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비밀작전에 보안회사를 동원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청부인은 군인도 아니고 연방정부 소속도 아니다. 따라서 청부인이 적에게 포로가 되어도 정부는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으며, 현지에서 사망해도 정치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다. 미국정부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보안회사에 아웃소싱하고 있으며, 그렇게 떠넘긴 일은 정부가 비난받을 일이 거의 없다.”
⊙ 미 국방부, 2001~2005년 보안회사에 2700억 달러(310조원) 지불
⊙ 이라크 내 용병은 19만명, 미군과 연합군(18만명)보다 많아
⊙ 실탄사격장으로 시작한 블랙워터, CIA 후원 아래 연 매출액 8억 달러짜리 회사로 성장
⊙ 익제커티브 아웃컴즈, 시에라리온 반군 격퇴하고 3500만 달러 벌어
⊙ 다인코프,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경호
주성민
⊙ 1958년생.
⊙ 군사전문자유기고가.
⊙ 저서 : <지중해의 문어구이> <소총수와 디지털 솔저>.
⊙ 미 국방부, 2001~2005년 보안회사에 2700억 달러(310조원) 지불
⊙ 이라크 내 용병은 19만명, 미군과 연합군(18만명)보다 많아
⊙ 실탄사격장으로 시작한 블랙워터, CIA 후원 아래 연 매출액 8억 달러짜리 회사로 성장
⊙ 익제커티브 아웃컴즈, 시에라리온 반군 격퇴하고 3500만 달러 벌어
⊙ 다인코프,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경호
주성민
⊙ 1958년생.
⊙ 군사전문자유기고가.
⊙ 저서 : <지중해의 문어구이> <소총수와 디지털 솔저>.
- 시에라리온의 반군을 진압한 용병 익제커티브 아웃컴즈.
RPG에서 발사된 대전차 로켓탄이 기지를 ‘쾅’하고 때렸다. 로켓탄 공격을 신호로 귀청을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모두 올라가. 사격 준비!”
군용 라이플 M-4를 장전하고 기다리던 대원들에게 팀 리더가 소리쳤다. 전차공격용 로켓추진 유탄발사기인 RPG의 직격탄에 건물 한쪽이 박살나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M-4를 들고 건물 꼭대기로 올라간 팀 리더가 반복해 소리쳤다.
“사격! 사격!”
2004년 4월 6일 오후 1시, 빠져나갈 방법이 없던 이들은 맹렬한 교전에 휘말렸다. 24시간 전, ‘알쿠트’의 반군들이 도시 전체를 장악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160km 떨어진 알쿠트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의 지역본부가 있는 곳이다. 반군은 이라크 경찰의 무기와 통신장비를 모두 약탈한 후 CPA 주위를 둘러싸며 공격을 준비했다.
반군의 포위로 후퇴조차 못하게 된 18명의 민간인, 경비를 맡고 있던 보안회사 민간청부인 10명이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CPA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민간인은 CPA와 군수회사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의 직원들이었다. CPA를 완전 포위한 수백 명의 반군은 AK 소총과 RPG로 본격적인 집중공격을 해 왔다.
오후 3시, 박격포탄이 날아와 터지기 시작했고, 로켓탄도 쉴 새 없이 날아들어 CPA는 온통 파편과 화약 연기, 희뿌연 먼지로 가득했다.
전투는 더욱 격렬해져 총알이 빗발쳤고, 건물꼭대기에서 CPA를 방어하던 청부인들의 탄약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탄약을 가져다줄 수 있겠나?”
팀 리더가 아래층 군수회사 직원을 무선으로 호출했다. “물론.”
무거운 탄약상자를 꼭대기로 운반해 온 그들은 널려 있는 빈 탄창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그 순간 로켓탄이 옥상의 벽을 때리며 폭발하면서 파편이 탄창을 채우던 민간인의 팔을 치고 나갔다. 겁에 질려 쩔쩔매는 사이 쏟아진 피는 주위를 흥건하게 적셔놓았다.
적의 RPG 사수가 다시 재장전하며 발사준비를 했다. 레인저부대 저격수였던 청부인이 M-4를 겨냥하자 RPG를 막 발사하려는 적이 소총 가늠쇠에 들어왔다.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명중했다. 적은 RPG와 함께 맥없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오후 6시가 지나면서 더 자주 날아오는 박격포탄에 폭발밀도가 높아져 위험해진 청부인들은 아래층으로 피신했다. 갈증으로 목이 탄 그들이 CPA 직원에게 물을 청하자 생수병 몇 개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물이 거의 바닥났어.”
치열한 교전이 오후 내내 이어져 건물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적이 밀고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후 7시를 넘기자 적의 공격이 뜸해졌다. 구급상자를 가져와 동료의 상처를 소독하던 청부인이 팀 리더에게 물었다. “CPA 본부에서는 뭐라고 그래?”
참치 캔(tuna can)으로 불리는 탄약 박스를 열어 탄창을 채우던 팀 리더가 대답했다. “그냥 잘 숨어 있으라는군.”
짙은 갈색 포장을 뜯어 전투식량(MRE)을 꺼내 씹던 곁의 동료가 내뱉듯 말했다.
“빌어먹을, 망할 브리머 자식.”
전날 바그다드의 CPA 본부로 지원을 요청하자, 임시행정처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는 “상황을 과장하지 말라”며 거절했던 것이다.
선제공격으로 항공기 폭격지점 찾아내
CPA 지역본부가 있는 알쿠트는 이라크군의 통신 지휘통제소와 지대공 미사일기지가 있던 곳이다. 미 해병대가 이곳을 점령해 작전기지를 세웠다가 2003년 말, 팔루자 지역으로 떠나며 평화유지군인 우크라이나 부대에 관할을 넘겼다. 그 후 우크라이나 군은 유프라테스가 합류해 흐르는 티그리스 강변의 알쿠트에 주둔해 왔다. 저녁 8시, 우크라이나 군이 헬리콥터로 구조하러 온다는 소식이 CPA로 전해졌다.
반나절이나 지속된 전투로 부상자가 널려 있는데다 녹초가 되어 있던 그들이 철수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던 밤 10시, 느닷없이 작전취소 연락이 왔다.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착륙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구출을 취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상자만이라도 수송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우크라이나 군에서는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이 자식들 아주 겁쟁이들이군.”
육군특수부대 델타포스(Delta Force)에서 복무했던 팀 리더 존 터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새벽 1시 무렵, 지치고 낙담해 있던 그들에게 항공기 소리가 들렸다. 유령이란 이름의 미군 공격기 AC-130 스펙터(Spectre)가 나타났다. 수송기 C-130을 근접지원기로 개조한 스펙터는 엄청난 화력으로 지상군을 근접해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밤인데다 총구에서 내뿜는 섬광이 비치지 않아 타격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근접항공지원팀으로 극비임무를 맡았던 델타부대 출신의 청부인이 스펙터와 무선으로 교신하며 목표물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알았다, 대기하겠다. 불꽃놀이를 시작해 보기 바란다.”
스펙터 기장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무선으로 들려왔다. 청부인들이 개인화기와 PKM 기관총으로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자 반군이 대응해 왔다.
하늘에 뜬 스펙터가 거대한 적외선 스포트라이트를 켜자 총구에서 드러난 섬광들이 잡히며 타격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적외선 라이트는 사람의 눈에는 감지되지 않는다. 스펙터는 저공으로 선회하면서 그곳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스펙터가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고 판단한 팀 리더는 물이 떨어진데다 탄약마저 바닥이라 철수를 결정했다.
아침 6시, 보안회사의 장갑된 맘바가 민간인들이 탄 4대의 4륜구동 파제로 SUV를 앞뒤로 경호하며 CPA를 빠져나왔다. 남아공에서 제작된 거대한 방탄차량 맘바는 지뢰가 터져도 견딜 수 있도록 강철장갑으로 제작돼 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CPA 주변을 지나자 공격용 무장헬리콥터인 아파치가 날아와 그들의 머리 위를 비행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1시간 반 후에는 도시 외곽의 미군기지로 퇴각할 수 있었다.
트리플 캐노피 보안회사, 6개월간 920억 벌어
CPA에서 반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인 사람들은 민간보안회사와 계약된 민간청부인(private contractor)이다. 전직 군인들이다.
CPA 지역본부는 군수회사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KBR)가 건설했다. KBR의 이라크 파견자들을 경호하는 회사는 영국의 컨트롤 리스크스 그룹(CRG)이고, CPA의 경호는 미국의 트리플 캐노피가 맡고 있었다.
CPA에서 싸운 10명 중 4명은 CRG의 청부인들이고, 6명은 트리플 캐노피 소속이었다. 2004년 4월 6일의 이 사건 이후, 보안회사 청부인들은 우크라이나 군을 ‘겁쟁이(chicken)’로 부르고 있다. 트리플 캐노피는 ‘민간보안산업’ 분야에서 블랙워터, 다인코프와 함께 ‘빅 스리(big three)’로 통한다.
미 국방부는 전쟁터에서 적과 교전하는 일만 빼놓고는 대부분의 일을 보안회사와 계약해 넘겨주고 있다. 군대에서 병참이라고 부르는 보급과 수송, 급식, 정비 등 군의 살림살이에서부터 경비와 경호는 물론 호송임무까지 보안회사가 대행하고 있다. 보안회사는 정보기관과 해외의 비밀작전을 공동으로 수행하며 적을 추적해 암살하는 일도 한다. 보안회사가 미 국방부, 국무부와 계약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은 일반인의 상식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며 엄청나다.
보안산업은 최근 10년간 빠르게 성장했고 가장 큰 시장은 이라크였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 이후, 이라크 전쟁은 보안산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보안산업 시장은 미국의 납세자들이 낸 달러가 지천으로 널린 곳이라, 현재 빅 스리를 포함한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보안산업을 선도하는 회사는 빅 스리 외에도 베텍, HART, 아머그룹,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 등이 있다.
트리플 캐노피는 보안회사 중 가장 나중에 출발한 회사였다. 이라크 침공 이후인 2003년 9월, 델타포스 출신의 전직 군인들이 은행에서 신용대출한 돈을 합해 공동으로 세운 게 트리플 캐노피였다.
이라크에서 2004년 블랙워터, 다인코프, 트리플 캐노피는 공동으로 중요한 계약을 따내 파워가 센 순서대로 몫을 나눠가졌다. 바그다드에서 미국 관리들과 각국 외교관들을 경호하는 노른자위는 블랙워터가 차지했고 흰자위인 이라크 북부는 다인코프가 가져갔다. 트리플 캐노피는 제일 형편없는 몫인 남부를 맡았지만 6개월 동안 8000만 달러(920억원)를 벌었다.
반 년 후, 그 일은 6000만 달러짜리 재계약으로 이어졌고, 창업한 지 1년도 안되어 1억 달러(115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델타부대 출신들은 두 번의 계약으로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은행에 쌓아두게 되었고, 4명으로 시작한 사업체가 1년 후 900여 명을 고용한 보안회사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CIA의 단골 파트너 블랙워터
언론의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보안회사는 블랙워터다. 이 회사는 무수한 총기사고와 숱한 불법행위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사업주가 의회에 불려나가 증언을 강요당했으며, 나중엔 회사 이름마저 바꿔야 했다.
블랙워터는 1997년 실탄사격장으로 시작했다. 군인 출신인 에릭 프린스는 사격장에서 강철 타깃도 만들며 운영에 애썼으나 2000년까지는 6명뿐인 직원들의 월급 주기도 힘들었다.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NavySEAL)에서 전역한 프린스가 총기에 관심이 있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개인적인 관심사만 만족시키는 정도였다.
프린스를 살려준 건 미 중앙정보국인 CIA였다. 예전의 동료 하나가 다리를 놓아줘 프린스는 2001년 CIA와 계약을 했다. 첫 계약은 CIA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세운 지국을 경호하는 일이었다.
2명의 팀 리더를 포함, 18명의 청부인이 아리아나 호텔에 자리 잡은 ‘CIA 카불지국’을 경비하고 요원들을 경호하면서 6개월 동안 540만 달러(62억원)를 받았다. 이때 프린스는 고용한 청부인들에게 하루 일당을 500달러(58만원)로 계산해 한 달에 1만5000달러(1700만원)를 지급했다. 하지만 그가 CIA에 청구한 금액은 하루에 1인당 1500달러였고, 프린스는 한 달에 54만 달러(6억2000만원)씩을 챙겼으니 수지맞는 일이었다.
블랙워터는 CIA와 매년 계약을 이어가며 급성장했고, 연간계약 중 15%는 비밀계약이며, 대부분 CIA와 맺는 이 계약으로 해마다 1억 달러씩을 벌었다. 그 후 블랙워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보안회사가 되어 현재 1년 매출액은 대략 8억 달러(9200억원)에 이른다.
CIA는 여러 보안회사와 계약하고 있다. CIA는 다인코프, 블랙워터, 베텍 등의 보안회사와 해외에서 비밀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극비인 국가안보 분야까지도 협력하고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에는 CIA 작전기지들이 많다.
블랙워터의 청부인들은 CIA 기지에서 특수작전항공단의 헬리콥터 지원을 받아 적을 추적하는 일도 하고 있다. 베텍은 CIA는 물론 국방부와도 계약하고 있으며, 미군 특전사령부(US SOCOM)와 민감한 작전들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베텍의 청부인들은 콜롬비아 마약전담 경찰과 군대를 훈련시켰고, 제3세계인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정보를 수집하며 첩보활동을 한다.
이라크에서 시작된 보안산업의 골드러시
냉전이 마감된 이후 소련은 분해되고 서유럽의 안전에 가장 위협적이던 ‘바르샤바 조약군’도 해체되었다.
세계 최대의 조직인 미군에 대한 위협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니 병력 규모도 30% 이상 축소되었다. 맞서 싸울 상대 없이 최강자로 남은 미국은 병력을 감축하며 군의 지원업무를 민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9·11’테러를 당한 지 불과 한 달 후, 미군은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점령했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자신들의 병력만으로는 치안을 유지할 수 없었다. 침공해 점령하는 일과 한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아프간에서 보안회사가 문을 연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
2003년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전쟁 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분명한 플랜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미군은 이라크군을 패퇴시킬 만한 충분한 병력이 있었으나, 평화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점령과 치안유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깨닫게 되고, 마침내 보안산업의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미 국방부는 보급, 수송 등 군대의 병참업무를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민간회사에 맡긴 결과, 관료기구보다 비용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발칸반도에서 20세기 최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KBR)는 코소보에서 미군 기지를 건설했다. KBR은 미군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험비와 트럭 등 군용차량을 정비했으며, 무기 체계의 수리까지 맡아 처리했다.
아프간의 미군 본부는 바그람 공군기지다.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합동기동부대 사령부가 있는 바그람은 1979년부터 10년간 소련점령군의 베이스캠프였다.
바그람 기지는 수천 개의 지뢰가 매설된 밀도 높은 지뢰밭에 둘러싸여 있었고, 활주로는 소련의 공격용 헬리콥터인 하인드가 쉴 새 없이 뜨던 곳이다.
냉전이 막을 내린 후, 소련군이 방치한 녹슨 무기와 파편들로 폐기물처리장이 되어가던 바그람 기지를 리모델링한 것은 KBR이었다. KBR은 바그람을 리모델링해 전기 공급에서부터 급식과 세탁까지 책임지고 있다.
급식과 청소 빨래까지 책임지는 민간회사
KBR이 관리하는 열 개가 넘는 식당은 프라이드치킨과 신선한 야채샐러드와 게토레이가 남아돈다. 체력단련을 하는 피트니스 클럽에는 비욘세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샤워 룸도 청소가 잘되어 있다.
미군은 지난 20세기의 미군과 많이 다르다. 미군은 병력수송이나 기지경비, 군수품 수송 등 방어적인 일은 더 이상 군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라크 전쟁터에서도 전차를 이동시키는 일은 민간회사가 맡았다.
전차가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 경우, 직접 굴러가는 것보다 민간회사의 트레일러로 이동하면 비용이 절반도 들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군대가 야전에서 수행해 오던 일이 줄어들고 군대가 변화하면서 군인은 덜 필요해졌다. 미국이 군사력을 최고로 증강해 나가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80만명이던 미 육군은 48만명으로 감축되었다. 민간회사가 전쟁터에서 군대의 병참을 책임지고 있지만 급식하고 청소하고 빨래만 해 주는 건 아니다.
전쟁터에는 총을 들고 일하는 두 부류의 민간인들이 있다. 보안회사와 계약한 민간청부인과 전통적인 용병회사의 용병들이다. 용병부대와 보안회사는 모두 민간군사기업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다르며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에서는 ‘민간청부인’과 ‘용병’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회사는 무장한 병력과 무기체계를 동원해 계약자를 위해 싸운다. 용병들은 필요하다면 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준 용병부대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은 1995년 내전이 확대되었다. 폭력적인 반란군들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면서 무정부상태의 혼돈 속에 빠졌고, 다이아몬드 광산은 반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광산을 되찾기 위해 정부군이 반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만 거듭했다.
반군은 다이아몬드로 더 많은 무기를 확보했다. 다이아몬드는 반군의 든든한 전쟁자금이 되었고 그들은 소총과 장갑차와 군복과 위스키까지 사들였다. 시에라리온에서는 연간 수억 달러어치의 다이아몬드가 생산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분쟁의 원인이었고 내전의 불길을 장기화시키는 연료였다.
정부군은 패배해 후퇴하느라 바빴고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망되자 외국 대사관들은 긴급철수에 들어갔다. 반군은 수도 외곽까지 접근했고 정부는 극도로 위태로운 처지에 몰렸으나 갑자기 전세가 역전되었다.
앙골라에서 공수된 무장병력이 수도로 진격해 최신 자동화기로 반군들을 공격했다. 공중에서는 러시아제 공격용 헬리콥터 부대가 반군을 정밀 타격했다. 기계화 부대가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격하자 수도까지 접근했던 반군은 불과 일주일 만에 막대한 희생자만 남긴 채 뿔뿔이 밀림 속으로 퇴각해 사라졌다.
정부를 구해준 정체불명의 병력은 남아공의 용병부대 익제커티브 아웃컴즈(EXO)였다. 반군을 궤멸시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주기로 한 계약에 28세의 대통령 스트라세는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인권과는 거리가 먼 국가의 독재자는 용병들을 친위대로 고용해 암살과 쿠데타의 음모로부터 자신을 지키거나, 통치기간을 늘리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총리 줄리어스 챈은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용병회사 샌드라인 인터내셔널과 계약했다. 챈은 36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으나, 수년 전부터 재정위기에 시달리던 정부로서는 줄 돈도 없었다.
1997년 2월, 이 계약을 호주 언론에서 폭로하자 파푸아뉴기니 방위군 사령관은 충격을 받았다. 적자에 허덕이는 가난뱅이 정부로부터 밀린 급료도 못 받던 터라 그는 총리를 내쫓기로 했다. 방위군이 주도해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가열되자 총리는 사임했다. 방위군은 용병부대 리더인 팀 스파이서를 체포했고, 이미 사태를 감지하고 있던 용병들은 돈도 못 받은 채 항공기로 신속하게 도주해 버렸다.
대통령 카르자이를 암살하라
보안회사의 민간청부인은 보안 서비스와 관련된 일을 한다. 보안(security)이란 특별히 지정된 사람과 시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다.
민간청부인은 군대와 경찰, 경호대에서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인 이들은 대사관과 군사기지를 경비하며,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을 보호하고, 정부 기관원과 외교관, 사업가들을 경호한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는 각국의 저널리스트와 정부의 방문자들이 탄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청부인들의 경호 차량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대테러 전문부대인 델타포스 출신의 청부인들이 지키고 있다.
청부인은 총을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지정된 목표를 지키는 게 일이다. 따라서 이들은 상황이 악화되어 자신이 지키는 목표가 공격을 받을 경우만 총을 쏘고,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만 방어한다. 이런 사실을 따져볼 때, 민간청부인과 용병부대원을 같이 묶어 ‘용병’으로 부르는 일은 잘못이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대통령 카르자이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었다. 미 국무부는 카르자이의 경호를 특전사령부에 맡겼고, 사령부는 해군특수부대에 그 일을 내려보냈다.
카르자이의 경호대는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 6팀’이었고, 그들은 ‘네이비실의 델타포스’로 불리는 최정예 팀이었다. 특수부대의 강력한 화기로 무장한 6팀은 카르자이가 이동할 때마다 빈틈없이 둘러싼 채 따라다니며 경호했다.
2002년 9월, 카르자이를 경호하는 아프간 근위대원 하나가 그의 암살을 시도했다. 근위병은 러시아제 자동권총으로 탄창이 빌 때까지 연발로 쏘았다. 총알은 카르자이의 목을 스치며 모두 빗나갔으나, 곁의 고위 관료는 얼굴을 맞아 즉사했다. 순간 네이비실 6팀은 자동화기를 발사해 주위 민간인들까지 사살하며 진압했다.
6팀의 과잉행동으로 미군은 언론에 엄청나게 시달렸고, 국무부는 카르자이의 경호를 보안회사 다인코프에 넘겨 경호팀을 새로 꾸렸다. 델타포스와 네이비실, 레인저 출신들인 민간경호대는 밀착경호팀과 공격대응팀, 저격팀, 운전팀으로 나뉘어 있다.
다인코프는 국무부와 계약하고 있으나 경호팀 지원은 국방부가 맡고 있다. 국방부는 개인화기와 지원화기, 방탄장비, 통신장비와 방탄으로 장갑된 벤츠와 렉서스 SUV 차량까지 지원한다. 카르자이는 암살 위협이 높은 표적이다. 경호대가 카르자이의 이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미군은 근접항공지원을 위해 무장헬리콥터인 아파치와 탱크 킬러 A-10 공격기까지 지원하고 있다.
2003년, 카르자이와 경호팀이 2대의 CH-47 치누크 헬리콥터로 선거유세를 위해 지방으로 향했다. 2대의 아파치 헬기가 호위를 맡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착륙을 시도하던 치누크 헬기는 미사일 공격을 당했다. “지대공 미사일이다!”
경호팀의 팀 리더가 소리쳤다. 치누크 헬기는 미사일을 피하려고 급히 회전하며 긴급기동을 하다 순식간에 고도가 떨어져 하강했다. 대원들은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매며 죽는다고 생각했다. 미 육군 조종사는 간신히 미사일을 피했고 거의 지상까지 추락하던 헬리콥터를 상승시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카르자이의 집무실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 후 팀 리더가 조종사에게 갔다. “살려줘 고맙네.”
조종간을 잡은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조종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죽을 맛이야.”
美 국방부, 4년간 보안회사에 2700억 달러 지불
미국 감사원의 자료를 보면, 국방부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보안회사와 계약한 내용과 지출한 예산의 기록이 있다. 국방부가 4년 동안 보안회사에 지불한 돈은 2700억 달러(310조원)다. 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군을 민영화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군이 해 오던 일을 민간에 넘겨 ‘군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70여 개의 보안회사가 미 정부기관과 계약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보안회사와 용병부대를 1990년대부터 추적해 온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책임연구원 피터 싱어가 최근 내놓은 자료는 이렇다. “이라크의 청부인은 모두 19만명이며, 미군과 연합군을 합친 18만명보다 많다.”
이들 중에서 보급과 급식, 세탁, 건설을 맡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10만여 명을 차지하며 필리핀과 네팔 사람들이 싼 급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미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동원이 가능했던 19만명의 민간인들이 군의 역할을 분담하면서 ‘전쟁의 민영화’가 시작되었다.
팔루자는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며 미군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도시로 악명이 높다. 이곳은 무법천지였고 RPG와 박격포, 사제폭탄의 공급처였다.
2004년 3월 ‘팔루자’에서 잔인한 사건이 벌어졌다. 보안회사가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을 끌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블랙워터의 청부인 4명이 새로운 임무를 지시받았다. 바그다드 북쪽으로 이동해 3대의 벤츠 트럭과 합류한 후, 리지웨이 캠프와 팔루자 캠프로 가게 될 수송대를 경호하라는 것이다.
이들 4명은 특수작전항공단에서 헬리콥터의 기관총 사수(door gunner)였던 마이클, 육군의 정예 82공수사단 출신인 제리, 레인저부대 하사관으로 전역한 웨슬리, 해군 네이비실에서 복무한 스캇이었다. 스캇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에서 혹독한 네이비실 훈련교관으로 출연해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들은 팔루자에서 2km 떨어진 해병대 기지에서 밤을 보내며 다음 날의 계획을 점검하다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호송해야 할 지역의 정확한 지도를 지급받지 못해 이동경로를 미리 정찰할 수 없었고, 비상시를 대비한 차선의 경로도 파악이 힘들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6명이 투입되어야 할 호송작전이지만 2명이 모자랐다. 호송차량에는 운전수와 전방사격수, 그리고 후방에서 적을 감시할 후방사격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탄차량을 요구했으나 장갑이 안된 일반차량을 지급받았으며, 강력한 PKM 기관총도 받지 못했다. 뭐든 일이 안되려고 하면 이리저리 꼬이기만 하는 법이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점을 주고받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많아 일정에 쫓기고 있었고, 돈을 충분히 벌려면 빨리빨리 일을 해치워야 했다. 이번 일은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 정도로 모험이지만 부딪쳐 보기로 했다.
팔루자에서 살해된 민간청부인들
블랙워터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실수를 더 보태줬다. 미 국무부는 ‘표준행동절차’를 매뉴얼로 정하고 있어, 호송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려면 미리 관할부대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블랙워터는 밀린 일정에 맞추느라 준비기간을 단축했고, 청부인들을 현장에 신속하게 배치하기에만 바빠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4명의 청부인들에게는 크고 작은 실수가 계속 이어졌다.
3월 31일 아침, 해병사령부에 통보도 하지 않은 채 호송대가 출발했다. 팔루자의 간선도로인 10번 도로를 따라 선두의 군청색 미쓰비시 SUV 파제로 뒤로 3대의 벤츠 트럭과 빨간색 파제로가 뒤따르고 있었다. 호송대는 바그다드 서쪽의 미군기지 캠프 리지웨이로 이동 중이었고, 출근시간이라 도시를 빠져나가려면 최소한 2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레인저 출신인 웨슬리가 운전하는 선두의 파제로는 제리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으며, 호송대 맨 뒤의 파제로는 스캇과 마이클이 타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스캇의 옆자리엔 긴장한 표정의 마이클이 M-4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는 가벼운 소총보다는 공중에서 중기관총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게 전문이었다.
아침이라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고 속도가 떨어져 호송대가 거의 멈추다시피 했을 때였다. 갑자기 도로 옆 가게에서 AK 소총을 든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선두의 파제로를 향해 AK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얼마나 가까웠던지, 제리는 무릎에 올려놓았던 M-4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지만 미처 총을 들어올리지도 못했다. 일이 뒤틀려 잘못 지급받은 방탄도 안된 파제로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다.
순간 뒤쪽의 파제로가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마이클이 M-4를 미친 듯이 발사했다. 그러나 비 오듯 쏟아지는 수백 발의 총알세례에 마이클과 스캇 역시 순식간에 머리와 가슴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매복한 공격자들이 바로 곁에서 총을 쏜 탓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던 두 사람과 그들을 구하려 했던 두 사람까지 네 명이 모두 사망했다.
사고 후 구경하려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누군가 차에 휘발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다. 전투차량인 험비(Humvee)를 타고 팔루자 외곽을 순찰하던 미 해병대원들이 치솟는 검은 연기를 발견하고 사단에 보고했다. “뭔가 불타고 있습니다.”
철교에 매달린 시신들
팔루자에서 40km 떨어진 해병1사단 작전센터의 당직사관이 연대 연락장교에게 보고했다. “차량들이 습격 받아 불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연락장교가 지시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어. 무인항공기(UAV)를 날려 보내.”
15분이 지나자 작전센터 스크린에 무인항공기가 잡은 영상이 비쳤다. 군중에게 둘러싸인 차에서 치솟는 불길이 보였다. 얼마가 지나 불길이 가라앉자 사람들이 새까맣게 탄 시체를 끌어내 발로 밟으며 훼손한 후 철교로 끌고 가 높이 매달았다.
무인항공기가 다리 위를 선회하며 줌렌즈로 끌어당기자 불에 탄 채 거꾸로 매달린 시체가 선명하게 잡혔다. 작전센터의 보고를 받은 사단 참모는 사단장 매티스 소장에게 무전으로 설명했다.
“팔루자에서 민간인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소말리아 사건과 비슷합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지난 1993년 반군들이 미군 병사를 사살한 후 시신을 차에 매달아 길거리에서 끌고 다녔다. 무인항공기가 촬영한 영상은 해병원정군(MEF) 사령부와 합동기동군(JTF) 사령부로 전송되었다. 미군들은 현장에서 전송되는 영상에 고개를 내저었다. 청부인들을 사살한 이라크인들은 차량을 불태우던 무렵부터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해 인터넷에 띄웠다. 그들은 이 일을 치밀하게 계획해 왔던 것이다.
팔다리와 머리가 잘려나간 2구의 시체가 다리에 매달린 처참한 광경은 전 세계 TV를 통해 수없이 방송되었다. 영화에서 잘생긴 외모와 멋진 몸매로 여성 팬이 많았던 스캇은 숯덩이가 된 채로 10시간이나 매달려 있었다.
미국인들은 TV를 통해 지켜보며 충격을 받았다. 대다수 미국인은 무장한 민간인들이 전쟁터인 이라크에 가서 뭘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에 탄 시신은 10시간이 지난 후 무장한 해병소대가 가서 회수해 왔다.
팔루자 사건은 전쟁터에서 민간청부인들이 맡은 역할에 대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미군은 보복을 위해 미 해병대를 동원했다. 4월 4일 새벽 1시, 해병 1사단 5연대 1대대의 알파중대와 브라보중대, 찰리중대, 화기중대의 1000여 명의 병력이 팔루자로 진격했다.
고공에 뜬 U-2 정찰기는 팔루자의 거리와 미로 같은 골목길의 디지털 영상을 해병대에 제공했다. 미군 전자정보팀은 적의 휴대전화를 도청해 자세한 통화내용과 전장의 정보를 전해 줬다. AC-130 스펙터는 야간에 적외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해병대의 진격을 도우며 적의 머리 위에 포탄과 총탄의 비를 퍼부어 지원했다.
해병들의 팔루자 전투는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고, 해외 방송사들이 따라서 보도하자 비난 여론이 백악관에 정치적인 압력으로 작용했다.
4월 10일, 전투는 6일 만에 중단되어 해병대는 팔루자에서 철수했다. 그들이 철수한 시기는 승리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해병들은 밀고 들어가야 할 전투에서 발을 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적을 소탕하지 않은 채 철수한 것은 ‘아까운 생명과 시간의 낭비’라고 보았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원은 16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비난에 민감했던 백악관이 발을 빼기로 했으니 해병대는 명령에 따라야 했다. 해병대가 팔루자에서 철수하자 급조폭발물(IED)을 이용한 폭탄테러는 6배로 늘어났다. 팔루자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본거지이며 자살폭탄 특공대의 공급처였다.
미군 대신 동원된 병사들
이라크의 청부인들은 폭탄테러와 총격이 끊이지 않는 무법천지의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임무와 위험도에 따라 600달러(70만원)에서 800달러(90만원) 정도의 일당을 받고 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일하면서 감당해야 할 숱한 위험과, 고용계약이 연장된다는 보장도 없고 퇴직금도 없으니 많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대부분 특수부대에서 근무한 사람들이지만 경찰관과 국무부 경호요원 출신도 있다. 군대에서 훈련받은 살인과 방어 등 특별한 기술이 민간사회에서는 쓸모가 없어 군을 떠나면 바깥세상에서 살기가 쉽지 않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위험한 줄이야 알지만, 아내와 자식을 위해 넉넉한 벌이를 하려고 청부인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보안회사는 계약을 통해 청부인을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다. 필요에 따라 계약해 쓰고, 책임질 필요는 없고, 비싸기는 해도 쓰다가 문제가 생기면 재계약을 중단해 해고할 수 있다. 따라서 청부인들은 쓰다가 버릴 수 있는 병사인 셈이다.
CIA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해 소탕하고 있다. 스파이항공기 U-2를 이용해 고공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한 후, 무인공격기 프레데터를 날려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로 폭격하고 있다. 이 일에 블랙워터가 개입한 것이 말썽이 되자 CIA는 2010년 3월 블랙워터와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 있는 미군 전방작전기지들은 CIA기지다. CIA 작전관 케이스 오피서(Case Officer)가 기지대장을 맡아 파키스탄의 비밀작전을 지휘한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제레미 스캐힐은 <뉴욕타임스> 5월 10일자에 ‘파키스탄의 비밀작전에 블랙워터의 청부인들이 개입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보안회사의 청부인들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청부인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CIA가 여전히 블랙워터와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정부가 비밀작전에 보안회사를 동원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청부인은 군인도 아니고 연방정부 소속도 아니다. 따라서 청부인이 적에게 포로가 되어도 정부는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으며, 현지에서 사망해도 정치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다. 미국정부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보안회사에 아웃소싱하고 있으며, 그렇게 떠넘긴 일은 정부가 비난받을 일이 거의 없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터 싱어는 이렇게 정리한다. “경제적 비용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비용절감의 문제다. 잘못되었을 때는 민간회사를 비난하면 된다.”
정부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작전에, 미군을 대신해 동원된 블랙워터의 1회용 병사들이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하고 있다.⊙
“모두 올라가. 사격 준비!”
군용 라이플 M-4를 장전하고 기다리던 대원들에게 팀 리더가 소리쳤다. 전차공격용 로켓추진 유탄발사기인 RPG의 직격탄에 건물 한쪽이 박살나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M-4를 들고 건물 꼭대기로 올라간 팀 리더가 반복해 소리쳤다.
“사격! 사격!”
2004년 4월 6일 오후 1시, 빠져나갈 방법이 없던 이들은 맹렬한 교전에 휘말렸다. 24시간 전, ‘알쿠트’의 반군들이 도시 전체를 장악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160km 떨어진 알쿠트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의 지역본부가 있는 곳이다. 반군은 이라크 경찰의 무기와 통신장비를 모두 약탈한 후 CPA 주위를 둘러싸며 공격을 준비했다.
반군의 포위로 후퇴조차 못하게 된 18명의 민간인, 경비를 맡고 있던 보안회사 민간청부인 10명이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CPA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민간인은 CPA와 군수회사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의 직원들이었다. CPA를 완전 포위한 수백 명의 반군은 AK 소총과 RPG로 본격적인 집중공격을 해 왔다.
오후 3시, 박격포탄이 날아와 터지기 시작했고, 로켓탄도 쉴 새 없이 날아들어 CPA는 온통 파편과 화약 연기, 희뿌연 먼지로 가득했다.
전투는 더욱 격렬해져 총알이 빗발쳤고, 건물꼭대기에서 CPA를 방어하던 청부인들의 탄약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탄약을 가져다줄 수 있겠나?”
팀 리더가 아래층 군수회사 직원을 무선으로 호출했다. “물론.”
무거운 탄약상자를 꼭대기로 운반해 온 그들은 널려 있는 빈 탄창에 총알을 채워 넣었다. 그 순간 로켓탄이 옥상의 벽을 때리며 폭발하면서 파편이 탄창을 채우던 민간인의 팔을 치고 나갔다. 겁에 질려 쩔쩔매는 사이 쏟아진 피는 주위를 흥건하게 적셔놓았다.
적의 RPG 사수가 다시 재장전하며 발사준비를 했다. 레인저부대 저격수였던 청부인이 M-4를 겨냥하자 RPG를 막 발사하려는 적이 소총 가늠쇠에 들어왔다.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명중했다. 적은 RPG와 함께 맥없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오후 6시가 지나면서 더 자주 날아오는 박격포탄에 폭발밀도가 높아져 위험해진 청부인들은 아래층으로 피신했다. 갈증으로 목이 탄 그들이 CPA 직원에게 물을 청하자 생수병 몇 개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물이 거의 바닥났어.”
치열한 교전이 오후 내내 이어져 건물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적이 밀고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후 7시를 넘기자 적의 공격이 뜸해졌다. 구급상자를 가져와 동료의 상처를 소독하던 청부인이 팀 리더에게 물었다. “CPA 본부에서는 뭐라고 그래?”
참치 캔(tuna can)으로 불리는 탄약 박스를 열어 탄창을 채우던 팀 리더가 대답했다. “그냥 잘 숨어 있으라는군.”
짙은 갈색 포장을 뜯어 전투식량(MRE)을 꺼내 씹던 곁의 동료가 내뱉듯 말했다.
“빌어먹을, 망할 브리머 자식.”
전날 바그다드의 CPA 본부로 지원을 요청하자, 임시행정처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는 “상황을 과장하지 말라”며 거절했던 것이다.
선제공격으로 항공기 폭격지점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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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위부터 블랙워터, KBR, 다인코프의 로고들. |
반나절이나 지속된 전투로 부상자가 널려 있는데다 녹초가 되어 있던 그들이 철수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던 밤 10시, 느닷없이 작전취소 연락이 왔다.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착륙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구출을 취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상자만이라도 수송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우크라이나 군에서는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이 자식들 아주 겁쟁이들이군.”
육군특수부대 델타포스(Delta Force)에서 복무했던 팀 리더 존 터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새벽 1시 무렵, 지치고 낙담해 있던 그들에게 항공기 소리가 들렸다. 유령이란 이름의 미군 공격기 AC-130 스펙터(Spectre)가 나타났다. 수송기 C-130을 근접지원기로 개조한 스펙터는 엄청난 화력으로 지상군을 근접해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밤인데다 총구에서 내뿜는 섬광이 비치지 않아 타격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근접항공지원팀으로 극비임무를 맡았던 델타부대 출신의 청부인이 스펙터와 무선으로 교신하며 목표물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알았다, 대기하겠다. 불꽃놀이를 시작해 보기 바란다.”
스펙터 기장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무선으로 들려왔다. 청부인들이 개인화기와 PKM 기관총으로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자 반군이 대응해 왔다.
하늘에 뜬 스펙터가 거대한 적외선 스포트라이트를 켜자 총구에서 드러난 섬광들이 잡히며 타격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적외선 라이트는 사람의 눈에는 감지되지 않는다. 스펙터는 저공으로 선회하면서 그곳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스펙터가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고 판단한 팀 리더는 물이 떨어진데다 탄약마저 바닥이라 철수를 결정했다.
아침 6시, 보안회사의 장갑된 맘바가 민간인들이 탄 4대의 4륜구동 파제로 SUV를 앞뒤로 경호하며 CPA를 빠져나왔다. 남아공에서 제작된 거대한 방탄차량 맘바는 지뢰가 터져도 견딜 수 있도록 강철장갑으로 제작돼 있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CPA 주변을 지나자 공격용 무장헬리콥터인 아파치가 날아와 그들의 머리 위를 비행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1시간 반 후에는 도시 외곽의 미군기지로 퇴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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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오른쪽에서 두번째)를 경호하는 블랙워터 요원들. |
트리플 캐노피 보안회사, 6개월간 920억 벌어
CPA에서 반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인 사람들은 민간보안회사와 계약된 민간청부인(private contractor)이다. 전직 군인들이다.
CPA 지역본부는 군수회사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KBR)가 건설했다. KBR의 이라크 파견자들을 경호하는 회사는 영국의 컨트롤 리스크스 그룹(CRG)이고, CPA의 경호는 미국의 트리플 캐노피가 맡고 있었다.
CPA에서 싸운 10명 중 4명은 CRG의 청부인들이고, 6명은 트리플 캐노피 소속이었다. 2004년 4월 6일의 이 사건 이후, 보안회사 청부인들은 우크라이나 군을 ‘겁쟁이(chicken)’로 부르고 있다. 트리플 캐노피는 ‘민간보안산업’ 분야에서 블랙워터, 다인코프와 함께 ‘빅 스리(big three)’로 통한다.
미 국방부는 전쟁터에서 적과 교전하는 일만 빼놓고는 대부분의 일을 보안회사와 계약해 넘겨주고 있다. 군대에서 병참이라고 부르는 보급과 수송, 급식, 정비 등 군의 살림살이에서부터 경비와 경호는 물론 호송임무까지 보안회사가 대행하고 있다. 보안회사는 정보기관과 해외의 비밀작전을 공동으로 수행하며 적을 추적해 암살하는 일도 한다. 보안회사가 미 국방부, 국무부와 계약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은 일반인의 상식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며 엄청나다.
보안산업은 최근 10년간 빠르게 성장했고 가장 큰 시장은 이라크였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 이후, 이라크 전쟁은 보안산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보안산업 시장은 미국의 납세자들이 낸 달러가 지천으로 널린 곳이라, 현재 빅 스리를 포함한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보안산업을 선도하는 회사는 빅 스리 외에도 베텍, HART, 아머그룹,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 등이 있다.
트리플 캐노피는 보안회사 중 가장 나중에 출발한 회사였다. 이라크 침공 이후인 2003년 9월, 델타포스 출신의 전직 군인들이 은행에서 신용대출한 돈을 합해 공동으로 세운 게 트리플 캐노피였다.
이라크에서 2004년 블랙워터, 다인코프, 트리플 캐노피는 공동으로 중요한 계약을 따내 파워가 센 순서대로 몫을 나눠가졌다. 바그다드에서 미국 관리들과 각국 외교관들을 경호하는 노른자위는 블랙워터가 차지했고 흰자위인 이라크 북부는 다인코프가 가져갔다. 트리플 캐노피는 제일 형편없는 몫인 남부를 맡았지만 6개월 동안 8000만 달러(920억원)를 벌었다.
반 년 후, 그 일은 6000만 달러짜리 재계약으로 이어졌고, 창업한 지 1년도 안되어 1억 달러(115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델타부대 출신들은 두 번의 계약으로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은행에 쌓아두게 되었고, 4명으로 시작한 사업체가 1년 후 900여 명을 고용한 보안회사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CIA의 단골 파트너 블랙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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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워터의 창설자 에릭 프린스가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
블랙워터는 1997년 실탄사격장으로 시작했다. 군인 출신인 에릭 프린스는 사격장에서 강철 타깃도 만들며 운영에 애썼으나 2000년까지는 6명뿐인 직원들의 월급 주기도 힘들었다.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NavySEAL)에서 전역한 프린스가 총기에 관심이 있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개인적인 관심사만 만족시키는 정도였다.
프린스를 살려준 건 미 중앙정보국인 CIA였다. 예전의 동료 하나가 다리를 놓아줘 프린스는 2001년 CIA와 계약을 했다. 첫 계약은 CIA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세운 지국을 경호하는 일이었다.
2명의 팀 리더를 포함, 18명의 청부인이 아리아나 호텔에 자리 잡은 ‘CIA 카불지국’을 경비하고 요원들을 경호하면서 6개월 동안 540만 달러(62억원)를 받았다. 이때 프린스는 고용한 청부인들에게 하루 일당을 500달러(58만원)로 계산해 한 달에 1만5000달러(1700만원)를 지급했다. 하지만 그가 CIA에 청구한 금액은 하루에 1인당 1500달러였고, 프린스는 한 달에 54만 달러(6억2000만원)씩을 챙겼으니 수지맞는 일이었다.
블랙워터는 CIA와 매년 계약을 이어가며 급성장했고, 연간계약 중 15%는 비밀계약이며, 대부분 CIA와 맺는 이 계약으로 해마다 1억 달러씩을 벌었다. 그 후 블랙워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보안회사가 되어 현재 1년 매출액은 대략 8억 달러(9200억원)에 이른다.
CIA는 여러 보안회사와 계약하고 있다. CIA는 다인코프, 블랙워터, 베텍 등의 보안회사와 해외에서 비밀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극비인 국가안보 분야까지도 협력하고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에는 CIA 작전기지들이 많다.
블랙워터의 청부인들은 CIA 기지에서 특수작전항공단의 헬리콥터 지원을 받아 적을 추적하는 일도 하고 있다. 베텍은 CIA는 물론 국방부와도 계약하고 있으며, 미군 특전사령부(US SOCOM)와 민감한 작전들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베텍의 청부인들은 콜롬비아 마약전담 경찰과 군대를 훈련시켰고, 제3세계인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정보를 수집하며 첩보활동을 한다.
이라크에서 시작된 보안산업의 골드러시
냉전이 마감된 이후 소련은 분해되고 서유럽의 안전에 가장 위협적이던 ‘바르샤바 조약군’도 해체되었다.
세계 최대의 조직인 미군에 대한 위협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니 병력 규모도 30% 이상 축소되었다. 맞서 싸울 상대 없이 최강자로 남은 미국은 병력을 감축하며 군의 지원업무를 민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9·11’테러를 당한 지 불과 한 달 후, 미군은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점령했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자신들의 병력만으로는 치안을 유지할 수 없었다. 침공해 점령하는 일과 한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아프간에서 보안회사가 문을 연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
2003년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전쟁 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분명한 플랜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미군은 이라크군을 패퇴시킬 만한 충분한 병력이 있었으나, 평화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점령과 치안유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깨닫게 되고, 마침내 보안산업의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미 국방부는 보급, 수송 등 군대의 병참업무를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민간회사에 맡긴 결과, 관료기구보다 비용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발칸반도에서 20세기 최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KBR)는 코소보에서 미군 기지를 건설했다. KBR은 미군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험비와 트럭 등 군용차량을 정비했으며, 무기 체계의 수리까지 맡아 처리했다.
아프간의 미군 본부는 바그람 공군기지다.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합동기동부대 사령부가 있는 바그람은 1979년부터 10년간 소련점령군의 베이스캠프였다.
바그람 기지는 수천 개의 지뢰가 매설된 밀도 높은 지뢰밭에 둘러싸여 있었고, 활주로는 소련의 공격용 헬리콥터인 하인드가 쉴 새 없이 뜨던 곳이다.
냉전이 막을 내린 후, 소련군이 방치한 녹슨 무기와 파편들로 폐기물처리장이 되어가던 바그람 기지를 리모델링한 것은 KBR이었다. KBR은 바그람을 리모델링해 전기 공급에서부터 급식과 세탁까지 책임지고 있다.
급식과 청소 빨래까지 책임지는 민간회사
KBR이 관리하는 열 개가 넘는 식당은 프라이드치킨과 신선한 야채샐러드와 게토레이가 남아돈다. 체력단련을 하는 피트니스 클럽에는 비욘세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샤워 룸도 청소가 잘되어 있다.
미군은 지난 20세기의 미군과 많이 다르다. 미군은 병력수송이나 기지경비, 군수품 수송 등 방어적인 일은 더 이상 군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라크 전쟁터에서도 전차를 이동시키는 일은 민간회사가 맡았다.
전차가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 경우, 직접 굴러가는 것보다 민간회사의 트레일러로 이동하면 비용이 절반도 들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군대가 야전에서 수행해 오던 일이 줄어들고 군대가 변화하면서 군인은 덜 필요해졌다. 미국이 군사력을 최고로 증강해 나가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80만명이던 미 육군은 48만명으로 감축되었다. 민간회사가 전쟁터에서 군대의 병참을 책임지고 있지만 급식하고 청소하고 빨래만 해 주는 건 아니다.
전쟁터에는 총을 들고 일하는 두 부류의 민간인들이 있다. 보안회사와 계약한 민간청부인과 전통적인 용병회사의 용병들이다. 용병부대와 보안회사는 모두 민간군사기업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다르며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에서는 ‘민간청부인’과 ‘용병’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회사는 무장한 병력과 무기체계를 동원해 계약자를 위해 싸운다. 용병들은 필요하다면 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준 용병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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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유지를 위해 용병 샌드라인 인터내셔널과 계약했던 줄리어스 챈 파푸아뉴기니 총리. |
반군은 다이아몬드로 더 많은 무기를 확보했다. 다이아몬드는 반군의 든든한 전쟁자금이 되었고 그들은 소총과 장갑차와 군복과 위스키까지 사들였다. 시에라리온에서는 연간 수억 달러어치의 다이아몬드가 생산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분쟁의 원인이었고 내전의 불길을 장기화시키는 연료였다.
정부군은 패배해 후퇴하느라 바빴고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망되자 외국 대사관들은 긴급철수에 들어갔다. 반군은 수도 외곽까지 접근했고 정부는 극도로 위태로운 처지에 몰렸으나 갑자기 전세가 역전되었다.
앙골라에서 공수된 무장병력이 수도로 진격해 최신 자동화기로 반군들을 공격했다. 공중에서는 러시아제 공격용 헬리콥터 부대가 반군을 정밀 타격했다. 기계화 부대가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격하자 수도까지 접근했던 반군은 불과 일주일 만에 막대한 희생자만 남긴 채 뿔뿔이 밀림 속으로 퇴각해 사라졌다.
정부를 구해준 정체불명의 병력은 남아공의 용병부대 익제커티브 아웃컴즈(EXO)였다. 반군을 궤멸시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주기로 한 계약에 28세의 대통령 스트라세는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인권과는 거리가 먼 국가의 독재자는 용병들을 친위대로 고용해 암살과 쿠데타의 음모로부터 자신을 지키거나, 통치기간을 늘리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총리 줄리어스 챈은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용병회사 샌드라인 인터내셔널과 계약했다. 챈은 36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으나, 수년 전부터 재정위기에 시달리던 정부로서는 줄 돈도 없었다.
1997년 2월, 이 계약을 호주 언론에서 폭로하자 파푸아뉴기니 방위군 사령관은 충격을 받았다. 적자에 허덕이는 가난뱅이 정부로부터 밀린 급료도 못 받던 터라 그는 총리를 내쫓기로 했다. 방위군이 주도해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가열되자 총리는 사임했다. 방위군은 용병부대 리더인 팀 스파이서를 체포했고, 이미 사태를 감지하고 있던 용병들은 돈도 못 받은 채 항공기로 신속하게 도주해 버렸다.
대통령 카르자이를 암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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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가운데)을 경호하는 다인코프 요원들. |
민간청부인은 군대와 경찰, 경호대에서 높은 수준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인 이들은 대사관과 군사기지를 경비하며,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을 보호하고, 정부 기관원과 외교관, 사업가들을 경호한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는 각국의 저널리스트와 정부의 방문자들이 탄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청부인들의 경호 차량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대테러 전문부대인 델타포스 출신의 청부인들이 지키고 있다.
청부인은 총을 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지정된 목표를 지키는 게 일이다. 따라서 이들은 상황이 악화되어 자신이 지키는 목표가 공격을 받을 경우만 총을 쏘고,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만 방어한다. 이런 사실을 따져볼 때, 민간청부인과 용병부대원을 같이 묶어 ‘용병’으로 부르는 일은 잘못이다.
미군은 아프간에서 대통령 카르자이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었다. 미 국무부는 카르자이의 경호를 특전사령부에 맡겼고, 사령부는 해군특수부대에 그 일을 내려보냈다.
카르자이의 경호대는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 6팀’이었고, 그들은 ‘네이비실의 델타포스’로 불리는 최정예 팀이었다. 특수부대의 강력한 화기로 무장한 6팀은 카르자이가 이동할 때마다 빈틈없이 둘러싼 채 따라다니며 경호했다.
2002년 9월, 카르자이를 경호하는 아프간 근위대원 하나가 그의 암살을 시도했다. 근위병은 러시아제 자동권총으로 탄창이 빌 때까지 연발로 쏘았다. 총알은 카르자이의 목을 스치며 모두 빗나갔으나, 곁의 고위 관료는 얼굴을 맞아 즉사했다. 순간 네이비실 6팀은 자동화기를 발사해 주위 민간인들까지 사살하며 진압했다.
6팀의 과잉행동으로 미군은 언론에 엄청나게 시달렸고, 국무부는 카르자이의 경호를 보안회사 다인코프에 넘겨 경호팀을 새로 꾸렸다. 델타포스와 네이비실, 레인저 출신들인 민간경호대는 밀착경호팀과 공격대응팀, 저격팀, 운전팀으로 나뉘어 있다.
다인코프는 국무부와 계약하고 있으나 경호팀 지원은 국방부가 맡고 있다. 국방부는 개인화기와 지원화기, 방탄장비, 통신장비와 방탄으로 장갑된 벤츠와 렉서스 SUV 차량까지 지원한다. 카르자이는 암살 위협이 높은 표적이다. 경호대가 카르자이의 이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미군은 근접항공지원을 위해 무장헬리콥터인 아파치와 탱크 킬러 A-10 공격기까지 지원하고 있다.
2003년, 카르자이와 경호팀이 2대의 CH-47 치누크 헬리콥터로 선거유세를 위해 지방으로 향했다. 2대의 아파치 헬기가 호위를 맡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착륙을 시도하던 치누크 헬기는 미사일 공격을 당했다. “지대공 미사일이다!”
경호팀의 팀 리더가 소리쳤다. 치누크 헬기는 미사일을 피하려고 급히 회전하며 긴급기동을 하다 순식간에 고도가 떨어져 하강했다. 대원들은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매며 죽는다고 생각했다. 미 육군 조종사는 간신히 미사일을 피했고 거의 지상까지 추락하던 헬리콥터를 상승시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카르자이의 집무실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 후 팀 리더가 조종사에게 갔다. “살려줘 고맙네.”
조종간을 잡은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조종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죽을 맛이야.”
美 국방부, 4년간 보안회사에 2700억 달러 지불
미국 감사원의 자료를 보면, 국방부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보안회사와 계약한 내용과 지출한 예산의 기록이 있다. 국방부가 4년 동안 보안회사에 지불한 돈은 2700억 달러(310조원)다. 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군을 민영화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군이 해 오던 일을 민간에 넘겨 ‘군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70여 개의 보안회사가 미 정부기관과 계약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보안회사와 용병부대를 1990년대부터 추적해 온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책임연구원 피터 싱어가 최근 내놓은 자료는 이렇다. “이라크의 청부인은 모두 19만명이며, 미군과 연합군을 합친 18만명보다 많다.”
이들 중에서 보급과 급식, 세탁, 건설을 맡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10만여 명을 차지하며 필리핀과 네팔 사람들이 싼 급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미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동원이 가능했던 19만명의 민간인들이 군의 역할을 분담하면서 ‘전쟁의 민영화’가 시작되었다.
팔루자는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며 미군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도시로 악명이 높다. 이곳은 무법천지였고 RPG와 박격포, 사제폭탄의 공급처였다.
2004년 3월 ‘팔루자’에서 잔인한 사건이 벌어졌다. 보안회사가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을 끌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블랙워터의 청부인 4명이 새로운 임무를 지시받았다. 바그다드 북쪽으로 이동해 3대의 벤츠 트럭과 합류한 후, 리지웨이 캠프와 팔루자 캠프로 가게 될 수송대를 경호하라는 것이다.
이들 4명은 특수작전항공단에서 헬리콥터의 기관총 사수(door gunner)였던 마이클, 육군의 정예 82공수사단 출신인 제리, 레인저부대 하사관으로 전역한 웨슬리, 해군 네이비실에서 복무한 스캇이었다. 스캇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이들은 팔루자에서 2km 떨어진 해병대 기지에서 밤을 보내며 다음 날의 계획을 점검하다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호송해야 할 지역의 정확한 지도를 지급받지 못해 이동경로를 미리 정찰할 수 없었고, 비상시를 대비한 차선의 경로도 파악이 힘들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6명이 투입되어야 할 호송작전이지만 2명이 모자랐다. 호송차량에는 운전수와 전방사격수, 그리고 후방에서 적을 감시할 후방사격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탄차량을 요구했으나 장갑이 안된 일반차량을 지급받았으며, 강력한 PKM 기관총도 받지 못했다. 뭐든 일이 안되려고 하면 이리저리 꼬이기만 하는 법이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점을 주고받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많아 일정에 쫓기고 있었고, 돈을 충분히 벌려면 빨리빨리 일을 해치워야 했다. 이번 일은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 정도로 모험이지만 부딪쳐 보기로 했다.
팔루자에서 살해된 민간청부인들
블랙워터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실수를 더 보태줬다. 미 국무부는 ‘표준행동절차’를 매뉴얼로 정하고 있어, 호송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려면 미리 관할부대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블랙워터는 밀린 일정에 맞추느라 준비기간을 단축했고, 청부인들을 현장에 신속하게 배치하기에만 바빠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4명의 청부인들에게는 크고 작은 실수가 계속 이어졌다.
3월 31일 아침, 해병사령부에 통보도 하지 않은 채 호송대가 출발했다. 팔루자의 간선도로인 10번 도로를 따라 선두의 군청색 미쓰비시 SUV 파제로 뒤로 3대의 벤츠 트럭과 빨간색 파제로가 뒤따르고 있었다. 호송대는 바그다드 서쪽의 미군기지 캠프 리지웨이로 이동 중이었고, 출근시간이라 도시를 빠져나가려면 최소한 2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레인저 출신인 웨슬리가 운전하는 선두의 파제로는 제리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으며, 호송대 맨 뒤의 파제로는 스캇과 마이클이 타고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스캇의 옆자리엔 긴장한 표정의 마이클이 M-4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는 가벼운 소총보다는 공중에서 중기관총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게 전문이었다.
아침이라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고 속도가 떨어져 호송대가 거의 멈추다시피 했을 때였다. 갑자기 도로 옆 가게에서 AK 소총을 든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선두의 파제로를 향해 AK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얼마나 가까웠던지, 제리는 무릎에 올려놓았던 M-4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지만 미처 총을 들어올리지도 못했다. 일이 뒤틀려 잘못 지급받은 방탄도 안된 파제로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다.
순간 뒤쪽의 파제로가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마이클이 M-4를 미친 듯이 발사했다. 그러나 비 오듯 쏟아지는 수백 발의 총알세례에 마이클과 스캇 역시 순식간에 머리와 가슴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매복한 공격자들이 바로 곁에서 총을 쏜 탓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던 두 사람과 그들을 구하려 했던 두 사람까지 네 명이 모두 사망했다.
사고 후 구경하려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누군가 차에 휘발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다. 전투차량인 험비(Humvee)를 타고 팔루자 외곽을 순찰하던 미 해병대원들이 치솟는 검은 연기를 발견하고 사단에 보고했다. “뭔가 불타고 있습니다.”
철교에 매달린 시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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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인들이 팔루자에서 살해된 블랙워터 요원들의 시신을 다리 위에 걸어놓고 환호하고 있다. |
그 말을 들은 연락장교가 지시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어. 무인항공기(UAV)를 날려 보내.”
15분이 지나자 작전센터 스크린에 무인항공기가 잡은 영상이 비쳤다. 군중에게 둘러싸인 차에서 치솟는 불길이 보였다. 얼마가 지나 불길이 가라앉자 사람들이 새까맣게 탄 시체를 끌어내 발로 밟으며 훼손한 후 철교로 끌고 가 높이 매달았다.
무인항공기가 다리 위를 선회하며 줌렌즈로 끌어당기자 불에 탄 채 거꾸로 매달린 시체가 선명하게 잡혔다. 작전센터의 보고를 받은 사단 참모는 사단장 매티스 소장에게 무전으로 설명했다.
“팔루자에서 민간인들이 살해되었습니다. 소말리아 사건과 비슷합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지난 1993년 반군들이 미군 병사를 사살한 후 시신을 차에 매달아 길거리에서 끌고 다녔다. 무인항공기가 촬영한 영상은 해병원정군(MEF) 사령부와 합동기동군(JTF) 사령부로 전송되었다. 미군들은 현장에서 전송되는 영상에 고개를 내저었다. 청부인들을 사살한 이라크인들은 차량을 불태우던 무렵부터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해 인터넷에 띄웠다. 그들은 이 일을 치밀하게 계획해 왔던 것이다.
팔다리와 머리가 잘려나간 2구의 시체가 다리에 매달린 처참한 광경은 전 세계 TV를 통해 수없이 방송되었다. 영화에서 잘생긴 외모와 멋진 몸매로 여성 팬이 많았던 스캇은 숯덩이가 된 채로 10시간이나 매달려 있었다.
미국인들은 TV를 통해 지켜보며 충격을 받았다. 대다수 미국인은 무장한 민간인들이 전쟁터인 이라크에 가서 뭘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에 탄 시신은 10시간이 지난 후 무장한 해병소대가 가서 회수해 왔다.
팔루자 사건은 전쟁터에서 민간청부인들이 맡은 역할에 대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미군은 보복을 위해 미 해병대를 동원했다. 4월 4일 새벽 1시, 해병 1사단 5연대 1대대의 알파중대와 브라보중대, 찰리중대, 화기중대의 1000여 명의 병력이 팔루자로 진격했다.
고공에 뜬 U-2 정찰기는 팔루자의 거리와 미로 같은 골목길의 디지털 영상을 해병대에 제공했다. 미군 전자정보팀은 적의 휴대전화를 도청해 자세한 통화내용과 전장의 정보를 전해 줬다. AC-130 스펙터는 야간에 적외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해병대의 진격을 도우며 적의 머리 위에 포탄과 총탄의 비를 퍼부어 지원했다.
해병들의 팔루자 전투는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고, 해외 방송사들이 따라서 보도하자 비난 여론이 백악관에 정치적인 압력으로 작용했다.
4월 10일, 전투는 6일 만에 중단되어 해병대는 팔루자에서 철수했다. 그들이 철수한 시기는 승리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해병들은 밀고 들어가야 할 전투에서 발을 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적을 소탕하지 않은 채 철수한 것은 ‘아까운 생명과 시간의 낭비’라고 보았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원은 16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비난에 민감했던 백악관이 발을 빼기로 했으니 해병대는 명령에 따라야 했다. 해병대가 팔루자에서 철수하자 급조폭발물(IED)을 이용한 폭탄테러는 6배로 늘어났다. 팔루자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본거지이며 자살폭탄 특공대의 공급처였다.
미군 대신 동원된 병사들
이라크의 청부인들은 폭탄테러와 총격이 끊이지 않는 무법천지의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임무와 위험도에 따라 600달러(70만원)에서 800달러(90만원) 정도의 일당을 받고 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일하면서 감당해야 할 숱한 위험과, 고용계약이 연장된다는 보장도 없고 퇴직금도 없으니 많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대부분 특수부대에서 근무한 사람들이지만 경찰관과 국무부 경호요원 출신도 있다. 군대에서 훈련받은 살인과 방어 등 특별한 기술이 민간사회에서는 쓸모가 없어 군을 떠나면 바깥세상에서 살기가 쉽지 않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위험한 줄이야 알지만, 아내와 자식을 위해 넉넉한 벌이를 하려고 청부인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보안회사는 계약을 통해 청부인을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다. 필요에 따라 계약해 쓰고, 책임질 필요는 없고, 비싸기는 해도 쓰다가 문제가 생기면 재계약을 중단해 해고할 수 있다. 따라서 청부인들은 쓰다가 버릴 수 있는 병사인 셈이다.
CIA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해 소탕하고 있다. 스파이항공기 U-2를 이용해 고공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한 후, 무인공격기 프레데터를 날려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로 폭격하고 있다. 이 일에 블랙워터가 개입한 것이 말썽이 되자 CIA는 2010년 3월 블랙워터와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 있는 미군 전방작전기지들은 CIA기지다. CIA 작전관 케이스 오피서(Case Officer)가 기지대장을 맡아 파키스탄의 비밀작전을 지휘한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제레미 스캐힐은 <뉴욕타임스> 5월 10일자에 ‘파키스탄의 비밀작전에 블랙워터의 청부인들이 개입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보안회사의 청부인들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청부인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은 CIA가 여전히 블랙워터와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정부가 비밀작전에 보안회사를 동원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청부인은 군인도 아니고 연방정부 소속도 아니다. 따라서 청부인이 적에게 포로가 되어도 정부는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으며, 현지에서 사망해도 정치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다. 미국정부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보안회사에 아웃소싱하고 있으며, 그렇게 떠넘긴 일은 정부가 비난받을 일이 거의 없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터 싱어는 이렇게 정리한다. “경제적 비용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비용절감의 문제다. 잘못되었을 때는 민간회사를 비난하면 된다.”
정부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작전에, 미군을 대신해 동원된 블랙워터의 1회용 병사들이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추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