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뉴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를 아십니까? : 월간조선

2005년 11월 22일, 영국 의회에서는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영국 정치인이 아닌 미국 정치인의 이름을 딴 단체의 창립식이 열린 것이다. 군사력을 확충하고 민주국가 간 동맹을 공고히 하며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단체의 이름은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Henry Jackson Society)였다.

헨리 잭슨(Henry Jackson·1912~83)은 1941년 의회에 입성한 뒤 42년 동안 상·하원(上·下院) 의원으로 활약한 미국 정계의 거성(巨星)이었다(박스 기사 참조). 그러나 영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생소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불과 여섯 달 전의 총선(總選)에서 얼굴을 붉히며 서로를 비방하던 보수와 진보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보수당의 마이클 고브(Michael Gove·교육장관), 에드워드 바이지(Edward Vaizey·현 문화·미디어·스포츠 차관 겸 비즈니스·혁신·기술 담당차관), 그리고 데이비드 윌렛(David Willetts·현 대학·과학 담당 부장관) 의원 등이 눈에 띄었다. 진보 진영에서는 노동당의 지슬라 스튜어트(Gisela Stuart) 이외에도 데니스 맥셰인(Denis MacShane·전 유럽 담당 부장관), 그레그 포프(Greg Pope)와 재키 로런스 (Jackie Lawrence) 의원 등이 동참했다.

멤버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옥스퍼드대(大)의 버넌 보그대너(Vernon Bogdanor)와 채텀하우스의 폴 코니시(Paul Cornish) 등 저명한 학자들뿐 아니라 리처드 디어러브(Richard Dearlove) 정보국 국장과 육군 아이리시 연대(Irish Regiment)의 팀 콜린즈(Tim Collins) 대령 등 전직(前職)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반전체주의》(反全體主義)의 저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올리버 캄(Oliver Kamm)과 《더 타임스》(The Times)지(紙)의 부(副)편집장인 제라드 베이커 (Gerard Baker) 등 저명한 언론인들도 힘을 보탰다.

그뿐이 아니었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둥지를 틀 예정이었다. 브랜던 심스(Brendan Simms)와 앨런 멘도저 (Alan Mendoza) 등 이 대학 부설 국제학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 소속 학생과 교수들이 창설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대학 교수와 학생들의 주도로 캠퍼스 한복판에 진보와 보수성향의 학자, 관료,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들이 하나가 되는 싱크탱크가 탄생한 셈이었다. 이처럼 독특한 단체가 등장한 데는 영국 특유의 지적(知的) 전통과 일련의 정치적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헨리 ‘스쿱’ 잭슨은 누구인가

리버럴이면서도 강력한 안보를 주장했던 미국 정치가 헨리 ‘스쿱’ 잭슨.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딴 ‘스쿱(Scoop)’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잭슨은 독특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국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리버럴 성향의 정책을 추구했다. 1957년과 1965년에 입안된 흑인인권법안(黑人人權法案)을 지지하는 등 소수(少數) 인종의 권익(權益) 증진을 위해 애썼다. 아울러 유가(油價)통제정책을 찬성하는 등 정부가 경제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해안보호법·환경보호정책법을 입안하는 등 환경 보호에도 열성이었다.

하지만 헨리 잭슨은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보수 정치인들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의원직을 버리고 자원입대를 했던 잭슨은 미소(美蘇) 냉전이 격화되자 대륙간탄도탄과 핵 잠수함 등 전략 핵 전력(戰力)을 확충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미사일방어체제 개발과 배치를 역설하는 한편 군축(軍縮) 협상을 반대했다. 그는 1979년에는 SALT II의 상원 비준을 막았는데, 합의서만 믿고 대규모 군축을 하기엔 소련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한편 잭슨은 인권(人權)외교의 선봉에 섰다. 2차 대전 직후 부켄발트 (Buchenwald)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경제통상 정책을 인권개선의 지렛대로 삼았다. 그는 인종 차별을 일삼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할 것을 요구했다. 1974년에는 동료 의원인 찰스 배닉(Charles Vanik)과 함께 인권 개선을 소련과의 통상(通商)관계 정상화(正常化)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말한다》(The Case for Democracy)의 저자로 유명한 나탄 샤란스키(Natan Sharansky) 등 소련 인권 운동가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도왔다. 이렇게 눈부신 입법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잭슨은 관운(官運)이 없었다. 1972년과 1976년 민주당 대선(大選)후보 경선(競選)에 나섰지만 연거푸 고배(苦杯)를 마셨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사후(死後)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은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그에게 추서(追敍)했다. 해군은 오하이오급(級) 전략 핵잠수함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동급(同級) 잠수함의 함명(艦名)으로 인명(人名)을 사용한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동료 의원들은 2005년 통과된 ‘북한인권법’을 그의 이름을 따 ‘스쿱 잭슨 법’이라고 명명(命名)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전통

19세기 후반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추진했던 파머스턴 경.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의 탄생에 자양분을 제공해 준 지적 전통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보수주의 전통에 녹아 있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al Interventionism)다. “민주주의, 인권, 법치(法治)주의와 같은 가치를 옹호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 군사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이 대외(對外)정책 노선은 19세기 영국이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싹텄다. 노예무역이 절정기에 이르렀을 무렵 영국은 한 해 300만명이 넘는 노예를 수출했다. 이들이 일하는 노예 농장을 통해 전(全)세계 사탕수수의 55%가 생산됐다. 하지만 영국은 결국 노예제 폐지의 길로 나섰다.

기독교도들이 주축이 된 반노예제 운동의 활약에 힘입어 1807년에는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 자체를 불법화했다.

새로운 정책의 첨병에는 영국 해군이 있었다. 해군은 노예선을 검문해서 노예를 해방시켰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노예 무역항을 초토화했다. 보수당의 소(小) 피트(William Pitt the Younger)와 조지 캐닝 (George Canning) 총리 시기에 본격화된 개입주의는 자유당 소속인 파머스턴경(卿·Lord Palmerston)과 윌리엄 글래드스톤(William Gladstone) 총리 시대에도 계승됐다.

파머스턴은 오토만 제국에 맞선 그리스인들의 독립 운동을 지지했고 1848년 민주주의 혁명이 유럽 대륙을 휩쓸자 혁명주의자들의 편에 섰다. 이탈리아 독립운동에 무기를 제공했고, 헝가리인들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글래드스톤의 정책도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1876년 오토만 제국이 불가리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자, 그는 이를 맹비난했다. 그는 “대외 정책은 좁은 의미에서의 국익(國益)을 뛰어넘어야 한다”면서 “‘자유에 대한 사랑(Love of Freedom)’이 정책의 근간에 놓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둘째, 영국 특유의 진보주의인 페이비언주의(Fabianism)다. 1884년 시드니 웹(Sidney Webb), 베아트리스 웹 (Beatrice Webb),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등이 중심이 되어 태동한 페이비언주의는 언뜻 보면 다른 진보 이론들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페이비언주의는 최저(最低)임금제 도입, 전 국민에 대한 의료보장제도 도입 등 사회개혁과 의원직을 세습하던 상원(House of Lords) 폐지 등 정치개혁을 추구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에 있어서 이들은 다른 급진주의와 달랐다. 폭력 혁명을 반대하고 점진적 개혁를 선호한 것이다.

유화정책을 반대한 페이비언주의자들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주장했던 시드니 웹(왼쪽)과 베아트리스 웹(오른쪽).

대외 정책도 달랐다. 페이비언주의는 대부분의 급진주의와 달리 반전주의(反戰主義)와 반(反)제국주의, 평화지상주의를 멀리했다. 대신 군사력 확충과 팽창주의 정책을 지지했다. 당시 영국이 추구하던 제국주의 정책을 덮어놓고 비판하는 대신, 그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아울러 이들은 제국주의를 국내 개혁을 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영국이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쟁에 참가할 노동자와 중산층(中産層)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교육을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논리를 폈다.

페이비언주의 특유의 외교안보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도 계속됐다. 당대의 많은 기성 정치인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宥和)정책을 추구했지만 페이비언주의자들은 달랐다. 타임머신과 우주전쟁 등의 저자로 유명한 H.G. 웰스(H.G.Wells)는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 등의 책을 통해 히틀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1차 대전 참전 용사이기도 했던 그는 “히틀러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만 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허구성에 경종(警鐘)을 울렸다. 덕분에 그는 나치스가 작성한 영국 점령시 제거 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페이비언주의자들의 모임인 페이비언 소사이어티가 1940년 발간한 《노동당의 다음 행보》(Labour’s Next Step)도 강한 어조로 유화정책을 반대했다. 책자는 전쟁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층은 전쟁을 방관하거나 총파업을 벌이려 한다고 꼬집으며 히틀러에 대한 강경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노동자의 이익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역설했다.

영국에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토양이 있었던 셈이었다. 이러한 지적 전통이 21세기에 되살아나게 된 데는 두 가지 정치적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이저의 유화정책에 실망

첫째, 존 메이저 전 총리의 유화정책에 실망했다. 기대와는 달리 미소(美蘇) 냉전(冷戰)의 종결은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는 내전(內戰)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집단 살육의 희생양이 됐다. 1992년에는 엄연한 유럽대륙인 구(舊)유고슬라비아에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다. 보스니아의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강간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메이저는 내전에 개입하는 것을 망설였다.

영국의 개입은 러시아를 자극한다는 것과 영국에는 내전을 중단시킬 만한 충분한 병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더글러스 허드 (Douglas Hurd) 외무부 장관과 맬컴 리프킨드(Malcolm Rifkind) 국방부 장관은 학살의 주범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vodan Milocevic)가 이끄는 세르비아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무력 사용도 거부했다. 1994년 2월 일명 ‘마켓 스퀘어 학살’이 자행된 직후 미국과 프랑스는 UN 결의안과 NATO 차원의 최후통첩을 추진했지만 영국은 반대 입장을 반복했다.

그뿐 아니라 영국은 UN의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 금수(禁輸) 조치를 지지했다. 무기 수출이 허용될 경우 확전(擴戰)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럴 경우 현지에서 평화유지 업무를 보고 있는 서방 병력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방관 정책에 대해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메이저를 강하게 비판했다. 메이저는 히틀러에 대해 유화정책을 고수했던 “네빌 체임벌린의 환생(還生)”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자유주의 개입주의와 페이비언주의의 전통을 부활시켜 학살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블레어의 개입주의 반대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의 세미나 모습.

둘째, 토니 블레어의 개입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 보수와 진보 진영 내부의 불만은 블레어의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며 상당 정도 해소되는 듯했다. 199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집권한 블레어는 메이저와 달랐다.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사력 사용을 망설이지 않았다. 199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에 의한 인종청소가 재연(再演)되자 그는 즉각 UN이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그러한 노력이 벽에 부딪혔지만, 블레어는 좌절하지 않았다.

NATO 핵심 멤버들을 설득해서 독자적으로 군사 작전을 단행하도록 했다. 1999년 3월 24일,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등이 주축이 되어 세르비아 군(軍)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다국적(多國籍) 공군과 해군이 참여한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세 달도 되지 않아 밀로셰비치는 국제 사회의 압력에 굴복했고, 이듬해에는 권좌에서 축출됐다. 세르비아에는 선거에 의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블레어의 군사력을 사용한 인권 외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 5월에는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 영국군을 파병했다. 내전으로 인해 대량 살상이 계속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블레어는 우선 고립되어 있던 자국민(自國民)과 영연방(英聯邦) 국민들을 구조해 냈다. 그 뒤 추가로 병력을 투입해서 본격적인 UN 평화유지 활동이 가능하게 되는 터전을 닦았다. 그 결과 2002년 1월 18일, 내전이 종식됐다. 5월달에는 정권교체가 이뤄져서 아마드 카바(Ahmad Kabbah)가 이끄는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전(戰) 이후 이러한 대외 정책은 위기에 봉착했다. 블레어는 이라크가 개발하고 있다는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개전(開戰) 이유로 들었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영국군의 희생은 늘어만 갔다. 여론이 악화되어 절대 다수의 영국인들이 블레어를 비난했다.

그러자 한동안 잠잠했던 “무슨 일이 있어도 무력 사용을 반대한다”는 반전(反戰)주의와 “나라 밖 문제는 신경을 끄고 살자”는 고립주의(孤立主義)가 고개를 들었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출범했다.

군사력·가치동맹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 확산 추구

이런 환경에서 출발한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지금이야 말로 특유의 지적 전통에 기반한 대외 정책을 개발할 때”라고 주장한다. 로저 스크루턴 (Roger Scruton) 등이 개탄한 바 있는 “영국의 전성기는 끝났다”는 병적(病的)인 비관주의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일 뿐 아니라 막강한 해·공군력을 자랑하는 군사강국이며, 과거 대영제국(大英帝國)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크게 세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첫째,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군사력 만능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군사력 이외에도 많다고 한다. 중동부 유럽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 경제지원을 했던 것이나 이들을 EU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경제와 외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단,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경우에 따라 군사력이 큰 힘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장거리전력투사(長距離戰力投射) 능력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둘째, 가치동맹(價値同盟)을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영국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일방주의 (Unilateralism) 대외 정책을 배격한다. 대신 민주적 가치를 함께하는 나라들과의 협력과 이들이 주축이 된 국제기구들의 역할을 중시한다. 그렇기에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맹신(盲信)하는 것을 경계한다. UN 본회의(本會議)나 최고 의결기관인 안전보장이사회가 중국 등 비(非)민주주의 국가의 입김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미(英美)동맹이나 NATO, 그리고 EU를 중시한다. 민주 국가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셋째,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 한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민주주의가 서구(西歐) 사회의 전유물이라는 주장을 배격한다. 이들은 민주주의는 인류 모두가 공유(共有)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 믿으며 이를 전 세계에 퍼뜨리려 한다. 한 나라의 대외 정책은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자국민들을 탄압하는 정권의 대외 정책은 호전적(好戰的)이기 마련”이라며 “이러한 정권에 결연히 맞서는 것이 곧 평화를 증진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 ‘민주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유스턴 그룹

영국 내에서 좌파(左派)와 우파(右派)의 경계를 뛰어넘는 외교안보 정책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활발한 노력이 전개되어 왔다.

‘정의론(正義論)’을 전쟁 행위에 확대 적용한 ‘정의로운 전쟁(Just War)’ 이론의 세계적 귄위자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프린스턴대 고등학술연구소(Institute of Advanced Studies) 교수와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잡지인 《디센트》(Dissent)지의 공동 편집장이자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연구가인 노먼 제라스(Norman Geras) 맨체스터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유스턴 그룹(Euston Group)이 대표적인 예다.

2006년, 진보성향의 시사지인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지 지면을 통해 ‘유스턴 선언문(Euston Manifesto)’을 발표하며 활동을 개시한 유스턴 그룹은 전 세계에 걸쳐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뿐 아니라 평등과 같은 진보주의 어젠다의 확산을 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일부 좌파 운동 단체들에 대한 우려의 뜻도 표했다. 이들이 “나의 적(敵)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단순도식적 사고(思考)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 맞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적 권리를 짓밟는 집단과 정부들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라고 칭한 유스턴 그룹 멤버들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스턴 그룹과 많은 진보단체들의 유사한 노력에 힘입어 영국의 주류(主流) 진보 언론에서는 김정일 정권과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를 옹호하는 기사를 찾기 힘들다. 《뉴 스테이츠먼》은 김정일을 세계 최악의 독재자 10명 중 하나로 꼽았다. 《가디언》지(紙)는 최근 ‘독재자의 저서(Dictator-Lit)’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며 김정일의 <인민 대중에 기반한 우리식 사회주의는 영원하리>(Our Socialism Centered on the Masses Shall Not Perish)를 “거짓말과 망상으로 가득한 책”이라고 조소(嘲笑)했다.

북한 자유화 세미나도 열어

이 같은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먼저 케임브리지대 피터하우스(Peterhouse) 칼리지에 위치한 본부 이외에도 런던과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등에 지부를 두고 미주, 유럽,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등 지역뿐 아니라 환경 등 10여 개의 연구 주제에 대한 정책을 연구한다. 소속 연구진은 정기적으로 정책 자료집을 발간하는 한편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TV에 출연하거나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하고 있다.

아울러 외부 연사들을 초빙해서 강연회를 여는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해왔다. 2007년 9월에서 2010년 12월 사이 개최된 주요 행사는 마이클 처토프 (Michael Chertoff) 미(美)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장관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현(現)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총사령관과의 간담회를 비롯해 총 185회에 이른다. 올해 3월에는 송상현(宋相現) 국제사법재판소 소장이 ‘21세기의 국제법’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2008년 10월에는 데이빗 알턴(Lord Alton of Liverpool) 경(卿)을 초대해 북한 자유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끝으로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현직 정치인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소사이어티는 워싱턴 D.C.에서 시작된 외교정책 관련 청년전문가 모임(Young Professionals on Foreign Policy) 런던 지부 운영을 지원한다. 차세대 외교 브레인을 키우기 위해서다. 동시에 스튜어트 노동당 의원, 패트릭 머서(Patrick Mercer) 보수당 의원 그리고 폴 키치(Paul Keetch) 자민당 의원을 앞세워 의회에 영미 관계 및 국제안보 관련 의원 모임(All Party Parliamentary Group on Transatlantic and International Security)을 조직, 정책 현안에 대한 연구를 대행(代行)해 주는 한편 의원 외교를 지원해 주고 있다.

한국 진보를 돌아보게 해

이와 같은 비전이 현실화되고 활동이 결실을 맺기 위해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는 적어도 두 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신(新)보수주의 단체라는 비판을 극복해야 한다. 멤버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사이어티에는 네오콘 단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대표적인 미국 네오콘 인사들이 소사이어티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라크전 이후 미국 신보수주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를 내린 영국에서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가 발언권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보수당 정부의 긴축 정책을 극복해야 한다. 야심찬 비전을 추구하며 영국이 국제정치 무대의 주역으로 다시 탄생하기를 꿈꾸는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한 꿈을 실현하려는 생각을 접어야 할 듯하다. 2010년 5월 집권한 보수당 정부는 국방 외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로 인해 공군은 1차 대전 이래 최소 규모로 줄어들었고 해군은 앞으로 10년 동안 함재(艦載)전투기 없이 작전을 수행하게 됐다. 소사이어티는 긴축의 시대에 걸맞은 대외 정책 어젠다와 실현 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사이어티는 우리를 뒤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좌(左)와 우(右)를 뛰어넘는 대외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가장 큰 걸림돌은 좌파(左派)의 자기모순적인 태도다. 민주화 운동의 적자(嫡子)라고 자처하면서도 대다수 진보 세력은 세계에서 가장 퇴행적(退行的)인 독재국가인 북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북한의 군비증강이나 군사도발은 감싸고 돌면서도 우리나라의 국방 현대화 노력은 한사코 반대해 왔다.

이와 관련, 최근 일부 진보 성향 인사들이 북한의 권력 세습과 연이은 무력 도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고무적(鼓舞的)이다. 접적(接敵)지역의 민주당 지자체장을 중심으로 국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한국판 소사이어티가 등장할 수 있기를, 보수와 진보 성향의 학자, 언론인, 관료 그리고 정치인들이 하나가 되어 대외 정책을 모색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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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잭슨 소사이어티’를 아십니까?

保革이 하나 되어 안보 바탕 둔 자유민주주의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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