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영어로 수업 진행… 국내 유일하게 IAEA 인증 받아
⊙ 킹스, 2024년 현재 원자력산업학과와 에너지정책학과 등 2개 과에 국내 학생 61명, 해외 학생 48명 ‘열공’
⊙ 킹스 졸업생 266명 중 가장 많은 졸업생 배출한 해외 국가는 케냐(49명)…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順
⊙ “원자력은 ‘브레인 에너지’… 100년 대계의 국가 간 파트너십이 원자력 산업”
⊙ 고리 원전, 한국 원전의 대들보이자 산 역사… 부산·울산·경남 전력 소비량의 34.8% 생산
⊙ 새울 원전, 한국 원전의 미래 APR1400으로 건립… 새울 3·4호기는 조만간 완공
⊙ 킹스, 2024년 현재 원자력산업학과와 에너지정책학과 등 2개 과에 국내 학생 61명, 해외 학생 48명 ‘열공’
⊙ 킹스 졸업생 266명 중 가장 많은 졸업생 배출한 해외 국가는 케냐(49명)…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順
⊙ “원자력은 ‘브레인 에너지’… 100년 대계의 국가 간 파트너십이 원자력 산업”
⊙ 고리 원전, 한국 원전의 대들보이자 산 역사… 부산·울산·경남 전력 소비량의 34.8% 생산
⊙ 새울 원전, 한국 원전의 미래 APR1400으로 건립… 새울 3·4호기는 조만간 완공
- 울산 울주군 서생면 해맞이로에 위치한 킹스,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기자는 지난 6월 25일과 26일 동안 한수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집적된 부산과 울산 등지를 발 빠르게 둘러보았다. 흥미롭게도 고리 원전과 새울 원전, 한국수력원자력 인재개발원, 그리고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EPCO International Nuclear Graduate School)가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었다.
비록 보안상의 이유로 속 시원히 둘러볼 순 없었지만 어쨌든 일부만이라도 한국 원자력 산업단지를 호령(號令)하는 백마와 적토마, 얼룩빼기 말들의 용약(勇躍)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킹스(KINGS)’
그곳 원전(原電) 기술자들은 이 대학원대학교를 영문 첫 글자를 따서 ‘킹스(KINGS)’라고 부른다. 기자도 덩달아 그렇게 불렀는데 뭔지 몰라도 심박(深博)하게 느껴졌다. ‘킹스’라는 발음에서 역사 속 현명한 왕들이 집결해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회담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당장 체코 원전 수주가 확정되면 그 일대 원전 클러스터는 조바심과 관심으로 으쓱해지고 그중에서도 킹스에 세계적인 실무형 전문기술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몰려드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엄경식 한수원 국민소통담당관이 기자에게 킹스를 보여주길 원했다. 킹스에 다녀와야 한수원의 실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엄 담당관의 말이다.
“김 기자! 킹스 주변에 대형 원전 10기가 있어요. 물론 1기는 해체(고리 1호기)를 준비 중이지만 나머지 7기는 운영 중이고 2기는 건설 중이죠.”
심지어 한수원 인재의 보고(寶庫)인 인재개발원 내에 위치한 킹스는 한수원 본사(경북 경주)와 고작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원전의 주요 기기를 제작하는 두산에너빌리티(경남 창원)와는 2시간 거리,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원자력환경공단(경북 경주) 또한 1시간 거리에 있다.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가 이곳에 있음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엄 담당관의 말이다.
“이해되지요? 바로 한수원 인재개발원 부지에 킹스가 자리 잡고 있어요. 킹스에서 원전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해외 유학생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됩니다.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되고요.”
기자는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원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유학생 비율이 국내 재학생 비율에 거의 육박하다니…. 나중에 관련 자료를 통해 알게 됐는데 2024년 현재 원자력산업학과와 에너지정책학과 등 2개 과에서 국내 학생 61명, 해외 학생 48명이 ‘열공’ 중이다.
학년별로 보면 1학년은 10개국에서 온 26명의 해외 학생과 22명의 국내 학생, 2학년은 14개국에서 온 25명의 해외 학생과 34명의 국내 학생이 재학 중이다. 또 올해 처음으로 박사 과정을 교육부로부터 인가(認可)받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정원 10명 중 4명을 선발해 K-원전의 미래를 심도 있게 본격적으로 개척 중에 있다.
“전 과목 영어로 가르쳐”
엄 담당관의 승용차를 타고 킹스에 도착했다. 캠퍼스와 맞닿은 동해 바다의 파도가 평화롭게 철썩이고 있었다. 바다와 마주한 해군사관학교가 바다의 전사(戰士)를 양성하는 곳이라면 킹스는 빛의 마법사를 키우는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킹스 법인사무국 이재수 차장의 안내로 김민철 사무국장을 가장 먼저 만났다.
김 국장은 “국내 원자력 공학과를 보유한 대학이 16곳이나 되지만 그럼에도 킹스가 설립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킹스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기술과 건설 경험·운영 노하우의 결정체이자 제3세대 원전인 APR1400을 아예 교과목으로 선정해 현장 실무 중심의 교육을 합니다. 국내 일반대학의 원자력 공학과에서 학문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과는 다르죠. 또한 우린 전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칩니다.”
게다가 원자력 분야의 신뢰도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증표(證票)로 국내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인증을 받았다고 김 국장이 설명했다.
IAEA 이름으로 인증서를 부여하는 대학은 킹스가 국내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는 도쿄대에 이어 두 번째, 세계에서는 9번째 대학이란다. 김 국장은 “지난 2년간 심사 과정을 거쳐 작년 최종 인증을 받았다. ‘원자력 산업공학 프로젝트 관리 및 건설’ 트랙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석사 학위는 물론 IAEA와 킹스의 공동 인증서를 함께 취득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김 국장이 널따란 회의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킹스의 베테랑 야전(野戰) 지휘관들이 열의에 찬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킹스의 총장은 공석이다. 제4대 유기풍 총장이 지난 4월 퇴임해 현재 새로운 총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체코와 폴란드 원전 수주를 앞두고 이 대학의 위상이 커진 만큼 총장의 위상과 역할도 동시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UAE에 원전 수출하면서 설립
킹스 대외처 조철성 실장이 대학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이력을 자세히 브리핑해주었다.
“킹스는 지난 2009년 UAE에 처음으로 원전 수출을 하면서 대학 설립 타당성 검토가 시작됐고 2011년 교육부로부터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어요.”
― 전문 교육기관 설립은 UAE 원전 수주와 관련이 있었나요?
“그럼요. UAE 정부 쪽이 내민 사이드 계약서에 교육훈련 요청이 있었고 양국 정부가 상호 합의하에 전문 교육기관이자 대학원대학교로 킹스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2024년 현재 킹스 졸업생 수는 모두 552명에 이른다. 2014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졸업생이 286명, 유학생 졸업생이 266명에 이른다. 국내·해외 비율이 반반(半半)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66명 중에서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국가는 케냐(49명)다. 10명 이상 석사 졸업생을 배출한 국가는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공, 가나를 들 수 있다. 폴란드 국적의 졸업생은 9명에 이른다. 체코 졸업생도 2명이다.
이에 대해 조철성 실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 학생은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유관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직원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해외 학생은 에너지 분야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재직자 및 대학생들로 구성돼 있어요.”
킹스 교학처 임학규 처장은 “사실 폴란드나 체코에서 한국으로 원자력을 공부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며 그 배경에 어떤 것이 뒷받침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동구권 국가들은 공학이나 항공산업 기반이 한국보다 튼튼하고 오래됐어요.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대의 경우 노벨물리학상을 두 차례나 받은 퀴리(Marie Curie) 부인을 배출한 곳입니다. 체코의 몇몇 대학은 기본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씩 있을 정도죠. 처음엔 이들 나라에 한국 원전을 이야기하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크게 발달했고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며 거기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 학생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럽 순방기간 중에 폴란드에 들러 일부러 바르샤바대를 찾아간 일도 있다.
임 처장은 “지난 3~4년 동안 폴란드와 지속적인 신뢰를 쌓아오는 과정이 있었고, 올해 폴란드에서 7명의 신입생이 킹스에 입학했다”면서 신뢰를 쌓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실에 기뻐했다.
― 학생들은 어떻게 뽑나요? 경쟁률은?
“보통 경쟁률이 2.5대 1에서 3대 1에 이릅니다. 폴란드에서 학생들을 추천하면 선발은 우리 대학이 직접 합니다.”
듣고 있던 김민철 국장이 “개인이 아닌 국가에서 학생을 모집해 추천하면 면접과 학업계획서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한다. 그러니 그들 나라의 자체 경쟁률까지 감안하면 무시 못 할 수준이다”고 귀띔했다.
소형모듈원전 SMR의 미래는…
기자는 김긍구 킹스 석좌교수와 만났다. 그의 주 전공은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소형모듈원전(SMR)이다. 한수원은 2012년 세계 최초로 SMR ‘스마트’의 표준설계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우수 인력들이 유출되고 원전 생태계가 파괴되고 말았다.
어쨌든 그럼에도 SMR 분야에서 한국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LNG와 석탄의 자리를 이 SMR이 차지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과학기술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원자력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해외 국가의 정부 대표단 중 2명이 우리 킹스 출신이더군요. 남아공과 우즈벡 출신인데 그중 한 명은 저에게 수업을 들었던 제자여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김긍구 석좌교수는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 38년 7개월 동안 근무했다. 미국 유학 생활 3년 3개월을 더하면 40년 넘게 오로지 원자력 연구에 매진한 셈인데 이 가운데 25년을 SMR 연구에 온 영혼을 바친 것이다.
“요즘 원자력 산업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SMR입니다. 제가 개발하면서 느낀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그 나라에 우리가 개발한 SMR을 수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킹스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 해외 학생들이 뛰어나던가요.
“재미있게 많이 따라옵니다.”
다음 문장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형광펜을 그어야 되는 듯, 강한 다짐이 묻어났다.
“원자력 공학 쪽의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이들도 꽤 있어요. 이런 친구들도 쉽게 이론과 실무를 체험하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한국 SMART의 우수성을 교육하고 수출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킹스의 해외 유학생 교육은 투자라고 볼 수 있지요.”
대학 기획총무처 이인규 처장은 킹스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강점이 뭡니까.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아닙니까. 주어진 예산 내에서 공기(工期)를 맞출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아시겠지만 과거 프랑스가 UAE에 원전을 수출하며 UAE에다 제2의 루브르 박물관을 지어주겠다, 미라주 전투기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원전 수주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대학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원자력 실무 특성화 학교입니다. 한국 원전을 도입하는 국가들에 최고의 전문 기술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게끔 돕고 있습니다.”
대외협력처 김주열 처장은 “바야흐로 때가 왔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게 원전산업”이라고 했다.
“원전, 단순히 물건 판다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2022년 2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취임 이후 내건 원전 비중 축소 공약을 뒤집은 것이다. 영국도 2050년까지 최대 9기의 원전을 짓기로 했다. 김 처장의 계속된 말이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EU가 우리나라 원전 수출의 최대 시장이 됐습니다.
스웨덴은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이제 대형 원전과 SMR 몇 기를 짓겠다고 방침을 바꿨고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이탈리아도 원전을 짓겠다는 논의가 그 나라 국회에서 나오고 있죠.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陣營)을 떠나 원자력 촉진법을 제정할 움직임입니다.”
김 처장은 “원자력 르네상스가 다시 한 번 도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원자력은 ‘브레인 에너지’입니다. 단순히 원전 한 기를 지어준다는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100년 대계의 국가 간 파트너십이 원자력 산업입니다.”
― 말씀하신 100년 대계(大計)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요.
“보통 원전 건설에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운영하는 데 평균 60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안전성 여부를 확인한 뒤 정상 가동을 마치고 원전을 해체하는 데 또 몇십 년이 걸립니다. 이렇게 따지면 거의 1세기가 필요하죠.”
― 말씀을 듣고 보니 엄청난 장치 산업이네요.
“맞습니다. 원전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개념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또 기술 수출로도 시원한 답을 줄 수 없어요. 원자력 교육을 통한 상호 이해를 통해 관련 사람과 기술의 교류를 넘어 외교, 경제, 과학기술, 문화까지 100년 동안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원자력을 매개로 한 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한국 원전의 강점은 ‘경험’”
킹스는 현재 2개의 학과와 한 곳의 산학협력단으로 조직돼 있다. 원자력산업학과(Nuclear Power Plant Engineering)는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을 교과목으로 가르친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의 전 생애주기를 모두 다룬다. 한마디로 설계와 건설, 운영, 해체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는 현장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원자력정책학과(Energy Policy & Engineering)는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전력 계통 이론과 세계 전력 계통 시장체제에서의 전력 경제 이론과 자금 조달, 기업 투자 등을 배운다.
원자력산업학과 학생들은 2년간 킹스에서 석사 과정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에너지정책학과의 경우, 국내 학생은 1학년 전체 과정을 해외 학생들과 함께 수학한 뒤 2학년 1학기는 독일 안홀트대(Anhalt University)로 옮겨 한 학기 동안 MBA 과정을 배운다. 졸업할 때 석사 학위와 함께 MBA 학위까지 받는다.
기자는 킹스에서 한국 원자력 산업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폴란드에서 온 스토가 파랄(Stoga Faral·24) 씨는 한국에 온 지 4개월이 되었다. 폴란드는 아직 원전이 없다. 물론 원자력 공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있지만 발전소가 없기에 한국 유학길에 오를 결심을 했다.
“킹스에 와서 원자력 산업의 경험 많은 교수와 만나 대화하는 게 즐겁습니다. 폴란드는 탄소 중립 정책 때문에 원자력으로 전력산업을 전환하려는 국가적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공부가 조국 폴란드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 원전이 EU에서 어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경험’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구체적으론 지난 30년간 계속 원전을 건설한 ‘경험’이 있고 UAE에 수출한 ‘경험’이 있으며 꾸준히 원전산업을 키워온 ‘경험’이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강점이자 신뢰라고 봅니다.”
“한국과 체코, 상호 보완 가능”
한수원에 재직 중인 김정호(45)씨는 원자력산업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부 때 전공은 토목공학이다.
“2006년 한수원에 입사한 후 치열한 부서에서도 일해봤고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는데 킹스에 와서 원자력이란 새로운 분야를 다시 접하게 되어 가슴이 뛰고 있어요. 2년간 배우며 다져놓은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국제적 사업에 참여하고 싶고 개인은 물론 국가나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체코에서 온 마렉 코페체크(Marek Kopecek·27) 씨는 킹스 원자력산업과에 재학 중이다. 작년 2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킹스에 오기 전 브르노 공대(Brno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에너지 및 열수력 공학을 전공했다. 체코에는 원전이 두 곳 있는데 그중 한 곳인 두코바니(Dukovany)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린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저의 우선 관심사는 원자력 안전, 그리고 한국과 체코 양국 간의 협력 강화, 특히 원전산업과의 협력입니다. 한국의 원전, 전자, 자동차 및 IT산업에서의 고급 전문지식은 체코의 강한 산업 기반, 제조 및 공학 분야의 숙련된 인력과 상호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졸업 후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브르노 공대로 돌아가 체코에서의 마지막 석사 과정의 학기를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향후 체코에서 원자력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이반 팬시악(Ivan Panciak·25) 씨 역시 작년 2월 한국에 왔다. 원자력산업학과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 오기 전 슬로바키아기술대(STU)에서 원자력 공학 및 물리학을 공부했다.
“제가 원자력 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수학, 물리학, 화학에 대한 관심이 원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요. 모국 슬로바키아는 국가 전력의 67%를 원전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내년에 6번째 원자로가 가동됩니다. 그 비율은 더 증가할 겁니다.”
슬로바키아는 9개의 원자로가 있는데 3개는 폐기 단계에 있고 5개는 가동 중이다. 1개는 건설 중이라고 한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550만 명에 불과하지만 원전 강국이죠. 원자력 공학 졸업생 수요가 대학에서 배출하는 학생 수보다 많고 비전이 큽니다. 한국은 SMR 기술과 APR1400을 포함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슬로바키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기술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인터뷰한 유학생들은 모두 눈빛이 빛났고, 설명하는 말에서 개인적인 희망을 넘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애정 어린 사명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고리 원전은 축적된 한국 원전 기술의 상징”
기자는 고리 원전으로 이동했다. 킹스에서 고리 원전(본부동)까지 거리는 차로 7분 정도다. 또 킹스에서 신고리 1·2호기까지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과장을 보태면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한국 원자력 산업의 비전이 밝은 이유다.
고리 원전을 앞에 둔 푸른 바다를 보았다. 넘실대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둥근 돔에서 ‘빛의 전사’가 나와 한국 경제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끌어올렸다. 고리 원전이 없었다면, 원전의 기술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실력은 현재 성취의 절반으로 줄어들지 모른다.
고리 원전 대외협력처 정재락 처장과 류봉호 부장을 만났다.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로서 1978년 4월에 상업 운전을 처음 시작했다. 한국 원전의 대들보이자 산 역사다. 한 시절을 풍미한 뒤 2017년 영구 정지되었다. 1983년 고리 2호기, 85년 고리 3호기, 86년 고리 4호기가 각각 가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신고리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갔고 이듬해 신고리 2호기도 운행을 개시했다. 현재 한수원 직원 1499명과 협력회사 1398명 등 2897명이 일하고 있다. 정재락 처장은 “고리 원전은 부산·울산·경남 전력 소비량의 34.8%인 3만508GWh를 생산하고 있다”며 “한국 원전의 오래 축적된 기술의 상징이 고리 원전에 있다. 킹스에서 배출된 인력이 고리로 이어져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자긍심을 표명했다.
새울 원전은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해 있다. 킹스에서 차로 2~3분 거리에서 새울 1·2호기와 3·4호기를 모두 만날 수 있다. APR1400 노형의 최초 발전소인 새울 1·2호기는 모두 정상 운전 중이다. 새울 3·4호기는 한창 건설 중에 있다.
흥미롭게도 새울 원전 입구에 APR1400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 원전의 신상 수출 모델이자 미래를 담은 역작이다. 한국 표준형(OPR1000) 원전에 비해 최신 설비를 도입해 안전성을 대폭 강화시켰다. 이들 직원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새울은 원전 10기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
새울 원전 홍보부 이승락 부장은 “새울 본부는 국내 원전산업의 기술과 건설 경험, 운영 노하우의 결정체다. 신규 원전 도입을 희망하는 국가의 정부와 원자력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새울 3·4호기는 2024년 5월 말 기준 사업 종합 공정률 93.3%에 이른다. 백승우 차장은 “새울 본부의 경우 수출 노형인 APR1400 발전소 노형만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한국 원전의 미래가 새울이다. 새울은 세계 최고의 원전 운영과 건설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한국형 원전 홍보의 전략적 요충지다. 원전 10기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언급했다.
고리 원전과 새울 원전, 그리고 한수원 인재개발원 부지에 우뚝 솟은 킹스가 원자력 협력 네트워킹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체코와 폴란드 원전을 우리가 수주하게 되면 이들 국가의 학생, 엔지니어들이 한국 킹스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킹스의 위상 또한 올라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원자력 학교로 등극할 것이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한국이 글로벌 원자력 산업의 허브가 되어 새롭게 비상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여러 현장을 돌아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바다에는 여전히 평화로운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비록 보안상의 이유로 속 시원히 둘러볼 순 없었지만 어쨌든 일부만이라도 한국 원자력 산업단지를 호령(號令)하는 백마와 적토마, 얼룩빼기 말들의 용약(勇躍)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킹스(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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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대형 원전 10기가 있다. 또 한수원 본사(경북 경주)와 고작 1시간 거리고 원전의 기기를 제작하는 두산에너빌리티(경남 창원)와 2시간 거리다. |
몇 달 전부터 엄경식 한수원 국민소통담당관이 기자에게 킹스를 보여주길 원했다. 킹스에 다녀와야 한수원의 실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엄 담당관의 말이다.
“김 기자! 킹스 주변에 대형 원전 10기가 있어요. 물론 1기는 해체(고리 1호기)를 준비 중이지만 나머지 7기는 운영 중이고 2기는 건설 중이죠.”
심지어 한수원 인재의 보고(寶庫)인 인재개발원 내에 위치한 킹스는 한수원 본사(경북 경주)와 고작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원전의 주요 기기를 제작하는 두산에너빌리티(경남 창원)와는 2시간 거리,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원자력환경공단(경북 경주) 또한 1시간 거리에 있다.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가 이곳에 있음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엄 담당관의 말이다.
“이해되지요? 바로 한수원 인재개발원 부지에 킹스가 자리 잡고 있어요. 킹스에서 원전 전문가를 양성하는데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해외 유학생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됩니다.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되고요.”
기자는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원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유학생 비율이 국내 재학생 비율에 거의 육박하다니…. 나중에 관련 자료를 통해 알게 됐는데 2024년 현재 원자력산업학과와 에너지정책학과 등 2개 과에서 국내 학생 61명, 해외 학생 48명이 ‘열공’ 중이다.
학년별로 보면 1학년은 10개국에서 온 26명의 해외 학생과 22명의 국내 학생, 2학년은 14개국에서 온 25명의 해외 학생과 34명의 국내 학생이 재학 중이다. 또 올해 처음으로 박사 과정을 교육부로부터 인가(認可)받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정원 10명 중 4명을 선발해 K-원전의 미래를 심도 있게 본격적으로 개척 중에 있다.
“전 과목 영어로 가르쳐”
엄 담당관의 승용차를 타고 킹스에 도착했다. 캠퍼스와 맞닿은 동해 바다의 파도가 평화롭게 철썩이고 있었다. 바다와 마주한 해군사관학교가 바다의 전사(戰士)를 양성하는 곳이라면 킹스는 빛의 마법사를 키우는 곳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킹스 법인사무국 이재수 차장의 안내로 김민철 사무국장을 가장 먼저 만났다.
김 국장은 “국내 원자력 공학과를 보유한 대학이 16곳이나 되지만 그럼에도 킹스가 설립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킹스는 국내 원자력 산업의 기술과 건설 경험·운영 노하우의 결정체이자 제3세대 원전인 APR1400을 아예 교과목으로 선정해 현장 실무 중심의 교육을 합니다. 국내 일반대학의 원자력 공학과에서 학문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과는 다르죠. 또한 우린 전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칩니다.”
게다가 원자력 분야의 신뢰도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증표(證票)로 국내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인증을 받았다고 김 국장이 설명했다.
IAEA 이름으로 인증서를 부여하는 대학은 킹스가 국내 처음이고 아시아에서는 도쿄대에 이어 두 번째, 세계에서는 9번째 대학이란다. 김 국장은 “지난 2년간 심사 과정을 거쳐 작년 최종 인증을 받았다. ‘원자력 산업공학 프로젝트 관리 및 건설’ 트랙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석사 학위는 물론 IAEA와 킹스의 공동 인증서를 함께 취득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김 국장이 널따란 회의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킹스의 베테랑 야전(野戰) 지휘관들이 열의에 찬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킹스의 총장은 공석이다. 제4대 유기풍 총장이 지난 4월 퇴임해 현재 새로운 총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체코와 폴란드 원전 수주를 앞두고 이 대학의 위상이 커진 만큼 총장의 위상과 역할도 동시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APR1400 노형(爐形)은… 100만kWe급 한국 표준형 원전(OPR1000, 신고리 1·2호기 / 신월성 1·2호기)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표준설계 인가를 받은 차세대 원전을 APR1400이라고 부른다. 140만kWe급 신형 경수로(새울 1·2호기)다. 기존 대비 발전용량이 약 40%나 증가됐다는 점에서 한국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체코와 폴란드에 원전을 짓게 되면 바로 이 APR1400을 건립하게 된다. 현재 가동 중인 새울 1호기가 APR1400이다. 2016년 12월 세계 최초로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새울 2호기는 국내 원전 최초로 단 한 번의 고장이나 정지 없이 시운전 시험을 완벽하게 마치고 2019년 8월부터 가동 중이다. 미국과 프랑스가 건설 중인 제3세대 신형원전(AP1000, EPR)보다 가장 먼저 상업 운전을 시작, 원전 건설 능력을 대외로 널리 알리게 되었다. |
UAE에 원전 수출하면서 설립
킹스 대외처 조철성 실장이 대학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이력을 자세히 브리핑해주었다.
“킹스는 지난 2009년 UAE에 처음으로 원전 수출을 하면서 대학 설립 타당성 검토가 시작됐고 2011년 교육부로부터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어요.”
― 전문 교육기관 설립은 UAE 원전 수주와 관련이 있었나요?
“그럼요. UAE 정부 쪽이 내민 사이드 계약서에 교육훈련 요청이 있었고 양국 정부가 상호 합의하에 전문 교육기관이자 대학원대학교로 킹스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2024년 현재 킹스 졸업생 수는 모두 552명에 이른다. 2014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해 지난 10년 동안 국내 졸업생이 286명, 유학생 졸업생이 266명에 이른다. 국내·해외 비율이 반반(半半)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66명 중에서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국가는 케냐(49명)다. 10명 이상 석사 졸업생을 배출한 국가는 베트남,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공, 가나를 들 수 있다. 폴란드 국적의 졸업생은 9명에 이른다. 체코 졸업생도 2명이다.
이에 대해 조철성 실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 학생은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유관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직원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해외 학생은 에너지 분야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재직자 및 대학생들로 구성돼 있어요.”
킹스 교학처 임학규 처장은 “사실 폴란드나 체코에서 한국으로 원자력을 공부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며 그 배경에 어떤 것이 뒷받침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동구권 국가들은 공학이나 항공산업 기반이 한국보다 튼튼하고 오래됐어요.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대의 경우 노벨물리학상을 두 차례나 받은 퀴리(Marie Curie) 부인을 배출한 곳입니다. 체코의 몇몇 대학은 기본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씩 있을 정도죠. 처음엔 이들 나라에 한국 원전을 이야기하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크게 발달했고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며 거기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 학생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럽 순방기간 중에 폴란드에 들러 일부러 바르샤바대를 찾아간 일도 있다.
임 처장은 “지난 3~4년 동안 폴란드와 지속적인 신뢰를 쌓아오는 과정이 있었고, 올해 폴란드에서 7명의 신입생이 킹스에 입학했다”면서 신뢰를 쌓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사실에 기뻐했다.
― 학생들은 어떻게 뽑나요? 경쟁률은?
“보통 경쟁률이 2.5대 1에서 3대 1에 이릅니다. 폴란드에서 학생들을 추천하면 선발은 우리 대학이 직접 합니다.”
듣고 있던 김민철 국장이 “개인이 아닌 국가에서 학생을 모집해 추천하면 면접과 학업계획서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한다. 그러니 그들 나라의 자체 경쟁률까지 감안하면 무시 못 할 수준이다”고 귀띔했다.
소형모듈원전 SMR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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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의 비전과 관련해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대학 교수 관계자들이다. 왼쪽부터 이인규 기획총무처장, 김긍구 석좌교수, 김주열 대외처장, 임학규 교학처장, 김민철 법인 사무국장, 조철성 대외처 실장. |
어쨌든 그럼에도 SMR 분야에서 한국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LNG와 석탄의 자리를 이 SMR이 차지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과학기술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원자력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해외 국가의 정부 대표단 중 2명이 우리 킹스 출신이더군요. 남아공과 우즈벡 출신인데 그중 한 명은 저에게 수업을 들었던 제자여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김긍구 석좌교수는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 38년 7개월 동안 근무했다. 미국 유학 생활 3년 3개월을 더하면 40년 넘게 오로지 원자력 연구에 매진한 셈인데 이 가운데 25년을 SMR 연구에 온 영혼을 바친 것이다.
“요즘 원자력 산업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SMR입니다. 제가 개발하면서 느낀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그 나라에 우리가 개발한 SMR을 수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킹스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 해외 학생들이 뛰어나던가요.
“재미있게 많이 따라옵니다.”
다음 문장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형광펜을 그어야 되는 듯, 강한 다짐이 묻어났다.
“원자력 공학 쪽의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이들도 꽤 있어요. 이런 친구들도 쉽게 이론과 실무를 체험하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연구하고 개발한 한국 SMART의 우수성을 교육하고 수출하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킹스의 해외 유학생 교육은 투자라고 볼 수 있지요.”
대학 기획총무처 이인규 처장은 킹스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강점이 뭡니까.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아닙니까. 주어진 예산 내에서 공기(工期)를 맞출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아시겠지만 과거 프랑스가 UAE에 원전을 수출하며 UAE에다 제2의 루브르 박물관을 지어주겠다, 미라주 전투기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원전 수주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대학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원자력 실무 특성화 학교입니다. 한국 원전을 도입하는 국가들에 최고의 전문 기술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게끔 돕고 있습니다.”
대외협력처 김주열 처장은 “바야흐로 때가 왔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게 원전산업”이라고 했다.
“원전, 단순히 물건 판다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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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킹스 졸업식 모습이다. 해외 졸업생들의 대사들이 참석해 졸업식을 빛냈다. 지난 2014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해 10년 동안 국내 졸업생 286명, 유학생 졸업생 266명을 배출했다. |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EU가 우리나라 원전 수출의 최대 시장이 됐습니다.
스웨덴은 탈원전을 선언했다가 이제 대형 원전과 SMR 몇 기를 짓겠다고 방침을 바꿨고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이탈리아도 원전을 짓겠다는 논의가 그 나라 국회에서 나오고 있죠.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陣營)을 떠나 원자력 촉진법을 제정할 움직임입니다.”
김 처장은 “원자력 르네상스가 다시 한 번 도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원자력은 ‘브레인 에너지’입니다. 단순히 원전 한 기를 지어준다는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100년 대계의 국가 간 파트너십이 원자력 산업입니다.”
― 말씀하신 100년 대계(大計)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요.
“보통 원전 건설에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운영하는 데 평균 60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안전성 여부를 확인한 뒤 정상 가동을 마치고 원전을 해체하는 데 또 몇십 년이 걸립니다. 이렇게 따지면 거의 1세기가 필요하죠.”
― 말씀을 듣고 보니 엄청난 장치 산업이네요.
“맞습니다. 원전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개념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또 기술 수출로도 시원한 답을 줄 수 없어요. 원자력 교육을 통한 상호 이해를 통해 관련 사람과 기술의 교류를 넘어 외교, 경제, 과학기술, 문화까지 100년 동안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원자력을 매개로 한 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한국 원전의 강점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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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전경이다. 현재 고리 2~4호기, 신고리 1~2호기를 운영 중이다. |
원자력정책학과(Energy Policy & Engineering)는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전력 계통 이론과 세계 전력 계통 시장체제에서의 전력 경제 이론과 자금 조달, 기업 투자 등을 배운다.
원자력산업학과 학생들은 2년간 킹스에서 석사 과정 프로그램이 진행되지만 에너지정책학과의 경우, 국내 학생은 1학년 전체 과정을 해외 학생들과 함께 수학한 뒤 2학년 1학기는 독일 안홀트대(Anhalt University)로 옮겨 한 학기 동안 MBA 과정을 배운다. 졸업할 때 석사 학위와 함께 MBA 학위까지 받는다.
기자는 킹스에서 한국 원자력 산업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폴란드에서 온 스토가 파랄(Stoga Faral·24) 씨는 한국에 온 지 4개월이 되었다. 폴란드는 아직 원전이 없다. 물론 원자력 공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있지만 발전소가 없기에 한국 유학길에 오를 결심을 했다.
“킹스에 와서 원자력 산업의 경험 많은 교수와 만나 대화하는 게 즐겁습니다. 폴란드는 탄소 중립 정책 때문에 원자력으로 전력산업을 전환하려는 국가적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의 공부가 조국 폴란드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 원전이 EU에서 어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경험’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구체적으론 지난 30년간 계속 원전을 건설한 ‘경험’이 있고 UAE에 수출한 ‘경험’이 있으며 꾸준히 원전산업을 키워온 ‘경험’이 있잖아요. 그런 경험을 강점이자 신뢰라고 봅니다.”
“한국과 체코, 상호 보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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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울 원전은 제3세대 원전인 APR1400을 운영, 건설하고 있다. 새울 원전 본부의 모습이다. |
“2006년 한수원에 입사한 후 치열한 부서에서도 일해봤고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는데 킹스에 와서 원자력이란 새로운 분야를 다시 접하게 되어 가슴이 뛰고 있어요. 2년간 배우며 다져놓은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국제적 사업에 참여하고 싶고 개인은 물론 국가나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체코에서 온 마렉 코페체크(Marek Kopecek·27) 씨는 킹스 원자력산업과에 재학 중이다. 작년 2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킹스에 오기 전 브르노 공대(Brno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에너지 및 열수력 공학을 전공했다. 체코에는 원전이 두 곳 있는데 그중 한 곳인 두코바니(Dukovany)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린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저의 우선 관심사는 원자력 안전, 그리고 한국과 체코 양국 간의 협력 강화, 특히 원전산업과의 협력입니다. 한국의 원전, 전자, 자동차 및 IT산업에서의 고급 전문지식은 체코의 강한 산업 기반, 제조 및 공학 분야의 숙련된 인력과 상호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졸업 후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브르노 공대로 돌아가 체코에서의 마지막 석사 과정의 학기를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향후 체코에서 원자력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이반 팬시악(Ivan Panciak·25) 씨 역시 작년 2월 한국에 왔다. 원자력산업학과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 오기 전 슬로바키아기술대(STU)에서 원자력 공학 및 물리학을 공부했다.
“제가 원자력 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수학, 물리학, 화학에 대한 관심이 원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요. 모국 슬로바키아는 국가 전력의 67%를 원전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내년에 6번째 원자로가 가동됩니다. 그 비율은 더 증가할 겁니다.”
슬로바키아는 9개의 원자로가 있는데 3개는 폐기 단계에 있고 5개는 가동 중이다. 1개는 건설 중이라고 한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550만 명에 불과하지만 원전 강국이죠. 원자력 공학 졸업생 수요가 대학에서 배출하는 학생 수보다 많고 비전이 큽니다. 한국은 SMR 기술과 APR1400을 포함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슬로바키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기술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인터뷰한 유학생들은 모두 눈빛이 빛났고, 설명하는 말에서 개인적인 희망을 넘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애정 어린 사명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고리 원전은 축적된 한국 원전 기술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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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정재락 대외협력처장. |
고리 원전을 앞에 둔 푸른 바다를 보았다. 넘실대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둥근 돔에서 ‘빛의 전사’가 나와 한국 경제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끌어올렸다. 고리 원전이 없었다면, 원전의 기술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실력은 현재 성취의 절반으로 줄어들지 모른다.
고리 원전 대외협력처 정재락 처장과 류봉호 부장을 만났다. 고리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로서 1978년 4월에 상업 운전을 처음 시작했다. 한국 원전의 대들보이자 산 역사다. 한 시절을 풍미한 뒤 2017년 영구 정지되었다. 1983년 고리 2호기, 85년 고리 3호기, 86년 고리 4호기가 각각 가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신고리 1호기가 가동에 들어갔고 이듬해 신고리 2호기도 운행을 개시했다. 현재 한수원 직원 1499명과 협력회사 1398명 등 2897명이 일하고 있다. 정재락 처장은 “고리 원전은 부산·울산·경남 전력 소비량의 34.8%인 3만508GWh를 생산하고 있다”며 “한국 원전의 오래 축적된 기술의 상징이 고리 원전에 있다. 킹스에서 배출된 인력이 고리로 이어져 원자력 산업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자긍심을 표명했다.
새울 원전은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해 있다. 킹스에서 차로 2~3분 거리에서 새울 1·2호기와 3·4호기를 모두 만날 수 있다. APR1400 노형의 최초 발전소인 새울 1·2호기는 모두 정상 운전 중이다. 새울 3·4호기는 한창 건설 중에 있다.
흥미롭게도 새울 원전 입구에 APR1400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 원전의 신상 수출 모델이자 미래를 담은 역작이다. 한국 표준형(OPR1000) 원전에 비해 최신 설비를 도입해 안전성을 대폭 강화시켰다. 이들 직원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새울은 원전 10기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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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새울 원전 이승락 홍보부장, 백승우 파트장. |
새울 3·4호기는 2024년 5월 말 기준 사업 종합 공정률 93.3%에 이른다. 백승우 차장은 “새울 본부의 경우 수출 노형인 APR1400 발전소 노형만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한국 원전의 미래가 새울이다. 새울은 세계 최고의 원전 운영과 건설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한국형 원전 홍보의 전략적 요충지다. 원전 10기 수출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언급했다.
고리 원전과 새울 원전, 그리고 한수원 인재개발원 부지에 우뚝 솟은 킹스가 원자력 협력 네트워킹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가웠다.
체코와 폴란드 원전을 우리가 수주하게 되면 이들 국가의 학생, 엔지니어들이 한국 킹스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킹스의 위상 또한 올라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원자력 학교로 등극할 것이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한국이 글로벌 원자력 산업의 허브가 되어 새롭게 비상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여러 현장을 돌아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바다에는 여전히 평화로운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