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2010년 11월 17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세계평화포럼 10주년 기념 국제워크숍에서 기조발표문으로 나온 <대한민국이 모색하는 세계평화>라는 논문의 일부(5개 章 가운데 제4장)를 발췌한 것이다.
이 글은 2010년 11월 17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세계평화포럼 10주년 기념 국제워크숍에서 기조발표문으로 나온 <대한민국이 모색하는 세계평화>라는 논문의 일부(5개 章 가운데 제4장)를 발췌한 것이다.
- 중국과 인도의 근대화는 세계의 에너지, 식량, 물, 자원 등의 교란 내지 재앙요인이다. 이는 거대 인구 공동체의 짧은 시간(중국 30년, 인도 15년) 내에 달성한 고도성장의 결과다. 사진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중국 톈진 지역의 한 화학 공장.
1 중국문제군(群)의 딜레마는 곧 인류공통 문제군
“인민폐 절상에 압력을 넣지 마라. 많은 수출회사가 문 닫고 농민공(農民工)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일 중국에 사회 경제적 동요가 생기면 이는 세계적 재앙이 될 것이다.”(원자바오 중국총리, 2010년 10월 6일, 브뤼셀에서)
중국 총리 원자바오(溫家寶)가 브뤼셀에서 열린 중국-EU 정상회의에서 EU의 인민폐 절상요구를 거절하면서 한 말이다.(파이낸셜 타임스 10월 7일자)
미국서 299달러에 팔리는 이동전화기의 중국 제조회사 부가가치는 오로지 4달러에 불과하다. 서방의 인민폐화(貨) 절상압력은 이 작은 이윤마저 소멸시켜 중국의 수출을 막고, 제조업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해고될 것이다. 중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사회경제 혼란이 일어나서, 세계는 중국으로의 수출을 멈추고 보호무역으로 가는 재앙이 오리라는 게 원 총리의 논리이다. 마치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을 방문하여, 만약 서방 선진국이 중국의 경제성장을 돕지 않으면 2억의 중국인 보트 피플이 태평양을 떠다닐 텐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반문한 것을 연상케 한다.
30년 전 덩샤오핑의 ‘2억 보트 피플’ 위협은 협박으로 들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도와 달라는 호소로 들렸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印度)에서 1인당 소득이 선진국의 10분의 1(중국) 또는 30분의 1(인도)도 안되는 수준의 근대화가 진행된 것만으로도 이미 세계의 에너지, 식량, 물, 자원, 환경, 통화, 무역, 그리고 군사와 지정학에 결정적 교란 요인 또는 재앙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또는 ‘인도’가 만든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근대화라는, 서양이 전파한 경제성장 방식(자원소비), 에너지 다소비 생활방식(자동차, 고속도로), 거주방식(도시화)이, 중국과 인도라는 세계최대 인구대국에 이식된, 즉 ‘서양 근대화의 세계화’, ‘근대화의 히말라야권(圈·히말라야를 사이에 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동아시아를 합친 권역) 침투’로 생긴 당연한 결과이다. 서양이 앞서 간 성장과정을, 역사상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거대인구 공동체들(중국과 인도)이, 서양의 과거에 없었던 고도성장 속도로 짧은 시간(중국 30년, 인도 15년) 내에 달성한 결과가 바로 중국문제군(群)이요, 인도문제군이다.
히말라야권의 문제해결 없인 지구 평화도 없어
따라서 근대의 종말, 지구촌사회의 궁극적 한계를 재촉하는 중국문제군, 인도문제군은 중국의 문제나 인도의 문제, 또는 중국만의 문제나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양근대의 세계화’, ‘서양근대의 히말라야권 침투’가 발생시킨 결과이기 때문에, 근대 제도, 근대 시스템, 근대 경제, 근대 사회, 근대 국제관계의 궁극을 재검증·재평가·재창조해야 하는 도전이다. 그것은 지구촌 공통의 문제군이요, 공통의 도전이고, 공통의 작업이어야 한다. 중국과 인도의 에너지 문제는 이들 두 나라의 문제일 뿐 아니라, 특히 에너지 다소비 선진국은 물론, 앞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할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공통의 도전이요 과업이다. 식량, 물, 환경 모두 같다.
히말라야권 문제군의 해결이 없으면 지구 위의 평화도 없고, 그 어느 나라든 안전도 없다.
▲ 중국, 인도문제군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종말 현상은 과거의 문명 변화의 흐름과 달리, 국가·지역·인종 간의 갈등과 지정학적 세력이동을 넘어, 지구·기후·환경·인류라는 생명의 궁극을 때리고 있다. 지구의 존재,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 중국, 인도 모두 에너지 공급과 CO2 배출 감축을 위하여 대대적 원자력 발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2020년까지 22기, 앞으로 35년간 300기의 추가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으로 나오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은 1만년, 20만년, 100만년 단위로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지질학적 시간의 대상이다. 인류의 역사시간을 넘는 시간이다. 근대는 인류역사에서 6000년이라는 고고학적 시간이 넘는 긴 미래의 시간을 안전관리해야 하는 인공물(man-made artifact)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근대는 근대의 세계화를 통해 인간, 역사, 지구의 궁극(ultimatum)을 때리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기존의 선진국은 히말라야권 문제군, 즉 인류문제군 혹은 인류공통의 과제를 공동으로 협력해서 대처하려 하지 않고, ‘중국문제’ ‘인도문제’로만 보고 있는 데서 해결의 접근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의 역설(逆說)
생명자원과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결정적 역설(逆說)은, 근대화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자원과 CO2를 배출해 온 서양 선진국들이 아직도 생태적 자원과 환경에서 여유가 있는 데 비해, 서양선진국 기준으로는 앞으로 몇 배 몇십 배를 더 써야 할 히말라야권(중국과 인도)은 그 여유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World Wildlife Fund)은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을 공급하기에 필요한, 생물학적으로 생산가능한 땅과 바다의 공간(the area of biologically productive land and sea required to provide the resources we use and to absord our waste)을 생태학적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라 하고, 이를 150개 국가별로 계산하여 <살아있는 지구 보고>(Living Planet Report)를 냈다. 2005년 현재 인류 전체의 생태학적 발자국은 175억gha(global hectares)이고 1인당으로는 2.7gha였다. 그런데 공급 측면에서 보면 전체 136억gha, 1인당 2.1gha에 불과하여, 이미 지구의 공급 능력을 초과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계산대로라면 현재까지의 방식으로 2050년에는 인류를 위해 34개의 지구가 더 필요하다.
문제 해결의 주도권이 히말라야권으로 넘어왔음을 자각해야
WWF의 1인당 발자국은 세계 150개 국가 중 미국,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모든 서양 선진국이 30위 이내에 있고, 세계평균 2.7gha보다 미국은 4배,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각각 3배 이상 많은 생태학적 자원을 쓰고 있다. 이에 비하면 중국은 73위, 인도는 132위로, 세계 평균을 훨씬 밑돈다. 일본은 21위, 한국은 37위이다. 1인당 1만 달러 이상 선진국은 지구에 부담을 주는 생태발자국이 현저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태발자국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생물학적 공급능력(biocapacity)이다. 1인당 생물학적 공급능력에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이 모두 30위 이내이며, 프랑스는 42위로 세계 평균보다 여유가 많다. 선진국 중 세계 평균보다 뒤진 나라는 독일 68위, 영국 79위, 스페인 89위, 스위스 93위였다. 이에 비하면 히말라야권의 중국 118위, 인도 140위, 파키스탄 139위, 방글라데시 149위를 주목해야 한다. 아시아의 선진국 성공의 모델로 불리는 한국이 129위, 일본 131위, 그리고 싱가포르가 조사대상 150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1인당 생물학적 공급능력 차이는 6배, 스웨덴과의 차이는 12배, 캐나다와는 25배의 차이가 난다. 인도는 중국보다도 두 배 더 나쁘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1인당 기준으로 서양선진국은 현재도 생태발자국이 높은 생명자원 다소비국일뿐더러 생물자원 공급능력에서도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히말라야권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금도 생태발자국이 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큰 환경부채(중국이 이미 세계 최대 CO2 배출국)를 지고 있다. 뿐더러 생물학적 공급능력의 현저한 부족으로 현재와 같은 성장방식으로는 지구의 생태능력을 더욱 고갈시킬 것이고, 선진국과의 생태·생물 소비능력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선진권에 진입했다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나 아직 절대빈곤 인구가 1억~3억대의 규모로 남아 있는 저소득 중국과 인도 모두, 생명자원을 결정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즉 생물학적 공급능력 여유가 있는 선진국가나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 등지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양 선진국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히말라야권 문제군―인류지구촌 문제군이자 세계평화와 인류의 생명자원, 환경문제군―의 절실성과 긴박성이 중국이나 인도, 한국, 일본보다 훨씬 약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정치적으로나 국제역학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쪽에서 새 세계질서가 창조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히말라야권 문제군 해결의 결의와 탐구와 접근의 주도권도 히말라야권에서 나와야 한다. 히말라야권의 생명자원, 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즉 근대성을 활용하면서 근대성을 넘는 대체(alternative)를 모색해야 한다. 과학기술(X에너지, Xwater, Xfood), 사회 시스템, 대체 생활방식(alternative way of life)의 모색이라는 세 가지 접근을 G4(한국, 일본, 중국 , 인도)가 공동 협력으로 추진해야 한다.
3 G4와 G8의 새로운 리더십과 대타협(Big Deal)
히말라야권 문제 해결의 어려움은, 단순히 근대를 부정하고 과거 또는 동양(Orient or Asia)으로 복귀하거나 서양과 대적하여 국가단위로 승리하기만 하면 되는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의 결과 중 지나친 이기주의, 가족과 공동체의 파괴, 복잡성의 횡포(tyranny of complexity), 중독성 소비, 비만 등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자유, 인권, 평등, 복지, 빈곤 퇴치의 가치는 히말라야권도 확장해야 할 가치요 지향이다. 이런 가치를 제고시키지 못하는 접근 방법은 해결로 가는 길이 아니다.
중국, 인도의 26억 현재 인구, 그리고 2040년까지 32억(여기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합치면 약 40억)에 이르는 이들 나라의 시민이, 빈곤을 타파하고 기본적 수요(basic needs)를 충족하며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를 향유하면서, 생명자원(에너지, 먹을거리, 물)의 안전한 공급과 환경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 과제 역시 G4의 지도자들이, 단순히 환경문제, 생명자원 문제의 해결만을 위한 공동협력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유·복지·평등의 시민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도 히말라야권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각성을 할 필요가 있다. 덩샤오핑이나 원자바오의 경고성 호소가, 단순히 외부의 협력을 호소하는 것이나 내정간섭 반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자유·복지·평등사회로 가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외부세계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서방 선진국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현재의 세계적 불균형과 2008년의 금융위기를 만든 월스트리트의 불공정한 금융과 탐욕의 문화가 제거되지 않는 한, 그리고 중국이 편협한 중화(中華)주의를 버리고 성장·환경·안전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지향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미·중의 G2 협력의 지구촌적 리더십은 바라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그런 변혁, 혁신 패러다임 변화의 동인(動因)과 리더십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전직 대통령과 전직 총리들까지 기업계와 독재정부의 개별 이익을 위한 로비스트로 뛰는 불공정, 부패, 이기적이고 반(反)공익적, 반지구촌평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한, 중국문제군 해결을 위한 공익과 지구촌 공공재를 지향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기존 서구 질서에서 구체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원천의 하나가 중국과 미국의 불균형이었고 그 점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정치 로비스트들의 책임은 크다(이먼 핑글턴).
한·중·일·인도의 문제해결력 절실
이들로 하여 미국의 이념이 오염되고 시스템이 파괴되었다. 2008 금융위기가 미국 금융 시스템, 미국 경제운영 시스템의 결함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공인된 사실이다. 리먼브러더스만 파산시키지 않았으면 위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클린턴, 부시 대통령 부자, 루빈, 그린스펀, 폴슨, 웰치, GM, 골드만삭스, AIG로 대표되는 시스템 실패였다. 그 결정적 하자는, 어떤 경제행위도 사회 규범 안의 자유활동이어야 하는데, 경제 자유라는 이름으로 공익,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을 침범하거나 파괴한 데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를 ‘미국형 기업 복지주의’(Corporate Welfarism American-Style)라 명명했다. 시민의 복지가 아니라 기업과 지배주주 이익을 위하여 국가를 최종위기의 부담자(bearer of risk of last resort)로 써먹는다는 해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삶의 방식, 소비의 방식, 정치의 방식을 바꾸어야만 하는데, 월스트리트와 베이징의 정치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결과적으로 합작하여 만들어낸 금융위기와 중국문제군에서 보듯, 그 해결을 위한 새 접근, 새 모색의 돌파구 찾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중국을 ‘시장’으로만 보는 서방 기업과 정치 로비스트(영국의 블레어 전 총리까지), 그리고 중국만의 부강을 추구하는 중국 지도자들만으로는 중국문제군은 더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히말라야권 문제군 해결은 근대에 앞섰던 서양이 아니라 현재적 문제의 당사국이 된 중국·인도와, 근대 수준에서는 이들보다 앞섰지만 현재와 미래 도전에서는 히말라야권 문제군을 같이 안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권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자각하고, 지구촌 생태발자국이 지속가능하게 되돌려야겠다고 결의하는 네 나라의 리더십 개편이 절실하다. 생물학적 공급능력의 여유가 많은 나라의 리더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가 선도하지 않을 것이고, 못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이라는 정치 레토릭과 환경 비즈니스만 있을 것이다. G4가 앞장서고 현재적 영향력이 큰 선진국이 협력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G4가 모색해야만 한다.
일본을 뺀 G8(미국, 캐나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은 생명자원 낭비와 CO2 배출과 금융파괴의 ‘근대병’(the diseases of modernity)의 원죄를 씻어 근대를 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G4는 ‘근대병’의 생태발자국을 밟지 않으려는 대체의 길 추구, 즉 세 가지 접근을 주도하여 G8도 끌어내고 껴안는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지구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로 중화주의를 억제하는 데서도, 중국문제군 해결에서도, G8과 중국, 인도, 한국과 일본이 공감과 연대로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G4와 G8의 대협상이 여러번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기다리나. 코펜하겐의 실패, 브뤼셀의 실패, IMF의 실패, G20의 혼미, 그것은 1929~33년의 재현인 2008~2012년이거나, 세계적 프롤레타리아와 중산층과 종교·문명 갈등이 겹친 비극적 근대의 종말, 대전쟁보다 대폭발이 기다릴 것이다.⊙
“인민폐 절상에 압력을 넣지 마라. 많은 수출회사가 문 닫고 농민공(農民工)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일 중국에 사회 경제적 동요가 생기면 이는 세계적 재앙이 될 것이다.”(원자바오 중국총리, 2010년 10월 6일, 브뤼셀에서)
중국 총리 원자바오(溫家寶)가 브뤼셀에서 열린 중국-EU 정상회의에서 EU의 인민폐 절상요구를 거절하면서 한 말이다.(파이낸셜 타임스 10월 7일자)
미국서 299달러에 팔리는 이동전화기의 중국 제조회사 부가가치는 오로지 4달러에 불과하다. 서방의 인민폐화(貨) 절상압력은 이 작은 이윤마저 소멸시켜 중국의 수출을 막고, 제조업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해고될 것이다. 중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사회경제 혼란이 일어나서, 세계는 중국으로의 수출을 멈추고 보호무역으로 가는 재앙이 오리라는 게 원 총리의 논리이다. 마치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을 방문하여, 만약 서방 선진국이 중국의 경제성장을 돕지 않으면 2억의 중국인 보트 피플이 태평양을 떠다닐 텐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반문한 것을 연상케 한다.
30년 전 덩샤오핑의 ‘2억 보트 피플’ 위협은 협박으로 들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도와 달라는 호소로 들렸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印度)에서 1인당 소득이 선진국의 10분의 1(중국) 또는 30분의 1(인도)도 안되는 수준의 근대화가 진행된 것만으로도 이미 세계의 에너지, 식량, 물, 자원, 환경, 통화, 무역, 그리고 군사와 지정학에 결정적 교란 요인 또는 재앙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또는 ‘인도’가 만든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근대화라는, 서양이 전파한 경제성장 방식(자원소비), 에너지 다소비 생활방식(자동차, 고속도로), 거주방식(도시화)이, 중국과 인도라는 세계최대 인구대국에 이식된, 즉 ‘서양 근대화의 세계화’, ‘근대화의 히말라야권(圈·히말라야를 사이에 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남·동아시아를 합친 권역) 침투’로 생긴 당연한 결과이다. 서양이 앞서 간 성장과정을, 역사상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거대인구 공동체들(중국과 인도)이, 서양의 과거에 없었던 고도성장 속도로 짧은 시간(중국 30년, 인도 15년) 내에 달성한 결과가 바로 중국문제군(群)이요, 인도문제군이다.
히말라야권의 문제해결 없인 지구 평화도 없어
따라서 근대의 종말, 지구촌사회의 궁극적 한계를 재촉하는 중국문제군, 인도문제군은 중국의 문제나 인도의 문제, 또는 중국만의 문제나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양근대의 세계화’, ‘서양근대의 히말라야권 침투’가 발생시킨 결과이기 때문에, 근대 제도, 근대 시스템, 근대 경제, 근대 사회, 근대 국제관계의 궁극을 재검증·재평가·재창조해야 하는 도전이다. 그것은 지구촌 공통의 문제군이요, 공통의 도전이고, 공통의 작업이어야 한다. 중국과 인도의 에너지 문제는 이들 두 나라의 문제일 뿐 아니라, 특히 에너지 다소비 선진국은 물론, 앞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할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공통의 도전이요 과업이다. 식량, 물, 환경 모두 같다.
히말라야권 문제군의 해결이 없으면 지구 위의 평화도 없고, 그 어느 나라든 안전도 없다.
▲ 중국, 인도문제군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종말 현상은 과거의 문명 변화의 흐름과 달리, 국가·지역·인종 간의 갈등과 지정학적 세력이동을 넘어, 지구·기후·환경·인류라는 생명의 궁극을 때리고 있다. 지구의 존재,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 중국, 인도 모두 에너지 공급과 CO2 배출 감축을 위하여 대대적 원자력 발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2020년까지 22기, 앞으로 35년간 300기의 추가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으로 나오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은 1만년, 20만년, 100만년 단위로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지질학적 시간의 대상이다. 인류의 역사시간을 넘는 시간이다. 근대는 인류역사에서 6000년이라는 고고학적 시간이 넘는 긴 미래의 시간을 안전관리해야 하는 인공물(man-made artifact)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근대는 근대의 세계화를 통해 인간, 역사, 지구의 궁극(ultimatum)을 때리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기존의 선진국은 히말라야권 문제군, 즉 인류문제군 혹은 인류공통의 과제를 공동으로 협력해서 대처하려 하지 않고, ‘중국문제’ ‘인도문제’로만 보고 있는 데서 해결의 접근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의 역설(逆說)
생명자원과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결정적 역설(逆說)은, 근대화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자원과 CO2를 배출해 온 서양 선진국들이 아직도 생태적 자원과 환경에서 여유가 있는 데 비해, 서양선진국 기준으로는 앞으로 몇 배 몇십 배를 더 써야 할 히말라야권(중국과 인도)은 그 여유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World Wildlife Fund)은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을 공급하기에 필요한, 생물학적으로 생산가능한 땅과 바다의 공간(the area of biologically productive land and sea required to provide the resources we use and to absord our waste)을 생태학적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라 하고, 이를 150개 국가별로 계산하여 <살아있는 지구 보고>(Living Planet Report)를 냈다. 2005년 현재 인류 전체의 생태학적 발자국은 175억gha(global hectares)이고 1인당으로는 2.7gha였다. 그런데 공급 측면에서 보면 전체 136억gha, 1인당 2.1gha에 불과하여, 이미 지구의 공급 능력을 초과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계산대로라면 현재까지의 방식으로 2050년에는 인류를 위해 34개의 지구가 더 필요하다.
문제 해결의 주도권이 히말라야권으로 넘어왔음을 자각해야
WWF의 1인당 발자국은 세계 150개 국가 중 미국,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모든 서양 선진국이 30위 이내에 있고, 세계평균 2.7gha보다 미국은 4배,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각각 3배 이상 많은 생태학적 자원을 쓰고 있다. 이에 비하면 중국은 73위, 인도는 132위로, 세계 평균을 훨씬 밑돈다. 일본은 21위, 한국은 37위이다. 1인당 1만 달러 이상 선진국은 지구에 부담을 주는 생태발자국이 현저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태발자국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생물학적 공급능력(biocapacity)이다. 1인당 생물학적 공급능력에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이 모두 30위 이내이며, 프랑스는 42위로 세계 평균보다 여유가 많다. 선진국 중 세계 평균보다 뒤진 나라는 독일 68위, 영국 79위, 스페인 89위, 스위스 93위였다. 이에 비하면 히말라야권의 중국 118위, 인도 140위, 파키스탄 139위, 방글라데시 149위를 주목해야 한다. 아시아의 선진국 성공의 모델로 불리는 한국이 129위, 일본 131위, 그리고 싱가포르가 조사대상 150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1인당 생물학적 공급능력 차이는 6배, 스웨덴과의 차이는 12배, 캐나다와는 25배의 차이가 난다. 인도는 중국보다도 두 배 더 나쁘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1인당 기준으로 서양선진국은 현재도 생태발자국이 높은 생명자원 다소비국일뿐더러 생물자원 공급능력에서도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히말라야권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금도 생태발자국이 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큰 환경부채(중국이 이미 세계 최대 CO2 배출국)를 지고 있다. 뿐더러 생물학적 공급능력의 현저한 부족으로 현재와 같은 성장방식으로는 지구의 생태능력을 더욱 고갈시킬 것이고, 선진국과의 생태·생물 소비능력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선진권에 진입했다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나 아직 절대빈곤 인구가 1억~3억대의 규모로 남아 있는 저소득 중국과 인도 모두, 생명자원을 결정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는, 즉 생물학적 공급능력 여유가 있는 선진국가나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 등지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양 선진국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히말라야권 문제군―인류지구촌 문제군이자 세계평화와 인류의 생명자원, 환경문제군―의 절실성과 긴박성이 중국이나 인도, 한국, 일본보다 훨씬 약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정치적으로나 국제역학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쪽에서 새 세계질서가 창조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히말라야권 문제군 해결의 결의와 탐구와 접근의 주도권도 히말라야권에서 나와야 한다. 히말라야권의 생명자원, 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즉 근대성을 활용하면서 근대성을 넘는 대체(alternative)를 모색해야 한다. 과학기술(X에너지, Xwater, Xfood), 사회 시스템, 대체 생활방식(alternative way of life)의 모색이라는 세 가지 접근을 G4(한국, 일본, 중국 , 인도)가 공동 협력으로 추진해야 한다.
3 G4와 G8의 새로운 리더십과 대타협(Big D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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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도의 26억 현재 인구, 2040년까지 32억에 이를 나라가 어떻게 빈곤을 타파하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찾을지는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다. 사진은 2008년 1월 24일 인도공화국 출범 기념축제(26~29일) 리허설 모습. |
중국, 인도의 26억 현재 인구, 그리고 2040년까지 32억(여기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합치면 약 40억)에 이르는 이들 나라의 시민이, 빈곤을 타파하고 기본적 수요(basic needs)를 충족하며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를 향유하면서, 생명자원(에너지, 먹을거리, 물)의 안전한 공급과 환경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이 과제 역시 G4의 지도자들이, 단순히 환경문제, 생명자원 문제의 해결만을 위한 공동협력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유·복지·평등의 시민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도 히말라야권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각성을 할 필요가 있다. 덩샤오핑이나 원자바오의 경고성 호소가, 단순히 외부의 협력을 호소하는 것이나 내정간섭 반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자유·복지·평등사회로 가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외부세계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서방 선진국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현재의 세계적 불균형과 2008년의 금융위기를 만든 월스트리트의 불공정한 금융과 탐욕의 문화가 제거되지 않는 한, 그리고 중국이 편협한 중화(中華)주의를 버리고 성장·환경·안전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지향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미·중의 G2 협력의 지구촌적 리더십은 바라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그런 변혁, 혁신 패러다임 변화의 동인(動因)과 리더십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전직 대통령과 전직 총리들까지 기업계와 독재정부의 개별 이익을 위한 로비스트로 뛰는 불공정, 부패, 이기적이고 반(反)공익적, 반지구촌평화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한, 중국문제군 해결을 위한 공익과 지구촌 공공재를 지향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기존 서구 질서에서 구체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원천의 하나가 중국과 미국의 불균형이었고 그 점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정치 로비스트들의 책임은 크다(이먼 핑글턴).
한·중·일·인도의 문제해결력 절실
이들로 하여 미국의 이념이 오염되고 시스템이 파괴되었다. 2008 금융위기가 미국 금융 시스템, 미국 경제운영 시스템의 결함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공인된 사실이다. 리먼브러더스만 파산시키지 않았으면 위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클린턴, 부시 대통령 부자, 루빈, 그린스펀, 폴슨, 웰치, GM, 골드만삭스, AIG로 대표되는 시스템 실패였다. 그 결정적 하자는, 어떤 경제행위도 사회 규범 안의 자유활동이어야 하는데, 경제 자유라는 이름으로 공익,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을 침범하거나 파괴한 데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를 ‘미국형 기업 복지주의’(Corporate Welfarism American-Style)라 명명했다. 시민의 복지가 아니라 기업과 지배주주 이익을 위하여 국가를 최종위기의 부담자(bearer of risk of last resort)로 써먹는다는 해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삶의 방식, 소비의 방식, 정치의 방식을 바꾸어야만 하는데, 월스트리트와 베이징의 정치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결과적으로 합작하여 만들어낸 금융위기와 중국문제군에서 보듯, 그 해결을 위한 새 접근, 새 모색의 돌파구 찾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중국을 ‘시장’으로만 보는 서방 기업과 정치 로비스트(영국의 블레어 전 총리까지), 그리고 중국만의 부강을 추구하는 중국 지도자들만으로는 중국문제군은 더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히말라야권 문제군 해결은 근대에 앞섰던 서양이 아니라 현재적 문제의 당사국이 된 중국·인도와, 근대 수준에서는 이들보다 앞섰지만 현재와 미래 도전에서는 히말라야권 문제군을 같이 안고 있는 (그런 의미에서 히말라야권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자각하고, 지구촌 생태발자국이 지속가능하게 되돌려야겠다고 결의하는 네 나라의 리더십 개편이 절실하다. 생물학적 공급능력의 여유가 많은 나라의 리더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가 선도하지 않을 것이고, 못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이라는 정치 레토릭과 환경 비즈니스만 있을 것이다. G4가 앞장서고 현재적 영향력이 큰 선진국이 협력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G4가 모색해야만 한다.
일본을 뺀 G8(미국, 캐나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은 생명자원 낭비와 CO2 배출과 금융파괴의 ‘근대병’(the diseases of modernity)의 원죄를 씻어 근대를 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G4는 ‘근대병’의 생태발자국을 밟지 않으려는 대체의 길 추구, 즉 세 가지 접근을 주도하여 G8도 끌어내고 껴안는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지구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로 중화주의를 억제하는 데서도, 중국문제군 해결에서도, G8과 중국, 인도, 한국과 일본이 공감과 연대로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G4와 G8의 대협상이 여러번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기다리나. 코펜하겐의 실패, 브뤼셀의 실패, IMF의 실패, G20의 혼미, 그것은 1929~33년의 재현인 2008~2012년이거나, 세계적 프롤레타리아와 중산층과 종교·문명 갈등이 겹친 비극적 근대의 종말, 대전쟁보다 대폭발이 기다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