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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人인가 勇者인가, 정치인에 대한 ‘신발투척史’ 속 인물들

국회에서 신발 던진 50대 男 정창옥씨 ‘박근혜 下野’ 외치던 내가 문재인에게 신발 던진 이유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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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대통령 되면 잘할 거라 믿었는데…”
⊙ 無名의 그들 살펴보니… 명문대 재학생부터 정신이상자까지
⊙ 영웅 vs 테러리스트, 그들이 기억될 이름은?
지난 7월 16일 국회에서 정씨가 던진 신발 한 짝을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해외에서는 정치인에게 신발을 던지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흔히 ‘슈잉(shoeing)’이라고 표현하고, ‘슈잉 리스트(맞은 사람 목록)’까지 있다. 이를 보도하며 ‘슈즈 넥스트(shoe’s next·다음엔 누가 맞을 것인가)’라는 제목을 쓸 정도다. 최근 그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7월 16일, 21대 국회 개원식 당일 누군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졌다. 세간의 반응은 극명히 갈렸다. “속이 시원했다” “사안이 엄중하다”. 연일 쏟아진 뉴스 속 ‘던진 이’의 얼굴에는 모자이크가 씌워져 있었다. ‘50대 남성’ 혹은 ‘한 시민’으로 불린 그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정창옥(57)씨다.
 
 
  계획적 범죄 아니었다
 
  지난 8월 7일,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궁금했다. 왜 던졌고, 왜 하필 신발이었으며, 어디까지 감수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 그날, 일행이 있었습니까.
 
  “혼자였습니다.”
 
  ― 보통 손에 들고 있던 걸 던지는데, 왜 신발이었습니까.
 
  “글쎄요, 즉흥적으로 나온 행동이라…. 수중(手中)에 휴대폰과 책이 있었는데 순간 신발을 벗어 던지자, 싶었습니다.”
 
지난 7월 16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정창옥씨. 그는 “특정 정치색이 없으며 부당한 데 목소리를 내는 시위를 정권과 관련없이 해왔다”고 했다. 사진=정창옥씨 제공
  ― 그 전에, 왜 던진 겁니까.
 
  “온갖 감언이설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는데, 3년간 너무 많은 잘못을 했지 않습니까. 일일이 꼽기도 힘들 정도로요. 그래놓고 끝까지 잘하고 있다고 하며, 반대 입장은 적폐로 몰고 있습니다. 이를 시인하고 궤도 수정을 했다면 그렇게까지 안 했을 겁니다.”
 
  ― 우발적이었다는 말입니까. 지난 7월 20일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신발 투척에 이르게 된 과정이 상당히 계획적’이라고 했는데요.
 
  “여러 기사에서 현장 체포 당시 제가 ‘계획적이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몇 년 전부터 이런 상상은 했어요. ‘만일 내 앞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지난 3년간의 잘못, 폐해, 위선적 쇼를 본 소감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동시에 ‘에이, 내가 대통령을 만날 일이 있겠어’ 했고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겁니다.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게 마치 구상해온 것처럼 와전(訛傳)된 것 같습니다.”
 
  ― 그날 국회에는 왜 갔습니까.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거 아니었습니까.
 
  “국회 개원식을 방청하러 갔습니다. 불허됐고, 아쉬운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과 영상을 찍다가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300명의 국회의원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기자들도 많이 모였고요. 의원들이 다 나왔는데도 기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누가 또 나오려나, 싶어서 보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이미 지하 벙커 같은 데로 안전하게 빠져나갔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신발을 벗어 던져야겠다, 싶었는데 각도를 보니까 기자들 머리에 맞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사람이 없는 빈 공간, 레드카펫 쪽으로 던진 겁니다.”
 
 
  신발을 던지면서 외친 말
 
2008년 12월 기자회견장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을 집어던진 기자 문타다르 알 자이디는 아랍 세계의 영웅이 됐다. 사진=뉴시스
  “이것은 이라크 사람들의 ‘굿바이 키스’다. 이 ×××야!”
 
  2008년 12월, 이라크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현지 기자 문타다르 알 자이디가 신발 한 짝을 던지며 외친 말이다. 29세던 그는 나머지 한 짝을 마저 던지며 “이건 이라크의 과부들과 고아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다.
 
  신발을 던지는 이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외친다. 신발이 ‘메신저’라면 이는 ‘메시지’인 셈이다. 2009년 2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강연 도중 신발 투척을 받았다. 수백 명의 학생이 모인 자리였다. 던진 이는 병리학 전공의 대학원생 마틴 얀케다. 독일 국적의 그는 당시 27세였다. 강의실 뒤편에 있던 그는 강연이 시작되자 큰 목소리로 티베트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의 인권 탄압을 언급했다. 호루라기를 불기도 했다. 급기야 왼쪽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그러면서 “케임브리지가 어떻게 독재자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느냐!”며 “강의를 듣지 말고 다들 일어나라, 저항하라!”고 외쳤다.
 
  ― 그날 “빨갱이 문재인은 대한민국을 떠나라!” “가짜 인권, 가짜 평화주의자, 위선자 문재인은 자유대한민국을 떠나라”고 외치셨죠. 어떤 의미입니까.
 
  “가짜 인권이라는 건 인권변호사 출신이면서 인권이 탄압당하고 유린당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특히 탈북자와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탈북 모자(母子)가 아사(餓死)하는가 하면 탈북 청년을 강제 북송하기도 했습니다. 가짜 평화도 마찬가집니다. 남북 평화를 말하며 김정은과 3차 정상회담까지 했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평화가 오기는커녕 개, 삶은 소 대가리 소리만 듣고 있잖아요.”
 
 
  “정치 성향 없다”
 
신발투척 후 경호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하는 정씨. 사진=조선DB
  ― 따로 하시는 일이 있습니까.
 
  “30여 년 전부터 소외 청소년의 재기(再起)를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봉사 차원에서 작은 규모로 하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10여 년 전 ‘긍정의 힘’이라는 단체명을 만들었습니다. 인권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히 탈북민에게도 눈을 돌리게 됐고, 지난 2월 20일부터는 김태산 대표와 ‘남북함께연합’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몇몇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던 때도 있었겠는데요.
 
  “무난한 인물이라 여겼습니다. 드러내놓고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옆에서 항상 인권과 평화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고 ‘그래, 대통령 되면 잘 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을 뽑았나요.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 정치 성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 일각에서는 정씨를 ‘극우’라고 정의 내리는데요.
 
  “저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아들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아버지는 세상을 가장 가운데서 보는 사람이라고요. 부당한 데 목소리를 낼 뿐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1인 시위를 많이 했습니다.”
 
  ― 주제가 뭐였습니까.
 
  “세월호 관련이었습니다. 사고 당시 제가 몸담고 있던 또 다른 인권단체에도 희생된 단원고 학생이 3명 있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제가 돌보던 아이들과 함께 안산의 한 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30일 동안 매일같이요. 아이들과 노란 리본도 만들었고요. 그때 박 대통령에게 수많은 사람이 ‘진상규명하라’고 외쳤는데, 응답이 없더군요. 광화문에서 수백 일 동안 천막을 치고 있는데도요. 그래서 ‘소통하지 않는 군주는 왕이 아니다’라며 시위를 했습니다.”
 
  ― 소위 ‘진보 커뮤니티’에서는 ‘대통령에게 신발 던진 남성, 알고 보니 세월호 납골당 설치 반대하던 인물’이라는 글이 돌던데요.
 
  “우리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추모를 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좌파 단체가 개입됐고, 엄청난 권력으로 부상하더군요. 추모의 순수함이 순식간에 정치적으로 변색됐습니다. 속된 말로 망자 앞에 분향소 차려놓고 병풍 뒤에서는 돈을 세는 모양새였죠. 그 행태를 목도하고 ‘아, 이건 진짜 아니다. 세월호라는 이름을 돈 빼 먹는 도구로 쓰는구나, 이건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거다’ 해서 완전히 돌아서게 됐습니다.”
 
 
  ‘영웅’이 된 그들
 
  다시 이라크로 가본다.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가 됐다. 문타다르가 부시에게 신발을 던진 2008년, 당시 리비아의 한 자선재단에서는 그에게 ‘용자(勇者)’ 메달을 걸어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부호(富豪)는 그의 신발을 1000만 달러(약 118억원)에 사겠다고 했다. 현지에는 2m짜리 신발 동상이 세워졌고, 영국에서는 부시에게 날아오는 신발을 쏴 맞히는 온라인 게임도 출시했다. 이집트에 사는 스무 살의 대학생은 그에게 공개구혼까지 했다. ‘영웅’과 결혼하는 것은 영광이라면서.
 
  올해로 41세가 된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지난 8월 2일,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봤지만 답은 없었다. 다만, 한 지역 언론을 통해 짧게나마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지난 6월20일자 《미들이스트모니터》에는 “기자였던 그는 현재 한 정당 구성원으로 부패권력과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또 “소셜미디어(SNS) 팔로워만 5만6000여 명을 거느린 인기인인 그는 이를 통해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잔혹성을 외치는 시위대와 연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전 세계 각국 사람들이 아직도 연일 ‘당신은 영웅’이라며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발 던지는 행위를 굉장한 모욕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문타다르는 9개월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중 3개월은 독방에서 지내며 고문도 당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돌아가도 부시에게 신발을 던질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부당한 것에 대항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바오에게 신발을 던진 마틴 얀케도 2009년 당시 케임브리지에서 ‘히어로’로 불렸다. 공공질서 위반 혐의로 이틀간 재판 후 무죄를 선고받은 그가 법정을 나설 때 수많은 인권운동가와 학생들은 환호를 보냈다. 11년이 지난 현재 마틴은 묵묵히 병리학 분야 연구를 하며, 별도의 정치적 목소리는 내지 않고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희대의 狂女로 기억되기도
 
지난 201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강연 중이던 힐러리가 신발을 피하는 모습. 사진=CNN 뉴스 영상 캡처
  그렇다고 모두 영웅으로 남는 건 아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에게 신발을 던진 이의 이야기다. 201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고철재활용산업협회(ISRI) 행사장. 강연을 하던 힐러리에게 한 청중이 신발을 던졌다. 신발 안에는 ‘비밀문서’로 표기된 1987년 9월자 미국 국방부 서류사본이 들어 있었다. 이는 당시 남미 볼리비아에서 펼쳐진 작전명 ‘신시아(Cynthia)’와 연관된 것인데, 체 게바라가 주도한 볼리비아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이 개입한 작전으로 알려져 있다.
 
힐러리에게 신발을 던진 앨리슨 미셸 에른스트. 그는 정신 이상자로 밝혀졌다. 사진=뉴욕데일리뉴스 신문 캡처
  국내 언론에서 이 청중이 누군지 다뤄진 바는 없다. 하지만 그는 한때 현지 언론을 뜨겁게 달군 ‘요주의 인물’이었다. 이름은 앨리슨 미셸 에른스트. 당시 36세던 그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출신의 여성이다. 이날 에른스트는 금발 가발을 쓰고 무단으로 행사장에 들어와 신발을 던지고 행사장을 빠져나가다 경찰에 체포됐다. 조사에서 그는 “힐러리와 청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신발을 던졌다”고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그가 과거 정신병 병력으로 감금된 사실을 알게 됐다. 애초 체 게바라와 힐러리는 관련이 없었기에, 갸우뚱했던 여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끝날 것 같은 사건은 또 다른 반전을 맞이했다. 이에 앞서 2012년,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영화관에서 대형 총격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제임스 홈즈라는 남성인데, 12명의 사망자와 70명의 부상자를 냈다. 당시 홈즈의 재판장에 삭발한 여성이 난입해 “그는 무죄”라며 난동을 피운 적이 있다. 끝내 호송된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홈즈는 영화 〈이너스페이스〉의 데니스 퀘이드처럼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나를 지켜달라’고 강요한다”면서 “그런 그에게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에서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한다”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 여성이 2년 뒤, 힐러리에게 신발을 던진 에른스트다. 미국에서 그녀는 ‘가발 쓴 광녀(wig-wearing nutjob)’로 불리고 있다.
 
 
  공무집행방해·건조물침입
 
  각기 얻은 칭호와 처벌 정도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두 ‘현장에서 체포’됐다는 점이다. 정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현재 공무집행방해 및 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 당시 현장에서 체포됐죠.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자택 수사를 받았는데, 과정이 궁금합니다.
 
  “체포 당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할 때는 ‘폭행죄’라고 했습니다. 이후 영등포경찰서에서 몇 시간 후 죄명이 공무집행방해 및 건조물침입으로 바뀌었어요. 왜 바뀌었냐고 물었는데, 그 답은 없었고요. 3일 동안 구치소에 있었고,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자택서 수사를 받았습니다. 휴대폰은 포렌식을 한다고 가져가 11일 뒤에 돌려받았고요. 계획적이 아니고 신발을 던진 건 사실이기 때문에 수사에 담담히 임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부당한 대우는 없었습니다.”
 
  ― 변호사는 선임했습니까.
 
  “도와주겠다며 연락해온 인권변호사 몇 분이 계십니다. 변호인은 기소까지 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그 사건으로 청와대 경호부장이 대기발령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뒤늦게야 들었습니다. 경호원들의 업무과중으로 ‘열린 경호’를 주장하신 분 아니었습니까. 멀찌감치 레드카펫에 떨어진 신발 하나에 열심히 일한 경호원을 대기발령시킨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 같습니다.”
 
 
  신발 던지기 전과 후
 
정씨의 신발투척 사건 이후, 각종 시위에서 신발 던지기 퍼포먼스가 생겼다. 사진은 지난 7월 25일 진행한 소급 적용 남발하는 부동산 규제 정책 반대 시위 모습. 시민들이 문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의자에 신발을 던지고 있다. 사진=조선DB
  정씨는 한때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1980년대 무대에 섰으니 꽤 옛날 일이다. 부상을 당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즈음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에도 연루됐다. 경찰에서 “전적이 있다”고 본 것도 그래서다. 그는 “정황상 성폭행 혐의를 입었고, 집행유예가 떨어졌다”면서 “하늘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 아내도 끝까지 나를 믿고 구명운동을 펼쳤다”고 했다. 이어 “당시 나를 고소한 아이가 수년 후 찾아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고, 나는 그를 용서했다”며 “이미 주홍글씨가 새겨졌지만 찾아와줘서 눈물겹게 고마웠다. 그 아이와 다시 연락이 끊겼는데, 행여 아직까지 죄책감을 안고 살지는 않는지 걱정이다. 혹시 이 기사를 보게 되면 꼭 연락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혹자는 ‘신발 열사’라고 부르는데요.
 
  “그전까지 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너무 힘든 삶이었죠. 그 과정에서 나름 열심히 인권활동도 해왔고요. 그러다 신발 하나 던졌을 뿐인데…. 열사는 너무 과분한 말입니다. 파장이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어요.”
 
  이번 사건 이후 부동산정책 시위, 부정선거 시위 등에서는 신발 던지기 퍼포먼스가 생겼다.
 
  ― 신발을 던진 건 어쨌든 어떤 ‘변화’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던진 후, 무엇이 바뀌었다고 보십니까.
 
  “한참 동안 바깥 사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구치소에서 나오고 상황을 보니까 문재인 정부에서는, 금기어였던 ‘종북좌파’ ‘빨갱이’라는 단어가 이전보다 자유롭게 언급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 문타다르 알 자이디는 신발을 던진 후 총선 출마까지 했습니다. 혹시 그런 야심(野心)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요. 그냥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입니다. 소외된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들에게 정말 올바른 어른으로 남고 싶어요. 나쁜 어른들에게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요. 어느 한쪽의 정치 성향을 갖는다면, 제가 몸담고 있는 집단에는 쓴소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습니까. 또 다른 적폐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위선이 될 수도 있고요. 항상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남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정씨 신발의 행방이 궁금했다.
 
  ― 그 신발 한 짝은 돌려받았습니까.
 
  “네. 그날 저녁에, 경찰 조사 다 끝나고요. 경찰서 갈 때는 한 짝만 신고 갔습니다.”
 
  ― 요즘도 그 신발을 신고 다닙니까.
 
  “원래 20년 넘게 매일같이 신던 신발입니다. 그 사건 이후 열흘 정도 신고 다니는데 누군가 새 신발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용자인가, 범죄자인가
 
  이번 사건에 세간의 반응은 갈린다. 우선 ‘용기 있는 행동이고 포용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의 말이다.
 
  “다소 과격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차원에서 용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민도 대통령 입장에서는 약자 아닌가. 힘의 논리로 약자를 무리하게 기소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걀을 맞은 후 ‘이렇게 맞아줘야 국민들이 시원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러한 포용이 필요한 때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선별적 포용’이 이뤄지고 있다. 내 편만 끌어안는다. 포용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7월 18일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욕먹을 일을 아주 많이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말처럼 자유국가에서 욕을 먹는 대통령에게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국회의 담장을 허물자며 ‘열린 국회’를 강조하는 마당에, 국회에 들어온 데 대해 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한 경찰의 발상도 코미디”라고 썼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공무원은 “이러한 행위는 보통 이데올로기나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정치적 소외 세력에 의해 이뤄진다”고 하면서 “그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이는 개념 자체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개인의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경향이 증가하게 될 경우 사회 전체의 공권력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사건 또한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큰 범위에서 ‘정치테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충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각종 투척사 속 정치인 반응
 
  정씨의 신발투척 사건 이후 가장 크게 재조명되고 있는 국내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다.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하는 도중 참석자가 던진 달걀에 얼굴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은 “계란을 맞아 일이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고 했다. 이튿날 계란 투척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그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냐”며 웃었다. 두고두고 ‘명언’으로 회자된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의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이 전 총재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2007년 11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가 당시 32세 이모씨가 던진 달걀 두 개에 이마와 볼을 맞았다. 그는 이후 “계란 마사지를 받아 얼굴이 예뻐졌다”고 말했다.
 
  2014년 당시 힐러리는 “방금 박쥐였나요? 지금 이게 혹시 태양의 서커스 일부인가요?” 하며 웃어넘겼다. 2009년 원자바오는 중국으로 돌아간 이후 “젊은 학생에게는 공부가 중요하다. 이 학생에게 계속 공부할 기회를 주기 바란다”며 케임브리지 측의 징계를 삼가달라고 했다. 2008년 부시는 신발 두 짝을 모두 피한 뒤 그 자리에서 “이렇게라도 관심을 끌고 싶은 것을 이해한다. 이런 게 바로 자유사회”라고 말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무언가 날아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던 2012년 10월, ‘제30회 대통령기 이북도민체육대회’에 참석했을 때다. 당시 김모씨 등 참석자 10여 명은 문 후보에게 500mL 물병 10여 개를 던졌다. 이들은 ‘친북 종북세력 물러가라’ ‘햇볕정책 폐기하라’는 글귀가 써 있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빨리 지나가라, ×××” “밥맛 떨어진다” 등의 욕설도 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의 자유방해 등 혐의였다. 그러나 당시 문 후보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번 일에 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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