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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포커스

중국공산당 제18기 3中全會와 對內外 정책

‘개혁개방 2.0’ 표방, 사실상‘主動作爲’ 시대 진입

글 :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전 조선일보 베이징특파원  sjpark77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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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시장경제로의 이행 다짐, ‘상하이 자유무역시험지역’은 환율·금리 등 완전시장경제
    시험지역이 될 것
⊙ 중국 외교, 주변국 중심 외교에서 강대국 중심 외교로 변화 시작
⊙ 시진핑, “결코 우리의 정당한 이익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국가의 핵심이익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
⊙ 上王정치 온존, 現 지도부는 장쩌민이 선택했지만 차기 지도부는 후진타오 사람들로 구성될 것

박승준
⊙ 60세.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저서: 《등소평 평전》 《중국이 재미있다》 《중국, 중국인 똑바로 보기》
    《격동의 외교비록 한국과 중국 100년》.
중국의 향후 5년간 발전방향을 결정한 중국공산당 제18기 3중전회.
  2014년 중국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갈까. 2012년 말 중국공산당 제18차 전당대회를 열어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와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의 양두(兩頭) 체제를 발족시킨 중국은 2013년 말인 11월 9일부터 12일까지는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를 개최해서 2014년에 중국이 보여줄 행보의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18기 3중전회는 <전면적으로 개혁을 심화하기 위한 약간의 중대 문제에 대한 결정>(이후 ‘결정’으로 칭함)을 통과시켰다. 당원 수가 8000만명이 넘는 중국공산당은 임기가 5년인 205명의 중앙위원과 171명의 중앙위 후보위원을 합해 376명(제18기의 경우)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를 매년 가을 한 차례씩 개최한다. 이 회의의 결정 내용은 그 다음 해 1년 동안 당과 정부를 끌고 갈 기본 방침이 되며, 다음 해 3월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에 해당)는 중앙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대부분 추인해서 정부의 정책 목표로 삼게 된다.
 
  1921년에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1978년에 개최된 제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實權)을 장악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이래 대체로 중앙위원회의 임기 5년 동안 7차례 정도의 중앙위원회를 규칙적으로 개최해 왔으며, 1중전회와 2중전회에서는 대체로 당과 정부의 인사를 결정하고, 3중전회에서는 이후 5년간 당과 정부를 끌고갈 기본 정책을 결정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오는 2017년까지 5년간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달려갈 목표를 정하기 위해 개최된 이번 18기 3중전회는 특히 당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지난 1978년 12월에 열린 11기 3중전회 이후 35년간 지속되어 온 개혁개방 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획기적인 회의가 될 것”, 다시 말해 ‘개혁개방 2.0의 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예고돼 중국 안팎의 관심이 집중된 회의였다.
 
 
  ‘中國夢’을 향하여
 
  18기 3중전회가 채택한 ‘결정’은 정치·경제·사회와 국방 정책을 망라한 모두 16개의 항목에 걸쳐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 가운데 ▲첫 번째 전면적인 개혁 심화의 의의와 지도사상 ▲세 번째 현대적인 시장 시스템의 완성 ▲일곱 번째 개방형 신(新)경제 체제의 구축 ▲여덟 번째 사회주의 민주정치 제도의 건설 ▲열다섯 번째 국방과 군대 개혁의 심화 등 5개 항목에서 이른바 ‘개혁개방 2.0’의 핵심 정책들이 언급됐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전면적인 개혁 심화의 의의와 지도사상’ 항목 가운데 ‘의의’ 부분에서는 “(1978년의) 11기 3중전회 이래 35년간 우리 당은 거대한 정치적 용기를 발휘해서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사회체제 등에 대해 부단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개혁개방은 현대 중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관건적인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도사상’ 부분에서는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건설(시장경제와 사회주의의 결합)이라는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이론(부자도 입당이 가능하게 한 장쩌민·江澤民의 이론), 과학발전관(지속가능한 성장을 제시한 후진타오·胡錦濤의 이론)을 지도사상으로 해서 앞날을 개척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전면적으로 개혁을 심화해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향해 달려가야 할 역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의 1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당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의 꿈’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중국이 앞으로 달려나가야 할 목표임을 제시한 것이다.
 
 
  ‘현대적인 市場 시스템의 완성’
 
  18기 3중전회가 채택한 ‘결정’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 번째 항목인 ‘현대적인 시장 시스템의 완성’일 것이다. ‘결정’은 앞으로 중국의 경제체제에서 “시장이 자원 배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하며,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게 하고,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간여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경제 시스템이 자원 배분도 시장의 기능에 따라, 가격 결정도 시장의 기능에 따라 이뤄지도록 한다면 앞으로 중국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거의 완전한 시장경제 체제로 가겠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결정’이 “물과 석유, 천연가스, 전력, 교통, 통신 등의 영역에서 가격 개혁을 추진해서 경쟁을 존중하고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범위는 공공(公共)사업과 공익(公益)사업 분야에 국한시킨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라든가 “농산물 가격 형성 시스템도 시장의 가격 형성 기능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힌 점 등은 그동안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구축을 해 온 것이 지난 1978년 이래 35년간의 개혁 작업이었다면, 앞으로의 개혁개방 2.0 시대에는 거의 완전한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 제시인 것이다.
 
  ‘결정’이 제시한 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완전한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은 베이징(北京)대학 경제학박사 출신인 리커창 총리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18기 3중전회 개막 이전에 리커창 총리가 의욕적으로 선언한 ‘상하이(上海) 자유무역시험지역’이 바로 그 시험장이 될 예정이다. 리커창 총리가 주도할 상하이 자유무역시험지역은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거의 완전한 시장경제 시스템이 가동하는 시험 지역이 될 전망이며, 이 지역 내에서는 위안(元)화의 환율도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되도록 할 것이다. 이자율도 마찬가지로 시장 기능에 따라 높낮이가 결정되고, 외국인들의 송금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데다가 중국 당국의 특정 인터넷 차단도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으로 조성될 전망이다. 이같은 자유무역시험지역 설치 계획은 ‘결정’의 일곱 번째 항목인 ‘개방형 신(新)경제 체제의 구축’ 부분에서도 확인됐다.
 
 
  强軍양성 다짐
 
  ‘결정’의 여덟 번째 부분인 ‘사회주의 민주정치 제도의 건설’ 항목에서는 ‘사회주의 민주정치’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정치개혁 분야에서는 전임자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이나, 전전임 장쩌민 시대와 마찬가지로 말로는 ‘개혁’이라고 하나 실질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정치체제 고수에 그 목표가 맞춰져 있는 것임을 비교적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열다섯 번째 항목인 ‘국방과 군대 개혁의 심화’에서 ‘결정’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략 목표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목적의식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취임 후 군에 대해 밝힌 “전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전쟁을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能打仗 打勝仗)”는 지시를 앞세운 국방과 군대의 개혁 심화 방안은 “새로운 형세 아래에서 강군(强軍)의 양성을 목표로 하고, 국방과 군대 건설 발전에 돌출한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국방 건설 방침은 새로운 군사이론의 발전, 군사전략에 대한 당의 지도 강화, 새로운 시기 군사전략의 완성, 중국 특유의 현대 군사역량 구축 등 분야에 대해 언급됐다.
 
  전체 분량이 2만여 자에 달하는 〈전면적으로 개혁을 심화하기 위한 약간의 중대 문제에 대한 결정〉은 다음과 같은 격문으로 끝을 맺었다.
 
  “전당(全黨)의 동지들은 시진핑 동지를 당총서기로 하는 당중앙의 주위에 긴밀하게 단결해서 진취적인 정신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개혁개방의 위대한 사업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중진국 수준의 사회) 건설을 위해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가 새로운 승리를 거두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자!”
 
  이번 18기 3중전회는 ‘당중앙 개혁 심화 영도소조(領導小組·Leading Small Group)’와 ‘국가안전위원회’라는 두 개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냈다. ‘결정’에 따르면 ‘개혁영도소조’는 앞으로 중앙과 지방에서 ‘결정’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개혁개방 2.0 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한 인재의 양성과 선발해서 교육하고 평가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천하의 영재를 선발해서 체제의 벽과 신분적 장애를 넘어설 인재양성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결정’은 밝히고 있다.
 
  개혁심화 영도소조와 함께 앞으로 시진핑 체제에서 외교와 국방을 전담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가안전위원회(CNSC·China National Security Council)’가 설립될 것이라고 18기 3중전회의 대회 공보(公報)가 밝혔다. 대회의 폐막과 동시에 발표된 공보는 “사회 발전의 활력을 증강하고, 사회의 치리(治理) 수준을 제고하며, 국가의 안전을 수호하고, 인민들의 안거낙업(安居樂業)을 확보하며, 사회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해서 국가의 안전체제와 국가안전전략을 완성하고, 국가안전을 확보한다”고 국가안전위원회의 설립 이유를 밝혔다. 국제사회는 중국은 일본이 18기 3중전회 개최 직전에 국가안보위원회를 설립한 데 자극받아 3중전회를 통해 국가안전위원회의 설립을 선포한 것으로 해석했다.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국가안전위원회의 조직멤버 구성과 기능에 대해 ‘일구양패(一構兩牌)’라는 말로 성격 규정을 하고 있다. 중국의 외교와 안보를 총괄하기 위해 1981년에 만들어진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와 2000년에 만들어진 ‘중앙국가안전영도소조’의 2개 기구를 통합해서 하나로 만든 것이 국가안전위원회라는 것이다.
 
  국가안전위원회 구성원으로는 “국가주석과 부주석을 각각 조장과 부조장으로 하고, 대외 관계에 관여하는 국무원 부총리와 국무위원들, 외교부·국방부·공안부·국가안전부·상무부·홍콩마카오판공실·화교판공실과 신문판공실의 책임자들, 그리고 당 선전부와 중앙연락부 부장, 군부에서는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의 고급 장성들, 또한 국방과 외교분야의 정보기구, 무장경찰 책임자들이 모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외교문제를 전담하던 외사영도소조가 담당하지 못하던 국방과 경제, 공안 등 분야의 최고 책임자까지 모두 포함시켜서 명실공히 ‘하나의 주먹(一個拳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내정과 군사, 외교를 모두 관할하고, 대내적 사회치리(治理)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국가이익을 보호할 부서 초월 기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和平發展’에서 ‘和平崛起’로
 
1979년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은 카우보이 모자를 써 보이며 개혁개방 의지를 과시했다.
  1978년 말에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전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허황된 세계전략 ‘초영간미(超英赶美·조속한 시간 내에 영국의 실력을 넘어서고,미국과 한판 겨룬다)’를 완전히 폐기하고, ‘화평발전(和平發展)’, 다시 말해 중국이 당분간 전쟁에 나설 일은 없으며,오로지 평화적으로 경제발전에만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450만명이 넘던 인민해방군의 숫자를 100만명 이상 감축하고, 자신이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미소를 보이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상하이(上海) 황푸(黃浦)강 동쪽 삼각주 지역에는 동방명주(東方明珠) 타워를 포함한 고층빌딩 밀집지역을 건설해서 전 세계에 경제건설의 의지를 과시하는 쇼룸 전략도 보여주었다. 중국은 전 세계로부터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하는 경쟁에서 30년 넘게 1위 국가의 자리를 지키는 놀라운 기록도 보여주었고, 연평균 경제성장률 10%가 넘는 고속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덩샤오핑의 화평발전 전략은 후임자 장쩌민 총서기(1989~2002)도 그대로 계승했다. 중국은 외부세계에 오로지 경제발전 우선주의로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2년 당총서기 직을 장쩌민으로부터 넘겨받은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의 ‘화평발전’ 전략을 살짝 고쳐 ‘화평굴기(和平崛起·Peaceful Rise)’라는 말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과 유럽,일본이 중국을 다른 눈으로 고쳐 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중국이 더 이상 ‘평화롭게 발전만 하는 국가’가 아니라 무언가 목적의식을 갖고 일어선다는 ‘화평굴기’라는 세계전략을 선보이자 미국과 유럽은 중국에 대해 경계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2010년 11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하와이 이스트웨스트센터 연설을 통해 “우리 미국은 지나간 20세기에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많은 일을 했으나, 앞으로 21세기에는 태평양 건너 서태평양 국가인 일본·한국·필리핀·태국·호주와 협력해서 강력한 자유시장경제 지대를 건설할 것이며,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규칙을 지키고 인권을 존중하는지를 지켜보면서 할 말을 할 것”이라는 정책의 대전환을 발표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新型大國關係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8000만 중국공산당원을 이끄는 당총서기에 선출되고,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14억 중국인민을 대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은 중국의 국가목표가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며, 대외정책으로는 함께 G2로 불리는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국제문제에 대처하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구축한다는 전략을 밝혔다. 그동안은 제3세계에 속한 발전도상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지만, 지난 35년간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세계 경제무대에서 차지한 부분 만큼 정치적으로도 제 자리를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미국의 그런 대외 정책 변화와 대중국 정책 변화를 알아차린 일본은 재빨리 중국과 날을 세워 대립하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주적(主敵)이던 소련을 겨냥해서 홋카이도(北海道)에 배치돼 있던 최정예 전차 사단을 남쪽의 오키나와 일원으로 이동 배치했다.
 
  그런 움직임을 보고 있던 중국은 더욱 신경이 곤두선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침내 중국은 2013년 11월 23일 일본을 겨냥한 동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했다. 최근 국내 언론들이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유소작위(有所作爲)라는 외교전략을 버리고 주동작위(主動作爲)라는 적극적인 외교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흐름에 대한 해석이었다.
 
  국내 언론들은 연초에 발행된 중국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世界知識)출판사가 발행하는 외교전문 주간 《세계지식》을 인용해서 “중국 외교의 흐름이 도광양회에서 주동작위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韜光養晦’에서 ‘主動作爲’로?
 
  그러나 12월 5일 현재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의 외교정책의 기조가 ‘도광양회 유소작위’를 탈피해서 ‘주동작위’를 할 것이라고 명백히 언급한 기록은 없다. 다만 시진핑 주석은 2013년 4월 6일 중국 남부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이라는 국제회의에 나가 자신의 대전략인 신형대국관계를 설명하면서,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변국 외교에 있어서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동(主動)해 나갈 것이며,겸허히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지역의 안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3개경가(三個更加·세 가지의 더하기)’ 원칙을 밝혔다.
 
  중국의 외교전략이 ‘도광양회’를 버리고 ‘주동작위’로 전환됐다는 우리 언론 보도를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는 여과없이 전달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 산하 세계지식 출판사가 발행하는 주간 《세계지식》 이외에는 아직 어떤 관영매체도 시진핑 주석이 ‘도광양회’를 버리고 ‘주동작위’로 전환했다는 보도는 하지 않고 있다.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조용히 실력을 기르고 할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하라”는 ‘도광양회 유소작위’를 말할 때 설정된 시점은 2020년이었다. 경제발전을 꾸준히 해 나가면 2020년에는 중산층이 늘어나 중진국 수준에 이르는 샤오캉(小康) 상태에 이를 것이며,최소한 그때까지는 ‘도광양회’를 하라는 것이 덩샤오핑의 지시였다.
 
  덩샤오핑에게 개혁개방 정책의 채택을 건의한 시중쉰(習仲勳) 전 경제부총리의 아들인 시진핑이 과연 덩샤오핑이 설정한 국가목표와 설정시한을 무시한 채 ‘도광양회’를 버리고 ‘주동작위’를 선언할 것인가는 현재로서는 분명치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시진핑이 추구하고 있는 ‘신형대국관계’라는 개념이 이미 ‘도광양회’의 범주를 벗어난 개념이기는 하다. 그러나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도광양회’에서 탈피하고 ‘주동작위’라는 개념을 외교전략의 주조(主潮)로 채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시진핑의 ‘신형대국관계’는 오히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유소작위’ 가운데 ‘유소작위’에 해당하는 전략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본다.
 
 
  중국 ‘大외교’의 5개 키워드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013년에 중국이 보여준 ‘대외교(大外交)’와 새로운 행보(新舞步)가 ‘중국의 꿈’, ‘신형대국관계’, ‘주변에 중점’, ‘운명공동체’, ‘두 개의 절대 부정(決不·절대 부정·否定)’ 등 다섯 개의 키워드(keyword)로 상징된다고 정리했다.
 
  《인민일보》는 중국 외교의 첫 번째 키워드인 ‘중국의 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꿈인 동시에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화롭게 발전하는 외부환경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6월) 오바마 미 대통령과 만났을 때 중국의 꿈이 바로 세계의 꿈이라는 해석을 해 주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공동발전, 개방발전, 창신(創新)발전, 연동(聯動)발전을 도모하자고 촉구했다”고 아울러 전했다.
 
  이와 함께 《인민일보》는 “리커창 총리는 제8회 동아시아 정상회의 때는 ‘젓가락 한 개로는 음식을 집어먹지 못하며, 두 개의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해야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교훈은 서로가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고 전했다.
 
  시진핑 당총서기가 2012년 11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목표로 하는 중국의 꿈’을 제시한 이래, ‘중국의 꿈’이 국제사회에서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물타기를 시도한 설명이었다.
 
  《인민일보》가 제시한 중국외교의 두 번째 키워드는 ‘신형대국관계’였다. 《인민일보》는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楊潔篪)의 말을 인용해서 “중국이 구축하려는 ‘신형대국관계’란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들이 제시한 개념으로 중국과 대국과의 관계가 과거의 대항과 제로섬(零和·zero sum) 게임이나 도박에서 벗어나 서로 윈-윈(win-win)하겠다는 개념”이라고 풀이했다. 《인민일보》는 시진핑이 오바마와 만났을 때도 “중국과 미국의 신형대국관계란 첫째 서로 충돌하지 말고, 서로 대항하지 말 것, 둘째는 상호 존중, 셋째는 서로 협력하는 윈-윈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진핑이 제시한 ‘신형대국관계’란 지난 35년 동안 이룩한 빠른 경제발전의 결과 경제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2위의 지위를 구축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아직 제 위상을 찾지 못해 선포된 것이며,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이른바 ‘대국’들이 서로간의 우월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양국 관계 위주로 국제사회를 운영해 나갈 때 중소 규모 국가들의 이익이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중진국들이 느끼는 체감(體感)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은 실제로 당총서기나 국가주석 취임 후 첫 방문국을 북한이나 한국·일본과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에서 시작하던 관행을 깨고 지난 3월 국가주석 취임 후 러시아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다음으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5개국) 회의가 열리는 남아공을 방문했고, 이어서 인도·독일과 미국을 방문하는 이른바 ‘대국’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탄자니아·콩고공화국·스위스·코스타리카·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소국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경유국으로서의 의미 이상은 두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운명공동체’ 강조
 
  특히 후진타오 전임 국가주석을 비롯해서 장쩌민, 자오쯔양(趙紫陽) 등 전임 국가주석과 당총서기들이 취임 후 평양을 먼저 방문하던 관행도 깨버렸다. 이처럼 중국과 북한 관계가 원만하지 않게 된 것이 지난 12월 8일 이뤄진 북한내의 대표적인 친중파(親中派) 장성택(張成澤)의 실각과 처형 구실의 하나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그리는 신형대국관계의 큰 그림이 엉뚱하게도 북한 정변에 원인을 제공하는 요인의 하나가 됐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민일보》는 새로운 중국 외교의 세 번째 키워드로 ‘중점은 주변에’라는 말을 제시했지만, 중점을 주변에 둔다는 말과 신형대국관계의 구축은 아무래도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고, 시진핑이 펼치는 신형대국관계는 미국·러시아·인도 등 강대국들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임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할 것이다.
 
  《인민일보》가 제시한 새로운 중국 외교의 네 번째 키워드는 ‘운명공동체’이다. 이 말은 시진핑이 지난 3월 25일 탄자니아를 방문했을 때 “중국과 아프리카는 늘 운명공동체였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중국 외교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고 《인민일보》는 키워드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인민일보》는 시진핑 시대에 중국 외교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발전도상국가들을 ‘진(眞)·실(實)·친(親)·성(誠)’ 네 글자로 대표되는 정신으로 대할 것이며, “형제자매들을 대하듯이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외교의 키워드라고 《인민일보》가 제시한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과연 ‘신형대국관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관찰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절대 부정’
 
  새로운 중국 외교를 잘 표현한다는 이유로 선정된 다섯 번째 키워드는 ‘두 개의 절대 부정(兩個決不)’이다.
 
  시진핑 당총서기가 2013년 1월 중국공산당 정치국 집단학습을 통해 강조한 말 가운데 “우리는 화평발전의 길을 걸어가겠지만, 결코 우리의 정당한 이익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결코 국가의 핵심이익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두 개의 절대 부정’, 다시 말해 정당한 이익이나 핵심이익을 결코 방치하거나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2013년 11월 23일 동중국해상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일이나, 이와 함께 우리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 이어도와, 일본과의 분쟁지역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킴으로써 중국에 정당한 이익이나 핵심이익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호(中國號)의 한반도 정책과 관련, 과연 ‘신형대국관계’와 ‘주변국관계’의 함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관건일 것이다.
 
  이와 관련, 쑤샤오후이(蘇曉暉) 중국국제문제연구소 국제전략연구부 부주임은 2013년 12월 12일 《인민일보》 해외판에 기고한 ‘2013년은 중국의 주변 외교에 극히 중요했던 한 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지난 10월 말 중국정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64년 만에 최초의 제1차 주변외교공작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새로운 지도부가 얼마나 우리의 주변국들을 중시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모두 7차례에 걸쳐 14개 국가를 방문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인 7개국이 주변국들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시진핑과 리커창 두 지도자가 방문했다는 주변국들이 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신형대국관계와 주변국 중시 외교는 양립이 쉽지 않은 개념으로, 흔한 우리의 속담으로 ‘두 마리 토끼 잡기’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하겠다.
 
  중국에서 유일한 비판적 언론으로 인정받는 《남방일보(南方日報)》는 2013년 10월 28일 ‘중국의 주변외교’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중국의 주변국 외교는 총체적으로는 안정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우발적인 사건을 피할 수 없고, 모순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방일보》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궁리(宮力) 소장의 말을 인용해서 “중국의 주변외교는 최근 적극적이면서도 유소작위의 정신에 따라 해양 권익과 국경선 문제를 둘러싸고 모순과 의견차를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元老정치는 살아 있다
 
2012년 11월 8일 중국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뒤로 걸어가고 있다.
  요즘 중국공산당에는 1980년대에 중국 정치를 배후 조종하던 원로(元老)정치, 수렴청정의 훈수정치가 살아있을까? 그렇다. 요즘에도 중국공산당에는 원로정치,훈수정치가 살아있다. 시진핑 현 당총서기의 전임자인 후진타오(71), 후진타오의 전임자인 장쩌민(87)과, 이 두 실력자들과 함께 당과 정부를 주물렀던 원자바오(溫家寶),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의 원로들이 시퍼렇게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2년 11월에 치러진 제18차 당대회(全國代表大會) 때 이들 원로들이 인민대회당에 줄을 지어 입장해서 시진핑과 리커창 체제가 출범하는 과정을 박수로 ‘추인(追認)’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보스인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이후에도 대장정에 참여했던 혁명원로들이 세상을 떠나면 시진핑, 리커창 체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조문을 할 때 바로 뒤이어 나오거나 조화(弔花)를 세워 두어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임을 과시해 왔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로 대표되는 원로정치와 훈수정치의 힘은 그저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다.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회에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25명의 정치국원의 명단을 결정한 것은 시진핑과 리커창이 아니라 장쩌민과 후진타오였다.
 
  2012년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7명의 핵심 인물 가운데 시진핑을 비롯해서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국회의장격),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류윈산(劉云山) 서기처 서기, 왕치산(王岐山) 기율검사위원회 주임, 장가오리(張高麗) 등 6명은 모두 장쩌민이 고른 인물들이다. 리커창 총리만 유일하게 후진타오가 발탁해서 상무위원회에 진입시킨 인물이다. 정치국 상무위원 선정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6 대 1의 권력 배분을 한 셈이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거래
 
  그렇다면 2012년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는 장쩌민과의 권력투쟁에서 완전히 밀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점은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제외한 나머지 18명의 정치국원들과 앞으로 5년 뒤인 2017년 가을에 열릴 제19차 당대회에서 선출할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25명 안팎의 정치국원들의 리스트를 나열해 보면 알 수 있다. 2012년 당대회에서 장쩌민은 현재를 택하고 후진타오는 5년 뒤의 미래를 장악하는 형태로, 다시 말해 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당내 권력을 분점함으로써 1 대 1로 비기는 윈-윈(win-win)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제외한 나머지 18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장쩌민의 사람들과 후진타오의 사람들을 나누어 보면 마카이(馬凱) 부총리, 왕후닝(王滬寧), 쉬치량(許其亮) 중앙군사위 부주석, 쑨정차이(孫政才) 충칭(重慶)시 당서기, 장춘셴(張春賢) 신장위구르자치구 성장, 멍젠주(盟建柱) 정법위원회 서기, 한정(韓正) 상하이시 당서기 등 9명이 장쩌민의 사람들이며, 류옌둥(劉延東·여) 부총리, 류치바오(劉奇葆) 당선전부장, 쑨춘란(孫春蘭·여) 톈진(天津)시 당서기, 리젠궈(李建國) 전인대 부위원장,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 왕양(汪洋) 부총리, 판창룽(范長龍) 중앙군사위 부주석,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당서기, 궈진룽(郭金龍) 베이징(北京)시 당서기 등 9명은 후진타오의 사람들인 것으로 분류된다.
 
  2017년 제19차 당대회 때는 현재의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진핑과 리커창 두 사람만 남고, 5명은 퇴임하게 된다.
 
  이는 장쩌민의 책사 쩡칭훙(曾慶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장쩌민 시대에 확립된 당인사의 제1원칙인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원칙, 다시 말해 해당 연도에 68세 이상이면 더 이상 당과 정부의 요직에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못하고 최소한 당해 연도에 67세 이하여야 한다는 인사원칙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7년에 연령이 68세 이상에 이르는 장더장, 위정성, 류윈산, 왕치산, 장가오리 등 5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은 재선출되지 못하고 나머지 5명의 대부분은 후진타오의 사람들로 채워질 전망이다.
 
  현재로서 5년 뒤에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후진타오 계열 인물들은 리위안차오, 왕양, 후춘화, 류치바오, 쑨춘란 등이며 장쩌민 계열 인물들 가운데에는 자오러지(趙樂際) 당조직부장, 리잔수(栗戰書) 당판공청 서기, 왕후닝, 한정, 쉬치량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의 인물들이 후진타오 계열 인물들보다 낮은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제2원로정치는 덩샤오핑에게서 유래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이처럼 덩샤오핑 시대 이래 제2의 원로정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근거는 덩샤오핑에 의해 마련됐다. 1986년의 대학가 시위 사태와 1989년의 천안문 사태 와중에서 오른팔이던 후야오방(胡耀邦)과 왼팔이던 자오쯔양(趙紫陽)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덩샤오핑은 자신의 개혁개방 정책의 지속을 위해서는 경제 수도(首都) 상하이(上海)의 당서기 자리에 있던 장쩌민을 중앙으로 불러올릴 수밖에 없었다.
 
  덩샤오핑은 1989년 6월 장쩌민에게 당권(黨權)을 물려주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것은 “당신의 후임은 후진타오라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티베트 당서기였던 후진타오는 군인 출신이 아니면서도 티베트인들의 무력(武力)시위를 현장지휘하면서 효과적으로 진압한 과정이 덩샤오핑에게 보고됐다. 덩샤오핑은 후진타오를 중국공산당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인물로 점찍어 두었던 것이다.
 
  1989년 당권을 손에 쥔 장쩌민은 2002년 당권을 덩샤오핑과의 약속에 따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었다. 이때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자신에게 한 것처럼 후진타오에게 “당신의 후임은 내가 결정할 것”이라는 다짐을 받아 두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것이 시진핑이라는 카드였다. 장쩌민은 10년 전의 약속에 따라 지난해 18차 당대회에서 탄생한 제5세대 지도부의 라인업을 대부분 결정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5년 뒤 혹은 10년 뒤인 2022년에 탄생할 제6세대 지도부는 대부분 후진타오의 사람들로 채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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