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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100만 회원, 한국예총을 둘러싼 잡음

회생 불가능 빚더미 예총이 살려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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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예총 회원 100만명… “회원 수는 많으나 지리멸렬”
⊙ 예총, 1140억원짜리 20층 빌딩(예술인센터) 소유… “부실로 자립적인 회생 불가능”(문화부)
⊙ “외부 회계감사 통한 부실경영 해소해야”(예총 이사들)
⊙ 예총은 우파 예술인 단체? 예총과 민예총의 이념적 간극 희미해져
한국예총의 자산인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예술인센터 전경. 예술인들의 자립을 위해 설립되었다.
  “예총이 왜 이리됐는지….”
 
  기자와 만난 한 예술인의 자조 섞인 넋두리지만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줄여서 ‘한국예총’. 1961년 12월 5일 창립(법원 등기는 1963년 1월 30일)되었다. 내년이면 사람 나이로 환갑이다. 회원 수는 얼마나 될까.
 
  예총 내부자료를 보니 2018년 현재 98만명이다. 정회원이 48만명, 준회원·특별회원이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어림잡아 100만명이다.
 
  조직은 공룡처럼 방대하다. 한국문인협회와 미술협회, 건축가협회, 국악협회, 무용협회, 음악협회, 사진작가협회, 연극협회, 연예예술인총연합회, 영화인총연합회 등 10개 협회와 광역시·도 연합회, 시·군 지회 등 166개에 이르는 단위 조직이다.
 
  거대한 지체(肢體)를 아우르는 전국 규모의 예술단체인 만큼 한때는 나름의 힘을 갖기 위해 정치권과 밀착한 적 있었고,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정치 권력의 도구이자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반면 ‘진보’예술인 모임인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한국민예총)은 회원 수가 얼마나 될까. 10만여 명(추정치).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민예총 회원 수는 6000여 명이 고작이었다. 좌파 정부가 들어선 뒤 엄청나게 수가 불어났다. 민예총은 산하 지부의 개념이 없다. 지역 민예총이 다 독립법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100만명 vs 10만명’ 규모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일방적인 격차다.
 
  하지만 좌파 문화 인사들이 우파 정부를 상대로 문화운동, 문화전쟁에 나설 때 우파 문화예술인이, 아니 예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들리는 게 없었다. 모두 순수예술만 고집해서일까.
 
  문제는 한국예총이 예술인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다. 평범한 예술인조차 “예총은 몸집만 비대할 뿐 가난한 예술인들을 위해 어떤 땀을 흘렸는지 알기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심지어 기자와 만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예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회원 수는 많으나 지리멸렬하다.”
 
 
  “창작열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정책, 예술단체가 필요해요”
 
예술인센터 입구에 걸린 한국예총 간판.
  기자는 한국예총 산하 예술협회 몇몇 인사를 만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보았다. 다만 오는 2월 중순께 예총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메스를 들지 않으면 영원히 회생이 어려울지 모른다. 이미 악성 종기가 온몸에 퍼졌다. 한 예총 이사의 말이다.
 
  “전국에 한국예총 회원이 100만명입니다. 그중 대부분 생계가 어렵습니다. 지방에 내려가 가난한 시인들을 만나면 1년에 시집 한 권 내는 게 소원입니다. 예총이 그런 소원을 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화가들은 작은 전시회라도 한 번 여는 게 꿈이죠. 그게 어렵습니다. 예총이, 저놈의 예총이 지금까지 무얼 해왔습니까.”
 
  경기도 A시 예총 회장을 역임한 한 인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하는 겁니까? 사회는 예술가들이 현실에 발붙일 수 있게 해줘야 하며, 예술가들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총이 자립 기반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런 책임의식이 없습니다.
 
  예술가들은 전업 작가 비율이 10%가 안 됩니다. 굶어 죽어도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죠. 이들에게 창작열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정책, 예술단체가 필요해요.”
 
  한국예총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지하 5층, 지상 20층짜리 거대한 빌딩(대지 1300평, 연면적 약 1만2500평)을 소유하고 있다. 이 빌딩의 이름은 ‘대한민국 예술인센터’(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서로 225·이하 예술인센터). 그러나 예술인의 자립을 위한 발판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현재 자립적인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부인도 알 수 없고, 외부인은 더더욱 알기 어렵다. 30여 명의 예총 이사도 깊이 알지 못한다. 하철경 예총 회장과 황의철 예총 사무총장이 전권을 행사해왔다. 두 사람은 학교 동창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나 하 회장 임기 8년간 예총 경영과 관련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깜깜이 의혹만 무성할 뿐이다.
 
  최근에는 두 사람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예총 하 회장이 황 사무총장을 ‘자택 대기’ 인사발령을 내고 예술인센터 내 황 사무총장 사무실을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황 사무총장은 이에 반발해 노동청에 중재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내부 갈등은 소소한 문제일지 모른다. 예총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은 지하 5층, 지상 20층짜리 예술인센터 건물이 빚더미에 앉았다는 점, 이미 회생 불가 판정을 받고 민간 매각을 추진 중이란 점이다. 2018년부터 예술인센터의 매각을 추진해왔고,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되었으나 지금까지 매각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 예총 이사의 말이다.
 
  “예술인 자립을 도우라고 국고 265억원을 지원받아 빌딩을 세웠습니다. 국회 상임위 회의록을 보세요. 과거부터 예총은 국감 단골손님이었어요. 아니, 악성 손님이에요. 벌써 7~8년 전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잡기는커녕 해마다 부채가 늘고 악화일로입니다.”
 
 
  “국고보조금에 대한 근저당권 설정하라”(감사원)
 
  예술인센터 건물의 감정법인 평가액은 1140억원으로 추산된다. 부채는 562억원(2018년 현재). 금융권에서 400여억원을 빌렸기 때문에 금융권 이자만 연간 15억9000만원가량이 나가고 있다. 과거 이 건물이 경매에 나올 뻔한 적도 있다. 이자를 못 내면 언제든 경매에 나올 수 있다.
 
  몇 해 전 감사원에서는 “예술인센터가 과도한 부채로 매각될 우려가 있어, 국고보조금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요구는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는 예술인센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을까. 다음은 2017년 10월 30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과 문화부 나종민 차관이 나눈 문답이다.
 
  〈조승래 의원(이하 조): 예술인센터에 대해서 1차관님 잘 아시지요, 예총?
 
  나종민 차관(이하 나): 예.
 
  조: 질의를 할까 말까 사실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너무 우리가 무책임한 것 같아서 질의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잘 알고 계시지요?
 
  나: 예.
 
  조: 국고가 265억원이 지원돼 있고 예술인들의 활동공간이나 거점공간으로서 활용하고자 했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전혀 못 하는 상황이고 예총 입장에서는 1년에 한 7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면서 예총이 부도가 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저는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원의 지적 이래로 실제로 문체부 담당 공무원들은 이 업무가 나로부터 떠나기만을 기다리지, 내가 이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적극적으로 하는 공무원들이 없다고 저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대로 놔둬도 되겠습니까?
 
  나: 저희도 오랜 세월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 참 아쉬움이 큽니다. 다만 근본 대책을 여러 차례 고민했습니다만, 정부가 2009년도에 국회 예결위에서 100억을 추가로 지원해주면서 부대 의견을 의결했습니다. 그 내용은 더는 추가 지원이 없다는….
 
  조: 추가 지원을 하라는 말씀을 드린 게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 정리를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질질 끌려다니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임대사업자 관계도 있어서 피해자들도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법적 문제를 떠나서 예총이라는 공적 기관이지요.
 
  그리고 265억이라는 (국가) 재원이 들어간 건물에 그걸 믿고 들어왔던 세입자들 피해가 더 크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술인들이 정당히 향유해야 할 공간 자체가 사용을 못 하는 것들이 있어서 이 문제는 심각하니까….
 
  나: 예,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보겠습니다.〉
 
 
  “연간 7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면서 예총이 부도가 날 상황”
 
2010년 7월 20일 서울 목동 ‘대한민국 예술인센터’ 재착공식 모습이다. 1996년 4월 착공된 예술인센터는 1999년 시공업체인 쌍용건설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으나 이명박 정부의 대선공약으로 공사가 10년 만에 재개됐다. 당시 한국예총 회장은 이성림씨였다.
  그러나 문화부가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한국예총에 어떤 자구책 마련을 요구했는지 알 길이 없다. 조 의원이 언급한 “한 해 7억원씩(2017년)이던 부채는 3년 뒤 연간 1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이 빚덩이 예술인센터의 한 해 수입은 얼마나 될까.
 
  한국예총의 총회 자료(2019년)에 따르면 임대료와 관리비, 국고보조금 등을 포함해 40억원에 이른다. 예총은 예술인센터에 입주한 예술단체의 사무실 임차료까지 매월 받고 있다.
 
  그런데 지출은 한 해 49억3700만원에 달한다. 해마다 10억원 가까이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다. 10년이면 부채가 100억원이 된다. 이처럼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으나 지금으로선 뾰족한 해소 대책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문화부나 국회에서조차 정확한 진단을 못 하고 있다. 나 차관 말대로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언젠가는 정부의 공적 자금(세금)으로 메워야 할지 모른다.
 
  심지어 예총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2014년 예총은 10년간 보증금 50억원, 월 임대료 3300만원에 한 임대업체와 위탁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업체는 보증금으로 35억원만 지급하고 예총이 설정해준 근저당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러곤 대표가 해외로 잠적하고 말았다.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섰으나 이후 잔금을 받았다거나 임대업체 대표가 법적 책임을 졌다는 얘기는 없었다.
 
  예술인센터 임대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무리한 계약 체결을 요구하거나 일부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일도 있다.
 
  예총 산하 모 협회 회장은 “(예총 간부가) 전문경영인이 아닌 점을 감안하여 대책이 필요하다. 예총은 문화예술 발전의 요람이어야만 마땅하다”며 “문화부는 예술인센터 운영을 예총에만 맡겨두지 말고 제대로 된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이 협회 회장은 이런 주장도 폈다.
 
  “예술인센터 내 오피스텔 100채를 어느 업체에 30여억원에 매각했으나 소유권 이전이 안 돼 다시 되돌려줘야 했어요. 그러나 받은 돈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되돌려주지 못해 일부만 되돌려주고 일부는 매달 14% 이자로 갚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지난 1월 7일 문인협회, 국악협회 등 관계자들이 모여 현 집행부를 상대로 외부 회계감사 의뢰 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예술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인센터 건물의 부채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최소한 예총 이사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예술인센터에 입주한 점포주에게 받은 임대보증금 136억1000만원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입니다. 예총 몇몇 인사만 정보를 공유하니 의혹이 더 커지고 있어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회생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예총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어요.”
 
대한민국 예술인센터는…
 
  “IMF로 시공사 부도… 과도한 부채로 예술인 지원 어려워져”
 
  한국예총의 자산인 예술인센터는 사실 민간 예술인들의 숙원사업으로 김영삼 정부 때 첫 삽을 떴다. 대공연장 500석, 소공연장 200석, 전시실, 세미나실, 숙박시설 100실 등 예술인 지원을 위한 복합시설이었다.
 
  그러나 건립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IMF로 시공사인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을 선언하는 바람에 공정률 53%(구조물 및 외벽 유리 공사 완료)인 상황에서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1999년 6월의 일이다. 이후 흉물로 방치되다 이명박 정부의 대선공약으로 재추진되었다.
 
  정부 지원과 은행 돈을 빌려 2011년 11월 10일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준공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부채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예총 자체 역량으로는 예술인센터 관련 부채 상환과 건립 목적 달성 등 정상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정부나 민간에 예술인센터를 매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온다.
 
  문화 권력을 두고 빚어진 예술인의 비극
 
한국예총이 주관하는 예술문화대제전 모습이다. 2018년 10월 15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충남 대표단의 전통예술단 마당굿 장면이다.
  보수·진보 정부를 떠나 역대 정부는 문화 권력을 쥐고 문화계를 통제하려 했다. 예술을 집권층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도구로 인식한 것이다.
 
  예를 들어 민예총과 예총에 대한 예산지원은 정권에 따라 들쑥날쑥했다. 회원 10만명으로 5000만원을 지원받던 민예총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2억5000만원,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5억8000만원으로 지원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2006년에는 회원이 38만명이던 예총이 19억원이었는데 민예총은 적은 회원임에도 22억원으로 정부지원금이 역전되었다.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속 위원 10명 중에서 한 명만 예총 출신이고 나머지는 소위 좌파 문화예술인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공공기관 284개 중 184개 기관에 306명의 정권 인사들이 임명됐다. 노무현 정부의 2배 가까이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화부 산하 기관장 49명 중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출신이라든지 대통령 특보, 뉴라이트 출신이 50% 가까이 차지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는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으로 이어져 문화 권력이 ‘정부지원금과 기업 후원으로 연결되고 정부 부처 및 예술단체장의 자리’와 연결되었다. 대다수 예술인은 진보나 보수 정부의 출범과 상관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소수의 예술인만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뉘어 문화 권력에 몰두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 우파 예술인의 말이다.
 
  “그 결과, 문화예술계가 문학의 위기, 또 미술의 위기, 영화·연극의 위기, 출판의 위기 등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또 한편으로는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예술단체장이 항상 교체됐다는 점에서 예술단체의 비극이 발생했다.”
 
 
  매머드 예술단체의 탄생?
 
  현재 예총은 우파 예술인 단체가 아니다. 그런 시선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회원 수는 많으나 지리멸렬하다”는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니다. 보수적 성향의 소설가 이문열씨가 “일반 국민은 보수와 진보가 50대 50인데, 문화 쪽은 진보가 거의 98%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을 배경으로 한다.
 
  예총과 민예총의 이념적 간극 역시 희미해졌다. 민예총 일부 예술인이 우파 정부를 비판하는 좌파 문화 권력의 파수꾼 역할을 할 때, 예총은 무슨 역할을 했을까. 한 우파 영화인은 기자에게 이런 한탄을 했다.
 
  “좌파 문화인들이 촛불을 들고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선동할 때, 우파 문화인들은 무엇을 했나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우파인들은 문화운동, 문화전쟁을 모릅니다.
 
  제가 문화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존경할 만한 선배가 없다는 사실이었죠. 그분들은 좌파 문화전쟁의 실체를 알려 하지 않았고, 문제의식조차 없었어요. 결과적으로 자기 밥그릇밖에 모른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거지요. 문제는 그 밥그릇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무엇이 위기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죠.”
 
  자연스레 예총과 민예총, 두 단체의 통합 논의가 몇몇 정치인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재단법인 형태의 가칭 ‘한국예술문화단체연합’을 만들어 예총, 민예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을 모두 포함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예술단체를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잣대로, 경제적 논리로 나눠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모든 예술인이 참여하는 매머드 단체라고 정치 권력, 문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화예술계의 운동장은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10만의 민예총이 ‘지리멸렬’한 100만의 예총을 흡수 통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런 의심을 갖는 이가 적지 않다.
 
  정치 권력이 행여 돈줄을 빌미로, 창작 지원을 미끼로 예술인 전체를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속셈을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 권력의 폐해에서 예술인들이 자립할 수 있다.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술단체를 앞세운 문화전쟁이 재현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벌써 드세다. 여야 정치권이, 예비 후보자들이 예총·민예총 산하단체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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