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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답’이 아닌 ‘물음’으로 신앙의 길 걷던 장익 주교(1933~2020)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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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춘천교구장을 지낸 장익(張益) 주교가 8월 5일 향년 87세로 선종(善終)했다.
 
  장면(張勉) 전 총리의 3남(男)인 장익 주교는 경기고 재학 시절 6·25가 터져 학업을 중단하고 당시 미국 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도미(渡美), 미국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4·19, 5·16 등 모국(母國)의 정치 격변으로 귀국하지 못했다. 2공화국 붕괴와 아버지 장면의 실각을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했다. 1963년 사제품을 받은 후 김수환 추기경 비서, 서울 세종로본당 주임, 서강대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당시 ‘바티칸 연락관’으로 임명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03위 한국순교자 시성식 미사를 우리말로 집전하게끔 한국어 미사 교본을 만들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 2010년 3월 장 주교가 춘천교구장에서 물러날 때 고별 인터뷰를 했다.
 
  — 어떻게 신(神)을 찾나요.
 
  “저는 ‘물음’으로써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섭니다. 답으로 사는 게 아니고.”
 
  — 어느 날, 인간에게 왜 불행한 일들이 찾아옵니까.
 
  “단 한 번 받은 삶을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그릇으로 말하자면, 요만한 종지에 물을 채워도 가득이고, 큰 동이에 채워도 가득이지요. 그릇의 크기, 양만으로 삶을 따질 수 없고, 의미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연습을 안 하고 당합니다. 그러니까 커다란 고통의 수수께끼로 다가오죠. 하지만 죽음은 삶의 완결이자 완성입니다. 우연히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속속들이 의미를 모르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 돼요. 다만 생명은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8월16일자)은 1면에 장익 주교의 선종을 전하며 이렇게 썼다.
 
  ‘하나 됨을 위해 헌신했던 주님의 종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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