罪)’로 수상 자리에서 추방됐다고 믿고 있다. 미국이 다나카의 외교행보에 불만을 품었고, 결국 미 CIA가 관련 정보를 흘리는 바람에 다나카를 실각(失脚)게 한 록히드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하라 국장이 과연 어떤 정보를 미국에 전해줬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 회담내용을 전해줄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북한 문제를 둘러싼 과거 미일의 전례(前例)를 보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미키와 우쓰노미야
 
1970년대 공산권과의 가교 역할을 했던 우쓰노미야 도쿠마.
  1975년 8월 2일 워싱턴에서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일본 수상과 포드 미 대통령 사이 정상회담이 열렸다. 마지막 날 열린 세 번째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당시 한일관계는 1974년에 있었던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과 육영수(陸英修) 여사 피살(被殺)사건 때문에 상당히 좋지 않았다. 지금과 비슷하게도 미국 동맹국인 한일 간의 불화는 결국 워싱턴으로 불똥이 튀었다.
 
  미키는 이 회담에서 미국과 수교를 희망하는 김일성(金日成)의 제안을 전했다. 김일성의 뜻을 미키에게 전한 사람은 우쓰노미야 도쿠마(宇都宮德馬) 자민당 의원이었다. 20대 청년 시절에 일본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경력 때문에 우쓰노미야는 공산권 지도자와 교류가 많았다. 그는 일중 국교 정상화 전인 1971년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만나 중일친선을 강조했고, 평화공존외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구(舊)소련과의 외교강화도 역설했다. 김대중 석방운동을 벌였고, 북한을 수차례 방문해 김일성과 만나기도 했다. 우쓰노미야는 1975년 초 미키의 특사(特使)로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 김일성과 만났다. 김일성은 우쓰노미야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싶다”면서, 미국과의 수교를 희망했다.
 
  미키가 김일성의 희망을 미국에 전한 것은 미북 간의 중개자로 나서보기 위해서였다. 북한 지도부의 생각을 워싱턴에 전달해준 뒤, 미북 양쪽의 틈새에서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일본의 그 같은 자세를 잘 알고 있다. 4월 7일 직전에 열린 일북회담은 북한의 요청에 의해 갑자기 이뤄진 것이다. 한·미·일 3국 북핵회담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고, 북한이 일본을 통해 특별한 메시지를 미국에 전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하라 국장은 우쓰노미야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직업 외교관이다. 중개자로서의 일본의 역할이 크게 제한된다는 의미이다. 관료는 결코 무리를 하지 않는다. 책임질 일을 하지 않고, 명령체계를 통해 문서로 하달된 분야에 집중할 뿐이다.
 
 
  日北수교는 일본 정치인들의 꿈 중 하나
 
  일본이 볼 때 북한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외교 상대에 해당된다. 전례가 없을 경우, 정치적 판단에 따라 각 사안을 결정해야 한다. 정치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9월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은 대표적인 예이다. 국교 정상화, 대북경협 제공, 납치사과 문제와 재발 방지, 미사일 발사 보류 등과 같은 큼직한 이슈는 외교관의 몫이 아니다.
 
  2014년 봄, 일북대화 양상을 보면, 정치가가 아닌 외교관의 모습만 보인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일북수교를 향한 3막 4장 가운데, 1막 정도가 시작한 것 같다. 아베와 직접 연결된 정치인이 회담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2막 나아가 3막으로 빠르게 나아갈 것이다.
 
  사실 일북수교는 전후(戰後) 일본 정치가라면 한 번씩 꿈꾸거나 시도를 한, 일본 외교사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일본 외교의 첫 번째 과제는 물론 북방영토 수복 문제이다.
 
  일북수교는 어느 정도 위상의 과제일까? 중진급 이상의 정치가라면, 북방영토 회복 다음가는 두 번째 외교 과제로 받아들일 것이다.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는 정치가라면 북한과의 수교가 꼭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북한이 좋아서, 북한과 경제관계를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의 안보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가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의 내일이 불안하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가지면서 극단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불확실성을 미리 방지해야 한다.
 
  원래 일북수교의 핵심 현안은 역사 문제 식민지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문제였다. 1965년 한국과 이뤄진 수교 모델이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상이나 배상은 차관(借款)이나 대북(對北)경제교류기금이란 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1990년대 말 워싱턴에서는 일북협상에 따른 경제적 지원금이 100억 달러 선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의 ‘인플레(?)’를 감안하면 경제교류의 액수는 더 커질 수 있다.
 
  두 차례의 평양 방문을 단행한 고이즈미의 북한 접근법을 보면 미국과의 관계를 ‘철저히’ 염두에 둔 이벤트로 분석된다. 당시 고이즈미 정권은 이라크 전쟁에 1000명의 비(非)전투 목적의 자위대를 파견하고, 복구지원비로 4년간 매년 50억 달러를 제공했다. 2003년 12월,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위대 파병에 대한 국민의 반대는 55%에 달했다. 고이즈미는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은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워싱턴은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다.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가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방문했을 때도 미국은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2014년 봄, 아베는 정치적 동지이자, 전임 수상이기도 한 고이즈미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미국의 2중대로 자처하고 있다. 일본은 크림사태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아베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15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의 10억 달러보다도 많은, 단일국가로는 최고 수준이다. 미국이 러시아 지도자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자 아베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 고위 군 관계자의 도쿄 방문을 거부하고, 각종 러일 교류도 중단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 자위대가 파병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우크라이나를 미일동맹2.0에 기초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장(場)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은 북한과 수교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불만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헤이그 核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아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은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은 일북회담을 중국과 한국을 견제하는 카드로도 활용할 것이다. 아베는 울란바토르에서 이뤄진 메구미 가족 상봉에 대해 “일본·북한·몽골 3국의 협조하에 이뤄진 쾌거”라고 강조한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중국 대신 몽골을 개입시킨 데 ‘방점’을 둔 것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과 중국은 원만치 못한 상태이다. 지난 1월 초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송유관(送油管)이 차단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관계는 한층 악화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과거사 문제 등에서 중국과 손잡고 있는 한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북대화가 속도를 더해갈수록 중국과 한국은 초조해지게 된다.
 
  한국 신문으로부터 ‘박근혜 스토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일정상회담을 촉구하던 아베는 4월 이후 그러한 행위를 중단했다. 4월 8일에는 TV토론 프로그램에 참석, “조건부 정상회담을 열 이유가 없다”고 호언했다. 위안부 문제를 전제로 한 한국과의 정상회담, 역사 문제나 센카쿠(尖閣)열도 문제를 중심으로 한 중국 시진핑(習近平)과의 만남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아베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나타났다. 한·미·일 3국 정상 간의 기념사진이 공표된 후다. 그때까지 아베가 박근혜 대통령을 ‘스토킹’한 것은 아베 스스로의 뜻이라기보다는 미국에 떠밀려서였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한일 정상이 만났지만, 미국을 고려할 필요 없는 한일 간의 만남에는 흥미가 없다는 의미이다. 아베는 일북회담이 한국을 견제하는 외교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꼭 일북수교가 아니더라도, 일북수교를 위한 회담 자체가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日, 웃으며 허리 낮추지만…
 
  “日방위상, 美 품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
 
  지난 4월 7일, 서울 모(某) 일간지 1면 한가운데 실린, 큼지막한 사진의 설명이다. 일본에 들른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防衛相)과 만나 악수하면서 어깨 위에 손을 얹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오노데라가 헤이글의 부하처럼 느껴진다.
 
  이 사진을 보면서 필자는 1945년 9월 27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와 맥아더 장군이 함께 찍은 사진을 생각했다. 큰 키의 장군은 군복 차림에다 두 손을 뒷주머니에 넣은 듯한 자세이다. 히로히토는 연미복에다 차려자세로 다소곳하게 서 있다. 천황이 직접 찾아가 맥아더를 ‘알현(謁見)’하는 장면이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맥아더와의 만남을 원한 것은 천황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 일본 내 미군(美軍)기지는 비상에 들어갔다. 사진을 보고 흥분한 구(舊)일본군이 육탄공격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신(神)처럼 받아들여지던 천황이 미국 장군의 부하 정도로 보이고, 맥아더 모습은 너무나 고압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진이 공개된 후 열도 전체가 눈물을 쏟기는 했지만, 폭력사태는 없었다. 1억 일본인은 천황과 장군의 사진을 통해 현실을 직시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진은 일본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강자(强者)에게 순응한다는 현실적 세계관이다. 천황에서부터 방위상, 외교관, 국민 개개인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국가적·인간적 자존심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강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뒤로는 강자와의 관계를 튼튼하게 구축한 뒤 자신의 이익증진에 전력(全力)을 기울이는 나라가 일본이다. 오노데라, 아니 일본이 미국에 허리를 낮추는 것은 일촉즉발 상태인 중국, 불편한 관계에 있는 한국,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 때문이다.
 
 
  日 대변인 역할 한 美국방장관
 
  일본을 방문하고 난 후인 4월 7일 중국을 방문한 헤이글 장관은 중국 국방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얼굴을 붉혀가며 센카쿠 문제 등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대변했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란 사실을 재삼재사 강조했다. 한국은 무심하게 넘어가지만, 헤이글은 서울에는 들르지도 않고 일본, 중국, 몽골을 순방한 뒤 돌아갔다. 일본이 허리를 굽힐수록 같은 동맹국인 한국의 위상이 불안해진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정권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2016년 12월까지 계속될 것이다. 설사 아베가 물러난다 하더라도 아베의 아바타가 뒤를 이을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오래간만의 장기 안정정권이다. 일북수교는 아베 집권기간 중 이루어질 것이다. 메구미의 부모가 손녀와 증손자를 포옹하는 장면이 도쿄발 뉴스로 나오는 순간, 일북수교는 속도를 더할 것이다. 일북수교의 최대 장애물이던 메구미의 부모가 일북수교의 전위대(前衛隊)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일북수교는 한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반대하거나, 찬성한다고 되거나 안 될 일이 아니다.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맺는 것이 ‘통일 한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미 국방장관에게 안기다시피 하면서 웃음을 짓는 일본 방위상을 비웃기에 앞서, 눈앞의 현실을 파악하고 분석 대응하는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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