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국민의 약 14%가 경계선 지능인… 일상생활 어렵지만 복지 미흡
⊙ “군대 병역 판정으로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 알게 돼”
⊙ “제 꿈을 받아줄 ‘인서울대’에 진학해 무용수,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요”
⊙ “경계선 지능인이라도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
⊙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다양한 학교, 사명감 있는 교사 많아졌으면…”
⊙ “군대 병역 판정으로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 알게 돼”
⊙ “제 꿈을 받아줄 ‘인서울대’에 진학해 무용수,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요”
⊙ “경계선 지능인이라도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
⊙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다양한 학교, 사명감 있는 교사 많아졌으면…”
- 당진청년타운 나래에서 워크넷을 활용한 직업·직무 파악 검사를 교육받고 있는 이창갑씨. 사진=고기정
‘과제 학습 및 기본 학습 태도를 좀 더 바르게 가져야 함’ ‘친구들과의 모둠 활동 시 협동심이 좀 더 필요함’ ‘기초 학습에 대한 열의와 집중이 필요함’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고 또박또박 말하려는 노력이 필요함’….
모두 이창갑(李昌鉀·27)씨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다. 경계선 지능인 인식 개선을 위해 선뜻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기자에게 보여준 이창갑씨는 인터뷰에 앞서 보낸 사전 질문지에 대한 답변서도 작성해왔는데, 쉽게 넘겨도 될 만한 사소한 질문에도 손글씨로 빼곡하게 답을 적어왔다.
‘경계선 지능’이란 웩슬러 지능검사(Wechsler Adult Intelligence Scale) 기준으로 지능지수가 70~79점이거나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기준 71~84점으로 지적장애인과 비(非)지적장애인 사이의 경계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을 비장애인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최근 국민의 약 14%가 경계선 지능이라는 통계자료가 발표되며 경계선 지능인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인은 아니지만 지능 지수가 평균보다 낮다. 그래서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고 ▲학습 능력 ▲인지 능력 ▲이해력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인만큼 누릴 수 있는 복지는 마땅치 않다. 경계선 지능인 대상자인 이창갑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4년제 대학 입학도 했는데… ‘경계선 지능’ 날벼락”
― 언제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나요.
“병역 판정 검사를 받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 병역 판정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경계선 지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나요?
“병역 판정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제가 경계선 지능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충청권 4년제 대학에 입학해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경계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다가왔어요.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비를 들여 검사를 더 진행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이 실감 나더라고요.”
― 당시 지능지수(IQ) 점수는 몇 점이었나요.
“81이었습니다. 이 점수가 최고 높게 나온 것이고, 가장 낮게 나온 점수는 72입니다.”
2020년부터 병역 판정 검사에 IQ 검사가 추가됐다. IQ 검사는 컴퓨터로 이루어지며, ▲공간지각 능력 ▲수리 능력 ▲언어 능력 등을 기초부터 고급 심화 능력까지 평가한다. 이창갑씨는 이 검사에서 IQ 점수 85 이하 판정을 받아 당진시청 공익근무요원(4급)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병역 판정 검사 이후 개인적으로 받은 2차 검사 결과지를 살펴보니, ‘언어 표현이 매우 장황하였고 추상적인 내용의 반응이 잦다’ ‘반응에 대한 설명 시에는 기존의 반응에서 벗어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청각적 주의집중력이 [경도 정신지체] 수준’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전반 대처 능력 및 적응력 역시 떨어져 있다’ ‘주변의 요구에 대해 의사 결정에 오류를 보이거나 효율적인 대처가 어렵겠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 경계선 지능인 판정을 받고 어떤 심정이 들었나요.
“제가 자존심이 좀 강해요. 그래서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을 때, 제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 들었어요. 자기비판에 빠지는 날도 잦았죠. 극복하기 참 힘들었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에요.”
“수업 따라가기 벅찼다”
―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반복 지각이 안 돼요. 그래서 기억력을 요구하는 과목 공부에 어려움을 겪었죠.”
― 특별히 어려웠던 과목은 뭔가요.
“영어요. 특히 영단어 외우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영어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알아요. 문제는 영단어의 뜻을 한국어로 외우는 등, 기억력을 요구할 때 어려움을 겪었어요. 곧잘 외우다가도, 잠깐 한눈을 팔게 되면 애써 외웠던 영단어를 모두 까먹어버리죠.”
―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일단 학점이 좋지 않았어요. 2점대 학점을 유지했죠. 그리고 부끄럽지만, 학사 경고도 한 번 받았어요. 교수님께서 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알고 계셔서 사정을 많이 봐주셨고, 덕분에 대학 졸업장은 따냈어요.”
― 대학 생활 중 어떤 부분이 적응하기 어려웠나요.
“대학에 입학하면 대부분 술을 마시고, 몰려다니잖아요. 전 그런 대인 관계가 특히 어려웠어요. 그리고 대학에서 1, 2학년 때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양 과목을 들을 때 특히 골치가 아팠던 것 같아요.”
이창갑씨가 건넨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과목 성적이 좋지 않다. 내신 등급은 1~8등급으로 나뉘는데, 그의 경우엔 7등급에 머물러 있다. 주요 과목인 국어·수학·영어 평균 등급은 각각 5~7등급이다.
대학 학점도 마찬가지다. 4.5점 만점으로 학점을 매기는데, 이씨는 총 학점 2.32점으로 졸업했다. 성적이 4점대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학에 다니며 수강한 57개의 과목 중, 상위 20~30%대 성적을 받은 과목은 5개에 불과했다.
“가끔 제게 주어진 길 없다는 생각 들어”
―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취업 박람회도 다녀왔죠. 취업을 위해 올 6월부터 ‘청년 도전 지원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 청년 도전 지원 사업이 뭔가요?
“고용노동부에서 구직 청년들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시켜주고, 노동 시장 참여 및 취업을 촉진시키기 위해 하는 사업이에요. 운 좋게 선정자로 뽑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네. 취업이 안 돼 너무 힘들어요. 면접을 가면 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말해야 하고, 그러면 최종 합격이 안 될 게 뻔하고…. 물론 보통 사람들도 취업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취업이 배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가끔은 제게 주어진 길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이루고 싶은 꿈이 뭔가요.
“경계선 지능인 당사자로서, 우리나라 전역에서 동분서주(東奔西走) 활동하며 경계선 지능의 개념을 정립하고 싶어요. 그리고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숨어 지내야만 하는 경계선 지능인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포기할 건 포기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부분은 끝까지 파고들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지금 저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하면 경계선 지능인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경계선 지능인으로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고 자기 연민과 자책에 빠져 살았어요. 대학 생활 내내 의미 없이 살았죠. ‘왜 내가 경계선 지능이어야 하지?’ 하는 의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갖게 되더라고요. 타인의 시선은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는 사람을 갉아먹으니까 이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무조건 학습을 못 하는 게 아니에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만 갇혀서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스스로 발전해나가야 해요. 과거의 저는 도움을 요청하기 바빴어요. 그런데 남에게 의지하게 되면 그 당시에는 편할 수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경계선 지능인이더라도, 스스로 자립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날 이창갑씨는 당진청년타운 나래에서 워크넷을 활용한 직업·직무 파악 검사를 교육받고 마음 건강을 위한 요가도 배웠다. 그는 수업 내내 열의에 찬 모습을 보이며 모든 내용을 필기하는 등 배운 내용을 습득하기 위해 애썼다.
“따돌림으로 인해 강박증 생겨”
이씨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임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초·중·고 학창 시절에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경계선 지능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협업 및 문화 콘텐츠 개발을 하고 있는 대안학교인 예룸예술학교에 찾아가 경계선 지능 청소년인 김예빈(18), 박은총(18)씨와 예룸예술학교 교감 노혜경씨를 만났다.
― 대안학교에 다닌 지 얼마나 됐나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는 다른 대안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부터 예룸예술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약 3년 정도 되었네요.”(김예빈)
“저는 예룸예술학교를 중학교 3학년부터 꾸준히 다녔습니다.”(박은총)
― 대안학교에 오기 전에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나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4년간 집요하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여자아이들은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갖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고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때부터 친구들이 ‘쟤 못생겼다’ ‘찐따(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단어) 같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저를 따돌리더라고요.
(대안학교로) 전학을 결심한 계기는 지금 생각하더라도 너무 큰 사건 때문이었어요. 반 친구랑 이야기를 하던 도중,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그 친구가 화가 잔뜩 났는지 제 필통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당연히 제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우수수 떨어지고, 아이들은 그런 저를 보며 웃고…. 당장이라도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었어요. 그날 이후 자신감을 많이 잃었고, 우울해하면서 좀 힘든 나날을 보냈었죠.”(김예빈)
“어머니가 조금 힘들어해”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말수가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친구 사귀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놀림의 대상이 된 것 같고, 친구도 거의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중학교 때도 친구 한 명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로 오게 됐어요. 저는 따돌림으로 인해 강박증도 생겼는데요,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냥 입 닫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박은총)
― 처음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사실 저는 그냥 그랬어요. 저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일반인 같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조금 힘들어하셨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저 집 딸이 경계선 지능이래’ 등의 악의적인 소문이 돌아서 한동안 힘들었죠. 장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경계선 지능인은 뭘 해도 어중간하다 보니까 이상한 인식이 생기는 게 많이 속상해요.”(김예빈)
― 예룸예술학교에 다니며 변화된 점이 있나요.
“바닥을 쳤던 자신감이 다시금 원상태로 회복됐어요. 주위에서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이야기하고요. 예룸예술학교에 와서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랑 같이 어울려 놀다 보니까, 사람과 대화하는 법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용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김예빈)
“예룸예술학교에 진학하고 나니까 친구도 훨씬 많아졌고, 훨씬 말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신감도 높아졌고요.”(박은총)
“꼭 인서울 해내 보일 것”
― 일상생활을 할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저는 감정 조절이 조금 힘들어요.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말이 안 통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흥분한 나머지 계속 제 의견만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더 심한 것 같기도 해요. 감정이 격해져서 자꾸 발음이 꼬이고, 말을 더듬게 되는 것도 힘들죠.”(김예빈)
“저는 분노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약간 시비를 걸 때는 충분히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계를 넘는 순간, 저도 저를 못 말리는 상황이 자주 벌어져요. 그 상태까지 가면 폭력을 쓰게 되거든요. 저는 제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박은총)
― 학교에서 졸업한 이후의 계획이 있나요.
“저는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에요. 꼭 ‘인서울(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해내 보일 거예요. 무용과에 진학한 뒤 무용단에 들어가 최대한 많은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게 정말 행복하거든요. 무대가 끝난 뒤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때 짜릿함이 느껴져요.”(김예빈)
“저는 센터의 관리를 받는 청소년이에요. 성인이 되는 순간 지원이 끊기죠.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 제 첫 번째 목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집을 구하는 거예요. 빨리 돈을 벌어서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박은총)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저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어렸을 때 공연 아닌 공연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무대에 오른 저를 보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때부터 제 꿈은 무용수가 됐죠. 저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무용수에 딱 적합하죠.”(김예빈)
“저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내가 커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생각해서 집을 나왔죠. 그때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던 것 같아요. 집을 나온 뒤에는 센터에서 줄곧 생활했어요. 센터에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교묘하게 CCTV 사각지대에 저를 데리고 가서 때리고, 모욕을 주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고생했는데, 뮤지컬 공연이 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었어요. 무대에 올라서 연기하는 동안에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박은총)
― 경계선 지능을 안 좋게 바라보는 인식이 팽배하잖아요.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경계선 지능인을 장애인이라고 취급하지 않아주었으면 해요. 저희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일반인인데, 자꾸 장애인이라고 깎아내리니까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죠.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책임지고 인식을 바꿔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에 진출할 때 색안경을 끼고 채용을 안 한다든가 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뜩이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경계선 지능인들인데,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굉장히 막막할 것 같아요.”(김예빈)
“사람들은 막연하게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하면 항상 못 할 거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못하는 게 아니거든요. 경계선 지능인을 볼 때, ‘틀리다’가 아니라 ‘좀 느리고 다른 거다’라고 넓은 마음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박은총)
“경계선 지능인 위한 학교 더 생겼으면”
경계선 지능인 청소년들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서로 투닥거리는 등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가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서로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며 인터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감 노혜경씨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 경계선 지능인들을 가르칠 때 힘든 점이 있나요.
“경계선 지능인들은 교사에게 의지하려는 부분이 좀 커요. 경계선 지능 학생들이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거나, 연습이 잘 되어 있다면 예룸예술학교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있었는데, 그게 충족이 되지 않다가 문제 해결 방법을 알게 되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수시로 불만 사항을 털어놓는 거죠.”
― 교육을 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요.
“학습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춘 수업을 합니다. 저희는 매 학기 학년별로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어요. 최대한 많은 아이가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만들어서 아이들의 정서 케어를 도우려 노력합니다.”
―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어떤 점이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경계선 지능인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는 많지 않아요. 당장 예룸예술학교도 정원이 모두 차 있어서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하고 싶어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명감 있게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교사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학교도 더욱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은 아이가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모두 이창갑(李昌鉀·27)씨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다. 경계선 지능인 인식 개선을 위해 선뜻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기자에게 보여준 이창갑씨는 인터뷰에 앞서 보낸 사전 질문지에 대한 답변서도 작성해왔는데, 쉽게 넘겨도 될 만한 사소한 질문에도 손글씨로 빼곡하게 답을 적어왔다.
‘경계선 지능’이란 웩슬러 지능검사(Wechsler Adult Intelligence Scale) 기준으로 지능지수가 70~79점이거나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기준 71~84점으로 지적장애인과 비(非)지적장애인 사이의 경계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을 비장애인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최근 국민의 약 14%가 경계선 지능이라는 통계자료가 발표되며 경계선 지능인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인은 아니지만 지능 지수가 평균보다 낮다. 그래서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고 ▲학습 능력 ▲인지 능력 ▲이해력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인만큼 누릴 수 있는 복지는 마땅치 않다. 경계선 지능인 대상자인 이창갑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4년제 대학 입학도 했는데… ‘경계선 지능’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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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갑씨가 자필로 답변서를 써왔다. 사진=고기정 |
“병역 판정 검사를 받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 병역 판정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경계선 지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나요?
“병역 판정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제가 경계선 지능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충청권 4년제 대학에 입학해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경계선’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다가왔어요.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하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비를 들여 검사를 더 진행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이 실감 나더라고요.”
― 당시 지능지수(IQ) 점수는 몇 점이었나요.
“81이었습니다. 이 점수가 최고 높게 나온 것이고, 가장 낮게 나온 점수는 72입니다.”
2020년부터 병역 판정 검사에 IQ 검사가 추가됐다. IQ 검사는 컴퓨터로 이루어지며, ▲공간지각 능력 ▲수리 능력 ▲언어 능력 등을 기초부터 고급 심화 능력까지 평가한다. 이창갑씨는 이 검사에서 IQ 점수 85 이하 판정을 받아 당진시청 공익근무요원(4급)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병역 판정 검사 이후 개인적으로 받은 2차 검사 결과지를 살펴보니, ‘언어 표현이 매우 장황하였고 추상적인 내용의 반응이 잦다’ ‘반응에 대한 설명 시에는 기존의 반응에서 벗어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청각적 주의집중력이 [경도 정신지체] 수준’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전반 대처 능력 및 적응력 역시 떨어져 있다’ ‘주변의 요구에 대해 의사 결정에 오류를 보이거나 효율적인 대처가 어렵겠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 경계선 지능인 판정을 받고 어떤 심정이 들었나요.
“제가 자존심이 좀 강해요. 그래서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을 때, 제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 들었어요. 자기비판에 빠지는 날도 잦았죠. 극복하기 참 힘들었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에요.”
“수업 따라가기 벅찼다”
―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반복 지각이 안 돼요. 그래서 기억력을 요구하는 과목 공부에 어려움을 겪었죠.”
― 특별히 어려웠던 과목은 뭔가요.
“영어요. 특히 영단어 외우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영어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알아요. 문제는 영단어의 뜻을 한국어로 외우는 등, 기억력을 요구할 때 어려움을 겪었어요. 곧잘 외우다가도, 잠깐 한눈을 팔게 되면 애써 외웠던 영단어를 모두 까먹어버리죠.”
―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일단 학점이 좋지 않았어요. 2점대 학점을 유지했죠. 그리고 부끄럽지만, 학사 경고도 한 번 받았어요. 교수님께서 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알고 계셔서 사정을 많이 봐주셨고, 덕분에 대학 졸업장은 따냈어요.”
― 대학 생활 중 어떤 부분이 적응하기 어려웠나요.
“대학에 입학하면 대부분 술을 마시고, 몰려다니잖아요. 전 그런 대인 관계가 특히 어려웠어요. 그리고 대학에서 1, 2학년 때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양 과목을 들을 때 특히 골치가 아팠던 것 같아요.”
이창갑씨가 건넨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과목 성적이 좋지 않다. 내신 등급은 1~8등급으로 나뉘는데, 그의 경우엔 7등급에 머물러 있다. 주요 과목인 국어·수학·영어 평균 등급은 각각 5~7등급이다.
대학 학점도 마찬가지다. 4.5점 만점으로 학점을 매기는데, 이씨는 총 학점 2.32점으로 졸업했다. 성적이 4점대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학에 다니며 수강한 57개의 과목 중, 상위 20~30%대 성적을 받은 과목은 5개에 불과했다.
“가끔 제게 주어진 길 없다는 생각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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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갑씨의 심리 평가 보고서. K-WAIS 결과, 전체 지능(언어성 85, 동작성 79)이 81점으로, ‘평균 하’ 수준에 해당한다. 사진=이창갑 |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취업 박람회도 다녀왔죠. 취업을 위해 올 6월부터 ‘청년 도전 지원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 청년 도전 지원 사업이 뭔가요?
“고용노동부에서 구직 청년들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시켜주고, 노동 시장 참여 및 취업을 촉진시키기 위해 하는 사업이에요. 운 좋게 선정자로 뽑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네. 취업이 안 돼 너무 힘들어요. 면접을 가면 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말해야 하고, 그러면 최종 합격이 안 될 게 뻔하고…. 물론 보통 사람들도 취업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취업이 배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가끔은 제게 주어진 길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이루고 싶은 꿈이 뭔가요.
“경계선 지능인 당사자로서, 우리나라 전역에서 동분서주(東奔西走) 활동하며 경계선 지능의 개념을 정립하고 싶어요. 그리고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숨어 지내야만 하는 경계선 지능인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포기할 건 포기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부분은 끝까지 파고들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지금 저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하면 경계선 지능인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경계선 지능인으로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고 자기 연민과 자책에 빠져 살았어요. 대학 생활 내내 의미 없이 살았죠. ‘왜 내가 경계선 지능이어야 하지?’ 하는 의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갖게 되더라고요. 타인의 시선은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는 사람을 갉아먹으니까 이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무조건 학습을 못 하는 게 아니에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만 갇혀서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스스로 발전해나가야 해요. 과거의 저는 도움을 요청하기 바빴어요. 그런데 남에게 의지하게 되면 그 당시에는 편할 수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경계선 지능인이더라도, 스스로 자립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날 이창갑씨는 당진청년타운 나래에서 워크넷을 활용한 직업·직무 파악 검사를 교육받고 마음 건강을 위한 요가도 배웠다. 그는 수업 내내 열의에 찬 모습을 보이며 모든 내용을 필기하는 등 배운 내용을 습득하기 위해 애썼다.
“따돌림으로 인해 강박증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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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총씨(왼쪽)와 김예빈씨. 사진=고기정 |
― 대안학교에 다닌 지 얼마나 됐나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는 다른 대안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때부터 예룸예술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약 3년 정도 되었네요.”(김예빈)
“저는 예룸예술학교를 중학교 3학년부터 꾸준히 다녔습니다.”(박은총)
― 대안학교에 오기 전에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나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4년간 집요하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청소년기에 여자아이들은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갖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고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때부터 친구들이 ‘쟤 못생겼다’ ‘찐따(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단어) 같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저를 따돌리더라고요.
(대안학교로) 전학을 결심한 계기는 지금 생각하더라도 너무 큰 사건 때문이었어요. 반 친구랑 이야기를 하던 도중,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그 친구가 화가 잔뜩 났는지 제 필통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당연히 제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우수수 떨어지고, 아이들은 그런 저를 보며 웃고…. 당장이라도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었어요. 그날 이후 자신감을 많이 잃었고, 우울해하면서 좀 힘든 나날을 보냈었죠.”(김예빈)
“어머니가 조금 힘들어해”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말수가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친구 사귀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놀림의 대상이 된 것 같고, 친구도 거의 없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중학교 때도 친구 한 명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로 오게 됐어요. 저는 따돌림으로 인해 강박증도 생겼는데요,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냥 입 닫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박은총)
― 처음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사실 저는 그냥 그랬어요. 저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일반인 같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조금 힘들어하셨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저 집 딸이 경계선 지능이래’ 등의 악의적인 소문이 돌아서 한동안 힘들었죠. 장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경계선 지능인은 뭘 해도 어중간하다 보니까 이상한 인식이 생기는 게 많이 속상해요.”(김예빈)
― 예룸예술학교에 다니며 변화된 점이 있나요.
“바닥을 쳤던 자신감이 다시금 원상태로 회복됐어요. 주위에서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이야기하고요. 예룸예술학교에 와서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랑 같이 어울려 놀다 보니까, 사람과 대화하는 법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용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김예빈)
“예룸예술학교에 진학하고 나니까 친구도 훨씬 많아졌고, 훨씬 말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신감도 높아졌고요.”(박은총)
“꼭 인서울 해내 보일 것”
― 일상생활을 할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저는 감정 조절이 조금 힘들어요.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말이 안 통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흥분한 나머지 계속 제 의견만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더 심한 것 같기도 해요. 감정이 격해져서 자꾸 발음이 꼬이고, 말을 더듬게 되는 것도 힘들죠.”(김예빈)
“저는 분노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약간 시비를 걸 때는 충분히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계를 넘는 순간, 저도 저를 못 말리는 상황이 자주 벌어져요. 그 상태까지 가면 폭력을 쓰게 되거든요. 저는 제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박은총)
― 학교에서 졸업한 이후의 계획이 있나요.
“저는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에요. 꼭 ‘인서울(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해내 보일 거예요. 무용과에 진학한 뒤 무용단에 들어가 최대한 많은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게 정말 행복하거든요. 무대가 끝난 뒤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때 짜릿함이 느껴져요.”(김예빈)
“저는 센터의 관리를 받는 청소년이에요. 성인이 되는 순간 지원이 끊기죠.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 제 첫 번째 목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집을 구하는 거예요. 빨리 돈을 벌어서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박은총)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저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어렸을 때 공연 아닌 공연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무대에 오른 저를 보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때부터 제 꿈은 무용수가 됐죠. 저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무용수에 딱 적합하죠.”(김예빈)
“저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내가 커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 생각해서 집을 나왔죠. 그때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던 것 같아요. 집을 나온 뒤에는 센터에서 줄곧 생활했어요. 센터에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교묘하게 CCTV 사각지대에 저를 데리고 가서 때리고, 모욕을 주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고생했는데, 뮤지컬 공연이 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었어요. 무대에 올라서 연기하는 동안에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박은총)
― 경계선 지능을 안 좋게 바라보는 인식이 팽배하잖아요.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경계선 지능인을 장애인이라고 취급하지 않아주었으면 해요. 저희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일반인인데, 자꾸 장애인이라고 깎아내리니까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죠.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책임지고 인식을 바꿔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에 진출할 때 색안경을 끼고 채용을 안 한다든가 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뜩이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경계선 지능인들인데,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굉장히 막막할 것 같아요.”(김예빈)
“사람들은 막연하게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하면 항상 못 할 거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못하는 게 아니거든요. 경계선 지능인을 볼 때, ‘틀리다’가 아니라 ‘좀 느리고 다른 거다’라고 넓은 마음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박은총)
“경계선 지능인 위한 학교 더 생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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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혜경 예룸예술학교 교감. 사진=고기정 |
― 경계선 지능인들을 가르칠 때 힘든 점이 있나요.
“경계선 지능인들은 교사에게 의지하려는 부분이 좀 커요. 경계선 지능 학생들이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거나, 연습이 잘 되어 있다면 예룸예술학교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있었는데, 그게 충족이 되지 않다가 문제 해결 방법을 알게 되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수시로 불만 사항을 털어놓는 거죠.”
― 교육을 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요.
“학습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춘 수업을 합니다. 저희는 매 학기 학년별로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어요. 최대한 많은 아이가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만들어서 아이들의 정서 케어를 도우려 노력합니다.”
―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어떤 점이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경계선 지능인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는 많지 않아요. 당장 예룸예술학교도 정원이 모두 차 있어서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하고 싶어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명감 있게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교사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학교도 더욱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은 아이가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