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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묻지 마 칼부림’ 시대

일본의 무차별 살인 범죄가 주는 시사점 5가지

20대 히키코모리 어느덧 중년 외톨이로… 40~64세가 61만 명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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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 데이터베이스 구축해야… 미국은 전 세계 테러 범죄 분석해 온라인에 공개
⊙ 불특정 다수를 죽이고 자살하는 ‘확대 자살’ 확산 막아야
⊙ 일본 사례 보면 범행 장소가 학교와 병원 등으로 옮겨갈 수 있어
신림역 흉기난동 현장에 시민들의 추모글이 붙어 있다. 사진=조선DB
  왜 우린 이런 것까지 일본을 따라가는 걸까. 신림역,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여러 면에서 일본의 무차별 살상 범죄와 닮아 있다.
 
  무차별 살상 범죄를 일본에서는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 부른다.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일찍 앓기 시작한 병리적 현상이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다.
 
 
  직업 없는 2030 고립 남성
 
2001년 오사카에서 일어난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 현장. 초등생 8명이 사망했다. 사진=NHK 캡처
  첫째, 직업 없는 20~30대 은둔형 외톨이 남성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법무성이 2000~2010년 무차별 살상 사건으로 수감된 52명을 분석했다.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39세 이하였다. 대부분이 남성이고, 무직(80%)이었다.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정신병력자는 거의 없었다. 학력은 중졸(63%)이 많았다.
 
  대표적 사례가 2001년 6월 8일 일어난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이다. 칼을 든 괴한이 수업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침입했다. 초등학생 8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 범인 다쿠마 마모루(범행 당시 38세)는 전과 15범으로 중졸에 무직이었다.
 
2008년 아키하바라에서 무차별 살상 사건을 일으킨 가토 도모히로가 현장에서 체포되는 모습. 사진=니혼테레비 캡처
  아키하바라 살상 사건의 범인 역시 20대 남성이었다. 2008년 6월 8일 20대 남성 가토 도모히로(당시 26세)가 2t 트럭을 몰고 도쿄(東京) 아키하바라 상점가로 돌진했다. 마침 당일 아키하바라는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의 날이었다. 범인은 트럭으로 행인들을 친 다음, 차에서 내려 흉기를 휘둘렀다.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토는 직업은 있었지만, 비정규직 사원으로 계약 해지를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두 사건은 7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날(6월 8일) 일어나 6월이 되면 일본에서 함께 자주 언급된다.
 
  신림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조선(33) 역시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중학교를 중퇴한 후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학력은 갖췄다. 서현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22)은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였다.
 
  둘째, 내부에 쌓인 폭력의 에너지를 범죄로 분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발현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상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2012년 6월 11일 일본 오사카에서 행인 두 명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 범인은 당시 36세의 이소히 교조(礒飛京三).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살인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의 범인 다쿠마 마모루도 어릴 때부터 강간, 스토킹, 폭행 등 중범죄를 끊임없이 저질렀다.
 
  조선 역시 폭력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신림역 범행 사흘 전 지인에게 “누구 죽여버리고 싶다” “저 1~2년 동안 못 볼 것 같아요” “교도소 들어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범행 한 달 전에는 “누구 죽여버리고 싶다” “법 없었으면 사람 많이 죽였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지난 5월 부산에서 과외 앱으로 만난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정유정(23)은 “범죄 수사 프로그램을 보며 살인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살인을 해보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사이코패스들은 주로 사기범
 
  이런 폭력적인 성향이 감경이나 면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면 사이코패스(Psychopath) 여부를 크게 보도한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에 집착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은영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얘기다.
 
  “사이코패스 테스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테스트 결과 사이코패스로 진단되면,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거든요.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폭력 범죄자에게 형을 선고할 때 사이코패스 여부를 고려하기도 해요. 범죄가 또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더 길게 형을 주는 식이지요.”
 

  우리나라는 좀 다르다. 검사 결과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면 사회가 안도(?)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그러면 그렇지, 범죄자로 태어난 사람이구나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었던 범죄였다’라는 식으로 집단 자기 위로하는 식이다. 김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으면 일종의 면죄부를 받는 현재의 분위기는 옳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거든요. 제일 많이 저지르는 범죄는 타인을 등쳐먹는 사기 같은 범죄예요. 소위 ‘제비’ ‘꽃뱀’ 이런 거죠.”
 
 
  ‘묻지 마 범죄’ 부적절
 
  인간의 행동엔 패턴(Pattern)이 있다.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분석해야 한다. 도리마 범죄가 빈발하자 일본이 시작한 게 바로 통계 작성이다. 통계를 내기 위해서는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1981년 일본 경찰청은 도리마 범죄의 네 가지 요소를 발표한다. ①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날 것 ②범행 동기가 모호할 것 ③피해자가 불특정인일 것 ④흉기를 사용하는 등 위해를 가할 것. 이를 기준으로 1983년부터 도리마 범죄 통계가 담긴 범죄백서를 발표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선 뚜렷한 정의 없이 ‘묻지 마 범죄’라는 용어가 적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 널리 쓰였다. 2004년에 일어난 유영철의 연쇄살인을 묻지 마 살인으로 표현했다. 경찰청은 ‘이상동기 범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김은영 교수의 설명이다.
 
  “‘묻지 마’ ‘무동기’ 범죄 둘 다 부적절한 용어예요. 동기 없는 범죄는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이상동기 범죄’로 바꾼 건데, 동기가 이상하다는 말이잖아요. 차라리 동기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것보다 못한 개념 정의지요. 우리는 범행 동기를 상당 경우 범죄자의 진술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범죄자가 동기를 진술하지 못하거나, 동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 행정 편의적으로 ‘묻지 마’ ‘이상동기’로 분류해버리는 거죠.”
 
  미국은 1940년대부터 대량 살상 범죄가 자주 일어났다. 여러 명을 살해하는 범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대량 살인, 연속 살인, 연쇄 살인이다. 대량 살인(Mass killing)은 단일 사건에서 3명 이상을 살해하는 것을 뜻한다. 2007년 일어난 버지니아공과대 사건을 들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는 대학 건물에 침입해 32명을 살해했다.
 
  연속 살인(連續殺人·Spree Killing)은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이, 여러 장소에서 두 명 이상의 피해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뜻한다. 2002년 일어난 벨트웨이(Beltway) 저격 살인이 대표적인 예다. 존 앨런 무하마드(당시 41세)와 존 리 말보(당시 17세)는 주차장, 주유소, 쇼핑몰 등에서 행인들에게 총을 쐈다. 한번에 대량 난사하는 식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 한번에 한 명씩 저격하는 식으로 죽였다. 2002년 2월부터 10월까지 17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연쇄 살인(Serial Killing)은 같은 범죄자에 의해서 발생한 2건 이상의 구분된 살인이다. 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존재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티브였던 테드 번디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로 여대생을 죽였다.
 
 
 
피루스와 GTD

 
1948~2021년 사이에 미국에서 일어난 극단주의 범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피루스(Pirus) 데이터베이스.
  미국은 대량 살상 범죄와 범죄자의 특성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하고 있다. 피루스(Profiles of Individual Radicalization in the United States·Pirus)와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Global terrorism database·GTD)가 대표적이다. 피루스는 1948~2021년 사이에 일어난 극단주의 사건들을 분석했다. 극우, 극좌, 이슬람주의부터 극단적인 환경 운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3200명 이상의 폭력 및 비폭력 극단주의자의 속성과 급진화 과정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온라인에서 통계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해놨다. 단순히 자료만 열거하는 게 아니라, 한눈에 알 수 있게 도표로 정리했다.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는 미국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아 1970~20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을 정리한 범죄 통계다.
  GTD는 테러리즘 연구 및 대응을 위한 컨소시엄 조직인 스타트(The National Consortium for the Study of Terrorism and Responses to Terrorism·START)가 만든 데이터베이스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폭력 범죄 사례를 정리했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하는 프로젝트다. 통계 자료는 역시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다. 신원과 소속, 이용 목적 등을 보고한 후 내려받을 수 있다.
 
 
  민족별 범죄 패턴 정리
 
  기자도 신원과 ‘취재 목적’을 알려준 후 파일을 내려받았다. 자료를 읽어보니 1970년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일어난 범죄도 기록되어 있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일어난 테러 사건을 살펴본 후,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흉기와 수법이 사용됐는지 기록했다. 국가별, 민족별 테러 특성을 이해하고 대응책을 세우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초 자료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세금을 들여 전 세계 범죄를 분석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신림역 범죄가 일어나자 일각에서는 ‘조선족’이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다. 조선과 조선족의 상관관계는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엔 ‘조선족포비아’가 깔려 있다. 오원춘, 박춘봉 등 조선족 출신 살인범들 탓도 있을 터다. 피루스처럼 정교하게 작성해 공개된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조선족포비아가 과장된 건지, 실체가 있는 건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확대 자살’
 
  일본의 경험이 알려주는 시사점 세 번째는 ‘확대 자살’이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2009년 7월 5일 오사카에서 파칭코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5명을 숨지게 한 범인은 “직장이 파산하고 생각한 일도 제대로 안 돼서 자살을 생각했다. 어차피 죽는다면 누구라도 좋아서 끌어들였다”고 진술했다.
 
  2019년 5월 28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초등학생들을 흉기로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명이 죽고 17명이 다쳤다. 범인 이와사키 류이치로(당시 51세)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당시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하라다 다카유키 쓰쿠바대학 교수는 이와사키의 범행을 ‘확대 자살’로 분석했다. “자신과 관계없는 제3자를 끌어들여 자살해 사회 이목을 모으는, 뒤틀린 자기 현시 욕구 같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스이 마후미 니가타세이료(新潟靑陵)대학 사회심리학과 교수 역시 ‘확대 자살’로 분석했다. “인생의 최후에 많은 사람을 살해하면서, 자신을 바보 취급한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와사키는 한집에서 함께 살던 큰아버지 부부와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혼자 살았다.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다. 당시 일본 사회가 놀랐던 데는 이와사키의 나이(51세) 때문도 있었다. 도리마 살인은 주로 이삼십대가 저지른다는 일종의 법칙이 깨졌다. 20~30대부터 고립 생활을 시작한 히키코모리들이 20년 후 중년 히키코모리가 되어 등장한 것이다.
 
  이와사키의 범행 며칠 후 아버지가 중년의 아들을 죽인 사건도 일어났다. 구마자와 히데아키(당시 76세) 전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이 장남 에이이치로(당시 44세)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오랜 기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부모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아들이 이와사키처럼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아’ 죽였다고 아버지는 진술했다. 당시 일본 내각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40~64세의 중년 히키코모리는 61만여 명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의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까.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사형’과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림역, 서현역 사건 후 법무부는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신설하기로 했다. 형법 개정안이 8월 14일부터 9월 25일까지 입법예고된다. 형벌 강화로 무차별 살상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형벌에는 크게 4가지 기능이 있다. 사회에서의 격리, 갱생을 위한 교화, 국가 차원의 응징, 범죄 예방이다. 한국은 교화를 중시하지만 미국은 격리에 초점을 둔다. 경범죄라도 3번 이상 저지르면 중형을 선고하는 ‘삼진아웃(Three Strikes and Out) 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마트에서 비디오 테이프 9개를 훔치고 50년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삼진아웃 제도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범죄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 중이다.
 
  형벌 규정 강화가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있는지 정교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 자료 확보가 우선이다. 현장에서는 재소자 인권을 보호한다며 범죄심리학자들의 연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일어난 현상이다.
 
 
  학교, 병원으로 범행 옮겨가
 
  넷째, 학교, 병원 등으로 범행 장소가 옮겨갈 수 있다. 경비가 허약한 다중이용시설의 경비를 강화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아키하바라, 시모노세키역 사건 등 지하철역과 도심 번화가를 노린 사건들이 일어난 후 경비가 강화되자 학교와 병원, 일반 건물로 범행 장소가 옮겨갔다.
 
  2021년 11월 9일 미야기현 도메시에서 유아원 흉기 난입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직원들이 잘 대처해 범인을 조기에 제압할 수 있었다. 범인 오오쓰키 와타루(당시 31세·무직)는 “아이들을 죽이고 사형을 받기 위해서 침입했다. 아이들이라면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한 명을 죽인다고 사형을 받지는 않기 때문에 최소한 2명 이상을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3월 1일 일본 사이타마현 도다(戶田)시의 한 중학교에 남자 고교생(17)이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찔렀다. 이 학생은 “평소 무차별 살인을 동경했다”며 학교를 택한 이유로는 “학교라면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학교 문이 잠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방화 살인
 
2019년 일어난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 현장. 사진=위키피디아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2019년)과 오사카 병원 방화 사건(2021년)도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아오바 신지(당시 41세·무직)는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인 교토 애니메이션의 제1스튜디오에 들어가 불을 질렀다. 36명이 죽고 33명이 다쳤다.
 
  2021년 오사카(大阪)시의 한 병원에서 불이 나 용의자를 포함해 25명이 숨졌다. 범인 다니모토 모리오(谷本盛雄·당시 61세)는 가연성 액체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병원에 들어간 후 출입구 근처 난로 옆에 봉투를 놨다. 그런 다음 봉투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불이 크게 번지는 사이, 그는 탈출구 앞에 서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범인은 고립 생활을 오래 한 히키코모리였다. 그는 “외롭고 고독해 자살을 생각했지만, 죽는 것이 무서웠다”며 “누군가를 죽이면 나도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다섯째, 범행의 실행 비용을 높여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범죄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를 군데군데 배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방화 사건이 난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원래는 출입카드가 있어야만 외부에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사건 당일엔 방송 촬영 관계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 범죄의 문턱이 일시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도리마 범행이 잇따르자, 외부인의 이동 경로를 통제하고 투명 칸막이가 있는 접견실을 설치하는 학교나 병원도 생겼다.
 

  아키하바라 사건(2008) 후 일본은 흉기 소지 금지 법안을 강화했다. 당시 범인은 칼날 길이가 13cm인 검을 휘둘렀다. 당시 법은 칼날 길이 15cm 이상만을 소지 금지 대상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총포도검법을 개정해, 2009년부터는 칼날 길이가 5.5cm 이상인 나이프 등의 양날형 검 소지를 금지했다. 차량 침입 방지 매뉴얼도 만들었다.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행사장 주위에 차벽을 쌓도록 했다.
 
  한국은 흉기 휴대 처벌 조항이 미비하다. 경범죄처벌법 3조 2항은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일본처럼 칼의 길이까지 명시해야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은둔 청년 24만 명
 
  물론 근본적인 대책은 은둔형 외톨이들을 사회로 데려오는 것일 터다. 국무조정실이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통계를 보면 한국엔 약 24만4000명의 은둔 청년(만 19~34세)이 있는 걸로 추정된다. 청년 인구의 2.4%다. 서울시의 조사를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서울시는 올해 1월 만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고립·은둔 실태를 조사했다. ‘고립 청년’은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청년 중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유지된 경우이고, 이 중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문 지 최소 6개월이 된 경우는 ‘은둔 청년’으로 정의했다.
 
  조사 결과 서울 청년의 4.5%가 고립·은둔 생활 중이었다. 서울시 청년 인구로 환산하면 12만9000명이다. 고립·은둔 청년 상담 지원 전문단체 ‘씨즈’의 오오쿠사 미노루(大草稔) 고립청년지원팀장은 “4.5%라는 수치는 일본에서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굉장한 수치”라며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보다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형 8050문제를 마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사회가 히키코모리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고 있는지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할 이유다. ‘8050문제’는 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걸 뜻한다.
 

  미니 인터뷰
  범죄학 전공 김은영 교수
 
  “커뮤니티 안에서 배설물 같은 감정 쏟아내며 더 동조해”
 
사진=김은영
  김은영(金恩玲·50)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조선(신림역 살인)이 최원종(서현역 살인)에게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종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겁니다. 칼로 사람을 막 찌르고 싶었는데, 누가 나보다 먼저 실행에 옮긴 걸 보면, ‘나도 해야겠다’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김 교수는 최원종이 활동한 디씨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의 역할을 지적했다.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험을 하게 돼요. 오프라인에서는 말 못 할 배설물 같은 감정들을 쏟아내면서 거기에 더 동조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거기에 맞춰지게 돼요. 심리학에서 보면 어떤 행동에 참여하게 되면 거기에 믿음을 갖게 되고, 그러면 또 행동이 변화된다고 해요.”
 
  바로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반향실) 효과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면서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는 현상이다.
 
  김 교수는 범죄를 대하는 미디어의 행태도 지적했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너무 자세하게 보도해 사람들이 해당 뉴스에 노출이 많이 될수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아요. 세월호 사고도 몇 달 동안 정말 많이 보도됐잖아요. 국민들이 죽음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이제는 누가 죽기만 하면 다 가서 헌화하는 문화가 생길 지경이 됐어요.”
 
  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범죄를 다룹니다. 미국에는 CSI 시리즈처럼 범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많지만 한국처럼 범죄를 유쾌한 분위기로 풀어놓는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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