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지방행정기관, 강제연행 기념관 설립에 ‘못마땅’
재건립추진委 출범…경비 2억여 원 마련 못해 애태워
⊙ 1989년 초대관장 李貞鎬씨가 사재 20억원으로 설립…2009년 5월 경영난으로 폐관
⊙ 朝鮮人 강제연행자들, 300m 깊이의 갱도에서 무게 200kg의 망간 부대 져 날라
⊙ 내년 3월 재개관 목표…준비비용 1000만 엔, 연 3000엔의 회원 2000명 모집이 목표
재건립추진委 출범…경비 2억여 원 마련 못해 애태워
⊙ 1989년 초대관장 李貞鎬씨가 사재 20억원으로 설립…2009년 5월 경영난으로 폐관
⊙ 朝鮮人 강제연행자들, 300m 깊이의 갱도에서 무게 200kg의 망간 부대 져 날라
⊙ 내년 3월 재개관 목표…준비비용 1000만 엔, 연 3000엔의 회원 2000명 모집이 목표
- 교토에서 50km 떨어진 단바망간기념관 주변에 삼나무가 울창하다. 신오타니 광산과 유미야마 광산이 1980년대 폐광하자 이정호 선생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일본 교토(京都) 시내에서 162번 국도(國道)를 따라 자동차로 1시간가량 달리면 가쓰라강(桂川) 상류에 자리한 게이호쿠(京北)란 곳이 나타난다. 교토 북쪽 망간광산으로 유명한 신오타니(新大谷) 광산과 유미야마(弓山) 광산이 있던 곳이다. 두 광산은 1983년 폐광되면서 ‘단바(丹波)망간기념관’이 됐다. 지난 10월 7일, 기자는 그 단바망간기념관을 찾아나선 것이다.
‘게이호쿠 상공회’ 홈페이지는 게이호쿠를 ‘시정(詩情) 넘치는 마을, 게이호쿠. 굽이치는 명산(名山)이 물에 비치는 가쓰라강 상류에 자리한 게이호쿠는 기타야마(北山) 삼나무 숲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게이호쿠는 절경(絶景)과 평화로운 모습만 간직하고 있는 곳은 아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日帝)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끌려온, 줄잡아 3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압사사고(壓死事故)로, 또는 진폐증(塵肺症)으로 속절없이 죽어간 곳이다.
강제연행은 일본인의 전쟁동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식민지 노동력으로서 임금·취직·주거에서 민족적 차별을 받았고, 중노동을 강요당했다. 명목은 내무성과 후생성의 ‘모집’이나 ‘관(官) 알선’ 형식이지만, 1944년 무렵부터는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지역에서 경찰의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 ‘징용(徵用)’으로 끌고 갔다.
기자는 삼나무 숲이 울창한 산길을 한참이나 에돌아 단바망간기념관에 도착했다. 젓가락처럼 매끈한 삼나무들이 베어져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동행한 김영철(金英哲·60) 재일코리아협의회 부회장은 “갱목(坑木)으로 사용하기 위해 오래전 베어놓은 것들”이라면서 “도호쿠지방의 하치노헤(八戶), 시코쿠의 단바(丹波)와 우와지마(宇和島) 등 일본의 대표적 망간 산지(産地) 가운데 단바산(産) 망간이 최고였다”고 했다.
단바는 교토 북동쪽 50km에 위치한 산골로 100여 년 전부터 채굴(採掘)을 시작한 세계적인 망간 산지다. 망간은 대포(大砲) 등 강철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광물이다. 때문에 제국주의 일본은 전쟁수행에 필요했던 군수물자인 망간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를 일본 땅에…”
단바망간기념관 정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철제 대문 주위로 거미줄이 얼기설기 얽혀 있고, 잡초마저 무성했다. 그때 우람한 체구의 단바망간기념관 이용식(李龍植·50) 관장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악수를 할 때 기자는 손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굳은살 박인 손의 악력(握力)이 15세부터 시작해 35년간의 탄광 일로 이골이 난 그의 이력(履歷)을 그대로 전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 번역·소개된 선친(先親) 이정호(李貞鎬)의 일대기인 <재일조선인 아리랑>의 저자다.
일본인 저널리스트 다나카 사카이(田中宇)가 <망간 파라다이스>라는 책을 통해 “1930년대에 조선인들이 ‘객지로의 돈벌이’를 위해 일본 단바 지역 망간탄광에 자발적으로 몰려들었다”고 주장하자, 이용식 관장은 격분했다. 그는 다나카 기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조선 국적’을 ‘한국 국적’으로 바꿔가며 10년에 걸쳐 경남 보양군 대덕면을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등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강제연행’ 사실을 밝혀냈다.
이 관장의 부친 이정호 전 관장은 “일본이 지우고 싶어 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일본 땅 안에 영원히 남겨야 한다”며 1989년 교토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게이호쿠 지역에 ‘단바망간기념관’을 설립했다.
1986년 이정호 선생은 단돈 10만 엔도 없는 조건에서 박물관 건립을 제안했고, 셋째 아들 이용식 관장은 “아버지의 제안에 선뜻 찬성하지는 못했지만, 평생 모은 재산 20억원을 쏟아부어 3년 만인 1989년 기념관을 세울 수 있었다”고 했다.
기념관이 문을 열자, <교토신문> <아사히신문> 등 언론은 지면을 할애해 단바망간의 역사, 진폐증 문제, 재일조선인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제임스 스턴골드(James Sterngold) 기자는 1989년 12월 5일자 ‘혹독했던 기억을 남기려는 한 남자의 투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념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95년 이정호 선생이 작고하자, 아들 이용식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14년간 기념관을 지켜왔다. 기념관은 일본 전역에서 사설(私設)로 운영되는 5000여 개의 기념관 가운데 유일하게 강제징용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강제징용의 역사가 단바망간기념관의 형식으로 남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정호 선생이 일본 회사로부터 광업권을 인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8년 망간을 원료로 건전지를 생산하는 산요전기가 신오타니 광산의 광업권을 이정호 선생에게 넘겼던 것이다. 이씨는 큰아버지 이봉률(李奉律)과 함께 ‘백두광업유한회사’를 만들어 광업권(鑛業權)을 인수해 광산을 경영했다.
징용자 30인 인터뷰해 자료로 남겨
이용식 관장의 안내로 300m 깊이의 망간 광산 내부로 들어갔다. 섭씨 12도 정도,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폭 1m도 채 안되는 길이 300m의 좁은 갱도에 망간을 채굴하던 광부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고 있었다.
물이 흘러내리고 낙반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비좁은 갱도 내에서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채굴과 운반의 중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강제연행 조선인들의 마네킹 모형을 보았다.
이용식 관장은 “관람객들을 위해 비좁은 갱도를 넓힌 것”이라며 “조선인들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2~3명씩 새우잠을 잤고, 푸성귀와 미소시루(된장국), 보리밥을 선 채로 먹었다”고 했다.
그는 “강제 연행 조선인들은 좁은 광산의 갱도에서 쭈그린 자세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고, 포대로 200kg이나 되는 망간 광석을 등에 지고 나르는 노동은 가혹한 것이었다”며 “그 때문에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망간기념관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기념관은 조선인 강제동원 자료, 일본 전역의 광산현황, 징용자들이 사용하던 작업 도구와 의상 등 온갖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이용식 관장은 “이정호 초대관장은 당시 단바와 교토 인근에 거주하는 조선인 징용자 30인을 찾아내 증언을 모았다”면서 “당시 관할 관청에 끈질기게 요구해 받아낸 조선인 강제연행자 숫자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이정호 초대 관장이 수집한 강제연행 자료(<인권과 민족 제5집>-북해도 재일조선인 인권수호회 발행)에 따르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석탄광산 34만2620명, 금속광산 6만7350명, 토목공사현장 10만8644명, 공장노동자 20만6073명 등 총 72만4487명이 강제연행돼 전쟁 수행에 동원됐다. 특히 교토부 조선인 강제연행 자료를 보면, 1945년 6월 현재 오에야마(大江山) 광산, 오타니(大谷) 광산 등에 60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식 관장은 “강제연행도, 모집연행도, 징용도, 일본군에게 토지를 빼앗겨 먹을 것이 없어 일본으로 건너온 것도, 모두가 강제연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월급이 밥값과 같아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했다”면서 “일제는 조선인들만 광산 채굴에 투입했고, 이들 피해자 대부분은 40년 광산에서 일한 아버지처럼 진폐증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당신이 죽어도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돈을 모으라고 하셨다”면서 “박물관은 돈 들어갈 곳이 많으니 연금이나 보험금도 모아 두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정호 선생은 1995년 3월 23일 진폐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생긴 바늘 같은 망간가루가 폐를 찔러 폐가 굳어지는 바람에 그는 끊임없이 각혈(?血)했다. 그의 유골은 같은 해 4월 25일 후쿠이(福井)현 미카타마을(三方町) 앞바다에 뿌려졌다. 유언에 따라 부친(李奉九)의 고향, 경남 김해면 내동리가 수평선으로 맞닿은 바다에 수장한 것이었다.
개관 ‘7300일’ 만에 폐관
일본에 하나밖에 없는 이 강제징용 기념관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20년 만인 2009년 5월 ‘개관 7300일’ 만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매년 8000만원에 가까운 적자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용식 관장은 “현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한때 재건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서 “일본인들은 나쁜 역사를 남겨두고 싶어하지 않고 지우길 원하지만, 역사는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동안 단바망간기념관을 다녀간 관람객은 20여만 명, 기념관을 통해 처음으로 강제징용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인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동행취재한 <아사히신문> 사회부 치구사 다쓰야(千種辰彌·35) 기자는 “조선인들이 직업선택을 위해 일본으로 왔다고 생각했을 뿐, 강제동원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일본 정부는 일한 양국 사이의 새로운 미래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단바망간기념관 재건립을 지원하고, 나아가 2세들의 역사교육 차원에서 기념관 운영 커리큘럼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강제연행의 ‘껄끄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관을 운영하는 이정호씨 부자(父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용식 관장은 기자에게 지난 9월 17일 오후 6시 아사히방송(ABC)에서 방영한 망간광산 관련 민원방송을 비디오로 틀어주었다. ‘뉴스U+ 우라토리’ 프로그램은 이용식 관장이 운영하는 망간광산의 ‘사이렌 소음문제’를 지역주민들의 증언형식을 빌려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1992년 일본 경찰은 ‘치안단속’이란 명목으로 수색영장도 없이 망간기념관을 무단침입해 수색을 한 일도 있었다. 고교를 중퇴하고 광산업에 뛰어든 이용식 관장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조선인이어서 나쁜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나 화가 치민다”고 했다.
재일코리아협의회 김영철 부회장은 “교토부(府)나 게이호쿠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망간기념관을 만들면 마을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며 합리적 이유나 근거도 없이 외면하는 냉담한 자세는 개관초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면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재건추진委 구성한 일본학자와 재일교포들
그는 “전쟁과 식민지로 나쁜 짓을 한 나라 일본은 반성과 배상도 거부한 나라라는 또 하나의 나쁜 역사를 만들고 있다”면서 “부정적 역사를 자신들의 후손에게 남기려는 일본을 향해 기념관 설립자 이정호 부자는 마치 일전(一戰)을 불사하는 ‘레지스탕스’ 같다”고 했다.
최근 기념관 폐관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재개관 추진 운동이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불붙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교토 류코쿠(龍谷)대학 강당에서 양심 있는 일본학자들과 재일교포 100여 명이 주축이 돼 ‘망간탄광기념관 재건위원회’를 발족했다.
재건위는 내년 4월 재개관을 목표로 오는 9월부터 개보수를 시작하기로 하고, 즉석에서 850만 엔을 모금하기로 했다고 한다. 폐관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김영철 부회장은 “이용식 관장이 적자운영을 견디다 못해 2001년 기념관을 폐관하려 할 때, 일본 인권단체와 뜻있는 일본인들이 모금을 통해 불씨를 살리고, 특정비영리법인단체(NPO)를 만들어 지속적인 지원을 모색했으나 역부족이었다”면서 “앞으로도 기념관의 운영과 유지를 오로지 한 가족에만 맡긴다면 재개관 이후라도 기념관의 존속은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근본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희순(鄭禧淳) 재건위 공동대표(교토코리안생활센터 ‘에루화’ 이사장)는 발족식에서 “우리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지원을 방기(放棄)하고, 이 관장 가족에 기념관 운영을 전적으로 맡겨둔 일을 진지하게 반성한다”면서 “앞으로는 재건위를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활동하자”며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했다. 재건위는 정희순 대표를 비롯해 도상태(都相太) 삼천리철도 이사장,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다카무라 쇼지(中村尙司) 류코쿠대학 교수 등 4명이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김영철 재일코리아협의회 부회장은 “이전의 지원체제보다 한층 전국적으로 범위도 넓어지고 든든해진 형국”이라면서 “재건위원들과 실질적인 활동을 벌일 사무국의 구성, 그리고 발기인과 찬동인(贊同人)의 면면에서 재일조선인과 일본인들이 이전과는 달리 적극 가담한 형태”라고 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지구촌동포연대(KIN)는 폐관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지를 방문답사했고, 이용식 관장의 저서(재일조선인 아리랑)를 번역·출판했다.
김영철 부회장은 “재건위가 만들어지고 한국 쪽의 호응도 일어나면서 이용식 관장의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라진 강제동원 유적, 마쓰시로大本營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추진위는 모금활동을 하며 박물관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모금액이 재개관과 이후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에 많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한다. 김영철 부회장은 “응급보수 공사에 필요한 재원 1000만 엔을 마련하는 일(긴급 모금), 앞으로의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정기 후원회원 2000명 모집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김영철 부회장은 “재건위원회 운동의 목표는 발기문에 천명한 것처럼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운영보조금을 받으며 ‘일본의 식민지와 전쟁에서의 가해의 역사를 남기고 전하는 일, 재일동포와 피차별 부락인들의 피해 역사를 남기고 전하는 일, 그리고 역사를 직시함으로써 일본과 조선반도 사람들 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호를 구축하는 일’을 떳떳하고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각지에 흩어진 강제노동 현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마쓰시로대본영(松代大本營)’을 거론하며 “일본 내 하나뿐인 조선인 징용 유적인 단바망간기념관도 마쓰시로대본영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마쓰시로대본영은 일제가 1944년 1월 나가노(長野)현 마쓰시로에 있는 조우산(象山) 중턱에 건설한 본토결전 대비용 방공호이자 전쟁지휘부였다. 패전 직전까지 일제는 9개월에 걸친 굴착공사를 했고, 이 와중에 조선인 징용자 8000여 명이 동원돼, 그중 2000여 명이 지하방공호에 갇혀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자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야마네 마사코(山根昌子·1993년 53세로 작고) 씨는 대본영을 40여 차례 방문하며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힘썼다. 나가노시는 대본영을 국제평화기념관으로 만든다며 ‘마쓰시로 조우산 방공호 보존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하방공호에 남은 조선인 노동자의 피와 눈물의 흔적들을 ‘고의’로 지워버렸다. 대본영 건설을 위해 일본 경찰이 만든 ‘위안소’도 허물어 버렸다.
김영철 부회장은 “독일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독일 각지의 강제수용소를 보존해 가며 스스로를 심판하고 있다”면서 “단바망간기념관도 마쓰시로대본영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마쓰시로대본영에 진혼기념관이 건설되고, 강제동원의 역사가 일본 교과서에 기록되기를 바랐던 야마네 마사코 씨의 노력은 50년 만인 1991년 11월 발행한 일본의 대표사전 〈고지엔〉(廣辭苑) 제4판에 ‘마쓰시로대본영-마쓰시로 지하방공호의 통칭. 제2차세계대전 말기 대본영 이전을 위해 극비리에 만들었으나, 패전으로 인해 공사중지, 조선인 강제동원의 한 사례’라고 실렸다.
이용식 관장은 기념관에서 존폐의 기로에 놓인 사정을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기념관을 ‘나의 묘지(墓地), 우리의 묘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의 묘(墓)가 허물어질 상황에 놓인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가수 윤도현이 리더로 있는 YB(윤도현밴드)가 일본 강제징용 기념관 재건을 위해 11월 27일 교토 현지에서 노 개런티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선콘서트가 단바망간기념관의 재건 열기가 폭발하는 데 도화선(導火線)이 되길 기대하면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인터뷰] 李龍植 관장
“金正日이 ‘日本人 납치’ 시인하자 관람객 急減… 한국 정부 관심 절실”
“일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인정해야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겁니다. 조국 동포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이용식 관장은 ‘2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는데 왜 적자가 났나’라고 묻자 “처음 개관해 4~5년은 그럭저럭 기념관 운영이 됐으나, 북한 김정일(金正日)이 고이즈미(小泉)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사건을 시인하면서 관람객이 줄기 시작했다”면서 “설상가상으로 국도 9호선이 고속도로화되면서 기념관 앞 162호선의 교통량이 감소했고, 조선인 강제연행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식으면서 방문자가 급감했다”고 했다.
그는 “지방행정기관의 지원금은커녕 그들은 ‘조선인 강제연행 기념관을 만들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한다”면서 “공공시설임에도 재산세를 연간 100만 엔(1360만원)이나 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용식 관장은 “아버지는 피해자로서의 기념관은 많이 있지만 일본이 저지른 죄행(罪行)을 폭로하는 가해자로서의 기념관이 없다는 것을 일찍이 말씀하셨다”면서 “가족이 무덤 만들 돈밖에 없다고 하자 기념관을 만드는 대신 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기념관은 3년간의 공사를 거쳐 탄생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갱 내부를 꾸미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가 1985년 기념관 조사를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건설에 착수했다. 개관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1989년 5월에 개관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람객용 갱도를 만들기 위해 일부 갱도구간을 확장하는 공사를 작은 정으로 해야만 했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면 산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폐증으로 갱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스테로이드’라는 독한 링거약을 꽂은 채 갱 속을 드나들며 공사를 지휘했다. 내 손이 만신창이가 돼 갈 무렵, 100m가 넘는 갱도 확장이 끝났다.(웃음)”
―자료관 건립과 갱 내부를 꾸미는 데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건립자금 20억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광산자재를 쌓아뒀던 토지를 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수장시켜도 좋으니 묏자리 돈까지 다 내놓으라고 하셨을 정도로 가족만 빼놓고는 전부 다 팔았다.”
―20년 동안 2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관람했나.
“일본의 시민단체, 공무원, 학교 관계자와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기념관을 보러 왔다. 특히 아버지는 일본의 소학생들이 견학을 오면,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열정적으로 망간광산에 얽힌 비화들을 들려주셨다. 일부 일본 학생들은 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않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단바망간기념관과 관련한 신문기사들을 오려서 기념관에 전시했다.”
이용식 관장은 “관람객 가운데 ‘과거 일을 언제까지 그렇게 집요하게 이야기할 건가’라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난 그들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받았다는 피해자 정신을 당신들은 포기한다는 말인가? 원폭도 강제연행도 똑같이 역사에 기록해야 할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했다.
―선친의 유업이랄 수 있는 기념관을 연간 8000만원에 달하는 적자 때문에 포기한 셈인데
“어머니가 계속 본인의 연금까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쓰시는 것을 보고 폐관을 결정했다. 다나카 사카이라는 일본 언론인이 1989년 <망간 파라다이스>라는 책을 썼는데,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거짓말을 썼다. 국적을 한국국적으로 바꿔 강제연행 마을을 찾아가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망간 파라다이스>를 반박하기 위해 <재일조선인 아리랑>이란 책을 냈다. 내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을 하고 폐관이란 결단을 내린 것이다. 강제연행 기념관 같은 것은 일본정부가 해야지 왜 내가 해야 하는가? 그들은 조선사람들이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기념관에 대해 단 한 푼의 돈도 내지 않을 것이다. 재건립 운동도 뒷짐지고 보아가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해할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보란 듯하기 위해서라도 단바망간기념관은 반드시 재개관해야 한다”면서 “재개관 발기모임에서 참석자의 ‘또다시 재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한다고 해서 못 해낸 일은 없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고 했다.
그는 “기념관을 유지하려면 1년 운영비로 최소 1800만 엔(2억4500만원)이 필요하다”면서 “오사카 총영사관, 교토민단에 협조를 요청했고, 한국정부에도 경로를 밟아 재개관을 위한 비용지원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은 도처에 전쟁기념관을 건설해 역사에 남기는 것을 국익(國益)이라 생각하고, 일본은 감추고 거짓말하는 것을 국익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일본이 전후처리에 실패해 주변국의 원한을 만들면 아시아지역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했다.
‘게이호쿠 상공회’ 홈페이지는 게이호쿠를 ‘시정(詩情) 넘치는 마을, 게이호쿠. 굽이치는 명산(名山)이 물에 비치는 가쓰라강 상류에 자리한 게이호쿠는 기타야마(北山) 삼나무 숲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게이호쿠는 절경(絶景)과 평화로운 모습만 간직하고 있는 곳은 아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日帝)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끌려온, 줄잡아 3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압사사고(壓死事故)로, 또는 진폐증(塵肺症)으로 속절없이 죽어간 곳이다.
강제연행은 일본인의 전쟁동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식민지 노동력으로서 임금·취직·주거에서 민족적 차별을 받았고, 중노동을 강요당했다. 명목은 내무성과 후생성의 ‘모집’이나 ‘관(官) 알선’ 형식이지만, 1944년 무렵부터는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지역에서 경찰의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 ‘징용(徵用)’으로 끌고 갔다.
기자는 삼나무 숲이 울창한 산길을 한참이나 에돌아 단바망간기념관에 도착했다. 젓가락처럼 매끈한 삼나무들이 베어져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동행한 김영철(金英哲·60) 재일코리아협의회 부회장은 “갱목(坑木)으로 사용하기 위해 오래전 베어놓은 것들”이라면서 “도호쿠지방의 하치노헤(八戶), 시코쿠의 단바(丹波)와 우와지마(宇和島) 등 일본의 대표적 망간 산지(産地) 가운데 단바산(産) 망간이 최고였다”고 했다.
단바는 교토 북동쪽 50km에 위치한 산골로 100여 년 전부터 채굴(採掘)을 시작한 세계적인 망간 산지다. 망간은 대포(大砲) 등 강철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광물이다. 때문에 제국주의 일본은 전쟁수행에 필요했던 군수물자인 망간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를 일본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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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폐관해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는 단바망간기념관. 관람객의 발길이 끊겨 창살엔 거미줄이 얽혀 있다. |
일본인 저널리스트 다나카 사카이(田中宇)가 <망간 파라다이스>라는 책을 통해 “1930년대에 조선인들이 ‘객지로의 돈벌이’를 위해 일본 단바 지역 망간탄광에 자발적으로 몰려들었다”고 주장하자, 이용식 관장은 격분했다. 그는 다나카 기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조선 국적’을 ‘한국 국적’으로 바꿔가며 10년에 걸쳐 경남 보양군 대덕면을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등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강제연행’ 사실을 밝혀냈다.
이 관장의 부친 이정호 전 관장은 “일본이 지우고 싶어 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일본 땅 안에 영원히 남겨야 한다”며 1989년 교토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게이호쿠 지역에 ‘단바망간기념관’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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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바망간기념관의 자료관. 이정호 전 관장이 수집한 단바 일대의 광산정보와 강제연행의 사료가 가득하다. |
기념관이 문을 열자, <교토신문> <아사히신문> 등 언론은 지면을 할애해 단바망간의 역사, 진폐증 문제, 재일조선인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제임스 스턴골드(James Sterngold) 기자는 1989년 12월 5일자 ‘혹독했던 기억을 남기려는 한 남자의 투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념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95년 이정호 선생이 작고하자, 아들 이용식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14년간 기념관을 지켜왔다. 기념관은 일본 전역에서 사설(私設)로 운영되는 5000여 개의 기념관 가운데 유일하게 강제징용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강제징용의 역사가 단바망간기념관의 형식으로 남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정호 선생이 일본 회사로부터 광업권을 인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8년 망간을 원료로 건전지를 생산하는 산요전기가 신오타니 광산의 광업권을 이정호 선생에게 넘겼던 것이다. 이씨는 큰아버지 이봉률(李奉律)과 함께 ‘백두광업유한회사’를 만들어 광업권(鑛業權)을 인수해 광산을 경영했다.
징용자 30인 인터뷰해 자료로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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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식 관장이 2010년 6월 펴낸 선친의 자서전 <재일조선인 아리랑>. 일본인 저널리스트 다나카 사카이(田中宇)가 쓴 <망간 파라다이스>를 반박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
물이 흘러내리고 낙반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비좁은 갱도 내에서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채굴과 운반의 중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강제연행 조선인들의 마네킹 모형을 보았다.
이용식 관장은 “관람객들을 위해 비좁은 갱도를 넓힌 것”이라며 “조선인들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2~3명씩 새우잠을 잤고, 푸성귀와 미소시루(된장국), 보리밥을 선 채로 먹었다”고 했다.
그는 “강제 연행 조선인들은 좁은 광산의 갱도에서 쭈그린 자세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고, 포대로 200kg이나 되는 망간 광석을 등에 지고 나르는 노동은 가혹한 것이었다”며 “그 때문에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망간기념관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기념관은 조선인 강제동원 자료, 일본 전역의 광산현황, 징용자들이 사용하던 작업 도구와 의상 등 온갖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이용식 관장은 “이정호 초대관장은 당시 단바와 교토 인근에 거주하는 조선인 징용자 30인을 찾아내 증언을 모았다”면서 “당시 관할 관청에 끈질기게 요구해 받아낸 조선인 강제연행자 숫자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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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이 전시하는 망간석 표본. 망간은 총 800여종이 있고, 이곳 기념관은 총 700여 종을 소장, 그 가운데 560종을 전시하고 있다. |
이용식 관장은 “강제연행도, 모집연행도, 징용도, 일본군에게 토지를 빼앗겨 먹을 것이 없어 일본으로 건너온 것도, 모두가 강제연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월급이 밥값과 같아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했다”면서 “일제는 조선인들만 광산 채굴에 투입했고, 이들 피해자 대부분은 40년 광산에서 일한 아버지처럼 진폐증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당신이 죽어도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돈을 모으라고 하셨다”면서 “박물관은 돈 들어갈 곳이 많으니 연금이나 보험금도 모아 두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정호 선생은 1995년 3월 23일 진폐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생긴 바늘 같은 망간가루가 폐를 찔러 폐가 굳어지는 바람에 그는 끊임없이 각혈(?血)했다. 그의 유골은 같은 해 4월 25일 후쿠이(福井)현 미카타마을(三方町) 앞바다에 뿌려졌다. 유언에 따라 부친(李奉九)의 고향, 경남 김해면 내동리가 수평선으로 맞닿은 바다에 수장한 것이었다.
개관 ‘7300일’ 만에 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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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진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정과 망치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망간석을 채굴했다. 원래는 앞을 보고 굴진했지만, 관람객을 위해 마네킹의 방향을 바꿨다. 폭 30센티, 높이 60센티미터로 누워서 채굴(일명 네보리)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
이용식 관장은 “현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한때 재건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서 “일본인들은 나쁜 역사를 남겨두고 싶어하지 않고 지우길 원하지만, 역사는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동안 단바망간기념관을 다녀간 관람객은 20여만 명, 기념관을 통해 처음으로 강제징용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인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동행취재한 <아사히신문> 사회부 치구사 다쓰야(千種辰彌·35) 기자는 “조선인들이 직업선택을 위해 일본으로 왔다고 생각했을 뿐, 강제동원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일본 정부는 일한 양국 사이의 새로운 미래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단바망간기념관 재건립을 지원하고, 나아가 2세들의 역사교육 차원에서 기념관 운영 커리큘럼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강제연행의 ‘껄끄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관을 운영하는 이정호씨 부자(父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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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당시 함바(노동자 숙소)를 그대로 재현했다. 조선인은 서서 식사를 했고, 식사는 보리밥 한사발에 거친 반찬이 전부였다. 뒷쪽 잠자리에서는 20명 정도가 새우잠을 자야했다. |
1992년 일본 경찰은 ‘치안단속’이란 명목으로 수색영장도 없이 망간기념관을 무단침입해 수색을 한 일도 있었다. 고교를 중퇴하고 광산업에 뛰어든 이용식 관장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조선인이어서 나쁜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나 화가 치민다”고 했다.
재일코리아협의회 김영철 부회장은 “교토부(府)나 게이호쿠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망간기념관을 만들면 마을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며 합리적 이유나 근거도 없이 외면하는 냉담한 자세는 개관초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면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재건추진委 구성한 일본학자와 재일교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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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간광산기념관을 설립한 고 이정호 선생. 진폐증을 심하게 앓았으나, 학생들이 견학하면 기념관을 찾아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
최근 기념관 폐관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재개관 추진 운동이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불붙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교토 류코쿠(龍谷)대학 강당에서 양심 있는 일본학자들과 재일교포 100여 명이 주축이 돼 ‘망간탄광기념관 재건위원회’를 발족했다.
재건위는 내년 4월 재개관을 목표로 오는 9월부터 개보수를 시작하기로 하고, 즉석에서 850만 엔을 모금하기로 했다고 한다. 폐관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김영철 부회장은 “이용식 관장이 적자운영을 견디다 못해 2001년 기념관을 폐관하려 할 때, 일본 인권단체와 뜻있는 일본인들이 모금을 통해 불씨를 살리고, 특정비영리법인단체(NPO)를 만들어 지속적인 지원을 모색했으나 역부족이었다”면서 “앞으로도 기념관의 운영과 유지를 오로지 한 가족에만 맡긴다면 재개관 이후라도 기념관의 존속은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근본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희순(鄭禧淳) 재건위 공동대표(교토코리안생활센터 ‘에루화’ 이사장)는 발족식에서 “우리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지원을 방기(放棄)하고, 이 관장 가족에 기념관 운영을 전적으로 맡겨둔 일을 진지하게 반성한다”면서 “앞으로는 재건위를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활동하자”며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했다. 재건위는 정희순 대표를 비롯해 도상태(都相太) 삼천리철도 이사장,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다카무라 쇼지(中村尙司) 류코쿠대학 교수 등 4명이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김영철 재일코리아협의회 부회장은 “이전의 지원체제보다 한층 전국적으로 범위도 넓어지고 든든해진 형국”이라면서 “재건위원들과 실질적인 활동을 벌일 사무국의 구성, 그리고 발기인과 찬동인(贊同人)의 면면에서 재일조선인과 일본인들이 이전과는 달리 적극 가담한 형태”라고 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지구촌동포연대(KIN)는 폐관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지를 방문답사했고, 이용식 관장의 저서(재일조선인 아리랑)를 번역·출판했다.
김영철 부회장은 “재건위가 만들어지고 한국 쪽의 호응도 일어나면서 이용식 관장의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라진 강제동원 유적, 마쓰시로大本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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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바망간기념관 개관운동을 보도한 <니혼게이자이신문> 2010년 9월 7일자. |
김영철 부회장은 “재건위원회 운동의 목표는 발기문에 천명한 것처럼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운영보조금을 받으며 ‘일본의 식민지와 전쟁에서의 가해의 역사를 남기고 전하는 일, 재일동포와 피차별 부락인들의 피해 역사를 남기고 전하는 일, 그리고 역사를 직시함으로써 일본과 조선반도 사람들 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호를 구축하는 일’을 떳떳하고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각지에 흩어진 강제노동 현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마쓰시로대본영(松代大本營)’을 거론하며 “일본 내 하나뿐인 조선인 징용 유적인 단바망간기념관도 마쓰시로대본영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마쓰시로대본영은 일제가 1944년 1월 나가노(長野)현 마쓰시로에 있는 조우산(象山) 중턱에 건설한 본토결전 대비용 방공호이자 전쟁지휘부였다. 패전 직전까지 일제는 9개월에 걸친 굴착공사를 했고, 이 와중에 조선인 징용자 8000여 명이 동원돼, 그중 2000여 명이 지하방공호에 갇혀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자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야마네 마사코(山根昌子·1993년 53세로 작고) 씨는 대본영을 40여 차례 방문하며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힘썼다. 나가노시는 대본영을 국제평화기념관으로 만든다며 ‘마쓰시로 조우산 방공호 보존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하방공호에 남은 조선인 노동자의 피와 눈물의 흔적들을 ‘고의’로 지워버렸다. 대본영 건설을 위해 일본 경찰이 만든 ‘위안소’도 허물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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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식 관장이 채굴할 때 쓰는 장비들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망간은 철의 강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철도레인과 포신 등 군수물자 생산에 필수재였다. |
마쓰시로대본영에 진혼기념관이 건설되고, 강제동원의 역사가 일본 교과서에 기록되기를 바랐던 야마네 마사코 씨의 노력은 50년 만인 1991년 11월 발행한 일본의 대표사전 〈고지엔〉(廣辭苑) 제4판에 ‘마쓰시로대본영-마쓰시로 지하방공호의 통칭. 제2차세계대전 말기 대본영 이전을 위해 극비리에 만들었으나, 패전으로 인해 공사중지, 조선인 강제동원의 한 사례’라고 실렸다.
이용식 관장은 기념관에서 존폐의 기로에 놓인 사정을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기념관을 ‘나의 묘지(墓地), 우리의 묘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의 묘(墓)가 허물어질 상황에 놓인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가수 윤도현이 리더로 있는 YB(윤도현밴드)가 일본 강제징용 기념관 재건을 위해 11월 27일 교토 현지에서 노 개런티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선콘서트가 단바망간기념관의 재건 열기가 폭발하는 데 도화선(導火線)이 되길 기대하면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인터뷰] 李龍植 관장
“金正日이 ‘日本人 납치’ 시인하자 관람객 急減… 한국 정부 관심 절실”
“일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인정해야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겁니다. 조국 동포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부탁드립니다.”이용식 관장은 ‘20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는데 왜 적자가 났나’라고 묻자 “처음 개관해 4~5년은 그럭저럭 기념관 운영이 됐으나, 북한 김정일(金正日)이 고이즈미(小泉)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사건을 시인하면서 관람객이 줄기 시작했다”면서 “설상가상으로 국도 9호선이 고속도로화되면서 기념관 앞 162호선의 교통량이 감소했고, 조선인 강제연행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식으면서 방문자가 급감했다”고 했다.
그는 “지방행정기관의 지원금은커녕 그들은 ‘조선인 강제연행 기념관을 만들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한다”면서 “공공시설임에도 재산세를 연간 100만 엔(1360만원)이나 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용식 관장은 “아버지는 피해자로서의 기념관은 많이 있지만 일본이 저지른 죄행(罪行)을 폭로하는 가해자로서의 기념관이 없다는 것을 일찍이 말씀하셨다”면서 “가족이 무덤 만들 돈밖에 없다고 하자 기념관을 만드는 대신 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기념관은 3년간의 공사를 거쳐 탄생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갱 내부를 꾸미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가 1985년 기념관 조사를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건설에 착수했다. 개관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는 ‘1989년 5월에 개관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람객용 갱도를 만들기 위해 일부 갱도구간을 확장하는 공사를 작은 정으로 해야만 했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면 산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폐증으로 갱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스테로이드’라는 독한 링거약을 꽂은 채 갱 속을 드나들며 공사를 지휘했다. 내 손이 만신창이가 돼 갈 무렵, 100m가 넘는 갱도 확장이 끝났다.(웃음)”
―자료관 건립과 갱 내부를 꾸미는 데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건립자금 20억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광산자재를 쌓아뒀던 토지를 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수장시켜도 좋으니 묏자리 돈까지 다 내놓으라고 하셨을 정도로 가족만 빼놓고는 전부 다 팔았다.”
―20년 동안 2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관람했나.
“일본의 시민단체, 공무원, 학교 관계자와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기념관을 보러 왔다. 특히 아버지는 일본의 소학생들이 견학을 오면,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열정적으로 망간광산에 얽힌 비화들을 들려주셨다. 일부 일본 학생들은 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않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단바망간기념관과 관련한 신문기사들을 오려서 기념관에 전시했다.”
이용식 관장은 “관람객 가운데 ‘과거 일을 언제까지 그렇게 집요하게 이야기할 건가’라고 따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난 그들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받았다는 피해자 정신을 당신들은 포기한다는 말인가? 원폭도 강제연행도 똑같이 역사에 기록해야 할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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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호 초대관장이 발굴해 인터뷰한 조선인 징용피해자들. 왼쪽부터 정갑천(鄭甲千, 1918년 경남 출생), 전곡개(全谷介, 1905년 경남 출생), 이종기(李從基, 1917년 경남 출생), 김재석(金載錫, 1917년 경남 출생). |
“어머니가 계속 본인의 연금까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쓰시는 것을 보고 폐관을 결정했다. 다나카 사카이라는 일본 언론인이 1989년 <망간 파라다이스>라는 책을 썼는데,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거짓말을 썼다. 국적을 한국국적으로 바꿔 강제연행 마을을 찾아가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망간 파라다이스>를 반박하기 위해 <재일조선인 아리랑>이란 책을 냈다. 내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을 하고 폐관이란 결단을 내린 것이다. 강제연행 기념관 같은 것은 일본정부가 해야지 왜 내가 해야 하는가? 그들은 조선사람들이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기념관에 대해 단 한 푼의 돈도 내지 않을 것이다. 재건립 운동도 뒷짐지고 보아가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해할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보란 듯하기 위해서라도 단바망간기념관은 반드시 재개관해야 한다”면서 “재개관 발기모임에서 참석자의 ‘또다시 재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한다고 해서 못 해낸 일은 없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고 했다.
그는 “기념관을 유지하려면 1년 운영비로 최소 1800만 엔(2억4500만원)이 필요하다”면서 “오사카 총영사관, 교토민단에 협조를 요청했고, 한국정부에도 경로를 밟아 재개관을 위한 비용지원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은 도처에 전쟁기념관을 건설해 역사에 남기는 것을 국익(國益)이라 생각하고, 일본은 감추고 거짓말하는 것을 국익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일본이 전후처리에 실패해 주변국의 원한을 만들면 아시아지역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했다.
| ▣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한 후원계좌 안정적인 기금 마련을 위해 연간 1회 3000엔(4만원), 2000계좌를 목표로 모금합니다. 찬조하신 분들께 뉴스레터, 이벤트 안내 등을 우송해 드립니다. NPO法人協贊會員振替口座 ⊙ 계좌번호 : 00930-9-304328 ⊙ 예금주 : 특정비영리활동법인 단바망간기념관 ⊙ 연락처 : 단바망간기념관재건위원회 ⊙ 전화 : 075-313-3604 ⊙ 팩스 : 075-313-8308 ⊙ 이메일 : tbmg@corea-k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