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 연령 현행 65세에서 75세로 상향 작업 추진 중
⊙ 생산 잔류 기간 65세에서 75세로 10년 늘리며 임금도 차등화
⊙ 일본의 노인 정책 벤치마킹 대상… “보급형 실버타운 건설”
⊙ 노인이 집에서 운명하도록 ‘재가 임종 제도’ 추진
⊙ 출생 지원과 노인 복지 담당할 정부 부처 ‘인구부’ 설치 협력
⊙ 부영그룹, 2년 연속 총 98명에게 출산장려금 1억원씩 지급
⊙ “‘나눔’이란 모종판에서 모를 논에 옮겨 심는 것… 적기·적지에 모 심어야”
李重根
1940년생.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법학 박사 /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1992~현재), 부영그룹 회장(1994~현재), 건국대 이사장(1999~2001년), 한국주택협회 회장(2000~2004년),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2003~2006년), 제17, 19대 대한노인회장(2017~2020, 2024~현재)
⊙ 생산 잔류 기간 65세에서 75세로 10년 늘리며 임금도 차등화
⊙ 일본의 노인 정책 벤치마킹 대상… “보급형 실버타운 건설”
⊙ 노인이 집에서 운명하도록 ‘재가 임종 제도’ 추진
⊙ 출생 지원과 노인 복지 담당할 정부 부처 ‘인구부’ 설치 협력
⊙ 부영그룹, 2년 연속 총 98명에게 출산장려금 1억원씩 지급
⊙ “‘나눔’이란 모종판에서 모를 논에 옮겨 심는 것… 적기·적지에 모 심어야”
李重根
1940년생.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법학 박사 /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1992~현재), 부영그룹 회장(1994~현재), 건국대 이사장(1999~2001년), 한국주택협회 회장(2000~2004년),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2003~2006년), 제17, 19대 대한노인회장(2017~2020, 2024~현재)
- 이중근 회장이 6·25 전쟁을 날짜별로 기록한 《6·25 전쟁 1129일》을 펼쳐 들고 있다. 사진=조준우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 불과 7년 만인 올해 초고령 사회에 도달합니다. 2050년 노인 인구가 20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데, 5000만 명 인구에서 어린이(1000만 명)를 빼면 생산 인구는 불과 2000만 명에 불과해요. 생산 인구 2000만 명이 노인 인구 2000만 명을 ‘관리’하게 되면 국가 생산성은 ‘제로’가 됩니다.”
지난해 10월 대한노인회장에 취임한 이중근(李重根·85) 부영그룹 회장은 “이 때문에 취임사에서 노인의 ‘법적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으로 높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며 “노인을 생산 연령에 편입시켜 노인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국가의 생산성이 ‘제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인 해당 연령을 연간 50만~60만 명씩 줄이면 총 10년간 500만~600만 명의 노인 인구가 감소하고, 여기에 한 해 20만~30만 명씩 사망하는 노인들까지 추가하면 10년간 총 700만~800만 명의 노인 인구가 감소한다”며 “결국 2050년 이후 예상되는 노인 인구는 1200만~13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취임 넉 달째인 이 회장은 현재 대한노인회 차원에서 본격적인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노인 인원의 파악과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장은 “노인 인구 1000만 명, 이분들이 대한노인회에 모두 가입해 있는 건 아니다”며 “개인 정보 보호 때문인데,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와 협의해 ‘노인 인구 데이터베이스’를 서둘러 구축해 1000만 명 노인을 서둘러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중근 회장은 서울 용산구 효창동 대한노인회 중앙회 사무실과는 별도로 부영 회장실과 인접한 부영태평빌딩에 대한노인회 분실을 마련해 신속하게 업무 처리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척이라 수시로 들러 현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며 “지난 연말 ‘인구 문제 릴레이 캠페인’에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의 지명을 받아 참여했고, 유정복(劉正福) 인천시장을 다음 참여자로 지목했다”고 했다.
‘어른다운 노인’
지난 2월 8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의 이중근 부영 회장의 집무실. 기부액 약 1조2000억원을 기록 중인 ‘기부왕’의 집무실이라기엔 집무실 가구와 집기가 소박했다. 이 회장은 2월 10일 현재, 국내외 사회공헌 18만4494건, 역사서 발간과 기증 총 10종 1353만 부, 기부금액만 1조2061억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부영그룹 창립 초기부터 함께한 친구”라며 애장품인 ‘무진장(無盡藏·다함이 없는 창고)’ 액자 앞에서 수줍게 소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지난해 10월 21일 제19대 대한노인회장에 취임해 벌써 넉 달째입니다. 회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회장에 취임하신 만큼, 회원들이 ‘노인 문제 해결사’로 회장님께 거는 기대가 클 것 같습니다.
“노인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 역할을 하자는 뜻이에요. 제가 취임사에서 ‘어른다운 노인으로, 존경받는 노인으로, 후대를 생각하는 노인으로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고령 사회를 선도하는 어르신 단체로 노인회를 자리매김하겠다’고 말씀드린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제가 대한노인회 슬로건으로 정했습니다.”
— 현재 사회에서 ‘노인’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나요.
“문자 그대로 노인 같은 대우밖에 못 받고 있죠.”
— 노인의 법적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높이자는 제안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정부 쪽에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한노인회에서 노인 연령 상향 이야기를 꺼내니까, 대단히 합당한 주장이라며 호응하고 있죠. 제 취임식에 총리를 비롯해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대표 대리, 서울시장도 참석했는데, 축사 과정에서 ‘일리 있는 이야기’라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경제력을 가진 ‘자조노인’으로”
— 생산 잔류 기간도 65세에서 75세로 10년 늘리면서 임금도 차등화하자고 제안하셨죠.
“정년 연장 첫해(65세)에는 정년 피크 임금의 40%를 받고, 1년에 2%씩 줄여나가 10년 후(75세)에는 20% 정도를 받도록 했어요. 노인들을 생산 활동에 10년간 더 종사할 수 있도록 고안했습니다. 노인들은 75세까지 무기력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경제력을 가진 ‘자조노인(自助老人)’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까지는 바라지 않고 호구(糊口)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사시다 가시는 게 최대의 ‘노인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정부와 구체적 정책 협의까지 진행하고 있나요.
“보건복지부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복지부에선 노인 연령 상향뿐만 아니라 정년 연장까지 같이 묶어서 다루려고 해요.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기초연금 수령 연령도 65세에서 70세로 바꾸려고 손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 노인 관련 정책들을 손보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 노인분들은 국가와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정작 1988년 시행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해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기초연금의 혜택을 받아 ‘가뭄의 단비’처럼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노인 연령을 75세로 올리면 기초연금 수혜가 늦춰지는 건 아닐까요.
“보건복지부에서 노인의 기준은 75세로 하고, 기초연금 수혜 연령은 현재 65세에서 70세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럼 노인분들은 기초연금을 5년 늦게 받는다고 불만을 가지실 수가 있는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월(月) 500만원 월급자가 정년을 10년 연장하는 혜택을 받으면, 65세에 기초연금 34만원을 받는 것보다 200만원(500만원의 40%)을 받는 게 훨씬 더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 부영그룹 차원에선 정년 연장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부영은 능력 임용 제도를 갖추고 있는데, 직원을 나이로 자르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정년을 연장해서라도 써야지요.”
일본의 ‘보급형 실버타운’
— 일본은 노인들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고령자 주거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요, 일본은 전국 어디를 가도 ‘사코주(サ高住·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 같은 저렴한 실버타운 주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노인 주거 시설 복안은 있는지요.
“일본의 실버타운이 성공한 것은 민간자본이 실버타운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세제(稅制) 등 현명한 정부의 정책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상위 1%가 운영한다는 도시형 프리미엄 실버타운 아니면 요양원으로 양극화된 우리나라에서 ‘실버주택 난민’이 넘쳐나는 것은 정책의 부재란 생각마저 듭니다. 주택 건설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급형 실버타운’ 건설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일본이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 우리보다 앞서 일본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노인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까마득한 선배’가 맞습니다. 일본의 벤치마킹할 만한 노인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개호(介護) 서비스나 주택 문제, 전반적인 관리 시스템 등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일본에선 노인들이 외로움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는 일도 있다고 들었어요. 노인들의 가장 큰 적은 ‘생활고’와 ‘외로움’입니다. 2020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중 20%가 빈곤 속에 살고 있고, 한국은 일본의 두 배인 40.4%에 달합니다. 노인회 업무가 궤도에 오르면, 마을회관에서 노인들 급식사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께는 배달도 해드리고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낮에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하며 적적함도 덜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선조 때 5가구를 한 통씩 묶던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노인 관리에 적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 노인이 집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재가 임종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하셨지요.
“현재 핵가족화의 심화로 자녀들이 병든 부모를 요양원에 맡기는 바람에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태어날 때도 중요하지만, 돌아갈 때도 다 절차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 운명하는 순간에 손을 잡아드리며 지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난리통이 아님에도 요양원에 부모님을 보내 쓸쓸하게 운명해 ‘냉동 시체’로 가족에게 인계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요양원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처럼, 재가 간병인 예산을 만들어 노인들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임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을 꺼냈던 겁니다.”
— ‘재가 임종제’를 시행하려면 간호를 담당할 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캄보디아 등지에서 학교 인가를 받아 학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나 라오스는 필리핀이나 태국과 달리 남방계가 아니라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중국계입니다. 1966년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를 파독(派獨)했습니다. 파독 간호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고, 독일 정부에서도 간호사와 가족에 대해 취업을 지원하고 내국인과 같은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이때 번 돈을 몽땅 알돈으로 송금해 우리 경제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인구부 신설 서둘러야”
— 정부 부처에 인구부 신설도 취임식에서 언급하셨더군요.
“출생 지원과 노인 복지를 위한 정부 부처 설립을 위해 관계 기관과 협력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5월 정부는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를 대체할 인구부(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인구부는 저출생 관련 예산 사전심의 권한을 갖게 되고 부총리급으로 저고위에 비해 정책 실행력이 더 강화된 조직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왔죠. 그런데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출범이 불투명해 안타깝습니다.”
— 출산율 마이너스 시대가 되면 군대와 경찰을 외국인에게 맡겨야 할 수도 있겠네요.
“용병(傭兵)은 타국을 침략할 때나 쓰는 겁니다. 세계사를 보세요. 자국의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용병을 사용한 전례가 없어요. 자국의 국방은 자국민들이 해야 하는데, 인구가 소멸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됩니다. 율곡(栗谷) 선생은 ‘시무 6조’를 선조(宣祖) 임금에게 올려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는데, 만약 10만 명이 양병되었더라면 임진왜란의 참화(慘禍)는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인구 정책 예비론’입니다. 인구는 오늘 낳아 내일 써먹을 수 없어요. 지금 부지런히 낳아도 20년 후에 어른이 됩니다. 국가가 이런 정책 마련을 위해 인구부를 서둘러 신설해야 한다는 겁니다.”
— 출생률이 떨어지는 현재 상황을 회장님께서는 국가 존립 위기로 판단하셨군요.
“산부인과 의사들은 손님이 줄어들고 학교는 학생수가 줄어 폐교한다고 아우성치지만, 이건 오히려 지엽적 문제고요, 더욱 심각한 것은 20년 후에는 군인과 경찰도 수입해야 하는 판인데…. 국가 존립이 어려워지잖아요.”
‘출산장려금 지급’ 각계 전파 기대
— 지난 2월 5일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28명의 사원에게 출산장려금을 지급했습니다. 지난해 2021~2023년 출산한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씩 총 70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는데요, 누적 금액이 98억원에 달하더라고요. 사내 반응은 어떻습니까.
“4년 치 행사를 두 차례에 걸쳐 한 것이지요. 사내 출산율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선 한 해 23만 명이 태어나는데, 가임여성(15~49세) 1명당 0.721명이에요. 출산장려금은 회사 내부적으로 이만하면 목표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지급할 계획입니다.”
— 부영의 출산장려금 지급이 타 기업에도 전파돼 ‘나비효과’가 일어났으면 합니다만.
“그랬으면 좋겠어요.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왔을 때, 전 국민이 일정(日政) 때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금 모으기 운동’을 했는데, 큰 성과를 거뒀지 않습니까. 부영의 ‘출산장려금 지급’도 ‘금 모으기 운동’처럼 다른 회사로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씀드립니다. 다른 기업들도 출산장려금 지급을 시작하고 있다는 긍정적 소식들도 들립니다만, 인센티브 금액을 1억원까지 주는 곳은 없더라고요.”
— 출산장려금을 1억원으로 정한 이유는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만족할 만한 금액이 1억원이었어요. 무엇보다 받는 사람이 만족감을 느끼는 절묘한 숫자더라고요(웃음).”
— 2024년 처음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실 때 장려금에 세금이 40%나 붙는 문제점이 있었다면서요.
“해당 사원에게 1억원을 지급하니 근로소득세로 잡혀 세금이 40%나 부과되더군요. 그래서 출생한 아이에게 주었더니 증여세로 10%를 내게 되고. 좋은 취지의 장려금인데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효과가 반감되는 느낌이라서 보건복지부와 국회의 도움을 받아 준 자와 받은 자가 비과세 혜택을 받도록 했습니다.”
최고령 법학 박사
— 학구열도 대단하시네요. 84세의 나이에 2024년 고려대에서 정식 학위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건 국내 최고령 기록 아닌가요.
“그럴 겁니다. 2004년엔 고려대에서 행정학 박사, 지난해엔 같은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유가 있어요. 제가 1972년 아파트를 건설할 때 국토건설부에서 전국의 모든 아파트를 허가해 줬습니다. 한데 이전에 봄에 개나리, 진달래 필 때 낸 신청서류가 가을 국화가 피어도 감감무소식인 거예요. 건설업체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죠. 매일 국토건설부에 가서 앉아 있거나 탄원서를 썼어요. 담당 공무원이 빙긋이 웃으며 들어오라 하더니 챙겨서 허가를 내주더구먼.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공무원이 조선의 원님과 백성 사이의 무급 아전(衙前)이란 걸 깨닫고 다시는 공무원들에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 회장님의 법학 박사 학위논문은 〈공공임대주택 관련 법의 위헌성 및 개선방안에 대한 헌법적 연구〉더군요. 장영수(張永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도하셨고요.
“법학 박사 논문은 공공 임대주택 관련 법의 위헌성을 연구한 것인데, 제가 워낙 많이 해본 임대사업을 소재로 한 것이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 법학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요.
“나름 법을 잘 지키려 했음에도 법정에 서게 됐으니 내가 무슨 법을 위반했는지 성찰하면서 법을 알고 싶었어요. 법을 공부해 보니 법은 챙기는 사람들에게나 법이지, 가만히 있는 사람은 보호해 주지 않더군요.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란 말보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금언이 더 생각났습니다. 법을 관리할 능력이 있어야 법의 혜택을 봅니다.”
— 헌법에 노인의 기본권은 어떻게 나옵니까.
“헌법 제34조 4항에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는 대목이 나와요. 헌법 제34~35조에는 노인 보호와 복지에 대해 잔뜩 써놨는데,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내용만 가득합니다. 헌법에 있다고 실제로 현실에서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노인들 스스로 찾아 자구책(自救策)을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인 연령을 높여 노인 숫자를 줄이고, 정년을 늘리고,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의 임대주택은 분양 대기주택”
— 부영이 공급한 주택 30만 채 가운데 임대주택이 23만 채로 압도적입니다. 부영은 초기 삼신엔지니어링으로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임대주택 사업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임대주택 사업은 일반 아파트 분양과 달리 큰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미분양 위험이 낮아 상대적으로 사업 리스크가 적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융자를 해주었고요.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각종 이윤을 제한해 수익성이 떨어지고, 서민주택에 대해 가장 많이 안다는 저 자신도 민원이 늘면서 길을 잘못 들었나 고민하며 걷던 길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 현재는 부영그룹 정도만 임대주택 사업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건설사들이 임대주택 사업을 꺼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재의 임대주택은 분양 대기주택이 돼버렸어요. 5년 후에 분양받느냐, 10년 후에 분양받느냐의 차이뿐이죠. 분양 입주와 동시에 5년 후에 집을 사기로 약정하면, 실제 소유자인 입주자는 5년 동안 집의 질, 분양가를 가지고 건물주(건설사)와 싸울 것이고, 관(官)은 임차인 편을 듭니다. 그사이에 언론은 건설사가 입주자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보도를 하면 임대인인 건설사는 ‘나쁜 놈’이 됩니다. 처음에 여러 건설사가 임대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발을 빼고 나가버린 이유입니다.”
“영구 임대주택 30% 확대해야”
—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집을 구하면서 전세 제도를 보고 신기해합니다. 왜 우리나라만 이런 희귀한 주택 제도가 생겨났을까요.
“갑작스럽게 주택을 대량 보급하다 보니 정부에서 주택의 역사성에 대해 깊이 관찰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는 행정공무원의 입이 곧 법이 되어서 왜곡된 주택 문화가 형성됐다고 봅니다.”
— 회장님께선 국내 공급 주택의 30%를 영구 임대주택, 나머지는 분양해서 소유하는 주택으로 하자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외국의 경우, 20~30%가 영구 임대주택입니다. 현재는 관(官)에서 분양하는 영구 임대주택 2%를 빼면 영구 임대는 사실상 없습니다. 제 책 《임대주택정책론》(나남)에서도 주장했듯이 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 건설사들이 영구 임대주택을 지으면 거주만을 목적으로 하는 저렴한 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습니다. 민간과 공공 따질 것 없이 소유를 70%, 임대를 30%로 하는 게 적합하다고 봤습니다. 소유가 필요한 사람만 분양을 받고, 거주 목적인 사람은 영구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됩니다.”
— 부영의 아파트는 타워형과 다릅니다. 간혹 부영이 짓는 아파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어 호불호가 엇갈립니다.
“부영 아파트를 보면 판상형(板狀形)으로, 일반적으로 성냥갑 주택이라고 표현하지요. 타워형이라 부르는 탑상형(塔狀形)은 복도형이고, 판상형은 직각형입니다. 아파트의 원형(元型)이에요. 판상형은 직각이니까 건물 배치, 가구 배치 등 모든 면에서 면적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리고 통풍이 가장 용이해요. 저는 판상형을 계속 존중하고 계속 지을 생각입니다.”
‘세발자전거론’
— 회장님의 경영철학 ‘세발자전거론’은 ‘기업은 망하지 말고 존재해야 한다’는 안정 지향의 경영 스타일로 해석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세발자전거는 두발자전거보다 투박하지만 잘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정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업은 구성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의 의미가 있죠. 외환위기 때 ‘3사 보증 제도’가 있었는데, 하나가 부도가 나면 나머지 회사도 부도가 났습니다. 우리는 그룹 내 회사끼리 보증을 선 덕분에 유동성을 확보하고 회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 회장님께선 “부동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동산에다 거짓말하냐고 물어본 적은 없어요(웃음). 지금까지 부동산은 값이 매번 오르니까 상향적이었어요. 그런데 부동산이란 건 내려갈 때도 있는 거예요. 상·하향을 관리할 능력은 없고, 단지 오를 때 선택해 관리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잡지 《포브스코리아》 가 발표한 한국 50대 부자 순위(2017년 기준)에서 이중근 회장은 23억 달러(약 2조 6000억원)의 자산을 보유, 10위에 자리매김했다.
— 회장님께서는 1인 주주와 다름없는 부영 지분 대부분(93.79%)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부영을 상장할 계획은 없는지요.
“상장(上場)은 자금 조달이 목표인데, 상장하면 주주의 이익 또한 보호해 줘야 하고요. 그리고 현재 상장하라는 사람도 없어요.”
— 올해 85세신데요, 부영이란 큰 조직을 이끌어가시는데 건강상 큰 문제는 없으신가요. 휴일 없이 365일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쉬는 날 나와 평일 날 보지 못한 서류들을 보는데, 오히려 조용해서 마음이 편해요. 저는 놀러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한다고 칭찬해 주니 기분은 좋네요. 기업 승계 문제도 어디까지나 기업은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건설공사 인부들에게 아침 식사 제공
— 건설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예전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을 땐 인부들이 일일이 높은 곳까지 시멘트를 지고 날랐어요. 꼭두새벽부터. 새벽에 ‘노가다’ 나가는 남편에게 밥 차려주는 마누라가 별로 없어요. 인부들이 아침 거르고 시멘트 지고 높은 데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데 다리가 휘청휘청거려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바(건설 현장에 마련된 식당)’에서 인부들 아침 식사를 제공하게끔 했죠.”
이중근 회장은 전남 순천 운평리 죽동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회장은 2023년 고향 운평리 마을주민 280명에게 1인당 2600만원부터 최대 1억원을 개인 통장으로 지급했다. 초·중·고교 동창생·군동기·군전우에게도 1억원씩 전달하면서 고향을 지켜준 것에 감사를 표시했다.
6·25 전쟁 참전용사들에게는 전쟁 관련 도서 1000만 부 이상과 ‘영웅 제복’을 증정하고, 공군에서 운영하는 ‘하늘사랑 장학재단’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이 회장은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지에 버스 2100대 등을 기부하며 라오스 명예시민권(외국인 최초)을 받은 데 이어 캄보디아에서는 왕국 최고훈장인 국가유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의 기부는 다방면으로 이어져 기부 총액이 약 1조2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자타 공인 ‘기부왕’이신데요, 처음 기부를 시작하셨을 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처음에 임대아파트를 시작하는데, 임대아파트가 대개 도시 변두리에 있잖아요. 도시 변두리면 가장 필요한 게 학교인데, 초등학교를 지어주면 아파트가 잘 팔려서 초등학교는 기부하고, 아파트는 팔아서 이익을 보는 식으로 공생(共生)했습니다(웃음). 이렇게 기부와 연을 맺었습니다.”
“유엔데이를 공휴일로”
— 회장님께선 전국에 100여 개가 넘는 초·중·고·대학에 ‘우정학사’라는 기숙사를 지어 기부하셨습니다. 아호 우정(宇庭)은 누가 지어주신 건가요.
“스스로 지었습니다. 예전 우진건설이란 건설업체를 갖고 있다가 그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부영을 세우면서 재기했지요. 집 우(宇)자가 집과 관련이 있고, 뜰 정(庭)자도 마당이니까 건설업체 대표로는 딱 어울리는 아호(雅號)라 생각했습니다.”
— 일각에선 기부할 때 개인적으로 현금이나 현물을 주는 것보다 공익재단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제 방식은 받는 사람의 이해(利害)를 직접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1억원을 받은 사람이 떡을 사 먹든지 무엇을 하든 자신의 판단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공익재단은 몇조를 어디에다 썼다고 결산결과를 발표하지만,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직접 돈을 쥐게 해줘야 직접 준 셈이 되지요. 제가 준 돈으로 돈을 모아 공동묘지에 있던 조상 산소를 새로 사서 정비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 유엔창설일은 1945년 10월 24일입니다. 이날이 ‘유엔데이’인데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하셨죠.
유엔군은 6·25 전쟁 때 195만 명이 참전해 4만803명 전사, 10만 명 부상, 8000명이 실종되는 큰 희생을 치렀다.
“제 취지는 그 고마움을 후대에 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60개국(16개국 전투 지원, 6개국 의료 지원, 38개국 물자 지원)이란 유엔 참전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외교적 자산’으로 삼자는 거죠. 유엔군은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 희생 위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유엔데이는 1950~1975년까지 공휴일로 제정돼 실행되다 북한이 1975년 유엔 산하 여러 기구에 가입하자 항의의 표시로 폐지한, 애초에 공휴일이었습니다.”
— 백선엽장군기념재단 고문으로 참여하시면서 창립에도 큰 기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백선엽(白善燁) 장군에 대한 인상은요.
“6·25전쟁전사편찬위원장으로 전쟁기념관에 계실 때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백선엽 장군께서 여수·순천 사건 때 토벌을 하러 제 고향인 순천시 서면 학구역(鶴口驛)에 오셔서 지휘하셨다고 했습니다. 순천시 서면의 학구는 구례-남원과 승주-주암-광주, 순천-광양으로 통하는 순천 북부의 주요 관문이라 여순 사건의 참화를 지독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군님께 ‘학구가 바로 제 고향입니다’라고 했더니 ‘아, 그래요?’라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반란군을 소탕하시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과거는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로 가는 축”

— 또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는 《6·25 전쟁 1129일》 등 5종의 역사서를 집필하셨습니다. 특히 《6·25 전쟁 1129일》은 많은 공을 들이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역사를 알리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과거는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로 가는 축(軸)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사실대로 알고 있어야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할 것이고요. 그래서 역사서를 펴내 보급한 겁니다.”
— 고(故) 김용복(金龍福) 영동농장 창업회장은 생전에 “돈은 분뇨와 같다. 움켜쥐면 썩고, 나누면 비료가 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회장님의 나눔 또한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만.
“김용복 회장을 어떻게 아세요? 그분이 생전에 쌀농사를 지었던 전남 강진의 70만 평 논이 제가 간척한 땅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눔’이란 모종판에서 모를 논에 옮겨 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종판에 그대로 놔두면 모가 어떻게 될까요. 적기(適期)에, 적지(適地)에 모를 심어야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지난해 10월 대한노인회장에 취임한 이중근(李重根·85) 부영그룹 회장은 “이 때문에 취임사에서 노인의 ‘법적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으로 높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며 “노인을 생산 연령에 편입시켜 노인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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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1일 이중근 신임 대한노인회장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9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취임 넉 달째인 이 회장은 현재 대한노인회 차원에서 본격적인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노인 인원의 파악과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장은 “노인 인구 1000만 명, 이분들이 대한노인회에 모두 가입해 있는 건 아니다”며 “개인 정보 보호 때문인데,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와 협의해 ‘노인 인구 데이터베이스’를 서둘러 구축해 1000만 명 노인을 서둘러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중근 회장은 서울 용산구 효창동 대한노인회 중앙회 사무실과는 별도로 부영 회장실과 인접한 부영태평빌딩에 대한노인회 분실을 마련해 신속하게 업무 처리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척이라 수시로 들러 현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며 “지난 연말 ‘인구 문제 릴레이 캠페인’에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의 지명을 받아 참여했고, 유정복(劉正福) 인천시장을 다음 참여자로 지목했다”고 했다.
‘어른다운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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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회장이 애장품인 ‘무진장(無盡藏)’ 액자 앞에서 뜻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준우 |
— 지난해 10월 21일 제19대 대한노인회장에 취임해 벌써 넉 달째입니다. 회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회장에 취임하신 만큼, 회원들이 ‘노인 문제 해결사’로 회장님께 거는 기대가 클 것 같습니다.
“노인들이 우리 사회의 ‘어른’ 역할을 하자는 뜻이에요. 제가 취임사에서 ‘어른다운 노인으로, 존경받는 노인으로, 후대를 생각하는 노인으로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고령 사회를 선도하는 어르신 단체로 노인회를 자리매김하겠다’고 말씀드린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제가 대한노인회 슬로건으로 정했습니다.”
— 현재 사회에서 ‘노인’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나요.
“문자 그대로 노인 같은 대우밖에 못 받고 있죠.”
— 노인의 법적 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높이자는 제안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정부 쪽에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한노인회에서 노인 연령 상향 이야기를 꺼내니까, 대단히 합당한 주장이라며 호응하고 있죠. 제 취임식에 총리를 비롯해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대표 대리, 서울시장도 참석했는데, 축사 과정에서 ‘일리 있는 이야기’라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경제력을 가진 ‘자조노인’으로”
— 생산 잔류 기간도 65세에서 75세로 10년 늘리면서 임금도 차등화하자고 제안하셨죠.
“정년 연장 첫해(65세)에는 정년 피크 임금의 40%를 받고, 1년에 2%씩 줄여나가 10년 후(75세)에는 20% 정도를 받도록 했어요. 노인들을 생산 활동에 10년간 더 종사할 수 있도록 고안했습니다. 노인들은 75세까지 무기력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경제력을 가진 ‘자조노인(自助老人)’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까지는 바라지 않고 호구(糊口)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사시다 가시는 게 최대의 ‘노인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정부와 구체적 정책 협의까지 진행하고 있나요.
“보건복지부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복지부에선 노인 연령 상향뿐만 아니라 정년 연장까지 같이 묶어서 다루려고 해요.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기초연금 수령 연령도 65세에서 70세로 바꾸려고 손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 노인 관련 정책들을 손보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 노인분들은 국가와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정작 1988년 시행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해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기초연금의 혜택을 받아 ‘가뭄의 단비’처럼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노인 연령을 75세로 올리면 기초연금 수혜가 늦춰지는 건 아닐까요.
“보건복지부에서 노인의 기준은 75세로 하고, 기초연금 수혜 연령은 현재 65세에서 70세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럼 노인분들은 기초연금을 5년 늦게 받는다고 불만을 가지실 수가 있는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월(月) 500만원 월급자가 정년을 10년 연장하는 혜택을 받으면, 65세에 기초연금 34만원을 받는 것보다 200만원(500만원의 40%)을 받는 게 훨씬 더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 부영그룹 차원에선 정년 연장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부영은 능력 임용 제도를 갖추고 있는데, 직원을 나이로 자르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정년을 연장해서라도 써야지요.”
일본의 ‘보급형 실버타운’
— 일본은 노인들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고령자 주거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요, 일본은 전국 어디를 가도 ‘사코주(サ高住·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 같은 저렴한 실버타운 주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노인 주거 시설 복안은 있는지요.
“일본의 실버타운이 성공한 것은 민간자본이 실버타운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세제(稅制) 등 현명한 정부의 정책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상위 1%가 운영한다는 도시형 프리미엄 실버타운 아니면 요양원으로 양극화된 우리나라에서 ‘실버주택 난민’이 넘쳐나는 것은 정책의 부재란 생각마저 듭니다. 주택 건설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급형 실버타운’ 건설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일본이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 우리보다 앞서 일본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노인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까마득한 선배’가 맞습니다. 일본의 벤치마킹할 만한 노인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개호(介護) 서비스나 주택 문제, 전반적인 관리 시스템 등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일본에선 노인들이 외로움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가는 일도 있다고 들었어요. 노인들의 가장 큰 적은 ‘생활고’와 ‘외로움’입니다. 2020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중 20%가 빈곤 속에 살고 있고, 한국은 일본의 두 배인 40.4%에 달합니다. 노인회 업무가 궤도에 오르면, 마을회관에서 노인들 급식사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께는 배달도 해드리고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낮에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하며 적적함도 덜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선조 때 5가구를 한 통씩 묶던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노인 관리에 적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 노인이 집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재가 임종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하셨지요.
“현재 핵가족화의 심화로 자녀들이 병든 부모를 요양원에 맡기는 바람에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태어날 때도 중요하지만, 돌아갈 때도 다 절차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 운명하는 순간에 손을 잡아드리며 지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난리통이 아님에도 요양원에 부모님을 보내 쓸쓸하게 운명해 ‘냉동 시체’로 가족에게 인계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요양원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처럼, 재가 간병인 예산을 만들어 노인들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임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을 꺼냈던 겁니다.”
— ‘재가 임종제’를 시행하려면 간호를 담당할 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캄보디아 등지에서 학교 인가를 받아 학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나 라오스는 필리핀이나 태국과 달리 남방계가 아니라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중국계입니다. 1966년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를 파독(派獨)했습니다. 파독 간호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고, 독일 정부에서도 간호사와 가족에 대해 취업을 지원하고 내국인과 같은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이때 번 돈을 몽땅 알돈으로 송금해 우리 경제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인구부 신설 서둘러야”
— 정부 부처에 인구부 신설도 취임식에서 언급하셨더군요.
“출생 지원과 노인 복지를 위한 정부 부처 설립을 위해 관계 기관과 협력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5월 정부는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를 대체할 인구부(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인구부는 저출생 관련 예산 사전심의 권한을 갖게 되고 부총리급으로 저고위에 비해 정책 실행력이 더 강화된 조직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왔죠. 그런데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출범이 불투명해 안타깝습니다.”
— 출산율 마이너스 시대가 되면 군대와 경찰을 외국인에게 맡겨야 할 수도 있겠네요.
“용병(傭兵)은 타국을 침략할 때나 쓰는 겁니다. 세계사를 보세요. 자국의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용병을 사용한 전례가 없어요. 자국의 국방은 자국민들이 해야 하는데, 인구가 소멸되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됩니다. 율곡(栗谷) 선생은 ‘시무 6조’를 선조(宣祖) 임금에게 올려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는데, 만약 10만 명이 양병되었더라면 임진왜란의 참화(慘禍)는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인구 정책 예비론’입니다. 인구는 오늘 낳아 내일 써먹을 수 없어요. 지금 부지런히 낳아도 20년 후에 어른이 됩니다. 국가가 이런 정책 마련을 위해 인구부를 서둘러 신설해야 한다는 겁니다.”
— 출생률이 떨어지는 현재 상황을 회장님께서는 국가 존립 위기로 판단하셨군요.
“산부인과 의사들은 손님이 줄어들고 학교는 학생수가 줄어 폐교한다고 아우성치지만, 이건 오히려 지엽적 문제고요, 더욱 심각한 것은 20년 후에는 군인과 경찰도 수입해야 하는 판인데…. 국가 존립이 어려워지잖아요.”
‘출산장려금 지급’ 각계 전파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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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이중근 회장은 2년 연속 총 98명에게 각 1억원씩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사진=부영그룹 |
“4년 치 행사를 두 차례에 걸쳐 한 것이지요. 사내 출산율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선 한 해 23만 명이 태어나는데, 가임여성(15~49세) 1명당 0.721명이에요. 출산장려금은 회사 내부적으로 이만하면 목표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지급할 계획입니다.”
— 부영의 출산장려금 지급이 타 기업에도 전파돼 ‘나비효과’가 일어났으면 합니다만.
“그랬으면 좋겠어요.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왔을 때, 전 국민이 일정(日政) 때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금 모으기 운동’을 했는데, 큰 성과를 거뒀지 않습니까. 부영의 ‘출산장려금 지급’도 ‘금 모으기 운동’처럼 다른 회사로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씀드립니다. 다른 기업들도 출산장려금 지급을 시작하고 있다는 긍정적 소식들도 들립니다만, 인센티브 금액을 1억원까지 주는 곳은 없더라고요.”
— 출산장려금을 1억원으로 정한 이유는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만족할 만한 금액이 1억원이었어요. 무엇보다 받는 사람이 만족감을 느끼는 절묘한 숫자더라고요(웃음).”
— 2024년 처음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실 때 장려금에 세금이 40%나 붙는 문제점이 있었다면서요.
“해당 사원에게 1억원을 지급하니 근로소득세로 잡혀 세금이 40%나 부과되더군요. 그래서 출생한 아이에게 주었더니 증여세로 10%를 내게 되고. 좋은 취지의 장려금인데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효과가 반감되는 느낌이라서 보건복지부와 국회의 도움을 받아 준 자와 받은 자가 비과세 혜택을 받도록 했습니다.”
최고령 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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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학위 수여식에서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공공 임대주택 관련 법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조선일보 |
“그럴 겁니다. 2004년엔 고려대에서 행정학 박사, 지난해엔 같은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유가 있어요. 제가 1972년 아파트를 건설할 때 국토건설부에서 전국의 모든 아파트를 허가해 줬습니다. 한데 이전에 봄에 개나리, 진달래 필 때 낸 신청서류가 가을 국화가 피어도 감감무소식인 거예요. 건설업체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죠. 매일 국토건설부에 가서 앉아 있거나 탄원서를 썼어요. 담당 공무원이 빙긋이 웃으며 들어오라 하더니 챙겨서 허가를 내주더구먼.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공무원이 조선의 원님과 백성 사이의 무급 아전(衙前)이란 걸 깨닫고 다시는 공무원들에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 회장님의 법학 박사 학위논문은 〈공공임대주택 관련 법의 위헌성 및 개선방안에 대한 헌법적 연구〉더군요. 장영수(張永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도하셨고요.
“법학 박사 논문은 공공 임대주택 관련 법의 위헌성을 연구한 것인데, 제가 워낙 많이 해본 임대사업을 소재로 한 것이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 법학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요.
“나름 법을 잘 지키려 했음에도 법정에 서게 됐으니 내가 무슨 법을 위반했는지 성찰하면서 법을 알고 싶었어요. 법을 공부해 보니 법은 챙기는 사람들에게나 법이지, 가만히 있는 사람은 보호해 주지 않더군요.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란 말보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금언이 더 생각났습니다. 법을 관리할 능력이 있어야 법의 혜택을 봅니다.”
— 헌법에 노인의 기본권은 어떻게 나옵니까.
“헌법 제34조 4항에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는 대목이 나와요. 헌법 제34~35조에는 노인 보호와 복지에 대해 잔뜩 써놨는데,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내용만 가득합니다. 헌법에 있다고 실제로 현실에서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노인들 스스로 찾아 자구책(自救策)을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인 연령을 높여 노인 숫자를 줄이고, 정년을 늘리고,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의 임대주택은 분양 대기주택”
— 부영이 공급한 주택 30만 채 가운데 임대주택이 23만 채로 압도적입니다. 부영은 초기 삼신엔지니어링으로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임대주택 사업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임대주택 사업은 일반 아파트 분양과 달리 큰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미분양 위험이 낮아 상대적으로 사업 리스크가 적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융자를 해주었고요.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각종 이윤을 제한해 수익성이 떨어지고, 서민주택에 대해 가장 많이 안다는 저 자신도 민원이 늘면서 길을 잘못 들었나 고민하며 걷던 길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 현재는 부영그룹 정도만 임대주택 사업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건설사들이 임대주택 사업을 꺼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재의 임대주택은 분양 대기주택이 돼버렸어요. 5년 후에 분양받느냐, 10년 후에 분양받느냐의 차이뿐이죠. 분양 입주와 동시에 5년 후에 집을 사기로 약정하면, 실제 소유자인 입주자는 5년 동안 집의 질, 분양가를 가지고 건물주(건설사)와 싸울 것이고, 관(官)은 임차인 편을 듭니다. 그사이에 언론은 건설사가 입주자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보도를 하면 임대인인 건설사는 ‘나쁜 놈’이 됩니다. 처음에 여러 건설사가 임대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발을 빼고 나가버린 이유입니다.”
“영구 임대주택 30% 확대해야”
—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집을 구하면서 전세 제도를 보고 신기해합니다. 왜 우리나라만 이런 희귀한 주택 제도가 생겨났을까요.
“갑작스럽게 주택을 대량 보급하다 보니 정부에서 주택의 역사성에 대해 깊이 관찰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는 행정공무원의 입이 곧 법이 되어서 왜곡된 주택 문화가 형성됐다고 봅니다.”
— 회장님께선 국내 공급 주택의 30%를 영구 임대주택, 나머지는 분양해서 소유하는 주택으로 하자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외국의 경우, 20~30%가 영구 임대주택입니다. 현재는 관(官)에서 분양하는 영구 임대주택 2%를 빼면 영구 임대는 사실상 없습니다. 제 책 《임대주택정책론》(나남)에서도 주장했듯이 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 건설사들이 영구 임대주택을 지으면 거주만을 목적으로 하는 저렴한 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습니다. 민간과 공공 따질 것 없이 소유를 70%, 임대를 30%로 하는 게 적합하다고 봤습니다. 소유가 필요한 사람만 분양을 받고, 거주 목적인 사람은 영구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됩니다.”
— 부영의 아파트는 타워형과 다릅니다. 간혹 부영이 짓는 아파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어 호불호가 엇갈립니다.
“부영 아파트를 보면 판상형(板狀形)으로, 일반적으로 성냥갑 주택이라고 표현하지요. 타워형이라 부르는 탑상형(塔狀形)은 복도형이고, 판상형은 직각형입니다. 아파트의 원형(元型)이에요. 판상형은 직각이니까 건물 배치, 가구 배치 등 모든 면에서 면적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리고 통풍이 가장 용이해요. 저는 판상형을 계속 존중하고 계속 지을 생각입니다.”
‘세발자전거론’
— 회장님의 경영철학 ‘세발자전거론’은 ‘기업은 망하지 말고 존재해야 한다’는 안정 지향의 경영 스타일로 해석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세발자전거는 두발자전거보다 투박하지만 잘 넘어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정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업은 구성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의 의미가 있죠. 외환위기 때 ‘3사 보증 제도’가 있었는데, 하나가 부도가 나면 나머지 회사도 부도가 났습니다. 우리는 그룹 내 회사끼리 보증을 선 덕분에 유동성을 확보하고 회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 회장님께선 “부동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동산에다 거짓말하냐고 물어본 적은 없어요(웃음). 지금까지 부동산은 값이 매번 오르니까 상향적이었어요. 그런데 부동산이란 건 내려갈 때도 있는 거예요. 상·하향을 관리할 능력은 없고, 단지 오를 때 선택해 관리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경제 잡지 《포브스코리아》 가 발표한 한국 50대 부자 순위(2017년 기준)에서 이중근 회장은 23억 달러(약 2조 6000억원)의 자산을 보유, 10위에 자리매김했다.
— 회장님께서는 1인 주주와 다름없는 부영 지분 대부분(93.79%)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부영을 상장할 계획은 없는지요.
“상장(上場)은 자금 조달이 목표인데, 상장하면 주주의 이익 또한 보호해 줘야 하고요. 그리고 현재 상장하라는 사람도 없어요.”
— 올해 85세신데요, 부영이란 큰 조직을 이끌어가시는데 건강상 큰 문제는 없으신가요. 휴일 없이 365일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쉬는 날 나와 평일 날 보지 못한 서류들을 보는데, 오히려 조용해서 마음이 편해요. 저는 놀러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한다고 칭찬해 주니 기분은 좋네요. 기업 승계 문제도 어디까지나 기업은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건설공사 인부들에게 아침 식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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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3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손싸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로부터 명예시민권을 받고 있다. 사진=부영그룹 |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예전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을 땐 인부들이 일일이 높은 곳까지 시멘트를 지고 날랐어요. 꼭두새벽부터. 새벽에 ‘노가다’ 나가는 남편에게 밥 차려주는 마누라가 별로 없어요. 인부들이 아침 거르고 시멘트 지고 높은 데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데 다리가 휘청휘청거려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바(건설 현장에 마련된 식당)’에서 인부들 아침 식사를 제공하게끔 했죠.”
이중근 회장은 전남 순천 운평리 죽동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회장은 2023년 고향 운평리 마을주민 280명에게 1인당 2600만원부터 최대 1억원을 개인 통장으로 지급했다. 초·중·고교 동창생·군동기·군전우에게도 1억원씩 전달하면서 고향을 지켜준 것에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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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4일 이중근 회장은 캄보디아의 국가 발전과 양국 간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캄보디아 훈센 총리로부터 국가유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사진=부영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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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공군 순직 조종사 유자녀를 지원하는 ‘하늘사랑 장학재단’ 기금으로 100억원을 기부했다. 사진=조선일보 |
— 자타 공인 ‘기부왕’이신데요, 처음 기부를 시작하셨을 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처음에 임대아파트를 시작하는데, 임대아파트가 대개 도시 변두리에 있잖아요. 도시 변두리면 가장 필요한 게 학교인데, 초등학교를 지어주면 아파트가 잘 팔려서 초등학교는 기부하고, 아파트는 팔아서 이익을 보는 식으로 공생(共生)했습니다(웃음). 이렇게 기부와 연을 맺었습니다.”
“유엔데이를 공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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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9일 유엔 참전용사들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사진=부영그룹 |
“스스로 지었습니다. 예전 우진건설이란 건설업체를 갖고 있다가 그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부영을 세우면서 재기했지요. 집 우(宇)자가 집과 관련이 있고, 뜰 정(庭)자도 마당이니까 건설업체 대표로는 딱 어울리는 아호(雅號)라 생각했습니다.”
— 일각에선 기부할 때 개인적으로 현금이나 현물을 주는 것보다 공익재단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제 방식은 받는 사람의 이해(利害)를 직접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1억원을 받은 사람이 떡을 사 먹든지 무엇을 하든 자신의 판단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공익재단은 몇조를 어디에다 썼다고 결산결과를 발표하지만,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직접 돈을 쥐게 해줘야 직접 준 셈이 되지요. 제가 준 돈으로 돈을 모아 공동묘지에 있던 조상 산소를 새로 사서 정비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 유엔창설일은 1945년 10월 24일입니다. 이날이 ‘유엔데이’인데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하셨죠.
유엔군은 6·25 전쟁 때 195만 명이 참전해 4만803명 전사, 10만 명 부상, 8000명이 실종되는 큰 희생을 치렀다.
“제 취지는 그 고마움을 후대에 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60개국(16개국 전투 지원, 6개국 의료 지원, 38개국 물자 지원)이란 유엔 참전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외교적 자산’으로 삼자는 거죠. 유엔군은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 희생 위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유엔데이는 1950~1975년까지 공휴일로 제정돼 실행되다 북한이 1975년 유엔 산하 여러 기구에 가입하자 항의의 표시로 폐지한, 애초에 공휴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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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대회’.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관진 이사장,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 명예이사장,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중근 부영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6·25전쟁전사편찬위원장으로 전쟁기념관에 계실 때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백선엽 장군께서 여수·순천 사건 때 토벌을 하러 제 고향인 순천시 서면 학구역(鶴口驛)에 오셔서 지휘하셨다고 했습니다. 순천시 서면의 학구는 구례-남원과 승주-주암-광주, 순천-광양으로 통하는 순천 북부의 주요 관문이라 여순 사건의 참화를 지독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군님께 ‘학구가 바로 제 고향입니다’라고 했더니 ‘아, 그래요?’라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반란군을 소탕하시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과거는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로 가는 축”

— 또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는 《6·25 전쟁 1129일》 등 5종의 역사서를 집필하셨습니다. 특히 《6·25 전쟁 1129일》은 많은 공을 들이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역사를 알리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과거는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로 가는 축(軸)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사실대로 알고 있어야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할 것이고요. 그래서 역사서를 펴내 보급한 겁니다.”
— 고(故) 김용복(金龍福) 영동농장 창업회장은 생전에 “돈은 분뇨와 같다. 움켜쥐면 썩고, 나누면 비료가 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회장님의 나눔 또한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만.
“김용복 회장을 어떻게 아세요? 그분이 생전에 쌀농사를 지었던 전남 강진의 70만 평 논이 제가 간척한 땅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눔’이란 모종판에서 모를 논에 옮겨 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종판에 그대로 놔두면 모가 어떻게 될까요. 적기(適期)에, 적지(適地)에 모를 심어야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