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봉 모티브로 한 〈암살〉 〈밀정〉 등 만들어지다가 2019년부터 〈봉오동 전투〉 등 홍범도 모티브로 한 영화·소설로 전환
⊙ 대중문화가 특정 인식 선동한다기보다 당대의 정치·사회 환경과 흐름이 대중문화산업에 포착돼 반영되는 것으로 보아야
⊙ 親中 논란 드라마 〈조선구마사〉 투자했던 중국 자본, 김원봉 소재 드라마 〈이몽〉에 투자
⊙ 2010년대 ‘反日’ 콘텐츠는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등장,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지다가 가라앉는 분위기
⊙ 항일영화, 해방 이후 ‘흥행 보증수표’였지만, 1960년대 이후 6·25 영화에 밀려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대중문화가 특정 인식 선동한다기보다 당대의 정치·사회 환경과 흐름이 대중문화산업에 포착돼 반영되는 것으로 보아야
⊙ 親中 논란 드라마 〈조선구마사〉 투자했던 중국 자본, 김원봉 소재 드라마 〈이몽〉에 투자
⊙ 2010년대 ‘反日’ 콘텐츠는 박근혜 정권 출범과 함께 등장, 문재인 정권으로 이어지다가 가라앉는 분위기
⊙ 항일영화, 해방 이후 ‘흥행 보증수표’였지만, 1960년대 이후 6·25 영화에 밀려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 홍범도를 다룬 영화 〈봉오동 전투〉
이른바 ‘홍범도 흉상(胸像) 이전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상당 부분 일본 후쿠시마 원전(原電) 처리수 방류 문제와 시기적으로 정확히 겹치는 통에 ‘친일(親日) 정권’ 프레임이 씌워져 최적(最適)의 정치 공격 환경이 만들어진 탓이라 볼 수 있지만, 이에 대해 또 다른 입장도 종종 등장하고는 한다. 다시 돌아온 ‘대중문화 책임론’이다. 관련 언론미디어 기사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및 소셜미디어(SNS) 포스팅 등을 살펴봐도 사실상 빠지는 일이 없다 싶을 정도.
논리는 단순하다. 근래 화제가 된 홍범도나 김원봉 등 이른바 ‘문제적 항일(抗日)운동가’들, 그러니까 항일운동 경력 외에 공산주의자 또는 김일성주의자로서의 또 다른 경력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아 대중이 입체적으로 인물을 파악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항일운동가들 경우는 그 대중적 인상이 그간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편향적으로 미화(美化)돼 제시돼온 탓도 크다는 것이다. 주로 김원봉 캐릭터가 등장하는 2015년 영화 〈암살〉과 그에 모티브를 둔 인물이 나오는 2016년 영화 〈밀정〉, 그리고 홍범도 캐릭터가 등장하는 2019년 영화 〈봉오동 전투〉가 거론된다. 그리고 이들 영화는 모두 흥행에 대성공했다. 그만큼 편향된 인상도 성공적으로(?) 대중에 널리 전달됐으리라는 주장이다.
김원봉 띄우기
물론 그 자체로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을 놓고 언론미디어를 통해 쏟아진 수많은 관련 보도 중 유독 대중문화 종사자들이나 대중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던 기사가 있다. 《중앙일보》 2023년 8월 31일 자 기사 〈김원봉 막히자 홍범도… 文정부 목표는 ‘軍뿌리’ 바꾸기〉다. 내용 일부를 발췌(拔萃)해 살펴보자.
〈여권의 고위 인사는 3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임 정부에서 북한군 창설의 주역이자 김일성 포상을 받은 김원봉이 이끈 항일운동을 국군의 뿌리로 만들기 위해 서훈을 시도하다 반대 여론 때문에 실패하자, 홍범도 장군을 일종의 ‘대체재’로 내세웠던 정황이 확인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홍범도 장군을 부각한 근본적인 목표는 독립 영웅 추앙보다는 한미동맹에 근간을 둔 군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실제 당시 회의록에는 김원봉을 서훈 대상으로 특정하면서 “남북 대화로 ‘누구를 기릴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필요하다”거나 “유공자 발굴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등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보는 대목이 수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김원봉 서훈 시도가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청와대는 홍범도 장군 띄우기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시점은 혁신위가 ‘김원봉 서훈 완료’ 시점으로 제시했던 3·1절이 막 지난 2019년 4월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201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의 항일 콘텐츠 열풍 상황에서 그 아이콘 격 실존 인물의 트렌드 이동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5년 김원봉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암살〉이 무려 1270만 관객을 동원해 영화업계의 꿈이라는 ‘1000만 영화’에 등극하자 곧바로 ‘김원봉 열풍’이 일어났다. 각종 매거진이나 유튜브 등에서 김원봉에 대해 다루는 콘텐츠가 급속도로 불어났고, 이듬해인 2016년 영화 〈밀정〉에서도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 정채산이 김원봉을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밀정〉 역시 대히트해 75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 흐름은 결국 2019년 아예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드라마 〈이몽〉이 제작돼 MBC에서 40부작으로 방영되는 단계까지 간다.
김원봉에서 홍범도로
그러다 마치 김원봉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권 측에서 인지하기라도 한 듯 2018년 3월 갑자기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흉상이 설치되고, 위 기사에 언급된 대로라면, 2019년 4월부터 홍범도 유해(遺骸) 송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2021년 8월 15일 광복절에 송환 행사를 진행하게 된 순서다.
그러자 대중문화계도 바로 그 흐름을 따라간다. 2019년 홍범도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봉오동 전투〉가 8월 개봉돼 479만 관객을 모으며 영화의 손익분기점인 450만 관객을 넘기는 성공을 거두고, 이후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에선 김원봉이 맡고 있던 ‘항일의 아이콘’ 자리가 홍범도로 하나둘 대체되는 흐름이 생성된다.
2020년 장편소설 《나는 홍범도》가 화제 속에 출간되고, 2021년 10월에는 양승동 KBS 사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범도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 〈홍범도-총의 노래(가제)〉 제작에 들어가겠다고 밝힌다. 흥미로운 건 같은 시기 홍범도를 주인공 삼은 드라마 기획은 〈홍범도-총의 노래〉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제작사 아이피박스미디어에서도 방송사 편성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또 다른 홍범도 드라마 〈격정시대(Partisan)〉 기획을 발표한다. 갑자기 너도나도 홍범도 콘텐츠를 내놓지 못해 안달이 난 듯 보였을 정도다.
그러나 이후 KBS의 〈홍범도-총의 노래〉는 대전 유성구에서 2023년도 본예산에 편성한 ‘홍범도 장군 드라마 제작지원 예산’이 상임위원회 계수조정 시 전액 삭감되면서 제작 자체가 표류(漂流)하게 됐고, 〈격정시대〉의 경우 더 이상 제작 관련 정보가 추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급전환이 정권 교체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이를 두고 무슨 대단한 음모론이라도 제기하려는 건 아니다. 정치계와 대중문화계 사이 이처럼 ‘같이 가는’ 흐름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영화나 TV 드라마, 소설 등의 소재로서 역사 인물 선정도 결국은 ‘트렌드’를 따라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 인물의 경우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인물 화제성이 현재 어떤 흐름으로 옮겨가고 있는지는 언론미디어 보도들만 꼼꼼히 챙겨봐도 훤히 눈에 보인다. 특정 세력에서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특정 인물을 재조명하며 이름을 한두 번씩 거론하기 시작하고 이슈를 만들어 그 중심에 두기도 하는 등 소위 ‘발전기’를 돌리는 광경은 생각보다 쉽게 포착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문화적으로도 트렌드가 부풀어 오른다.
결국 대중문화가 선도(先導)해 특정 인식들을 선동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든 ‘발전기’를 돌린 것이든, 당대의 정치·사회 환경과 흐름 자체가 그 안에서 상업성을 찾으려는 대중문화산업에 포착돼 반영되는 순서라 봐야 한다. 어찌 됐건 문화는 현실의 반영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게 다 대중문화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힘든 이유다.
‘발전기를 돌려 만든 열풍’
그런데 이 같은 관점에서 홍범도, 김원봉 등을 넘어 앞서 언급한 ‘201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의 항일 콘텐츠 열풍’ 자체를 재해석해 보면 사뭇 주목할 만한 광경이 포착된다. 해당 열풍 역시 김원봉에서 홍범도로 ‘항일의 아이콘’이 이동한 흐름처럼 ‘발전기를 돌려 만들어낸 열풍’에 가깝다는 점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 열풍은 대략 2010년대 초중반, 명확히 가시화된 것은 역시 2015년 〈암살〉 대성공부터라고 봐야 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7년에는 이런 기사까지 등장한다.
〈항일 영화 불패의 신화는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박열〉이 2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항일 영화 흥행 공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항일 영화의 선전이 돋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최근 3년간 〈암살〉 〈해어화〉 〈대호〉 〈밀정〉 〈귀향〉 〈동주〉 〈덕혜옹주〉 〈아가씨〉 등이 개봉됐다. 이 작품 중 특히 독립운동 등 항일투쟁을 소재로 하거나 당시의 아픔을 그린 영화의 흥행 성적이 두드러진다. (중략) 오랜 시간 잠자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영화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암살〉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정치 환경 속에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흥미 있는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친일파 청산을 못해 굴곡졌던 현대사의 아쉬움을 해소해주며 대리만족을 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현실이 보수 정권 내내 이어진 시민사회의 저항을 떠올리게 했다.〉(오마이뉴스 2017년 7월 3일 자 기사 〈‘흥행 불패’ 항일 영화… 대중은 여전히 목마르다〉)
‘反日 영화’의 종언(?)
‘불패(不敗)’라고 했다. 극장에 걸었다 하면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흥행의 비결은 사실상 ‘지금이 보수 정권이라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 2023년이 되자 아래와 같은 맥락의 분석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영화 흥행을 돕는 재료로 꼽히던 ‘항일(반일)’이 극장가에서 좀처럼 먹히지 않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주인공인 〈한산: 용의 출연〉은 726만 관객을 모았지만 전편 〈명량〉 (1761만 명)에 비하면 반 토막도 안 되는 성적으로 퇴장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담은 〈영웅〉은 개봉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으나 손익분기점(340만 명)을 여태 못 넘겼다. 설경구·이하늬 주연으로 조선 총독 암살 작전을 그린 〈유령〉, 치매 노인이 60년 만에 친일파에게 복수하는 〈리멤버〉는 참패했다. 항일 영화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줄줄이 흥행 부진에 빠진 것이다. (중략) 최근 항일 영화가 잇따라 초라한 성적표를 받자 “극장가에서 ‘무조건 반일’이나 ‘노 재팬(No Japan·일본 불매 운동)’이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조선일보》 2023년 2월 14일 자 기사 〈‘무조건 反日’은 NO… 항일 영화 줄줄이 흥행 부진〉)
TV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허영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2012년 KBS2 〈각시탈〉 이래 2018년 tvN 〈미스터 션샤인〉 등이 큰 성공을 거뒀던 데 반해, 지금 항일 드라마들은 오히려 줄줄이 실패만 연속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2019년 MBC의 ‘김원봉 드라마’ 〈이몽〉부터가 최고 시청률 7.1%(AGB닐슨), 최저 시청률은 2.2%까지 떨어지는 참패를 겪으며 2005년 〈제5공화국〉 기점으로 ‘MBC 주말 특별기획’이 시작된 이래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됐다. 같은 해 동학농민운동과 전봉준을 다룬 SBS 〈녹두꽃〉도 평균 시청률 6.6%에 그쳤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중문화계 항일 콘텐츠의 전성기는 대략 2015년부터 2019년 정도까지라고 볼 만하다. 5년 정도의 짧은 전성기였던 셈이다. 여기에 대작 영화들까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며 대폭락에 ‘도장’을 찍어버린 게 2022년 하반기부터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앞선 오마이뉴스 기사의 ‘보수 정권이니 항일 영화 흥행론’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다. 반대로, 보수 정권이 들어서니 갑자기 대중이 홀린 듯 항일 영화나 드라마를 안 보기 시작했다는 식의 논리도 성립 불가능해진다.
박근혜 정권과 ‘반일’ 콘텐츠
그럼 왜일까. 어째서 항일은 대중문화시장에서 20년 넘게 사멸(死滅)되다시피 한 코드로 내려앉았다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불현듯 대표적 흥행 코드로 올라섰고, 또 불과 5년여 만에 도로 내려앉게 된 걸까 말이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 정치·사회적 환경 탓에 항일 또는 반일(反日)이라는 코드가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언론미디어를 통해 빈도(頻度) 높게 확산되면서 벌어진 일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은 2010년대 등장한 박근혜 정권 또는 박근혜라는 인물 개인의 면면 및 속성과 함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명)라는 이름이 방송미디어를 통해 수천 번 이상 불리며 그 공격 방향이 미리 빌드 업(build up)된 정권이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로는 훨씬 노골적으로 친일 코드 공격들이 이어졌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교회 강연에서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남북분단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가 결국 낙마(落馬)했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조부의 친일 행적(?)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곧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검정(檢定)에서 국정(國定)으로 전환하는 ‘국정교과서’ 안을 추진하면서 ‘친일 정권’이라는 낙인이 대대적으로 찍히게 된다. 어차피 친일파들로 구성된 정권이니 온통 일본 미화 내용으로 국정교과서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밖에도 많다. 심지어 2016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 68주년’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일제 시대와 임시정부를 없던 것으로 만들려는 ‘건국절 세력’이라 비난받은 적까지 있다. 아예 박근혜 정권 시절 자체가 통째로 ‘숨만 쉬어도 친일이라 비난받던 정권’으로 지금껏 회자(膾炙)될 정도다.
이렇게 2010년대, 정확히는 2012년 무렵부터 세상이 온통 ‘친일’ ‘친일파’ ‘임시정부 부정’ 등의 코드로 뒤덮여 관련 소식들이 언론미디어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배되다시피 하니, 앞서 언급했듯, 상업화된 대중문화계에서 이를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로서 받아들여 콘텐츠에 적극 반영하게 되고 대중 역시 이런 분위기에 젖어들며 문화 소비 측면에서 크게 영향받게 됐다는 것이다.
한풀 꺾인 ‘노 재팬’
뒤이은 문재인 정권에서도 반일 코드는 계속 언론미디어를 장식했다. ‘제주 국제 관함식 자위대 욱일기 논란’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판결’ ‘일본 해상 초계기 저공 위협 사건’, 여기서 다시 ‘한일 무역 분쟁’으로 넘어간다.
심지어 문재인 정권 공식 행사에서 뜬금없이 ‘박근혜 친일 정권’ 비난이 읊어지기까지 한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이 “광복절을 폐지하고 건국절을 제정하겠다는 세력, 친일 미화 교과서를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겠다는 세력은 대한민국 법통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믿는 세력”이라 발언한 건이다.
사실 이 정도까지 가면 일시적으로는 모두가 열풍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는 게 맞지만, 곧 그로부터 되돌아오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특히나 문화 분야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다. 대중 자체가 극단적 반일 정서 만연(蔓延)에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강박증적 수준으로 반일 공세가 펼쳐지다 보면 반(反)문화 경향까지 일어나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청년문화가 이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일 무역 분쟁’으로 빚어진 이른바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극단까지 치달은 2019년이 되자 한창 신나게 달리던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 붐도 한풀 꺾이게 된 것이고,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2023년이 되니 모든 게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수순을 밟게 된 셈이다.
여기서 이제 ‘그 이전’을 돌아보자.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의 본격적 역사 부분 얘기다. 한국의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는 영화 장르로부터 시작됐다. 최인규 감독의 1946년 작 〈자유만세〉를 항일 영화의 시초로들 본다. 일제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지하공작을 펼치던 독립운동가의 사랑과 거친 운명을 그렸다. 〈자유만세〉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자 항일 영화는 실질적으로 일종의 흥행 보증수표처럼 인식돼 1940~50년대 봇물 터지듯 쏟아지게 된다. 〈윤봉길 의사〉(1947), 〈유관순〉(1948), 〈백범 국민장 실기〉(1949), 〈안창남 비행기〉(1949), 〈애국자의 아들〉(1949) 등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1951년 한일 간 국교정상화 회담이 시작된 이후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일본 정부의 북송(北送) 결정 탓에 이승만 정부가 대일(對日) 통상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1959년에 항일 영화는 다시 한 번 불타오른다. 한 해 동안에만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삼일 독립운동〉 〈유관순〉 〈한말풍운과 민충정공〉 〈이름 없는 별들〉 등이 일제히 쏟아졌다. 이 중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과 〈이름 없는 별들〉이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한동안 항일 영화 트렌드를 계속 이끌게 된다.
그러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게 1960년대 중반부터다. 영화계 내부적으로는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산업이 활황을 이뤄 상업적 매력이 높은 6·25 전쟁영화 등을 만들 자본과 기술력이 갖춰진 관계로 그리로 유행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점에서 영화계 외적 상황이 더 중요했다. 먼저 1965년 14년간에 걸친 조율과 교섭 끝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면서 항일이라는 코드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편 1968년에는 북한 공작원 김신조 일당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300m 앞까지 침투하는 이른바 ‘1·21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현실적 위협이자 국가적 분노의 대상으로서 북한이 온전히 설정되며 향후 영화시장도 기존 6·25전쟁 영화들과 함께 북한 간첩이 등장하는 첩보 영화들 중심으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마지막 항일 드라마 성공작은 〈여명의 눈동자〉”
이후 항일 영화는 대부분 B급 프로덕션에 머물게 된다. 일제 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독립군과 일본군, 마적단 등이 한데 얽히는 ‘만주 웨스턴’이나 일제 시대 배경 권격(拳擊) 영화 등 다소 싸구려 인상이 드는 장르 영화들 말이다. 그나마도 곧 열기가 식어 항일 코드는 1972년 KBS 일일드라마 〈여로〉처럼 안방극장 소재 정도로 머물거나 1974년 출간된 허영만의 만화 〈각시탈〉 등 서브컬처 계통 소재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다 실질적으로 ‘사라진다’. 특히 영화 부문은 1983년 청산리 전투를 다룬 이장호 감독의 〈일송정 푸른 솔은〉이 당시로서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서울 관객 7만 정도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자 상업영화로서 항일 코드의 명맥(命脈)이 끊기는 단계에 이른다. 〈장군의 아들〉 같은 일제 시대 협객(俠客) 영화, 〈뽕〉 같은 일제 시대 배경 성애(性愛) 영화를 굳이 항일 영화로 넣지 않는다면 그렇다. TV 드라마 역시 “마지막 항일 드라마 성공작은 1991년 작 〈여명의 눈동자〉”라는 얘기가 이후 20년에 걸쳐 통용되는 수준이 됐다.
물론 이후에도 항일 콘텐츠는 간간이 등장했다. 영화계에선 의열단을 소재로 한 2000년 작 〈아나키스트〉, 복거일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모티브로 일제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채 2009년을 맞이하게 된 조선을 그린 대체역사 SF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을사조약 체결 직후 일본군 야구 클럽 팀과 대결하게 된 YMCA 회관 야구팀을 다룬 〈YMCA 야구단〉 등 다양한 소재로 접근했지만 모두 흥행에선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TV 드라마도 SBS 〈야인시대〉나 MBC 〈왕초〉 등 협객 드라마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다.
가장 강렬한 민족주의 정권이었다고 평가되는 김영삼 정권 시절, 정권이 주도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남북한이 힘을 합쳐 개발한 핵미사일로 일본을 응징한다는 내용의 1993년 김진명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본이 석유 자원을 노리고 인도네시아를 침략하자 한국이 이에 맞서 일본과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의 1994년 이현세 만화 〈남벌〉 등이 히트하긴 했다. 그러나 이를 전통적 의미에서 항일 콘텐츠라 보기는 어렵다. 그저 반일 감정을 토대로 한 《환단고기(桓檀古記)》류의 ‘국뽕 판타지’ 정도라고 봐야 한다.
‘항일 영화’가 돌아온 이유는?
결국 알 수 있는 부분은 단순하다. 항일은 사실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소한도 대중문화 콘텐츠의 상업적 소재로선 이미 수명을 다한 코드였다는 것이다. 중·노년층에서 〈암살〉이나 〈밀정〉 〈봉오동 전투〉 같은 영화들이 왜 그토록 인기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 기억 속에서 항일 콘텐츠란 ‘광복절 특집 2부작 TV 드라마’ 정도로 내려앉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23년에 이르러 왜 항일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고 트렌드가 바뀌었는지에 주목하기보다, 정반대로 어째서 20여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사멸되다시피 한 항일 콘텐츠가 급작스레 되돌아왔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은 이전 일본 정권과 달라 그렇게 됐다는 반박도 존재하지만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 시절부터 과거 일본 정권과의 가지각색 트러블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다. 매일매일 국내를 향해 ‘친일’ ‘친일파’ ‘임시정부 부정’, 그리고 다시 ‘친일’ ‘친일파’ ‘임시정부 부정’ 등이 수없이 반복되는 환경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대중문화 책임론’은 이렇듯 그렇게 대단한 ‘힘’을 지닌 대중문화가 어떤 배경과 환경하에서 움직이고 작동하게 됐는지를 관찰하는 쪽으로 관심이 이동돼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저 민족감정과 대중문화 관계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조명받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앞선 ‘김원봉 드라마’ 〈이몽〉과 관련된 각종 논란을 당시 언론미디어 기사들을 통해 살펴보면 거의 전부가 김원봉이라는 인물의 이념 성향에 대한 화두(話頭)들뿐이다. 그를 인정하느냐 아니냐로 친일파냐 아니냐가 갈린다는 식의 막무가내 주장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몽〉의 내부로 들어가 그 제작 배경을 좀 더 살펴보면, 놀랍게도 2021년 SBS 〈조선구마사〉 논란 당시 처음 국내 언론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 자본의 콘텐츠 제작사 쟈핑픽쳐스 유한공사가 나온다. 정확히는 쟈핑픽쳐스 측이 한국 제작사 이몽 스튜디오 문화전문회사와 합작 투자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이몽〉이다. 그리고 〈조선구마사〉 사건 당시 알려졌듯, 쟈핑픽쳐스의 한국 법인 쟈핑코리아 사무실은 중국 ‘인민일보 문화전매’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고, ‘인민일보 문화전매’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회사다. 쟈핑코리아 대표와 이사는 둘 다 ‘인민일보 한국 대표처’의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창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3월 쟈핑픽쳐스와 ‘인민일보 한국대표처’ 두 회사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주선으로 함께 성금 1억5000만원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한 바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만…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 홍보 과정에서 애용(愛用)되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출처는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어찌 됐건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문구는 오직 일본과의 관계에서만 등장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예컨대 중국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과거 중국과의 그 지난(至難)한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의미로 이 문구가 등장하지 않고, 애초 그를 잊어선 안 된다는 캠페인 자체도 없다. 〈이몽〉에 대한 논란이 ‘친일파냐 아니냐’ 따위에 천착해 있을 때, 왜 중국공산당 기관지 자회사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중국 자본의 회사가 ‘김원봉 드라마’에 투자한 것인지 궁금해한 측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의 허랑함을 새삼 깨닫는다.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은 물론 그와 유사한 모습의 앞으로 닥칠 수많은 각종 논란들을 놓고서도 그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시각을 좀 더 넓혀 전체 상황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근래 화제가 된 홍범도나 김원봉 등 이른바 ‘문제적 항일(抗日)운동가’들, 그러니까 항일운동 경력 외에 공산주의자 또는 김일성주의자로서의 또 다른 경력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아 대중이 입체적으로 인물을 파악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항일운동가들 경우는 그 대중적 인상이 그간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편향적으로 미화(美化)돼 제시돼온 탓도 크다는 것이다. 주로 김원봉 캐릭터가 등장하는 2015년 영화 〈암살〉과 그에 모티브를 둔 인물이 나오는 2016년 영화 〈밀정〉, 그리고 홍범도 캐릭터가 등장하는 2019년 영화 〈봉오동 전투〉가 거론된다. 그리고 이들 영화는 모두 흥행에 대성공했다. 그만큼 편향된 인상도 성공적으로(?) 대중에 널리 전달됐으리라는 주장이다.
김원봉 띄우기
물론 그 자체로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을 놓고 언론미디어를 통해 쏟아진 수많은 관련 보도 중 유독 대중문화 종사자들이나 대중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던 기사가 있다. 《중앙일보》 2023년 8월 31일 자 기사 〈김원봉 막히자 홍범도… 文정부 목표는 ‘軍뿌리’ 바꾸기〉다. 내용 일부를 발췌(拔萃)해 살펴보자.
〈여권의 고위 인사는 3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임 정부에서 북한군 창설의 주역이자 김일성 포상을 받은 김원봉이 이끈 항일운동을 국군의 뿌리로 만들기 위해 서훈을 시도하다 반대 여론 때문에 실패하자, 홍범도 장군을 일종의 ‘대체재’로 내세웠던 정황이 확인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홍범도 장군을 부각한 근본적인 목표는 독립 영웅 추앙보다는 한미동맹에 근간을 둔 군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실제 당시 회의록에는 김원봉을 서훈 대상으로 특정하면서 “남북 대화로 ‘누구를 기릴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필요하다”거나 “유공자 발굴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등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보는 대목이 수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김원봉 서훈 시도가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청와대는 홍범도 장군 띄우기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시점은 혁신위가 ‘김원봉 서훈 완료’ 시점으로 제시했던 3·1절이 막 지난 2019년 4월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201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의 항일 콘텐츠 열풍 상황에서 그 아이콘 격 실존 인물의 트렌드 이동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5년 김원봉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암살〉이 무려 1270만 관객을 동원해 영화업계의 꿈이라는 ‘1000만 영화’에 등극하자 곧바로 ‘김원봉 열풍’이 일어났다. 각종 매거진이나 유튜브 등에서 김원봉에 대해 다루는 콘텐츠가 급속도로 불어났고, 이듬해인 2016년 영화 〈밀정〉에서도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 정채산이 김원봉을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밀정〉 역시 대히트해 75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 흐름은 결국 2019년 아예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드라마 〈이몽〉이 제작돼 MBC에서 40부작으로 방영되는 단계까지 간다.
김원봉에서 홍범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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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8월 18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 참석, 홍범도 장군을 기렸다. 사진=뉴시스 |
그러자 대중문화계도 바로 그 흐름을 따라간다. 2019년 홍범도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봉오동 전투〉가 8월 개봉돼 479만 관객을 모으며 영화의 손익분기점인 450만 관객을 넘기는 성공을 거두고, 이후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에선 김원봉이 맡고 있던 ‘항일의 아이콘’ 자리가 홍범도로 하나둘 대체되는 흐름이 생성된다.
2020년 장편소설 《나는 홍범도》가 화제 속에 출간되고, 2021년 10월에는 양승동 KBS 사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범도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 〈홍범도-총의 노래(가제)〉 제작에 들어가겠다고 밝힌다. 흥미로운 건 같은 시기 홍범도를 주인공 삼은 드라마 기획은 〈홍범도-총의 노래〉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제작사 아이피박스미디어에서도 방송사 편성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또 다른 홍범도 드라마 〈격정시대(Partisan)〉 기획을 발표한다. 갑자기 너도나도 홍범도 콘텐츠를 내놓지 못해 안달이 난 듯 보였을 정도다.
그러나 이후 KBS의 〈홍범도-총의 노래〉는 대전 유성구에서 2023년도 본예산에 편성한 ‘홍범도 장군 드라마 제작지원 예산’이 상임위원회 계수조정 시 전액 삭감되면서 제작 자체가 표류(漂流)하게 됐고, 〈격정시대〉의 경우 더 이상 제작 관련 정보가 추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급전환이 정권 교체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이를 두고 무슨 대단한 음모론이라도 제기하려는 건 아니다. 정치계와 대중문화계 사이 이처럼 ‘같이 가는’ 흐름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영화나 TV 드라마, 소설 등의 소재로서 역사 인물 선정도 결국은 ‘트렌드’를 따라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 인물의 경우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인물 화제성이 현재 어떤 흐름으로 옮겨가고 있는지는 언론미디어 보도들만 꼼꼼히 챙겨봐도 훤히 눈에 보인다. 특정 세력에서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특정 인물을 재조명하며 이름을 한두 번씩 거론하기 시작하고 이슈를 만들어 그 중심에 두기도 하는 등 소위 ‘발전기’를 돌리는 광경은 생각보다 쉽게 포착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문화적으로도 트렌드가 부풀어 오른다.
결국 대중문화가 선도(先導)해 특정 인식들을 선동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든 ‘발전기’를 돌린 것이든, 당대의 정치·사회 환경과 흐름 자체가 그 안에서 상업성을 찾으려는 대중문화산업에 포착돼 반영되는 순서라 봐야 한다. 어찌 됐건 문화는 현실의 반영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게 다 대중문화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힘든 이유다.
‘발전기를 돌려 만든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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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을 다룬 흥행작 〈암살〉 〈밀정〉 |
한국에서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 열풍은 대략 2010년대 초중반, 명확히 가시화된 것은 역시 2015년 〈암살〉 대성공부터라고 봐야 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7년에는 이런 기사까지 등장한다.
〈항일 영화 불패의 신화는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박열〉이 2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항일 영화 흥행 공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항일 영화의 선전이 돋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최근 3년간 〈암살〉 〈해어화〉 〈대호〉 〈밀정〉 〈귀향〉 〈동주〉 〈덕혜옹주〉 〈아가씨〉 등이 개봉됐다. 이 작품 중 특히 독립운동 등 항일투쟁을 소재로 하거나 당시의 아픔을 그린 영화의 흥행 성적이 두드러진다. (중략) 오랜 시간 잠자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영화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암살〉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정치 환경 속에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흥미 있는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친일파 청산을 못해 굴곡졌던 현대사의 아쉬움을 해소해주며 대리만족을 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현실이 보수 정권 내내 이어진 시민사회의 저항을 떠올리게 했다.〉(오마이뉴스 2017년 7월 3일 자 기사 〈‘흥행 불패’ 항일 영화… 대중은 여전히 목마르다〉)
‘불패(不敗)’라고 했다. 극장에 걸었다 하면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흥행의 비결은 사실상 ‘지금이 보수 정권이라서’라고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 2023년이 되자 아래와 같은 맥락의 분석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영화 흥행을 돕는 재료로 꼽히던 ‘항일(반일)’이 극장가에서 좀처럼 먹히지 않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주인공인 〈한산: 용의 출연〉은 726만 관객을 모았지만 전편 〈명량〉 (1761만 명)에 비하면 반 토막도 안 되는 성적으로 퇴장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담은 〈영웅〉은 개봉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으나 손익분기점(340만 명)을 여태 못 넘겼다. 설경구·이하늬 주연으로 조선 총독 암살 작전을 그린 〈유령〉, 치매 노인이 60년 만에 친일파에게 복수하는 〈리멤버〉는 참패했다. 항일 영화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줄줄이 흥행 부진에 빠진 것이다. (중략) 최근 항일 영화가 잇따라 초라한 성적표를 받자 “극장가에서 ‘무조건 반일’이나 ‘노 재팬(No Japan·일본 불매 운동)’이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조선일보》 2023년 2월 14일 자 기사 〈‘무조건 反日’은 NO… 항일 영화 줄줄이 흥행 부진〉)
TV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허영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2012년 KBS2 〈각시탈〉 이래 2018년 tvN 〈미스터 션샤인〉 등이 큰 성공을 거뒀던 데 반해, 지금 항일 드라마들은 오히려 줄줄이 실패만 연속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2019년 MBC의 ‘김원봉 드라마’ 〈이몽〉부터가 최고 시청률 7.1%(AGB닐슨), 최저 시청률은 2.2%까지 떨어지는 참패를 겪으며 2005년 〈제5공화국〉 기점으로 ‘MBC 주말 특별기획’이 시작된 이래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됐다. 같은 해 동학농민운동과 전봉준을 다룬 SBS 〈녹두꽃〉도 평균 시청률 6.6%에 그쳤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중문화계 항일 콘텐츠의 전성기는 대략 2015년부터 2019년 정도까지라고 볼 만하다. 5년 정도의 짧은 전성기였던 셈이다. 여기에 대작 영화들까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며 대폭락에 ‘도장’을 찍어버린 게 2022년 하반기부터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앞선 오마이뉴스 기사의 ‘보수 정권이니 항일 영화 흥행론’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다. 반대로, 보수 정권이 들어서니 갑자기 대중이 홀린 듯 항일 영화나 드라마를 안 보기 시작했다는 식의 논리도 성립 불가능해진다.
박근혜 정권과 ‘반일’ 콘텐츠
그럼 왜일까. 어째서 항일은 대중문화시장에서 20년 넘게 사멸(死滅)되다시피 한 코드로 내려앉았다가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불현듯 대표적 흥행 코드로 올라섰고, 또 불과 5년여 만에 도로 내려앉게 된 걸까 말이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 정치·사회적 환경 탓에 항일 또는 반일(反日)이라는 코드가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언론미디어를 통해 빈도(頻度) 높게 확산되면서 벌어진 일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은 2010년대 등장한 박근혜 정권 또는 박근혜라는 인물 개인의 면면 및 속성과 함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명)라는 이름이 방송미디어를 통해 수천 번 이상 불리며 그 공격 방향이 미리 빌드 업(build up)된 정권이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로는 훨씬 노골적으로 친일 코드 공격들이 이어졌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교회 강연에서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남북분단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가 결국 낙마(落馬)했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조부의 친일 행적(?)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곧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검정(檢定)에서 국정(國定)으로 전환하는 ‘국정교과서’ 안을 추진하면서 ‘친일 정권’이라는 낙인이 대대적으로 찍히게 된다. 어차피 친일파들로 구성된 정권이니 온통 일본 미화 내용으로 국정교과서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밖에도 많다. 심지어 2016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 68주년’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일제 시대와 임시정부를 없던 것으로 만들려는 ‘건국절 세력’이라 비난받은 적까지 있다. 아예 박근혜 정권 시절 자체가 통째로 ‘숨만 쉬어도 친일이라 비난받던 정권’으로 지금껏 회자(膾炙)될 정도다.
이렇게 2010년대, 정확히는 2012년 무렵부터 세상이 온통 ‘친일’ ‘친일파’ ‘임시정부 부정’ 등의 코드로 뒤덮여 관련 소식들이 언론미디어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배되다시피 하니, 앞서 언급했듯, 상업화된 대중문화계에서 이를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로서 받아들여 콘텐츠에 적극 반영하게 되고 대중 역시 이런 분위기에 젖어들며 문화 소비 측면에서 크게 영향받게 됐다는 것이다.
한풀 꺾인 ‘노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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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인 1946년에 나와 흥행에 성공한 〈자유만세〉 |
심지어 문재인 정권 공식 행사에서 뜬금없이 ‘박근혜 친일 정권’ 비난이 읊어지기까지 한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이 “광복절을 폐지하고 건국절을 제정하겠다는 세력, 친일 미화 교과서를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겠다는 세력은 대한민국 법통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믿는 세력”이라 발언한 건이다.
사실 이 정도까지 가면 일시적으로는 모두가 열풍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는 게 맞지만, 곧 그로부터 되돌아오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특히나 문화 분야에 있어선 더더욱 그렇다. 대중 자체가 극단적 반일 정서 만연(蔓延)에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강박증적 수준으로 반일 공세가 펼쳐지다 보면 반(反)문화 경향까지 일어나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청년문화가 이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일 무역 분쟁’으로 빚어진 이른바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극단까지 치달은 2019년이 되자 한창 신나게 달리던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 붐도 한풀 꺾이게 된 것이고,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2023년이 되니 모든 게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수순을 밟게 된 셈이다.
여기서 이제 ‘그 이전’을 돌아보자.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의 본격적 역사 부분 얘기다. 한국의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는 영화 장르로부터 시작됐다. 최인규 감독의 1946년 작 〈자유만세〉를 항일 영화의 시초로들 본다. 일제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지하공작을 펼치던 독립운동가의 사랑과 거친 운명을 그렸다. 〈자유만세〉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자 항일 영화는 실질적으로 일종의 흥행 보증수표처럼 인식돼 1940~50년대 봇물 터지듯 쏟아지게 된다. 〈윤봉길 의사〉(1947), 〈유관순〉(1948), 〈백범 국민장 실기〉(1949), 〈안창남 비행기〉(1949), 〈애국자의 아들〉(1949) 등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1951년 한일 간 국교정상화 회담이 시작된 이후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일본 정부의 북송(北送) 결정 탓에 이승만 정부가 대일(對日) 통상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1959년에 항일 영화는 다시 한 번 불타오른다. 한 해 동안에만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삼일 독립운동〉 〈유관순〉 〈한말풍운과 민충정공〉 〈이름 없는 별들〉 등이 일제히 쏟아졌다. 이 중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과 〈이름 없는 별들〉이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한동안 항일 영화 트렌드를 계속 이끌게 된다.
그러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게 1960년대 중반부터다. 영화계 내부적으로는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산업이 활황을 이뤄 상업적 매력이 높은 6·25 전쟁영화 등을 만들 자본과 기술력이 갖춰진 관계로 그리로 유행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점에서 영화계 외적 상황이 더 중요했다. 먼저 1965년 14년간에 걸친 조율과 교섭 끝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면서 항일이라는 코드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편 1968년에는 북한 공작원 김신조 일당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300m 앞까지 침투하는 이른바 ‘1·21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현실적 위협이자 국가적 분노의 대상으로서 북한이 온전히 설정되며 향후 영화시장도 기존 6·25전쟁 영화들과 함께 북한 간첩이 등장하는 첩보 영화들 중심으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마지막 항일 드라마 성공작은 〈여명의 눈동자〉”
이후 항일 영화는 대부분 B급 프로덕션에 머물게 된다. 일제 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독립군과 일본군, 마적단 등이 한데 얽히는 ‘만주 웨스턴’이나 일제 시대 배경 권격(拳擊) 영화 등 다소 싸구려 인상이 드는 장르 영화들 말이다. 그나마도 곧 열기가 식어 항일 코드는 1972년 KBS 일일드라마 〈여로〉처럼 안방극장 소재 정도로 머물거나 1974년 출간된 허영만의 만화 〈각시탈〉 등 서브컬처 계통 소재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다 실질적으로 ‘사라진다’. 특히 영화 부문은 1983년 청산리 전투를 다룬 이장호 감독의 〈일송정 푸른 솔은〉이 당시로서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서울 관객 7만 정도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자 상업영화로서 항일 코드의 명맥(命脈)이 끊기는 단계에 이른다. 〈장군의 아들〉 같은 일제 시대 협객(俠客) 영화, 〈뽕〉 같은 일제 시대 배경 성애(性愛) 영화를 굳이 항일 영화로 넣지 않는다면 그렇다. TV 드라마 역시 “마지막 항일 드라마 성공작은 1991년 작 〈여명의 눈동자〉”라는 얘기가 이후 20년에 걸쳐 통용되는 수준이 됐다.
물론 이후에도 항일 콘텐츠는 간간이 등장했다. 영화계에선 의열단을 소재로 한 2000년 작 〈아나키스트〉, 복거일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모티브로 일제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채 2009년을 맞이하게 된 조선을 그린 대체역사 SF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을사조약 체결 직후 일본군 야구 클럽 팀과 대결하게 된 YMCA 회관 야구팀을 다룬 〈YMCA 야구단〉 등 다양한 소재로 접근했지만 모두 흥행에선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TV 드라마도 SBS 〈야인시대〉나 MBC 〈왕초〉 등 협객 드라마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다.
가장 강렬한 민족주의 정권이었다고 평가되는 김영삼 정권 시절, 정권이 주도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남북한이 힘을 합쳐 개발한 핵미사일로 일본을 응징한다는 내용의 1993년 김진명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본이 석유 자원을 노리고 인도네시아를 침략하자 한국이 이에 맞서 일본과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의 1994년 이현세 만화 〈남벌〉 등이 히트하긴 했다. 그러나 이를 전통적 의미에서 항일 콘텐츠라 보기는 어렵다. 그저 반일 감정을 토대로 한 《환단고기(桓檀古記)》류의 ‘국뽕 판타지’ 정도라고 봐야 한다.
‘항일 영화’가 돌아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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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을 다룬 MBC 드라마 〈이몽〉 |
이런 점에서, 2023년에 이르러 왜 항일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고 트렌드가 바뀌었는지에 주목하기보다, 정반대로 어째서 20여 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사멸되다시피 한 항일 콘텐츠가 급작스레 되돌아왔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은 이전 일본 정권과 달라 그렇게 됐다는 반박도 존재하지만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 시절부터 과거 일본 정권과의 가지각색 트러블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다. 매일매일 국내를 향해 ‘친일’ ‘친일파’ ‘임시정부 부정’, 그리고 다시 ‘친일’ ‘친일파’ ‘임시정부 부정’ 등이 수없이 반복되는 환경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대중문화 책임론’은 이렇듯 그렇게 대단한 ‘힘’을 지닌 대중문화가 어떤 배경과 환경하에서 움직이고 작동하게 됐는지를 관찰하는 쪽으로 관심이 이동돼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저 민족감정과 대중문화 관계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조명받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앞선 ‘김원봉 드라마’ 〈이몽〉과 관련된 각종 논란을 당시 언론미디어 기사들을 통해 살펴보면 거의 전부가 김원봉이라는 인물의 이념 성향에 대한 화두(話頭)들뿐이다. 그를 인정하느냐 아니냐로 친일파냐 아니냐가 갈린다는 식의 막무가내 주장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몽〉의 내부로 들어가 그 제작 배경을 좀 더 살펴보면, 놀랍게도 2021년 SBS 〈조선구마사〉 논란 당시 처음 국내 언론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킨 중국 자본의 콘텐츠 제작사 쟈핑픽쳐스 유한공사가 나온다. 정확히는 쟈핑픽쳐스 측이 한국 제작사 이몽 스튜디오 문화전문회사와 합작 투자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이몽〉이다. 그리고 〈조선구마사〉 사건 당시 알려졌듯, 쟈핑픽쳐스의 한국 법인 쟈핑코리아 사무실은 중국 ‘인민일보 문화전매’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고, ‘인민일보 문화전매’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회사다. 쟈핑코리아 대표와 이사는 둘 다 ‘인민일보 한국 대표처’의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창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3월 쟈핑픽쳐스와 ‘인민일보 한국대표처’ 두 회사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주선으로 함께 성금 1억5000만원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한 바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만…
항일 대중문화 콘텐츠 홍보 과정에서 애용(愛用)되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출처는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어찌 됐건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문구는 오직 일본과의 관계에서만 등장한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예컨대 중국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과거 중국과의 그 지난(至難)한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의미로 이 문구가 등장하지 않고, 애초 그를 잊어선 안 된다는 캠페인 자체도 없다. 〈이몽〉에 대한 논란이 ‘친일파냐 아니냐’ 따위에 천착해 있을 때, 왜 중국공산당 기관지 자회사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중국 자본의 회사가 ‘김원봉 드라마’에 투자한 것인지 궁금해한 측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의 허랑함을 새삼 깨닫는다.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은 물론 그와 유사한 모습의 앞으로 닥칠 수많은 각종 논란들을 놓고서도 그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시각을 좀 더 넓혀 전체 상황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