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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사람들

‘한강의 기적’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KOICA

“미래 세대 위해 일할 수 있다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글 : 손수원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ad21100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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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사업의 가장 끝단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박준우 UNDP DR콩고 국가사무소 현장사무소장)
⊙ “한국에서 박사 되어 네팔에서 선진 보건 정책 펼칠 것”(두르가 다타 차파게인 코이카 학위 연수 사업 연수생)
⊙ “아프리카의 많은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젊은 층”(쉘론 코부신게 르완다 소프트웨어 특성화고 졸업생)
르완다 ICT 혁신 센터의 교육생들. 사진=코이카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주요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대상국이었다. 6·25 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 규모는 약 17억 달러로 당시 우리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최빈국(最貧國)으로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로부터 도움 받던 우리나라는 이 원조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제 어엿한 공여국(供與國)으로서 다른 어려운 국가들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의 ODA 정책은 국제사회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연대(連帶)와 협력을 통해 더욱 나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이를 위해 1991년 4월 1일, 대한민국 대외무상원조 전담기관인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출범했다.
 
  코이카의 역할은 인도적 지원, 경제적 개발 협력, 기술 이전, 역량 강화 등 다양하다. 코이카를 통해 현장에서 직접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기구, 사회적 기업, 공공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프리카 ODA 최전선에 선 박준우 UNDP DR콩고 국가사무소 현장소장
 
박준우 UNDP DR콩고 국가사무소 현장사무소장(왼쪽).
  “혜택 돌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 고민”
 
  콩고민주공화국(이하 DR콩고)은 아프리카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아프리카의 심장’으로 불린다. 박준우 유엔개발계획(UNDP) DR콩고 국가사무소 현장사무소장은 코이카 해외봉사단부터 시작해 국제기구 정직원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10년을 보낸 ODA 전문가다.
 
  박 소장은 청소년 시절부터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 때는 ‘현장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한 선배가 코이카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다. 해외 현장에서 이루어진 봉사단원 활동은 국제개발협력의 시작과 끝을 직접 경험해 보는 기회였다. 현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며 ODA 산업 사이클 전반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박 소장은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석사 과정에 진학해 개발학을 공부했다.
 
  ― 코이카 해외봉사단부터 UNDP 정직원이 되기까지 경력 개발 과정이 궁금하다.
 
 
  코로나19 진단 센터 건립
 
  “해외봉사단을 마친 후 영국 개발학연구소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당시 코이카에서 경력자에게 학비 일부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코이카 ODA 전문가 제도를 통해 DR콩고 코이카사무소에서 농업농촌개발 분야 전문가로 일하며 사업 개발과 관리 업무를 했다. 이후 잠시 NGO에서 에티오피아 근무를 하던 중 당시 신규 프로그램이었던 코이카 다자협력 전문가(KMCO)에 합격했고, UNDP DR콩고에 파견되어 지금까지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 DR콩고 주재 국제기구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활동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당시에는 프랑스어도 서툴고, 함께 있던 다른 나라 기관 사람들도 코이카는 물론 한국이란 나라를 잘 몰랐다. 하지만 한국인은 눈썰미가 좋지 않나. 한 번 배운 업무는 잊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현장 상황과 문화, 주요 어젠다 등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사업 혹은 활동이 있다면?
 
  “코로나19 유행 당시 DR콩고에서 제2의 코로나19 진단 센터 건립 운영 사업을 진행했던 일이 기억난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그곳에서는 만만치 않은 사업이었다. 게다가 DR콩고 정부 입장에서는 UNDP라는 큰 규모의 기관을 통해 사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사업 미팅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코이카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5개월 만에 제2의 코로나19 진단 센터를 설립할 수 있었다.”
 
 
  ‘동행’
 
  코이카 해외봉사단원 시절, 마을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했던 순간의 보람은 현재의 그를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전기도, 물도, 길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척박한 환경에서도 서로 응원하며 공부하고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이후로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프리카는 종족과 자원, 외부의 개입 등 다양한 이유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직도 많지만, 박준우 소장은 봉사단원 시절 느꼈던 까닭 모를 벅차오름을 지금도 현장을 누비며 변함없이 느낀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지원사업의 가장 끝단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그 지점에 관심이 있고,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십억, 수십조원 단위의 큰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들을 보지만, 정작 혜택이 돌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이, 이곳에서 일하며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국제기구 국가사무소 대표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사무소의 대표라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지원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우 소장은 현지 정부와 대화할 때 ‘동행(Accompagnement)’이라는 프랑스 단어를 자주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때로 이 말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에둘러 전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느덧 아프리카에서 10여 년, 국제기구에서 10여 년을 보낸 그는 ‘동행’의 의미가 ‘새로운 파트너십’으로 확장되기를 희망한다.
 
 
  보건행정 연수 중인 네팔 공무원 두르가 다타 차파게인
 
한국의 보건 정책을 배우러 네팔에서 온 두르가 다타 차파게인 씨.
  코이카는 글로벌 연수 사업(CIAT· Capacity Improvement & Advancement for Tomorrow)의 일환으로 학위 연수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어 발음으로 ‘씨앗’으로 부르는 CIAT는 글자 그대로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공무원, 기술자, 연구원, 정책결정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가 대표 인적자원개발(HRD) 사업이다.
 
  이 중 학위 연수 사업은 개발도상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국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해 자국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매년 뛰어난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사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15년 사업에 선발돼 아주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짐바브웨 산업통상부 소속 경제 전문가인 켄스 마후니(Kennth Mahuni) 씨는 학위 논문을 통해 2021년 국제경제학회(IEA)가 주관하는 ‘아마르티아 센’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네팔에서 온 두르가 다타 차파게인 씨는 지역사회 단위의 작은 보건소에서 1차 진료를 주로 담당했다. 예방접종을 하고 임산부와 노인들의 건강도 돌보는 일이었다. 이후 지역 보건소장으로 근무하면서 한 지역의 의료 시스템을 관리했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보건부로 자리를 옮겨 보건 정책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선임 공중보건 담당관으로 일했다.
 
 
  “한국에서 박사모 쓸 겁니다”
 
  ― 학위 연수 사업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현재 직책상 정책적인 측면에서 제 지식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의 보건 정책 시스템을 배울 수 있다면 네팔의 보건 시스템 역량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코이카의 학위 연수 사업에 지원했고, 지금은 연세대에서 글로벌 보건안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 박사 학위를 받아 네팔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정책 및 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네팔은 아직까지도 다양한 보건 문제를 겪고 있다. 결핵이나 콜레라 같은 오래된 질병은 물론이고, 뎅기열 등 새로운 질병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네팔에서 뎅기열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또한 네팔 사망 원인의 약 71%가 당뇨병, 고혈압, 암, 기타 심장질환 등 비전염성 질환인 만큼 네팔 국민들이 이러한 건강 문제를 잘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을 만들고 싶다.”
 
  차파게인 씨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 문화와 다른 개발 이슈에 대해서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나라가 고도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고유의 문화를 잃어버리지만, 한국인은 고유의 문화를 잘 보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참여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관습과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점을 네팔에 전하고 싶다.”
 
 
  ‘검은 대륙’에 ICT 생태계 만들어 가는 르완다 청년 유학생들
 
코이카가 설립한 르완다 소프트웨어 특성화고(RCA)를 졸업한 디디에 무네제로, 쉘론 코부신게, 에기데 느와리, 제리베 이심웨 씨(왼쪽부터).
  “ICT는 아프리카의 문제 해결하는 열쇠”
 
  아프리카의 정보통신기술(ICT)은 가파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이동통신과 관련한 규제들이 완화되고 기업 간 경쟁 등을 허용하면서 휴대폰 기기 가격이 하락했고, 휴대폰 사용 인구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유엔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아프리카 인구 100명당 휴대폰 가입자 수는 82명으로 2010년 44명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또 인터넷 사용 인구 비율도 2010년 3명에서 2022년 26.5명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코이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아프리카의 ICT 생태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ICT 교육 강화 지원을 결정했다. 그중에서도 ICT 분야에 풍부한 잠재력을 갖춘 르완다를 사업 지역으로 정하고 미래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르완다 소프트웨어 특성화고(RCA·Rwanda Coding Academy) 역량 강화 사업’과 ICT 교육 인력을 양성하는 ‘르완다 교사 및 예비교사 ICT 교육 역량 강화 사업’, 르완다 국민의 디지털 문해율을 높이는 ‘디지털 대사 프로그램 지원을 통한 디지털 문해율 증진 사업’ 등을 펼쳤다.
 
  RCA는 2019년 설립한 르완다 최초의 소프트웨어 특화 교육기관이다. 코이카는 2021년부터 710만 달러(약 83억원) 규모로 ‘RCA 역량 강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업 착수 3년이 지난 현재, RCA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4명의 졸업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아프리카에서 ICT가 왜 중요한가?
 
  “현재 아프리카에서 ICT는 교육, 기후변화, 교통 등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이와 관련해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젊은 층이라고 생각한다.”(쉘론 코부신게)
 
  ― RCA에서는 주로 어떤 공부를 했나?
 
  “STEM이라고 불리는 과학·기술·공학·수학 통합 교육을 받았다. 저는 입학 후 수학, 물리학 과정과 함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임베디드 시스템, 네트워크 보안 등의 커리큘럼에 집중해 공부했다.”(제리베 이심웨)
 
 
  “지원 통해 지역사회에 큰 변화 생겨”
 
  ― RCA 졸업생들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 취업을 희망하는데, 학업에 뜻이 있는 학생들은 해외 대학 진학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저는 현재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도 컬럼비아대, 노터데임대, 리하이대 등 미국의 대학교에서 컴퓨터, 데이터, 정보 분야 등을 전공하고 있다.”(디디에 무네제로)
 
  ― 대학에 진학하면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나?
 
  “저는 IT 기업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RCA에서는 컴퓨터와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IT 관련 비즈니스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컴퓨터 과학과 비즈니스 관련 학위를 모두 취득하면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에기데 느와리)
 
  ―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르완다를 위해 협력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었고, 교육을 통해 점차 사회와 국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RCA에서 받았던 지원 덕분에 현재는 졸업생 대부분이 르완다의 미래 세대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됐다.”(쉘론 코부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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