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2003년 기승부리던 말래카 해적들은 관련국의 공조로 거의 사라져
⊙ 소말리아, 하루 2달러 이하의 最低생계비로 연명하는 빈곤층이 인구의 75%
⊙ 13개국이 소말리아 해적 780여 명 체포, 이 중 90%는 체포와 동시에 석방
⊙ 이슬람 극단주의단체 알 샤바브, “해적들은 기독교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알라의 적에 맞서 해안을 지키는 전사”
李長勳
⊙ 54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 소말리아, 하루 2달러 이하의 最低생계비로 연명하는 빈곤층이 인구의 75%
⊙ 13개국이 소말리아 해적 780여 명 체포, 이 중 90%는 체포와 동시에 석방
⊙ 이슬람 극단주의단체 알 샤바브, “해적들은 기독교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알라의 적에 맞서 해안을 지키는 전사”
李長勳
⊙ 54세. 서울대 영문과 졸업.
⊙ 공군사관학교 영어교관,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주간한국》 편집장 역임.
⊙ 저서 : 《홍군 VS 청군-미국과 중국의 21세기 아시아 패권 쟁탈전》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
- 청해부대 UDT 작전침투 요원들이 1월 21일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교 조타실로 진입하고 있다.
소말리아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해적(海賊)이다. 지난 17~18세기 때 카리브해(海)처럼 소말리아 아덴만(灣)이 해적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 각국 해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적들은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먼바다인 인도양까지 진출해 선박들을 습격하고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탑재된 쾌속선에 로켓포 등 중화기까지 갖춘 소말리아 해적들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무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할 방법은 없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말래카 해협에서도 해적들이 기승을 부렸었다. 하지만 각국의 노력으로 말래카 해협에서 해적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소말리아 해적들을 퇴치하려면 말래카 해협의 사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말래카 해적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남부와 수마트라 섬 사이에 있는 말래카 해협은 태평양~남중국해~인도양을 잇는 해상무역의 길목에 있다. 세계 해상 물류(物流)의 3분의 1과 동북아(東北亞) 각국 원유(原油)수입량의 80~100%가 이곳을 통과한다. 하루 평균 1700여 척이 이곳을 지나간다. 길이는 900km, 폭이 최저 2.5여km이고, 수심이 120m 이하인 곳이 많아 상선의 운행속도가 느려지면서 해적들이 공격하기에는 최적지이다. 또 수천 개의 섬과 하구(河口)로 연결돼 해적들의 은신처와 노획물 은닉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말래카 해협 인근 해역은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 해역처럼 해적질이 일상처럼 벌어졌다. 국제해사국(IMB)에 따르면 지난 2003년 말래카 해협 인근 해역에선 121건의 해적 노략질이 있었다. 사흘에 한 번꼴이다.
말래카 해협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은 소말리아 해적들과 판박이였다.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수많은 어부와 젊은이를 바다로 내몰았다. 쉽게 말해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 해적질을 한 것이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말래카 해협은 세계에서 해적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 됐다.
하지만 말래카 해협은 더 이상 해적 소굴로 불리지 않는다. 해적 행위도 대부분이 소규모 강도사건 형태를 띠고 있어 조직적 해적질과는 거리가 멀다. 1~6명이 칼이나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채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에 침입, 금품 등을 훔쳐가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력한 국제공조로 말래카 해적 퇴치
해적들이 들끓던 이곳이 잠잠해진 이유는 연안국들이 해적 공동 순찰을 벌이는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공조(共助)체제 덕분이다. 말래카 해협에서 해적들이 창궐하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연안국은 합동순찰을 벌였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16개국이 싱가포르에 해적정보공유센터(ISC)를 설립, 해적 소탕에 적극 나섰다. 16개국은 지난 2004년 11월 11일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해적 동향 분석 및 배포, 해적사건 발생 시 신속한 대응, 회원국 간 정보공유체제 구축 등을 내용으로 해적퇴치협력협정(ReCAAPㆍRegional Cooperation Agreement on Combating Piracy and Armed Robbery against Ships in Asia)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해적퇴치를 위한 유일한 정부 간 국제공조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이 협정에 따라 지난 2006년 창설된 ISC는 해적 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 분석한 뒤 이를 회원국에 신속하게 전파해 관련국들이 즉각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적들이 말래카 해협에서 활개를 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은 연안국들에 쾌속정을 구매할 수 있는 자금과 레이더 등 첨단장비를 지원했다.
연안국들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해적 소탕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해적들의 근거지가 됐던 육상기지를 찾아내 없애는 등 효과적인 작전도 해적 퇴치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해적들이 선박을 납치해 몸값 등을 요구하며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는 육지에 근거지가 있어야 하는데, 육상기지가 없어지자 조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연안국들은 또 해적들의 활동 지역에 대한 개발 계획도 적극 추진했다. IMB는 연안국들의 지속적으로 증강된 순찰과 국제사회의 공조 덕분에 말래카 해협 해적들의 공격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또 연안국들의 경제가 차츰 회복되면서 성장세를 보인 것도 해적 감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소말리아 해적이 전 세계 해적사건의 92% 차지
말래카 해협의 해적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었던 지난 2007년부터 아프리카 지역에선 반대로 해적 활동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적의 중심지가 동남아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한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현재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다. IMB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해적사건 445건 가운데 소말리아 해적들이 저지른 것은 92%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까지 선박 28척과 선원 638명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억류된 상태였다. 또 지난해 피랍 선원들의 몸값으로 전달된 인질보상금은 전 세계적으로 2억3800만 달러에 달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이 돈을 대부분 차지했다.
최근 삼호주얼리호 사건에서 보듯이 소말리아 해적들은 아덴만에서 2000km나 떨어진 인도양까지 진출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또 활동 영역을 말래카 해협까지 넓힐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니콜라스 테오 ISC 소장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근해인 아덴만을 넘어 인도양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이들이 말래카 해협까지 활동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말리아 해적들은 현재 인도양에서 제집 드나들듯 출몰하고 있다. 심지어 소형 보트를 타고 인도의 동쪽 해안인 스리랑카 100해리 부근까지 출몰했다고 스리랑카 정부가 밝히기도 했다. 스리랑카를 넘어 벵골만을 지나면 인도차이나반도를 따라 말래카 해협과 만나게 된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활동 중인 나토 함대사령관 미키엘 이즈만 준장(네덜란드)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지난해 말부터 소형 보트를 타고 선박에 몰래 접근해 사다리를 이용해 갑판에 오르는 옛날 방식을 버리고, 납치해 놓은 대형 선박을 모선(母船)으로 쓰기 시작했다”면서 “때문에 해적들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까지 진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의 비극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동쪽 끝에 코뿔소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가 어쩌다가 해적들의 근거지가 됐을까.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은 인도양과 지중해를 이어주는 길목이다. 북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남쪽으로는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선박은 연간 2만여 척에 이른다. 수에즈운하를 지나 아덴만을 빠져나와야 인도양을 거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물동량(物動量)의 20%, 유류(油類) 수송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해적들의 ‘사냥감’이 풍부한 셈이다.
소말리아의 해안선은 무려 3000km로, 아프리카에서 제일 길다. 해적들의 은신처로도 적합하다. 소말리아는 현재 무정부(無政府) 상태다. 지난 1월 26일로 소말리아에서 내전(內戰)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4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67만여 명이 난민(難民)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소말리아 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민이 된 사람도 142만여 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는 세계 최악의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말을 들어왔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소말리아를 세계 최악의 실패한 국가로 3년 연속 선정했다.
소말리아의 비극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2년간 통치해 오던 독재자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1991년 말 군벌(軍閥) 연합세력에 의해 축출된 후 종족과 지역으로 갈라진 군벌 간 장기 내전이 시작되면서 비롯됐다.
내전 초기에 미국이 개입했지만 1993년 작전 중 블랙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고 18명이 전사(戰死)하자 발을 뺐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소말리아 과도정부는 수도 모가디슈를 통제조차 못하고 있다.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온건파 이슬람 연합체 소말리아해방동맹(ARLS)의 지도자 출신인 샤리프 셰이크 아흐메드 대통령이다. 아흐메드 대통령은 2009년 1월 31일 유엔의 중재(仲裁)로 인접국 지부티에서 치러진 의회의 대통령 선출 투표에서 당선됐다.
문제는 소말리아 각 지역을 통치해 온 군벌과 강경파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아흐메드 대통령과 과도정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ㆍ남부를 차지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 샤바브(아랍어로 청년이라는 뜻)는 아흐메드 대통령을 몰아내고 소말리아에 이슬람정권을 세우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하카트 알 샤바브 알 무자히딘(청년전사운동)의 줄임말인 알 샤바브는 그동안 소말리아의 강경파 이슬람 무장단체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알 샤바브는 알 카에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동부 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보고서에서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 등 동부아프리카 국가들로 손쉽게 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테러활동을 계획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 카에다에 소말리아는 조직원들을 훈련하고 충원할 수 있는 거점이다. 알 카에다는 현재 알 샤바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현재로선 아흐메드 대통령이 소말리아를 안정시킬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 8000명이 소말리아에 배치돼 있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상태다.
소말리아 인구 7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연명
현재 소말리아 경제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소말리아는 국토 대부분이 사막이어서 경작 가능한 땅은 전체 면적의 1.6%뿐이다. 1인당 GDP는 600달러도 되지 않는다. 하루 2달러 이하의 최저(最低)생계비로 연명하는 빈곤층도 인구의 75%에 달한다. 세계은행은 아예 소말리아의 실업률을 산출하지 않는다. 유엔에 따르면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소말리아 국민 수는 320만명에 달한다. 이는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다.
소말리아 인구는 2003년만 해도 1070만명이었는데 내전과 굶주림 등으로 현재 850만~95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식량사정도 좋지 않아 굶주림은 이미 일상이 됐다. 무정부 상태와 군벌 간의 무력(武力) 충돌로 70%가 농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경작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외부의 식량원조도 차단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어렵게 도착한 구호품도 대부분 군벌이 차지하고 있다. 내전과 기아는 소말리아 사람들이 해적질을 하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론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 있는 어장(漁場)의 황폐화를 들 수 있다. 외국의 트롤어선들이 내전으로 소말리아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되자 저인망식 싹쓸이 어업을 해왔다. 또 외국 선박들은 산업 폐기물을 마구 버렸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선 어족(魚族)자원의 씨가 말라버렸다. 소말리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불법어획 피해액은 2003~2004년에만 1억 달러로 추산된다.
소말리아 어부 중 상당수는 불법어업이 기승을 부리자 어장 보호를 명분으로 총을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 소말리아 사람들이 선택한 길은 해적질이었다. 무기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내전 때문에 지천에 널린 것이 무기였다. 내전으로 완전히 무너진 해안 경비도 해적질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네덜란드 해군에 체포돼 네덜란드 법정에 선 소말리아 출신의 한 해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루 3번 식사를 하고, 침대라는 것에서 잠을 잤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네덜란드 감옥에서 살고 싶다”고 진술했다.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화ㆍ분업화된 해적들
소규모 생계형으로 출발했던 해적질은 갈수록 기업형으로 바뀌고 있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한 번에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에 해적은 소말리아에서 부(富)를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인기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자진해서 해적에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소말리아 해적들은 고도로 조직화된 기업형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해적들은 인질의 몸값으로 첨단 무기를 구입하고 국제사회의 개입에 대비해 자신들의 근거지를 요새화하고 있다. 또 외국에 거주하는 소말리아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을 지원하는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금, 물자, 선박이동 정보 등을 제공받는다.
해적 조직은 어느 선박이 어디로 항해하는지 알려주는 정보 제공조, 선박을 나포해 오는 체포조, 해적 본거지에서 협상을 전개하는 협상조, 협상을 마무리하고 돈을 받아내는 수금조로 나뉘어 있다.
북동부 에일이나 중부 하라드헤레 지역에 본거지를 둔 해적들은 근해(近海)를 한참 벗어난 곳에 ‘모선’을 띄워놓고 선박을 공격하는 쾌속정 정박지로 활용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병참(兵站)기지를 구축해 두고 납치한 배를 본부로 끌고 갈 때 중간보급을 받기도 한다.
해적들의 역할도 분업화(分業化)됐다. 바다의 성질에 대해 잘 아는 현지 어부 경력자가 노략질을 진두지휘한다. 공격에는 내전을 통해 실전(實戰) 경험을 쌓은 퇴역(退役) 전사(戰士)들이 앞장선다. 여기에 GPS와 컴퓨터 등 첨단기기로 무장한 신세대가 가세해 목표물의 위치와 이동경로 등을 확인한다.
해적들은 자신들의 배에 설치된 위성전화를 이용해 영국 런던, 예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등에 있는 정보원들로부터 소말리아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의 항로(航路)와 국적(國籍) 및 적재화물의 종류 등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다. 해적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공격 대상 선박의 예상 이동경로에서 며칠을 기다리다 선박이 모습을 드러내면 공격을 감행한다.
‘걸어다니는 황금’
소말리아 해적들의 규모는 1500여 명으로 추정된다. 해적들이 챙기는 몸값의 협상은 주로 영국 런던에서 이루어지고, 소말리아와 인접한 케냐를 통해 돈이 전달된다. 소말리아 해적 모니터링 그룹인 ‘에코테라 인터내셔널’은 영국 런던의 납치 보험전문 보험사들과 케냐의 법률회사와 보안업체, 돈을 세탁해 주는 두바이 회사들, 해적 사건 담당 컨설턴트, 소말리아 군벌, 해적들이 일종의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프리카 항해자 지원프로그램’(EASAP)의 앤드루 므완구라는 케냐 기업들이 해적과 피랍 선박회사 간 연락업무를 담당한다면서 인질 석방 협상은 주로 런던에서 이루어지며 선사(船社)들이 몸값을 지급하면 두바이와 케냐를 거쳐 전달된다고 밝혔다. 케냐의 법률회사와 보안업체는 선사와 해적의 협상과 계약서 작성에 관여하고 있으며, 항공 또는 해상운송 업체는 나이로비나 몸바사에서 몸값을 받아 비행기나 선박으로 소말리아에 있는 해적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런던과 두바이, 케냐 등은 어떻게 보면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을 부추기는 중요한 중개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적들은 또 몸값으로 받은 돈을 케냐의 부동산, 환전소, 주식거래, 상품수입 등에 투자하고 있다. 해적선을 전문적으로 수리해 주는 기술자도 있으며, 육상에서 연료와 식품을 대주는 공급책도 있다.
소말리아의 해적 산업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인질들의 몸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각국 선사들이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지불한 피랍(被拉) 선원의 평균 몸값이 전년에 비해 6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본부를 둔 비(非)정부기구인 ‘원 어스 퓨처 재단’(one earth future foundation)이 발표한 <해적의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선사들이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지불한 평균 몸값은 전년도 340만 달러에서 540만 달러로 올랐다. 이는 2005년 평균 15만 달러에 비해 36배나 오른 것이다. 지금까지 몸값 중 최대액수는 삼호드림호 선사인 삼호해운이 지난해 11월 지불한 950만 달러였다. 이 때문에 해적들은 인질들을 ‘걸어다니는 황금’으로 부르고 있다.
각국 선사들이 선박 피랍을 예방하기 위한 우회(迂廻)항로 이용 등을 포함해 지난해 지출한 총 경제적 비용은 70억~120억 달러에 달했다.
또 피랍 선원 석방에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피랍된 선박 4척의 석방에 소요된 기간은 평균 150일로, 2009년 평균 55일보다 3배 정도 늘어났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또 인질들의 몸값을 더 뜯어내기 위해 갈수록 포악해지고 있다. 버스터 하우즈 유럽연합(EU) 연합함대(NAVFOR) 준장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최근 피랍 선원들을 거꾸로 매달아 바닷물에 집어넣거나 냉동고에 가두거나 때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하우즈 준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적들은 인질들을 어느 정도 대우했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각국이 인질들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인질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인질구출작전과 피란처 설치
해적이 활개를 치면서 국제사회의 대응방침도 강력해지고 있다. 인질의 안전을 위해 몸값을 지불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특공대를 투입해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으로 선회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08년 4월 이후 자국 선박이 4번이나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지만 모두 군사작전으로 해결했다. 미국도 2009년 4월 머스크-앨라배마호가 납치돼 선장 1명이 인질로 잡히자 특수부대를 동원, 해적 3명을 사살하고 선장을 구해냈다. 지난해 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특수부대원들은 슬로베니아 화물선 아리엘라호에 진입해 선원 24명을 구출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 21일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기 위해 ‘아덴만 여명’이라는 이름의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말레이시아도 우리나라의 청해부대가 작전을 감행한 같은 날 특수부대를 동원해 해적에게 잡혔던 선원 23명을 구출했다.
각국이 적극적으로 해적 소탕 작전을 펼치는 이유는 몸값을 지불하는 미지근한 대책이 오히려 화(禍)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번 몸값을 지불하면 두 번, 세 번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작전만으로는 해적을 완전 소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때문에 군사작전보다는 선박들이 피랍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위험지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경우 비용이 들더라도 민간무장요원을 탑승시키고 선박 안에 대피시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9월 독일 화물선 마젤란스타호 선원 11명은 해적들이 공격하자 배의 전원(電源)공급장치를 차단한 뒤 비상식량을 챙겨 대피처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해적들은 배는 탈취했지만 복잡한 구조의 항해장치를 다룰 수 없어 선박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사이 선원들의 신고를 받은 미군 군함이 나타나 해적들을 모두 생포했다.
지난해 5월 러시아 유조선 모스코보스키 우니베르시테트호 선원 23명도 아덴만을 지나던 중 해적들의 공격을 받자 자국 해군에 구조를 요청한 뒤 전력 공급장치를 차단하고 비상식량을 챙겨 대피처로 피신했다. 해적들은 배를 통제할 수 없었고, 추격해 온 러시아 구축함이 해적들을 제압, 선원들을 모두 구출했다.
안보리 중심의 군사협력체제 필요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제사회가 철저하게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각국은 유엔 결의문에 따라 지역기구 또는 개별 국가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해 해적 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덴만 등에서 해적 퇴치 활동을 펴고 있는 군사력은 연합해군, EU 연합함대, 나토함대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 3월 KDX-Ⅱ급 구축함을 중심으로 청해부대를 연합해군 소속으로 소말리아 해역(海域)에 파견, 해적 퇴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군함은 모두 50여 척이지만, 해적들이 인도양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군함들의 작전 범위는 한반도 면적의 40여 배에 달한다. 50여 척의 군함으로 이처럼 넓은 지역을 경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 산하의 국제협의체인 소말리아 해적퇴치 연락그룹(CGPCS)이 2009년 창설돼 매년 3~4회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있지만, 효율적인 군사적 대응 체제는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때문에 유엔안보리 상임 이사국들을 중심으로 각국이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해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말래카 해협의 해적들을 퇴치하는 데 효과를 본 해적퇴치협정처럼 각국이 협정을 맺고 정보공유 등 조직적인 소탕 방안을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은 해적행위에 대한 사법권을 어느 국가가 행사할 것인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에서 생포된 해적 5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법처리 문제가 대두됐었다.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을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해적재판소 설치 논의
이와 관련, 유엔 특사로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의 소말리아 해적 담당 고문인 자크 랑 전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1월 24일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을 처벌할 수 있는 특별재판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랑 전 장관은 “많은 해적이 체포되고 있지만 이 중 90%는 기소할 장소가 없어 다시 풀려나고 있다”면서 “특별재판소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연간 2500만 달러에 못 미칠 것이며 이는 기부국 회의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랑 전 장관은 특별재판소 후보지로 소말리아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지역인 북부 펀트란드와 소말릴란드, 르완다 학살 전범(戰犯)재판소가 있는 탄자니아 아루샤 등을 들었다. 랑 전 장관의 제안이 채택된다면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처벌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랑 전 장관은 또 “국제사회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배후조종하는 세력들에 대한 검거ㆍ처벌을 위해 정보공유를 강화하고 자금동결 등 돈줄도 옥좨야 한다”고 강조했다. 랑 전 장관은 이와 함께 “해적들이 해외에 호텔이나 다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돈 세탁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사업체들에 대한 금융 추적도 철저하게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랑 전 장관의 제의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은 체포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자국(自國)에서 사법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용도 많이 들고, 해적들이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 데다, 수감(收監) 시설도 적합하지 않아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 영국 등은 케냐 등 인접국들과 양자(兩者) 협정 또는 양해각서를 체결해 체포한 해적들을 넘겨 재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동안 가장 많은 해적을 받아왔던 케냐 정부가 지난해 더 이상 해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13개국이 소말리아 해적 780여 명을 체포했지만, 이 가운데 90%는 수감시설이나 사법체계 미비 등의 이유로 체포와 동시에 석방됐다. 러시아의 경우 생포한 해적들을 무동력 고무보트에 태워 연안으로부터 540km 떨어진 바다에 버려 보트피플로 만들기도 했다. 때문에 국제사회가 한시바삐 해적들을 제대로 단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소말리아 안정이 관건
해적들을 퇴치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소말리아를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알 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알 샤바브는 해적들과도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해적들은 알 샤바브에 돈과 무기를 제공하고, 알 샤바브는 육지에서 해적의 뒤를 봐주고 있다. 특히 알 샤바브는 해적들을 “기독교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알라의 적에 맞서 해안을 지키는 전사”로 보고 있다. 알 카에다와 알 샤바브 및 해적들의 삼각 협력 체제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미군 중부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 마크 폭스 중장도 해적이 알 샤바브와 연계를 맺고 있는 점을 경고했다. 해적들과 알 샤바브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소말리아의 치안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EU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적극 지원하고는 있다. 미국과 EU는 소말리아 정부의 자국 치안력을 우선적으로 보강해 안정을 도모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미국과 EU는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소말리아 정부군의 전력(戰力) 강화에 나서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군 병력은 현재 1만여 명이지만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들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소말리아가 안정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현 정부의 재건 노력과 극단주의 세력과의 싸움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소말리아의 안정 회복에 대한 지원이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극복할 수 없는 도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말대로 소말리아처럼 실패한 국가들의 국가 건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해적을 소탕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때문에 국제사회도 인내심을 가지고 소말리아의 국가 건설에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소말리아가 언제쯤 최악의 실패한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말래카 해적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 남부와 수마트라 섬 사이에 있는 말래카 해협은 태평양~남중국해~인도양을 잇는 해상무역의 길목에 있다. 세계 해상 물류(物流)의 3분의 1과 동북아(東北亞) 각국 원유(原油)수입량의 80~100%가 이곳을 통과한다. 하루 평균 1700여 척이 이곳을 지나간다. 길이는 900km, 폭이 최저 2.5여km이고, 수심이 120m 이하인 곳이 많아 상선의 운행속도가 느려지면서 해적들이 공격하기에는 최적지이다. 또 수천 개의 섬과 하구(河口)로 연결돼 해적들의 은신처와 노획물 은닉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말래카 해협 인근 해역은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 해역처럼 해적질이 일상처럼 벌어졌다. 국제해사국(IMB)에 따르면 지난 2003년 말래카 해협 인근 해역에선 121건의 해적 노략질이 있었다. 사흘에 한 번꼴이다.
말래카 해협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은 소말리아 해적들과 판박이였다.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수많은 어부와 젊은이를 바다로 내몰았다. 쉽게 말해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 해적질을 한 것이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말래카 해협은 세계에서 해적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지역이 됐다.
하지만 말래카 해협은 더 이상 해적 소굴로 불리지 않는다. 해적 행위도 대부분이 소규모 강도사건 형태를 띠고 있어 조직적 해적질과는 거리가 멀다. 1~6명이 칼이나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채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에 침입, 금품 등을 훔쳐가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력한 국제공조로 말래카 해적 퇴치
해적들이 들끓던 이곳이 잠잠해진 이유는 연안국들이 해적 공동 순찰을 벌이는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공조(共助)체제 덕분이다. 말래카 해협에서 해적들이 창궐하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연안국은 합동순찰을 벌였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16개국이 싱가포르에 해적정보공유센터(ISC)를 설립, 해적 소탕에 적극 나섰다. 16개국은 지난 2004년 11월 11일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해적 동향 분석 및 배포, 해적사건 발생 시 신속한 대응, 회원국 간 정보공유체제 구축 등을 내용으로 해적퇴치협력협정(ReCAAPㆍRegional Cooperation Agreement on Combating Piracy and Armed Robbery against Ships in Asia)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해적퇴치를 위한 유일한 정부 간 국제공조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이 협정에 따라 지난 2006년 창설된 ISC는 해적 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입수, 분석한 뒤 이를 회원국에 신속하게 전파해 관련국들이 즉각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적들이 말래카 해협에서 활개를 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들은 연안국들에 쾌속정을 구매할 수 있는 자금과 레이더 등 첨단장비를 지원했다.
연안국들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해적 소탕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해적들의 근거지가 됐던 육상기지를 찾아내 없애는 등 효과적인 작전도 해적 퇴치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해적들이 선박을 납치해 몸값 등을 요구하며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는 육지에 근거지가 있어야 하는데, 육상기지가 없어지자 조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연안국들은 또 해적들의 활동 지역에 대한 개발 계획도 적극 추진했다. IMB는 연안국들의 지속적으로 증강된 순찰과 국제사회의 공조 덕분에 말래카 해협 해적들의 공격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또 연안국들의 경제가 차츰 회복되면서 성장세를 보인 것도 해적 감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소말리아 해적이 전 세계 해적사건의 92%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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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호주얼리호 납치 소말리아 해적 5명이 수사본부가 있는 남해해양경찰청으로 호송되고 있다. |
소말리아 해적들은 현재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다. IMB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해적사건 445건 가운데 소말리아 해적들이 저지른 것은 92%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까지 선박 28척과 선원 638명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억류된 상태였다. 또 지난해 피랍 선원들의 몸값으로 전달된 인질보상금은 전 세계적으로 2억3800만 달러에 달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이 돈을 대부분 차지했다.
최근 삼호주얼리호 사건에서 보듯이 소말리아 해적들은 아덴만에서 2000km나 떨어진 인도양까지 진출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또 활동 영역을 말래카 해협까지 넓힐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니콜라스 테오 ISC 소장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근해인 아덴만을 넘어 인도양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이들이 말래카 해협까지 활동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말리아 해적들은 현재 인도양에서 제집 드나들듯 출몰하고 있다. 심지어 소형 보트를 타고 인도의 동쪽 해안인 스리랑카 100해리 부근까지 출몰했다고 스리랑카 정부가 밝히기도 했다. 스리랑카를 넘어 벵골만을 지나면 인도차이나반도를 따라 말래카 해협과 만나게 된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활동 중인 나토 함대사령관 미키엘 이즈만 준장(네덜란드)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지난해 말부터 소형 보트를 타고 선박에 몰래 접근해 사다리를 이용해 갑판에 오르는 옛날 방식을 버리고, 납치해 놓은 대형 선박을 모선(母船)으로 쓰기 시작했다”면서 “때문에 해적들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까지 진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의 비극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동쪽 끝에 코뿔소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가 어쩌다가 해적들의 근거지가 됐을까.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은 인도양과 지중해를 이어주는 길목이다. 북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남쪽으로는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선박은 연간 2만여 척에 이른다. 수에즈운하를 지나 아덴만을 빠져나와야 인도양을 거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물동량(物動量)의 20%, 유류(油類) 수송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해적들의 ‘사냥감’이 풍부한 셈이다.
소말리아의 해안선은 무려 3000km로, 아프리카에서 제일 길다. 해적들의 은신처로도 적합하다. 소말리아는 현재 무정부(無政府) 상태다. 지난 1월 26일로 소말리아에서 내전(內戰)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4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67만여 명이 난민(難民)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소말리아 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민이 된 사람도 142만여 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는 세계 최악의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말을 들어왔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소말리아를 세계 최악의 실패한 국가로 3년 연속 선정했다.
소말리아의 비극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22년간 통치해 오던 독재자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1991년 말 군벌(軍閥) 연합세력에 의해 축출된 후 종족과 지역으로 갈라진 군벌 간 장기 내전이 시작되면서 비롯됐다.
내전 초기에 미국이 개입했지만 1993년 작전 중 블랙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고 18명이 전사(戰死)하자 발을 뺐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소말리아 과도정부는 수도 모가디슈를 통제조차 못하고 있다.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온건파 이슬람 연합체 소말리아해방동맹(ARLS)의 지도자 출신인 샤리프 셰이크 아흐메드 대통령이다. 아흐메드 대통령은 2009년 1월 31일 유엔의 중재(仲裁)로 인접국 지부티에서 치러진 의회의 대통령 선출 투표에서 당선됐다.
문제는 소말리아 각 지역을 통치해 온 군벌과 강경파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아흐메드 대통령과 과도정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ㆍ남부를 차지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 샤바브(아랍어로 청년이라는 뜻)는 아흐메드 대통령을 몰아내고 소말리아에 이슬람정권을 세우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하카트 알 샤바브 알 무자히딘(청년전사운동)의 줄임말인 알 샤바브는 그동안 소말리아의 강경파 이슬람 무장단체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알 샤바브는 알 카에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동부 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보고서에서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 등 동부아프리카 국가들로 손쉽게 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테러활동을 계획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 카에다에 소말리아는 조직원들을 훈련하고 충원할 수 있는 거점이다. 알 카에다는 현재 알 샤바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현재로선 아흐메드 대통령이 소말리아를 안정시킬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 8000명이 소말리아에 배치돼 있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상태다.
소말리아 인구 7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연명
현재 소말리아 경제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다. 소말리아는 국토 대부분이 사막이어서 경작 가능한 땅은 전체 면적의 1.6%뿐이다. 1인당 GDP는 600달러도 되지 않는다. 하루 2달러 이하의 최저(最低)생계비로 연명하는 빈곤층도 인구의 75%에 달한다. 세계은행은 아예 소말리아의 실업률을 산출하지 않는다. 유엔에 따르면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소말리아 국민 수는 320만명에 달한다. 이는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다.
소말리아 인구는 2003년만 해도 1070만명이었는데 내전과 굶주림 등으로 현재 850만~95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식량사정도 좋지 않아 굶주림은 이미 일상이 됐다. 무정부 상태와 군벌 간의 무력(武力) 충돌로 70%가 농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경작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외부의 식량원조도 차단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어렵게 도착한 구호품도 대부분 군벌이 차지하고 있다. 내전과 기아는 소말리아 사람들이 해적질을 하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론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 있는 어장(漁場)의 황폐화를 들 수 있다. 외국의 트롤어선들이 내전으로 소말리아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되자 저인망식 싹쓸이 어업을 해왔다. 또 외국 선박들은 산업 폐기물을 마구 버렸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선 어족(魚族)자원의 씨가 말라버렸다. 소말리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불법어획 피해액은 2003~2004년에만 1억 달러로 추산된다.
소말리아 어부 중 상당수는 불법어업이 기승을 부리자 어장 보호를 명분으로 총을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 소말리아 사람들이 선택한 길은 해적질이었다. 무기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내전 때문에 지천에 널린 것이 무기였다. 내전으로 완전히 무너진 해안 경비도 해적질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네덜란드 해군에 체포돼 네덜란드 법정에 선 소말리아 출신의 한 해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루 3번 식사를 하고, 침대라는 것에서 잠을 잤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네덜란드 감옥에서 살고 싶다”고 진술했다.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화ㆍ분업화된 해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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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4월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앞쪽)이 한국 상선‘파인갤럭시’를 호송하고 있다. |
현재 소말리아 해적들은 고도로 조직화된 기업형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해적들은 인질의 몸값으로 첨단 무기를 구입하고 국제사회의 개입에 대비해 자신들의 근거지를 요새화하고 있다. 또 외국에 거주하는 소말리아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을 지원하는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금, 물자, 선박이동 정보 등을 제공받는다.
해적 조직은 어느 선박이 어디로 항해하는지 알려주는 정보 제공조, 선박을 나포해 오는 체포조, 해적 본거지에서 협상을 전개하는 협상조, 협상을 마무리하고 돈을 받아내는 수금조로 나뉘어 있다.
북동부 에일이나 중부 하라드헤레 지역에 본거지를 둔 해적들은 근해(近海)를 한참 벗어난 곳에 ‘모선’을 띄워놓고 선박을 공격하는 쾌속정 정박지로 활용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병참(兵站)기지를 구축해 두고 납치한 배를 본부로 끌고 갈 때 중간보급을 받기도 한다.
해적들의 역할도 분업화(分業化)됐다. 바다의 성질에 대해 잘 아는 현지 어부 경력자가 노략질을 진두지휘한다. 공격에는 내전을 통해 실전(實戰) 경험을 쌓은 퇴역(退役) 전사(戰士)들이 앞장선다. 여기에 GPS와 컴퓨터 등 첨단기기로 무장한 신세대가 가세해 목표물의 위치와 이동경로 등을 확인한다.
해적들은 자신들의 배에 설치된 위성전화를 이용해 영국 런던, 예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등에 있는 정보원들로부터 소말리아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의 항로(航路)와 국적(國籍) 및 적재화물의 종류 등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다. 해적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공격 대상 선박의 예상 이동경로에서 며칠을 기다리다 선박이 모습을 드러내면 공격을 감행한다.
‘걸어다니는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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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던 삼호드림호 석방을 위해 지불한 950만 달러는 해적들에게 지불한 몸값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
‘동아프리카 항해자 지원프로그램’(EASAP)의 앤드루 므완구라는 케냐 기업들이 해적과 피랍 선박회사 간 연락업무를 담당한다면서 인질 석방 협상은 주로 런던에서 이루어지며 선사(船社)들이 몸값을 지급하면 두바이와 케냐를 거쳐 전달된다고 밝혔다. 케냐의 법률회사와 보안업체는 선사와 해적의 협상과 계약서 작성에 관여하고 있으며, 항공 또는 해상운송 업체는 나이로비나 몸바사에서 몸값을 받아 비행기나 선박으로 소말리아에 있는 해적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런던과 두바이, 케냐 등은 어떻게 보면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을 부추기는 중요한 중개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적들은 또 몸값으로 받은 돈을 케냐의 부동산, 환전소, 주식거래, 상품수입 등에 투자하고 있다. 해적선을 전문적으로 수리해 주는 기술자도 있으며, 육상에서 연료와 식품을 대주는 공급책도 있다.
소말리아의 해적 산업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인질들의 몸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각국 선사들이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지불한 피랍(被拉) 선원의 평균 몸값이 전년에 비해 6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본부를 둔 비(非)정부기구인 ‘원 어스 퓨처 재단’(one earth future foundation)이 발표한 <해적의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각국 선사들이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지불한 평균 몸값은 전년도 340만 달러에서 540만 달러로 올랐다. 이는 2005년 평균 15만 달러에 비해 36배나 오른 것이다. 지금까지 몸값 중 최대액수는 삼호드림호 선사인 삼호해운이 지난해 11월 지불한 950만 달러였다. 이 때문에 해적들은 인질들을 ‘걸어다니는 황금’으로 부르고 있다.
각국 선사들이 선박 피랍을 예방하기 위한 우회(迂廻)항로 이용 등을 포함해 지난해 지출한 총 경제적 비용은 70억~120억 달러에 달했다.
또 피랍 선원 석방에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피랍된 선박 4척의 석방에 소요된 기간은 평균 150일로, 2009년 평균 55일보다 3배 정도 늘어났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또 인질들의 몸값을 더 뜯어내기 위해 갈수록 포악해지고 있다. 버스터 하우즈 유럽연합(EU) 연합함대(NAVFOR) 준장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최근 피랍 선원들을 거꾸로 매달아 바닷물에 집어넣거나 냉동고에 가두거나 때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하우즈 준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적들은 인질들을 어느 정도 대우했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각국이 인질들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인질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인질구출작전과 피란처 설치
해적이 활개를 치면서 국제사회의 대응방침도 강력해지고 있다. 인질의 안전을 위해 몸값을 지불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특공대를 투입해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으로 선회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08년 4월 이후 자국 선박이 4번이나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지만 모두 군사작전으로 해결했다. 미국도 2009년 4월 머스크-앨라배마호가 납치돼 선장 1명이 인질로 잡히자 특수부대를 동원, 해적 3명을 사살하고 선장을 구해냈다. 지난해 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특수부대원들은 슬로베니아 화물선 아리엘라호에 진입해 선원 24명을 구출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 21일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기 위해 ‘아덴만 여명’이라는 이름의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말레이시아도 우리나라의 청해부대가 작전을 감행한 같은 날 특수부대를 동원해 해적에게 잡혔던 선원 23명을 구출했다.
각국이 적극적으로 해적 소탕 작전을 펼치는 이유는 몸값을 지불하는 미지근한 대책이 오히려 화(禍)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번 몸값을 지불하면 두 번, 세 번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작전만으로는 해적을 완전 소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때문에 군사작전보다는 선박들이 피랍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위험지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경우 비용이 들더라도 민간무장요원을 탑승시키고 선박 안에 대피시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9월 독일 화물선 마젤란스타호 선원 11명은 해적들이 공격하자 배의 전원(電源)공급장치를 차단한 뒤 비상식량을 챙겨 대피처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해적들은 배는 탈취했지만 복잡한 구조의 항해장치를 다룰 수 없어 선박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사이 선원들의 신고를 받은 미군 군함이 나타나 해적들을 모두 생포했다.
지난해 5월 러시아 유조선 모스코보스키 우니베르시테트호 선원 23명도 아덴만을 지나던 중 해적들의 공격을 받자 자국 해군에 구조를 요청한 뒤 전력 공급장치를 차단하고 비상식량을 챙겨 대피처로 피신했다. 해적들은 배를 통제할 수 없었고, 추격해 온 러시아 구축함이 해적들을 제압, 선원들을 모두 구출했다.
안보리 중심의 군사협력체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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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영국 해군에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이 케냐의 몸바사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
소말리아 해역에서 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군함은 모두 50여 척이지만, 해적들이 인도양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군함들의 작전 범위는 한반도 면적의 40여 배에 달한다. 50여 척의 군함으로 이처럼 넓은 지역을 경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 산하의 국제협의체인 소말리아 해적퇴치 연락그룹(CGPCS)이 2009년 창설돼 매년 3~4회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있지만, 효율적인 군사적 대응 체제는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때문에 유엔안보리 상임 이사국들을 중심으로 각국이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해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말래카 해협의 해적들을 퇴치하는 데 효과를 본 해적퇴치협정처럼 각국이 협정을 맺고 정보공유 등 조직적인 소탕 방안을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은 해적행위에 대한 사법권을 어느 국가가 행사할 것인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에서 생포된 해적 5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법처리 문제가 대두됐었다.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을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해적재판소 설치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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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해적담당 고문인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
랑 전 장관은 “많은 해적이 체포되고 있지만 이 중 90%는 기소할 장소가 없어 다시 풀려나고 있다”면서 “특별재판소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연간 2500만 달러에 못 미칠 것이며 이는 기부국 회의를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랑 전 장관은 특별재판소 후보지로 소말리아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지역인 북부 펀트란드와 소말릴란드, 르완다 학살 전범(戰犯)재판소가 있는 탄자니아 아루샤 등을 들었다. 랑 전 장관의 제안이 채택된다면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처벌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랑 전 장관은 또 “국제사회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배후조종하는 세력들에 대한 검거ㆍ처벌을 위해 정보공유를 강화하고 자금동결 등 돈줄도 옥좨야 한다”고 강조했다. 랑 전 장관은 이와 함께 “해적들이 해외에 호텔이나 다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돈 세탁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사업체들에 대한 금융 추적도 철저하게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랑 전 장관의 제의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은 체포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자국(自國)에서 사법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용도 많이 들고, 해적들이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 데다, 수감(收監) 시설도 적합하지 않아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 영국 등은 케냐 등 인접국들과 양자(兩者) 협정 또는 양해각서를 체결해 체포한 해적들을 넘겨 재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동안 가장 많은 해적을 받아왔던 케냐 정부가 지난해 더 이상 해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13개국이 소말리아 해적 780여 명을 체포했지만, 이 가운데 90%는 수감시설이나 사법체계 미비 등의 이유로 체포와 동시에 석방됐다. 러시아의 경우 생포한 해적들을 무동력 고무보트에 태워 연안으로부터 540km 떨어진 바다에 버려 보트피플로 만들기도 했다. 때문에 국제사회가 한시바삐 해적들을 제대로 단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소말리아 안정이 관건
해적들을 퇴치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소말리아를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알 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알 샤바브는 해적들과도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해적들은 알 샤바브에 돈과 무기를 제공하고, 알 샤바브는 육지에서 해적의 뒤를 봐주고 있다. 특히 알 샤바브는 해적들을 “기독교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알라의 적에 맞서 해안을 지키는 전사”로 보고 있다. 알 카에다와 알 샤바브 및 해적들의 삼각 협력 체제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미군 중부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 마크 폭스 중장도 해적이 알 샤바브와 연계를 맺고 있는 점을 경고했다. 해적들과 알 샤바브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소말리아의 치안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EU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적극 지원하고는 있다. 미국과 EU는 소말리아 정부의 자국 치안력을 우선적으로 보강해 안정을 도모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미국과 EU는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소말리아 정부군의 전력(戰力) 강화에 나서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군 병력은 현재 1만여 명이지만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들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소말리아가 안정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현 정부의 재건 노력과 극단주의 세력과의 싸움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소말리아의 안정 회복에 대한 지원이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극복할 수 없는 도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말대로 소말리아처럼 실패한 국가들의 국가 건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해적을 소탕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때문에 국제사회도 인내심을 가지고 소말리아의 국가 건설에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소말리아가 언제쯤 최악의 실패한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