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리스펙트 런 참가자들이 출발선에서 출발 총성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월간조선
마지막 3km는 무슨 생각으로 달렸는지 모르겠다. 입술을 적시는 짭짤한 땀을 삼키며 앞만 보고 달리니 어느 순간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기자는 지난 10월 26일 국가보훈부·《동아일보》가 주최한 ‘2024 리스펙트 런’ 10km 부문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군인·경찰·소방관·교정직 공무원(교도관) 등 제복 근무자를 응원한다는 취지로 하남 미사 경정공원에서 열렸다. ‘대한민국 국민 5175만 명이 1년 365일 뛰는 제복 근무자를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5175명의 참가자와 1365명의 제복 근무자가 함께 달렸다. 수익금(참가비) 일부가 국가유공자의 생활 안정과 예우 사업, 노후·재활 지원 등에 사용된다고 하니 의미 또한 컸다.
기자는 그간 꾸준히 5~7km를 운동 삼아 달려왔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대회에 참가해 전국의 러너들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다. 군 복무 기간 특급 전사를 따낸 만큼 달리기엔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그렇게 참가한 생애 첫 마라톤 대회. 출발선 앞에 서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대기선 앞에 빼곡히 자리한 참가자 모두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축하 인사를 위해 현장을 찾은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10km 뛰는 정도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뛰어야 해요. 이 정도 뛰는데 물을 마신다면 연습을 덜 한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참가자들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총성이 울렸다. 미사 경정공원을 찾은 나들이객들은 달리기 행렬을 향해 “파이팅” “조심히 뛰세요” 같은 응원의 말을 건넸다.
42분38초, 전체 76위
기자는 당초 6km 지점까지 1km당 4분20초대 페이스를 유지하고, 이후 4km 구간에 페이스를 올려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초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두 걸음 내달릴 때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두 걸음 내달릴 때마다 입으로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리듬에 맞춰 달리니 빠르게 호흡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 덕에 6km까지 4분 초반대를 유지하며 예상보다 빠른 기록을 유지했다. 그사이 앞서 출발한 러너 여럿을 제치고 선두권까지 치고 나갔다. 공원을 달리며 한껏 무르익은 가을을 감상하는 것도 이날의 또 다른 재미였다.
그러나 초반 레이스 컨디션이 좋으면 그건 오버 페이스라는 마라톤 격언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평소 7km 이상은 연습하지 않아서일까, 이후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스 후반부에 접어들자 몇몇 러너가 기자를 제치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은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발걸음 내딛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만 갔다. 그럼에도 젖 먹던 힘을 다해 이들을 쫓아가려 애썼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서 기록을 확인했다. 42분38초. 1km당 4분15초 페이스였다. 목표했던 42분 언더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그렇다고 마냥 아쉬운 기록도 아니었다. 이날 기자의 순위는 전체 76위였다. 10km 부문 1위 수상자는 결승 테이프를 33분25초에 끊었다. 아마추어 레벨에선 최고 수준의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엘리트 선수들은 10km를 28~29분대에 주파하며, 일반인 참가자의 경우 33~35분대에서 우승이 결정되는 편이라고 한다.
꾸준한 연습은 당연하고, 체계적인 레이스 전략 수립과 페이스 조절의 중요성을 깨달은 대회였다. 어느 분야든 세상엔 고수가 많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내년 봄 대회를 기약해 본다.
러닝, 운동 넘어 문화로
최근 전 국민 러닝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10명 내외씩 ‘러닝 크루’를 결성해 퇴근 후 도심을 달리기도 한다. 오후 8~9시쯤 한강 공원이나 광화문 광장 등에 나가보면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대회 역시 참가자 대다수가 젊은 층이었다. 또 러닝 크루 멤버가 다 같이 대회에 참가했는지 그룹을 지어 달리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SNL〉 등 예능 프로그램에선 러닝 크루를 흡사 ‘동물의 왕국’처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했다.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청춘 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러닝 크루에 가입한다는 걸 풍자했다. 어찌 됐든 러닝 열풍이 부는 건 그 자체로 고무적인 일이다. 개인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미래 건강 비용까지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아침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달리는 것은, 내가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년간 끊임없이 달리며 내 신체와 정신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강화되고 형성돼 왔다고 생각한다.” 노년에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달리기라고 하루키는 강조한다.
튼튼한 러닝화 한 켤레만 있으면 되니 다른 종목에 비해 비용도 저렴하다. 언제 어디서든 운동이 가능하니 진입 문턱 또한 낮다. 혼자든 여럿이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란 점도 장점이다. 무르익은 가을도 지나고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날이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집 앞 공원을 트랙 삼아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기자는 지난 10월 26일 국가보훈부·《동아일보》가 주최한 ‘2024 리스펙트 런’ 10km 부문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군인·경찰·소방관·교정직 공무원(교도관) 등 제복 근무자를 응원한다는 취지로 하남 미사 경정공원에서 열렸다. ‘대한민국 국민 5175만 명이 1년 365일 뛰는 제복 근무자를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5175명의 참가자와 1365명의 제복 근무자가 함께 달렸다. 수익금(참가비) 일부가 국가유공자의 생활 안정과 예우 사업, 노후·재활 지원 등에 사용된다고 하니 의미 또한 컸다.
기자는 그간 꾸준히 5~7km를 운동 삼아 달려왔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대회에 참가해 전국의 러너들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다. 군 복무 기간 특급 전사를 따낸 만큼 달리기엔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그렇게 참가한 생애 첫 마라톤 대회. 출발선 앞에 서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대기선 앞에 빼곡히 자리한 참가자 모두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축하 인사를 위해 현장을 찾은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10km 뛰는 정도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뛰어야 해요. 이 정도 뛰는데 물을 마신다면 연습을 덜 한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참가자들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총성이 울렸다. 미사 경정공원을 찾은 나들이객들은 달리기 행렬을 향해 “파이팅” “조심히 뛰세요” 같은 응원의 말을 건넸다.
42분38초, 전체 7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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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km 마라톤을 완주한 뒤 기자가 받은 메달. 사진=월간조선 |
그러나 초반 레이스 컨디션이 좋으면 그건 오버 페이스라는 마라톤 격언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평소 7km 이상은 연습하지 않아서일까, 이후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스 후반부에 접어들자 몇몇 러너가 기자를 제치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은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발걸음 내딛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만 갔다. 그럼에도 젖 먹던 힘을 다해 이들을 쫓아가려 애썼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서 기록을 확인했다. 42분38초. 1km당 4분15초 페이스였다. 목표했던 42분 언더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그렇다고 마냥 아쉬운 기록도 아니었다. 이날 기자의 순위는 전체 76위였다. 10km 부문 1위 수상자는 결승 테이프를 33분25초에 끊었다. 아마추어 레벨에선 최고 수준의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엘리트 선수들은 10km를 28~29분대에 주파하며, 일반인 참가자의 경우 33~35분대에서 우승이 결정되는 편이라고 한다.
꾸준한 연습은 당연하고, 체계적인 레이스 전략 수립과 페이스 조절의 중요성을 깨달은 대회였다. 어느 분야든 세상엔 고수가 많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내년 봄 대회를 기약해 본다.
러닝, 운동 넘어 문화로
최근 전 국민 러닝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10명 내외씩 ‘러닝 크루’를 결성해 퇴근 후 도심을 달리기도 한다. 오후 8~9시쯤 한강 공원이나 광화문 광장 등에 나가보면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대회 역시 참가자 대다수가 젊은 층이었다. 또 러닝 크루 멤버가 다 같이 대회에 참가했는지 그룹을 지어 달리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SNL〉 등 예능 프로그램에선 러닝 크루를 흡사 ‘동물의 왕국’처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했다.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청춘 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러닝 크루에 가입한다는 걸 풍자했다. 어찌 됐든 러닝 열풍이 부는 건 그 자체로 고무적인 일이다. 개인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미래 건강 비용까지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아침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달리는 것은, 내가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년간 끊임없이 달리며 내 신체와 정신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강화되고 형성돼 왔다고 생각한다.” 노년에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달리기라고 하루키는 강조한다.
튼튼한 러닝화 한 켤레만 있으면 되니 다른 종목에 비해 비용도 저렴하다. 언제 어디서든 운동이 가능하니 진입 문턱 또한 낮다. 혼자든 여럿이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란 점도 장점이다. 무르익은 가을도 지나고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날이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집 앞 공원을 트랙 삼아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