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노조, 자기들만의 리그, 자기들만의 기득권으로 뭉쳐 있다”
⊙ 사무직의 반란, 인원도 생산직보다 많아… 기존 노조에 위협적
⊙ ‘탈(脫)정치’ 내건 MZ 노조가 판단한 ‘정치적 활동’의 기준은?
⊙ 사무직의 반란, 인원도 생산직보다 많아… 기존 노조에 위협적
⊙ ‘탈(脫)정치’ 내건 MZ 노조가 판단한 ‘정치적 활동’의 기준은?
- 지난 2월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8개 회사 위원장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사진=새로고침
“물론 아시겠지만 보시다시피 저는 MZ 세대는 아니고(웃음)… 신체적 나이가 아니라, 지향점이나 사고(思考)가 같으면 MZ 세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거죠. 그걸 자꾸 신체적인 나이로 묶는 건 지양하고 싶어요.”
‘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아홉 개 회사, 위원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LS일렉트릭에서 근무하는 백재하(56) 새로고침 공보위원장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운동권과 같은 586 세대지만, 가치관만큼은 기자(26)보다 젊은 듯했다. 공덕역 앞 찻집에서 그를 만나 MZ 세대론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에, 아버지뻘과 인터뷰한다는 거리감이 사라졌다.
새로고침에는 4개 공기업과 5개 사기업 소수(少數) 노조가 가입돼 있다. 왜 굳이 공기업과 사기업을 따로 언급하냐고 물으면, 그간 언론에 보도된 이들의 정체성(正體性)이 둘을 구분하지 않아 혼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요약하자면 공기업 소수 노조는 기존 노조에 대한 반감으로 출범한 게 맞고, 사기업에선 기존 노조가 가입을 받아주지 않아서 소수 노조가 생긴 것이다. ‘MZ 노조’의 정체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들의 태동을 직접 들어본다.
“공기업은 기존 노조 싫어서 나온 거 맞아”
백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새로고침에 가입된 공기업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양대 노총의 정치 편중’에 환멸을 느껴서 따로 노조를 만든 게 맞다. 그는 “공공부문은 기존 노동조합에 들어가서 기존 노조(민노총, 한노총)에 참여했던 젊은 사람들”이라며 “기존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교육을 할 때도 주사파라든가 정치 얘기, NL 계열, 그리고 ‘어느 당 누구 석방하라’ 이런 걸 시켰다”고 설명했다.
백 위원장의 말처럼 한국가스공사 소수 노조, ‘더 코가스’ 이동훈 위원장은 “기존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 산하 한국가스공사지부)가 순번을 정해 정치적 집회에 참석을 요구했다”며 “강압적인 자세에 불만을 가져 2019년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더 코가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백 위원장은 운동권 세대로서 이렇게 평가했다.
“1960~1970년대엔 운동권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했고 그 사람들의 업적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저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시대가 변하고 있잖아요. 같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 노조는 아직도 노동자에 대해 계몽을 하거나 정치를 이끌어가거나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문맹률이 예전처럼 높지 않고 모든 사람이 깨어 있기 때문에 이젠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MZ 노조에 대한 인식은 공기업 소수 노조에 해당한다. 그래서 연령 분포 역시 젊은이들이 많다. 더 코가스의 20~30대 조합원 비율은 약 80%로, 50% 정도인 사기업보다 젊은이들이 확실히 많다. 그렇다면 왜 새로고침 내 사기업은 공기업과 성격이 다른 걸까. 사기업 소수 노조 출범 배경에 대해 백 위원장의 말을 요약하면, “기존 노조는 자기들만의 리그, 자기들만의 기득권으로 뭉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기업 노조는 현장직으로만 구성”
사무직이 생산직에게 ‘기득권’이라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하지만 이 ‘편견’은 백 위원장의 말을 듣고 완전히 깨졌다. 백 위원장은 “(새로고침 내 대부분의) 사기업 노조는 현장직으로만 구성돼 있고 사무직은 조합원으로 받지 않았다”며 “단체 협약을 하게 되면 현장직과 회사하고만 단체 협약을 맺으니까 사무직과 관련된 안건이나 건의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무직에서 회사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은 많았다. 백 위원장은 “현장직은 호봉제라서 급여가 5% 오르면 다들 그 정도 오르는데, 사무직은 성과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원래 근무 평가 C등급, D등급은 (급여가) 각각 2% 인상, 동결인데, 작년엔 C는 동결, D는 마이너스 3%로 하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조가 있다면 이런 걸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될 텐데”라며 “사무직이 더욱 ‘을(乙)’의 위치에 있다”고 푸념했다.
교섭권을 가진 기존 노조가 사무직을 어떻게 홀대했던 걸까. 백 위원장은 그간의 설움을 토로했다.
“회사에서 작년에 여덟 차례에 걸쳐 단체 협약을 진행했는데 기존 노조는 참관조차 거절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회의록을 보면, 노조는 저희가 낸 안건 10개 중 3개만 남겨놨어요. 그마저도 우리 안건은 수용된 게 하나도 없었어요. 8일 밤낮으로 안건을 논의한 단체 협약에서 우리 안건은 고작 한 시간만 다뤄졌죠.”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교섭 단위를 분리해 직접 교섭장에 들어가면 기존 노조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새로고침에 가입된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지난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분리 판정이 인용됐다. 기존 노조가 교섭권 분리에 찬성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 게 컸다.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위원장도 “사업장 내 노동조합 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백 위원장은 한마디로 “흔치 않은 사례”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는 새로고침 유준환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금호타이어의 예시를 들며 비슷한 일을 기대해볼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이끌고 있다. 유 의장의 반응도 백 위원장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교섭권을 가진) 한국노총 산하 노조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여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존 노조, 사무직 노조 경계
백 위원장은 기존 노조가 사무직 노조를 경계한다고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희 회사 총 근로자 수가 2800명에서 3000명 아래예요. 그런데 현장직은 노조에 100% 가입돼 있더라도 총 인원은 800명 아래예요. 반면 사무직은 총원이 2000명이니까 10%가 가입된 상태죠. 성장할 수 있는 확장성이 충분히 있어요. 그러니 기존 노조가 경계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사무직 노조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건 그들로선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아직은 교섭 단위 분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도, 조합원을 늘리려면 조합원들이 불이익받을 걱정을 덜어야 한다. 백 위원장은 “지난해 노조 출범 초창기에 익명으로 모인 인원은 300명이었지만 근로시간 면제 등 노조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선 조합원 명단을 공개해야 해서 빠져나가는 인원이 많았다”고 했다. 현재 LS일렉트릭 사무직 노조의 조합원은 130명 정도라고 한다.
LG전자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유 의장은 “당시 조합원 3100명 중 900명이 탈퇴해서 지금 2200명이 가입돼 있다”고 했다. 백 위원장은 “다른 사기업 사무직 노조 대부분 비슷한 사정”이라고 덧붙였다.
‘MZ 노조’라는 정체성
나이로만 보자. 새로고침 조합원 중 ‘MZ’ 비율은 70% 정도 된다. 그런데 새로고침의 연령 분포에 대해 백 위원장은 재미난 추론을 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40대는 어떤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무겁다’고 느껴요.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 한창 돈을 벌어야 하니까. 20대와 30대는 아직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거나 미혼이 많기 때문에 좀 가벼울 수 있죠. 뛰어들 만한 용기가 있을 수 있는 거고. 40대는 본인 생각보다 부양가족 생각뿐입니다. 50대가 되면 은퇴하는 입장에서 40대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죠. 그걸 보면 저희 협의회의 연령 비율과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젊은 층 70%, 50대가 한 20%, 그리고 40대가 10% 정도.”
MZ 노조에서 가장 크게 부각된 점은 역시 탈(脫)정치다. 다만 이들은 노동과 관련된 건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백 위원장은 “노동 권익을 위한 활동이 아닌 건 정치라고 선을 긋는다”며 “노동자를 위한 법정 활동, 위원회 활동, 토론회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경계가 모호하지 않을까.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는지 들어봤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위원장들의 단체 대화방 일부를 보여줬다.
한 단체에서 ‘청년 정치’를 주제로 한, 누가 봐도 노동과 관계없는 행사의 참여를 요청해온 것이었다. 그러자 위원장들은 ‘미참’이라는 의견을 투표로 냈다. 백 위원장은 “이런 걸 노동과 관련 없다고 본다”며 “3월 22일에 노동부 장관 간담회가 잡혔는데 그런 건 참여한다”고 했다.
그런데 새로고침은 지금 정부의 노동개혁과 관련해 정치적 현안에 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치권에서 접촉 시도가 있었는지 묻자 백 위원장은 “지금도 계속 오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접촉해온 곳은 노동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고 한다. 정치 이슈로 떠오른 데 대한 부담은 없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부에서 기존 양대 노총에 대한 제재를 하기 위해 우리를 지렛대 삼으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문도
주위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하는 게 MZ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새로고침’은 ‘MZ 노조’로 불러도 될 듯하다. 유 의장은 ‘정부의 방침(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면 교섭 단위 분리 등에서 협력을 얻어야 하는 정부와 엇박자를 타지 않겠냐’는 물음에 “그런 걸 걱정해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또 노동시간 개편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선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봐도 되겠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좌우 진영 눈치 볼 것 없이 내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탈정치 아닐까.
끝으로 백 위원장에게 향후 사무직 노조의 행보를 물어봤다. 그는 “그게 제가 가진 퀘스천(물음)이에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한마디는 새로고침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실마리를 던져줬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대(連帶)해서 돕기로 했어요. 돕는다는 건 뭐 머리띠 매고 싸우자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누가 토크콘서트를 한다거나 발대식,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같이 가서 자리에 앉아주고, 같이 가서 호응해주고, 성명 발표해주고….”⊙
‘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아홉 개 회사, 위원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LS일렉트릭에서 근무하는 백재하(56) 새로고침 공보위원장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운동권과 같은 586 세대지만, 가치관만큼은 기자(26)보다 젊은 듯했다. 공덕역 앞 찻집에서 그를 만나 MZ 세대론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에, 아버지뻘과 인터뷰한다는 거리감이 사라졌다.
새로고침에는 4개 공기업과 5개 사기업 소수(少數) 노조가 가입돼 있다. 왜 굳이 공기업과 사기업을 따로 언급하냐고 물으면, 그간 언론에 보도된 이들의 정체성(正體性)이 둘을 구분하지 않아 혼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리 요약하자면 공기업 소수 노조는 기존 노조에 대한 반감으로 출범한 게 맞고, 사기업에선 기존 노조가 가입을 받아주지 않아서 소수 노조가 생긴 것이다. ‘MZ 노조’의 정체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들의 태동을 직접 들어본다.
“공기업은 기존 노조 싫어서 나온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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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백재하 공보위원장 |
백 위원장의 말처럼 한국가스공사 소수 노조, ‘더 코가스’ 이동훈 위원장은 “기존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 산하 한국가스공사지부)가 순번을 정해 정치적 집회에 참석을 요구했다”며 “강압적인 자세에 불만을 가져 2019년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더 코가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백 위원장은 운동권 세대로서 이렇게 평가했다.
“1960~1970년대엔 운동권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했고 그 사람들의 업적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저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시대가 변하고 있잖아요. 같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 노조는 아직도 노동자에 대해 계몽을 하거나 정치를 이끌어가거나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문맹률이 예전처럼 높지 않고 모든 사람이 깨어 있기 때문에 이젠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MZ 노조에 대한 인식은 공기업 소수 노조에 해당한다. 그래서 연령 분포 역시 젊은이들이 많다. 더 코가스의 20~30대 조합원 비율은 약 80%로, 50% 정도인 사기업보다 젊은이들이 확실히 많다. 그렇다면 왜 새로고침 내 사기업은 공기업과 성격이 다른 걸까. 사기업 소수 노조 출범 배경에 대해 백 위원장의 말을 요약하면, “기존 노조는 자기들만의 리그, 자기들만의 기득권으로 뭉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기업 노조는 현장직으로만 구성”
사무직이 생산직에게 ‘기득권’이라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하지만 이 ‘편견’은 백 위원장의 말을 듣고 완전히 깨졌다. 백 위원장은 “(새로고침 내 대부분의) 사기업 노조는 현장직으로만 구성돼 있고 사무직은 조합원으로 받지 않았다”며 “단체 협약을 하게 되면 현장직과 회사하고만 단체 협약을 맺으니까 사무직과 관련된 안건이나 건의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무직에서 회사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은 많았다. 백 위원장은 “현장직은 호봉제라서 급여가 5% 오르면 다들 그 정도 오르는데, 사무직은 성과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원래 근무 평가 C등급, D등급은 (급여가) 각각 2% 인상, 동결인데, 작년엔 C는 동결, D는 마이너스 3%로 하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조가 있다면 이런 걸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될 텐데”라며 “사무직이 더욱 ‘을(乙)’의 위치에 있다”고 푸념했다.
교섭권을 가진 기존 노조가 사무직을 어떻게 홀대했던 걸까. 백 위원장은 그간의 설움을 토로했다.
“회사에서 작년에 여덟 차례에 걸쳐 단체 협약을 진행했는데 기존 노조는 참관조차 거절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회의록을 보면, 노조는 저희가 낸 안건 10개 중 3개만 남겨놨어요. 그마저도 우리 안건은 수용된 게 하나도 없었어요. 8일 밤낮으로 안건을 논의한 단체 협약에서 우리 안건은 고작 한 시간만 다뤄졌죠.”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교섭 단위를 분리해 직접 교섭장에 들어가면 기존 노조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새로고침에 가입된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지난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분리 판정이 인용됐다. 기존 노조가 교섭권 분리에 찬성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 게 컸다.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위원장도 “사업장 내 노동조합 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백 위원장은 한마디로 “흔치 않은 사례”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는 새로고침 유준환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금호타이어의 예시를 들며 비슷한 일을 기대해볼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LG전자 사무직 노조를 이끌고 있다. 유 의장의 반응도 백 위원장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교섭권을 가진) 한국노총 산하 노조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보여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존 노조, 사무직 노조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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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 |
“저희 회사 총 근로자 수가 2800명에서 3000명 아래예요. 그런데 현장직은 노조에 100% 가입돼 있더라도 총 인원은 800명 아래예요. 반면 사무직은 총원이 2000명이니까 10%가 가입된 상태죠. 성장할 수 있는 확장성이 충분히 있어요. 그러니 기존 노조가 경계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사무직 노조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건 그들로선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아직은 교섭 단위 분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도, 조합원을 늘리려면 조합원들이 불이익받을 걱정을 덜어야 한다. 백 위원장은 “지난해 노조 출범 초창기에 익명으로 모인 인원은 300명이었지만 근로시간 면제 등 노조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선 조합원 명단을 공개해야 해서 빠져나가는 인원이 많았다”고 했다. 현재 LS일렉트릭 사무직 노조의 조합원은 130명 정도라고 한다.
LG전자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유 의장은 “당시 조합원 3100명 중 900명이 탈퇴해서 지금 2200명이 가입돼 있다”고 했다. 백 위원장은 “다른 사기업 사무직 노조 대부분 비슷한 사정”이라고 덧붙였다.
‘MZ 노조’라는 정체성
나이로만 보자. 새로고침 조합원 중 ‘MZ’ 비율은 70% 정도 된다. 그런데 새로고침의 연령 분포에 대해 백 위원장은 재미난 추론을 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40대는 어떤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무겁다’고 느껴요.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 한창 돈을 벌어야 하니까. 20대와 30대는 아직 결혼한 지 얼마 안 됐거나 미혼이 많기 때문에 좀 가벼울 수 있죠. 뛰어들 만한 용기가 있을 수 있는 거고. 40대는 본인 생각보다 부양가족 생각뿐입니다. 50대가 되면 은퇴하는 입장에서 40대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죠. 그걸 보면 저희 협의회의 연령 비율과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젊은 층 70%, 50대가 한 20%, 그리고 40대가 10% 정도.”
MZ 노조에서 가장 크게 부각된 점은 역시 탈(脫)정치다. 다만 이들은 노동과 관련된 건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백 위원장은 “노동 권익을 위한 활동이 아닌 건 정치라고 선을 긋는다”며 “노동자를 위한 법정 활동, 위원회 활동, 토론회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경계가 모호하지 않을까.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는지 들어봤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위원장들의 단체 대화방 일부를 보여줬다.
한 단체에서 ‘청년 정치’를 주제로 한, 누가 봐도 노동과 관계없는 행사의 참여를 요청해온 것이었다. 그러자 위원장들은 ‘미참’이라는 의견을 투표로 냈다. 백 위원장은 “이런 걸 노동과 관련 없다고 본다”며 “3월 22일에 노동부 장관 간담회가 잡혔는데 그런 건 참여한다”고 했다.
그런데 새로고침은 지금 정부의 노동개혁과 관련해 정치적 현안에 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치권에서 접촉 시도가 있었는지 묻자 백 위원장은 “지금도 계속 오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접촉해온 곳은 노동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고 한다. 정치 이슈로 떠오른 데 대한 부담은 없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부에서 기존 양대 노총에 대한 제재를 하기 위해 우리를 지렛대 삼으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문도
주위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하는 게 MZ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새로고침’은 ‘MZ 노조’로 불러도 될 듯하다. 유 의장은 ‘정부의 방침(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면 교섭 단위 분리 등에서 협력을 얻어야 하는 정부와 엇박자를 타지 않겠냐’는 물음에 “그런 걸 걱정해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또 노동시간 개편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선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봐도 되겠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좌우 진영 눈치 볼 것 없이 내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탈정치 아닐까.
끝으로 백 위원장에게 향후 사무직 노조의 행보를 물어봤다. 그는 “그게 제가 가진 퀘스천(물음)이에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한마디는 새로고침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실마리를 던져줬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대(連帶)해서 돕기로 했어요. 돕는다는 건 뭐 머리띠 매고 싸우자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누가 토크콘서트를 한다거나 발대식,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같이 가서 자리에 앉아주고, 같이 가서 호응해주고, 성명 발표해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