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 民主化 등 전통적 이슈에 익숙, 사회진출 후 世界化라는 새로운 이슈에 직면한 不條理한
세대
⊙ 근현대사상 최초로 ‘도덕’으로 무장한 세대, 나쁘게 얘기하면 할 줄 아는 건 ‘반대’밖에 없는 세대
⊙ 脫근대적 상황 속에서 前근대적 역사문제·영토문제 풀어나갈 수 있는 복합적 능력 필요
朴仁煇
⊙ 45세.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美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한미교류협회 연구위원 역임.
現 통일부·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세대
⊙ 근현대사상 최초로 ‘도덕’으로 무장한 세대, 나쁘게 얘기하면 할 줄 아는 건 ‘반대’밖에 없는 세대
⊙ 脫근대적 상황 속에서 前근대적 역사문제·영토문제 풀어나갈 수 있는 복합적 능력 필요
朴仁煇
⊙ 45세.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美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한미교류협회 연구위원 역임.
現 통일부·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한국의 4050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바탕 위에서 세계화를 체험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동북아(東北亞)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의 군비(軍備) 증강과 일본의 우경화(右傾化)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더니, 최근 들어서는 영토분쟁이라는 정서적으로 휘발성이 매우 강한 사안을 놓고서 한·중·일(韓中日) 3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독도 문제 등에 관한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스탠스는 영토분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동일한 외교분쟁이 반복될 경우,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제사회는 영토분쟁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유리할 게 없다.
현재 동북아 역내(域內) 국가들 간에는 포괄적인 ‘신뢰의 실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 국가지도자들의 세대교체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개 4050세대로 통칭되는 한국의 새로운 리더십은 동북아 지역을 둘러싼 과거사를 이해하는 방식, 식민지 및 한국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전후(戰後)세대로서의 정체성(正體性), 산업화와 민주화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골고루 누린 후 지도층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세계관 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지금과 같은 한·중·일 관계의 총체적 난국에 대처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를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동북아라는 지리적 공간의 의미와 ‘동북아적 시간’과 ‘세계화적(世界化的) 시간’ 사이의 시차(時差)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학술적인 용어로 혹은 일상적인 용어로 ‘동북아’라는 표현을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정한 공간적 표현을 개념화하는 작업은, 거기에 따른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 역학(力學)관계와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지리적 공간을 설정하고 혹은 해체하는가의 문제는 개별 국가의 국가이익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동북아’라는 개념은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하는 지리적인 설정을 전제로, 미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지정학적(地政學的)’ 개념이다.
우리는 1990년대 이후 지난 20년 가까이 단순히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니라 ‘세계 중심 속의 한국’이 되기 위해 숨차게 달려왔다.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사 문제와 전근대(前近代)에서 유래하는 영토문제를 가지고 주변국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화 20년의 성과가 가시화되어야 할 시점에서 역사논쟁으로의 회귀(回歸)라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이 함께 전제되지 않는 한 4050세대의 등장과 한·중·일 관계 간의 상관관계는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지역구) 평균연령 54세
비교정치 전문가들에 의하면, 2012년 현재 전(全) 세계적으로 국가리더십의 교체에 준하는 선거를 경험했거나 혹은 선거를 앞두고 있는 나라는 모두 57개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 중 하나다.
세계에 약 200여 개 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대략 4년마다 임기를 교체한다고 가정할 때 57개라는 숫자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동(中東)·아프리카 등 적잖은 국가에서 정기적인 선거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57개라는 숫자는 제법 많은 숫자다. 더구나 내년 2013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국가에서 리더십을 교체하는 선거가 행해진다고 한다. 전 세계 차원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물론 동북아 국가 간 갈등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지난 4·11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4세다. 지난 18대 국회 때와 큰 차이 없다. 17대 국회 이후 당선자 평균연령은 계속 5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 대다수는 1950년대 말과 1960년을 전후로 태어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12월 대선(大選)의 주요 후보자의 경우,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후보가 1952년생, 문재인(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가 1953년생, 그리고 안철수(安哲秀) 무소속 후보가 1962년생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베이비붐 직전에 태어났고, 안철수 후보는 산업화의 서막(序幕)이 막 오르던 시점에 태어났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한국전쟁 직후의 전쟁의 상처를 어린 눈으로 일부 목격했을 수는 있지만, 세 후보 모두 전후(戰後)세대다. 산업화 및 민주화의 결실이 오늘의 세 후보를 가능케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판검사로 대표되는 법조(法曹)권력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를 포함한 특목고(特目高) 출신 판검사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미 수년 전부터 가장 많은 판검사를 배출하고 있는 고교는 외고 중 가장 성적이 우수하다는 대원외국어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원외고 설립연도가 1984년이니까, 1960년대 중·후반에 출생한 인재들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리더로 부상(浮上)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복합적 문제에 직면한 4050세대
이들 4050세대의 역사관을 한마디로 분석,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들 세대가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한국사회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역사관을 유추(類推)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적어도 수백 년에 걸친 근대 주권의 역사를 경험했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과 같은 지역통합 및 공동체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전쟁, 파시즘의 출현,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통해, 유럽 국가들은 특정 국가가 유럽을 지배할 수 없으며 절대주권과 공동체적 삶이 조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평화와 복지가 불가능한 ‘공존적 타협’에 이르게 됐다.
반면 동북아(혹은 동아시아로 확대하더라도)의 경우, 근대적 주권국가 개념이 수용된 것은 불과 지난 세기의 일이었다. 그나마 역내 국가들 간에 근대 주권 개념에 입각한 보편적인 의미의 국제관계가 시작된 것은 1945년 이후부터였다.
1945년 이후 한·중·일 간 외교관계를 보면, 과거 유럽이 경험한 근대 주권의 역사와 어느 정도 닮은 측면이 있다. 독도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의식 속에는 20세기 초·중반 동북아 지역의 ‘근대 주권 관계 정착기’에 겪었던 민족적 수난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을 것이다. 동(同) 시대를 함께 경험한 각계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이들의 정치 리더십을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전 세대에게 요구되었던 리더십과 역사인식 사이의 상관관계는 비록 고통스럽기는 해도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이었다. 반면에 앞으로 4050세대 지도자들 앞에는 세계화 현상과 동북아적 특수성 간의 중층적(重層的) 결합, 전근대-근대-탈(脫)근대가 공존하는 사안의 복합성, 동북아 역내의 수많은 네트워크적 교류현상, 개인 정체성의 탈국가화 현상 등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 있다.
이는 우리 4050세대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몰(沒)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국가이익에 대한 의지가 박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탈냉전(脫冷戰) 이후 20년의 경험을 토대로 소위 ‘세계화 2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2012년의 시점에서, 4050세대 지도자들에게는 결국 과거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능력과 세계관, 사회적 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不條理한 세대
한국 4050세대의 특징은 ‘산업화로 인한 풍요’와 ‘민주화로 인한 자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압축된다. 이들은 일찍부터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체험한 세대다. 이들은 1980년대 민주화 열기를 경험하면서 대학을 다녔고, 88올림픽과 냉전 종식을 전후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세계화를 절감했다.
이들 4050세대 리더들에게서는 안타까운 부조리(不條理)가 발견된다. 대개의 경우, 유년기와 대학시절 동안 이들을 지배했던 세계관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방식, 민주화를 성취하는 방법,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는 논리, 민주화를 둘러싼 국민들과의 교감방식 등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이슈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0년 전후는 국내외적으로 글로벌 경제통합, 국경 없는 경제활동의 일상화, 다양한 이익에 집착하는 개인의 등장, 탈민족적 역사인식 등 전혀 새로운 이슈들이 제기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어느 사회 원로의 표현을 빌리면, 좋게 얘기해서 4050세대의 등장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도덕’으로 무장한 세대의 사회 진출을 의미하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이들은 할 줄 아는 게 ‘반대’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4050세대 리더들의 대중(對中)·대일(對日)·대미(對美) 관계에 대한 인식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17대 국회 초, 한 여론조사기관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향후 우리의 국가이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국가를 꼽으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17대 국회는 그 이전까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이 처음으로 50대 초반으로 젊어진 소위 ‘신세대’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였다.
당시 약 60%의 의원이 우리 국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그런 대답이 나온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중국을 일종의 미국의 대체재(代替財)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1882년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미관계는 100여 년 남짓한 ‘근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중관계는 그렇지 않다. 수천 년에 달하는 한중관계 속에는 미제(未濟)로 남아 있는 전근대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것만 봐도 중국과 미국은 직접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중관계에 임하는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는 그만큼 정확한 역사인식, 엄격하고 철저한 역사자료에 의거한 논리적 무장, 전근대적 갈등과 미래지향적인 이익 공유(共有) 사이의 조화 등 뛰어난 능력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한일관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직 처리해야 할 과거사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의 우경화 문제에도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작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이 대외관계에서 관용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韓美, 韓中, 韓日관계의 특징
우리는 지난 20년간 근거 없는 낙관론과 설익은 논리 위에서 세계화시대를 달려왔다. 한쪽에는 주변 4강에 둘러싸이고 부존자원(賦存資源)이 전무한 우리는 동북아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며 무조건 세계경제권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한쪽에는 우리가 잘만하면 미·중·일(美中日)과 다 잘 지낼 수 있고 이익도 잘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결과 적잖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독도 문제의 악화, 과거사 문제의 미해결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 4050세대 지도자들의 총체적인 혜안의 부족이 지금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례로 독도 문제의 경우,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實效的)으로 지배하고 있고 국제법적 논쟁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1945년 이전에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의 영토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4050세대 지도자들은 한국의 세계화 및 동북아 통합과 병행(竝行) 혹은 멀티트랙 전략 속에서 이러한 일들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
4050세대 지도자들은 사안별로는 한일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양국관계 일반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일 양국의 협력 없이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동북아 질서의 유지도, 한국의 국가이익 실현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부 4050세대 전문가들은 최근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적 긴장으로 인해 한중·한일 관계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여기서 한미·한중·한일 관계를 비교해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1953년 이후 한미관계를 보면, 정부를 중심으로 한 공적(公的) 관계 발전이 선행(先行)하고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와 같은 사적(私的) 관계의 발전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에 한중관계의 경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경제를 축(軸)으로 하는 사적 영역이 먼저 발전하고 공적 관계 발전이 그 뒤를 따랐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한중관계에 어느 정도의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사적 영역에서의 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일관계의 경우, 한미관계보다는 한중관계를 더 닮은 것으로 보인다.
‘東北亞’라는 지역正體性 요구돼
우리 외교는 양자관계에 익숙해져 있다.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다자(多者)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최근에는 G20정상회의와 핵(核)안보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다자외교의 틀 안에서 중견국으로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차원에서는 한중·한일·한미 등 양자외교가 중심이 되고 있다. 수천 년에 걸친 한·중·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가 함께 동북아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중일사무국이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한·중·일 세 나라가 안보를 확보하고, 경제이익을 극대화하며, 보다 풍요로운 사회문화 활동을 전개하려면, ‘동북아’라는 개념이 이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은 미국인을 만났을 때, 서유럽에서 왔는지, 남유럽에서 왔는지 하는 질문을 받는다. 개별 국가의 정체성보다는 지역 단위의 정체성이 우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중국인·일본인들은 ‘동북아에서 왔느냐’는 식의 질문을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왔느냐, 혹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동북아인’의 모습 속에서는 동북아는 보이지 않고 개별 국가의 정체성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바탕으로 대학을 다니고 사회적 훈련을 쌓은 한국의 4050세대 지도자들은 이전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도덕적 기준으로 무장되어 있고, 세계무대로의 질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장·복지·평화 등과 같은 상충(相衝)하는 가치관들 사이에서 접점(接點)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는 탈근대적 성격의 문제들이 양산되는 현실 속에서 정확한 역사인식과 정교한 세계관을 수립하려는 노력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세계 어디도 이웃 나라들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경우는 드물다. 영국과 프랑스는 근대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갈등을 겪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와 독일 간의 길고 긴 역사적 갈등을 잘 보여준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과거의 유산에서 비롯된 갈등들을 풀지 못해 분쟁을 겪고 있고, 그 결과 지금도 새로운 국가가 생겨나고 있다.
한중관계, 한일관계, 한·중·일 관계는 역사인식과 영토문제라는 인화성(引火性)이 매우 강한 문제들을 안고 있어서 풀어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문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다 있었다. 네트워크적인 외교환경의 출현을 직시하고, 한·중·일 각국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비교분석을 토대로, 우리의 국가이익과 동북아적 이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혜안이 한국을 이끄는 4050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동북아 역내(域內) 국가들 간에는 포괄적인 ‘신뢰의 실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 국가지도자들의 세대교체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개 4050세대로 통칭되는 한국의 새로운 리더십은 동북아 지역을 둘러싼 과거사를 이해하는 방식, 식민지 및 한국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전후(戰後)세대로서의 정체성(正體性), 산업화와 민주화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골고루 누린 후 지도층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세계관 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지금과 같은 한·중·일 관계의 총체적 난국에 대처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를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동북아라는 지리적 공간의 의미와 ‘동북아적 시간’과 ‘세계화적(世界化的) 시간’ 사이의 시차(時差)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학술적인 용어로 혹은 일상적인 용어로 ‘동북아’라는 표현을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정한 공간적 표현을 개념화하는 작업은, 거기에 따른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 역학(力學)관계와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지리적 공간을 설정하고 혹은 해체하는가의 문제는 개별 국가의 국가이익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동북아’라는 개념은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하는 지리적인 설정을 전제로, 미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지정학적(地政學的)’ 개념이다.
우리는 1990년대 이후 지난 20년 가까이 단순히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니라 ‘세계 중심 속의 한국’이 되기 위해 숨차게 달려왔다.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사 문제와 전근대(前近代)에서 유래하는 영토문제를 가지고 주변국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화 20년의 성과가 가시화되어야 할 시점에서 역사논쟁으로의 회귀(回歸)라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이 함께 전제되지 않는 한 4050세대의 등장과 한·중·일 관계 간의 상관관계는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지역구) 평균연령 5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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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 국회 개원을 앞둔 2004년 5월 13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187명의 초선(初選) 당선자들. 이때부터 국회의원(지역구)들의 평균연령은 50대 초반으로 내려갔다. |
세계에 약 200여 개 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대략 4년마다 임기를 교체한다고 가정할 때 57개라는 숫자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동(中東)·아프리카 등 적잖은 국가에서 정기적인 선거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57개라는 숫자는 제법 많은 숫자다. 더구나 내년 2013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국가에서 리더십을 교체하는 선거가 행해진다고 한다. 전 세계 차원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물론 동북아 국가 간 갈등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지난 4·11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4세다. 지난 18대 국회 때와 큰 차이 없다. 17대 국회 이후 당선자 평균연령은 계속 5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 대다수는 1950년대 말과 1960년을 전후로 태어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12월 대선(大選)의 주요 후보자의 경우,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후보가 1952년생, 문재인(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가 1953년생, 그리고 안철수(安哲秀) 무소속 후보가 1962년생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베이비붐 직전에 태어났고, 안철수 후보는 산업화의 서막(序幕)이 막 오르던 시점에 태어났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한국전쟁 직후의 전쟁의 상처를 어린 눈으로 일부 목격했을 수는 있지만, 세 후보 모두 전후(戰後)세대다. 산업화 및 민주화의 결실이 오늘의 세 후보를 가능케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판검사로 대표되는 법조(法曹)권력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를 포함한 특목고(特目高) 출신 판검사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미 수년 전부터 가장 많은 판검사를 배출하고 있는 고교는 외고 중 가장 성적이 우수하다는 대원외국어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원외고 설립연도가 1984년이니까, 1960년대 중·후반에 출생한 인재들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리더로 부상(浮上)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복합적 문제에 직면한 4050세대
이들 4050세대의 역사관을 한마디로 분석,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들 세대가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한국사회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역사관을 유추(類推)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적어도 수백 년에 걸친 근대 주권의 역사를 경험했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지금과 같은 지역통합 및 공동체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전쟁, 파시즘의 출현,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통해, 유럽 국가들은 특정 국가가 유럽을 지배할 수 없으며 절대주권과 공동체적 삶이 조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평화와 복지가 불가능한 ‘공존적 타협’에 이르게 됐다.
반면 동북아(혹은 동아시아로 확대하더라도)의 경우, 근대적 주권국가 개념이 수용된 것은 불과 지난 세기의 일이었다. 그나마 역내 국가들 간에 근대 주권 개념에 입각한 보편적인 의미의 국제관계가 시작된 것은 1945년 이후부터였다.
1945년 이후 한·중·일 간 외교관계를 보면, 과거 유럽이 경험한 근대 주권의 역사와 어느 정도 닮은 측면이 있다. 독도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의식 속에는 20세기 초·중반 동북아 지역의 ‘근대 주권 관계 정착기’에 겪었던 민족적 수난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을 것이다. 동(同) 시대를 함께 경험한 각계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이들의 정치 리더십을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전 세대에게 요구되었던 리더십과 역사인식 사이의 상관관계는 비록 고통스럽기는 해도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이었다. 반면에 앞으로 4050세대 지도자들 앞에는 세계화 현상과 동북아적 특수성 간의 중층적(重層的) 결합, 전근대-근대-탈(脫)근대가 공존하는 사안의 복합성, 동북아 역내의 수많은 네트워크적 교류현상, 개인 정체성의 탈국가화 현상 등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 있다.
이는 우리 4050세대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몰(沒)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국가이익에 대한 의지가 박약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탈냉전(脫冷戰) 이후 20년의 경험을 토대로 소위 ‘세계화 2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2012년의 시점에서, 4050세대 지도자들에게는 결국 과거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능력과 세계관, 사회적 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不條理한 세대
한국 4050세대의 특징은 ‘산업화로 인한 풍요’와 ‘민주화로 인한 자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압축된다. 이들은 일찍부터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체험한 세대다. 이들은 1980년대 민주화 열기를 경험하면서 대학을 다녔고, 88올림픽과 냉전 종식을 전후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세계화를 절감했다.
이들 4050세대 리더들에게서는 안타까운 부조리(不條理)가 발견된다. 대개의 경우, 유년기와 대학시절 동안 이들을 지배했던 세계관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방식, 민주화를 성취하는 방법,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는 논리, 민주화를 둘러싼 국민들과의 교감방식 등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이슈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0년 전후는 국내외적으로 글로벌 경제통합, 국경 없는 경제활동의 일상화, 다양한 이익에 집착하는 개인의 등장, 탈민족적 역사인식 등 전혀 새로운 이슈들이 제기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어느 사회 원로의 표현을 빌리면, 좋게 얘기해서 4050세대의 등장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도덕’으로 무장한 세대의 사회 진출을 의미하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이들은 할 줄 아는 게 ‘반대’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4050세대 리더들의 대중(對中)·대일(對日)·대미(對美) 관계에 대한 인식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17대 국회 초, 한 여론조사기관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향후 우리의 국가이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국가를 꼽으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17대 국회는 그 이전까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이 처음으로 50대 초반으로 젊어진 소위 ‘신세대’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였다.
당시 약 60%의 의원이 우리 국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그런 대답이 나온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중국을 일종의 미국의 대체재(代替財)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1882년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미관계는 100여 년 남짓한 ‘근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중관계는 그렇지 않다. 수천 년에 달하는 한중관계 속에는 미제(未濟)로 남아 있는 전근대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것만 봐도 중국과 미국은 직접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중관계에 임하는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는 그만큼 정확한 역사인식, 엄격하고 철저한 역사자료에 의거한 논리적 무장, 전근대적 갈등과 미래지향적인 이익 공유(共有) 사이의 조화 등 뛰어난 능력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한일관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직 처리해야 할 과거사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의 우경화 문제에도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작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이 대외관계에서 관용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韓美, 韓中, 韓日관계의 특징
우리는 지난 20년간 근거 없는 낙관론과 설익은 논리 위에서 세계화시대를 달려왔다. 한쪽에는 주변 4강에 둘러싸이고 부존자원(賦存資源)이 전무한 우리는 동북아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며 무조건 세계경제권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한쪽에는 우리가 잘만하면 미·중·일(美中日)과 다 잘 지낼 수 있고 이익도 잘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결과 적잖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독도 문제의 악화, 과거사 문제의 미해결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 4050세대 지도자들의 총체적인 혜안의 부족이 지금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례로 독도 문제의 경우,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實效的)으로 지배하고 있고 국제법적 논쟁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1945년 이전에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의 영토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4050세대 지도자들은 한국의 세계화 및 동북아 통합과 병행(竝行) 혹은 멀티트랙 전략 속에서 이러한 일들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
4050세대 지도자들은 사안별로는 한일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양국관계 일반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일 양국의 협력 없이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동북아 질서의 유지도, 한국의 국가이익 실현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부 4050세대 전문가들은 최근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적 긴장으로 인해 한중·한일 관계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여기서 한미·한중·한일 관계를 비교해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1953년 이후 한미관계를 보면, 정부를 중심으로 한 공적(公的) 관계 발전이 선행(先行)하고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와 같은 사적(私的) 관계의 발전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에 한중관계의 경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경제를 축(軸)으로 하는 사적 영역이 먼저 발전하고 공적 관계 발전이 그 뒤를 따랐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한중관계에 어느 정도의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사적 영역에서의 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일관계의 경우, 한미관계보다는 한중관계를 더 닮은 것으로 보인다.
‘東北亞’라는 지역正體性 요구돼
우리 외교는 양자관계에 익숙해져 있다.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다자(多者)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최근에는 G20정상회의와 핵(核)안보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다자외교의 틀 안에서 중견국으로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차원에서는 한중·한일·한미 등 양자외교가 중심이 되고 있다. 수천 년에 걸친 한·중·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가 함께 동북아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중일사무국이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한·중·일 세 나라가 안보를 확보하고, 경제이익을 극대화하며, 보다 풍요로운 사회문화 활동을 전개하려면, ‘동북아’라는 개념이 이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은 미국인을 만났을 때, 서유럽에서 왔는지, 남유럽에서 왔는지 하는 질문을 받는다. 개별 국가의 정체성보다는 지역 단위의 정체성이 우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중국인·일본인들은 ‘동북아에서 왔느냐’는 식의 질문을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왔느냐, 혹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동북아인’의 모습 속에서는 동북아는 보이지 않고 개별 국가의 정체성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바탕으로 대학을 다니고 사회적 훈련을 쌓은 한국의 4050세대 지도자들은 이전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도덕적 기준으로 무장되어 있고, 세계무대로의 질주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장·복지·평화 등과 같은 상충(相衝)하는 가치관들 사이에서 접점(接點)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북아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는 탈근대적 성격의 문제들이 양산되는 현실 속에서 정확한 역사인식과 정교한 세계관을 수립하려는 노력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세계 어디도 이웃 나라들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경우는 드물다. 영국과 프랑스는 근대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갈등을 겪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와 독일 간의 길고 긴 역사적 갈등을 잘 보여준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과거의 유산에서 비롯된 갈등들을 풀지 못해 분쟁을 겪고 있고, 그 결과 지금도 새로운 국가가 생겨나고 있다.
한중관계, 한일관계, 한·중·일 관계는 역사인식과 영토문제라는 인화성(引火性)이 매우 강한 문제들을 안고 있어서 풀어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문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다 있었다. 네트워크적인 외교환경의 출현을 직시하고, 한·중·일 각국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비교분석을 토대로, 우리의 국가이익과 동북아적 이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혜안이 한국을 이끄는 4050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