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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남보다 못한 가족… 존속살인 많은 이유는…

자녀의 틱장애·ADHD·우울증 이면에 부부관계가 꽉 막혀 있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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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정에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요란한 사이렌이다.
존속살인, 존속폭행, 존속범죄가 선진국의 3~4배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나고 자란 가족의 아픔이 왜 현재 가족에게 되풀이되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사랑하기에 가족이 주는 상처는 더욱 아프다.
한국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도 부부 또는 원가족(결혼 이전의 가족) 간의 관계에 있지 않을까.


⊙ 한국의 존속살해 발생률 선진국 3~4배 수준… 과민하고 의존적인 성격 많아
⊙ 부부갈등은 시댁·친정과 분리가 안 돼 시작… 부부갈등에 부모 개입하면 치명적?
⊙ 부모·자식 간 愛着관계 중요… “최소 2~3년은 엄마가 아이한테 전념해야”
⊙ “지혜로운 부모라면 성인 자녀를 독립해 살게끔 자녀 능력을 확장시켜야”
심리학자들은 가족 간의 살인과 범죄를 심리적 분화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미지 출처=steemit.com
  지난 5월 20일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경제적 곤란을 겪던 A씨(50)가 아내 B씨(48)와 고등학생 딸 C양(18)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현장에서 혈흔과 피에 젖은 흉기가 발견됐다. 유서는 보이지 않았다. 딸의 손에서는 방어흔(防禦痕·가해자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생긴 상처)이 발견됐다.
 
  가장(家長) A씨는 왜 가족을 죽여야만 했을까. 중학생 아들 D군(15)은 왜 살려뒀을까. A씨가 완력으로 아들을 제압하기 어려워서일까. 비록 방어흔이 발견됐다고 해도 부부와 딸은 극단적 선택에 모두 동의한 것일까.
 
  기자가 만난 심리학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 간의 살인과 범죄를 심리적 분화(分化)의 문제로 설명한다. 분화는 외부의 정서적 압력을 스스로 조절하는 일종의 홀로서기 능력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미분화된 이들은 주위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의존적인 성격이 많다.
 
  어쩌면 A씨 가족은 분화 정도가 아주 낮았을지도 모른다. 정서적으로 분화하지 못한 사람은 가족 간 혹은 타인에게 정서적으로 쉽게 동조하거나 융합하기 쉽다. 대인관계에서 감정조절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효(孝)사상이나 장유유서(長幼有序)에 익숙한 한국 가정에서 분화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예컨대 부모의 바람대로 살아가려는 아들, 부부싸움에 친정 부모를 등장시키는 아내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가족 치료의 권위자인 숭실대 박태영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이렇게 진단한다. 기자는 박 대학원장이 쓴 《가정이 웃어야 나라가 웃는다》를 읽고 한국 가정의 문제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아내는 시댁에 시달리는데 바쁜 남편은 아내와 함께해주지 못하면서 시댁 편을 들고, 바쁜 남편을 대신해 아내 혼자 아이들을 케어하는데 그에 따른 짜증을 남편, 아이들에게 쏟아내서 온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한국 가정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사람들은 가정의 위기가 경제적인 문제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물질보다 심리적인 원인이 더 많다.”
 
 
  ‘가족 중심’… 정서적으로 ‘융합’되었다는 의미
 
가족치료 권위자인 박태영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 지금까지 가족치료 사례가 1000건을 넘는다.
  경찰청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8) 한 해 평균 69건의 존속살인이 발생하고 있다. 작년 한 해만 91건이다. 가족살해는 전체 살인사건의 5%대에 근접하는데 영국 1%, 미국 2%에 비해 높은 수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존속살해 발생률이 선진국의 3~4배 수준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존속범죄 발생도 늘고 있다. 2012년 956건에서 2013년 1092건, 2014년 1146건, 2015년 1853건, 2016년 2180건이다. 2016년 발생한 존속범죄를 유형별로 보면 존속폭행이 전체의 67.4%(1322건)다. 존속상해(424건), 존속협박(195건), 존속 체포·감금(2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 서울(418건), 경기 남부(415건), 인천(144건), 경기 북부(122건), 강원(95건) 순이다.
 
  가족을 때려 존속폭행 혐의로 검거된 사례도 2014년 988명에서 지난해 2414명으로 늘었다. 존속살인, 존속범죄, 존속폭행이 증가하는 이유가 뭘까. 부모가 자식을 해치는 경우, 다 큰 자식이 부모나 조부모를 해치는 예도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부모에게 자식의 생명권을 선택할 권한은 없다. 최근 가족 동반자살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생존하게 되면 살인죄가 적용된다”며 “2017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살인죄의 34%가 가족살인”이라고 우려했다.
 
  한세대 상담대학원 최광현 교수는 “6·25 당시 일가족의 부산 영도다리 투신 이후 생존에 위협을 느낀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한국의 사회현상으로 대두됐다”며 “해외의 경우, 한국과 같은 동반자살의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한국인의 경우,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 중 ‘생존과 안전의 욕구’를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가족의 문제로 본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으나 한국인의 사고는 여전히 가족 중심”이라고 진단했다.
 
한세대 상담대학원 최광현 교수. 많은 가족의 아픔을 상담해왔다.
  ‘가족 중심’이라는 말은 가족이 정서적으로 ‘융합’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긴장이나 불안, 스트레스 같은 위기상황이 도래할 경우, 감정이 사고를 지배해 과민하게 반응하고 객관적인 사고능력이 떨어진다.
 
  박태영 대학원장은 지금까지 가족 치료 사례가 1000건이 넘는다. 그가 경험한 가족 치료 사례다.
 
  “폭식장애를 가진 대학교 4학년 여학생이 있었는데 딸만 셋인 집안의 장녀이고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엄마의 친정은 3대 기독교 집안인데, 자식들에게 일주일에 예배를 세 번 드릴 것을 요구했다. 대학생이 된 큰딸은 세 번 예배드릴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다른 딸들은 다 엄마에게 순종했다. 엄마는 큰딸에게 화가 나면 통성기도를 했다. 엄마가 쓰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항상 침울한 얼굴로 성경책을 펴놓고, 우울하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대하는 거였다.
 
  딸은 ‘왜 내가 엄마에게 맞춰 살아야 하냐’ 말하고,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믿음은 내가 하란 대로 하라’고 답한다. 교회에 세 번 나가고 집에 와서 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요구였다.
 
  결론적으로 폭식장애는 딸의 의식을 분화시키지 못해 생긴 문제다. 자식은 자기 소유물이 아니다. 엄연한 개체다. 내가 좋다고 딸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자녀 틱장애·ADHD 원인은 부부문제
 
자녀문제는 결국 부부문제로 귀결된다. 부부 간 갈등이 아이들의 틱장애, ADHD, 우울증, 집단 따돌림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가정의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자.
 
  박태영 대학원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정은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자녀문제, 다른 하나는 부부문제다. 행복했던 가정이 깨지는 것은 가족 간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융합돼 분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불안’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참으면 된다고 믿고 있다.
 
  참으면 그 상황은 평화롭게 지나가겠지만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신체적인 질환 또는 정신질환, 심지어 반(反)사회적 성격장애로 드러난다. ‘묻지 마 살인’이라든지 지하철이나 문화재 방화사건 등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저지르는 범행은 모두 반사회적 성격장애 때문이다. 박태영 대학원장의 말이다.
 
  “사실 아이들 문제 이면에는 부부관계가 꽉 막혀 있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시댁과 분리가 안 되고 아내는 친정과 분리가 안 되어 부부싸움에 시부모와 친정 부모가 개입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어른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이다. 갓난아기도 엄마・아빠의 관계가 불안하면 같이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박 대학원장의 계속된 지적이다.
 
  “부모와 자녀 문제 사이에 부부문제와 시댁 또는 친정과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부부관계의 불안이 유아기 시절에 아이의 틱장애나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 우울증 등으로 나타나고 청소년기에는 집단 따돌림,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반대로 아주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들이 잘못되면 다 ‘자기 죄’라고 한탄하는데, 그 원인을 찾으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박 대학원장은 상담할 때 남편이 부모로부터 분리가 안 되고 시어머니가 강압적일 경우, 아내가 시댁 가기 싫어하면 가지 못하게 한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면 정신질환이라든지 건강에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볼비(John Bowlby)는 부모·자녀 간 애착을 강조한다. 엄마의 정서적 영향을 태아가 받는다는 이론이다. 엄마가 편안하면 아기도 편안하다. 엄마가 불안하면 아기도 불안하다. 일반적으로 문제가정을 보면 시댁문제가 장난이 아니다.
 
  남편이 시댁에서 분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그게 태아한테까지 영향이 간다. 산모가 불안과 짜증을 자주 경험하면 태어난 애들이 불안정하고 짜증이 많거나 심하면 경기를 한다. 박 대학원장의 말이다.
 
  “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en)의 이론을 보면 영아기(0~2세) 때 엄마가 애를 잘 돌봤느냐 돌보지 못했느냐에 따라 모든 문제가 나온다. 0세부터 2~3세 때 부모, 특히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걸려 있는데 이게 계속 간다.
 
  애착 관계가 의외로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다. 최소 2~3년 정도는 엄마가 아기에게 전념하면 좋겠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지 못한 가정이 많다. 물론 엄마가 3년 동안 자녀를 돌본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남편이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불만인 아내, 시댁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며느리의 불안이 아이한테 가서 모자가 공생 관계가 되면서 아이를 얽어 묶는다.”
 
 
  조현병 환자를 둘러싼 가족
 
  흉기로 가족을 위협한 중년의 조현병 환자가 경찰에 체포돼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경기도 한 경찰서는 최근 정신질환자 A씨(56)를 응급입원 조처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며 가족·친척·지인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한 혐의다. 또 진료와 약 복용을 거부하고,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며 기물 파손, 감금, 절도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가족은 최근 들어 A씨의 행동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판단해서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에 소재 파악을 요청했다.
 
  가족상담에서 개인의 ‘질병’은 개별 환자의 ‘경계’를 넘어 그를 둘러싼 관계 과정의 증상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조현병은 가족의 정서체계가 무너지거나 혼란스러움을 의미한다.
 
  조현병을 가진 사람의 형제, 고모, 삼촌, 사촌, 그리고 조부모는 비록 조현병은 아니더라도 적응력이 매우 손상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가족치료의 이해》, 학지사)
 
  한 가족 내에서 특정 임상 증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유전적 요인 때문만이 아니라 취약성을 결정짓는 정서 과정 때문이라고 본다. A씨 가족 역시 말 못 할 정서적 문제가 가족 내에 있었을 수 있다. 박 대학원장의 상담사례다.
 
  고3 때 대학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과 입원과 통원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환청, 자해, 대인기피증 등의 증상이 있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극심한 갈등을 계속해서 보고 자랐고, 아버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용하는 말투는 항상 공격적이었고 ‘이중구속 메시지’(논리적으로 상호모순된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역기능적 의사소통을 말한다. 엄마가 자녀에게 ‘사랑한다’ 말하면서 표정은 무관심하고 냉담한 식이다)를 사용해왔다. 아버지와 갈등이 심한 어머니는 아들과 밀착 혹은 공생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버지는 역기능적이면서도 매우 독특한 대화방식으로 가족 전체에 외면당하고 있었다. 박태영 대학원장의 말이다.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가족 간의 갈등은 아들의 조현병 증상의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는데 거의 고아로 자랐다. 그런 사람은 누구하고 상의할지를 모른다. 자기가 모든 걸 결정하고 밀어붙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성공을 했기에 그 방법밖에 모른다. 그런데 가정생활은 사업과 다르다. 가족은 서로 의논을 해야 한다.
 
  가족 치료 이론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 가족이 쓰는 의사소통 방식의 핵심이 ‘이중속박(이중구속)’이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고, 이래도 당하고 저래도 당하는 건데… 거기에서 조현병이라는 증상이 나타난다.”
 
 
  영화 〈올가미〉… 가족이 감정적으로 뒤엉킨 경우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올가미〉 포스터.
  영화 〈올가미〉에 나오는 엄마하고 아들 관계처럼, 며느리가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고 질투하고 시기하여 며느리를 쫓아내버리려 한다. 이런 분화가 안 되는 감정 덩어리가 세대를 이어간다.
 
  영화 〈올가미〉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들 동우(박용우 扮)와 어머니 진숙(윤소정 扮)은 돈독한 모자 사이다. 늦잠을 자면 엄마가 깨우는데 일반 가정과 다르게 신체접촉이 지나치다. 아들 동우가 아침 식사 도중 폭탄선언을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어머니께 소개하겠습니다.”
 
  겉으론 쿨한 척하지만 진숙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평생 헌신하고 사랑한 아들을 홀라당 가져간 여자를 용서하기 어렵다.
 
  결혼 후 며느리 수진(최지우 扮)은 시어머니가 남편 동우의 속옷까지 벗겨 샤워를 시켜주는 장면을 보며 경악한다. 가족 간의 불화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아들 동우는 어머니 진숙에게 말한다.
 
  “엄마, 왜 나를 결혼시켰어요?”
 
  진숙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언제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 안 사준 적 있니?”
 
  아들은 어머니와 싸우다 결국 죽게 되고, 진숙은 며느리를 물고문하다가 죽고 만다.
 
  극단적인 사례겠지만 이 영화처럼 부모와 자식 간 미분화된 상태의 사고가 많다. 지나치게 아들의 삶을 간섭하는 어머니, 딸의 모든 것을 대신해주려는 아버지, 그로 인해 자녀가 결혼해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가정이 많다.
 
  가족은 개별구성원의 자아가 서로 건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분리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뒤엉켜 서로를 구속하는 애증 관계에 얽혀 있으면 어느 한순간 가족이 와르르 무너진다. 박태영 대학원장의 말이다.
 
  “한국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독립적인 성인으로 대하는 준비가 안 된 경우를 너무 많이 목격한다. 성인이 된 자녀의 귀가 시간을 통제하거나, 자녀의 배우자 될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헤어지게 한다. 심지어 성인 자녀의 옷을 골라주고, 성인 자녀의 머리 모양까지 간섭한다. 부모는 성인 자녀를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성인 자녀와 부모가 분리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우리나라 가정과 학교에서 배운 효사상, 그리고 부모의 부정적인 부부관계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계속된 박 대학원장의 말이다.
 
  “지혜로운 부모라면 성인이 된 자녀가 스스로 독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자녀 능력을 더욱 확장시켜야 한다. 젊은 성인 자녀가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부모의 기대나 소망에 부응하며 살아가도록 해선 안 된다. 부모나 성인 자녀나 모두 상대방을 위하여 지나치게 희생하다 보면 결국 배신감과 원망만 생겨 가족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현명한 부모라면 자녀가 결혼하기 전에 미리미리 자녀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자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물론 부모의 부부관계가 원만하다면 이 작업이 훨씬 덜 힘들 수 있겠지만 부부관계가 안 좋거나 이혼 또는 사별한 부모라면 자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가 힘들 수 있다.”
 
 
  소설가 김훈이 말하는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
 
  지난 6월 1일 소설가 김훈이 안동 하회마을에서 열린 ‘백두대간 인문 캠프’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다. 우리 사회의 모두가 혓바닥을 너무 빨리 놀린다. 다들 혀를 놀리는데, 그 혀가 생각을 경유해 나오지 않았고 혀가 날뛰도록 두는 사회로 전락했으니…. 네가 나한테 침을 뱉으면 나는 가래침을 뱉는 세상, 이런 나라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가래침 뱉는 세상’ ‘혀가 날뛰도록 두는 사회’로 변한 것일까.
 
  박태영 대학원장에 따르면, 한국인은 무언가에 ‘섭섭한’ 감정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섭섭함이 지나치면 ‘삐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한국인은 호전(好轉)을 위해 떼를 쓰고 응석을 부리는 데 익숙하다. 예를 들어 교통법규를 어기고도 무조건 봐달라고 떼를 쓰고, 수업시간에 지각하고서도 출석으로 쳐달라고 떼를 쓴다.
 
  ‘떼’가 통하지 않으면 한국인은 순종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원망하며 ‘배 째’라는 식으로 널브러진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떼’와 ‘배 째’를 ‘사람 사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성적인 해결책이 안 통한다.
 
  어느 심리학자는 떼를 쓰고 응석을 부리는 것이 유교적인 인간관과 사회조직에서 파생된 것으로 분석한다. 부모가 자식을 지나치게 과보호하면서 양육한 결과, 자식이 부모에게 떼를 쓰면 웬만하면 다 통했던 관례가 그대로 사회에 적용된 것은 아닐까 보는 것이다. 박태영 대학원장의 말이다.
 
  “한국의 가정문화는 근본적으로 정(情)이 통하는 문화다. 이성보다 감정과 감성이 앞서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우리 민족은 정이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미분화된 민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세월호 사건 당시, 배 안에서 구호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새벽마다 잠이 깨는 힘든 시기가 있었다. 학생과 학생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며오면서 절로 눈물이 나는 정도였다.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보다 감성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의 정서가 미분화되어 있을 때 가족에게 위기가 닥쳐오면 미분화된 가족구성원들은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두 패로 나뉜다. 과도한 역할과 밀착된 관계를 추구하는 한 패와, 미흡한 역할과 거리감을 두는 관계를 추구하는 다른 패로 나뉜다. 이 같은 가족 현상은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만성적 사회불안이 증가하면 사회적 분화의 기능 수준이 떨어진다. 사회적 분화의 기능 수준이 낮을수록 높은 범죄율, 높은 이혼율 등 사회적 증상이 심각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정서 과정은 가족의 정서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박 대학원장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사회든 분화가 되어야 더욱 건강한 개인과 가족,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현상을 대할 때 감정보다 이성으로 대해야 한다.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나 지나치게 거리감을 두는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덜 받고(주고) 건강한 가족관계와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다.”
 
 
  두 얼굴의 가족과 문화충돌
 
가족위기는 가족의 한계를 보여준다. 가족의 한계는 바로 태어나고 자란 가족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한세대 상담대학원 최광현 교수가 쓴 《가족의 두 얼굴》을 읽었다. 공감된 글이 많아 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의식의 분화를 설명하면서 그는 결혼 전 처가에 인사하러 들렀을 때를 떠올렸다. 처가 화장실에서 본 가지런한 칫솔, 그 옆에 놓인 치약, 치약 하단부에는 짜개가 달려 있었다. 결혼 후 그의 아내는 신혼집 화장실을 ‘친정 버전’으로 꾸며놓았다. 처가의 화장실이 된 것이다.
 
  최 교수는 “결혼 이후, 서로 다른 가족문화가 부딪치는 문화충돌의 시작이 화장실”이라고 말한다.
 
  “치약을 왜 아랫부분부터 안 쓰느냐, 왜 윗부분을 쓰느냐를 두고 티격태격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성장한 가족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설령 그 가족이 비참했고, 늘 외로웠으며, 불안했을지라도 그곳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부부갈등의 원인은 각자 부부가 자라난 ‘원가족(결혼 이전의 가족) 의식’에서 분리되지 않았기에 생겼을 개연성이 크다.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할 때 부부불화가 발생한다. 상대 배우자의 방식이 잘못되었거나 틀린 게 아니다. 자라온 가정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최광현 교수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토니 험프리스(Tony Humphreys)는 저술한 12권의 책이 25개 언어로 출판된 세계적으로 저명한 가족 심리학자다. 그는 30년 동안 폭행과 학대가 있는 수많은 문제 가족을 상담했는데, 일부러 자녀와 배우자를 해코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자녀와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을 커다란 위기와 갈등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가족을 마음대로 부려먹으려 하고, 자신의 욕구대로 조종하고, 쉽게 짜증을 내고 꾸짖으며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조차도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왜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함부로 행동하고, 상처를 줄까. 최 교수의 주장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 그렇게 당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가족 위기는 그 가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족의 한계는 바로 태어나고 자란 가족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위기에 처한 가족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자신도 모르게 이전 세대의 불행한 모습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가족 안에서 이전 세대의 한계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족 안에 흐르는 세대 전수의 굴레
 
  최광현 교수가 경험한 한 사례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버림받아 고아로 어렵게 자란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사귀게 된 여자에게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았지만 나는 결혼하면 가족을 버리지 않고, 절대로 내 부모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간곡히 말했다. 소중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 하는 남자의 열망에 반한 여자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자는 결혼 전에는 잘 마시지 않던 술을 매일 마시고 들어왔다. 그리곤 아내에게 욕과 폭행을 하고, 아들을 학대했다. 심지어 담뱃불로 아내 몸을 지지기도 했다. 여자는 결혼 15년 만에 아주 힘들게 이혼하였으나 6개월 뒤에 암 판정을 받고 사망하였다. 아버지를 괴물처럼 여긴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기를 거부하고 외할머니에게 가버렸다.
 
  최 교수의 분석이다.
 
  “고아로 자란 남자는 결국 자신의 소망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 가족 환경을 재현하고 말았다. 그는 지금 다시 한 번 고아가 된 셈이다. 결혼생활의 고통 속에서 암에 걸려 죽은 아내,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는 아들, 모두가 그를 떠났다.
 
  어린 시절 불행한 가족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성인이 되어 과거의 경험을 재현한다. 불행한 가족관계 안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어릴 적 부모가 물려준 영향이 너무나 크다. 고통스러운 가족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만성화되어 이런 부정적인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불안하게 매를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매를 맞는 순간이 편안한 것처럼, 즐거움・행복감을 느끼면 불안해하면서 일부러 불행한 느낌, 고통, 불안한 감정으로 달아난다. 의식적으로는 불행한 가족관계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자석에 끌리듯 불행을 반복한다.”
 
  멀쩡해 보이고, 많이 배우고, 전문 지식을 쌓은 사람들도 자신의 가족 안에 흐르는 세대 전수의 굴레를 모른 채 역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반복한다. 가족문제의 세대 전수는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최 교수의 말이다.
 
  “가족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가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결혼생활이 어릴 적 부모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지, 화가 나면 침묵하거나 불같이 성질을 내고, 비꼬는 말투로 응수하며, 욕설하고 남과 비교하고, 협박투로 말하는 등 부모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당시 아이로서 경험했던 공포, 수치심, 분노, 무력감 등을 직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는 어린 시절 익숙했던 행동들이 자녀와 배우자에게도 자신이 아이 때 느꼈던 비참한 감정을 심어주고 있음을 깨닫고, 그런 경험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겠노라 다짐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독특한 질병, 火病과 고부갈등
 
한국 사회는 情과 孝를 강조한다. 고부갈등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지만 한국 가정 내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화병(火病)은 ‘울화병(鬱火病)’의 준말이다. 화가 쌓여 몸이 답답함을 느끼는 증상과 관련이 깊다. 초기에는 분노와 불안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주로 우울감으로 나타난다. 피로, 공황, 임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우울, 소화불량, 식욕부진 등을 호소한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 atric Association·2013)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에서는 화병을 ‘문화관련증후군’의 하나라고 언급한다. 주로 고부갈등, 부부문제, 자녀와의 갈등에서 생기는 한국 중년여성의 고질적 질병이 화병이다. 특히 고부갈등만큼 한국적인 현상도 드물다.
 
  며느리를 증오하는 속담이 우리나라처럼 많은 나라도 없다. ‘착한 며느리도 악처만 못하다’ 하고 ‘며느리는 비빔밥 그릇 씻게 하고 딸은 흰죽 그릇 씻게’ 하며, ‘며느리는 갈퀴나무 불을 때게 하고 딸은 장작불 때게’ 한다. ‘며느리 사돈은 짚방석에 앉히고 딸 사돈은 꽃방석에 앉히고, 요강 소리도 딸은 은조롱 금조롱 하는데 며느리는 물보 터지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실제와는 아랑곳없이 원천적으로 며느리는 밉고 싫고, 딸은 곱고 좋다는 식이다. 시어머니에게 예쁜 며느리가 없는 걸 보면 구조적인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신(分身)처럼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아들을 며느리가 가로챈 데 대한 원천적 질투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가계권(家計權)이 옮아가는 데 대한 불안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국 중년여성의 질병인 화병이 고부갈등에 원인이 있다면, 여기에 고착된 정서적 미분화의 문제가 개입돼 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예컨대 한국의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결혼한 아들을 여전히 소유하려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지적한다. 인격적 독립체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태영 대학원장에 따르면 “신혼부부 단계의 많은 한국 남성이 원가족과의 관계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고 말한다. 한국의 효에 대한 강조와 부모에 대한 보상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상담을 할수록 대부분의 한국 가족의 문제 안에 남편 또는 아내가 원가족에게서 정서적으로 분리가 안 된 경우를 자주 본다. 특히 남편이 어머니와 분리가 안 된 문제가 결국에 부부문제와 자녀문제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많은 한국 남성이 결혼했음에도 원가족과의 관계나 친구 관계를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내만을 그 사이에 ‘살짝 끼워 넣는’ 경우를 본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 신혼부부 단계에 있는 성인 자녀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이성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킨다는 시각보다는 가계를 계승한다는 시각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 대부분의 한국의 어머니는 아들의 결혼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의무, 사랑, 관심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母性 화가와 美 미술평론가와의 대화
 
작가 양순열의 설치미술 ‘오똑이’ 시리즈.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넘어지지 않는 억척스러운 母性像을 형상화한다.
  고부갈등을 파고들면 그 속에 효자인 남편, 즉 결혼 후 원가족과 정서적으로 미분리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럴 경우 아내를 더 자극하고 열 받게 만들며 시부모와 충돌하면서 갈등이 증폭된다. 이 과정에 친정 부모가 개입되면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의 고부갈등은 어떨까. 지난 5월 24일 ‘모성(母性)’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양순열과 중국 출신 미국 미술평론가 릴리 웨이(Lilly Wei) 간의 흥미로운 대담이 이뤄졌다. 서울 평창동 어느 화방(畵房)에서 두 사람은 모성을 주제로 다양한 변주의 문화적 담론을 주고받았다.
 
  양 화백은 ‘어머니’와 ‘꿈’에 대한 다양한 그림과 조각을 만들어온 중견 화가다. 어머니상을 ‘오똑이’로 명명한다. “표준어 ‘오뚝이’보다 ‘오똑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다부지고 억척스럽게 보여 작품 제목을 ‘오똑이’로 쓴다”고 말한다. 양 화백은 “존재의 탄생이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왔고, 어머니로 받은 것이 모두 내 안에 있다. 내 안의 무한한 에너지를 모성이란 주제를 통해 발산한다”고 말한다.
 
  ― 한국 사회는 정(情)과 효(孝)를 강조하는데, 그 결과 정서적 분화 수준이 낮아 가족구성원들이 지나치게 서로 결속하고 집착하게 만든다.
 
  양순열 “정과 효로 인해 사회 분화가 낮아졌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사회 구성에 꼭 필요한 것이 효와 정이다. 부모는 그때나 지금도 그렇지만 양육할 때 자식이 가치관을 형성하기 전까지 조건 없이 헌신한다. 그러나 자식이 성인으로 성장하면 그저 지켜봐주고 울타리가 되어줄 뿐 집착은 말아야 한다.”
 
  릴리 웨이 “동양은 양육을 어머니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반면, 서양에선 가사 분담을 남녀가 공동으로 나눈다. 물론 한국도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증가했다.
 
  1950~60년대 미국의 여성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려 아이를 일부러 안 가졌다. 한마디로 ‘끔찍한 엄마(terrible mother)’였다. 모성과 크레이티브(creative)는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겼다.
 
  선진국 중 출산휴가의 개념이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나마 1993년 클린턴 대통령 시절, 출산과 입양 시 12주의 무급휴가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육아휴직이 없고, 국가케어시스템에 따라 커뮤니티에서 (양육의) 역할을 나눈다. 따라서 모성을 남성형, 여성형으로 나누기보다 부모의 역할로 부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속담은…
 
화가 양순열(오른쪽)과 중국 출신 미국 미술평론가 릴리 웨이.
  ― 양 화백의 어머니와 ‘오똑이’ 시리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릴리 “양순열은 예술가가 되기 전에 자신이 어머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녀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어머니, 꿈, 여성, 아내, 딸, 양육자, 보호자, 위로자를 떠올리게 하며 동서양의 문화적 믿음의 균형을 맞추길 원한다.”
 
  “어머니 존재는 ‘나 안의 나, 나 밖의 나’라는 존재다. 미술로 어머니를 표현하기에 30여 년이 흘렀다. 미술에서 어머니 존재를 찾아 헤매다 보니 어머니가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어머니 존재를 미술로 말할 수 있어 기쁘다.”
 
  ― 시대변화에 따라 모성이 바뀌어야 하나. 우리 시대 모성의 의미를 표현해달라.
 
  “세상의 가치관이 바뀌고 가족이 파괴되고 있으나 모성의 본질이 바뀐 것은 없다. 작가 이전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모성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었다. 내 작품에 담는 모성은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개념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을 모두 아우르는 대지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모성의 근원을 페미니즘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다. 일종의 모성 회복을 세상을 향해 표현하려 한다.”
 
  릴리 “보도를 통해 한국의 존속살인, 존속범죄 소식을 들었다. 미국 부모도 자식을 통제하고 간섭하려고 한다. ‘헬리콥터 엄마’란 말이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몇 달 전 연방수사국(FBI)이 스탠퍼드대학, 예일대학, UCLA 등 명문대 입시비리를 밝혀냈다. 학부모 33명이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지난 8년간 오간 뒷돈 규모가 2500만 달러(약 283억원)에 달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서양의 육아는 어릴 때부터 자식의 잠자리를 부모의 침대에서 분리시킨다. 그런데 이런 양육태도가 과연 좋은 모델이냐를 두고 반성이 일고 있다. 미국도 동양적 양육의 장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어쩌면 가족 치료에서 말하는 ‘분리’ 개념은 서양식 치료 모델이다.”
 
  ― ‘내리사랑은 본능이지만 치사랑은 학습의 결과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속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말하는 모성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모성 본능을 회복한다면 내리사랑도 치사랑에 대한 말도 사라질 것이다. 고부갈등은 어쩌면 인간이 가지는 용렬한 본능 가운데 하나인 집착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모성은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는’ 근본이다.”
 
  릴리 “고부갈등이란 말을 (미국에서) 듣지 못했다. 내가 아들을 위해 예쁜 옷을 차려입고 며느리와 경쟁한다는 의미인가? 낯설다. 미국은 땅이 넓어 가족이 서로 만나기 어렵다. 5월 둘째 주 일요일인 ‘어머니날(Mother’s Day)’에 가족이 모두 어머니를 찾아온다. 계약 결혼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계약 커플이) 훗날 정식 결혼을 했는데 남편 부모가 아프니까 모셔서 돌본다. 결혼은 남녀 간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와 함께 정신적으로 성숙되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한국 가정에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요란한 사이렌이다. 존속살인, 존속폭행, 존속범죄가 선진국의 3~4배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나고 자란 가족의 아픔이 왜 현재 가족에게 되풀이되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사랑하기에 가족이 주는 상처는 더욱 아프다. 한국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도 부부와 원가족과의 관계에 있지 않을까. 더는 가족 간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최광현 교수의 말이다.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그 일이 지금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사람은 사막에서 물을 구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서로가 갖고 있는 결핍과 아픔이 있지만 들여다보지 못해 충돌이 생긴다. 각자가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는 데서부터 가족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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