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외벽 탈락 원인, 핵심 철물 절반 빼먹고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
⊙ 접착용 에폭시 사용, 빈도 높은 ‘꼼수’인데… 감리 맡은 승효상, “상상 못 했다”
⊙ 승효상, “시공사에 속았다”… 전문가들, “몰랐다는 건 곧 감리 부실의 자인”
⊙ 비 올 때마다 누수 현상도… 건물주, “총 하자 보수 비용만 5억원”
⊙ 전문가들, “건물 추가 위험 발생 농후… 전면 재시공해야”
⊙ 이로재 측, “일 허투루 한 적 없어… 보도 자제해달라”
⊙ 접착용 에폭시 사용, 빈도 높은 ‘꼼수’인데… 감리 맡은 승효상, “상상 못 했다”
⊙ 승효상, “시공사에 속았다”… 전문가들, “몰랐다는 건 곧 감리 부실의 자인”
⊙ 비 올 때마다 누수 현상도… 건물주, “총 하자 보수 비용만 5억원”
⊙ 전문가들, “건물 추가 위험 발생 농후… 전면 재시공해야”
⊙ 이로재 측, “일 허투루 한 적 없어… 보도 자제해달라”
-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경암재단의 빌딩. 부산 중심지 서면역 바로 앞에 있다. 사진=월간조선
전국적으로 부실공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건축가 승효상(承孝相·71) 이로재(履露齋) 대표가 설계한 부산의 한 건물 또한 핵심 철물을 절반가량 누락하고 지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중심지 서면에 위치하며, 지하 2층, 지상 11층짜리인 이 건물은 경암교육문화재단의 소유로 설계 및 감리(監理)는 이로재가, 시공은 A 건설사가 맡아 지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준공 직후부터 외벽 석재가 일부 탈락하기 시작했고, 원인을 살펴보니 시공사 측에서 핵심 자재인 긴결(연결)철물의 50%를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절감 차원이었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우리도 시공사에 속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도면대로 시공되지 않은 것을 몰랐다는 것은 감리 부실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했다. 건물주인 경암재단은 감리를 맡은 승효상 대표에게 2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자 보수비용만 수억원 지출
경암재단은 이로재와 2014년 5월 27일과 2015년 3월 1일, 각각 건축물설계계약과 시공감리에 관한 공사감리계약을 체결했다. 부가세 별도로, 설계비는 9억원, 감리비는 2억1600만원을 지불했다.
진애언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부산 한가운데 위치한데다, 예술, 문화, 교육에 앞장서야 하는 재단의 건물인 만큼 대한민국 최고 건축가에게 맡기고 싶었다”면서 “승효상 대표가 부산 출신이라 더욱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승효상 대표도 이 건물 건축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는 게 진 이사장의 설명이다. 진 이사장은 “계약 무렵인 2014년 승효상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그 또한 ‘부산 중심가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면서 “공사감리도 이로재가 수행한다면 보다 완성도 높은 건물이 될 것이라 해 감리까지 맡기게 됐다”고 했다.
경암재단은 이로재로부터 A 건설사를 소개받아 2015년 1월 26일 이 건설사와 113억2000만원(부가세 포함)의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건물은 약 2년 후인 2017년 5월 25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직후인 2017년 7월 6일과 2018년 1월 24일, 2018년 10월 6일 건물 외벽 석재 일부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석재는 대형으로 가로 98cm, 세로 63cm에 달한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서면역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약 47만 명에 달하는 곳이다.
진애언 이사장은 “석재 탈락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누수 문제도 심각해 수시로 보수 작업을 하며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며 “준공 직후부터 현재까지 보수로 지출한 금액만 5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핵심 철물 빼먹고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
설계도면에 따르면 이 건물 외벽 석재는 건식공법과 오픈조인트(Open-Joint)공법에 따라 설치됐다. 석재를 외벽에 바로 붙이는 습식공법과 달리, 건식공법에서는 벽체에 긴결철물을 설치한 뒤, 여기에 석재를 고정시킨다.
이때 석재 1장당 긴결철물은 상하부 각 2개씩 총 4개가 들어간다. 긴결철물과 석재의 연결부위는 긴결촉(핀)으로 고정한다. 긴결촉 또한 상하부에 모두 써야 한다. 석재의 무게가 오로지 긴결철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연결부위의 시공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오픈조인트는 석재 사이 줄눈을 채움재로 메우지 않고 균일하게 띄우는 방식으로 이 또한 석재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긴결철물에만 의존하므로 연결부위의 내구성 확보가 필히 요구되는 공법이다.
그런데 외벽 석재가 떨어지고 원인을 살펴보니, 시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긴결철물을 설계 기준의 절반만 쓴 걸로 드러났다는 게 진 이사장의 설명이다.
지난 2017년 7월 경암재단은 A 건설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12월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A 건설은 설계도면과 시방서(示方書)를 따르지 않은 채 상하부 각각 1개의 긴결철물을 누락해 실제 설계 기준의 50%로만 시공했다. 또한 모든 석재 하부 좌·우측 2개소에 긴결촉은 잘라서 빼고,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했다. 건물의 오른쪽 중앙 부분은 긴결철물의 조정판을 아예 설치하지 않고, 석재의 상하 및 양단 모두에 긴결촉 없이 접착용 에폭시만으로 고정했으며 일부 미승인 긴결철물 자재인 플라스틱도 사용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경암재단이 제기한 외벽 ‘전면 재시공’을 위한 27억911만4000원 규모의 청구 금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재단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원은 ‘부분 보수로 가능하다’는 A 건설사의 주장을 인정한 2심 판결을 유지하며 ‘2억8569만7233원을 지불하라’고 판시했다.
승효상, “우리도 시공사에 속았다”
대법 판결에 따라 경암재단은 A 건설 측에서 제시한 방법으로 ‘부분 보수’가 가능한 시공사를 팔방으로 알아봤으나 모두 ‘안전상 불가능하다’며 ‘전면 재시공만이 답’이라고 했다고 한다. 진애언 이사장은 “심지어 A 건설 측 감정인마저 적절한 시공사를 소개해주지 못했다”면서 “법원 판결과 현실의 괴리에서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진 이사장은 이어 “건축 비(非)전문가 입장에서 그때까지 ‘감리의 책임’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보수를 위해 만난 건축·시공 업계 관계자들의 ‘이렇게 시공될 동안 감리는 뭘 했느냐’는 말을 듣고 그제야 이로재에도 책임을 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승효상 대표는 ‘우리도 시공사에 속은 것’이라는 입장만 수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무렵 승효상 대표는 재단에 서신을 보내 “제가 이끄는 이로재에서 경암빌딩의 설계에 심혈을 기울여 수행한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면서 “그러나 시공사는 외벽마감공사에 있어, 석공사(石工事) 전문업체를 통해 제출하여 우리가 승인한 시공상세도면으로 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장관리자를 고의적으로 속이고 석재의 긴결촉을 삭제하며 다르게 시공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에 지난 2017년과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석재가 탈락하는 사고가 생겨, 시공사에 조치를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우려한 경암재단과 우리가 협의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 구조용 코킹으로 안전예방조치를 한 바 있다”라고 했다. 진애언 이사장은 “여기서 말한 ‘상당한 비용’은 1억615만원으로, 이는 모두 경암재단에서 낸 것”이라고 했다.
승효상 대표는 또 다른 서신에서도 “건설사의 하도급업체인 석공사업체의 시공자들은 감리자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외장 석재의 긴결촉을 고의적으로 절단해 석재가 탈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상부 긴결촉이 누락된 상태는 석재를 파쇄하지 않는 이상 절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진 이사장은 이어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렇듯 감리로서의 책임을 회피해 소송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경암재단은 지난 5월 15일 이로재에 24억2341만6767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건 상태다. 앞서 A 건설사에 청구한 전면 재시공 비용(27억911만4000원)에서 대법원 판결에 따라 A 건설사로부터 받은 부분 보수 비용(2억8569만7233원)을 공제한 금액이다.
“속았다는 건 ‘감리 부실’의 인정”
‘시공사에 속았다.’ 전문가들은 이 말 자체가 ‘감리 부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설계와 감리를 동시에 맡았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 크다고 했다.
조계춘 카이스트 건설및환경공학과 학과장은 “감리자는 일반적으로 설계도면대로 시공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해당 건물의 규모라면 상주감리로 판단되는데, 상주해 감리했다면 일반적으로 석재 시공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대형 시행 전문업체인 H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시공사는 최대한 편리한 방법을 쓰려 하기 때문에 도면대로 시공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감리자의 기본적인 업무사항”이라면서 “만약 감리자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근무태만 또는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국건축시공학회장을 역임한 임남기 동명대 건축학과 교수 또한 “현장에 감리자가 상주하는 이유가 설계 의도가 제대로 시공으로 연결되게 하기 위함인데, 이를 몰랐다거나 확인하지 않은 점은 감리자의 과실이 분명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이어 “석공사를 아는 감리원이라면 긴결촉 절단 행위는 반드시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면서 “시공사가 감리자에게 알리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시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승효상 대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건식공법에서 긴결촉 대신 에폭시를 쓰는 일은 자주 발생하는 부실로 알려져 있다. 대한건축학회 논문집의 《석공사 에폭시 사용에 관한 연구(2009)》에 따르면 공기(工期) 단축을 통한 인건비 절감 차원이다. ‘건식석재공사 표준시방서’에 나오는 지침이기도 하다. ‘연결철물은 석재의 상하 및 양단에 설치하여 하부의 것은 지지용, 상부의 것은 고정용으로 사용하며 연결철물용 앵커와 석재는 핀(긴결촉)으로 고정시키며 접착용 에폭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우신구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는 “외벽 석재공사에서 긴결촉 방식은 설치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에폭시로 대체하는 부실 시공 사례가 많다”며 “공사 중 특히 열심히 확인해야 하는 사항임에도, 석재공사의 편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긴결촉을 절단하고 에폭시로 고정하는 방식을 쓴 것을 감리자가 몰랐다는 것은 감리업무를 태만히 했다고 자백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했다.
“석재 파쇄해서라도 안전성 확보했어야”
앞서 승효상 대표는 “긴결촉이 누락된 상태는 석재를 파쇄하지 않는 이상 절대 확인할 수 없다”고도 했다.
우신구 교수는 이에 “석재 등 마감재는 한번 설치되면 잘못 시공된 사실을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감리자는 시공사가 현장에서 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늘 확인하고, 사진도 찍어서 향후를 대비한 기록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계춘 학과장은 “시공사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완공했다면, 육안으로 확인은 어려웠겠지만, 석재의 탈락이 외부 공간에 큰 위험이 될 수 있기에 발로 차보는 ‘외부 충격’ 등으로 석재가 제대로 결착되었는지 확인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임남기 교수는 “설사 공사 중에 볼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사 이후는 물론 준공 이후 유지관리 기간에도 오픈조인트에서는 줄눈보다 얇은 플라스틱 자나 명함 등을 이용해 석재 사이 줄눈에서 수평방향으로 이동시키면 간단히 연결철물이 존재하는지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건축가는 “외벽 석재 시공은 안전성이 특히 요구되므로 시공 중 일정구간마다 검측을 한다”면서 “만일 파쇄를 해야만 확인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시공 후 몇 개의 석재를 파쇄해서라도 안전성을 확인해야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 “건물 추가 위험 발생 농후”
현재 이 건물은 석재 추가 탈락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석재 사이 줄눈을 실링(sealing)재로 메우는 방식의 임시 보강공사를 해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당초 설계였던 오픈조인트가 아닌 다른 외벽이 됐다.
전문가들은 건물이 이 상태를 유지할 경우 추가 위험 발생이 농후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남기 교수는 “줄눈의 실링재가 전체 석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 벽체가 일체 거동하는 과정에서 후면 에폭시가 부분적으로 떨어지게 되면 어느 순간 전체 벽체의 안전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면서 “실링재의 내구성이 부족해지는 시점이 오면 점검을 통해 제거와 재시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우신구 교수는 “시공사에서 석재 뒷면에 사용한 에폭시 본드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깨지는 취성 소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긴결촉 고정 방식의 석재 공사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면서 “또한 화학제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성이 변화해 접착력이 차츰 감소하게 되므로 매우 위험한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참고로 이 건물에 붙은 석재는 총 7083개다.
외벽뿐만 아니다. 건물 내벽은 습기로 차 있다는 게 경암재단의 말이다. 누수 문제 때문이다. 진애언 이사장은 “비가 오면 지하 1층 자재창고 벽에서 흐르는 누수로 바닥 물고임이 심하게 발생해 매번 펌프기계로 퍼내야 하며 지하 2층 고압변전실 천장에서도 누수가 발생해 내부 바닥이 철벅거릴 정도”라면서 “지난 7월 집중호우 기간 때는 옥상 배수관 용량 부족으로 11층 건물의 옥상 빗물이 8층까지 흘러들어 집기 일부가 물에 잠기고, 건물 내 인원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재단에서는 지난 7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을 이로재에 보냈고, 이로재 측은 “우수(雨水)가 배관에 유입되는 부위에는 이물질을 거를 수 있는 거름망 일체형인 루프드레인을 설치하도록 설계했다”면서 “하지만 낙엽이나 비닐 등 이물질이 우수관을 막을 수 있으므로 원활한 배수를 위해서는 이물질이 쌓이지 않도록 유념해주기 바란다”고 답했다.
진애언 이사장은 “크고 작은 누수 문제 또한 준공 1년 된 시점부터 꾸준히 발생한 것이라 관리 부실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2018년부터 누수공사 및 방수공사로 지불한 금액은 약 4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법원에서 시시비비 가려질 것”(이로재)
지난 8월 7일 이로재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질문지를 작성해 보냈다. 경암재단에 해당 시공사(A 건설사)를 추천한 배경은 무엇인지, 시공사가 설계와 달리 시공한 사실을 언제 인지했는지, 시공사 측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숨겨 시공 당시 인지하지 못했다면 시공 이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의도적으로 숨긴 시공사 측에 책임을 묻는 등의 대응이 있었는지, 도면과 다른 시공에 따른 설계변경 조치가 있었는지, 외벽 석재 탈락과 관련 이로재 측에서 파악한 다른 원인이 있는지를 적었다.
또한 해당 건물의 외벽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부분 보수’만으로 복구될 수 있는 것인지, 만일 ‘전면 재시공’이 필요하다면, 설계·감리를 맡은 이로재 측의 책임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와 누수 문제에 대한 입장 등도 질의했다. 이와 함께 재단 측의 입장을 요약, 정리해 추가 반론 사항이 있는지도 물었다.
이와 관련 김성희 이로재 공동대표(소장)는 8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질의 내용 대부분은 경암재단의 주장”이라면서 “경암재단이 해당 주장을 바탕으로 소송을 제기한 만큼, 이에 대한 답변은 언론이 아니라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어 “억울한 면이 많지만 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 기대한다”며 “다만 (시공사가) 긴결촉을 절단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은 맞으며, A 건설사를 우리가 소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참고로 이로재는 비슷한 시기 모 대학의 기숙사 또한 A 건설과 함께 지었다. 김 대표는 또 “승효상 선생을 비롯해 이로재는 지금까지 일을 허투루 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그랬다면 지금까지 이로재의 명성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승효상, 경암학술상 수상
이후 이로재 측은 8월 10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메일도 보내왔다.
“통상 언론은 사인(私人) 간에 진행되고 있는 소송을 다루는 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고 알고 있다. 설사 의도하지 않더라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느 일방 당사자의 법익(法益)이 침해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사로서는 보도의 대상이 되는 순간, 언론의 엄청난 공시효과로 인해 법익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소송이 계속 중인 본 사안에 대하여,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승효상 대표는 대한민국 거장 건축가로 꼽힌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로 문 정부 당시에는 국가건축정책위원장도 지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국가 건축 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관계부처의 건축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위원장은 총리급이다. 이 기간 그는 ‘광화문시대준비위원회’와 함께 문 대통령이 내걸었던 ‘대통령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도 검토했다.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한편 경암교육문화재단은 창립자인 고(故) 송금조(宋金祚·1923~2020년) 회장이 평생 사업을 통해 모은 1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세운 순수 공익재단이다. 2005년부터는 학술, 연구 및 문화 활동을 통해 사회 발전과 도약에 이바지해온 학자 등을 격려 및 지원하는 차원에서 매년 ‘경암학술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승효상 대표는 지난 2017년 경암학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2억원이었다.
그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나는 건축이 가져야 하는 가장 큰 가치는 공공성이라고 주장해왔다. 설혹 개인의 돈으로 건축을 짓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건축에 대한 사용권만을 가질 뿐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면서 “그 건축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게 건축인 만큼, 그 건축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여겨왔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건축물의 소유권이 시민과 사회에 있다’면 시민과 사회는 이 건물 사정을 알 권리도 있는 셈이다.⊙
부산 중심지 서면에 위치하며, 지하 2층, 지상 11층짜리인 이 건물은 경암교육문화재단의 소유로 설계 및 감리(監理)는 이로재가, 시공은 A 건설사가 맡아 지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준공 직후부터 외벽 석재가 일부 탈락하기 시작했고, 원인을 살펴보니 시공사 측에서 핵심 자재인 긴결(연결)철물의 50%를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절감 차원이었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우리도 시공사에 속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도면대로 시공되지 않은 것을 몰랐다는 것은 감리 부실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했다. 건물주인 경암재단은 감리를 맡은 승효상 대표에게 2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자 보수비용만 수억원 지출
경암재단은 이로재와 2014년 5월 27일과 2015년 3월 1일, 각각 건축물설계계약과 시공감리에 관한 공사감리계약을 체결했다. 부가세 별도로, 설계비는 9억원, 감리비는 2억1600만원을 지불했다.
진애언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부산 한가운데 위치한데다, 예술, 문화, 교육에 앞장서야 하는 재단의 건물인 만큼 대한민국 최고 건축가에게 맡기고 싶었다”면서 “승효상 대표가 부산 출신이라 더욱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승효상 대표도 이 건물 건축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는 게 진 이사장의 설명이다. 진 이사장은 “계약 무렵인 2014년 승효상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그 또한 ‘부산 중심가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면서 “공사감리도 이로재가 수행한다면 보다 완성도 높은 건물이 될 것이라 해 감리까지 맡기게 됐다”고 했다.
경암재단은 이로재로부터 A 건설사를 소개받아 2015년 1월 26일 이 건설사와 113억2000만원(부가세 포함)의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건물은 약 2년 후인 2017년 5월 25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직후인 2017년 7월 6일과 2018년 1월 24일, 2018년 10월 6일 건물 외벽 석재 일부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석재는 대형으로 가로 98cm, 세로 63cm에 달한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서면역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약 47만 명에 달하는 곳이다.
진애언 이사장은 “석재 탈락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누수 문제도 심각해 수시로 보수 작업을 하며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며 “준공 직후부터 현재까지 보수로 지출한 금액만 5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핵심 철물 빼먹고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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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는 핵심 철물을 절반가량 누락하고 접착용 에폭시로 외벽을 시공했다. 이로 인해 준공 직후부터 건물 외벽이 벽체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사진=경암교육문화재단 |
이때 석재 1장당 긴결철물은 상하부 각 2개씩 총 4개가 들어간다. 긴결철물과 석재의 연결부위는 긴결촉(핀)으로 고정한다. 긴결촉 또한 상하부에 모두 써야 한다. 석재의 무게가 오로지 긴결철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연결부위의 시공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오픈조인트는 석재 사이 줄눈을 채움재로 메우지 않고 균일하게 띄우는 방식으로 이 또한 석재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긴결철물에만 의존하므로 연결부위의 내구성 확보가 필히 요구되는 공법이다.
그런데 외벽 석재가 떨어지고 원인을 살펴보니, 시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긴결철물을 설계 기준의 절반만 쓴 걸로 드러났다는 게 진 이사장의 설명이다.
지난 2017년 7월 경암재단은 A 건설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12월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A 건설은 설계도면과 시방서(示方書)를 따르지 않은 채 상하부 각각 1개의 긴결철물을 누락해 실제 설계 기준의 50%로만 시공했다. 또한 모든 석재 하부 좌·우측 2개소에 긴결촉은 잘라서 빼고, 접착용 에폭시로 대체했다. 건물의 오른쪽 중앙 부분은 긴결철물의 조정판을 아예 설치하지 않고, 석재의 상하 및 양단 모두에 긴결촉 없이 접착용 에폭시만으로 고정했으며 일부 미승인 긴결철물 자재인 플라스틱도 사용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경암재단이 제기한 외벽 ‘전면 재시공’을 위한 27억911만4000원 규모의 청구 금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재단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원은 ‘부분 보수로 가능하다’는 A 건설사의 주장을 인정한 2심 판결을 유지하며 ‘2억8569만7233원을 지불하라’고 판시했다.
승효상, “우리도 시공사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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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7월 6일 1차 탈락사고 당시 모습. 석재는 대형으로 가로 98cm, 세로 63cm에 달한다. 사진=경암교육문화재단 |
그러나 승효상 대표는 ‘우리도 시공사에 속은 것’이라는 입장만 수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무렵 승효상 대표는 재단에 서신을 보내 “제가 이끄는 이로재에서 경암빌딩의 설계에 심혈을 기울여 수행한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면서 “그러나 시공사는 외벽마감공사에 있어, 석공사(石工事) 전문업체를 통해 제출하여 우리가 승인한 시공상세도면으로 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장관리자를 고의적으로 속이고 석재의 긴결촉을 삭제하며 다르게 시공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에 지난 2017년과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석재가 탈락하는 사고가 생겨, 시공사에 조치를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우려한 경암재단과 우리가 협의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 구조용 코킹으로 안전예방조치를 한 바 있다”라고 했다. 진애언 이사장은 “여기서 말한 ‘상당한 비용’은 1억615만원으로, 이는 모두 경암재단에서 낸 것”이라고 했다.
승효상 대표는 또 다른 서신에서도 “건설사의 하도급업체인 석공사업체의 시공자들은 감리자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외장 석재의 긴결촉을 고의적으로 절단해 석재가 탈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상부 긴결촉이 누락된 상태는 석재를 파쇄하지 않는 이상 절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진 이사장은 이어 “몇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렇듯 감리로서의 책임을 회피해 소송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경암재단은 지난 5월 15일 이로재에 24억2341만6767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건 상태다. 앞서 A 건설사에 청구한 전면 재시공 비용(27억911만4000원)에서 대법원 판결에 따라 A 건설사로부터 받은 부분 보수 비용(2억8569만7233원)을 공제한 금액이다.
‘시공사에 속았다.’ 전문가들은 이 말 자체가 ‘감리 부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설계와 감리를 동시에 맡았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 크다고 했다.
조계춘 카이스트 건설및환경공학과 학과장은 “감리자는 일반적으로 설계도면대로 시공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해당 건물의 규모라면 상주감리로 판단되는데, 상주해 감리했다면 일반적으로 석재 시공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대형 시행 전문업체인 H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시공사는 최대한 편리한 방법을 쓰려 하기 때문에 도면대로 시공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감리자의 기본적인 업무사항”이라면서 “만약 감리자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근무태만 또는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국건축시공학회장을 역임한 임남기 동명대 건축학과 교수 또한 “현장에 감리자가 상주하는 이유가 설계 의도가 제대로 시공으로 연결되게 하기 위함인데, 이를 몰랐다거나 확인하지 않은 점은 감리자의 과실이 분명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이어 “석공사를 아는 감리원이라면 긴결촉 절단 행위는 반드시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면서 “시공사가 감리자에게 알리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시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승효상 대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건식공법에서 긴결촉 대신 에폭시를 쓰는 일은 자주 발생하는 부실로 알려져 있다. 대한건축학회 논문집의 《석공사 에폭시 사용에 관한 연구(2009)》에 따르면 공기(工期) 단축을 통한 인건비 절감 차원이다. ‘건식석재공사 표준시방서’에 나오는 지침이기도 하다. ‘연결철물은 석재의 상하 및 양단에 설치하여 하부의 것은 지지용, 상부의 것은 고정용으로 사용하며 연결철물용 앵커와 석재는 핀(긴결촉)으로 고정시키며 접착용 에폭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우신구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는 “외벽 석재공사에서 긴결촉 방식은 설치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에폭시로 대체하는 부실 시공 사례가 많다”며 “공사 중 특히 열심히 확인해야 하는 사항임에도, 석재공사의 편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긴결촉을 절단하고 에폭시로 고정하는 방식을 쓴 것을 감리자가 몰랐다는 것은 감리업무를 태만히 했다고 자백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했다.
“석재 파쇄해서라도 안전성 확보했어야”
앞서 승효상 대표는 “긴결촉이 누락된 상태는 석재를 파쇄하지 않는 이상 절대 확인할 수 없다”고도 했다.
우신구 교수는 이에 “석재 등 마감재는 한번 설치되면 잘못 시공된 사실을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감리자는 시공사가 현장에서 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늘 확인하고, 사진도 찍어서 향후를 대비한 기록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계춘 학과장은 “시공사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완공했다면, 육안으로 확인은 어려웠겠지만, 석재의 탈락이 외부 공간에 큰 위험이 될 수 있기에 발로 차보는 ‘외부 충격’ 등으로 석재가 제대로 결착되었는지 확인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임남기 교수는 “설사 공사 중에 볼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사 이후는 물론 준공 이후 유지관리 기간에도 오픈조인트에서는 줄눈보다 얇은 플라스틱 자나 명함 등을 이용해 석재 사이 줄눈에서 수평방향으로 이동시키면 간단히 연결철물이 존재하는지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건축가는 “외벽 석재 시공은 안전성이 특히 요구되므로 시공 중 일정구간마다 검측을 한다”면서 “만일 파쇄를 해야만 확인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시공 후 몇 개의 석재를 파쇄해서라도 안전성을 확인해야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 “건물 추가 위험 발생 농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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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누수 문제도 심각하다는 게 경암재단 측의 설명이다. 사진은 비가 온 뒤 배수가 되지 않아 물이 발목까지 차 있는 모습. 사진=경암교육문화재단 |
전문가들은 건물이 이 상태를 유지할 경우 추가 위험 발생이 농후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남기 교수는 “줄눈의 실링재가 전체 석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 벽체가 일체 거동하는 과정에서 후면 에폭시가 부분적으로 떨어지게 되면 어느 순간 전체 벽체의 안전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면서 “실링재의 내구성이 부족해지는 시점이 오면 점검을 통해 제거와 재시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우신구 교수는 “시공사에서 석재 뒷면에 사용한 에폭시 본드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깨지는 취성 소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긴결촉 고정 방식의 석재 공사에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면서 “또한 화학제품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성이 변화해 접착력이 차츰 감소하게 되므로 매우 위험한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참고로 이 건물에 붙은 석재는 총 7083개다.
외벽뿐만 아니다. 건물 내벽은 습기로 차 있다는 게 경암재단의 말이다. 누수 문제 때문이다. 진애언 이사장은 “비가 오면 지하 1층 자재창고 벽에서 흐르는 누수로 바닥 물고임이 심하게 발생해 매번 펌프기계로 퍼내야 하며 지하 2층 고압변전실 천장에서도 누수가 발생해 내부 바닥이 철벅거릴 정도”라면서 “지난 7월 집중호우 기간 때는 옥상 배수관 용량 부족으로 11층 건물의 옥상 빗물이 8층까지 흘러들어 집기 일부가 물에 잠기고, 건물 내 인원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재단에서는 지난 7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을 이로재에 보냈고, 이로재 측은 “우수(雨水)가 배관에 유입되는 부위에는 이물질을 거를 수 있는 거름망 일체형인 루프드레인을 설치하도록 설계했다”면서 “하지만 낙엽이나 비닐 등 이물질이 우수관을 막을 수 있으므로 원활한 배수를 위해서는 이물질이 쌓이지 않도록 유념해주기 바란다”고 답했다.
진애언 이사장은 “크고 작은 누수 문제 또한 준공 1년 된 시점부터 꾸준히 발생한 것이라 관리 부실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2018년부터 누수공사 및 방수공사로 지불한 금액은 약 4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법원에서 시시비비 가려질 것”(이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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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지하 1층 자재실 천장이 누수로 얼룩져 있다. 사진=경암교육문화재단 |
또한 해당 건물의 외벽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부분 보수’만으로 복구될 수 있는 것인지, 만일 ‘전면 재시공’이 필요하다면, 설계·감리를 맡은 이로재 측의 책임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와 누수 문제에 대한 입장 등도 질의했다. 이와 함께 재단 측의 입장을 요약, 정리해 추가 반론 사항이 있는지도 물었다.
이와 관련 김성희 이로재 공동대표(소장)는 8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질의 내용 대부분은 경암재단의 주장”이라면서 “경암재단이 해당 주장을 바탕으로 소송을 제기한 만큼, 이에 대한 답변은 언론이 아니라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어 “억울한 면이 많지만 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 기대한다”며 “다만 (시공사가) 긴결촉을 절단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은 맞으며, A 건설사를 우리가 소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참고로 이로재는 비슷한 시기 모 대학의 기숙사 또한 A 건설과 함께 지었다. 김 대표는 또 “승효상 선생을 비롯해 이로재는 지금까지 일을 허투루 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그랬다면 지금까지 이로재의 명성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승효상, 경암학술상 수상
이후 이로재 측은 8월 10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메일도 보내왔다.
“통상 언론은 사인(私人) 간에 진행되고 있는 소송을 다루는 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고 알고 있다. 설사 의도하지 않더라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느 일방 당사자의 법익(法益)이 침해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사로서는 보도의 대상이 되는 순간, 언론의 엄청난 공시효과로 인해 법익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소송이 계속 중인 본 사안에 대하여,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승효상 대표는 대한민국 거장 건축가로 꼽힌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로 문 정부 당시에는 국가건축정책위원장도 지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국가 건축 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관계부처의 건축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위원장은 총리급이다. 이 기간 그는 ‘광화문시대준비위원회’와 함께 문 대통령이 내걸었던 ‘대통령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도 검토했다.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한편 경암교육문화재단은 창립자인 고(故) 송금조(宋金祚·1923~2020년) 회장이 평생 사업을 통해 모은 1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세운 순수 공익재단이다. 2005년부터는 학술, 연구 및 문화 활동을 통해 사회 발전과 도약에 이바지해온 학자 등을 격려 및 지원하는 차원에서 매년 ‘경암학술상’을 시상하고 있는데, 승효상 대표는 지난 2017년 경암학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2억원이었다.
그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나는 건축이 가져야 하는 가장 큰 가치는 공공성이라고 주장해왔다. 설혹 개인의 돈으로 건축을 짓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건축에 대한 사용권만을 가질 뿐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면서 “그 건축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게 건축인 만큼, 그 건축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여겨왔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건축물의 소유권이 시민과 사회에 있다’면 시민과 사회는 이 건물 사정을 알 권리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