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거친 환경에서 성장… 무한영구동력 사기와 달라
⊙ 루나‐테라 사태, 시장이 계속 성장하므로 수요 지속될 것이라는 취약한 가정에 기반
⊙ 하루인베스트 사건, 복잡한 금융 구조와 암호화폐 시장의 불투명한 규제가 결합
오태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 비트모빅 파운더 / 저서 《비트코인은 강했다》 《스마트콘트랙트 신뢰혁명》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메타버스와 돈의 미래》 《비트코인 그리고 달러의 지정학》 《더그레이트비트코인》
⊙ 루나‐테라 사태, 시장이 계속 성장하므로 수요 지속될 것이라는 취약한 가정에 기반
⊙ 하루인베스트 사건, 복잡한 금융 구조와 암호화폐 시장의 불투명한 규제가 결합
오태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 비트모빅 파운더 / 저서 《비트코인은 강했다》 《스마트콘트랙트 신뢰혁명》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메타버스와 돈의 미래》 《비트코인 그리고 달러의 지정학》 《더그레이트비트코인》
- 지난 3월 23일 몬테네그로 감옥에서 출감하는 루나–테라 사태 주범 권도형씨. 사진=EPA/ 연합
한국 사회가 유독 코인 산업에 대해서 비판적이며 폐쇄적이라면 그 이유는 2022년에 있었던 루나(LUNA)–테라(TerraUSD·UST) 사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테라 블록체인을 설계하고 운영했던 도권(Kwon Do·권도형)은 수천억 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生態系)를 구축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루나와 테라라는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탈(脫)중앙화된 금융의 미래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혁신적이라 여겨졌던 시스템은 불과 며칠 만에 붕괴했고, 도권은 해외로 도주했으며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투자자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도권은 2023년 3월에 가짜 신분증을 사용하려다 몬테네그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이후 현지에서 억류되었다. 현재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그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한국과 여러 국가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가 설계한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루나와 테라에 투자했던 수천 명의 개인 투자자들과 기관들은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었고, 일부는 극심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투자자들은 도권과 테라재단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으며,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도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암호화폐의 규제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촉발시키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무한영구동력’이라는 꿈
1980년대에 미국의 발명가 하워드 존슨(Howard Johnson)은 자석(磁石) 기반 무한(無限)동력 장치를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석의 자기력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모터는 외부 에너지원 없이 자석의 힘만으로 영구적으로 동작할 수 있으므로, 실현된다면 사실상 무한영구동력(無限永久動力·Perpetual Motion Machine)을 의미한다. 그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특허까지 획득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많은 과학자가 이 기술이 물리 법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기술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 발명이라고 주장하면서, 투자를 유치하고 자금을 모았다. 결국 이 장치는 실현 불가능한 발명품으로 판명되면서 투자자들은 손실을 입었다.
무한영구동력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다. 어떤 기계나 시스템도 외부에서의 에너지 공급 없이 영원히 움직일 수는 없다. 실제로는 아무리 정교한 메커니즘이라 해도 결국 에너지가 소진되거나 마찰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멈추게 된다. 그러나 끝없이 무한영구동력을 발명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리고 일견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기술이 끝없이 발전한다는 사실과 물리적·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불행히도 일반인이 이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기술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명가들은 자신이 만든 것을 대놓고 무한영구동력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이와 비슷한 환상적인 기술이라는 걸 내세워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려고 한다. 이런 일은 잊을 만하면 벌어지고 또 피해자를 양산한다.
금융의 무한영구동력
그래도 기계나 에너지 분야에서 무한영구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기술의 진위(眞僞)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금융 쪽에서는 무한영구동력과 비슷한 주장을 해도 한동안 지속이 가능하다. 2008년 금융위기와 루나–테라 사태 모두 일종의 금융 시스템에서 무한영구동력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은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있거나, 위험을 효과적으로 분산해 마치 무한히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착각을 기반으로 설계된 복잡한 금융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한영구동력이 불가능하듯이 금융에서도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고 수익을 계속해서 창출할 수 있는 영구적인 시스템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는 금융 상품을 통해 마치 위험이 없거나, 위험이 완전히 분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무한히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런 복잡한 설계가 없애는 것은 위험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인식일 뿐이지만,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마저도 한동안 기만당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기반으로 한 CDO(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 gation)와 MBS(모기지담보증권· Mortgage–Backed Securities) 같은 파생 상품은 위험이 분산되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있어 안전하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금융기관들은 여러 대출을 묶어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마치 기초 자산의 위험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특히 신용등급이 높게 평가된 CDO는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수익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CDS(Credit Default Swap)와 같은 신용부도스와프는 CDO의 리스크를 ‘보험’처럼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금융기관들은 이 위험 회피 장치로 인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초 자산인 서브프라임 대출이 부실해지자, 파생 상품의 복잡한 구조는 금융 시스템 전체에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스템 전반에 걸쳐 증폭된 상태에서 터져버린 셈이다.
금융상품 설계자조차 위험 인지 못 해
CDO나 CDS의 개념은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여러 개의 상품을 뒤섞고 다시 세분해서 파는 상품이자 이 상품을 보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품을 설계한 사람들조차 이 상품의 위험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CDO는 다양한 부채(주로 주택담보대출)를 묶어 트랜치라고 불리는 여러 등급의 투자 상품으로 나누었다. 이론적으로는 AAA 등급의 트랜치는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매우 위험한 자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CDO 설계자들은 자산을 다각화하면 리스크가 분산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초 자산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즉 주택 시장의 전반적인 붕괴가 일어나면, CDO 내 모든 자산이 동시에 손실을 입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CDS는 채무 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그 손실을 보전해 주는 일종의 보험 상품이었다. CDS의 설계자들은 이 상품이 CDO의 리스크를 상쇄시켜 준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기초 자산이 한꺼번에 부실해지면 CDS를 통해 손실을 보전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CDS의 약속을 이행할 기관들 자체가 망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상품과 위험한 상품을 뒤섞어서 분배하는 방식으로는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를 해결할 수 없음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파생 상품들은 결국 하나의 기초 자산에 의해 운명이 좌우된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투자자들도 같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같은 기초 자산을 같은 투자자들이 이름만 달리해 섞고 다시 분산해서 가진 뒤, 자신들은 다른 자산의 변동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은 셈이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줄 외부 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스크의 완전한 분산은 몽상
만약 국가의 국경선이 장벽으로서 자본의 교류를 완전히 차단해 한 나라의 금융이 위기에 빠질 것에 대비해서 다른 나라의 금융 상품과 섞을 수 있거나, 지구 경제와 무관한 화성 경제가 독립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고 지구와 화성 경제 간에 위험을 나눌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한다면 모를까,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지구 경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커다란 화성 경제가 없는 한 금융 상품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자산을 기초로 터 잡고 서 있으며, 투자하는 주체도 대략 비슷하다. 쉽게 말해 하나의 상품에서 발생한 위기가 전체 상품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차단할 수 없다는 말이며, 결국 리스크의 완벽한 분산은 몽상이라는 뜻이다.
파생 상품을 설계한 금융 공학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학적 모델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들은 극단적인 시장 변동성이나 연쇄적인 시스템 붕괴 같은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금융 공학자들이 사용한 수학적 모델은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으며, 시장 참여자들의 감정적 반응(예: 공포에 의한 대규모 매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아무리 복잡한 수학을 동원한다 할지라도 무한영구동력을 만들 수 없듯이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할 때, 쏠림으로부터 자산을 지킬 방법을 금융 공학으로는 만들 수 없었다.
신용평가기관들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CDO 상품은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AAA 등급을 부여받았고, 이는 투자자들에게 매우 안전한 상품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비현실적인 가정에 의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대규모로 부실화되자 신용평가 시스템도 부실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복잡할수록 믿음직스러운
금융 업계 내부에서는 금융 공학자들이 설계한 복잡한 상품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데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설계자들조차 이 상품들이 시장의 변동성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신뢰가 오히려 상품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상품을 만드는 이들은 신용평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금융 공학이 매우 믿을 만하다는 편견에 대해 신용평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론적으로 과감하게 도전할 수 없었다. 고등 수학을 동원한 복잡한 수식이기에 대단한 것이라 칭송하는 전문가 집단들이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가기관 종사자들이 함부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셈이다.
왜 갑자기 금융 얘기냐고 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전개한 논리가 고스란히 루나–테라 사태를 이해하는 데 적용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루나와 테라는 모두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운영되는 암호화폐다. 테라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설계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다양한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했다. 주로 디지털 자산을 거래하거나 탈중앙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빠른 트랜잭션 속도와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텐더민트(Tendermint)라는 합의 알고리즘과 Proof–of–Stake(지분 증명) 방식을 채택했다.
위 단락의 내용이나, 테라 블록체인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미국 달러와 1대 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 토큰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이다. UST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와의 교환 비율을 시스템 자체가 수학적 방법으로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즉 사람이나 기관이 아닌 수학적 알고리즘이 이를 보장했다.
UST는 루나 토큰과의 교환 메커니즘을 통해 가치가 유지되었다. UST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UST를 소각함으로써 공급을 줄이고, 대신 루나를 발행해 UST를 구입하게 했다. 반대로, UST의 가격이 1달러를 초과하면 UST를 발행해 공급을 늘리고, 그 발행된 UST로 루나를 구입했다. 이러한 과정은 UST의 가격이 1달러로 유지될 때까지 반복되었다.
이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나의 유통 방식이었다. 루나–테라 시스템은 UST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루나와 UST 간의 교환 메커니즘을 활용했는데,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루나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가 필수적이었다.
이 시스템이 설계될 당시, 재단과 개발자들은 암호화폐 생태계가 확장하는 데다 테라 블록체인이 성장하면서 루나의 사용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루나가 트랜잭션 수수료와 스테이킹 용도로 사용되며, UST의 가치 안정화를 위한 교환 수단으로 계속 필요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루나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 만약 루나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수요가 급감하게 된다면, 시스템 자체가 균형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다. 루나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 UST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더 많은 루나가 발행되었고, 이는 루나의 가격을 더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시스템은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를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라고 부른다.
루나–테라 시스템은 설계적으로 루나의 가격이 계속해서 유지되어야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는데, 시장에서 루나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이 시스템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UST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은 루나가 시장에 풀렸으며 가격이 더 하락했기 때문에 UST의 가격을 지지하지 못했다. 루나와 UST의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자산을 매도하면서 시스템은 결국 완전히 붕괴했다.
시장 심리 이해 못 해
루나–테라 시스템의 붕괴는 시장의 극단적인 변동성과 투자자들의 패닉 매도에 대비하지 못한 결과였다. 복잡한 수학 공식을 활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이 계속 성장해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취약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의 행동이 같아지는 동기화 현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루나–테라 사태는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부족한 기술주의자들이 무한영구동력을 만들었다고 착각한 데서 기인한 비극이었다.
실제 금융 시스템에서는 시장 심리나 패닉 매도와 같은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금융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안이지만, 루나–테라 재단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즉 루나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이 과도하게 많은 루나를 발행하게 되었고, 이는 더 큰 가격 폭락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죽음의 나선은 상품을 공개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이나 사고 실험을 통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문제다. 루나–테라 개발자들은 이를 과소평가했거나,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알고리즘이 시장 심리나 극단적 상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본질은 무한영구동력 사기 사건과 다를 바 없어
루나–테라 사태는 많은 전문가가 이미 위험성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혁신적인 시스템에 대한 기대와 이익에만 몰두한 결과, 이러한 경고가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금융 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패턴이 되었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시스템 설계를 투자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고,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 알고리즘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상당한 금융 및 기술적 지식이 필요했고, 이러한 복잡성 때문에 많은 투자자가 그저 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대중은 알고리즘의 이해 대신에 테라의 개발자들을 신뢰하는 길을 선택했다. 기술 쪽 경력이 화려한 이들이라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도권과 테라재단의 설계자들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 기존의 스테이블코인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자신하며,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비판들을 일축했다.
루나–테라 사태는 무한영구동력을 만들었다는 기술주의자들의 자만과 복잡한 수식으로 위험을 가린 시스템에 투자자들이 속아 넘어가 빚어낸 비극적 사건이다.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 기술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결국 이는 과거 금융사에서 자주 발생한 무한영구동력 개발 사기 사건과 다를 바 없었다. 복잡한 용어와 난해한 설명이 기술의 신뢰성을 높였으나, 그 이면에는 본질적인 리스크가 존재했다. 투자자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시스템의 안정성을 신뢰했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하루인베스트 사건도 루나–테라 사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루인베스트는 고객들에게 ‘무위험으로 안정적인 고수익’(최대 연 12%)을 제공하겠다고 홍보하며, 안정적인 이익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한 투자 전략을 사용하거나 자금을 잘못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6월, 갑작스럽게 출금이 중단되면서 약 1.1조원 규모의 자산이 사라졌고, 약 1만6000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사태 역시 복잡성과 무위험이라는 환상이 얽혀 있는 사례다.
하루인베스트는 ‘분산된 무위험 투자 기법’이라는 마케팅을 내세워 고객들에게 안정성과 신뢰를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 전략을 사용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와 위험성을 숨긴 결과,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리스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투자했다. 이는 루나–테라 사태와 마찬가지로,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이 위험을 가린 전형적인 사례다. 또한 ‘무위험’이라는 환상은 많은 투자자를 안심시키며, 그들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루인베스트 사기 사건의 비극
특히 하루인베스트는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을 강조하지 않고, 이를 충분히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결과 출금 중단과 함께 피해가 극대화되었고, 회사의 주요 임원들이 체포되며 사법 당국의 수사가 진행되었다. 복잡한 금융 구조가 위험을 감추고, 투자자들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수익을 기대하며 투자한 결과가 결국 큰 금융적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하루인베스트는 또한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신 업무를 수행했지만, 이러한 금융 활동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부의 금융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았다. 이는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하는 불법적 행위이며, 하루인베스트는 투자자들의 자산을 관리하면서도 법적 허가 없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가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안전한 투자라고 믿고 자산을 맡겼다.
암호화폐 시장은 전통 금융 시장과는 달리 빠르게 발전했고, 규제의 공백 속에서 성장해 왔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암호화폐 투자 플랫폼이 기존 금융기관과는 다른 규제 환경에서 운영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특히 하루인베스트는 암호화폐 예치 및 이자 서비스를 제공하며, 투자자들이 이 플랫폼이 정부의 엄격한 감독을 받는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플랫폼은 정부의 인가나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되었으며, 투자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산을 맡겼다. 투자자 중 상당수는 암호화폐 투자 플랫폼도 기존 금융기관처럼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하루인베스트와 같은 플랫폼은 이러한 규제의 공백을 이용해 운영되었고, 투자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규제는 불완전하거나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시장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경우가 많다.
결국 하루인베스트 사건은 복잡한 금융 구조와 암호화폐 시장의 불투명한 규제가 결합된 사례다. 투자자들은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고수익을 기대하며 투자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리스크는 큰 손실로 이어졌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 미비와 투자자들의 경각심 부족이 초래한 결과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무한영구동력의 반복이다. 위험 없이 12%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이 위험투성이인데 어떻게 세상을 상대로 하는 금융 상품이 위험 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위험을 짊어지고, 그 주체가 이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위험 없이 수익만 누리려는 투자자는 위험을 짊어진 주체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한다. 위험 없이 수익을 다 가져가려다가 결국 가장 위험한 투자에 내몰린 셈이다.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동정의 대상이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무한영구동력을 믿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기반으로 한 은행 등장하나
비트코인 예찬론자이자, 틈만 나면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한 은행 운영에 대한 뜻을 밝혔고, 대형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수탁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블랙록이나 피델리티 같은 기관들이 금융 자산을 보호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하며, 정부가 비트코인을 몰수할 것이라는 우려를 ‘편집증적인 크립토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발언은 암호화폐 업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세일러의 발언이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정신에 어긋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테린은 대형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수탁하는 것이 오히려 비트코인의 본질을 왜곡하고, 중앙집중화된 기관들이 암호화폐를 통제하게 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흥미롭게도 세일러는 과거에는 비트코인을 스스로 관리하는 ‘자체 보관(self–custody)’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최근에는 금융기관을 통한 자산 보호가 더 나은 방법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비트코인의 장점은 바로 완전한 자기 지배에 있다. 하지만 대형 금융 업체에 자산을 맡기면 이 특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비트코인 예찬론자들 사이에서 이런 논쟁이 나오는 이유는 비트코인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낯설고 심오한 비트코인은 단순하다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직접 비트코인 같은 고가(高價) 자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크다. 바로 이런 점을 노린 이들이 하루인베스트 같은 업자들이다. 그들은 대신 보관해 줄 뿐만 아니라, 두둑한 이자까지 준다고 제안한다. 비트코인의 탈중앙 정신인 자기 지배(통제)는 거창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비트코인 투자자가 이런 제안에 매력을 느낀다. 마이클 세일러의 입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루인베스트처럼 악의적인 업자들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정부가 관리하는 대형 금융기관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이든 틀린 것은 아니며,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대중은 의존적이고, 돈이 많을수록 나이가 많으며, 나이가 많을수록 과거에 친화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수탁은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문제는 무한영구동력 같은 금융 상품과 비트코인, 혹은 비트코인 파생 상품이 어떻게 다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일단, 비트코인은 단순하다. 비트코인이 어려운 이유는 구조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개념이 낯설고 심오하기 때문이다. 구조 자체는 매우 간결하다. 즉 고장 날 곳이 별로 없는 ‘관절이 적은 기계’다.
둘째, 비트코인은 무한영구동력은커녕 야생에서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Wild west(서부 개척 시대)’를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도, 사법부도, 정부도 없이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는 거친 환경 속에서 견디며 성장했다. 대신 투자자들에게 꼭 필요한 가격 안정은 포기했다.
즉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거친 환경에서 성장해 온 비트코인은 무한영구동력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10년 전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람들은 크게 성장할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하루아침에 투자 자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을 또렷하게 인지했다. 실제로 몇 주 사이에 70% 이상 가격이 하락하는 경험을 서너 번 했다.
비트코인과 무한영구동력
이런 비트코인의 속성은 금융기업들과 잘 맞는다. 금융기업들은 비트코인의 거친 속성을 관리하면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직접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금융기업들은 비트코인과 다른 자산을 섞어 위험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결국, 금융기업들은 비트코인의 거친 속성 덕분에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이나 관련 금융 상품에 투자하려는 독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무한영구동력은 없다. 높은 수익을 원한다면, 비트코인을 직접 구입해 스스로 보관해야 한다. 대신에 큰 가격 변동을 감내해야 한다. 금융기업들이 섞어서 만들어내는 파생 상품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할 수 있지만, 비트코인이 크게 오르더라도 그 이익을 온전히 가져가기는 어렵다. 평소에 위험을 짊어지는 금융기업이나 다른 투자자들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위험과 고수익을 동시에 좇는 일은 무한영구동력을 찾는 것처럼 막다른 골목일 뿐이다.⊙
피해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루나와 테라에 투자했던 수천 명의 개인 투자자들과 기관들은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었고, 일부는 극심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투자자들은 도권과 테라재단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으며, 암호화폐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도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고, 암호화폐의 규제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촉발시키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무한영구동력’이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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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무한영구동력 장치 설계도. 무한영구동력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
무한영구동력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다. 어떤 기계나 시스템도 외부에서의 에너지 공급 없이 영원히 움직일 수는 없다. 실제로는 아무리 정교한 메커니즘이라 해도 결국 에너지가 소진되거나 마찰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멈추게 된다. 그러나 끝없이 무한영구동력을 발명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리고 일견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기술이 끝없이 발전한다는 사실과 물리적·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불행히도 일반인이 이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기술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명가들은 자신이 만든 것을 대놓고 무한영구동력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이와 비슷한 환상적인 기술이라는 걸 내세워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려고 한다. 이런 일은 잊을 만하면 벌어지고 또 피해자를 양산한다.
금융의 무한영구동력
그래도 기계나 에너지 분야에서 무한영구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기술의 진위(眞僞)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금융 쪽에서는 무한영구동력과 비슷한 주장을 해도 한동안 지속이 가능하다. 2008년 금융위기와 루나–테라 사태 모두 일종의 금융 시스템에서 무한영구동력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은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있거나, 위험을 효과적으로 분산해 마치 무한히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착각을 기반으로 설계된 복잡한 금융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한영구동력이 불가능하듯이 금융에서도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고 수익을 계속해서 창출할 수 있는 영구적인 시스템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는 금융 상품을 통해 마치 위험이 없거나, 위험이 완전히 분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무한히 안전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런 복잡한 설계가 없애는 것은 위험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인식일 뿐이지만,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마저도 한동안 기만당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기반으로 한 CDO(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 gation)와 MBS(모기지담보증권· Mortgage–Backed Securities) 같은 파생 상품은 위험이 분산되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있어 안전하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금융기관들은 여러 대출을 묶어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마치 기초 자산의 위험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특히 신용등급이 높게 평가된 CDO는 투자자들에게 안전한 수익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CDS(Credit Default Swap)와 같은 신용부도스와프는 CDO의 리스크를 ‘보험’처럼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금융기관들은 이 위험 회피 장치로 인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초 자산인 서브프라임 대출이 부실해지자, 파생 상품의 복잡한 구조는 금융 시스템 전체에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스템 전반에 걸쳐 증폭된 상태에서 터져버린 셈이다.
금융상품 설계자조차 위험 인지 못 해
CDO나 CDS의 개념은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여러 개의 상품을 뒤섞고 다시 세분해서 파는 상품이자 이 상품을 보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품을 설계한 사람들조차 이 상품의 위험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CDO는 다양한 부채(주로 주택담보대출)를 묶어 트랜치라고 불리는 여러 등급의 투자 상품으로 나누었다. 이론적으로는 AAA 등급의 트랜치는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매우 위험한 자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CDO 설계자들은 자산을 다각화하면 리스크가 분산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초 자산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즉 주택 시장의 전반적인 붕괴가 일어나면, CDO 내 모든 자산이 동시에 손실을 입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CDS는 채무 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그 손실을 보전해 주는 일종의 보험 상품이었다. CDS의 설계자들은 이 상품이 CDO의 리스크를 상쇄시켜 준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기초 자산이 한꺼번에 부실해지면 CDS를 통해 손실을 보전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CDS의 약속을 이행할 기관들 자체가 망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상품과 위험한 상품을 뒤섞어서 분배하는 방식으로는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를 해결할 수 없음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파생 상품들은 결국 하나의 기초 자산에 의해 운명이 좌우된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투자자들도 같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같은 기초 자산을 같은 투자자들이 이름만 달리해 섞고 다시 분산해서 가진 뒤, 자신들은 다른 자산의 변동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은 셈이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줄 외부 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스크의 완전한 분산은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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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 9월 초 영국은행 노던룩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예금자들은 예금을 찾기 위해 몰려들었다. 사진=로이터/뉴시스 |
파생 상품을 설계한 금융 공학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학적 모델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들은 극단적인 시장 변동성이나 연쇄적인 시스템 붕괴 같은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금융 공학자들이 사용한 수학적 모델은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으며, 시장 참여자들의 감정적 반응(예: 공포에 의한 대규모 매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아무리 복잡한 수학을 동원한다 할지라도 무한영구동력을 만들 수 없듯이 사람들이 같은 선택을 할 때, 쏠림으로부터 자산을 지킬 방법을 금융 공학으로는 만들 수 없었다.
신용평가기관들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CDO 상품은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AAA 등급을 부여받았고, 이는 투자자들에게 매우 안전한 상품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비현실적인 가정에 의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대규모로 부실화되자 신용평가 시스템도 부실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복잡할수록 믿음직스러운
금융 업계 내부에서는 금융 공학자들이 설계한 복잡한 상품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데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설계자들조차 이 상품들이 시장의 변동성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신뢰가 오히려 상품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상품을 만드는 이들은 신용평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금융 공학이 매우 믿을 만하다는 편견에 대해 신용평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론적으로 과감하게 도전할 수 없었다. 고등 수학을 동원한 복잡한 수식이기에 대단한 것이라 칭송하는 전문가 집단들이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가기관 종사자들이 함부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셈이다.
왜 갑자기 금융 얘기냐고 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전개한 논리가 고스란히 루나–테라 사태를 이해하는 데 적용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루나와 테라는 모두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운영되는 암호화폐다. 테라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설계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다양한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했다. 주로 디지털 자산을 거래하거나 탈중앙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빠른 트랜잭션 속도와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텐더민트(Tendermint)라는 합의 알고리즘과 Proof–of–Stake(지분 증명) 방식을 채택했다.
위 단락의 내용이나, 테라 블록체인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미국 달러와 1대 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 토큰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이다. UST는 알고리즘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와의 교환 비율을 시스템 자체가 수학적 방법으로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즉 사람이나 기관이 아닌 수학적 알고리즘이 이를 보장했다.
UST는 루나 토큰과의 교환 메커니즘을 통해 가치가 유지되었다. UST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UST를 소각함으로써 공급을 줄이고, 대신 루나를 발행해 UST를 구입하게 했다. 반대로, UST의 가격이 1달러를 초과하면 UST를 발행해 공급을 늘리고, 그 발행된 UST로 루나를 구입했다. 이러한 과정은 UST의 가격이 1달러로 유지될 때까지 반복되었다.
이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나의 유통 방식이었다. 루나–테라 시스템은 UST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루나와 UST 간의 교환 메커니즘을 활용했는데,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루나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가 필수적이었다.
이 시스템이 설계될 당시, 재단과 개발자들은 암호화폐 생태계가 확장하는 데다 테라 블록체인이 성장하면서 루나의 사용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루나가 트랜잭션 수수료와 스테이킹 용도로 사용되며, UST의 가치 안정화를 위한 교환 수단으로 계속 필요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루나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에 큰 문제가 있었다. 만약 루나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수요가 급감하게 된다면, 시스템 자체가 균형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다. 루나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 UST의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더 많은 루나가 발행되었고, 이는 루나의 가격을 더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시스템은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를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라고 부른다.
루나–테라 시스템은 설계적으로 루나의 가격이 계속해서 유지되어야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는데, 시장에서 루나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이 시스템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UST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은 루나가 시장에 풀렸으며 가격이 더 하락했기 때문에 UST의 가격을 지지하지 못했다. 루나와 UST의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자산을 매도하면서 시스템은 결국 완전히 붕괴했다.
시장 심리 이해 못 해
루나–테라 시스템의 붕괴는 시장의 극단적인 변동성과 투자자들의 패닉 매도에 대비하지 못한 결과였다. 복잡한 수학 공식을 활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이 계속 성장해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취약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의 행동이 같아지는 동기화 현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루나–테라 사태는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부족한 기술주의자들이 무한영구동력을 만들었다고 착각한 데서 기인한 비극이었다.
실제 금융 시스템에서는 시장 심리나 패닉 매도와 같은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금융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안이지만, 루나–테라 재단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즉 루나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이 과도하게 많은 루나를 발행하게 되었고, 이는 더 큰 가격 폭락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죽음의 나선은 상품을 공개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이나 사고 실험을 통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문제다. 루나–테라 개발자들은 이를 과소평가했거나,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복잡한 알고리즘이 시장 심리나 극단적 상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본질은 무한영구동력 사기 사건과 다를 바 없어
루나–테라 사태는 많은 전문가가 이미 위험성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혁신적인 시스템에 대한 기대와 이익에만 몰두한 결과, 이러한 경고가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금융 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패턴이 되었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시스템 설계를 투자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고,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 알고리즘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상당한 금융 및 기술적 지식이 필요했고, 이러한 복잡성 때문에 많은 투자자가 그저 시스템이 작동할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대중은 알고리즘의 이해 대신에 테라의 개발자들을 신뢰하는 길을 선택했다. 기술 쪽 경력이 화려한 이들이라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도권과 테라재단의 설계자들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 기존의 스테이블코인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자신하며,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비판들을 일축했다.
루나–테라 사태는 무한영구동력을 만들었다는 기술주의자들의 자만과 복잡한 수식으로 위험을 가린 시스템에 투자자들이 속아 넘어가 빚어낸 비극적 사건이다.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 기술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결국 이는 과거 금융사에서 자주 발생한 무한영구동력 개발 사기 사건과 다를 바 없었다. 복잡한 용어와 난해한 설명이 기술의 신뢰성을 높였으나, 그 이면에는 본질적인 리스크가 존재했다. 투자자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시스템의 안정성을 신뢰했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하루인베스트 사건도 루나–테라 사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루인베스트는 고객들에게 ‘무위험으로 안정적인 고수익’(최대 연 12%)을 제공하겠다고 홍보하며, 안정적인 이익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험한 투자 전략을 사용하거나 자금을 잘못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6월, 갑작스럽게 출금이 중단되면서 약 1.1조원 규모의 자산이 사라졌고, 약 1만6000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사태 역시 복잡성과 무위험이라는 환상이 얽혀 있는 사례다.
하루인베스트는 ‘분산된 무위험 투자 기법’이라는 마케팅을 내세워 고객들에게 안정성과 신뢰를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 전략을 사용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와 위험성을 숨긴 결과,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리스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투자했다. 이는 루나–테라 사태와 마찬가지로,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이 위험을 가린 전형적인 사례다. 또한 ‘무위험’이라는 환상은 많은 투자자를 안심시키며, 그들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루인베스트 사기 사건의 비극
특히 하루인베스트는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을 강조하지 않고, 이를 충분히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결과 출금 중단과 함께 피해가 극대화되었고, 회사의 주요 임원들이 체포되며 사법 당국의 수사가 진행되었다. 복잡한 금융 구조가 위험을 감추고, 투자자들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수익을 기대하며 투자한 결과가 결국 큰 금융적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하루인베스트는 또한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신 업무를 수행했지만, 이러한 금융 활동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부의 금융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았다. 이는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하는 불법적 행위이며, 하루인베스트는 투자자들의 자산을 관리하면서도 법적 허가 없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가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안전한 투자라고 믿고 자산을 맡겼다.
암호화폐 시장은 전통 금융 시장과는 달리 빠르게 발전했고, 규제의 공백 속에서 성장해 왔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암호화폐 투자 플랫폼이 기존 금융기관과는 다른 규제 환경에서 운영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특히 하루인베스트는 암호화폐 예치 및 이자 서비스를 제공하며, 투자자들이 이 플랫폼이 정부의 엄격한 감독을 받는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플랫폼은 정부의 인가나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되었으며, 투자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산을 맡겼다. 투자자 중 상당수는 암호화폐 투자 플랫폼도 기존 금융기관처럼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하루인베스트와 같은 플랫폼은 이러한 규제의 공백을 이용해 운영되었고, 투자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규제는 불완전하거나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시장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경우가 많다.
결국 하루인베스트 사건은 복잡한 금융 구조와 암호화폐 시장의 불투명한 규제가 결합된 사례다. 투자자들은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고수익을 기대하며 투자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리스크는 큰 손실로 이어졌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 미비와 투자자들의 경각심 부족이 초래한 결과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무한영구동력의 반복이다. 위험 없이 12%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이 위험투성이인데 어떻게 세상을 상대로 하는 금융 상품이 위험 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위험을 짊어지고, 그 주체가 이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위험 없이 수익만 누리려는 투자자는 위험을 짊어진 주체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한다. 위험 없이 수익을 다 가져가려다가 결국 가장 위험한 투자에 내몰린 셈이다.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동정의 대상이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무한영구동력을 믿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기반으로 한 은행 등장하나
비트코인 예찬론자이자, 틈만 나면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한 은행 운영에 대한 뜻을 밝혔고, 대형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수탁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블랙록이나 피델리티 같은 기관들이 금융 자산을 보호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하며, 정부가 비트코인을 몰수할 것이라는 우려를 ‘편집증적인 크립토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발언은 암호화폐 업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세일러의 발언이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정신에 어긋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테린은 대형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수탁하는 것이 오히려 비트코인의 본질을 왜곡하고, 중앙집중화된 기관들이 암호화폐를 통제하게 될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흥미롭게도 세일러는 과거에는 비트코인을 스스로 관리하는 ‘자체 보관(self–custody)’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최근에는 금융기관을 통한 자산 보호가 더 나은 방법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비트코인의 장점은 바로 완전한 자기 지배에 있다. 하지만 대형 금융 업체에 자산을 맡기면 이 특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비트코인 예찬론자들 사이에서 이런 논쟁이 나오는 이유는 비트코인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낯설고 심오한 비트코인은 단순하다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직접 비트코인 같은 고가(高價) 자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크다. 바로 이런 점을 노린 이들이 하루인베스트 같은 업자들이다. 그들은 대신 보관해 줄 뿐만 아니라, 두둑한 이자까지 준다고 제안한다. 비트코인의 탈중앙 정신인 자기 지배(통제)는 거창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비트코인 투자자가 이런 제안에 매력을 느낀다. 마이클 세일러의 입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루인베스트처럼 악의적인 업자들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정부가 관리하는 대형 금융기관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이든 틀린 것은 아니며,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대중은 의존적이고, 돈이 많을수록 나이가 많으며, 나이가 많을수록 과거에 친화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수탁은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문제는 무한영구동력 같은 금융 상품과 비트코인, 혹은 비트코인 파생 상품이 어떻게 다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일단, 비트코인은 단순하다. 비트코인이 어려운 이유는 구조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개념이 낯설고 심오하기 때문이다. 구조 자체는 매우 간결하다. 즉 고장 날 곳이 별로 없는 ‘관절이 적은 기계’다.
둘째, 비트코인은 무한영구동력은커녕 야생에서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Wild west(서부 개척 시대)’를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도, 사법부도, 정부도 없이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는 거친 환경 속에서 견디며 성장했다. 대신 투자자들에게 꼭 필요한 가격 안정은 포기했다.
즉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거친 환경에서 성장해 온 비트코인은 무한영구동력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10년 전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람들은 크게 성장할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하루아침에 투자 자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을 또렷하게 인지했다. 실제로 몇 주 사이에 70% 이상 가격이 하락하는 경험을 서너 번 했다.
비트코인과 무한영구동력
이런 비트코인의 속성은 금융기업들과 잘 맞는다. 금융기업들은 비트코인의 거친 속성을 관리하면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직접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금융기업들은 비트코인과 다른 자산을 섞어 위험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결국, 금융기업들은 비트코인의 거친 속성 덕분에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이나 관련 금융 상품에 투자하려는 독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무한영구동력은 없다. 높은 수익을 원한다면, 비트코인을 직접 구입해 스스로 보관해야 한다. 대신에 큰 가격 변동을 감내해야 한다. 금융기업들이 섞어서 만들어내는 파생 상품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할 수 있지만, 비트코인이 크게 오르더라도 그 이익을 온전히 가져가기는 어렵다. 평소에 위험을 짊어지는 금융기업이나 다른 투자자들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위험과 고수익을 동시에 좇는 일은 무한영구동력을 찾는 것처럼 막다른 골목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