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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비행기를 세웠던 기자의 16년 만의 비행

제주공항에 내린 순간 우리 가족은 ‘하이 파이브’를 했다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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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못 탔던 16년간 존재 자체가 민폐였던 적도
⊙ 비행기에서 중도에 내린 후 한동안 KTX, 붐비는 지하철, 시외버스 등도 이용 못 해
⊙ 이륙 전 하기(下機) 승객 발생 시 지금도 보안검색 재실시는 여전
  정확히 16년 만이다. 나는 《월간조선》 2007년 8월호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세운 ‘간 큰’ 사람들〉이라는 기사를 쓴 일이 있다. 당시 취재를 위해 제주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이륙 직전에 내리게 된 사연을 중심으로 쓴 기사였다.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에게 그날 기자의 비행(飛行)은 비행(非行)이 됐다. 나의 이륙 전 하기(下機)로 인해 함께 탔던 승객들이 모두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이륙 직전에 내린 날은 2007년 6월 26일이었다. 이후로 나는 만 16년간을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글로벌 시대’의 미아로 지내왔다. 지난 6월 25일 큰아들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하는 3박 4일간의 제주 여행을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루가 모자라는 16년 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16년 만에 비행기 여행에 성공했다.
 
  길지만 2007년 8월호에 썼던 기사의 앞부분을 부분 발췌, 인용한다.
 
  〈지난 6월 26일 오전 기자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취재차 오전 10시30분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자가진단이기는 하지만 기자는 평소 약간의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국내선을 이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혼여행, 가족 휴가, 취재 등의 이유로 서울과 제주를 20여 차례 왕복한 경험이 있었다. 불과 2개월여 전에도 이번의 제주행 이유와 마찬가지인 ‘김성동의 인간탐험’ 취재를 위해 다녀왔다.(중략)
 
  예약한 비행기표를 찾아들고 일찌감치 검색대를 통과해 탑승구 앞으로 가서 탑승 개시 시각을 기다렸다. 좌석번호 40F. 오전 10시쯤 포항에 취재가 있는 사진기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포항에서 제주로 출발하는데 오전 11시30분께 도착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탑승할 비행기의 제주공항 도착 예정 시각은 오전 11시45분이었다.
 
  오전 10시15분 탑승이 시작됐다. 양쪽 창가로 3석씩 가로 한 줄에 6석이 있는 비행기였다. 통로는 당연히 그 가운데를 지나는 한 곳뿐이었다. 예전에 탔던 비행기들은 다 통로가 두 개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좌석을 찾아 비행기에 들어가는 순간 동굴 속을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 지하철 안에서 엄습해 왔던 그 느낌이. 고개를 흔들며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보았지만 갑갑함의 무게는 더해 갔다.
 
  좌석 40F를 찾아 앉았다. 창가였다. 바깥이 보여서 좋은 게 아니라 뜨거운 햇살이 싫었다. ‘통로 쪽이라면 틈틈이 다리라도 뻗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 두 좌석에는 연인 한 쌍이 앉았다. 두 좌석 건너에 있는 통로가 너무 멀어 보였다. 답답함을 잊기 위해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들었다. 속이 메스꺼웠다. ‘내리고 싶다’와 ‘취재 약속을 깰 수 없다’는 생각이 수없이 교차됐다.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로 붐비는 출국장. ‘글로벌 시대의 미아’는 이곳에 갈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즐거운 상상을 하기로 했다. 하필이면 최근에 기자에게는 즐거운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눈을 떴다.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창문의 햇볕 차단막을 내렸다. 기자를 포함한 199명의 승객이 전부 자리에 앉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한 시간 10분만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자’고 결심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휴대폰 전원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전 10시25분. 시간을 보는 순간 다시 갑갑해졌다.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가방을 들고 비행을 준비 중인 승무원들이 서 있는 출구로 갔다.
 
  비행기 타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승무원들이 새삼 신기하게 보였다. ‘신기해 보이는’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했다. 여승무원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갑갑해서 비행기를 못 타겠어요.”
 
  신기한 것은 비행기 탑승구에 서자 다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었다. 남자 승무원이 다가왔다.
 
  “오늘 비행기가 만석인데 선생님께서 내리시면 나머지 승객 198명도 다 내려야 합니다.”
 
  기자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저만 내리면 되는데 다른 분들은 왜 내려야 하죠?”
 
  “항공법상의 보안규정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여승무원이 종이컵에 냉수를 담아서 건넸다. 여전히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 한잔 드시면 마음이 가라앉으실 거예요.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나머지 승객 198명에게 불편을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승무원의 미소도 외면할 수 없었다. 물 한 컵을 마신 후 일간지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고 신문을 펼쳤다. 일간지 하나를 꼼꼼히 다 읽고 나면 제주공항에 도착해 있으려니 하는 기대와 함께. 그러다가 잠이 오면 더욱 좋고. 그러나 기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륙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는 질식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려야 한다, 내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공중에 떠서 죽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나머지 승객에게 더 번거로움을 주는 일이다.’
 
  나름대로 비행기에서 내려야 할 명분을 떠올렸다.
 
  다시 안전벨트를 풀려고 하는데 풀리지 않았다. 당황했다. 옆에 연인과 앉아 있던 여자가 기자를 힐끗 봤다.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의 손을 잡고 안전벨트를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쉽게 풀었다. 후다닥 가방을 챙겨 들고 비행기 출구로 달려갔다.
 

  여승무원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다시 물었다.
 
  “정말 내리셔야겠어요?”
 
  “예,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요.”
 
  “내리시면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비행기는 다시 보안검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30분 정도 지연돼야 하고요.”
 
  “미안합니다. 그래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 승무원이 다가왔다.
 
  “가방 외에 짐은 없습니까.”
 
  “예, 이게 전붑니다.”
 
  남자 승무원은 기자를 게이트 입구로 안내했다.
 
  “조사원들이 올 때까지 여기에 계십시오.”
 
  다시 멀쩡해진 기자는 “예” 하고 대답하곤 서 있었다. 잠시 후 탑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피했고 미안했다. 맨 앞에 나오고 있는 일행에게 “죄송합니다” 했다. 승객들은 기자의 ‘죄송함’을 받아들일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주옥같은 시간 30분을 기자 때문에 뺏겼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행기를 내리는 승객들 앞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와는 다른 식은땀이 흘렀다.
 
  비행기를 내리는 승객들의 긴 행렬이 기자의 눈앞에서 사라질 즈음 항공사 직원이 다가왔다. 그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제가 무얼 어떻게 해야죠?”
 
  “번거로우시겠지만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조사받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공항 직원이 물었다.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처음입니다.”
 
  (중략)
 
 
  국정원 등의 합동조사를 받다
 
  공항 직원은 주소 등 간단한 인적사항을 기록한 후 기자를 국정원 직원 등이 포함된 합동조사반에 인계했다. 우리는 조사실로 향했다.
 
  비행기 탑승 후 내린 승객에 대한 조사 근거는 ‘항공 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엔 탑승했던 비행기에서 중도에 내린 승객을 어떻게 조사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항공사별 보안규정에 세부 절차가 규정돼 있다. 9·11사태 후 한층 강화됐다고 한다.
 
  합동조사에 참여하는 기관은 공항에 파견돼 있는 국정원, 공항공사 폭발물 처리반, 공항 경찰대, 기무사, 건교부(건설교통부·현재의 국토교통부-편집자 주) 공항관리소 등이다. ‘대테러 문제’라는 사안의 성격상 조사를 주도하는 기관은 국정원이다. 국제선도 동일한 적용을 받는다.
 
  국정원 직원 등 조사반원들은 기자의 인적사항을 다시 챙겼다. 기자에게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물었다. 제주 방문 목적과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의 나이와 연락처 등을 꼼꼼하게 물었다. 그제야 기자는 이들의 조사가 ‘대테러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기자는 조사를 주도한 국정원 직원에게 물었다.
 
  — 제가 비행기에서 내린 후 다른 승객들도 다 내리던데 불필요한 일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탑승 후 승객 중의 누구 한 명이라도 내리면 보안검색을 다시 해야 합니다. 테러범들이 폭발물을 설치해 놓고 먼저 내려버릴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요.”
 
  — 탑승 게이트로 오기 전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를 다 마쳤는데요.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겁니다. 실제 테러범이 비행기에 폭발물을 설치해 놓고 자신만 먼저 내려버린 사례는 국내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승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죠.”
 
  — 어떤 검사를 합니까.
 
  “선생님께서 앉았던 좌석의 앞뒤 등 세 줄의 좌석을 뜯고 샅샅이 조사를 합니다. 화장실과 머리 위 선반도 검색 대상입니다.”
 
  — 국정원 직원이 합니까.
 
  “국정원과 항공사 승무원이 함께 실시합니다.”
 
  — 이런 일이 일어나면 다른 승객 가운데서 탑승을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고 하니까 그러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 이런 일로 인해 비행기는 보통 몇 분 지연됩니까.
 
  항공사 직원이 대신 답했다.
 
  “대략 30분 정도 지연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합동조사반에서 조사받는 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조사가 끝난 후 조사반은 기자를 다시 항공사 직원에게 인계했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에게도 미안했지만, 기자 때문에 번거로운 업무처리를 맡게 된 항공사 직원에게도 미안했다. 시간 지연 등 항공사가 기자 개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장 바깥으로 기자를 안내하던 항공사 직원에게 물었다.
 
  — 제가 어떤 배상을 해야죠.
 
  기자를 안내하던 항공사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배상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비행기표 환불을 받을 때 약간의 취소 수수료를 지불하면 됩니다. 일반 승객들이 탑승을 못 해서 환불받을 때와 동일합니다.”
 
  당시 기자가 제주행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은 공항이용료를 포함해 7만3400원. 취소 수수료는 운임의 10% 정도다. 기자는 공항이용료를 포함해 7만700원을 돌려받았다. 굳이 따지면 2700원을 손해 본 것이지만 198명의 승객에게 30분씩의 시간 손실을 준 비용, 지연 운항으로 인한 항공사의 피해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손해였다.
 
  공항청사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을 기대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하략)〉
 
 
  한동안 시외버스, 지하철도 못 타
 
이륙하는 비행기를 세운 후 못 타게 된 것은 비행기뿐만 아니라 KTX도 포함됐다.
  그 후 앞서 말한 대로 16년 동안 ‘글로벌 시대의 미아’로 살아왔다. 가족의 해외여행 때도 당연히 열외를 자처했다. 후유증은 비행기를 못 타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실생활에서도 여러 어려움을 가져왔다. 비행기를 세운 직후 한동안 붐비는 지하철이나 KTX, 시외버스 등을 탈 수 없었다.
 
  몇 년을 그랬다. 꼭 가야 할 상가(喪家)의 위치가 부산, 창원, 목포 등일 경우 아내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다녀와야 했다. 기자는 현재까지 30년 이상 ‘장롱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승용차 또한 밀폐된 공간이지만 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언제든 내릴 수 있고 쉴 수도 있는, 즉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큰 민폐였기 때문에 지방에 가는 일은 가급적 최대한 피했다.
 
  출·퇴근 시는 택시를 주로 이용했는데 역시 내 의지대로 창문을 내릴 수 있고 언제든 하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출·퇴근 교통비를 과도하게 지출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지금으로부터 7, 8년 전에는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부산행 KTX를 탔다가 천안아산역에서 내리는 일도 있었다. 결혼 기념 여행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KTX의 좁은 좌석이 주는 갑갑함을 견딜 수 없었다. 참아보려고 통로를 왔다 갔다 했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정신을 되돌릴 수 없었다. 내 증세를 알아차린 승무원들이 특실로 옮겨준다고 했지만 이미 시작된 갑갑함을 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게 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식은땀이 흘렀고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훗날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눈동자까지 흐리멍덩해져 있었다’고 한다. 결국 아내와 나는 천안아산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그 후 일주일가량 서로 말을 안 했다.
 
 
  공황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다
 
  그 일이 있은 일주일쯤 후 아내는 공황장애인 것 같으니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아내의 진지한 권유를 받았지만 정신과를 찾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몇 년을 더 지내다가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정신과를 찾아갔다.
 
  회사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 후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 몇 개월 후 신기하게도 지하철에서 느끼던 갑갑증은 사라졌고 또 그 얼마 후에는 KTX 탑승도 가능해졌다. 그래도 비행기는 자신이 없었다. 비행기 탑승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고 가슴이 답답해졌고 갑갑했다.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는 힘들더라도 비행기 탑승을 시도해보라고 했지만 기자는 “비행기 좌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싫다”며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비행기 타는 것 외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으므로 약물 치료도 그만뒀다. 약물 복용을 그만뒀지만 지하철을 이용하고 KTX를 이용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간혹 이러다가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갑갑해지는’ 증세가 도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언뜻 스치는 날들도 있었지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지하철 등의 이용이 익숙해지면서는 그런 생각마저도 사라졌다.
 
 
  ‘육체적 건강’의 문제
 
  하지만 비행기 탑승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오랜 기간 부부 해외여행을 위한 자금을 모았지만 기자 하나로 인해 부부 동반 해외여행 계획은 무산됐다. 또다시 나라는 존재가 주변에 ‘민폐’가 된 것이다.
 
  그때까지는 미처 몰랐다. 주관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는 심리적 요인을 깊이 따져 들어가면 ‘육체적 건강’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비행공포증 전문가는 육체적 건강 상태는 비행공포증과 큰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비행공포증을 극복하는 데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강함이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 요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육체적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은 일주일에 거의 7일을 마시는 술과 운동 부족이었다.
 
  나는 지난해 9월 말, 4년 반 동안 맡았던 《월간조선》 편집장에서 물러났다. 그 뒤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술을 마시는 횟수가 3분의 1로 줄었다는 것과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좀 보태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1만 보 걷기를 했다. 덕분인지 매사 컨디션이 좋았다.
 
  술을 줄이고 걷기를 시작한 후 금년 6월 중순까지 8개월 반 동안 비행기를 떠올릴 일은 없었다.
 
 
  다시 비행기를 타다
 
16년 만에 비행기 좌석에 앉은 기자.
  그러던 중 6월 중순에 큰아들 부부가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간다며 아내에게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했고 아내는 내 의사를 물었다.
 
  아내가 아들 부부와 제주도를 함께 갈지를 묻는 것은 “비행기 탈 수 있겠어?” 하는 물음과 다름없었다. 나는 무심결에 “갈 수 있어”라고 답했고 신기할 정도로 비행기 탑승을 상상할 때마다 떠오르던 갑갑함 같은 것들이 없었다. 재차 묻는 아내에게 “괜찮아”라고 거듭 답했다.
 
  마음 한편에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6월 25일 아침 김포공항에서 6시40분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제주행 비행기를 세울 때와 마찬가지로 통로가 하나인 비행기였는데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다. 승무원에게 몇 인승인지를 물었더니 177인승이라고 했다. 16년 전 탑승했다 내린 비행기는 199인승이었다. 나에 대한 걱정은 아내와 아들 부부의 몫이었다. 정작 나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아내는 연신 내 상태를 살폈지만 진심으로 나는 괜찮았다. 게다가 일기예보는 이날 우리의 목적지인 제주도부터 폭풍우를 동반한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전직 항공사 직원 출신인 아내는 기상이 악화됐을 때 비행이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뒤편으로 떨어져 앉아 있던 아들 부부는 이륙 직전 카톡으로 괜찮은지를 물어왔다. 나는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답해줬다.
 
 
  신세계로 발을 내딛다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했다. 상상만 해도 갑갑했던 비행기 내부였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비행기가 이륙 후 몇 분 지나 며느리가 카톡을 보내왔다.
 
  “아버님 축하드립니다. 이제 어디든 가실 수 있습니다.”
 
  177인승 비행기는 비 내리는 제주공항에 아침 7시45분에 안착했고 나는 멀쩡했다. 화물칸에 맡긴 짐을 찾으러 가며 우리 가족은 축하의 ‘하이 파이브’를 했다. 비행기를 상시적으로 이용하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짧은 비행 거리에도 불구하고 16년 만에 비행기 이륙에서 착륙까지를 경험한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글로벌 시대의 미아’에서 벗어나 신세계로 한 발 내딛는 그런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아내는 “돌아갈 때도 자신 있지?” 하고 물었고 나는 “그럼!”이라고 답했다.
 
  고비는 있었다. 역시 술이 문제였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돌아오는 날을 빼고 사흘간 저녁마다 술을 마셨다. 여행지에서 느슨해진 마음은 평소보다 더 많은 술을 불렀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갑갑했다. 커튼을 쳐서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갑자기 갑갑함이 밀려왔다. 순간 나는 “아, 어떡하지. 다시 병이 도졌나 보다. 비행기를 못 타면 집에는 무슨 방법으로 가야 하지? 나 하나야 괜찮지만 가족은?” 하는 생각들이 겹치면서 순간 암담해졌다.
 
  나는 숙소 밖으로 나갔다. 걸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걸었는데 갑갑함은 사라지고 ‘오늘 점심에는 뭐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될 정도로 평온을 되찾았다.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시 생긴 것도 물론이다.
 
  자가진단이지만 내가 비행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육체적 건강’의 회복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날 밤 우리는 저녁 8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아무 탈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만세’를 외치며 결심한 게 있다. 유효 기간이 만료된 지 10년은 넘었을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덧붙임: 이 글은 개인적인 체험일 뿐이다. 비행공포증의 치료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비행공포증에 관해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과 함께 소개한 비행공포증 전문가 인터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륙 전 하기 승객 발생 시 再보안검색은 필수
 
  2007년 8월호 기사를 쓸 때 기자는 항공사 측에 하기 승객 발생 시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연간 발생 건수는 얼마나 되는지를 취재해 기사화했다. 그때와 현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 다시 한 번 취재했다. 다음은 대한항공 관계자와의 문답이다.
 
  - 하기 승객이 발생하면 항공사 측은 어떤 조치를 취합니까.
 
  “제일 먼저 공항 상황실에 통보를 합니다. 왜냐하면 관제 업무라든가 대테러 업무를 하는 곳에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 여기서 비행기를 보내야 할지, 멈추게 해야 할지를 신속한 조사를 통해서 결정하죠.”
 
  - 16년 전 제가 비행기가 이륙 직전에 내릴 때 국정원, 기무사, 공항 경찰대 등 소위 합심조 조사를 받았는데 지금도 그렇게 합니까.
 
  “네, 지금도 변함없이 합동조사를 하죠. 공항테러대책협의회라는 곳에서 보안 위험 평가를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기내로 오거나 게이트 앞에 있는 해당 승객하고 면담을 하거나 해서 해당 승객이 정말 아픈 건지, 거짓말하는 건지를 판단하죠. 특히 대테러 부분에 중점을 두고 조사를 합니다.”
 
  - 과거에는 제가 앉았던 앞뒤 좌석까지 포함해 세 칸을 뜯어내고 보안검색을 한다고 하던데요.
 
  “보안검색을 다시 하기는 하죠. 해당 승객이 탔던 자리 주변을 자세하게 다시 검사합니다. 그런데 좌석을 뜯지는 않아요. 요즘은 장비가 발전해서 전신 스캐너 검색 등 탑승 전까지 검색이 철저하니까요.”
 
  - 하기 승객으로 인한 피해가 클 텐데 지금도 하기 승객에 대한 페널티가 없습니까.
 
  “네, 현재로서는요.”
 
  - 하기 승객에 대한 통계는 있습니까.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따로 통계를 내놓은 것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 미니 인터뷰
 
  국내 유일 비행공포증연구소 운영 중인 이상민 강남연세필 원장
 
  “공황장애는 소득 높은 계층에서 많이 발생”
 
  이상민 강남연세필 원장은 국내에서 비행공포증 치료와 연구의 선구자인 인물이다. 16년 전 기자가 이륙 직전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도 전문가로서 그를 인터뷰한 일이 있다. 비행기 여행에 성공한 후 그를 다시 인터뷰했다.
 
  — 요즘도 비행공포증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많습니까.
 
  “최근 몇 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행공포증 프로그램이 개점휴업 상태였고요,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서 요즘 다시 오시기 시작합니다.”
 
 
  “공황장애와 비행기 탑승 횟수는 무관”
 
  — 비행기를 못 타시는 분 중 공황장애, 비행공포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을 텐데 어느 쪽이 많습니까.
 
  “반반인 거 같아요. 서양인 중에 비행공포증이 많은 이유는 비행기를 많이 타면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분이 많아서 그래요. 오늘 우리 병원에 왔다 간 분도 비행기를 100번 이상 탔다고 하더군요. 많이 타다 보면 난기류나 이런 것들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고 그런 일들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오죠. 공황장애 환자분들은 비행기에서 첫 경험을 한다기보다는 지상에서 이미 공황장애가 생긴 상태에서 탑승을 하게 되죠. 그런데 빠져나가지 못하는 최악의 공간이 비행기이다 보니까 비행이 부담되는 경우가 많죠. 비행기 탑승 횟수하고는 무관하죠. 치료법이 약간 다릅니다.”
 
  — 어떻게 다른지요.
 
  “예를 들어서 항공기 안전성을 걱정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항공기가 자동차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인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하니까 항공역학이라든가 비행기의 고도가 높은 상황에서 난기류를 만났을 때 비행기가 왜 위험하지 않은지 하는 교육을 하죠. 공황장애는 비행기가 무서운 게 아니라 자신 안의 신체 증상이 문제인 것이기 때문에 그 신체 증상을 통제하는 복식호흡이나 근육이완법 같은 신체를 조절하는 방법, 테크닉을 배우고요.”
 

  — 공황장애의 치료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폐쇄된 공간 등 빠져나올 수 없는 장소 같은 데서 공황 발작을 유발시키는 거예요. 유발시켜서 자신이 배운 테크닉으로 그 상황을 조절하는 트레이닝을 하는 거죠. 공황장애 인지행동 치료의 기본은 자기 신체 증상을 폐쇄된 공간에서 조절하는 트레이닝을 미리 하는 겁니다.”
 
 
  “육체적 건강과는 무관”
 
  — 공황장애는 육체적인 건강 상태하고 밀접합니까.
 
  “꼭 그런 거는 아니고요, 예를 들어서 공황장애 환자분들 중에 체중이 급격하게 느는 시점이라든가, 여성분들은 반대로 심한 다이어트를 한다든가 하면 그런 변화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건강이 나빠지고 했을 때 아무래도 불안 증상이 조금 더 올라가고 공황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지만, 반드시 건강이 나빠서 공황장애가 오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병원 내원 환자 중에 마라토너도 있었거든요. 40km를 넘게 뛰는 분인데 지하철을 못 타요. 비행기는 당연히 못 타고. 그걸 보면 신체적인 문제는 아닌 거죠. 반드시 일치하진 않습니다.”
 
  — 비행공포증 환자에 특이 직업군이 있습니까.
 
  “별도의 직업군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공황장애 자체가 기본적으로 WHO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나라마다 조금 다르지만 1.5%, 많게는 2%까지 있다고 하기 때문에 뭐 50명에 한 분이니까 흔한 직업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 직업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들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나요.
 
  “정신과 전문의 시험 기출 문제에 이런 게 있어요. 좀 마음 아픈 이야기인데, 정신과의 모든 질환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 잘 생깁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를 더 받잖아요. 물론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지만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불행이 많잖아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불행들을 돈이 없어서 감내해야 하는 소사이어티에서 아무래도 우울증이든 조울증이든 조현병이든 알코올중독이든 더 생기죠.”
 
  — 또 하나는요.
 
  “또 하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우울증이라든가 알코올중독에 걸리면 사회적 지위가 다운그레이드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거의 대부분의 병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한테 잘 생기는데, 딱 그 예외가 공황장애예요.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상태를 체크하면 평균보다 높아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회사의 임원급이라든가 CEO라든가 연예인이라든가 좀 잘살고 이런 사람들한테 많죠. 이유는 성격적 특성과 관련이 있는 거예요. 열심히 살고, 지기 싫어하고, 완벽주의적이고 그래요. 이런 성향의 분들이 성공에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인 진취적인 마음도 있지만 불안도도 높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분들에게 공황장애가 잘 생기죠.”
 
 
  “완벽주의적인 사람에게 더 많이 발생”
 
  — 일상생활에서 공황장애로 인한 지장은 없습니까.
 
  “공황장애로 인해서 생기는 사회적 기능 저하가 의외로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공황장애 자체가 힘들긴 하지만 약을 복용하고 그러면 잘 버틸 수 있고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받는 걸 피해야 하는 것은 있지만 기본적인 인지 기능이라든가, 열심히 사는 성향적 특성 이런 게 변하지는 않아요. 굳이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의 차이를 따진다면, 열심히 살고 경쟁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이런 분들한테 더 잘 생긴다는 정도죠.”
 
  — 치료 기간이 정해져 있나요.
 
  “약물 치료의 경우 교과서에서는 1년 이상의 약물 치료를 권고하고요, 다만 그런 경우는 처음 발병했을 때에 해당하는 것이고요, 약을 끊었다가 두 번 세 번 재발하시는 경우에는 계속 드시는 걸 권고하죠. 약물 치료가 아닌 인지행동 치료의 경우에는 짧게는 10주에서 12주에 걸쳐 하죠. 원래 인지행동 치료 개념 자체가 시간적인 제약을 가지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자고 하는 치료입니다.”
 
  — 제가 16년 전에 비행공포증연구소를 찾아왔을 때 치료의 한 방법으로 깜깜한 방에 갇혔던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도 그 시설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폐소공포증 치료실이죠. 거기서 혹시 갇혀 계신다면 지금도 불안하실 것 같은가요?”
 
  — 그때는 거의 죽을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불안하지 않았다면 공황장애나 폐소공포증 환자가 아닌 거죠. 예를 들어서 항공기 안전성을 걱정하는 분은 그 방에 들어가봤자 불안하지 않거든요.”
 
  강남연세필은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 비행공포증, 폐소공포증에 대한 다양한 약물 치료,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와 성격적 요소에 대한 상담 치료, 인지행동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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