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 시간의 흔적은 우리의 일상 속에 배어 있는 각종 제품들로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과자, 음료수에서 10대를 함께했던 참고서와 생활용품, 가전제품,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숱한 제품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월간조선》 편집부는 해방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최초’ ‘최고’ ‘최다’ 등으로 우리에게 강력하게 각인된 80개 제품을 뽑았다. 제품군별, 출시 연도 순으로 게재한다. 이제 추억 여행을 떠나볼 시간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 시간의 흔적은 우리의 일상 속에 배어 있는 각종 제품들로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과자, 음료수에서 10대를 함께했던 참고서와 생활용품, 가전제품,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숱한 제품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월간조선》 편집부는 해방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최초’ ‘최고’ ‘최다’ 등으로 우리에게 강력하게 각인된 80개 제품을 뽑았다. 제품군별, 출시 연도 순으로 게재한다. 이제 추억 여행을 떠나볼 시간이다.
음료·과자
칠성사이다(1950), 삼립크림빵(1964), 부라보콘(1970),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1970), 새우깡(1971), 삼립호빵(1971), 야쿠르트(1971), 초코파이(1974), 바나나맛우유(1974), 투게더(1974), 가나초콜릿(1975), 오징어땅콩(1976), 맥심커피(1980), 맥콜(1982), 빼빼로(1983), 메로나(1992)

01 동방청량음료(현 롯데칠성음료)는 1950년에 청량음료 칠성사이다를 출시했다. 칠성사이다는 레몬과 라임 향이 어우러진 톡 쏘는 청량감으로 사랑받아 왔다. 초창기에는 트림을 유도하는 효과로 소화제 대용으로도 활용됐다. 서울사이다, 삼성사이다, 킨사이다 등 수많은 경쟁 제품 속에서도 초록 유리병과 별 모양 로고로 꾸준히 자리를 지켜 왔다. 칠성사이다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브랜드 자체가 회사의 상징이 되었다. 초록 유리병에서 페트병과 캔으로 다양화되며 1970년대 이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02 ‘삼립식품(현 SPC삼립)의 정통크림빵은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비닐 포장 기술을 도입한 빵류 제품으로 1964년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19억 개를 기록했다. 삼립식품 창업자인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이 1964년 도쿄올림픽 참관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출장 간 길에 선진 기술을 접하고, 귀국하자마자 장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크림빵을 선보였다.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단일 브랜드 최다 판매 크림빵’으로 한국기록원과 미국 세계기록위원회의 공식 인증(2024년)을 받았다.

03 ‘열두 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중독성 넘치는 음악과 가사는 여전히 성인들의 기억 속에 있다. 식품, 제과, 과자업계의 최초 CF였던 빙그레 부라보콘 CM송이다. 부라보콘이 출시되기 전에 국내에는 막대에 얼음을 꽂은 아이스바 형태의 ‘아이스께끼’만 있었다. 진홍승 박사가 1968년에 덴마크 호이어사(社)로부터 아이스크림 생산 설비를 도입, 연구 끝에 1970년에 국내 순수 기술로 유제품이 들어간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 부라보콘을 출시했다. 처음부터 큰 인기를 끈 부라보콘은 2021년가지 50억 개 넘게 팔렸다. 한 줄로 연결하면 지구 26바퀴 이상을 돌 수 있는 양이다.

04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농심이 1971년에 출시한 새우깡은 순식간에 ‘국민 스낵’에 등극했다. 스낵이란 게 생소하던 시절 농심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손쉽게 먹을 먹거리’를 만든다는 목표로 국내 최초의 스낵 개발에 나섰다. 연구원들이 1년간 연구에 몰두하며 사용한 밀가루 양만 4.5톤 트럭 80여 대 분.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튀김 온도를 맞추느라 수없이 태웠고, 먹기 적당한 강도를 유지하기 위한 실험도 수 백 차례 해야 했다. ‘깡보리밥’ ‘깡밥’ 등 ‘깡’이라는 말에 순박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 고 신춘호 당시 사장이 새우와 깡을 결합한 ‘새우깡’이라고 이름 지었다.

05 ‘뜨거워서 호호~ 맛이 좋아 호호~’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익숙한 삼립호빵은 삼립식품이 1971년에 출시했다. ‘호빵’이라는 이름은 ‘뜨거워서 입으로 호호 불어 먹는 빵’이라는 뜻으로,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을 늘리기 위해 개발했다. 출시 후 4개월의 한정 판매 기간에 벌써 당시 삼립식품 연간 매출의 22%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를 끈 ‘삼립호빵’의 누적 판매 개수는 2022년 말까지 약 65억 개로,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약 16바퀴 돌고, 포개 쌓으면 에베레스트산을 약 1만 8000번 왕복하는 높이다.

06 ‘이 작은 한 병에 건강의 소중함을 담았습니다.’ 거리에서 ‘야쿠르트 아줌마’ 한번쯤 안 마주쳐 본 한국인이 있을까? 야쿠르트는 1971년에 탄생했다. 국산 유산균 음료 1호여서 출시 당시 제품 등록과 법적 기준이 부족해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음료의 범주를 건강까지 확대시킨 제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07 초코파이는 오리온 직원들이 미국의 한 카페테리아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2년의 개발 끝에 1974년 출시했다. 비스킷, 초콜릿, 빵이 하나에 든 신개념 과자에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고단백 고칼로리 영양식품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초코파이는 이사 가는 꼬마가 아파트 경비원에게 서운함을 전하는 마음, 야단 맞은 어린이가 선생님께 사과의 편지를 전하는 마음 등 정(情)을 상징하는 간식으로 통한다. 출시 첫해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국내 제과업계 최초로 단일 제품 월 매출 50억원을 돌파했으며, 세계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08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1970년대 정부의 우유 소비 장려 정책에 힘입어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귀했던 바나나의 맛을 대중화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240ml의 ‘뚱뚱한’ 용기 모양은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입구에 턱을 만들어 내용물이 쉽게 흐르지 않도록 했고, 내용물의 바나나색을 살리기 위해 반투명으로 제작했다. 특히 중국에 달항아리 용기 그대로 수출해 높은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2023년 내수·수출 합산 매출 3000억원을 기록했고, 2024년 빙그레 매출의 20%를 차지했다. 현재 30여 개국에서 판매 중.

09 투게더는 국산 아이스크림을 한 단계 도약시킨 제품이다. 설탕물에 색소를 넣어 얼린 ‘아이스께끼’가 주류이고 아이스콘이 막 등장한 시절, 빙그레는 생우유를 원료로 한 ‘떠먹는 정통 아이스크림’에 도전했다. 제품명 ‘투게더’는 사내 공모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정통 아이스크림’이라는 의미가 어필해 채택됐다. 당시 600원(900cc)의 고가가 역으로 ‘아버지 월급날에 먹는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미지에 한몫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투게더, 투게더~’라는 초창기 TV 광고와 CM송으로 5060세대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는 투게더는 지금도 변함없이 국민 아이스크림으로 사랑받고 있다.

10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의 가나초콜릿은 1975년 첫선을 보였고 전 세계에서 1초에 4개꼴로 팔려 나가고 있는 국민 초콜릿이다. 가나산 카카오콩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한국인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는 스위스풍의 부드러운 맛을 구현한 가나초콜릿은 이미연, 채시라, 아이유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끈 연예인들을 연이어 모델로 발탁하며 유명세를 더했다. 2024년까지 총 68억 갑, 국민 1인당 123개가 팔렸다.

11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 최초의 믹스커피인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출시했다. 커피, 프리마(동서 커피크림), 설탕을 기호에 맞게 타서 마시던 것이 일반적이었을 때, 설탕과 프리마가 적정 비율로 들어간 커피믹스는 신세계로 취급되며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휴대가 간편하고 보관이 쉬운 점, 어디서나 더운물만 있으면 손쉽게 타 마실 수 있는 장점으로 커피믹스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가 즐기는 커피 문화로 재탄생했다.

12 오리온이 1976년에 출시한 오징어땅콩은 소비자들의 선호를 반영해 개발된 독특한 조합의 스낵이다. 바삭한 볼 형태의 과자 속에 통땅콩을 넣어, 고소함과 바삭한 식감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출시 직후부터 색다른 맛으로 큰 인기를 끌며 새로운 간식 문화를 형성했다. 최근에는 더욱 바삭한 식감을 살리고 다양한 맛을 추가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장수 제품의 대명사다.

13 맥콜은 1982년 국내산 보리를 활용해 탄생한 국내 최초의 보리 탄산음료다. 1980년대 초, 쌀밥이 주식이 되며 보리 소비가 급감하자 청량음료 사업을 하던 일화가 보리 음료 개발에 나선 끝에 1982년 7월 21일 맥콜을 출시했다. 일화는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조용필을 모델로 88올림픽주경기장에서 6000명의 팬을 동원한 CF를 제작해 맥콜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14 1983년에 출시된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긴 막대 과자에 초콜릿을 묻힌 독창적인 모양과 콘셉트로 출시 때부터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2024년 말까지 누적 매출은 약 2조2400억원, 전 국민이 76갑씩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빼빼로 모양을 연상시키는 11월 11일에 빼빼로를 선물하며 우정을 주고받는 ‘빼빼로데이’는 경남 지역 여중생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외로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15 맥심 모카골드는 1970~80년대에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가열되자 동서식품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원두 로스팅의 강도, 커피 추출 공정 등을 연구한 끝에 1987년에 내놓은 프리미엄 커피다. 맥심 모카골드의 연간 판매량은 스틱 기준 총 57억 개로, 1초당 180개가 판매되는 셈이다.

16 1992년 빙그레 연구원의 기획으로 탄생한 메로나는 출시 10개월 만에 1억8000만 개가 팔리며 빙그레의 재정 위기를 타개한 히트 상품이 됐다. 멜론맛 아이스크림의 선풍적 인기에 경쟁사에서도 유사 제품이 잇따라 나왔고, 가격도 처음 200원에서 600원까지 점진적으로 인상됐다. ‘올 때 메로나’ 밈으로도 잘 알려진 메로나는 지금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며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조미료·냉동식품
미원(1956), 샘표 진간장(1966), 오뚜기 카레(1969), 산타 크림스프(1970), 해표 식용유(1971), 소고기다시다(1975), 동원참치(1982), 햇반(1996), 비비고 만두(2013)

17 감칠맛의 대명사인 ‘미원’은 1956년에 탄생했다. 다시마의 감칠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 MSG는 1908년 일본 아지노모토사(社)가 처음 개발했고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소개됐지만 광복 후 일본 제품 수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대상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임대홍 회장은 당시 1급 비밀이던 MSG 조미료의 제조 방법과 공정을 배우고자 오사카의 조미료 공장에 취업해 어깨너머로 조미료 제조법을 배우고 수천 번의 시행착오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부산 동대신동의 조그만 공장에서 탄생한 ‘미원’은 MSG를 꺼리는 정서가 확산된 지금도 연 매출 10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18 샘표는 1966년 ‘진하고 구수한 맛의 간장, 정직하고 진실된 진짜 간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샘표 진간장’을 출시했다. 샘표 간장은 주부와 요리 전문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믿고 먹을 수 있는 간장’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에 출시한 ‘샘표 진간장 금F3’는 국내 간장 브랜드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닐슨코리아 조사, 2023년 소매점 매출 기준)이다.

19 오뚜기 카레는 1969년 회사 창립과 함께 탄생한 오뚜기 최초 제품이다. ‘간편하고 영양가 높은 가공식품을 제공한다’는 모토로 출시한 일본식 카레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는 출시 첫해에 400만 개가 팔렸고 ‘3분 카레’ 등 후속작이 잇따랐다.

20 미국 구호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만든 빵이 점차 인기를 끌자, 오뚜기는 빵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스프 개발에 눈을 돌려 1970년 국내 최초의 분말 스프 와 산타 크림스프와 ‘산타 포타지스프’를 내놨다. 겨울에 출시했기 때문에 산타가 주는 선물이라는 뜻에서 Santa를 브랜드명으로 정했는데 이는 영문을 상표로 쓴 국내 최초 사례다.

21 1971년 국내 최초로 가정용 식용유를 출시한 해표 식용유는 현재는 사조대림에 합병된 사조해표의 전신 동방유량에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채유(採油) 원료 격감, 채유 시설 파괴로 유지(油脂)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동방유량의 고 신덕균 명예회장은 대두(콩) 가공 업체를 설립하면서 제유(製油) 설비와 노하우는 이스라엘에서 들여왔다. 해표 식용유는 국내 콩기름(대두유) 대중화의 초석을 놓았고, 소득 증가로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집집마다 주방 한켠에 식용유가 한 병쯤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해표 식용유는 맑고 신선한 콩기름으로 제품력을 인정받으며 성장했다.

22 ‘그래, 이 맛이야!’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1975년 출시한 조미료 다시다는 차별화된 맛은 물론 ‘국민 엄마’ 김혜자의 광고 카피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원’에 눌린 제일제당의 조미료 시장 만년 2위 설움을 단번에 날린 다시다 제품군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3000억원(소비자가 기준)의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23 매년 2억 캔 이상 팔리는 동원참치(동원F&B)는 1982년 첫 출시된 이후 43년 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대한민국 대표 참치캔이다. 참치잡이 원양어선은 알아도 막상 참치는 어떤 생선인지 모르던 시절, 김재철 사장(현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참치 통조림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견하고 과감히 제품을 내놓은 결과다. 동원참치는 매년 2억캔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24 1996년 제일제당 햇반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식품업계와 소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우리의 주식인 쌀을 즉석식품으로 내놓는 역발상이 주효해 햇반은 브랜드명을 넘어 즉석밥의 대명사가 됐다. ‘유기농 햇반’ ‘햇반 흑미밥’ ‘햇반 오곡밥’ 등 다양하게 변주된 햇반은 지난해 말까지 60억 개가 팔려 나갔다.

25 2013년에 출시된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단일 품목으로 2020년 글로벌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현지에서 수년간 1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며 ‘비비고 만두’ 브랜드와 R&D, 제조 기술을 차별화하는 데 집중해 현재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등에서도 만두를 생산하고 있다. 닭고기와 고수를 선호하는 현지 식문화를 반영해 ‘치킨&실란트로 만두’도 판매 중이다.
의류·화장품·세제·신발
백양내의(1946), 럭키크림(1947), 럭키치약(1955), 퐁퐁(1972), 프로스펙스 운동화(1981)

26 ‘하얀 난닝구’ ‘아빠 메리야스’로 유명한 BYC의 전신은 1946년에 설립한 한흥메리야스다. 포목점 점원 출신인 고(故) 한영대 전 회장은 광복 직후에 양말 편직기를 더 크게 만들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데 착안해, 5개월의 개발 기간을 걸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 기술을 개발해 백양 상표를 달고 단 생산에 매진했다. 1990년대 중반 해외 사업이 승승장구할 때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으로 78개국에 메리야스를 수출했다.

27 1947년 정월 어느 날 아침, 부산 서대신동에 있는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집 마당에는 김준환이 중심이 되어 크림 생산 작업을 위한 준비가 분주했다. 건평 70평 정도의 단독주택에서 여러 원료를 배합해서 반죽을 하고 다시 감화조(鹼化槽)에 넣어 끓이는 과정을 거쳐 향긋한 냄새의 화장크림이 대량으로 나왔다. 구 회장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크림이 되라는 의미에서 제품명을 럭키크림(Lucky Cream)으로 정하고, 한글로 즐거울 락(樂), 기쁠 희(喜) ‘락희’로 쓰기로 했다. 제대로 된 크림 하나 없던 시절, 럭키크림은 좋은 품질 대비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여심을 사로잡은 국산 화장품이었다. LG의 화장품 사업은 럭키크림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며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는 탄탄대로를 걸었고, 21세기 K-뷰티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28 전쟁 직후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국산 ‘콜게이트’ 치약은 고가여서 일부 계층만 사용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굵은소금을 손가락이나 치솔에 묻쳐 치아를 닦았다. 구인회 창업주의 지시로 외제 치약을 밤낮으로 연구한 럭키 개발팀은 1955년에 스피어민트향이 첨가된 럭키치약을 출시했다. 외제에 비해 가격은 3분의 1로 저렴하고 품질은 동등했던 럭키치약은 출시 3년 만에 콜게이트를 누르고 국산 치약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29 락희유지공업(현 LG생활건강)이 1967년에 출시한 주방 세제 ‘에어퐁’은 1972년부터 퐁퐁으로 이름을 바꿨다. 퐁퐁은 제품명이지만, 경쟁사의 ‘트리오’와 함께 주방 세제를 뜻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식기, 과일, 야채까지 적은 양으로 쉽게 설거지가 가능하고, 보리 추출물, 레몬식초, 베이킹소다 등을 넣은 파생 모델도 나오고 있다.

30 프로스펙스를 만든 건 국제고무라는 고무신 제조 회사와 국제화학주식회사다. 국제화학은 1976년에 회사명을 국제상사로 바꾸고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미국의 ‘스펙스’ 브랜드를 사용하는 회사를 인수하고 이름을 프로스펙스로 바꿔 1981년부터 운동화를 내놨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이름을 알리며 사세를 떨쳤다.
의약품
5% 포도당 수액(1959), 신신파스(1959), 우루사(1961), 박카스(1963)

31 중외제약(현 JW중외제약)은 1959년에 5% 포도당 수액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대한민국 수액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5% 포도당 수액은 이후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료제가 됐으며, 1960년대 초반에 국내 수액의 70%를 공급할 정도로 시장을 주도했다. 충무로의 영세한 공장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자 1964년 하월곡동에공장을 신설해 수액 제조부터 충전, 멸균, 포장까지 일관 시스템을 구축했다. 생산비 증가로 수액 한 병 납품할 때마다 손해를 보면서도 고(故) 이종호 명예회장은 “지금 이 순간 저 불빛 아래서 꺼져 가는 생명이 있는데, 돈이 안 된다고 사업을 접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선친(이기석)이 강조한 생명 존중의 창업 정신을 이어 갔다. 1990년대 초반에 유리병을 대체할 PVC(폴리염화비닐) 백을 도입했고, 1997년에 국내 최초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Non-PVC 수액백 개발에 성공해 친환경 수액 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JW중외제약은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수액 전문 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32 신신제약은 1959년, 대한민국 최초의 붙이는 파스 신신파스를 생산했다. 창업주인 고 이영수 회장은 대다수 국민이 6·25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고 고된 육체 노동으로 통증에 시달리던 때 ‘질 좋고 값싼 파스를 생산하는 것이 국민의 통증을 덜어 주는 길’이라는 창업 정신으로 제약회사를 세워 파스를 출시했다. 파스 기술력이 앞서 있던 일본 회사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기술을 이전받아 출시했고, ‘신신파스 에이’(1917년), 신신제약 첫 번째 온감 파스 ‘신신파스 나바’(1978년)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33 ‘피서 가는 곳에 피로가 따라갑니다. 우루사도 바캉스를 갑니다.’ 대웅제약은 우루사 개발 초기에 주요 성분을 알리고자 광고 모델 없이 곰 이미지를 활용했다. Ursa는 회사명 대웅(大熊)과 맞닿는 큰곰자리의 라틴어 표기다. 1961년에 출시된 간 기능 개선제 우루사는 1977년에 연질캡슐화에 성공해 초창기의 맛이 쓰고 삼기키 어려웠던 단점을 보완했다.

34 에너지드링크의 원조인 동아제약 박카스는 1963년 탄생했다. 1960년대에는 국민들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박카스는 물 없이 간편하게 복용하고 피로 해소와 영양에다 맛까지 있어 인기를 끌었다. 2023년 기준으로 박카스의 누적 판매량은 233억 병을 넘었는데, ‘박카스D’(12cm)로 환산해 세우면 지구 70바퀴에 해당한다.
라면
삼양라면(1963), 육개장사발면(1982),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6), 불닭볶음면(2012)

35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은 대한민국 최초의 건식 라면으로,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초기에는 낯선 음식으로 외면받았지만 무료 시식 행사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1969년 해외 수출을 시작하며 성장했고, 1972년 연간 7억 개 판매를 기록하며 국민 식품이 되었다. 2023년 출시 60주년을 맞아 리뉴얼된 삼양라면은 깊은 국물 맛과 쫄깃한 면발로 변화를 더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는 혁신을 이어 가며, 대한민국 대표 라면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36 농심은 1982년에 용기면 시장을 대표하는 육개장사발면을 출시했다. 라면의 본고장 일본에서는 1980년대 벽두부터 용기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던 때다. 농심은 국내 시장도 일본과 같이 변할 것이라 예측하고 개발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육개장 맛을 기본으로 육개장사발면을 출시했다. 제품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공식 라면으로 지정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우리나라 대표 식품으로 각인됐다. 2011년 용기면 시장에서 1위에서 오른 이후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이다.

37 ‘짜라짜라짜 짜~파게티.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주말에 앞치마를 두르고 짜파게티를 끓이는 아빠의 유쾌한 광고 카피는 한동안 대한민국은 휩쓸었다. 농심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로 오랜 시행 착오 끝에 제품을 내놨다. 짜파게티는 당시 기존의 150원대 제품보다 높은 200원대의 가격에도 출시 초부터 큰 인기를 끌어 지금까지 독보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농심 ‘너구리’와 결합해 소비자들이 창작한 ‘짜파구리’가 영화 〈기생충〉(2019)으로 덩달아 유명해졌다.

38 농심 신라면은 1986년 출시돼 1991년부터 라면 시장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누적 판매량은 약 386억 개. 국내 라면 시장은 그때까지 순하고 구수한 국물 제품 위주였는데 신라면은 매울 신(辛)자를 내세워 매운 라면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전국 모든 품종의 고추로 매운맛 실험을 하고 다진양념 조리법을 적용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국물맛을 만들었다. 자사의 ‘안성탕면보다 굵고 너구리보다 가늘면서 쫄깃한 식감’을 추구한 연구진이 200종류 넘는 면발을 개발하고 테스트한 끝에 신라면 면발이 탄생했다.

39 2012년 4월 출시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강렬한 매운맛으로 화제를 모았다. 출시 초기 ‘너무 매워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독특한 중독성과 다양한 확장 제품으로 ‘대세 라면’이 되었다. 불닭볶음면의 성공에는 유튜브 바이럴 마케팅이 결정적이었다. 세계적으로 ‘Fire Noodle Challenge’가 유행하면서 불닭볶음면은 한번쯤 도전해야 할 K-푸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레시피 변주가 이어지면서 치즈불닭, 까르보불닭 등 연이은 후속 제품도 큰 인기를 끌었다. 각국의 입맛을 반영한 맞춤형의 ‘불닭’ 브랜드는 100여 개국에 수출되며 삼양식품 수출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4년 식품업계 최초로 ‘7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자동차
시발 자동차(1955), 기아 삼륜차(1969), 포니(1976), 포터(1977), 봉고(1980), 쏘나타(1985), 그랜저(1986), 프라이드(1987), 티코(1991)

40 한국전쟁 이후 경제 재건이 한창이던 1955년,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는 한국 기술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 시발(始發)을 선보였다. 국산화율 50%에 손으로 조립하는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시발 자동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첫 발자국을 남긴 기념비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1963년 까지 약 3천여 대가 생산, 판매되었다.

41 1969년 8월 기아가 선보인 T-600 삼륜차는 좁은 골목길과 복잡한 도심에서 소화물 수송이 절실했던 시대의 요구에 대한 해답이었다. 일본 동양공업(현 마쓰다)과 기술 협력을 통해 탄생한 기아 삼륜차는 작은 차체와 가벼운 무게로 산동네와 골목길을 누비며 연탄, 쌀 배달 등에 널리 쓰였다. 세 개의 바퀴를 지닌 독특한 외형 덕에 ‘삼발이’라고도 불렸으며, 우편 수송을 비롯한 도심 용달차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42 현대자동차 포니는 참다운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독자 생산한 최초의 승용차다. ‘포니 정’ 고 정세영 회장의 의지로 1973년 개발을 시작해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고, 1975년 말 상업생산에 들어가 1976년 2월 공식 출시됐다. 출시 직후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했고, 누적 판매량은 약 74만 대다. 현대차는 2023년 헤리티지 브랜드 플랫폼 ‘현대 리유니온’을 통해 ‘포니 쿠페’를 복원 및 공개했다.

43 현대자동차가 1977년에 출시한 포터(HD-1000)는 국내 최초의 소형 디젤 상용차이자 디자인과 설계를 독자적으로 진행한 첫 국산 트럭이다. 더블캡, 밴, 미니버스, 앰뷸런스 등 다양한 파생 모델도 출시됐으나 1981년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단종됐다가, 1986년 후속 모델이 등장하며 생산이 재개됐다.

44 기아가 1980년 출시한 봉고는 대한민국 승합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12인승과 9인승 모델을 앞세워 명절 민족 대이동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벌초·성묘객들이나 열차·고속버스를 놓친 귀성객들이 봉고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익숙한 명절 풍경이 됐다. 출시 4년 만인 1984년 5월 누적 생산량 10만 대를 돌파했고, 1985년 말까지 18만9216대가 판매됐다. 이동 사무실, 광고판, 단체 여행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봉고 문화’가 형성됐고, ‘봉고차’는 지금도 소형 승합차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45 현대 쏘나타는 1985년 11월 출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고급 중형 승용차다. 현대의 두 번째 고유 모델인 ‘스텔라’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국산차 최초로 크루즈 컨트롤, 메모리 시트, 뒷좌석 슬라이딩 시트 등 고급 사양을 적용했다. 현재 8세대 모델까지 나온 쏘나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 차종 브랜드이며 누적 판매량은 953만5582대다.

46 현대차가 1986년 7월에 출시한 그랜저는 국산 고급 승용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현대차와 미쓰비시가 공동 개발·생산해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 출시됐다. 1998년 등장한 3세대 XG부터는 현대차가 독자 기술로 개발을 진행했고, 국내외 누적 판매량은 274만7254대다. 고 정주영 회장이 “나가 만든 아파트(압구정현대아팥)에 살고 내가 만든 차(그랜저)를 타면서 나를 압박하면 안 되지” 하고 정치인들을 향해 푸념한다는 내용의 신문 만평으로도 유명하다.

47 1987년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는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차량이다. 당시까지 국산 승용차 가운데 가장 작은 차였지만, 잔고장이 없다는 입소문이 돌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첫해 2만8623대가 팔린 것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12만6226대가 판매되며 내수 시장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비가 시내 주행 기준(FTP-75 모드) 리터당 18.6km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 혼다 시티(리터당 18km)를 능가해, ‘휘발유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48 ‘새로운 세대, 새로운 차 티코!’ 대우는 1991년 5월, 대한민국 첫 경형 승용차 티코를 출시했다. 티코는 합리적인 가격(당시 300만~400만원대)과 경제적인 유지비로 주목받았으며, 출시 첫해 3만 대가 판매됐다. 이후 경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로 평가받으며 대한민국 경차 보급 확대에 기여했다.
레저시설
태극당(1946), 용인자연농원(1976), 롯데월드(1989), 찜질방(1993), PC방(1990년대 말)

49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1946년에 서울 명동에서 개업하고 1973년에 장충단공원 앞으로 이전했다. 상호는 창업주 신창근 대표가 우리 민족의 이상을 담는다는 뜻에서 지었다.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사라다빵, 단팥빵, 월병 등 ‘레트로’ 메뉴가 강세다.

50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낡은 사진첩에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서 찍은 사진 한 장쯤 들어 있을 것이다. 용인자연농원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테마마크로 삼성이 설립, 운영한다. 초창기에는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됐고 입장료는 성인 600원, 어린이 300원이었다. 1970년대 어린이들의 최고의 놀이터였던 용인자연농원은 한때 1일 관광객 수가 12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번창했고, 1996년에 개장 20주년을 맞아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꿨다.

51 롯데월드는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테마파크로 실내의 ‘롯데월드 어드벤처’와 민속박물관, 아이스링크, 야외의 ‘매직아일랜드’ 등을 갖추고 있다. 1989년 18종의 어트랙션으로 개장해, 1990년대에 용인자연농원, 서울대공원과 함께 ‘테마파크 3대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998년에 도입한 자이로드롭 덕에 IMF 한파 매출이 늘었다. 매일 오후 2시와 7시에 대규모 판타지 퍼레이드를 선보인다.

52 찜질방과 PC방도 우리나라가 개발하고 보유한 고유 문화다. 한국의 전통 사우나인 찜질방은 기존 목욕탕에 몸을 찜질할 수 있는 뜨거운 방을 접목시킨 형태인데, 수건을 말아 머리에 쓰는 ‘양머리’와 맥반석 계란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53 1990년대 말에 생긴 PC방은 10~20대 이용자가 절대다수인 문화공간이자 카페다. IMF사태 당시 실직자들이 재취업 정보를 위해 찾느라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해외의 게임업체 관계자들은 국내 게임업체의 성공 이유 중 하나로 PC방을 꼽기도 한다.
술·담배
백화수복(1945), 크라운맥주(1952), 아리랑(1958), 솔(1980)

54 백화수복은 광복과 함께 태어났다. (주)백화 시절인 1945년에 첫 출시되어 백화양조, 대한양조, 두산주류BG를 거쳐 롯데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재까지 80년 동안 제사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음복하는 제주(祭酒) 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55 ‘왕관맥주.’ 1952년에 첫 출시된 크라운맥주의 상징은 크라운, 왕관이다. 크라운맥주는 대한민국의 최초 맥주회사인 조선맥주(하이트의 전신)가 프리미엄 오리지널 에일이라는 콘셉트로 내놓은 맥주다. 크라운맥주는 1962년에 국내 최초로 해외로 수출됐고, ‘크라운 드라이 마일드’는 1991년에 1000만 상자 판매를 돌파했다. 크라운맥주는 1993년에 단종됐지만 2022년 하이트진로가 크라운의 역사성을 재해석해 편의점용 크라운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56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는 전매청(현 KT&G)이 1958년에 내놓은 아리랑이다. 정부기관인 전매청이 제조담배의 맛과 품질을 구성하는 원료 잎담배와 향료, 부수 재료(필터 궐련지, 팁페이퍼) 등을 정부 수립 직후부터 꾸준히 연구해 10년 만에 필터 담배 개발에 성공했다. 1976년에 단종됐다가 1984~88년 잠깐 재발매됐다. 야구 투수의 느린공을 ‘아리랑볼’이라고 부른 것은 태극무늬를 응용한 아리랑 담배 포장의 영향이라고도 한다.

57 전매청은 1980년에는 팽화엽을 원료로 배합한 솔을 출시했다.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 제조 담배 전체는 미국형 담배(Blended Type)로 엽배합이 설계됐고, 제품의 타르를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솔’은 국내 최초로 다공성 필터와 천공(穿孔)된 팁페이퍼, 담배를 감싸는 종이가 부착된, 타르가 상대적으로 낮은 담배였다. 1982~86년까지 단일브랜드로 시장점유율 66%를 기록하며 연 20억 갑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다.
가전·전자제품
눈표 냉장고(1965), 금성 텔레비전(1966), 백조 세탁기(1969), 린나이(1975), 코비카(1976), 풍년 압력밥솥(1970년대 후반), 마이마이(1981), 삼보 컴퓨터(1990년대 초반), 삐삐(1990년대 초반), 애니콜(1994), 삼성 SCH-100(1996), 삼성 SCH-V500(2004), 스타일러(2011)

58 금성사(현 LG전자)는 1965년에 최초로 국산 냉장고(모델명 GR-120)를 개발했다. 냉동 기술 경험이 있던 연구진과 락희화학(현 LG화학)의 협력으로 자체 기술만으로 제작했고, 약 6000 대가 생산·판매됐다. 금성사는 1973년 창원 전자공장을 설립해 냉장고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완전한 국산화에 성공했다. 1976년 국내 최초 양문형 냉장고, 1980년 마이크로컴퓨터 내장 냉장고, 1984년 김치냉장고를 개발하며 제품군을 확대했다. 1993년에는 전통 김장독의 원리를 적용한 김장독 냉장고를 출시하며 한국형 냉장고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LG 하면 떠오르는 ‘백색 가전’이라는 단어는 외부를 흰색으로 마감한 눈표 냉장고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59 금성사는 1966년에는 최초의 국산 텔레비전 ‘VD-191’ 생산에 성공했다. 19인치 화면의 진공관식 모델로, 같은 해 7월 9일 1차 생산된 500대가 대당 6만3510원에 판매됐다. 금성사는 1963년부터 텔레비전 제작을 준비해, 1965년 일본 히타치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정부는 국산 부품 사용 비율을 50% 이상 유지하고 수입 부품은 전자제품 수출로 확보한 외화 범위 내에서만 사용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VD-191은 흑백 화면과 NTSC 방식의 아날로그 방송신호를 지원했으며, 수동 채널 조정 기능이 포함됐다. 디자인은 박스형 외관에 하단 다리를 부착한 형태로 제작됐다. 현재 VD-191은 경기도 이천 LG전자와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각각 한 대씩 소장되어 있으며, 두 제품 모두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됐다.

60 ‘빨래는 시간 낭비.’ 금성사는 1969년에 국내 최초로 백조 세탁기(WP-181)를 출시했다. 1.8kg 용량의 반자동 세탁기로, 세탁과 탈수 기능이 분리된 구조였다. 백조 세탁기는 빨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적인 가전제품으로 주목받았다. 이웃들이 세탁기를 구경하러 모이거나 빨래를 함께 맡기는 문화도 형성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백조 세탁기는 한국 가전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제품으로 평가받으며, LG전자역사관과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2013년 등록문화재 제562호로 지정되었으며, ‘백조 세탁소’라는 이름의 세탁소가 전국 3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강한 브랜드 영향을 남겼다.

61 린나이코리아는 1975년에 국내 최초의 가스레인지 ‘3GM’을 출시하며 한국 주방의 변화를 이끌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직 연탄불 아궁이나 심지어 장작불을 쓰던 시기에 가스레인지는 혁신적인 조리 기구였다. 1978년 정부의 가스 연료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가스레인지 보급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린나이 가스레인지는 1978년 매출이 전년 대비 2배로 증가했고, 1979년에는 7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주방 가전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62 ‘Na 코비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친해지는 코비카 카메라! 생활인의 멋, 생동하는 자연. 경이의 세계를 코비카는 포착한다.’ 1976년 6월 5일, 경쾌한 TV CM송과 함께 국산 최초의 카메라 ‘KOBICA 35BC’가 세상에 나왔다. KOBICA는 ‘KOrea, BInocular, Camera’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명으로, 한국 광학 산업의 첫걸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이름이었다. ‘필카’ 시절 코비카 카메라는 값비싼 일제 카메라를 대신할 국산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KOBICA BC-1, BC-7, BC-10, AE-F 등 다양한 모델로 제품군을 넓혔고, 1980년대 초반에는 연간 3만 대를 생산할 정도로 성장했다.

63 풍년밥솥은 압력밥솥의 대명사다. 풍년 압력솥은 알루미늄 주물 방식으로 제작되어 내구성이 뛰어나고 조리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부엌을 점령하며 한국인의 식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64 ‘둘이서 걷는 즐거움, 둘이서 듣는 즐거움. 신나는 리듬이 쏟아질 땐 마음도, 표정도, 걸음걸이도 똑같아지죠.’ 삼성전자는 1981년에 이동식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mymy)를 선보이며 포터블 오디오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제 ‘워크맨’이 상징하던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시장에서 삼성 마이마이는 차별화된 기능과 우수한 성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마이마이는 담뱃갑 두 개 정도 크기에 무게 400g으로 휴대성이 뛰어났다. 오토리버스 기능을 탑재해 테이프를 뒤집지 않고 연속 재생할 수 있고, 두 개의 이어폰 잭으로 두 사람이 함께 음악을 들으며 대화까지 할 수 있는 ‘토크라인’ 기능을 갖췄다. 2개 잭의 개별 음량 조절이 가능해 편의성을 높였다. 마이마이는 1980년대 휴대용 오디오 문화 확산에 기여했으며, 이후 모델을 다양화해 가며 젊은 층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65 1980년 설립된 삼보컴퓨터는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SE-8001)를 출시하며 극산 PC 시장을 열었다. 당시 SE-8001의 가격은 1000만 원에 달해 일반 가정보다는 기업을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됐다. 삼보컴퓨터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제품 출시를 통해 한국 PC 시장을 선도하며 1990년대까지 국내 대표적인 컴퓨터 제조사로 자리 잡았다.

66 휴대폰이 아직 대중화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 집과 사무실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책임진 것은 삐삐였다. 공식 명칭은 ‘무선호출기(페이저)’였지만 다들 삐삐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초기 삐삐의 전화번호는 012와 015로 시작했다. 직접 통화는 불가능했지만 ‘음성사서함’ 기능으로 녹음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숫자로 암호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삐삐는 젊은 세대는 물론 직작인의 필수 아이템이었으며, 단순한 호출 기능을 넘어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냈다.

67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카피, 기억하는가? 삼성전자가 1994년 5월에 시작한 이 광고 캠페인은 같은 해 10월 출시된 휴대폰 SH-770 모델과 함께 큰 화제를 모았다. SH-770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선보인 휴대전화 브랜드 애니콜(Anycall)의 첫 번째 모델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의미를 담은 애니콜 브랜드는 ‘갤럭시’ 이전 삼성 휴대전화의 대명사였다. 삼성전자 개발진은 브랜드의 ‘이름값’을 입증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돌며 통화 품질을 테스트했다고 전해진다.

68 삼성전자는 1996년 4월에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을 적용한 휴대전화 SCH-100을 출시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휴대폰 내수 시장 점유율을 50%대까지 끌어올리며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보다 보안성과 통화 품질이 뛰어난 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이 한국이었다. SCH-100은 크기 5.4×17.5×3.5cm 크기로 당시 기준으로 휴대성이 뛰어난 제품이었다. 삼성전자는 이후 애니콜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하며, 휴대전화 수출을 빠르게 성장시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69 TV도 극장도 ‘가로 화면’이 기본이었지만 휴대전화만큼은 세로 화면이 당연하던 시절. 2004년 삼성전자는 이 고정관념을 깨는 가로본능폰(SCH-V500)을 선보였다. 이 휴대전화는 화면을 가로로 돌려 VOD, MP3, 카메라 기능을 활용할 수 있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멀티미디어 경험을 제공했다. 독특한 디자인만큼이나 TV 광고도 화제가 됐다. 특히 ‘가로로 매달리는 사람’ 장면은 여러 차례 패러디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급 폰의 대명사’로 불리던 가로본능폰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멀티미디어 폰의 가능성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모델이었다.

70 LG전자가 2011년 출시한 LG 스타일러는 매일 세탁하거나 드라이클리닝하기 어려운 옷을 간편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의류관리기다. 물로 만드는 스팀과 옷을 흔들어 주는 기술을 활용해 생활 구김과 냄새를 제거하고 미세먼지까지 없애 주는 기능으로 주목받았다. 출시와 함께 LG 스타일러는 결혼이나 이사를 앞둔 소비자들 사이에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2016년부터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글로벌 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금융상품
교보교육보험(1958), 주택복권(1969), 하나비자카드(1978), Buy Korea(1999)

71 보험에 교육을 처음 접목시킨 사람은 고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던 대산은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육보험을 창안해 1958년에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설립하고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을 내놨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창적인 보험 상품이었다. 1960년에는 ‘교육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 학자금을 주고, 부모가 사망할 경우에 사망급여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내놨다. 교육보험은 ‘소를 팔지 않아도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당시 높은 교육열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72 ‘준비하시고… 쏘세요!’ 한국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은 1969년부터 첫 추첨식 복권인 주택복권을 발행했다. 1972년 6월부터 월 3회 발행, 1973년 3월부터는 주1회 발행으로 늘렸다. 초창기 복권 1장당 판매 가격은 100원,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발매되는 복권이었기에 1980년대까지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73 우리나라 최초의 비자카드는 1978년에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이 발급한 비자카드다. 외환은행은 비자 인터네셔널과 제휴하여 여행자를 대상으로 비자카드를 발급했다.

74 바이코리아(Buy Korea) 펀드는 1999년에 현대증권이 내놓은 펀드다. IMF 이후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주식시장이 팽창하는 시기와 맞물려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학습교재·문구·완구
동아전과(1953)·표준전과(1955), 모나미153(1963), 안현필 삼위일체 영어(1960년대), 수학의 정석(1966), 성문종합영어(1967), 부루마블 보드게임(1982)

75 학창 시절의 추억은 학교와 친구뿐만이 아니다. 매순간 동고동락한 참고서와 문방구들도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1953년에 출시한 동아전과는 초등학교 학습 참고서로 교과서에 나온 문제의 풀이법, 해답지가 있었다. 동아출판사(현 동아출판)이 먼저 전과(全科·전 과목) 지도서를 발행했고, 이후 교학사에서 표준전과를 내놓으면서 동아전과와 표준전과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76 책상 한켠에 얌전히 놓여 있는 모나미 볼펜은 한국 필기구의 역사 그 자체다. 고 송삼석 모나미 회장이 국제산업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외국 볼펜을 보고 광산화학공업(현 모나미)에서 연구 끝에 1963년에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내 친구’라는 ‘모나미(Mon Ami)’ 브랜드명은 그 자체가 볼펜이라는 뜻처럼 되었다.

77 1960~70년대 영어 교육 시장의 대형 베스트셀러는 고 안현필 선생의 영어 시리즈였다. ‘영어기초오력일체’ ‘영어실력기초’ ‘삼위일체’로 이어지는 안현필의 영어 교재 시리즈는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교재였다.

78 ‘수학의 정석’은 홍성대(전 전주 상산고등학교 이사장) 선생이 1966년에 내놓은 수학 개념서다. ‘기본 수학의 정석’ ‘실력 수학의 정석’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조부모와 부모, 자식가지 3대가 함께 보는 수학 교재로 정평이 나있다.

79 성문출판사 송성문 사장은 1967년에 ‘정통종합영어(성문종합영어)’를 내놓은 후 영어 학습서 시리즈를 잇따라 출시했다. 초창기에는 안현필의 영어 시리즈와 경쟁했고, 1980년대에는 맨투맨 영어 시리즈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80 ‘부루마블’은 1982년에 씨앗사가 개발한 보드게임이다. 한국의 보드게임 대중화를 이끈 선두주자로 꼽힌다.⊙
칠성사이다(1950), 삼립크림빵(1964), 부라보콘(1970),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1970), 새우깡(1971), 삼립호빵(1971), 야쿠르트(1971), 초코파이(1974), 바나나맛우유(1974), 투게더(1974), 가나초콜릿(1975), 오징어땅콩(1976), 맥심커피(1980), 맥콜(1982), 빼빼로(1983), 메로나(1992)

01 동방청량음료(현 롯데칠성음료)는 1950년에 청량음료 칠성사이다를 출시했다. 칠성사이다는 레몬과 라임 향이 어우러진 톡 쏘는 청량감으로 사랑받아 왔다. 초창기에는 트림을 유도하는 효과로 소화제 대용으로도 활용됐다. 서울사이다, 삼성사이다, 킨사이다 등 수많은 경쟁 제품 속에서도 초록 유리병과 별 모양 로고로 꾸준히 자리를 지켜 왔다. 칠성사이다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브랜드 자체가 회사의 상징이 되었다. 초록 유리병에서 페트병과 캔으로 다양화되며 1970년대 이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02 ‘삼립식품(현 SPC삼립)의 정통크림빵은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비닐 포장 기술을 도입한 빵류 제품으로 1964년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19억 개를 기록했다. 삼립식품 창업자인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이 1964년 도쿄올림픽 참관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출장 간 길에 선진 기술을 접하고, 귀국하자마자 장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크림빵을 선보였다.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단일 브랜드 최다 판매 크림빵’으로 한국기록원과 미국 세계기록위원회의 공식 인증(2024년)을 받았다.

03 ‘열두 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중독성 넘치는 음악과 가사는 여전히 성인들의 기억 속에 있다. 식품, 제과, 과자업계의 최초 CF였던 빙그레 부라보콘 CM송이다. 부라보콘이 출시되기 전에 국내에는 막대에 얼음을 꽂은 아이스바 형태의 ‘아이스께끼’만 있었다. 진홍승 박사가 1968년에 덴마크 호이어사(社)로부터 아이스크림 생산 설비를 도입, 연구 끝에 1970년에 국내 순수 기술로 유제품이 들어간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 부라보콘을 출시했다. 처음부터 큰 인기를 끈 부라보콘은 2021년가지 50억 개 넘게 팔렸다. 한 줄로 연결하면 지구 26바퀴 이상을 돌 수 있는 양이다.

04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농심이 1971년에 출시한 새우깡은 순식간에 ‘국민 스낵’에 등극했다. 스낵이란 게 생소하던 시절 농심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손쉽게 먹을 먹거리’를 만든다는 목표로 국내 최초의 스낵 개발에 나섰다. 연구원들이 1년간 연구에 몰두하며 사용한 밀가루 양만 4.5톤 트럭 80여 대 분.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튀김 온도를 맞추느라 수없이 태웠고, 먹기 적당한 강도를 유지하기 위한 실험도 수 백 차례 해야 했다. ‘깡보리밥’ ‘깡밥’ 등 ‘깡’이라는 말에 순박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 고 신춘호 당시 사장이 새우와 깡을 결합한 ‘새우깡’이라고 이름 지었다.

05 ‘뜨거워서 호호~ 맛이 좋아 호호~’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익숙한 삼립호빵은 삼립식품이 1971년에 출시했다. ‘호빵’이라는 이름은 ‘뜨거워서 입으로 호호 불어 먹는 빵’이라는 뜻으로,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을 늘리기 위해 개발했다. 출시 후 4개월의 한정 판매 기간에 벌써 당시 삼립식품 연간 매출의 22%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를 끈 ‘삼립호빵’의 누적 판매 개수는 2022년 말까지 약 65억 개로,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약 16바퀴 돌고, 포개 쌓으면 에베레스트산을 약 1만 8000번 왕복하는 높이다.

06 ‘이 작은 한 병에 건강의 소중함을 담았습니다.’ 거리에서 ‘야쿠르트 아줌마’ 한번쯤 안 마주쳐 본 한국인이 있을까? 야쿠르트는 1971년에 탄생했다. 국산 유산균 음료 1호여서 출시 당시 제품 등록과 법적 기준이 부족해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음료의 범주를 건강까지 확대시킨 제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07 초코파이는 오리온 직원들이 미국의 한 카페테리아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2년의 개발 끝에 1974년 출시했다. 비스킷, 초콜릿, 빵이 하나에 든 신개념 과자에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고단백 고칼로리 영양식품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초코파이는 이사 가는 꼬마가 아파트 경비원에게 서운함을 전하는 마음, 야단 맞은 어린이가 선생님께 사과의 편지를 전하는 마음 등 정(情)을 상징하는 간식으로 통한다. 출시 첫해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국내 제과업계 최초로 단일 제품 월 매출 50억원을 돌파했으며, 세계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08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1970년대 정부의 우유 소비 장려 정책에 힘입어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귀했던 바나나의 맛을 대중화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240ml의 ‘뚱뚱한’ 용기 모양은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입구에 턱을 만들어 내용물이 쉽게 흐르지 않도록 했고, 내용물의 바나나색을 살리기 위해 반투명으로 제작했다. 특히 중국에 달항아리 용기 그대로 수출해 높은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2023년 내수·수출 합산 매출 3000억원을 기록했고, 2024년 빙그레 매출의 20%를 차지했다. 현재 30여 개국에서 판매 중.

09 투게더는 국산 아이스크림을 한 단계 도약시킨 제품이다. 설탕물에 색소를 넣어 얼린 ‘아이스께끼’가 주류이고 아이스콘이 막 등장한 시절, 빙그레는 생우유를 원료로 한 ‘떠먹는 정통 아이스크림’에 도전했다. 제품명 ‘투게더’는 사내 공모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정통 아이스크림’이라는 의미가 어필해 채택됐다. 당시 600원(900cc)의 고가가 역으로 ‘아버지 월급날에 먹는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미지에 한몫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투게더, 투게더~’라는 초창기 TV 광고와 CM송으로 5060세대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는 투게더는 지금도 변함없이 국민 아이스크림으로 사랑받고 있다.

10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의 가나초콜릿은 1975년 첫선을 보였고 전 세계에서 1초에 4개꼴로 팔려 나가고 있는 국민 초콜릿이다. 가나산 카카오콩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한국인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는 스위스풍의 부드러운 맛을 구현한 가나초콜릿은 이미연, 채시라, 아이유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끈 연예인들을 연이어 모델로 발탁하며 유명세를 더했다. 2024년까지 총 68억 갑, 국민 1인당 123개가 팔렸다.

11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 최초의 믹스커피인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출시했다. 커피, 프리마(동서 커피크림), 설탕을 기호에 맞게 타서 마시던 것이 일반적이었을 때, 설탕과 프리마가 적정 비율로 들어간 커피믹스는 신세계로 취급되며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휴대가 간편하고 보관이 쉬운 점, 어디서나 더운물만 있으면 손쉽게 타 마실 수 있는 장점으로 커피믹스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가 즐기는 커피 문화로 재탄생했다.

12 오리온이 1976년에 출시한 오징어땅콩은 소비자들의 선호를 반영해 개발된 독특한 조합의 스낵이다. 바삭한 볼 형태의 과자 속에 통땅콩을 넣어, 고소함과 바삭한 식감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출시 직후부터 색다른 맛으로 큰 인기를 끌며 새로운 간식 문화를 형성했다. 최근에는 더욱 바삭한 식감을 살리고 다양한 맛을 추가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장수 제품의 대명사다.

13 맥콜은 1982년 국내산 보리를 활용해 탄생한 국내 최초의 보리 탄산음료다. 1980년대 초, 쌀밥이 주식이 되며 보리 소비가 급감하자 청량음료 사업을 하던 일화가 보리 음료 개발에 나선 끝에 1982년 7월 21일 맥콜을 출시했다. 일화는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조용필을 모델로 88올림픽주경기장에서 6000명의 팬을 동원한 CF를 제작해 맥콜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14 1983년에 출시된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긴 막대 과자에 초콜릿을 묻힌 독창적인 모양과 콘셉트로 출시 때부터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2024년 말까지 누적 매출은 약 2조2400억원, 전 국민이 76갑씩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빼빼로 모양을 연상시키는 11월 11일에 빼빼로를 선물하며 우정을 주고받는 ‘빼빼로데이’는 경남 지역 여중생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외로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15 맥심 모카골드는 1970~80년대에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가열되자 동서식품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원두 로스팅의 강도, 커피 추출 공정 등을 연구한 끝에 1987년에 내놓은 프리미엄 커피다. 맥심 모카골드의 연간 판매량은 스틱 기준 총 57억 개로, 1초당 180개가 판매되는 셈이다.

16 1992년 빙그레 연구원의 기획으로 탄생한 메로나는 출시 10개월 만에 1억8000만 개가 팔리며 빙그레의 재정 위기를 타개한 히트 상품이 됐다. 멜론맛 아이스크림의 선풍적 인기에 경쟁사에서도 유사 제품이 잇따라 나왔고, 가격도 처음 200원에서 600원까지 점진적으로 인상됐다. ‘올 때 메로나’ 밈으로도 잘 알려진 메로나는 지금도 꾸준히 인기를 누리며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조미료·냉동식품
미원(1956), 샘표 진간장(1966), 오뚜기 카레(1969), 산타 크림스프(1970), 해표 식용유(1971), 소고기다시다(1975), 동원참치(1982), 햇반(1996), 비비고 만두(2013)

17 감칠맛의 대명사인 ‘미원’은 1956년에 탄생했다. 다시마의 감칠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 MSG는 1908년 일본 아지노모토사(社)가 처음 개발했고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소개됐지만 광복 후 일본 제품 수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대상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임대홍 회장은 당시 1급 비밀이던 MSG 조미료의 제조 방법과 공정을 배우고자 오사카의 조미료 공장에 취업해 어깨너머로 조미료 제조법을 배우고 수천 번의 시행착오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부산 동대신동의 조그만 공장에서 탄생한 ‘미원’은 MSG를 꺼리는 정서가 확산된 지금도 연 매출 10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18 샘표는 1966년 ‘진하고 구수한 맛의 간장, 정직하고 진실된 진짜 간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샘표 진간장’을 출시했다. 샘표 간장은 주부와 요리 전문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믿고 먹을 수 있는 간장’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에 출시한 ‘샘표 진간장 금F3’는 국내 간장 브랜드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닐슨코리아 조사, 2023년 소매점 매출 기준)이다.

19 오뚜기 카레는 1969년 회사 창립과 함께 탄생한 오뚜기 최초 제품이다. ‘간편하고 영양가 높은 가공식품을 제공한다’는 모토로 출시한 일본식 카레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는 출시 첫해에 400만 개가 팔렸고 ‘3분 카레’ 등 후속작이 잇따랐다.

20 미국 구호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만든 빵이 점차 인기를 끌자, 오뚜기는 빵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스프 개발에 눈을 돌려 1970년 국내 최초의 분말 스프 와 산타 크림스프와 ‘산타 포타지스프’를 내놨다. 겨울에 출시했기 때문에 산타가 주는 선물이라는 뜻에서 Santa를 브랜드명으로 정했는데 이는 영문을 상표로 쓴 국내 최초 사례다.

21 1971년 국내 최초로 가정용 식용유를 출시한 해표 식용유는 현재는 사조대림에 합병된 사조해표의 전신 동방유량에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채유(採油) 원료 격감, 채유 시설 파괴로 유지(油脂)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동방유량의 고 신덕균 명예회장은 대두(콩) 가공 업체를 설립하면서 제유(製油) 설비와 노하우는 이스라엘에서 들여왔다. 해표 식용유는 국내 콩기름(대두유) 대중화의 초석을 놓았고, 소득 증가로 식생활이 개선되면서 집집마다 주방 한켠에 식용유가 한 병쯤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해표 식용유는 맑고 신선한 콩기름으로 제품력을 인정받으며 성장했다.

22 ‘그래, 이 맛이야!’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1975년 출시한 조미료 다시다는 차별화된 맛은 물론 ‘국민 엄마’ 김혜자의 광고 카피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원’에 눌린 제일제당의 조미료 시장 만년 2위 설움을 단번에 날린 다시다 제품군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3000억원(소비자가 기준)의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23 매년 2억 캔 이상 팔리는 동원참치(동원F&B)는 1982년 첫 출시된 이후 43년 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대한민국 대표 참치캔이다. 참치잡이 원양어선은 알아도 막상 참치는 어떤 생선인지 모르던 시절, 김재철 사장(현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참치 통조림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견하고 과감히 제품을 내놓은 결과다. 동원참치는 매년 2억캔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24 1996년 제일제당 햇반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식품업계와 소비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우리의 주식인 쌀을 즉석식품으로 내놓는 역발상이 주효해 햇반은 브랜드명을 넘어 즉석밥의 대명사가 됐다. ‘유기농 햇반’ ‘햇반 흑미밥’ ‘햇반 오곡밥’ 등 다양하게 변주된 햇반은 지난해 말까지 60억 개가 팔려 나갔다.

25 2013년에 출시된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단일 품목으로 2020년 글로벌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현지에서 수년간 1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며 ‘비비고 만두’ 브랜드와 R&D, 제조 기술을 차별화하는 데 집중해 현재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등에서도 만두를 생산하고 있다. 닭고기와 고수를 선호하는 현지 식문화를 반영해 ‘치킨&실란트로 만두’도 판매 중이다.
의류·화장품·세제·신발
백양내의(1946), 럭키크림(1947), 럭키치약(1955), 퐁퐁(1972), 프로스펙스 운동화(1981)

26 ‘하얀 난닝구’ ‘아빠 메리야스’로 유명한 BYC의 전신은 1946년에 설립한 한흥메리야스다. 포목점 점원 출신인 고(故) 한영대 전 회장은 광복 직후에 양말 편직기를 더 크게 만들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데 착안해, 5개월의 개발 기간을 걸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 기술을 개발해 백양 상표를 달고 단 생산에 매진했다. 1990년대 중반 해외 사업이 승승장구할 때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으로 78개국에 메리야스를 수출했다.

27 1947년 정월 어느 날 아침, 부산 서대신동에 있는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집 마당에는 김준환이 중심이 되어 크림 생산 작업을 위한 준비가 분주했다. 건평 70평 정도의 단독주택에서 여러 원료를 배합해서 반죽을 하고 다시 감화조(鹼化槽)에 넣어 끓이는 과정을 거쳐 향긋한 냄새의 화장크림이 대량으로 나왔다. 구 회장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크림이 되라는 의미에서 제품명을 럭키크림(Lucky Cream)으로 정하고, 한글로 즐거울 락(樂), 기쁠 희(喜) ‘락희’로 쓰기로 했다. 제대로 된 크림 하나 없던 시절, 럭키크림은 좋은 품질 대비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여심을 사로잡은 국산 화장품이었다. LG의 화장품 사업은 럭키크림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며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는 탄탄대로를 걸었고, 21세기 K-뷰티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28 전쟁 직후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국산 ‘콜게이트’ 치약은 고가여서 일부 계층만 사용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서민들은 굵은소금을 손가락이나 치솔에 묻쳐 치아를 닦았다. 구인회 창업주의 지시로 외제 치약을 밤낮으로 연구한 럭키 개발팀은 1955년에 스피어민트향이 첨가된 럭키치약을 출시했다. 외제에 비해 가격은 3분의 1로 저렴하고 품질은 동등했던 럭키치약은 출시 3년 만에 콜게이트를 누르고 국산 치약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29 락희유지공업(현 LG생활건강)이 1967년에 출시한 주방 세제 ‘에어퐁’은 1972년부터 퐁퐁으로 이름을 바꿨다. 퐁퐁은 제품명이지만, 경쟁사의 ‘트리오’와 함께 주방 세제를 뜻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식기, 과일, 야채까지 적은 양으로 쉽게 설거지가 가능하고, 보리 추출물, 레몬식초, 베이킹소다 등을 넣은 파생 모델도 나오고 있다.

30 프로스펙스를 만든 건 국제고무라는 고무신 제조 회사와 국제화학주식회사다. 국제화학은 1976년에 회사명을 국제상사로 바꾸고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미국의 ‘스펙스’ 브랜드를 사용하는 회사를 인수하고 이름을 프로스펙스로 바꿔 1981년부터 운동화를 내놨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이름을 알리며 사세를 떨쳤다.
의약품
5% 포도당 수액(1959), 신신파스(1959), 우루사(1961), 박카스(1963)

31 중외제약(현 JW중외제약)은 1959년에 5% 포도당 수액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대한민국 수액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5% 포도당 수액은 이후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료제가 됐으며, 1960년대 초반에 국내 수액의 70%를 공급할 정도로 시장을 주도했다. 충무로의 영세한 공장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자 1964년 하월곡동에공장을 신설해 수액 제조부터 충전, 멸균, 포장까지 일관 시스템을 구축했다. 생산비 증가로 수액 한 병 납품할 때마다 손해를 보면서도 고(故) 이종호 명예회장은 “지금 이 순간 저 불빛 아래서 꺼져 가는 생명이 있는데, 돈이 안 된다고 사업을 접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선친(이기석)이 강조한 생명 존중의 창업 정신을 이어 갔다. 1990년대 초반에 유리병을 대체할 PVC(폴리염화비닐) 백을 도입했고, 1997년에 국내 최초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Non-PVC 수액백 개발에 성공해 친환경 수액 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JW중외제약은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수액 전문 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32 신신제약은 1959년, 대한민국 최초의 붙이는 파스 신신파스를 생산했다. 창업주인 고 이영수 회장은 대다수 국민이 6·25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고 고된 육체 노동으로 통증에 시달리던 때 ‘질 좋고 값싼 파스를 생산하는 것이 국민의 통증을 덜어 주는 길’이라는 창업 정신으로 제약회사를 세워 파스를 출시했다. 파스 기술력이 앞서 있던 일본 회사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기술을 이전받아 출시했고, ‘신신파스 에이’(1917년), 신신제약 첫 번째 온감 파스 ‘신신파스 나바’(1978년)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33 ‘피서 가는 곳에 피로가 따라갑니다. 우루사도 바캉스를 갑니다.’ 대웅제약은 우루사 개발 초기에 주요 성분을 알리고자 광고 모델 없이 곰 이미지를 활용했다. Ursa는 회사명 대웅(大熊)과 맞닿는 큰곰자리의 라틴어 표기다. 1961년에 출시된 간 기능 개선제 우루사는 1977년에 연질캡슐화에 성공해 초창기의 맛이 쓰고 삼기키 어려웠던 단점을 보완했다.

34 에너지드링크의 원조인 동아제약 박카스는 1963년 탄생했다. 1960년대에는 국민들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박카스는 물 없이 간편하게 복용하고 피로 해소와 영양에다 맛까지 있어 인기를 끌었다. 2023년 기준으로 박카스의 누적 판매량은 233억 병을 넘었는데, ‘박카스D’(12cm)로 환산해 세우면 지구 70바퀴에 해당한다.
라면
삼양라면(1963), 육개장사발면(1982),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6), 불닭볶음면(2012)

35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은 대한민국 최초의 건식 라면으로,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초기에는 낯선 음식으로 외면받았지만 무료 시식 행사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1969년 해외 수출을 시작하며 성장했고, 1972년 연간 7억 개 판매를 기록하며 국민 식품이 되었다. 2023년 출시 60주년을 맞아 리뉴얼된 삼양라면은 깊은 국물 맛과 쫄깃한 면발로 변화를 더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는 혁신을 이어 가며, 대한민국 대표 라면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36 농심은 1982년에 용기면 시장을 대표하는 육개장사발면을 출시했다. 라면의 본고장 일본에서는 1980년대 벽두부터 용기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던 때다. 농심은 국내 시장도 일본과 같이 변할 것이라 예측하고 개발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육개장 맛을 기본으로 육개장사발면을 출시했다. 제품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공식 라면으로 지정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우리나라 대표 식품으로 각인됐다. 2011년 용기면 시장에서 1위에서 오른 이후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이다.

37 ‘짜라짜라짜 짜~파게티.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주말에 앞치마를 두르고 짜파게티를 끓이는 아빠의 유쾌한 광고 카피는 한동안 대한민국은 휩쓸었다. 농심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로 오랜 시행 착오 끝에 제품을 내놨다. 짜파게티는 당시 기존의 150원대 제품보다 높은 200원대의 가격에도 출시 초부터 큰 인기를 끌어 지금까지 독보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농심 ‘너구리’와 결합해 소비자들이 창작한 ‘짜파구리’가 영화 〈기생충〉(2019)으로 덩달아 유명해졌다.

38 농심 신라면은 1986년 출시돼 1991년부터 라면 시장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누적 판매량은 약 386억 개. 국내 라면 시장은 그때까지 순하고 구수한 국물 제품 위주였는데 신라면은 매울 신(辛)자를 내세워 매운 라면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전국 모든 품종의 고추로 매운맛 실험을 하고 다진양념 조리법을 적용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국물맛을 만들었다. 자사의 ‘안성탕면보다 굵고 너구리보다 가늘면서 쫄깃한 식감’을 추구한 연구진이 200종류 넘는 면발을 개발하고 테스트한 끝에 신라면 면발이 탄생했다.

39 2012년 4월 출시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강렬한 매운맛으로 화제를 모았다. 출시 초기 ‘너무 매워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독특한 중독성과 다양한 확장 제품으로 ‘대세 라면’이 되었다. 불닭볶음면의 성공에는 유튜브 바이럴 마케팅이 결정적이었다. 세계적으로 ‘Fire Noodle Challenge’가 유행하면서 불닭볶음면은 한번쯤 도전해야 할 K-푸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레시피 변주가 이어지면서 치즈불닭, 까르보불닭 등 연이은 후속 제품도 큰 인기를 끌었다. 각국의 입맛을 반영한 맞춤형의 ‘불닭’ 브랜드는 100여 개국에 수출되며 삼양식품 수출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4년 식품업계 최초로 ‘7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자동차
시발 자동차(1955), 기아 삼륜차(1969), 포니(1976), 포터(1977), 봉고(1980), 쏘나타(1985), 그랜저(1986), 프라이드(1987), 티코(1991)

40 한국전쟁 이후 경제 재건이 한창이던 1955년,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는 한국 기술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 시발(始發)을 선보였다. 국산화율 50%에 손으로 조립하는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시발 자동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첫 발자국을 남긴 기념비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1963년 까지 약 3천여 대가 생산, 판매되었다.

41 1969년 8월 기아가 선보인 T-600 삼륜차는 좁은 골목길과 복잡한 도심에서 소화물 수송이 절실했던 시대의 요구에 대한 해답이었다. 일본 동양공업(현 마쓰다)과 기술 협력을 통해 탄생한 기아 삼륜차는 작은 차체와 가벼운 무게로 산동네와 골목길을 누비며 연탄, 쌀 배달 등에 널리 쓰였다. 세 개의 바퀴를 지닌 독특한 외형 덕에 ‘삼발이’라고도 불렸으며, 우편 수송을 비롯한 도심 용달차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42 현대자동차 포니는 참다운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독자 생산한 최초의 승용차다. ‘포니 정’ 고 정세영 회장의 의지로 1973년 개발을 시작해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고, 1975년 말 상업생산에 들어가 1976년 2월 공식 출시됐다. 출시 직후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했고, 누적 판매량은 약 74만 대다. 현대차는 2023년 헤리티지 브랜드 플랫폼 ‘현대 리유니온’을 통해 ‘포니 쿠페’를 복원 및 공개했다.

43 현대자동차가 1977년에 출시한 포터(HD-1000)는 국내 최초의 소형 디젤 상용차이자 디자인과 설계를 독자적으로 진행한 첫 국산 트럭이다. 더블캡, 밴, 미니버스, 앰뷸런스 등 다양한 파생 모델도 출시됐으나 1981년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로 단종됐다가, 1986년 후속 모델이 등장하며 생산이 재개됐다.

44 기아가 1980년 출시한 봉고는 대한민국 승합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12인승과 9인승 모델을 앞세워 명절 민족 대이동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벌초·성묘객들이나 열차·고속버스를 놓친 귀성객들이 봉고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익숙한 명절 풍경이 됐다. 출시 4년 만인 1984년 5월 누적 생산량 10만 대를 돌파했고, 1985년 말까지 18만9216대가 판매됐다. 이동 사무실, 광고판, 단체 여행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봉고 문화’가 형성됐고, ‘봉고차’는 지금도 소형 승합차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45 현대 쏘나타는 1985년 11월 출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고급 중형 승용차다. 현대의 두 번째 고유 모델인 ‘스텔라’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국산차 최초로 크루즈 컨트롤, 메모리 시트, 뒷좌석 슬라이딩 시트 등 고급 사양을 적용했다. 현재 8세대 모델까지 나온 쏘나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단일 차종 브랜드이며 누적 판매량은 953만5582대다.

46 현대차가 1986년 7월에 출시한 그랜저는 국산 고급 승용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이다. 현대차와 미쓰비시가 공동 개발·생산해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 출시됐다. 1998년 등장한 3세대 XG부터는 현대차가 독자 기술로 개발을 진행했고, 국내외 누적 판매량은 274만7254대다. 고 정주영 회장이 “나가 만든 아파트(압구정현대아팥)에 살고 내가 만든 차(그랜저)를 타면서 나를 압박하면 안 되지” 하고 정치인들을 향해 푸념한다는 내용의 신문 만평으로도 유명하다.

47 1987년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는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차량이다. 당시까지 국산 승용차 가운데 가장 작은 차였지만, 잔고장이 없다는 입소문이 돌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첫해 2만8623대가 팔린 것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12만6226대가 판매되며 내수 시장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비가 시내 주행 기준(FTP-75 모드) 리터당 18.6km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 혼다 시티(리터당 18km)를 능가해, ‘휘발유 냄새만 맡아도 간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48 ‘새로운 세대, 새로운 차 티코!’ 대우는 1991년 5월, 대한민국 첫 경형 승용차 티코를 출시했다. 티코는 합리적인 가격(당시 300만~400만원대)과 경제적인 유지비로 주목받았으며, 출시 첫해 3만 대가 판매됐다. 이후 경차 시장을 개척한 모델로 평가받으며 대한민국 경차 보급 확대에 기여했다.
레저시설
태극당(1946), 용인자연농원(1976), 롯데월드(1989), 찜질방(1993), PC방(1990년대 말)

49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1946년에 서울 명동에서 개업하고 1973년에 장충단공원 앞으로 이전했다. 상호는 창업주 신창근 대표가 우리 민족의 이상을 담는다는 뜻에서 지었다.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사라다빵, 단팥빵, 월병 등 ‘레트로’ 메뉴가 강세다.

50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낡은 사진첩에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서 찍은 사진 한 장쯤 들어 있을 것이다. 용인자연농원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테마마크로 삼성이 설립, 운영한다. 초창기에는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됐고 입장료는 성인 600원, 어린이 300원이었다. 1970년대 어린이들의 최고의 놀이터였던 용인자연농원은 한때 1일 관광객 수가 12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번창했고, 1996년에 개장 20주년을 맞아 이름을 에버랜드로 바꿨다.

51 롯데월드는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테마파크로 실내의 ‘롯데월드 어드벤처’와 민속박물관, 아이스링크, 야외의 ‘매직아일랜드’ 등을 갖추고 있다. 1989년 18종의 어트랙션으로 개장해, 1990년대에 용인자연농원, 서울대공원과 함께 ‘테마파크 3대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998년에 도입한 자이로드롭 덕에 IMF 한파 매출이 늘었다. 매일 오후 2시와 7시에 대규모 판타지 퍼레이드를 선보인다.

52 찜질방과 PC방도 우리나라가 개발하고 보유한 고유 문화다. 한국의 전통 사우나인 찜질방은 기존 목욕탕에 몸을 찜질할 수 있는 뜨거운 방을 접목시킨 형태인데, 수건을 말아 머리에 쓰는 ‘양머리’와 맥반석 계란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53 1990년대 말에 생긴 PC방은 10~20대 이용자가 절대다수인 문화공간이자 카페다. IMF사태 당시 실직자들이 재취업 정보를 위해 찾느라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해외의 게임업체 관계자들은 국내 게임업체의 성공 이유 중 하나로 PC방을 꼽기도 한다.
술·담배
백화수복(1945), 크라운맥주(1952), 아리랑(1958), 솔(1980)

54 백화수복은 광복과 함께 태어났다. (주)백화 시절인 1945년에 첫 출시되어 백화양조, 대한양조, 두산주류BG를 거쳐 롯데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재까지 80년 동안 제사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음복하는 제주(祭酒) 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55 ‘왕관맥주.’ 1952년에 첫 출시된 크라운맥주의 상징은 크라운, 왕관이다. 크라운맥주는 대한민국의 최초 맥주회사인 조선맥주(하이트의 전신)가 프리미엄 오리지널 에일이라는 콘셉트로 내놓은 맥주다. 크라운맥주는 1962년에 국내 최초로 해외로 수출됐고, ‘크라운 드라이 마일드’는 1991년에 1000만 상자 판매를 돌파했다. 크라운맥주는 1993년에 단종됐지만 2022년 하이트진로가 크라운의 역사성을 재해석해 편의점용 크라운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56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는 전매청(현 KT&G)이 1958년에 내놓은 아리랑이다. 정부기관인 전매청이 제조담배의 맛과 품질을 구성하는 원료 잎담배와 향료, 부수 재료(필터 궐련지, 팁페이퍼) 등을 정부 수립 직후부터 꾸준히 연구해 10년 만에 필터 담배 개발에 성공했다. 1976년에 단종됐다가 1984~88년 잠깐 재발매됐다. 야구 투수의 느린공을 ‘아리랑볼’이라고 부른 것은 태극무늬를 응용한 아리랑 담배 포장의 영향이라고도 한다.

57 전매청은 1980년에는 팽화엽을 원료로 배합한 솔을 출시했다.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 제조 담배 전체는 미국형 담배(Blended Type)로 엽배합이 설계됐고, 제품의 타르를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솔’은 국내 최초로 다공성 필터와 천공(穿孔)된 팁페이퍼, 담배를 감싸는 종이가 부착된, 타르가 상대적으로 낮은 담배였다. 1982~86년까지 단일브랜드로 시장점유율 66%를 기록하며 연 20억 갑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다.
가전·전자제품
눈표 냉장고(1965), 금성 텔레비전(1966), 백조 세탁기(1969), 린나이(1975), 코비카(1976), 풍년 압력밥솥(1970년대 후반), 마이마이(1981), 삼보 컴퓨터(1990년대 초반), 삐삐(1990년대 초반), 애니콜(1994), 삼성 SCH-100(1996), 삼성 SCH-V500(2004), 스타일러(2011)

58 금성사(현 LG전자)는 1965년에 최초로 국산 냉장고(모델명 GR-120)를 개발했다. 냉동 기술 경험이 있던 연구진과 락희화학(현 LG화학)의 협력으로 자체 기술만으로 제작했고, 약 6000 대가 생산·판매됐다. 금성사는 1973년 창원 전자공장을 설립해 냉장고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완전한 국산화에 성공했다. 1976년 국내 최초 양문형 냉장고, 1980년 마이크로컴퓨터 내장 냉장고, 1984년 김치냉장고를 개발하며 제품군을 확대했다. 1993년에는 전통 김장독의 원리를 적용한 김장독 냉장고를 출시하며 한국형 냉장고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LG 하면 떠오르는 ‘백색 가전’이라는 단어는 외부를 흰색으로 마감한 눈표 냉장고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59 금성사는 1966년에는 최초의 국산 텔레비전 ‘VD-191’ 생산에 성공했다. 19인치 화면의 진공관식 모델로, 같은 해 7월 9일 1차 생산된 500대가 대당 6만3510원에 판매됐다. 금성사는 1963년부터 텔레비전 제작을 준비해, 1965년 일본 히타치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정부는 국산 부품 사용 비율을 50% 이상 유지하고 수입 부품은 전자제품 수출로 확보한 외화 범위 내에서만 사용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VD-191은 흑백 화면과 NTSC 방식의 아날로그 방송신호를 지원했으며, 수동 채널 조정 기능이 포함됐다. 디자인은 박스형 외관에 하단 다리를 부착한 형태로 제작됐다. 현재 VD-191은 경기도 이천 LG전자와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각각 한 대씩 소장되어 있으며, 두 제품 모두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됐다.

60 ‘빨래는 시간 낭비.’ 금성사는 1969년에 국내 최초로 백조 세탁기(WP-181)를 출시했다. 1.8kg 용량의 반자동 세탁기로, 세탁과 탈수 기능이 분리된 구조였다. 백조 세탁기는 빨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적인 가전제품으로 주목받았다. 이웃들이 세탁기를 구경하러 모이거나 빨래를 함께 맡기는 문화도 형성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백조 세탁기는 한국 가전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제품으로 평가받으며, LG전자역사관과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2013년 등록문화재 제562호로 지정되었으며, ‘백조 세탁소’라는 이름의 세탁소가 전국 3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강한 브랜드 영향을 남겼다.

61 린나이코리아는 1975년에 국내 최초의 가스레인지 ‘3GM’을 출시하며 한국 주방의 변화를 이끌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직 연탄불 아궁이나 심지어 장작불을 쓰던 시기에 가스레인지는 혁신적인 조리 기구였다. 1978년 정부의 가스 연료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가스레인지 보급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린나이 가스레인지는 1978년 매출이 전년 대비 2배로 증가했고, 1979년에는 7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주방 가전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62 ‘Na 코비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친해지는 코비카 카메라! 생활인의 멋, 생동하는 자연. 경이의 세계를 코비카는 포착한다.’ 1976년 6월 5일, 경쾌한 TV CM송과 함께 국산 최초의 카메라 ‘KOBICA 35BC’가 세상에 나왔다. KOBICA는 ‘KOrea, BInocular, Camera’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명으로, 한국 광학 산업의 첫걸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이름이었다. ‘필카’ 시절 코비카 카메라는 값비싼 일제 카메라를 대신할 국산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KOBICA BC-1, BC-7, BC-10, AE-F 등 다양한 모델로 제품군을 넓혔고, 1980년대 초반에는 연간 3만 대를 생산할 정도로 성장했다.

63 풍년밥솥은 압력밥솥의 대명사다. 풍년 압력솥은 알루미늄 주물 방식으로 제작되어 내구성이 뛰어나고 조리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부엌을 점령하며 한국인의 식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64 ‘둘이서 걷는 즐거움, 둘이서 듣는 즐거움. 신나는 리듬이 쏟아질 땐 마음도, 표정도, 걸음걸이도 똑같아지죠.’ 삼성전자는 1981년에 이동식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mymy)를 선보이며 포터블 오디오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제 ‘워크맨’이 상징하던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시장에서 삼성 마이마이는 차별화된 기능과 우수한 성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마이마이는 담뱃갑 두 개 정도 크기에 무게 400g으로 휴대성이 뛰어났다. 오토리버스 기능을 탑재해 테이프를 뒤집지 않고 연속 재생할 수 있고, 두 개의 이어폰 잭으로 두 사람이 함께 음악을 들으며 대화까지 할 수 있는 ‘토크라인’ 기능을 갖췄다. 2개 잭의 개별 음량 조절이 가능해 편의성을 높였다. 마이마이는 1980년대 휴대용 오디오 문화 확산에 기여했으며, 이후 모델을 다양화해 가며 젊은 층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65 1980년 설립된 삼보컴퓨터는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SE-8001)를 출시하며 극산 PC 시장을 열었다. 당시 SE-8001의 가격은 1000만 원에 달해 일반 가정보다는 기업을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됐다. 삼보컴퓨터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제품 출시를 통해 한국 PC 시장을 선도하며 1990년대까지 국내 대표적인 컴퓨터 제조사로 자리 잡았다.

66 휴대폰이 아직 대중화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 집과 사무실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책임진 것은 삐삐였다. 공식 명칭은 ‘무선호출기(페이저)’였지만 다들 삐삐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초기 삐삐의 전화번호는 012와 015로 시작했다. 직접 통화는 불가능했지만 ‘음성사서함’ 기능으로 녹음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숫자로 암호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삐삐는 젊은 세대는 물론 직작인의 필수 아이템이었으며, 단순한 호출 기능을 넘어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냈다.

67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라는 광고 카피, 기억하는가? 삼성전자가 1994년 5월에 시작한 이 광고 캠페인은 같은 해 10월 출시된 휴대폰 SH-770 모델과 함께 큰 화제를 모았다. SH-770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선보인 휴대전화 브랜드 애니콜(Anycall)의 첫 번째 모델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의미를 담은 애니콜 브랜드는 ‘갤럭시’ 이전 삼성 휴대전화의 대명사였다. 삼성전자 개발진은 브랜드의 ‘이름값’을 입증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돌며 통화 품질을 테스트했다고 전해진다.

68 삼성전자는 1996년 4월에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을 적용한 휴대전화 SCH-100을 출시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휴대폰 내수 시장 점유율을 50%대까지 끌어올리며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보다 보안성과 통화 품질이 뛰어난 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이 한국이었다. SCH-100은 크기 5.4×17.5×3.5cm 크기로 당시 기준으로 휴대성이 뛰어난 제품이었다. 삼성전자는 이후 애니콜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하며, 휴대전화 수출을 빠르게 성장시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69 TV도 극장도 ‘가로 화면’이 기본이었지만 휴대전화만큼은 세로 화면이 당연하던 시절. 2004년 삼성전자는 이 고정관념을 깨는 가로본능폰(SCH-V500)을 선보였다. 이 휴대전화는 화면을 가로로 돌려 VOD, MP3, 카메라 기능을 활용할 수 있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멀티미디어 경험을 제공했다. 독특한 디자인만큼이나 TV 광고도 화제가 됐다. 특히 ‘가로로 매달리는 사람’ 장면은 여러 차례 패러디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급 폰의 대명사’로 불리던 가로본능폰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멀티미디어 폰의 가능성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모델이었다.

70 LG전자가 2011년 출시한 LG 스타일러는 매일 세탁하거나 드라이클리닝하기 어려운 옷을 간편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의류관리기다. 물로 만드는 스팀과 옷을 흔들어 주는 기술을 활용해 생활 구김과 냄새를 제거하고 미세먼지까지 없애 주는 기능으로 주목받았다. 출시와 함께 LG 스타일러는 결혼이나 이사를 앞둔 소비자들 사이에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2016년부터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글로벌 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금융상품
교보교육보험(1958), 주택복권(1969), 하나비자카드(1978), Buy Korea(1999)

71 보험에 교육을 처음 접목시킨 사람은 고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던 대산은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교육보험을 창안해 1958년에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설립하고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을 내놨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창적인 보험 상품이었다. 1960년에는 ‘교육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 학자금을 주고, 부모가 사망할 경우에 사망급여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내놨다. 교육보험은 ‘소를 팔지 않아도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당시 높은 교육열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72 ‘준비하시고… 쏘세요!’ 한국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은 1969년부터 첫 추첨식 복권인 주택복권을 발행했다. 1972년 6월부터 월 3회 발행, 1973년 3월부터는 주1회 발행으로 늘렸다. 초창기 복권 1장당 판매 가격은 100원,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발매되는 복권이었기에 1980년대까지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73 우리나라 최초의 비자카드는 1978년에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이 발급한 비자카드다. 외환은행은 비자 인터네셔널과 제휴하여 여행자를 대상으로 비자카드를 발급했다.

74 바이코리아(Buy Korea) 펀드는 1999년에 현대증권이 내놓은 펀드다. IMF 이후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주식시장이 팽창하는 시기와 맞물려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학습교재·문구·완구
동아전과(1953)·표준전과(1955), 모나미153(1963), 안현필 삼위일체 영어(1960년대), 수학의 정석(1966), 성문종합영어(1967), 부루마블 보드게임(1982)

75 학창 시절의 추억은 학교와 친구뿐만이 아니다. 매순간 동고동락한 참고서와 문방구들도 우리를 과거로 데려간다. 1953년에 출시한 동아전과는 초등학교 학습 참고서로 교과서에 나온 문제의 풀이법, 해답지가 있었다. 동아출판사(현 동아출판)이 먼저 전과(全科·전 과목) 지도서를 발행했고, 이후 교학사에서 표준전과를 내놓으면서 동아전과와 표준전과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76 책상 한켠에 얌전히 놓여 있는 모나미 볼펜은 한국 필기구의 역사 그 자체다. 고 송삼석 모나미 회장이 국제산업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외국 볼펜을 보고 광산화학공업(현 모나미)에서 연구 끝에 1963년에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내 친구’라는 ‘모나미(Mon Ami)’ 브랜드명은 그 자체가 볼펜이라는 뜻처럼 되었다.

77 1960~70년대 영어 교육 시장의 대형 베스트셀러는 고 안현필 선생의 영어 시리즈였다. ‘영어기초오력일체’ ‘영어실력기초’ ‘삼위일체’로 이어지는 안현필의 영어 교재 시리즈는 중고등학생들의 필수 교재였다.

78 ‘수학의 정석’은 홍성대(전 전주 상산고등학교 이사장) 선생이 1966년에 내놓은 수학 개념서다. ‘기본 수학의 정석’ ‘실력 수학의 정석’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조부모와 부모, 자식가지 3대가 함께 보는 수학 교재로 정평이 나있다.

79 성문출판사 송성문 사장은 1967년에 ‘정통종합영어(성문종합영어)’를 내놓은 후 영어 학습서 시리즈를 잇따라 출시했다. 초창기에는 안현필의 영어 시리즈와 경쟁했고, 1980년대에는 맨투맨 영어 시리즈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80 ‘부루마블’은 1982년에 씨앗사가 개발한 보드게임이다. 한국의 보드게임 대중화를 이끈 선두주자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