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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법학의 ‘ㅂ’도 모르던 노문학도의 변호사 시험 합격기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간절함과 꾸준함으로!

글 : 공현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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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률 50%라는 말에 로스쿨 준비 시작… 추가합격자로 합격 후 꼴찌로 졸업
⊙ 짧은 로스쿨 3년 동안 다들 울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어
⊙ 첫 학기 성적, 민법·형법·헌법 모두 ‘C‐’ 학점
⊙ 2학년 겨울방학부터 부랴부랴 공부 시작… 잠 많은 약점 극복하려 ‘눈 떠 있을 때 공부하자’ 실천

孔炫淏
1992년생. 고려대 노어노문학·경영학 졸업,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AICPA) 합격, 2023 제12회 변호사 시험 합격, 現 로엘법무법인 근무
합격은 사실 지나친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변호사 시험 직전 1년만 죽어라 공부했지 그 이전은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노력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조선DB
  시험에 수석한 분들이나 쓰는 합격기를 쓴다는 것이 무척 망설여졌습니다. 공부를 중간 정도 한 것도 아니고, 로스쿨에서 평점 ‘꼴찌에서 2등(사실상 꼴찌나 마찬가지여서 이하 ‘꼴찌’로 씁니다)’으로 졸업하며 변호사 시험을 한 번에 붙은 것도 아닌, 재수해서 합격한 제가 합격 수기를 쓰는 것은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석한 분들의 이야기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처럼 로스쿨 꼴찌에서 눈물과 좌절을 겪으며 결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야기가 중도에 포기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위로나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고심 끝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씁니다.
 
 
  악몽 같은 날
 
  2022년 4월 20일은 저에게 악몽 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1년간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 때문에 합격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두 번 세 번 보아도 제 이름 석 자는 없었습니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할 때의 절망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눈앞이 정말 캄캄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같이 공부했던 친한 동기들이 모두 붙었다는 점과 작년에 했던 그 고된 여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인생에서 변호사 시험을 4번만 더 응시할 수 있다는 점도 제 마음속에 큰 짐으로 다가왔습니다.
 
  합격은 사실 지나친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변호사 시험 직전 1년만 죽어라 공부했지 그 이전은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노력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로스쿨 입학 때부터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로스쿨에 들어간 과정도 드라마틱했습니다. 학부 때 노어노문학과에 진학하여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면서 생각은 풍요로워졌지만, 러시아어에 재능도, 흥미도 없어서 경영학 이중 전공을 하며 경영학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포부를 가졌습니다. 박사 학위를 미국에서 받고 싶어, 경영학 전공과목을 모두 영어 강의로 들으면서,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AICPA)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우연히 ‘로스쿨 3년을 거치면 50%의 확률로 변호사가 된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50%? 둘 중 한 명은 되는 거 아닌가? 너무 쉬운데?”라는 너무나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LEET(로스쿨 입학시험)를 급하게 준비하기 시작했고, 4학년 여름에 응시하여 로스쿨에 합격하기 굉장히 애매한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2차로 로스쿨 추가합격
 
  해당 점수를 받고, 합격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 법학 관련 수업도 일절 들은 적 없이 로스쿨 원서를 썼고, 추가합격까지 불합격하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2019년 1월 말 어느 추운 날 대학교 열람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와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로스쿨 추가합격 전화였습니다. “공현호님 맞으시죠?”라고 하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로스쿨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릴 전조라는 것을.
 

  법학의 ‘ㅂ’도 모르는 상태에서 로스쿨에 입학한 저는 의욕만 앞서고, 머리는 안 따라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느끼는 그 간극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매일매일 꾸준히’라는 공부 패턴만으로는 로스쿨 수업 진도도 못 따라갔습니다. 즉 ‘미친 듯이 몰아칠 수 있어야’ 공부를 잘하는 구조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무조건 충분히 자야 머리가 돌아간다’는 바보 같은 고집이 있었는데, 시험 기간에 며칠간 밤을 꼴딱 새우는 동기들을 보면서 이 길은 정말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으면서도 법리를 술술 말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주눅 들 수밖에 없었고, 학부 때 항상 자신감에 차 있던 저는 로스쿨에 와서는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교수님 눈에 띄지 않는 뒷자리만 사수하는 습관까지 생겼습니다.
 
  심지어는 중간·기말고사를 볼 때마저 감독하시는 교수, 또는 조교들이 버벅대며 쓴 제 답안지를 볼까 봐 지레 부담스러워 뒷자리에 앉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학기를 보내며, 하루하루 매일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국 학사 경고를 받았습니다. 석차는 55명 중 52등이었습니다. 학점은 4.3 만점에 2.1점. 야구의 경우 평균자책점 1위 투수의 방어율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학점이었습니다. 민법, 형법, 헌법 모두 ‘C-’ 학점이었습니다.
 
 
  교수님 눈에 띄지 않는 뒷자리만 사수
 
  성적표를 받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등수는 처음이었습니다. 이건 정말로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하늘에서 “빨리 적성에 안 맞는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서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라”는 계시라고 여겨질 만큼 비참했습니다. 학교 진로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상담을 해보았더니 2명은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53명 중 52등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학년 2학기 학교 생활을 하면서, 밥을 먹을 때에도, 화장실을 갈 때도 ‘나는 뒤에서 2등’이라는 꼬리표가 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자리를 제공해주는 열람실에 가기도 부끄러워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누구도 제 성적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제 자신이 부끄러운 그런 감정을 경험하였습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있지만, 도무지 긍정적인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1년은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2학기 들어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고, 학점을 많이 올려서 간신히 유급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 결국 50% 이내에 들어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자퇴할 것인지, 휴학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상태로 끝까지 다닐 것인지 갈림길에서, 이미 1년은 학교 생활을 했다는 생각에 자퇴는 뭔가 아쉬웠고, 휴학을 선택하게 된다면 동기 없이 지금보다 더 홀로 지내 끝내 변호사 시험 합격을 못 할 것만 같았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부터 다시 시작!

 
생활적인 측면부터 180도 바꾸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나간 학교 성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1년이면 변호사 시험은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일단 버티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2학년을 어영부영 보낸 뒤, 2학년 겨울방학부터 부랴부랴 변호사 시험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한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한 친구들은 검사, 로클럭 임용 시험 준비를 하면서 변호사 시험 공부는 몇 개월 안에 벌써 끝내놓았는데, 제 수준은 정말 비교조차 창피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로클럭은 재판연구원을 말한다. 사법연수원이 없어지면서 로스쿨에서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지는 않고, 대신 판사 밑에서 검토보고서 등을 작성해주는 로클럭을 로스쿨에서 임용한다. 경력 법관 임용 시 로클럭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한다.)
 
  실력은 없고, 마음만 급한 나머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암기장(두꺼운 기본서를 축약한 요약서)들을 사 변호사 시험 기출 문제를 풀며 해당 책들에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단 외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생활적인 측면부터 180도 바꾸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나간 학교 성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1년이면 변호사 시험은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3학년 1년 동안 로스쿨 열람실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였으며 주말에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평일과 같은 시각에 등교하였습니다. 1, 2학년 때 동기들과 마주치기 ‘부끄럽다’는 감정은,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들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남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때쯤 깨달았습니다. 밥 먹고 수업 듣는 시간 외에는 열람실에 하루종일 가서 공부했습니다.
 
 
  뱀 껍질처럼 피부가 떨어져 나가
 
  그런데 그때부터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분에게 저의 신체적 단점을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 순간에도 저보다 훨씬 어려운 신체적 역경을 극복하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제가 시험 준비하며 겪었던 신체적인 어려움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정신적·신체적으로 무리가 와서 그런지 손에 자가면역질환이 생겨 가만히 있어도 너무 간지럽고 피부가 다 벗겨져, 탈피하는 뱀의 껍질처럼 피부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험 특성상 손으로 계속 답안지를 쓰면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 손을 가만히 놔둘 수 없다 보니 호전될 겨를 또한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너무 간지럽고, 긁으면 피가 나고 피부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어 결국 병원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가보아도 단순히 면역 억제제 등만 처방해줄 뿐, 또렷한 방책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갔고, 시험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너무나 간지러운 손을 최대한 덜 긁으며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의 지병(?)이라 할 수 있는 심한 손발 다한증 또한 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긴장하면 그때부터 손발에 땀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 양은 책이 젖을 정도였습니다. 많은 로스쿨 동기가 제 책을 보곤 얼마나 많이 봤으면 너덜너덜해졌냐고 하는데, 사실은 책에 땀이 뱄다 마르는 과정에서 너덜너덜해진 것인데, 그럴 때마다 저는 웃고 진실을 애써 숨겼습니다.
 
  진짜 문제는 시험 볼 때였는데, 주관식 시험인 사례·기록형을 볼 때 손에서 땀이 흘러 글씨가 물에 젖은 것처럼 번졌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실제 변호사 시험을 볼 때도 손수건을 쥐고 남들보다 느리게 글씨를 쓰며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험생 때의 그 예민함은 수시로 긴장감을 촉발했고, 긴장감이 올라올 때마다 두꺼운 스포츠 양말도 흠뻑 젖어버려 양말을 항상 2~3개씩 들고 다니며 수시로 갈아 신었습니다. 또 상황상 갈아 신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는데, 밤 늦게 집에 와서 보면 양말이 젖어 있는 상태에서 발과 오랫동안 접촉해 진물이 났고 습진도 항상 안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만 되었어도 공부하기는 훨씬 수월했을 것 같습니다. 전 과민성 대장증후군까지 있는데, 긴장하면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불쑥 설사가 찾아왔습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대학생 때 크론병인 줄 알고 종합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해보았을 정도였습니다. 로스쿨 3학년 때는 설사뿐만 아니라 가스도 너무 많이 차서, 배에서 계속 소리가 나 조용한 열람실에서 신경이 쓰여 11월, 12월에도 야외 현관에 서서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하의 날씨 속에 추운 데에서 서서 공부하니, 정말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나 싶어 눈물도 났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냥 집이나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지 않았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많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저를 극한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공부 환경은 ‘같은 목표로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장소’인 학교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공부해서 한 번에 붙었다면 해피엔딩이겠지만, 로스쿨 졸업 직전 치른 변호사 시험에서 결국 낙방하였습니다. 저의 졸업 종합 석차는 40명 중 39등이었습니다.
 
 
  졸업 종합 석차는 40명 중 39등
 
  변호사 시험은 로스쿨을 졸업 또는 졸업 예정인 사람들만 치를 수 있습니다. 변호사 시험의 합격 여부는 법무부에서 공개하는 합격자 명단을 통해, 실명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됩니다.
 
  저뿐만 아닌 모든 로스쿨생 생활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변호사 시험입니다. 통상 1월 둘째 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화, 수, 금, 토(목요일은 시험 공지상 휴식일이지만 다음 이틀의 시험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휴식일이 아닌 공부해야 하는 날) 나흘간의 고된 일정으로 매년 치러지는 변호사 시험은 응시자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에게 가혹한 일정입니다. 더 가혹한 점은 누구에게는 ‘반이나 붙는 시험인데 그걸 왜 못 붙어?’라고 흔히 생각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제12회 변호사 시험의 경우 응시자 대비 합격률 약 53%)
 

 
  ‘눈 떠 있을 때는 공부하자’
 
재시 때는 로스쿨 3학년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특별한 방법은 정말 없고 매일 오전 7시30분경 집에서 나가 저녁 11시경 집에 왔고,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 쉬었습니다.
  로스쿨 생활 3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무척 짧은 시간입니다. 로스쿨 제도의 장점은 저와 같이 다른 진로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재의 풀이 사법고시 때보다는 조금 더 다양해진 것 같고, 단점은 주어진 3년이라는 시간이 민법, 형법, 헌법 3법뿐만 아니라 민사소송법, 상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선택법까지 공부하기에는 정말 짧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법연수원 때 다루는 기록형 형식의 시험까지도 변호사 시험에 출제되니, 3년 동안 다들 울면서 공부할 수밖엔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통계 수치를 보면 재시부터는 합격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현역 때보다 훨씬 불안했습니다. 따라서, 재시 생활의 목표는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찾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지만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저의 최선을 다하기로 하여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재시 때는 로스쿨 3학년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특별한 방법은 정말 없고 매일 오전 7시30분경 집에서 나가 저녁 11시경 집에 왔고,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 쉬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효율적으로 합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만의 한 가지 영업 비밀(?)을 알려드리자면 남들보다 잠이 많은 저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눈 떠 있을 때 공부하자’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현호야! 너 합격했어!”
 
  집에서 학원까지 가는 왕복 버스, 지하철에서 암기장을 들고 다니며 암기하였고, 정신이 산만하다고 느껴지는 날은 아침에 휴대폰도 두고 학원에 갔습니다. 걷거나 밥 먹을 때에도 시간이 아까워서 강사의 암기장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들으면서 다녔고, 화장실에서도 직전에 공부한 내용을 안 보고 말할 수 있나 스스로 체크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보니, 책상에 책을 펴두고 공부할 때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어디에 있든지 눈 떠 있을 때 계속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한두 줄로 요약하니 실천하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매일 간절하게 침대 머리맡에 꿇어앉아 기도하며 올해는 제발 합격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하루하루 불안하지만 나아갈 수밖에 없는 날들을 보내며, 그렇게 변호사 시험을 보고, 2023년 4월 20일 합격자 발표 당일이 왔습니다.
 
  몇 시에 발표가 날지 몰라, 작년의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합격 확인을 하기 두려워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정처 없이 하염없이 걷던 중 미국에 있는 친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현호야! 너 합격했어!”
 
  드디어 4년의 긴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제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산책로 한복판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이제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훨씬 컸습니다. 합격자 발표 후 학교 상담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종합 석차가 끝에서 2등으로 졸업한 학생이 재시 만에 합격한 것은 유례가 없다고 하시며 저와 같이 기뻐해주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재능이 없던 제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간절함과 꾸준함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현출(내가 아는 것을 답안지에 작성)하는 공부’
 
  저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들도 현업에 많으시지만, 제가 느끼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 중 가장 유의미한 것은 ‘현출(내가 아는 것을 답안지에 작성)하는 공부’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CBT 방식으로 바뀌면서 출제 경향도 언젠가는 바뀔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공부 방법은 현출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뇌는 굉장히 교활해서, 시험이나 퀴즈를 보지 않을 때 책을 읽는 것과 당장 1시간 후에 해당 내용을 테스트한다는 조건을 줬을 때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이 지식을 습득하는 역량에 엄청난 차이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 장소가 어디든 간에 최대한 자주 시험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이 학원 시험이 됐든, 학교 스터디 조원끼리 시험을 보건, 줌(zoom)으로 하는 원격 스터디이건, 스스로 답안지를 써보건 간에 어쨌든 실질적으로 백지에 현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CBT 형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 바뀐 만큼, 제가 공부하던 수기식보다는 수월하게 연습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이 내신성적이 낮아 자신감 없는 분들의 경우, 이러한 공부는 너무 고통스럽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충분히 공감합니다. 쓰기만 하면 모범답안과 너무나 다른 초라한 답안지를 매번 경험하실 텐데,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그렇게 계속 연습을 꾸준히 하신다면 시험장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팔이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체적 역경을 재수할 때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안고 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 내일 아침에 민법 특정 단원에 대해 시험을 본다고 하면, 모든 관심사를 내일 시험에 집중하려고 했지 부차적인 것은 일부러 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년 후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에 끊임없이 집중하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지보다는 무엇이 당장 중요하고, 당장 노력하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하시다 보면 어느샌가 갖고 계신 고민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함’과 ‘규칙적 공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간절함’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간절함’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시 때 학원에 다니면서 심한 장염을 앓았던 단 한 번 빼고는 매일 아침 학원에서 보는 시험에 전부 응시하였고, 그 꾸준함으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안 보려는 핑계는 만들면 수만 가지였겠지만, 올해에는 무조건 끝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저를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간절함으로 공부하는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시다면 끝내 합격하실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이제 1년 차 변호사이기 때문에 어떤 원대한 목표보다는, 의뢰인을 실망시키지 않는 책임감 있고 마음이 따뜻한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실력 있는, 누구나 안심하며 믿고 맡길 수 있는 변호사가 되길 소망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해나가 보자 합니다. 이렇게 수기를 쓸 수 있게 잘 키워주신 저의 부모님, 할머니, 형, 그리고 시험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해주신 선배님인 진리 변호사님, 김동준 변호사, 도완이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변호사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제가 재시 생활을 하며 수시로 읽어 보며 깊게 감명받았던 《반지의 제왕》 저자 J.R.R. 톨킨이 남긴 명언 한 구절을 전해 드리면서 긴 글 마치고 싶습니다.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방랑자라고 해서 모두가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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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us16604    (2023-11-16) 찬성 : 0   반대 : 0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한 사람의 절박하고도 가치있는 인생기를 읽고 명언도 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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