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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生死라도 알려다오”, 실종자 가족들의 삶

“32년 동안 단 한순간도 웃지 않았어요”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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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시체 발견됐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더 힘들다는 점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비슷
⊙ 의료진 “나와 내 가족이 힘든 기억을 넘어 자신의 삶을 살아야”
⊙ 전단 돌릴 땐 냉담한 반응, 윤락가에선 맞을 뻔하기도
실종된 송혜희씨를 찾는 현수막이 수도권 도심 곳곳에 걸려 있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실종된 송혜희를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나 광화문 거리는 물론 수도권 도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플래카드다. 플래카드에 적혀 있는 바에 의하면, 송혜희씨는 17세던 1999년 2월 13일 오후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 근처에서 실종됐다. 현재 나이는 41세.
 
  24년이 넘도록 잃어버린 딸을 찾고 있을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장기(長期) 실종자에 대한 취재에 나서게 된 이유다.
 
 
  “이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
  “장기 실종자의 가족들은 보통 세 단계를 거쳐요. 우울증, 트라우마, 분노조절 장애 순서예요.”
 
  나주봉(66)씨가 와이퍼를 가동시키며 말했다. 비가 쏟아지던 11월 3일, 이른 아침부터 청량리 사무실을 나선 그는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나씨는 2001년 ‘사단법인 전국 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을 만들고 지금까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량리역 앞에 있는 컨테이너 하나가 그의 사무실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시계는 과거에 멈춰 있다. 십수 년 전 기억이 마치 어제 일 같다. 이날 나씨가 찾아간 사람도 그중 하나다. 나씨를 따라가 이동세(85)씨를 만났다. 산속에 집 한 채와 비닐하우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씨는 2006년 실종된 전북대 수의학과 학생 윤희씨의 아버지다. 이씨의 침대맡엔 딸 윤희씨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지금도 어디서 시체가 발견됐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하다”고 말했다.
 
2006년 실종된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실종 당시 29세)씨의 아버지 이동세(85)씨.
  앞서 2006년 6월 전북대 수의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윤희(당시 29세)씨는 종강 모임을 마치고 사라졌다. 윤희씨의 동기생이자 남자친구였던 A씨가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윤희씨의 컴퓨터에서 ‘112’와 ‘성(性)추행’이라는 검색 기록이 발견되는 등 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지만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TV에 한 다섯 번 정도 나가봤어요. 그때 느낀 게, 참 나한테 도움이 안 되더라고. 어떤 경우엔 흥미 위주로 흐르더라고요. 이젠 수사도 다 끝난 거야. 벌써 십몇 년이 지나고 하니까 이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동세씨는 오랜 세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A씨가 범인이라는 확신이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A씨의 학교와 직장을 쫓아다니며 1인 시위를 했다. 이러한 의심이 이씨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혔는지는 그가 2008년 제작한 전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씨는 딸의 실종 사건을 밝히는 데 결정적 제보나 역할을 해준 사람에게 1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유력한 용의자 A씨가 이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법률적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의 정황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으로 증명해주시는 분”에게도 같은 금액을 내걸었다. 이씨에게 ‘신체 또는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아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 “나는 윤희 일 때문에 신체나 정신적으로 병이 올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씨는 “술은 기분 좋을 때 먹는 것”이라며 “딸이 실종돼 기분 좋을 때가 없으니 술도 끊었다”고 했다. 이씨를 곁에서 지켜봐 온 나주봉씨에 의하면, 이씨는 한때 분노조절장애까지 겪었다고 한다. 이날 이씨는 A씨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종종 과격한 언사를 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의 공통점
 
  의학적인 측면에서, 장기 실종자의 가족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겪는 스트레스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땐 종교를 갖는 걸 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 실종자 가족을 진료한 경험이 있는데, 이러한 환자의 경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얘기다.
 
  “장기 실종자 가족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정말 심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수용하거나, 못 받아들이겠으면 행동으로 바꾸거나. 둘 중 하나가 돼야 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 사망했으면 결론이 나잖아요. 하지만 장기 실종자의 경우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불확실하니까요. 이게 정말 힘듭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에 대해 (유가족들이) 얘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전문가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납득할 수가 없어요. 이럴 땐 종교를 갖는 게 도움이 됩니다. 저는 장기 실종자의 가족이 힘들다고 하면 치료도 하지만 종교를 갖는 것도 권해요. 내가 이성적(理性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신앙과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이죠.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수용하기가 어려워요. 장기 실종이라는 게 현대사회에서 납득하기가 어렵잖아요. 교통사고는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 실종자 가족을 부모, 형제 등으로 분류했을 때 각자 받는 스트레스는 어떤 게 있을까요.
 
  “대개 가장의 경우 자기가 역할을 못 했다고 생각하고 자책감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어머니로서는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죠. 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실종자 가족들은 책임을 상대방에게 투사(投射)하는 경우가 있어요. 네가 똑바로 못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런 얘기들을 하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져요. 누가 딱히 더 잘못한 게 없어도 그래요. 아이를 잃은 부모를 예로 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상황에 대한 분노, 관리를 하지 못한 타인에 대한 분노가 쌓이는 거예요. 누군가의 잘못이 명확하다면 거기에다가 원망을 쏟아부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잖아요. 또 분위기가 화목해지면 실종 자녀가 있었던 때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대화도 없어지고 그런 분위기를 극도로 피하게 되죠.”
 
 
  딸이 자취하던 원룸에서 몇 년간 살기도
 
  ―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 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나요.
 
  “아주 높죠. 특히나 자녀 문제가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우울장애라든가 공황장애 등이 올 수 있습니다.”
 
  ― 이러한 경우, 어떨 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야 할까요.
 
  “통상적으로 충격적인 일이 있고 나서 3~4개월이 지나면 상태가 안정될 때가 되어간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 기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전문가를 찾는 게 맞아요. 실종 사건의 경우는 쉽지 않겠지만요.”
 
  ― 실종된 자녀의 사진을 벽에 붙이는 건 괜찮을까요.
 
  “그게 사실 적절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분들은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행동을 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견디려는 거예요.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죠. 근데 이 방법이 맞지는 않아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 삶을 소화하며 사느냐가 내 가족, 주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요.”
 
  ― 그런 분들이 병원에 오면 어떤 상담을 받나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역경이 있더라도 스스로 행복을 찾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 나와 내 가족이 힘든 기억을 넘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게끔 해요.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상담을 해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역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왜 그렇게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걸림돌은 무엇이 있고, 해결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입니다.”
 
  한편 윤희씨의 어머니는 매일 유튜브를 통해 딸의 실종 사건을 다룬 영상들을 본다. 자꾸 봤더니 ‘추천 영상’엔 늘 비슷한 내용이 올라온다. 이동세씨 부부는 단서 하나라도 더 찾아보겠다며 윤희씨가 자취하던 원룸에 들어가 수년을 머물렀다. 언론과 수사기관에서 자주 찾아오다 보니 집주인은 방을 빼달라고 사정했다.
 
 
  아들은 실종, 아내와는 사별
 
1999년 실종된 성길이(현재 나이 39세)의 아버지 장흥재(59)씨.
  “집사람 49재 때 약속을 한 게 있어요. 내가 앞으로 5년 동안 2주에 한 번씩은 꼭 올게. 술도 안 마실게. 둘만의 약속이에요.”
 
  11월 2일은 햇볕이 쨍쨍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만난 장흥재(59)씨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2020년 6월 28일 아내와 사별했다. 1999년 1월 27일 실종된 아들 성길이(현재 나이 39세)를 찾아 헤매고, 때론 잊어보려고 발버둥 친 세월만 20년이 넘었다.
 
  성길이는 1989년 태어난 지 29일 만에 자폐(自閉) 판정을 받았다. 그래도 치료만 잘하면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희망을 가졌다. 부부는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온 정성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에 간 성길이는 교사에게 물을 달라고 하고는 뒷문으로 나가 그대로 행방불명됐다. 엄동설한에 외투도 입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성길이는 그렇게 사라졌다. 성길이가 유치원에 두고 간 외투엔 연락처와 이름이 남아 있었다. 부부는 넋이 나갔다. 전국을 떠돌며 전단을 돌렸다. 생업은 뒷전이 됐다. 빚은 쌓여만 갔다. 하고 있던 모텔 사업도 2009년 접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부동산, 건설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아내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떠올리며 지친 마음을 달래 보려 애썼다. 2019년엔 지인이 괜찮은 사업을 제안했다. 성길이를 찾고 집을 지어 셋이서 함께 오순도순 살아갈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듬해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했다.
 
  “내 운(運)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장씨는 아내를 괴롭힌 직장 상사를 해치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아내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기에, 법적으로 맞서보기로 했다. 그리고 2022년 5월 26일 수원지방법원 제8민사부는 장씨의 아내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수원지법은 해당 직장 상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망인을 괴롭혔다”며 장씨에게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탑돌이
 
  그러나 장씨가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성길이를 잃고 안 나가본 다큐멘터리가 없었다는 그였지만 의미 있는 도움이 되진 않았다. 이제 그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두 개나 안고 살아가야 한다.
 
  “2009년인가, 집사람이 태백산에 있는 현불사(現佛寺)에 간 적이 있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탑(塔)을 돌았어요. 천탑(탑을 1000번 도는 데)에 15일이 걸리는데, 이 사람이 1만2000탑을 돌았어요. 스님이 보다 못해서 ‘9000탑이면 족하다, 그 이상은 욕심이다’라면서 말렸어요.”
 
  그토록 헌신적인 아내였기에, 재혼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있다.
 
  “주위에서 혼자 있는 제 처지를 딱하게 여겨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절대 그럴 생각은 없어요. 이 사람(아내)이 그렇게 갔는데….”
 
  장씨는 아내가 투병할 때 곁을 지켰다. 간병인은 딱 하루, 토요일에 집에서 쉬고 오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누운 아내에게 “금방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아내는 “잘 다녀와”라고 했다. 부부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날 저녁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내가 심정지 상태가 되었는데, 소생술을 해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두 번째 전화가 왔다. 또다시 심정지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에 “이제 그만해 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삼켰다.
 
  외아들의 장기 실종, 아내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사별까지 모두 겪은 장씨는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울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예전엔 우울증도 겪었지만 이젠 이따금 눈시울이 조금 붉어질 뿐,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살아가고 있다.
 
 
  전단 쓰윽 보더니… “사창가에 있더라”
 
1991년 실종된 유리(현재 나이 43세)의 아버지 정원식(74)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단을 돌리다가 있었던 일이에요. 화물차 기사들은 전국을 다니잖아요. 전단을 받더니 얘기를 해주는 거야. 어디 어디 홍등가에 가면 몇 살쯤 먹은 애들이 있다. 그러면서 또 그런 데서 자고 왔다고 얘길 해요. 그러면 또 그 말만 듣고 그 장소를 찾아가는 거예요.”
 
  경기도 안산에서 만난 정원식(74)씨는 32년 동안 단 한순간도 웃어본 적이 없다. 1991년 8월 5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1동에서 딸 유리(현재 나이 43세)가 납치됐다. 정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국을 떠돌며 전단을 돌렸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외면하는 이들에게도, 퉁명스럽게 ‘툭’ 치고 가는 이들에게도 매정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원망을 해도 자기 자신을 탓했다.
 
  “솔직히 관심 있게 봐주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내가 잘못해갖고 내 자식 잃어버렸으니 할 수 없지….”
 
  가끔 제보가 왔다. 한밤중에 장난전화도 많이 받아봤다. 노숙자, 윤락녀 등 누군가 생김새가 비슷한 이를 제보하면 곧장 달려갔다.
 
  “유리를 찾으려고 천호동에 있는 윤락가에 갔다가 얻어맞을 뻔한 적도 있어요. 논산에도 가봤어요. 어디서는 껌을 팔고 있더라, 앵벌이를 하고 있더라,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찾아다녔어요. 정신병원도 찾아가 봤는데 거기선 안 보여주기 때문에 몸싸움을 해가며 한번만 확인시켜달라고 했어요. 호남 쪽에 어떤 종교 단체에선 목사라는 사람이 ‘왜 자식 잃어버리고 우리한테 와서 못 살게 구냐’고 했어요. 그때 정말 마음이 무너져 내렸어요.”
 
  비록 유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보를 해주는 이들에겐 늘 고마웠다. 40대 아주머니들이 가장 많이 제보했다. 하지만 이젠 전단을 돌리지도 못한다. 정씨가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정씨 부부는 2021년 6월 14일 KBS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의 힘을 빌려 유리를 찾으려 했다. 전단을 돌리고 남은 하루를 술로 버티던 생활도 이때부터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술은 더 늘었다. 소주 다섯 병 분량의 페트병 소주가 이틀이면 동난다.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지쳤다. 머리에 5.5cm 종양이 생겼고 한쪽 눈은 실명했다. 귀도 어둡기만 하다. 이제 더 이상 전단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면허증은 진작에 반납해서 예전처럼 전국을 다닐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낸다.
 
 
  밥은 거른 채 하루 1000장을 돌리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침 9시에 배낭을 짊어지고 나가서 오후 4~5시쯤 돌아왔다. 하루에 1000장 정도를 돌렸다. 밥은 거른다. 점심 먹을 시간에 전단 한 장이라도 더 돌렸다. 돌아와선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면서도 정씨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다. 벽에 대고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잠이 든다.
 
  “유리야, 아빠 죽기 전에 한 번 만나자. 아빠 죽기 전에 빨리 보자….”
 
 
  ‘금기어’가 된 이름
 
  연말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일 때면 ‘유리’라는 이름은 금기어가 된다. 유리의 여동생과 남동생 두 명은 벌써 마흔을 넘겼다. 모두 결혼해서 각자 잘 살고 있다. 유리씨 어머니도 눈시울을 붉혔다.
 
  “서로 간에 아픈 저기라서… 명절 때 유리 얘기는 입도 뻥긋 안 해요. 요즘 어떻게 살았나, 그 얘기만 하지. 친척들도 많이 도와줬지만 세월이 지나니 이제 다 잊고…. 우리만 조용히 새록새록 생각나고 그러지. 차라리 죽었다면 가슴에 묻고 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지를 못하잖아.”
 

  길에서 손잡고 걸어가는 남녀를 보면 ‘저 사람이 우리 유리를 데려간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따라가서 ‘탁’ 잡았다가 시비가 붙기도 했다. 이젠 좀 웃고 사는 게 어떻겠냐는 물음에 유리씨의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몸을 생각해서 좀 웃자고 얘길 해도 소용없어요. TV에서 웃긴 게 나와도 아무 표정 없이 멍한 상태예요.”
 
  ― 병원의 도움을 받아볼 생각은 해보셨나요.
 
  “본인(정씨)이 안 가. 정신과 접수해놨다가도 취소한 적도 있고, 많아요. 치매도 걱정되고 병원 예약해놓고 안 간 적도 몇 번 있어요.”
 
  거실 벽면에 걸린 표창장이 눈길을 끌었다. 유리씨의 어머니가 지난 5월 이민근 안산시장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유리씨의 어머니는 집 근처 선부동의 한 빌라에서 불이 났을 때 집에서 따뜻한 물을 끓여 현장의 이재민들에게 전해줬다. 그는 “아이들을 보니 당연히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기사를 쓰게 된 발단이 된 송혜희씨의 아버지는 만나지 못했다. 전화로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었는데, 트럭에 올라서서 송혜희씨를 찾는다는 전단 박스를 정리하다가 미끄러져 다쳤다고 했다. 좀 더 자세한 사연을 듣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통화를 원치 않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분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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