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집회: 7년의 기록〉 3월 개봉… 10만 관객 목표”
⊙ “박근혜 탄핵 결정문, 사실관계 절반이 틀려… 이쯤 되면 허위 공문서”
⊙ “젊은 세대,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드는 걸 깨닫는 중”
禹鍾昌
1957년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前 《조선일보》 《주간조선》 《월간조선》 기자·편집위원 / 現 유튜브 ‘우종창의 거짓과 진실’ 운영
⊙ “박근혜 탄핵 결정문, 사실관계 절반이 틀려… 이쯤 되면 허위 공문서”
⊙ “젊은 세대,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드는 걸 깨닫는 중”
禹鍾昌
1957년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前 《조선일보》 《주간조선》 《월간조선》 기자·편집위원 / 現 유튜브 ‘우종창의 거짓과 진실’ 운영
- 우종창 전 《월간조선》 기자(왼쪽)와 최석원 영화감독. 사진=월간조선
한국콘텐츠진흥원 상암분원 3층의 영화제작실. 두꺼운 암막(暗幕)커튼을 헤치고 들어가니 4~5평 남짓한 스튜디오가 나왔다. 우종창 전 《월간조선》 기자는 이곳에서 몇 달을 밤새워 일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영화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지난 2022년에는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이 펴낸 책 《대통령을 묻어버린 거짓의 산》 《어둠과 위선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리고 3월 개봉을 목표로 두 번째 영화 〈태극기 집회: 7년의 기록〉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위대한 침묵〉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의 부당성을 고발한 작품이라면, 〈태극기 집회〉는 태극기 집회의 전모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태극기 집회의 전개 과정과 현장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았다.
우 전 기자는 “1919년 기미(己未)년 3·1운동 때 태극기가 집회 현장에 처음 등장했다”며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다시 태극기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하는 태극기가 바로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영화의 주요 장면을 틀어주며 기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영화는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을 ‘애국 국민’ ‘자유 우파’로 표현했다. 우 전 기자는 “나는 ‘보수’ ‘진보’라는 용어 자체를 싫어한다. 좌파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했다”며 “종북 좌파 역시 진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선전·선동에 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유 우파 역시 공부를 해야 한다”며 “우린 자유민주주의에 살고 있지, 인민민주주의에 사는 게 아니다. 이런 용어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 전 기자는 어떤 이유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을까?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는 만들어졌을까? 2월 11일 우 전 기자, 최석원 영화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TB 분량 영상 자료를 80분으로 편집”
집회에 참여한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장면이 이어진다. 80분의 러닝타임은 7년간 이어진 태극기 집회 현장 모습으로 꽉 찼다. 서울, 대전, 춘천, 대구 등 전국 각지의 집회 현장을 차례로 담았다. 연단에 올라 연설한 참가자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국내 최초 여성 기상 캐스터인 이익선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차분하면서 신뢰감을 주는 어조로 영화에 힘을 더했다. 각본은 우 전 기자가 직접 썼다.
― 영화에 들어간 영상을 어떻게 모았습니까?
“탄핵기각 범국민대회(탄기국), 우리공화당, 여러 유튜버 등이 촬영한 당시 집회 영상을 모았죠. 알고 지내는 사진기자가 촬영한 영상 자료도 얻었고요. 영상 자료를 다 모아놓고 보니 2TB(테라바이트)가 넘더군요. 엄청난 양이었어요.”
― 영상 기록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화됐나요?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면을 뽑아 먼저 3시간 분량으로, 그리고선 다시 핵심을 간추려 100분 분량으로 압축했죠.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보통 100분을 넘기지 않으니까요. 제가 영상 편집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편집은 젊은 친구들에게 맡겼어요. 지난해 12월 초부터 최석원 감독과 함께 후반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음악과 믹싱 작업 중입니다.”
최 감독은 “감독으로서 객관적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우종창이 120을 주문했다면, 그중 20을 덜어내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이견 조율을 했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화를 보여줘 가며 조언을 구했고, 결국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했다”고 밝혔다.
― 당시를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여럿 있을 텐데, 굳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신문기자 출신이잖아요. 글로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한들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건 역시 종합 매체인 영화입니다. 좌파 진영에서는 촛불 집회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벌써 몇 개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자유 우파 쪽에선 이렇다 할 기록물이 없어요.”
‘아름다운 시간’ 7년의 생생한 기록
―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전부터 있었나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월간조선》 기자를 하면서 제작 감각은 익혔죠. 《월간조선》 기사는 PD 저널리즘 성격이 커요. 기사 길이도 길다 보니 글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어야 하고요. 기자로 일하며 받은 그런 교육 위에, 또 2017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직접 현장을 다니며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업로드하면서 영상에 대한 감각도 쌓았습니다.”
― 이번 영화의 메시지를 간추리면?
“자유 우파 애국 국민들이 오랜 기간 저항해 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집회가 시작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약 7년의 시간을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요?
“많이 들지 않았어요(웃음). 몇천만원 선이죠. 인건비 외엔 사실상 안 들었어요.”
― 금액 조달은 어떻게?
“거의 전액 사비로 충당했고,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부 투자를 받았습니다.”
― 지난 2022년 〈위대한 침묵〉의 흥행 성적은 어땠나요?
“극장 개봉까진 성공했지만, 관람객 수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웃음). 당시는 대통령 선거 분위기였고, 소위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결이 되다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잊힌 존재가 돼서 영화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이후 OTT에 올렸다가, 지금은 제 유튜브 채널에 무료로 공개해 놨습니다.”
― 이번 새 영화의 목표 관람객 수는?
“10만 명이요.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사실 매우 많은 수죠(웃음).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흥행이 아닌 기록이 목적이에요.”
“朴 탄핵은 거짓의 광풍”
우 전 기자는 이날 재킷 왼쪽에 파란 장미 모양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가 직접 만든 배지라고 한다. 파란 장미는 본래 자연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던 품종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신비로움이나 불가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지난 2004년 호주와 일본 연구진이 공동연구로 파란 장미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파란 장미의 꽃말은 ‘기적’이 됐다. 우 전 기자는 “좌파들이 세월호 배지를 단 것처럼 자유 우파 역시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파란 장미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짓의 광풍’에 빗댔다. 그는 “‘거짓의 광풍’이 휘몰아치는데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며 “헌재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탄핵은 인용됐다”고 했다.
―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보나요?
“결정문에 적힌 사실관계 절반이 틀렸습니다. 세게 말하면 박근혜 탄핵 결정문은 허위 공문서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법리(法理)를 적용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탄핵과 함께 대한민국 법치(法治)가 무너졌다고 저는 봅니다.”
― 박근혜라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보나요?
“이전에 국무총리 했던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박근혜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니 ‘무서운 여자’라고 하더군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쫓겨나죠. 1980년 신당동에 옮겨가 살다가 야인(野人) 생활을 시작했어요. 청바지를 입고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후보로 나가 당선됐습니다. 박근혜에게 박정희는 일종의 멍에였어요. 그걸 돌파해 내려고 야인으로 지낸 18년간 공부하며 내공을 쌓은 거예요.”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한다는 교훈 남겨”
― 당시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무식하다’ ‘불통이다’라고 비판하곤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통령 당선 뒤 국무회의 때 박근혜는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쭉 듣는 유형이었습니다. 중간에 간섭하거나 끼어들지 않고요. 위원들의 의견을 다 듣고 난 뒤 결론을 내줬는데 그게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무식하다느니 불통이니 하는 소리는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 혹은 교훈이 있다면?
“소위 ‘인민재판식’ 재판으로 한때 우리 사회를 미치게 했다는 거죠. 동시에,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교훈도 남겼습니다. 여전히 좌파들은 선전 선동을 무기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과거 광우병 선동부터, 최근엔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이 대표적이죠. 지금은 좌파들도 미국산 쇠고기 잘 먹고 수산물 잘 먹잖아요.”
― 우리 국민이 선전 선동을 구별하는 역량이 나아졌다고 보나요?
“글쎄요. 그걸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개인의 판단이니 뭐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탄핵 찬성 비율은 줄어들고 있고요.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 변화의 조짐이 뚜렷해요. ‘공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인데,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드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도 그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를 예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헌재가 어떤 결과를 내놓든 간에 윤 대통령 자신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생각해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형사재판 소재로 극영화도 만들 것”
〈태극기 집회: 7년의 기록〉 끄트머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7000~8000명 됨직한 집회 참가자 명단이 엔딩 크레딧같이 올라간다. 이어 집회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5명의 참가자와 고(故)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를 추모하는 글로 영화는 끝난다.
― 개봉일은 언제쯤으로 잡았나요?
“믹싱 등 최종 작업이 마무리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영상물과 시나리오를 보내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심의 결과가 나오면 영화관 개봉을 해도 아무 탈이 없다는 뜻이죠. 그 일정을 3월 초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쯤 용산 CGV에서 시사회도 가질 예정이에요.”
― 배급사 없이 개봉 준비를 직접 하나요?
“그렇죠. 제가 직접 뛰고 있습니다. CGV, 롯데시네마 등 여러 극장가 홍보팀과 접촉해 배급을 문의할 계획입니다.”
― 3월쯤이면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올 텐데, 이번 영화 역시 정치 현안에 묻혀 관심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상관없습니다. 앞서 밝혔듯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기록을 남기겠다는 게 목적이니까요. 영화가 다 만들어지는 대로 공개할 생각입니다.”
― 이후로도 영화를 만들 계획이 더 있습니까?
“네. 다음은 박근혜 탄핵과 형사재판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번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죠. 이미 시나리오까지 다 만들어놨어요. 제목은 〈파란 장미〉가 될 겁니다. 또 판문점 도끼 만행(1976년) 사건을 소재로도 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영화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지난 2022년에는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이 펴낸 책 《대통령을 묻어버린 거짓의 산》 《어둠과 위선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리고 3월 개봉을 목표로 두 번째 영화 〈태극기 집회: 7년의 기록〉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위대한 침묵〉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의 부당성을 고발한 작품이라면, 〈태극기 집회〉는 태극기 집회의 전모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태극기 집회의 전개 과정과 현장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았다.
우 전 기자는 “1919년 기미(己未)년 3·1운동 때 태극기가 집회 현장에 처음 등장했다”며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다시 태극기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하는 태극기가 바로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영화의 주요 장면을 틀어주며 기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영화는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을 ‘애국 국민’ ‘자유 우파’로 표현했다. 우 전 기자는 “나는 ‘보수’ ‘진보’라는 용어 자체를 싫어한다. 좌파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했다”며 “종북 좌파 역시 진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선전·선동에 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유 우파 역시 공부를 해야 한다”며 “우린 자유민주주의에 살고 있지, 인민민주주의에 사는 게 아니다. 이런 용어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 전 기자는 어떤 이유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을까?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는 만들어졌을까? 2월 11일 우 전 기자, 최석원 영화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TB 분량 영상 자료를 80분으로 편집”
집회에 참여한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장면이 이어진다. 80분의 러닝타임은 7년간 이어진 태극기 집회 현장 모습으로 꽉 찼다. 서울, 대전, 춘천, 대구 등 전국 각지의 집회 현장을 차례로 담았다. 연단에 올라 연설한 참가자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국내 최초 여성 기상 캐스터인 이익선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차분하면서 신뢰감을 주는 어조로 영화에 힘을 더했다. 각본은 우 전 기자가 직접 썼다.
― 영화에 들어간 영상을 어떻게 모았습니까?
“탄핵기각 범국민대회(탄기국), 우리공화당, 여러 유튜버 등이 촬영한 당시 집회 영상을 모았죠. 알고 지내는 사진기자가 촬영한 영상 자료도 얻었고요. 영상 자료를 다 모아놓고 보니 2TB(테라바이트)가 넘더군요. 엄청난 양이었어요.”
― 영상 기록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화됐나요?
“중요하고 역사적인 장면을 뽑아 먼저 3시간 분량으로, 그리고선 다시 핵심을 간추려 100분 분량으로 압축했죠.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보통 100분을 넘기지 않으니까요. 제가 영상 편집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편집은 젊은 친구들에게 맡겼어요. 지난해 12월 초부터 최석원 감독과 함께 후반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음악과 믹싱 작업 중입니다.”
최 감독은 “감독으로서 객관적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우종창이 120을 주문했다면, 그중 20을 덜어내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이견 조율을 했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화를 보여줘 가며 조언을 구했고, 결국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했다”고 밝혔다.
― 당시를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여럿 있을 텐데, 굳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신문기자 출신이잖아요. 글로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한들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건 역시 종합 매체인 영화입니다. 좌파 진영에서는 촛불 집회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벌써 몇 개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자유 우파 쪽에선 이렇다 할 기록물이 없어요.”
‘아름다운 시간’ 7년의 생생한 기록
![]() |
2017년 1월 21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등 보수 단체와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서울 광화문 시청광장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월간조선》 기자를 하면서 제작 감각은 익혔죠. 《월간조선》 기사는 PD 저널리즘 성격이 커요. 기사 길이도 길다 보니 글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어야 하고요. 기자로 일하며 받은 그런 교육 위에, 또 2017년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직접 현장을 다니며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업로드하면서 영상에 대한 감각도 쌓았습니다.”
― 이번 영화의 메시지를 간추리면?
“자유 우파 애국 국민들이 오랜 기간 저항해 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집회가 시작된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약 7년의 시간을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 제작비는 어느 정도 들었나요?
“많이 들지 않았어요(웃음). 몇천만원 선이죠. 인건비 외엔 사실상 안 들었어요.”
― 금액 조달은 어떻게?
“거의 전액 사비로 충당했고,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부 투자를 받았습니다.”
― 지난 2022년 〈위대한 침묵〉의 흥행 성적은 어땠나요?
“극장 개봉까진 성공했지만, 관람객 수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웃음). 당시는 대통령 선거 분위기였고, 소위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결이 되다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잊힌 존재가 돼서 영화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이후 OTT에 올렸다가, 지금은 제 유튜브 채널에 무료로 공개해 놨습니다.”
― 이번 새 영화의 목표 관람객 수는?
“10만 명이요.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사실 매우 많은 수죠(웃음).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흥행이 아닌 기록이 목적이에요.”
“朴 탄핵은 거짓의 광풍”
우 전 기자는 이날 재킷 왼쪽에 파란 장미 모양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가 직접 만든 배지라고 한다. 파란 장미는 본래 자연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던 품종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신비로움이나 불가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지난 2004년 호주와 일본 연구진이 공동연구로 파란 장미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파란 장미의 꽃말은 ‘기적’이 됐다. 우 전 기자는 “좌파들이 세월호 배지를 단 것처럼 자유 우파 역시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파란 장미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짓의 광풍’에 빗댔다. 그는 “‘거짓의 광풍’이 휘몰아치는데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며 “헌재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탄핵은 인용됐다”고 했다.
―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보나요?
“결정문에 적힌 사실관계 절반이 틀렸습니다. 세게 말하면 박근혜 탄핵 결정문은 허위 공문서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법리(法理)를 적용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탄핵과 함께 대한민국 법치(法治)가 무너졌다고 저는 봅니다.”
― 박근혜라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보나요?
“이전에 국무총리 했던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박근혜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니 ‘무서운 여자’라고 하더군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쫓겨나죠. 1980년 신당동에 옮겨가 살다가 야인(野人) 생활을 시작했어요. 청바지를 입고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후보로 나가 당선됐습니다. 박근혜에게 박정희는 일종의 멍에였어요. 그걸 돌파해 내려고 야인으로 지낸 18년간 공부하며 내공을 쌓은 거예요.”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한다는 교훈 남겨”
― 당시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무식하다’ ‘불통이다’라고 비판하곤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통령 당선 뒤 국무회의 때 박근혜는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쭉 듣는 유형이었습니다. 중간에 간섭하거나 끼어들지 않고요. 위원들의 의견을 다 듣고 난 뒤 결론을 내줬는데 그게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무식하다느니 불통이니 하는 소리는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죠.”
―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 혹은 교훈이 있다면?
“소위 ‘인민재판식’ 재판으로 한때 우리 사회를 미치게 했다는 거죠. 동시에,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교훈도 남겼습니다. 여전히 좌파들은 선전 선동을 무기로 정권을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과거 광우병 선동부터, 최근엔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이 대표적이죠. 지금은 좌파들도 미국산 쇠고기 잘 먹고 수산물 잘 먹잖아요.”
― 우리 국민이 선전 선동을 구별하는 역량이 나아졌다고 보나요?
“글쎄요. 그걸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개인의 판단이니 뭐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탄핵 찬성 비율은 줄어들고 있고요.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 변화의 조짐이 뚜렷해요. ‘공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인데,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려 드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도 그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를 예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헌재가 어떤 결과를 내놓든 간에 윤 대통령 자신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생각해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형사재판 소재로 극영화도 만들 것”
〈태극기 집회: 7년의 기록〉 끄트머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7000~8000명 됨직한 집회 참가자 명단이 엔딩 크레딧같이 올라간다. 이어 집회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5명의 참가자와 고(故)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를 추모하는 글로 영화는 끝난다.
― 개봉일은 언제쯤으로 잡았나요?
“믹싱 등 최종 작업이 마무리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영상물과 시나리오를 보내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심의 결과가 나오면 영화관 개봉을 해도 아무 탈이 없다는 뜻이죠. 그 일정을 3월 초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쯤 용산 CGV에서 시사회도 가질 예정이에요.”
― 배급사 없이 개봉 준비를 직접 하나요?
“그렇죠. 제가 직접 뛰고 있습니다. CGV, 롯데시네마 등 여러 극장가 홍보팀과 접촉해 배급을 문의할 계획입니다.”
― 3월쯤이면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올 텐데, 이번 영화 역시 정치 현안에 묻혀 관심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상관없습니다. 앞서 밝혔듯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기록을 남기겠다는 게 목적이니까요. 영화가 다 만들어지는 대로 공개할 생각입니다.”
― 이후로도 영화를 만들 계획이 더 있습니까?
“네. 다음은 박근혜 탄핵과 형사재판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번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죠. 이미 시나리오까지 다 만들어놨어요. 제목은 〈파란 장미〉가 될 겁니다. 또 판문점 도끼 만행(1976년) 사건을 소재로도 영화를 만들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