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 읽기

폴 몰랜드의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

고령화가 권위주의 체제 존속에 도움 될 수도 있다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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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가에 젊은 층이 부족하면 위험을 감수하며 분노할 사람도 줄어들어, 영영 권위주의 정권에 억눌린 채 지낼 가능성이 크다”
⊙ “인구 중 30세 이상 비율이 55%를 넘으면 내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 한국 중위연령, 19.8세(1960년)→22.2세(1980년)→25세(1987년)… 2025년 45.6세
고령화가 권위주의 체제의 존속에 도움이 되면서 민주주의를 저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의 인구문제 전문가인 폴 몰랜드는 신간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 10개의 숫자로 보는 인류의 미래》(기파랑 펴냄·원제《Tomorrow People》)에서 “한 국가에 젊은 층이 부족하면 위험을 감수하며 분노할 사람도 줄어들어, 영영 권위주의 정권에 억눌린 채 지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화제를 모았던 책 《인구의 힘》(2020년)의 저자인 몰랜드는 이번 책에서 ▲영아사망률 하락 ▲인구 증가 ▲도시화 ▲출산율 감소 ▲고령화 ▲노인 인구 증가 ▲인구 감소 ▲인종 변화 ▲교육 수준 상승 ▲식량 공급 확대라는 10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인구의 역사적 변화가 오늘날 우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보여 주면서, 미래 인류의 삶을 엿보게 해준다.
 
  이 중 저출산 고령화 문제 같은 것은 이미 우리에게도 낯익은, 현실화된 지 오래인 문제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큰 관심이 가지 않는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내용은 따로 있다. 바로 인구 구조가 정치적 갈등, 내란, 전쟁 등에 끼치는 영향이다. 몰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천안문사태와 홍콩사태, 무엇이 달랐나?
 
  〈한 사회의 연령 구조는 사회 전반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2019~20년에 홍콩 정부가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범죄인인도조례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홍콩 시민들이 벌인 항의 시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홍콩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지만 앞장선 세대는 주로 젊은 세대였고 인명 피해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한편, 1980년 천안문광장 시위 때는 중국군의 강경 진압으로 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다. 1980년대 말 중국 본토의 중위(中位)연령이 대략 25세였던 반면 30년 뒤 홍콩의 중위연령은 거의 45세였다. 중국 당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젊은 층의 비중이 크게 줄면서 동원되는 힘과 인명 피해도 훨씬 작아졌다.
 
  우리는 흔히 부유해지기 전에 늙은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자유를 누리기도 전에 늙어 버리는 경우다. 한 국가에 젊은 층이 부족하면 위험을 감수하며 분노할 사람도 줄어들어, 영영 권위주의 정권에 억눌린 채 지낼 가능성이 크다.〉

 

  몰랜드는 “사회 평균나이가 20대 초반인 젊은 사회와, 중위연령이 40대이고 젊은 사람이 적은 사회는 전혀 다르다”면서 스페인, 북아일랜드, 레바논, 유고슬라비아, 알제리 내전 등을 예로 든다. 이 나라들이 치열한 내전에 휘말렸던 시절은 젊은 인구가 많던 때였지만, 인구 구조가 늙어 감에 따라 내전과 갈등이 종식, 완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카탈투냐 독립 주민투표나 홍콩 범죄인인도법 같은 ‘불꽃’이 있을 때, 젊은 인구가 충분히 많으면 그것이 큰 ‘불길’로 번질 가능성이 큰 반면, 고령자가 우세한 사회에서는 젊은 층이 불붙기 어려워 갈등이 흐지부지된다”고 말한다. 몰랜드는 “수십 년 간의 연구에 따르면, 인구 중 30세 이상 비율이 55%를 넘으면 내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경향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몰랜드는 “나이가 많은 사회는 단지 더 평화롭고 범죄가 적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에도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결국 ‘나이 든 사회’, 즉 고령화는 불의에 대한 저항을 억눌러 권위주의 체제에 도움이 될 수도, 사회 안정에 이바지해 민주주의 정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늙은 사회는 전쟁 못 한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늙은 사회는 전쟁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중위연령이 높은 사회는 부모가 대의(大義)를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는 데 훨씬 신중해진다”는 것이다. 긴말 할 것 없이 ‘희생시킬 젊은 인구 자체가 적은 나라’, 총 잡을 기운도 없는 노인들이 많은 나라가 무슨 전쟁을 하겠나? 몰랜드는 “20세기 후반 알제리와 레바논의 내전도 더 이상 전투에 나설 전사(戰士)가 태어나지 않으면서 멈췄다”는 독일 학자 군나르 하인존의 말을 소개한다.
 
  몰랜드는 또 “세계적으로는 미국이 독일·일본 같은 과거 경쟁국이나 중국·러시아 같은 현재 경쟁국보다 더 천천히 고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으로 하여금 패권을 오래 쥐도록 만들 수 있다”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큰 분쟁이 거의 없었던 것은, 주요 강대국들이 모두 고령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몰랜드의 주장이 맞다면,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해 재침해 올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국가라는 건 세상이 다 아니까 말이다. 조선으로, 만주로, 중국으로 힘을 뻗고 싶어서 안달하던 시대와는 인구 구조부터 다른 것이다.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중국 역시 쉽게 대만 침공 등 전쟁을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혹시 중국 국가지도부가 ‘나라가 더 늙어 버리기 전에’ 서둘러 ‘통일’을 이루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4·19, 5·18, 6월 민주화운동은 ‘젊은 인구’ 덕분
 
1960년 4·19 당시 서울 태평로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과 학생들. 당시 한국의 중위연령은 19.8세였다. 사진=조선DB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구학적인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중국과 달리 부유해지고 자유를 누리게 된 후에 늙어 버린 나라다. 이미 ‘늙어 버린 나라’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국가에 젊은 층이 부족하면 위험을 감수하며 분노할 사람도 줄어들어, 영영 권위주의 정권에 억눌린 채 지낸 가능성이 크다”는 몰랜드의 말은, 인구학적으로 볼 때 지금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를 시위를 통해 바로잡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示唆)한다.
 

  몰랜드의 주장을 확인해 보기 위해 구글Gemini에게 4·19가 일어났던 1960년, 5·18이 일어났던 1980년, 6월사태(6월 민주화운동)가 일어났던 1987년, 그리고 2025년 현재 한국의 중위연령을 물어보았다. 한국의 중위연령은 1960년에는 19.8세, 1980년에는 22.2세, 1987년에는 25세(추정), 2025년 45.6세로 나타났다. 4·19, 5·18, 6월 민주화운동 역시 ‘젊은’ 인구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통해 오늘날 기득권 세력이 된 586세대가 삼권분립 등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회민주주의·시장경제 시스템을 치명적으로 망가뜨리고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시스템, 즉 ‘마피아 국가’체제를 수립하더라도 이를 과거처럼 시위와 같은 대중운동을 통해 뒤집어 엎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기자가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소개하자 어느 페친은 “약 10년 전부터 집회에 참여하며 궁금해 하던 ‘집회의 효능 효과’에 대하여 지극히 명쾌하게 설명해 준 포스팅”이라고 했다. ‘저출산 고령화’는 우리가 생각지 못하고 있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빨간 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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