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농어업 현장을 가다] 덴마크 : 월간조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국제선 기차를 이용해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화산재로 국제공항이 마비된 탓에 기차역에 승객이 몰렸다. 코펜하겐까지 가는 데 기차를 네 번 갈아탔다. 장장 12시간 동안, 그것도 입석으로…. 중간중간 기차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통로에도 승객이 많아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허벅지에 근육이 꽉 올랐다. 밤 11시가 돼서야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했다. 양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예약해 둔 호텔 위치를 몰라 기차역 청소부에게 길을 물었다. 청소부의 영어실력이 대단했다. 영어를 잘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어릴 때부터 ‘말하기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북미유럽의 강소국(强小國) 덴마크의 경쟁력은 국민의 영어 구사력에서 출발했다. 수도(首都) ‘코펜하겐’의 뜻이 무역항(코펜은 Trade, 하겐은 Harbor)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덴마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농축산물, 수출액의 15% 차지

유럽 최대 돈육 가공업체인 데니시크라운 공장에서 가공 중인 돼지고기.

덴마크의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43%에 불과하다(430만ha). 인구는 서울의 절반도 안된다(550만명). 그런데 1인당 GDP는 6만 달러로 우리의 세 배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이토록 잘사는 비결은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비밀은 농업, 그중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축산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덴마크의 주요 수출 농축산물은 돼지고기, 치즈, 버터다. 국가 전체 수출액의 15%를 차지한다. 덴마크는 농축산물 수출에서 무역수지 흑자 60%를 기록하고 있다. 농축산물의 70%가 육가공 제품이며, 이 중 절반이 돼지고기다. 요컨대 덴마크는 돼지고기를 수출해 먹고사는 셈이다.

기자는 덴마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돈육(豚肉) 가공업체 ‘데니시크라운(Danish Crown)’을 방문하기로 했다. 칼슨 라스무센(Karsten Rasmussen) 덴마크 농식품협회 무역담당 매니저의 말이다.

“데니시크라운의 역사는 100년이 넘어요. 세계 3대 돈육 가공업체 중 하나로 유럽에서는 최대 규모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말하는 ‘덴마크 돼지고기’는 이 회사가 생산한 고기지요. 1882년 설립 이후 100년 동안 수십 차례의 인수ㆍ합병을 거쳤습니다. 이 회사는 덴마크 양돈 농가 대부분이 주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 회사’입니다.”

칼슨 라스무센 씨에 따르면, 덴마크는 협동조합의 나라다. 덴마크에서 큰 기업들은 대부분 농업 관련 회사다. 데니시크라운을 비롯해, 세계적인 유제품 생산업체 Arla Foods, 맥주로 유명한 칼스버그, 물류회사 AP Moller Maersk 등이 기업순위 5위 이내에 든다.

IT기업 연구소 같은 도축ㆍ가공공장

칼슨 라스무센 덴마크농식품협회 무역담당 매니저.

코펜하겐에서 승용차로 3시간을 달려 덴마크 동쪽 유틀란트 반도에 위치한 데니시크라운 홀슨스 도축ㆍ가공공장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들판에 들어선 이 공장은 마치 IT기업의 R&D연구소처럼 깔끔했다. 공장 안내실에서 만난 야네트 폴슨(Agnete Poulsen) 데니시크라운 고객담당 매니저가 기자를 친절히 맞이했다. 그녀에게 “공장 외견이 돼지 도축장 같지 않다”고 했더니 “설계단계부터 건물 외관과 내부 시설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2005년 완공된 홀슨스 공장은 연간 돼지 4100만 마리를 도축한다. 덴마크의 이웃나라 스웨덴에서 도축되는 수(3800만 마리)보다 많다. 공장 전체 면적은 8만2000㎡이며 전(全) 과정이 자동화돼 있다. 일부 과정에서는 로봇이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데니시크라운은 덴마크에 13개 공장을 두고 있다. 전체 공장의 총 매출액은 90억 달러(10조8000억원)에 달한다. 독일과 스웨덴, 영국, 러시아, 폴란드 등에도 10여 개의 해외공장이 있다. 데니시크라운의 전체 직원은 2009년 현재 2만4200여 명(국내 1만여 명)이다. 폴슨 씨는 “이곳 홀슨스 공장에는 1500여 명이 근무하는데 이 중 100명이 정부기관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다. 이들은 도축ㆍ가공ㆍ포장 등 전 과정을 일일이 검사한다. 최고의 품질, 최고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감독기관의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데니시크라운은 ‘Haccp’라는 품질관리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미국 우주항공산업에서 적용되는 세계 최고의 무균ㆍ무결점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는 돼지 도축 전 과정을 지켜봤다. 먼저 도축을 앞둔 돼지 대기실을 찾았다. 이곳에는 3000여 마리의 돼지가 8마리씩 그룹별로 나뉘어 있었다. 3000마리 돼지 중 서로 싸우거나, ‘꽥~꽥’ 소리를 지르는 돼지가 한 마리도 없다는 데 놀랐다. 폴슨 씨는 “도축을 기다리는 돼지라도 마지막까지 ‘동물복지’에 신경을 쓴다. 농장에서 이곳으로 이동된 돼지가 편안한 상태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조명부터 온도까지 조절한다”고 했다.

양돈 농장에서 도축장까지 옮기는 시간이 두 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게 회사방침이라고 한다. 돼지가 이동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육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가 끝난 돼지는 이산화탄소실을 거쳐 기절상태에 빠지고 곧바로 가공 과정에 들어간다.

도축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쓰는 대목은 세균감염이다. 폴슨 씨는 “가공하기 전에 돼지를 통째로 스팀으로 세척한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위생검사를 철저히 한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덴마크 돼지고기의 살모넬라균 감염률은 1% 이하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다른 EU국가의 경우 통상 15%가 넘는다고 한다.

데니시크라운은 세계 140여 개국을 대상으로 자사(自社) 제품을 수출한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치밀한 시장 분석과 전략적인 수출방식에 있다. 도축된 돼지를 통째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위별로 가공해 수출 대상국의 소비 성향에 맞게 적절히 가공해 판매하는 것이다. 베이컨은 영국, 햄은 이탈리아, 등심은 스웨덴, 돼지머리와 내장ㆍ족발은 중국, 삼겹살은 한국, 갈비는 일본과 한국 등에 수출된다. 폴슨 씨는 “같은 갈비라도 한국 사람들은 비계가 없는 것을 좋아하고, 일본과 미국은 지방이 있는 것을 더 선호한다. 덴마크 양돈산업의 경쟁력은 돼지를 키울 때부터 수입국 국민의 입맛을 고려해 사육하는 데 있다”고 했다.

데니시크라운이 생산한 돼지고기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어느 농장, 어떤 상태로 생산됐는지 추적이 가능하다고 한다.

먼지 없는 사료공장

야네트 폴슨 데니시크라운 고객담당 매니저가 덴마크 돈육의 부위별 수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기자와 동행한 칼슨 라스무센 덴마크농식품협회 매니저는 “덴마크 돼지고기가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고품질의 사료에서 찾을 수 있다”며 덴마크 최대 사료 생산회사인 ‘DLG’를 소개했다. 115명의 농부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DLG는 덴마크 사료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의 주주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덴마크 농축산업은 곡물생산, 사료제조, 축산가공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DLG 본사는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덴마크 농식품협회 건물에 입주해 있다. 호페 크리슈텐슨(Hoppe Christensen) DLG그룹 시니어 컨설턴트를 만나 회사 전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1982년부터 이 회사에 사료 영양전문가로 근무해 온 크리슈텐슨 씨는 “농민이 주주이자 우리의 고객”이라고 했다.

DLG는 독일과 폴란드 등 북유럽 사료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00년부터 독일 사료회사를 인수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도 회사 순이익이 늘었다. DLG는 현재 덴마크 국내에 13개, 독일에 10개, 스웨덴에 3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DLG는 연간 돼지사료 160만t, 젖소와 육우사료 5만t, 양계사료 20만t을 생산한다.

덴마크 돼지고기는 90%가 해외로 수출된다. 사진은 데니시크라운 홀슨스 공장 전경.

크리슈텐슨 씨는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농식품협회 산하 사료연구기관과 긴밀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코펜하겐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DLG 호겐 사료공장에 들렀다. 이 공장은 시간당 3~4t의 돼지사료를 생산했다. 공장 측은 생산 환경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사료공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먼지(사료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분진)가 거의 없었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살모넬라균 감염을 막기 위해 행정부 소속 검사원이 3개월에 한 번씩 공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호겐공장 관계자는 “덴마크 사료는 품질이 아주 훌륭하다. 우리 사료를 먹은 가축의 배설물을 분석해 보면, 환경오염의 주범인 질소 함량이 매우 낮다”고 자랑했다.

이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은 6명에 불과했다. 인건비가 워낙 비싸 생산공정 대부분을 자동화시켰다는 것이다. 공장 직원의 평균 연봉은 8만~9만 달러(韓貨 약 1억원)라고 한다.

▣ 덴마크 농축산업 개요

돼지 2500만 마리 사육ㆍ200만t 돈육 생산ㆍ100억 달러 매출

덴마크는 캐나다,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돈육(豚肉) 수출국이다. 2500만 마리의 양돈 규모에, 연간 돼지고기 생산량이 200만t이다. 이 중 90%를 수출해 100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린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독일, 영국, 스웨덴, 일본, 중국, 미국이다. 한국으로 수출되는 양은 전체 수출량의 2%에 불과하다.

덴마크 농부는 농업과 축산업을 겸한다. 전체 농민 수는 대략 3만5000명이며, 이 중 7000여 명이 대농(大農)이다. 농장 수는 4만8000개, 1개 농장의 평균 경지면적은 55㏊다. 양돈 사육 농가는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양돈 시설의 대형화 추세로 사육되는 돼지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축산물 가공산업은 주로 대기업의 합작을 통해 이뤄진다. 유럽 최대 돈육 가공회사인 데니시크라운은 덴마크 육가공 시장의 95%, 우유 생산업체인 ‘Arla Foods’는 유제품 시장의 92%를 점하고 있다. Arla Foods는 영국에 대형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의식품청은 식품 분야의 경찰청

안네리세 펭거 덴마크 수의식품청장.

덴마크는 식품 안전성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덴마크는 주요 육류 생산국 가운데 가장 먼저 성장 촉진용 항생제 사용을 금지했다. 덴마크의 식품 안전 시스템은 가축의 질병에서부터 식품의 안전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히 검사하고 통제하도록 돼 있다. 덴마크가 내걸고 있는 ‘from farm to meat’라는 슬로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식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덴마크 수의식품청의 안네리세 펭거(Annelise Fenger) 청장을 만나 식품 안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펭거 청장은 “덴마크에서 생산한 고기나 가공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다.

“덴마크에는 식품 안전을 위한 법률이 많아요. 그만큼 식품에 관한 규제가 많다는 뜻이죠. 가축 질병과 식품 안전을 위해 정부기관과 대학, 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수의식품청의 직원은 2000여 명인데 이 중에는 수의사와 영양사, 변호사까지 있습니다. 수의식품청 직원은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어요. 식품회사를 아무 때나 불시에 방문해 조사할 수 있습니다.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을 생산할 때는 공장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지요. 수의식품청은 식품 분야의 경찰청입니다.”

공무원의 권한이 강하고, 규제가 심하다면 농민이나 식품회사의 반발이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펭거 청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에겐 아주 오래된 전통이 있어요. ‘사람이 먹는 음식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음식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농민이나 식품회사는 이런 생각을 늘 염두에 둬요. 정부가 식품(1차 농산물 포함)을 검사하고 통제하는 것이 결국 농민이나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돼지고기를 철저히 검사하고 인증(認證)해 주면 수출 또한 잘되기 때문이죠.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가 아주 높습니다.”

펭거 청장은 농업 관련 협회나 협동조합이 정부를 상대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로비도 벌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관련 법조항을 바꿔달라고 하는 경우 객관성이 입증되면 변경해 준다고 한다. 펭거 청장은 “민간조직은 스스로 농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 덴마크 농업의 특징

농식품협회가 농축산업 발전의 核心

덴마크 농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덴마크 농업의 특징은 효율성 높은 조직과 수준 높은 농민, 고품질, 안전한 식품, 신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식품 개발로 요약할 수 있다.

덴마크 농산업은 민간 중심의 협동체제로 구축돼 있다. 덴마크에는 정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다. 덴마크 농식품협회(Danish Agriculture&Food Councilㆍ이하 DAFC)가 그것이다. DAFC는 농업 생산자와 식품산업을 대표하는 민간기관이다. DAFC는 덴마크 전체 농민을 비롯해, 생산자협회, 무역협회, 농축산 관련 기업(Arla FoodsㆍDanish CrownㆍDLFㆍDLG) 등 덴마크 농산업의 모든 기관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주요 활동내용은 농업생산자와 식품산업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산업정책 조정, 무역정책 및 국제협력, 수의학적 식품조사연구, 식품 및 농업 제품의 수출 장려, 국외 농업 개발 프로젝트 협력 등이다. 덴마크 농업의 핵심조직인 DAFC는 행정부와 상호 협력체제를 구축해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DAFC는 2009년 식품 분야를 통합해 확대ㆍ개편됐다. 전체 직원은 350명이다. 회비와 수익사업을 통해 운영된다.

“덴마크 농업은 융복합산업”

헨릭 호그 덴마크 식품농수산부장관.

덴마크의 농민 지원금은 농산물 생산총액을 기준으로 13%에 불과하다. 그것도 직접적인 지원이 아니라 농업경영 컨설팅, 연구조사 등에 집중돼 있다. 덴마크가 농업강국이 된 데는 앞을 내다본 정부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농업이 첨단 복합산업이라는 정책기조에 따라 연관 산업이 발달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 왔다.

덴마크 농정(農政)을 책임지고 있는 헨릭 호그(Henrik Hoegh) 덴마크 식품농수산부장관을 만났다. 호그 장관은 기자에게 “덴마크 농업은 ‘플라워 모델’이라는 개념 속에 다 들어 있다”며 꽃 모양을 그려 가며 설명했다.

“덴마크 농업은 1차 농업, 축산, 사료, 식품을 비롯해 바이오에너지, 숲, 도시지역, 여가 등 여러 분야가 융ㆍ복합돼 있습니다. 각 분야의 상호 융합을 통해 새로운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겁니다.”

―덴마크 농업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덴마크 농민은 항상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 농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자원재생입니다. 덴마크 농민은 각종 농업연구소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어요. 연구소가 새로운 보고서를 내놓으면 농민의 90%가 이를 현장에 적용합니다. 덴마크는 뛰어난 어드바이저 시스템도 갖고 있어요. 3000여 명에 달하는 농산업 컨설턴트가 농민들에게 새로운 기술이나 경영기법을 전해 줍니다. 농민은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자원재생의 사례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바이오가스가 대표적입니다. 덴마크 농민들은 축산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재활용합니다. 현재 바이오가스는 전체 에너지 생산량의 5~6%에 불과하지만 2020년에는 50%가 되도록 지원할 생각입니다.”

―농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 정부는 직접 지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효과가 매우 낮아요. 우리는 식품 안전성을 높이거나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민에게 일정한 프리미엄을 줍니다. 프리미엄에는 기술이전이나 경영컨설팅, 감세(減稅) 등 여러 가지가 있지요.”

―행정기관의 이름이 농수산식품부가 아니라 식품농수산부로 돼 있습니다. ‘식품’을 앞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특별히 한 분야를 강조할 수는 없지만, 농산물의 최고 정점 단계가 식품입니다. 사람이 먹는 식품이 안전한지 여러 번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우리는 식품산업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농축산물이 수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FTA에도 적극적입니다.

“우리는 FTA를 선호합니다. 덴마크는 EU시장에 농축산물의 대부분을 수출합니다. 무역이 살길이지요. 장기적으로 FTA가 한국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소르 모리슨(Thor Seiero Mouritsen) 식품농수산부 언론보좌관의 설명에 따르면, 덴마크는 한ㆍEU FTA 체결이 되면 대한(對韓) 수출량이 다소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의 유럽시장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덴마크 농정당국이나 농업 관계자들은 자국산(自國産) 농축산물의 경쟁력을 자신했다. 1만㎞나 떨어져 있는 일본이 덴마크 돼지고기를 사 가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돼지고기보다 덴마크 돈육이 훨씬 맛있고 우수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돼지고기 가격은 유럽에 비해 비싼 편이라고 한다. 한국의 축산농가는 한우(韓牛)와 한국산 돼지고기가 외국산(産)에 비해 맛있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한국산 고기는 냉동 상태가 아니라 냉장 상태로 국내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맛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덴마크의 냉장 돼지고기가 한국에 대량 수입된다면 한국의 양돈업계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덴마크 농업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나 축산농가는 제품 경쟁력을 높여 일본과 중국 등 인접한 대규모 시장을 공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 덴마크 농업협동조합의 역사

덴마크 농업협동조합은 100% 농민으로 구성돼 있다. 협동조합은 19세기 후반부터 조직화됐다. 최초의 협동조합인 낙농협동조합은 1882년 유틀란트 반도 ‘히딩’에서 만들어졌다. 5년 후 1887년 돼지도축협회가 설립됐고, 그 이듬해 수백 개의 낙농ㆍ도축ㆍ농자재 공급 협동조합이 덴마크 전역에 설립됐다. 이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수ㆍ합병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1993년 당시 1400여 개의 낙농조합은 2004년 현재 13개로 줄었다. 육가공 협동조합도 1961년 62개에서 현재 2개뿐이다. 협동조합 수는 줄었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바이오가스 생산시설 총 80개

덴마크에는 지타 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바이오가스 생산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재생자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덴마크는 EU국가 내에서 유일하게 에너지를 자급한다(에너지 자급률 132%ㆍ한국 16.6%). 덴마크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지만 일찌감치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 덴마크는 세계 풍력발전기에서 선도 국가다. 과거 네덜란드 사람들이 바람을 이용해 풍차를 만들어 실생활에 이용했지만, 지금은 덴마크 사람들이 바람을 더 잘 활용하고 있다. 북해와 발트해에서 일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덴마크 들판 어디를 가더라도 쉬지 않는 ‘덴마크의 심장’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를 볼 수 있다.

덴마크는 재생에너지 공급원으로 축산분뇨를 재활용하고 있다. 현재 덴마크에는 20여 개의 대규모 바이오가스 생산공장이 있고 60개의 개인농장에도 관련 시설이 설치돼 있다.

기자는 코펜하겐 시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RE-N 테크놀로지를 찾았다. 옌스 트라드스버그(Jens Tradsborg) 총괄이사와 레느 페더슨(Rene Pedersen) 기술담당 매니저가 기자를 맞았다. 이 회사는 설립된 지 얼마 안됐지만 축산분뇨를 고효율의 바이오가스로 바꾸는 신기술(지타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 지분은 축산농가와 개인 투자자가 절반씩 갖고 있다.

트라드스버그 총괄이사는 “네덜란드 와게닝겐UR에서 우리 기술을 테스트한 결과, 가스 생산량이 기존 기술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반면 설치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며 관련 자료를 보여줬다. 세계 최초로 평가받고 있는 이 기술을 미국,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한국 등에 소개하는 중이라고 한다.

회사 연구실에서 캐나다로 수출될 바이오가스 설비장치가 조립되고 있었다. 컨테이너 6개가 한 세트인 지타 시스템은 판매가 아닌 5년간 100만 달러(약 12억원)를 받고 리스 형태로 빌려준다고 한다. 트라드스버그 이사는 “이제 농업은 단순히 곡물을 재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첨단산업까지 연결되는 매우 큰 비즈니스다”며 “이를 준비하지 않는 국가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덴마크는 역사적으로 큰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과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 국토를 빼앗겨 지금은 북유럽의 작은 변방국가가 됐습니다. 하지만 국토 면적은 줄어도 현실을 극복해 가는 국민들의 사고방식은 강대국 이상입니다. 우리가 세계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나라이지만 멀리 보고 생각을 깊게 하는 나라, 그게 바로 덴마크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덴마크는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합니다.”

덴마크는 지난 25년 동안 GDP가 두 배로 성장했음에도 에너지의 사용량은 그대로다.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이 같은 노력은 식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덴마크는 친환경 유기농 식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이 분야가 새로운 성장동력이란 판단에서다. 덴마크 정부는 유기농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2015년까지 음식의 20%(공공시설에서는 80%)를 유기농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현재 유기농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덴마크 우유의 10%, 달걀의 20%가 유기농 제품이다.

▣ 에너지 자급국가 덴마크

전력소비 21% 충당하는 風力대국

덴마크는 1973년 오일쇼크 당시 에너지의 99%를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했다. 그러나 1997년부터 에너지 자급국가가 됐다. 재생에너지 대체정책으로 CO2배출량을 대폭 줄이는 등 저탄소ㆍ친환경에너지 국가가 됐다. 덴마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풍력(風力)대국이다. 세계 풍력발전기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자국 내 전력 소비의 21%를 풍력발전으로 충당한다. 지난 10년간 풍력터빈 등 친환경 기술제품의 수출이 3배 이상 증가해 고용과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대기업 순위 덴마크 6위인 Vesta Wind Systems는 풍력발전기로 세계에서 유명하다. 이 회사는 63개국에 4만여 기의 풍력터빈을 수출했다.

덴마크는 1990년 이후에는 자전거 교통정책을 실시, 현재 인구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은 자전거 천국이다. 코펜하겐 시내 자전거 통근자의 비율은 37%에 달한다.

덴마크는 산유국임에도 에너지의 소비자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전기요금은 우리의 4~5배 수준이며 승용차 등록세도 차량 가격의 180%에 달해 세계 최고다.

한편 덴마크 정부는 풍력ㆍ바이오가스 등 재생에너지 생산을 활성화하기 위해 농가나 연구기관에 과감히 보조금을 지원한다. 특히 풍력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풍력발전의 비중을 2015년까지 35%, 2025년까지 50%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와게닝겐UR과 오르후스대학

덴마크의 전통 농가의 한적한 풍경.

기자는 덴마크의 유기농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오르후스(Aarhus)대학을 방문했다. 이 대학은 네덜란드 최대 농업연구기관인 ‘와게닝겐UR’과 기능과 역할이 비슷했다. 교육 중심의 오르후스대학과 4개의 연구센터, 3개의 실험실습소가 덴마크 전역에서 유기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르후스대학 농업과학부에는 유전공학과ㆍ바이오과학과ㆍ식품과학과ㆍ농생태학과ㆍ농기계공학과 등이 설치돼 있다. 40㏊에 달하는 대학 내에는 농축산 관련 연구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소ㆍ돼지ㆍ닭 사육장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오르후스대학은 생산성 높은 유제품 개발, 나트륨 수치 절감방안, 돼지유전자 지도연구 등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한다. 전체 교직원 1200명 중 농업과학부에만 400여 명의 박사급 전문가가 있다. 존 헤르만슨(John E. Hermansen) 오르후스대학 농업과학부 학장의 말이다.

“소비자들은 음식 이상의 그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해답이 유기농입니다. 유기농 연구는 한 분야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 학문이 동시에 협력해야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지요. 유기농에 대한 수요는 이미 세계적 추세입니다. 물론 환경과 사회적 정의(正義)라는 측면에서 과연 유기농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기농 돼지 한 마리를 키울 때 이산화탄소가 일반 돼지보다 2~3배 늘어납니다. 또 돈 많은 부자들이 주로 비싼 유기농 제품을 구입합니다. 이 문제는 결국 농축산업 전문가들이 해결해야 합니다. 유기농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고비용은 농업기술 개발을 통해 줄일 수 있습니다.”

옌스 트라드스버그 RE-N테크놀로지 총괄이사(왼쪽)와 레느 페더슨 기술담당 매니저.

오르후스대학처럼 덴마크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통합을 통해 첨단 농업기술 개발을 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서울농대(農大)와 농촌진흥청을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가 흐지부지됐다.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오르후스대학에는 2008년 설립된 국제 유기농식품 연구센터(이하 ICROFS)가 있다. 구(舊) 덴마크 유기농연구센터를 확대ㆍ개편한 것이다. ICROFS는 정부 출연기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리즈 안드리센(Lise Andreasen) ICROFS 국제협력 코디네이터는 “농식품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유기농 연구는 필수적이고 이는 지구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 ICROFS는 국가 간 협조체제를 통해 공동연구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ICROFS는 덴마크를 비롯해 EU,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이 참여한다. 리즈 안드리센 씨의 말이다.

“ICROFS는 현재 DARCOF III라는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15개 세부 프로젝트로 구성돼 있는데 15개 연구기관 소속 100여 명의 연구원이 참여합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들어간 예산만 2300만 유로(약 350억원)입니다. 최종 목적은 ‘농장에서 소비자까지’ 안전한 유기농 식품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자연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고품질의 유기농 우유ㆍ계란ㆍ닭고기ㆍ돼지고기ㆍ종자를 개발하는 것이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유기농식품에 대한 공공정책개발도 연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