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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인사이트

전두환과 광주 출동 헬기조종사들의 반격

“좋다, 헬기사격 실험하자!”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글 : 김영남  조갑제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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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측은 재판부에 헬기사격 실험 요청하고 광주 출동 헬기조종사들 입 열다!

⊙ “목격자 多數의 진술만 있으면 헬기조종사에 대한 조사·현장검증 없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인민재판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방법”(전두환 변호인 측)
⊙ 사격명령을 거부했지만 학살범으로 몰린 이정부 前 대대장, “발칸포를 맞으면 몸이 두 동강 난다”
⊙ 지상에서 쏜 총 여섯 발을 맞은 백승묵 前 대대장, “전일빌딩 탄흔은 헬기사격이 아니란 증거”
⊙ “작년 국방부 특조위는 조종사들 증언을 모두 묵살했다”
⊙ “왜 헬기사격으로 죽었다는 사람도, 탄피도 없나. 목격자는 왜 그렇게 적은가”
조갑제 대표와 만나 5·18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백승묵 前 203항공대대장.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자(死者)명예훼손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두환(全斗煥) 전(前) 대통령의 변호인 측은 지난 5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재판부에 헬기사격 실험을 해줄 것을 신청하였다.
 
  “전일빌딩의 탄흔은 UH-1H 및 500MD 헬기가 호버링 상태(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격을 가하여 발생한 탄흔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취지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조 신부와 5·18 희생자,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광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변호인은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신청서에서 “500MD와 UH-1H에서 기관총 및 소총으로 사격을 실시해 실제로 어떤 탄흔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전일빌딩 탄흔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증거조사라고 사료된다”고 했다. “헬기의 비행소리는 보통 사람에게 마치 기관총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따라서 헬기가 비행할 때 지상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여부를 규명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검찰, “현장검증 불필요”
 

  검사는 지난 7월 8일 해당 증거신청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헬기사격 실험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현장검증이 실시되는 장소(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본 건 공소사실 기재 장소와 건물의 배치 및 구조 등이 상이하고 당시 헬기의 고도 및 헬기와 건물과의 거리 등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아니하는 등 정확한 재현이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바, 위 현장검증으로 도출되는 결과를 통해 헬기사격 유무 등 본 건의 사실관계와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총 19명의 헬기사격 목격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질 것인바, 위 현장검증을 통해 확인되는 프로펠러 소리 등으로써 ‘헬기에서부터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는 취지의 다수 목격자 증언 등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또 “전일빌딩의 탄흔 밀집도는 헬기사격으로 이뤄질 수 없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감정서를 작성한 감정관 김동환을 조만간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기 때문에, 쌍방의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조회 신청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사실조회 신청을 불허(不許)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조사할 필요 없이 감정인의 신문을 통해 확인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실시한 5·18 사망자에 대한 사체검시기록과 광주광역시에서 보유한 헬기사격에 의한 사상자에 관한 조사결과보고서 및 보상결정서(이른바 유공자 명단) 역시 증거로 채택할 것을 요청했다. 관련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사인(死因) 혹은 부상 원인이 기재돼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헬기사격 피해자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이에도 반대했다. 검찰은 “재판의 핵심 쟁점은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조비오 신부 주장의 허위 여부, 즉 헬기사격의 유무(有無)”라며 “헬기사격으로 인한 피해자의 유무는 쟁점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헬기사격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었는지 여부와 실제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주장이다. 헬기사격은 있었지만 피해자는 없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목격자 진술로만 진행되는 재판”
 
  변호인은 각 언론사에 요청해 ‘광주 상공에서 비행한 헬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증거로 채택하자고 주장했다. 검사 측은 “이런 사진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거나, 역으로 위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며 증거 채택에 반대했다.
 
  현재 변호사와 검사는 헬기사격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증거 채택에 힘을 쏟고 있다. 검사는 당시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인들을 불러 신문에 나서고 있다. 변호인이 요구하는 헬기조종사의 증인신문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정주교 변호사는 “유무죄(有無罪)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검사는 헬기사격도 조사하지 말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도 조사하지 말자고 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을 가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헬기조종사의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정 변호사는 “검찰은 총 쏜 사람들이 쐈다고 하겠느냐”며 검찰이 조종사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맞았다는 사람과 때렸다는 사람에 대한 조사 없이 어떻게 목격자만 가지고 재판을 하느냐”고 개탄했다.
 
 
  “진실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故 조비오 신부 死者명예훼손 재판이 열린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했다. 사진=조선DB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지난 7월 11일 검찰 주장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피해자의 존부(存否)가 기총소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라면 도대체 헬기 기관총이 장난감 총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기총소사란 “비행기에서 목표물을 비로 쓸어내듯이 기관총으로 쏘는 일”을 말하기 때문에 ‘기총소사’의 의미 속에는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헬기사격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헬기사격설을 근거로 ‘학살’을 주장하고 있고, 국방부 특조위는 헬기 기총소사를 ‘광주 시민에 대한 소탕작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피해자의 유무(有無)가 기총소사와 무관하다는 말입니까? 피해자의 유무는 헬기사격과 무관하다는 검사의 주장은 듣는 귀를 의심케 합니다.〉
 
  변호인은 “조종사의 진술을 청취해보기도 전에 (진술을) 거짓으로 추단하는 것은 불공정한 예단”이라며 “조종사들은 직접 관련된 행위자들인데 이들을 조사하지 아니한 채 헬기사격설에 대한 조사를 마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헬기조종사에 대한 증인조사에 반대한다는 것은 헬기사격설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변호인은 또 다른 중요 쟁점인 헬기사격 실험에 대한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의견서에서 “약 50cm 기둥 안에 50개의 탄흔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일빌딩을 향하여 기총소사를 했다면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한 개의 방이 아니라 10층 전체 공간에서 탄흔이 발견돼야 한다”고 했다. 전일빌딩에 남은 탄흔을 포함해 목격자들이 주장하는 헬기사격 소리와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헬기사격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사는 목격자 19명에 대한 증언만 있으면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검증을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목격자 다수의 진술만 있으면 행위자들인 헬기조종사에 대한 조사나 현장검증도 없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인민재판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체적 진실발견을 형사소송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하에서 여러 사람의 목격자 진술만으로 재판하자는 주장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헬기사격 의혹의 도화선 ‘전일빌딩 탄흔’
 
2017년 9월 13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들은 5·18 때의 탄흔이 남아 있는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을 현장 조사했다. 사진=조선DB
  ‘5·18 당시 계엄군의 헬리콥터가 시민을 향해 사격을 했다’는 주장은 1988년 국회의 광주특위 때부터 제기되어왔다. 이후 광주사태에 대한 국가적 조사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헬기사격 의혹은 부정되어왔다. 이제 와 새삼 또 논란이 된 것은 광주광역시 금남로 소재 전일빌딩 10층 내부에서 150개 이상의 총탄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판매 금지 처분도, 검찰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기소도 모두 전일빌딩 탄흔에서 비롯됐다.
 
  2017년 1월, 광주광역시 의뢰로 전일빌딩을 조사·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이 탄흔들이 “헬기가 호버링 상태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리하게 추정된다”고 밝혔다. 탄흔의 밀집 정도와 직경을 근거로 당시 사용됐을 걸로 짐작되는 총기 종류 감정결과도 내놓았다. 5.56mm 실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 또는 7.62mm탄을 사용하는 M60 기관총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 발표 몇 달 뒤인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그해 5·18 기념식에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에 노력하고, 헬기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곧이어 문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사태 당시 신군부가 시위대를 대량 살상하기 위한 헬기사격을 계획했고, 실제 전일빌딩 기총 사격으로 일부 실행됐다’는 주장과 관련, 이 두 가지 문제를 특별조사하라고 송영무(宋永武)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이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이하 5·18특조위)’가 설립되었다. 2017년 9월 출범한 5·18특조위는 5개월의 활동기간을 거쳐 지난해 2월 ‘5·18 기간 동안 광주지역에서 공지(空地)협동작전의 일환으로 헬기사격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계엄군은 5월 21일 헬기를 이용하여 일반시민에게 위협사격을 하였고, 무장을 하지 아니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직접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5월 21일 헬기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서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또한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사격은 사전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략) 대량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는 집단살해 내지 양민학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국군을 ‘양민학살’ 집단으로 모는 特調委
 
  5·18 당시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들이 한결같이 헬기사격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특조위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5·18특조위가 국군을 ‘양민학살’ 집단으로 몰아가며 기존 국가적 조사결과를 뒤집은 논리는 이렇다.
 
  〈계엄군 지휘부가 문서로 ‘헬기사격 실시’를 지시했고 이를 하달받은 현장 지휘관들의 헬기조종사들에 대한 구두명령이 있었다. ▲헬기가 무장한 상태로 작전활동을 했다. ▲특조위 면담 조사에서 5명의 헬기조종사들이 무장헬기의 출동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사실상 발포를 허용하는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으며 자위권 발동명령이 하달된 상태였다. ▲평시보다 엄중한 군법이 적용되는 비상계엄하에서 헬기사격 명령을 받은 헬기조종사들이 헬기사격 명령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따라서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헬기사격이 존재했다는 뚜렷한 증거다.〉
 
  특조위의 조사 발표에 따라 국방부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공식 인정했다.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도 “우리 군이 38년 전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역사에 큰 아픔을 남긴 것에 대해 국민과 광주시민들께 충심으로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18 기념식 기념사에서는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여전히 많다”며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국방부 자체 5·18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계엄군의 헬기사격과 성폭행, 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를 확인하였으며 사과했다”라고 단정했다.
 
 
  “관계자 200여 명 중 ‘사격했다’고 말한 사람 아무도 없다”
 
5·18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는 이정부 前 103항공대대장.
  헬기사격이 있었는지 여부의 쟁점에 대해 가장 중요한 증언자는 당시 출동했던 헬기조종사들이다. 이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지난 39년 동안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언론은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기정사실처럼 전하고 있다.
 
  이에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조종사 백승묵(당시 육군1항공여단 61항공단 203항공대대장), 이정부(당시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 103항공대대장)씨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과거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여러 차례 증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39년이 지난 지금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처럼 번지고 정부가 이를 공식 사과하는 상황에 처하자, 이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 한 번 증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뷰 과정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어떻게 조종사 단 한 명의 증언도 나오지 않을 수 있느냐’고 했다. 이정부씨는 “당시 광주에 있던 조종사와 정비사, 무장사 등 200여 명의 조종 관계자들 중 ‘사격했다’고 말한 항공종사자들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39년 동안 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승묵·이정부씨는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며, 광주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헬기사격의 위력을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상상’에 기반해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백승묵씨는 육군항공사령부 부사령관(준장)으로 예편한 베테랑 헬기조종사다.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총 비행시간은 6000여 시간에 달한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UH-1H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다. 당시 출동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오히려 피격을 당했던 헬기조종사
 
  “그날 항공단장으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았는데 출동 목적이라든가 이런 사실은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광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일상적인 훈련이려니 하고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로 이동을 했습니다. 헬리콥터를 가지고 이동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전교사에서 첫 번째 받은 임무가 병력을 전남도청 앞에 있는 로터리에 공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병력을 공수하기 전에 착륙장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지역에 갔다가 피격을 당했습니다.”
 
  백승묵 대대장은 착륙장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전남도청 인근에서 고도를 낮췄다고 했다. 헬기에는 20사단 연대장인 김동진 대령을 비롯해 6명이 탑승했다. 그는 거의 착륙하는 단계까지 고도를 낮출 때 사격을 받았는데 사격받은 위치는 전남도청과 전일빌딩 사이로 기억했다. 백 대대장의 헬기는 동체 후미에 있는 프로펠러 부분에 여섯 발을 맞았다. 프로펠러를 돌리는 축인 드라이브 샤프트(축)가 맞아 절단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축이 절단되면 조종불능 사태, 즉 추락하게 된다.
 
  1980년 5월 22일 광주에 도착한 이정부 대대장도 광주비행장 계류장에서 피격된 UH 헬기를 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UH가) 피격을 당하고 시민들이 장갑차를 탈취하고 했기 때문에 아마 (내가 타는) 코브라를 내려보내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피격된 헬기는 소총에 맞은 것 같았다. 헬기 꼬리에 있는 프로펠러에 맞으면 추락했을 텐데 운이 굉장히 좋았다”라고 말했다.
 
  백 대대장은 월남전에서도 피격을 당해봤기 때문에 동체에서 발생한 충격을 감지하고, 바로 피격 사실을 파악했다고 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 전사자 가운데 상당한 비율이 헬기조종사들이며 대부분이 격추돼 전사(戰死)했다.
 
  그는 광주에서 피격된 헬리콥터는 “밑에서 쏜 총이 아니라 옆에서 쏜 총에 맞았다”고 했다. 사격한 곳이 상당한 높이, 즉 건물 높이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행하는 헬기를 맞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실제로 맞은 것은 여섯 발이지만 발사된 총탄은 더욱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군에서 대공(對空)사격 훈련을 할 때 합격 점수가 2%입니다. 100발 쏴 두 발 맞히면 합격으로 봅니다. 6발을 맞힐 정도로 사격을 했다면 대충 약 300발을 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백 대대장은 착륙을 포기하고 전교사로 복귀했다. 피격당한 부분을 군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고 수송 임무수행을 할 수 없다고 보고했으며, 이 임무는 취소됐다고 했다. 그는 피격 이후 27일까지 광주 외곽에서 군부대 보급품 공수 등의 임무는 계속 시행했으나 광주시내에는 들어간 적이 없다고 했다.
 
 
  위협사격 명령 거부한 조종사
 
  국방부 특조위가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단정한 논리는, “비상계엄하에서 헬기사격 명령을 받은 헬기조종사들이 헬기사격 명령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헬기사격이 존재했다는 뚜렷한 증거”라는 것이다.
 
  특조위는 “코브라 헬기(AH-1J)가 발칸포를 1500발 수령했으므로 코브라 헬기에서 발칸포를 사격했을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정부씨는 당시 코브라 헬기 부대인 103항공대대장이자 상부의 사격명령을 두 번이나 거절해 헬기사격이 이뤄지지 않도록 한 사람이다. 광주시민들에게는 의인(義人)과 같은 그는, 39년이 지난 지금 ‘학살범’이 돼 있었다. 그는 사격명령을 거부하게 된 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5월 22일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전교사에 내려가자마자 신고를 했습니다. (전교사 김준현 준장으로부터) 광주공원 앞 광주천(川)에 위협사격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에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20mm 발칸포를 쏘면 유탄이 얼마나 센 겁니까. 전차를 부수고 장갑차를 때려 부수는 발칸포를 사용하면 바윗돌이 무너지고, 피탄(被彈)이 생기면 피해가 엄청 납니다. 20mm 탄피가 떨어지는 것에 맞으면 사람이 즉사합니다. 제가 항공여단장님께 전화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서면명령을 받지 않으면 사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단장님께서 ‘네가 지휘관으로 내려가 있으니 상황 판단을 잘해 조치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한 차례 헬기사격 지시를 받았지만 이번에도 거절했다. 그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는 1980년 5월 24일 오후에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공수11여단 63대대는 광주 송정리비행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효천역 앞에 이르렀을 때, 부근에 매복하고 있던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이들을 무장시위대로 오인, 선두 장갑차와 후속 트럭에 90mm 무반동총 4발을 명중시키는 등 집중 사격을 가했다. 이에 63대대도 응사해 계엄군끼리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63대대 병력 9명이 사망하고 63대대장 등 군인 33명과 마을 주민들이 총상을 입었다(검찰 국방부 합동조사 보고서). 당시 출동했던 이정부 대대장의 증언이다.
 
 
  11공수와 보병학교 교도대의 誤認 교전
 
  “11공수부대가 가는 길을 엄호하라는 명을 받아 엄호를 했습니다. 보통 1시간30분에서 2시간 이내에 연료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시 광주비행장에 내려왔습니다. 내렸는데 전교사 사령부에서 긴급히 11공수여단 있잖습니까, 공격을 받고 있다고 지원사격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제가 헬기를 몰고 출동했습니다. 출동했는데 11공수대대 맨 앞에 APC(장갑차)가 있잖아요.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뒤 트럭도 불타고 있었습니다. 공수부대원들이 내려가지고 전방에 있는 야산에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빨리 야산 쪽으로 지원사격해 달라고… 사격을 했으면 불바다가 됐을 겁니다. 거기에는 동네도 있었어요.
 
  코브라에는… 미사일을 쏘기 위해서 TSU, 망원조종경이 있습니다. 13배로 확대됩니다. 13배로 확대해보니까 (어깨에) ‘나를 따르라’(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바로 보병학교 교도대인 겁니다. 사격교도대가 거치해놓고 있는데, 공수부대가 교대한다고 가니까… 맨 앞에 APC거든요, 사격교도대에서는 착각한 겁니다. 시민이 APC하고 군용차량을 탈취해서 오는 거라고 말이죠. (중략)
 
  사격교도대에서 사격하니까, 그 산에서 한 700~800m 거리가 될 거예요. 거기서 맞아가지고 불이 나고 병사들 쓰러지고 하니까 11공수여단장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병학교 교도대가 자신들을 사격할 것으로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아마 시민군이 공격한 것으로 착각한 겁니다.
 
  제가 13배로 확대해보니까 보병학교인 겁니다. 그래서 바로 광주 전교사에 무전으로 ‘같은 우리 군인들이다. 사격중지 명령을 내려라’ 하니 안 된다는 겁니다. 통제 불능이라고. 공중에서 계속 돌면서 사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네도 있었는데 우리 아군끼리 피해가 있지 않았나… 저는 공중에 있었으니 상세한 것은 몰랐습니다만. 저는 그때 상황 판단을 해 사격하지 않았습니다.”
 
  월남전에도 참전한 이정부 대대장은 한국군 내에서 자신이 코브라 헬기를 몬 최초의 조종사라고 했다. 그는 교관교육도 미국에서 받았다. 그런 그는 “월남전에서도 헬기 기총소사를 하지 않았다”며 “민간인도 있고 누가 죽을지 모르기 때문인데 (광주의 경우는) 같은 동포인데 폭도인지 아닌지 눈으로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쏘느냐”고 했다.
 
 
  “몸이 두 동강 나고 불바다 됐을 것”
 
탄피를 쏟아내며 불을 뿜는 발칸포. 당시 발칸포 탄피를 주웠다거나 전일빌딩에서 발칸포 탄흔을 발견했다는 보고는 없다. 사진=조선DB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백승묵 대대장과 이정부 대대장 등 헬기조종사 출신들이 거듭 강조하는 점은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광주지방검찰청은 1980년 5월 26일부터 6월 19일까지 5·18 관련 사망자 193명 중 민간인 165명에 대한 ‘검시(檢屍)내용’을 조사한 뒤 이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 165명의 사인(死因) 중 총상은 전체의 79.4%인 131명이다. 이 중 M16에 의한 사망자 수가 96명, 카빈 소총에 의한 사망자가 26명, 기타 총상이 9명이었다. 나머지는 타박사와 차량사, 자상(刺傷) 등으로 인해 숨졌다. 이 검시 보고서에는 어떤 과정에서 총상을 입었는지 설명이 담겨 있는데 ‘헬기’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당시 발칸포를 탑재한 코브라 헬기를 몰고 광주에 들어갔던 이정부씨는 “발칸포에 사람이 맞으면 한 발만 맞아도 두 동강이 난다”고 했다. 그는 “20mm 발칸을 쏘면 10발마다 한 발씩 예광탄이 날아간다”며 “이것은 불인데, 그러면 광주시내가 불바다 되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헬기에서 발사된 20mm 발칸의 탄피가 떨어지는 것을 밑에서 맞아도 죽는다”며 떨어지는 탄피로 건물 지붕이 무너질 정도의 피해를 본다고 설명했다. 백승묵 대대장은 발칸포 사격 가능성과 관련해, “발칸포는 총알 하나가 수류탄 하나가 날아가 폭발하는 것과 같다”며 “아마 상상할 수 없는 인명피해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부·백승묵씨는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목격자는 10여 명이 아니라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목격자가 이렇게 적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수천, 수만 발의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어떻게 탄피를 주웠다는 사람도, 헬기사격의 증거로 수집된 탄피도 하나도 없을 수 있느냐고 했다. 백승묵씨는 “탄피는 공중에서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광주시내 어딘가에는 탄피들이 수도 없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과거 1995년 진행된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검찰은 헬기조종사들을 불러 어깨에 관통상을 당한 여중생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와 관련해 이정부씨는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총알이 위에서 대각선으로 박히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며 “그 여중생도 총알이 옆으로 관통해서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헬기에 맞았다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직접 입원했다는 병원도 찾아갔다고 한다. 병원엔 그런 진료 기록이 없었다.
 
 
  “상식 없는 사람들의 상상”
 
  국과수는 전일빌딩에 생긴 탄흔은 UH-1H의 마운트에 장착된 M60이나 이 헬기에 탑승했던 승무원 또는 공수부대원이 M16을 사용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헬기 기총사격으로는 전일빌딩에 남아 있는 것 같은 탄착군(群)이 나올 수 없다는 조종사들의 반박이 이어졌음에도 5·18특조위는 “헬기에 탑승한 승무원이나 공수부대원이 슬라이딩 도어 또는 창문을 개방하고 M16으로 전일빌딩에 사격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UH-1H를 몰고 광주에 출동했던 백승묵 대대장은 M60 기관총을 장착하지 않은 상태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 헬기 모두 (M60을) 달지 않고 떴다”며 “기관총이 달려 있으면 보급품이나 인원이 타고 내리고 하는 데 불편하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는 달고 일반적인 때는 안 달고 탄다”고 했다. 그는 “광주시내에서 찍힌 사진이 더러 있는데 외관상으로 봐도 기관총 달려 있는 게 없다”며 “기관총을 쏘려면 문이 열려 있고 승무원이 보여야 하지만 그런 사진도 없고 그렇게 비행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전일빌딩에 있는 탄흔 밀집도, 특히 천장의 탄흔 등은 M60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이다.
 
  “헬리콥터에 있는 M60은 어느 목표를 조준해서 쏘는 것이 아니라 적(敵) 지역에 병력을 공수하면서 착륙 단계에서 착륙 지역에 적이 있든 없든, 위협사격을 하는 용도입니다. 탄착이 형성되면 모름지기 축구장 넓이 정도로 산탄이 생깁니다. 헬기가 또 움직이니까, 그리고 비행기 자체에 바이브레이션이 있으니까요. 전일빌딩처럼 밀집된 탄흔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자리 비행인 호버링을 한다고 해도 말이죠. 그리고 헬리콥터는 위(천장)를 향해 쏠 수 없습니다.”
 
  이정부 대대장도 헬기에서는 천장을 향해 사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UH1이든 500MD든 호버링을 하면 (헬기 위에서 회전하는) 블레이드가 돌고 있지 않겠느냐”며 “블레이드를 맞히면 비행기가 추락하니까 총구를 위로 올리지는 못한다. 탄흔이 지붕에 찍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라고 했다.
 
  백승묵 대대장은 UH-1H 뒤에 탑승한 승무원이 M16을 사용해 사격했을 가능성과 관련해, “그럴 이유가 없다”며 “거기에 뭐가 있다고 쏘느냐”고 했다. 그는 “문 여는 것은 조종사 지시 없이는 못 연다. 병사들이 총 쏘겠다고 문 열어달라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문을 열면 위험하고 뒤집히지는 않지만 문짝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특조위 결과와 관련한 질문이 이어지자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상상을 한 것”이라며 일축했다.
 
 
  “어떻게 신부님 혼자 보셨단 말입니까”
 
5·18 당시 헬기사격설 주장자 故 조비오 신부. 사진=조선DB
  ‘헬기사격을 봤다’는 조비오 신부 등의 주장은 1990년대 지상파 방송을 통해 퍼졌다. 당시에는 전역한 민간인 신분이던 이정부씨는 직접 조비오 신부를 찾아가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가톨릭 신자로서 조비오 신부가 착각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신자이고 조비오 신부님은 당시 순천성당 주임신부였습니다. 제가 일요일에 순천에 갔습니다. 신부님이 광주사태에 대해서 강론(講論)을 하시더라고요. 다 듣고 난 뒤에 신부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사격 안 했는데 (제가) 사격했다는 증인이라고 해서 제가 설명을 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자료를 다 가져갔습니다. 신부님에게 사무실에서 말씀을 다 드렸습니다. ‘신부님, 착각이잖습니까? 신부님 착각하신 거’라고 말했더니 ‘내가 봤는데 착각할 수가 없다’고 해요. ‘사격을 보셨다면 어떻게 신부님 혼자만 보십니까, 수많은 사람이 증인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신부님은 그것은 자기는 모르겠다고 해요. (중략)
 
  신부님의 말은 딱 한마디입니다. ‘내가 직접 봤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신부님이 성당에서 나오는데 (헬기에서) 기총소사를 해서 무서워서 벽으로 숨었다는 겁니다. 딱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비오 신부님에게 자료를, 항공사령부에서 받아서 여러 자료를 많이 가져갔습니다. 다 설명해도 조비오 신부님은 경청을 안 합니다. 왜? 너무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항공의 명예를 위해서 신부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윤공희 당시 대주교도 찾아갔다고 한다. 윤 대주교는 “제가 가톨릭 신자니까 형제 말도 믿지만, 성직자 말도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했다고 한다. 이정부씨는 헬기사격을 주장하는 조비오 신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사건은 불기소처분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헬기사격 진실 규명은 간단한 일인데 (검찰이)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헬기사격 실험도 거절한 조비오 신부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간단하다. 헬기가 비행하는 것을 보았고, 총소리가 들렸으며, 헬기에서 보이는 불빛(비콘라이트)이 총을 쏘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정부씨는 이들이 헬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증언이다.
 
  “비콘라이트는 충돌방지등인데, 다른 물체하고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밑에 비콘라이트가 ‘픽픽픽’ 돌아갑니다. 경찰 순찰차 위 불 돌아가죠? 그것처럼 사람들한테 경계심을 주는 거죠. 아래에서 보면 꼭 사격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또 지상에서 사격 소리가 나고 그랬잖아요.”
 
  그는 조비오 신부와 5·18 조사위원들을 초청해 헬기사격 실험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봤으니 볼 필요가 없다”며 사격실험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육군항공감에게 헬기사격 실험을 요청했고, 참모총장도 실험을 위해 헬기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사격실험은 조비오 신부 측의 거절로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헬기사격 실험만 이뤄지면 진실은 쉽게 밝혀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헬기를 가지고 가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는 겁니다. 실제 사격하는 것을 보여주면 헬기사격 위력이 이렇구나, 알게 될 것이고, 헬기사격은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백승묵 전 대대장도 “광주시민들이 희생을 당한 것에 우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또 다른 안타까운 점은 비행기에 대한 상식이 없는 상황에서 비행기가 사격을 했다는 증언을 하고, 그것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사격한 쪽으로 조사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조종사들의 증언을 묵살한 특조위
 
국방부 5·18특조위는 2018년 2월 7일 5·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진=조선DB
  헬기조종사들은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정부의 최근 발표로 인해 스트레스와 무력감(無力感)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이 국방부 특조위에 모든 사실을 설명해줬음에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 분노를 넘어서 절망하고 있다.
 
  백승묵씨는 2017년 말부터 국방부 특조위와 대담 형식으로 만났다고 한다. “조사는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보다는 사격했다는 기정사실을 놓고 필요한 자료 수집을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기대를 하고 사실을 얘기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사실 규명이 되길 바랐는데 나중에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이정부씨에게도 국방부 특조위에서 수없이 연락이 왔다고 한다. 특조위 소속 현역 대령이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이 대대장에게 연락해, ‘헬기사격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정부씨는 “전일빌딩에 사격을 했다면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사격실험을 해보면 대번에 판명이 된다”며 “기자들과 진상조사위원들 참관시키고 사격을 하면 간단하게 판명될 것인데,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왜 자꾸 전화를 하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정부씨는 특조위와의 전화통화 이후 있었던 정부의 발표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고 있는데 더 충격이 컸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집 애들이 ‘아버지, 진실이 밝혀졌다’며 《월간조선》 2018년 10월호를 (제가 있는) 태국으로 보내줬다”고 했다. “왜 다른 언론은 헬기조종사를 불러 묻지 않고 다 5·18 관계자 등 사격을 봤다는 사람만 불러 진실을 왜곡하느냐”고 했다.(2018년 10월호 《월간조선》에는 조갑제·이지영 기자가 작성한 ‘광주 헬기 조종사들의 증언록 입수: 5·18 광주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백승묵, 이정부씨는 조종사들의 목소리가 국가 조사나 언론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에 대해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아무 힘이 없다고 했다. 백승묵씨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제가 가끔 동료들한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략적으로 정치놀음하는 틈에 끼이지 않게 해서 어떤 면에서는 고맙지만, 만약에 사격과 관련한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 그때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겠다’고.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안 되지 않습니까, 이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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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익선    (2019-08-12) 찬성 : 6   반대 : 0
당시의 광주 특조위가 얼마나 엉터리였고,조비오신부는 성직자란 사람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보통 성직자인가?그러나 이런 인간들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은 광주 5/18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이미 이 신부는 고인!그런데 왜 이 신부는 헬기 사격의 실전 상황을 끝까지 기피했을까?한마디로 승락했다면,헬기 기총소사가 얼마나 무서우며,그 위력이 대단한지 당장 판단될 터인데 왜 이들은 그 확실한 방법을 기피했을까?왜?따라서 이들의 증언은 모두가 불확실성을 내포!결론적으로 불확실한 증언 정도로 끝내야만 할 것이다!
  고선환    (2019-07-31) 찬성 : 23   반대 : 0
518당시 헬기 조종사와 탑승자들 중에 그 누구도 기총소사하거나 목격한적이 없다는데, 봤다는 신부말만으로 집단발포라 우기고 국방부장관이 사죄하는 미친 나라
  임승규    (2019-07-31) 찬성 : 16   반대 : 0
그 신부님 군대 다녀 오셨나요? M-1 소총이나 M-16 을 사격하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얼마나 답답하면 실험 사격을 해 보자고 할까요? 뭣을 보았다는 것인지 ?? 지상에서라도 M-60 사격을 한번이라도 보면 저런 말을 하지 않을텐데... 아니면 사격하는 미국 유튜브라도 보시든가
  남궁견    (2019-07-31) 찬성 : 34   반대 : 0
헬기 사격이 얼마나 허망한 루머인지 군대 갔다온 남자분들은 대부분 알 것입니다.헬기에서 단발 단발을 조준사격하는 것이 아니라 기총소사를 하게되는데 단발단발 사격해도 높은 곳에서 상당히 먼 곳으로 사격시 사입구나 사출구가 근접거리에서 사격과는 전혀 양상이 달라지며 특히 기총소사의 경우 피해자의 몸은 알아볼수 없을 정도라는데 검붉은 사제의 발언에 너무 심취하신 것 아닙니까?헬기 조종사의 말대로 실제로 헬가에서의 기총소사를 실험하면 될 것을 왜 실행 안 하고 말로만 떠드는지 실험하면 자신들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이 밝혀질까 겁나서인가?
  박성욱    (2019-07-31) 찬성 : 7   반대 : 45
군시절 광주에 투입되었던 분이 전두환이 TV에 나올 때 마다 분노하며 못할짓 시킨 넘이고 이라고 말하고 먹지도 못하던 술을 마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분은 양민들에게 못할짓을 한 것에 대하여 그 명령을 내린 자들에 대하여 분노했었습니다.
  강덕용    (2019-07-30) 찬성 : 74   반대 : 3
조비오 신부? 이 나라에 신부 탈을 쓴 빨갱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 자라고 빨갱이가 아니라는 무슨 증거라도 가지고 있나? 전 세계적으로도 골수 공산주의자이면서 종교게에 몸담고 있는 가짜 성직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였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또 판사? 판사중에도 빨개이가 얼마나 많은데..... 생각을 해 보면 그 런 판사가 많다는 것은 예날 변소간에서 구데기 발견하기보다도 쉽지 않겠나? 박근혜대통령이 무슨 죄가 있다고 30년씩 선고를 할 수 있었나? 덮어씌운 죄 말고......
  최중신    (2019-07-30) 찬성 : 41   반대 : 1
김대업으로 먹고사는 인간들 이제는 김대업 같이 조작된 사기로 당선 된 대통령은 무효가 되야 바르고 정직한 나라가 되겠습니다.
  차석호    (2019-07-30) 찬성 : 29   반대 : 0
상상임신과도 같은 덮어씌우기다. 아무리 전두환이 밉더라도 진실은 밝히는게 판사가 할 일이다
  이광섭    (2019-07-30) 찬성 : 56   반대 : 0
60정도만 되어도 콘코리트 벽이 다 날아간다. 헬기에서 중기관중을 한번 꽉 당기면 수천발이 쏟아진다. 지상에선 지옥도가 펼쳐진단 소리다. 광주사태에서 헬기사격 운운은 이건 군대가서 총한번 안잡아본 무식꾼들이나 할 소리란 이야기다. 가관인건 광주시가에서 헬기사격을 했는데 그걸 목격한 사람이 10명정도라는군. 거짓말을 하려거든 최소한 초딩정도는 속아넘길 수 있을정도로 해야할거 아니냐고.
  이박리    (2019-07-30) 찬성 : 31   반대 : 0
어떤 자들은 죽고 난 후에도 나라를 조용하게 만들지 못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대표 친북 종북 좌파 빨갱이들이 있죠.
  윤병수    (2019-07-30) 찬성 : 63   반대 : 0
103항공대이면 코브라일텐데. . 그기에 M60은 없고, 토우미사일과 무장사 앞에 3문짜리
발칸포가 있을텐데. . 5.56미리는 미니발칸이나 M16 총탄인데 코브라에는 없는 장비로 알고 있고 탄흔의 크기나 입사각은 안재어 봤나? 3년 뒤 쯤 항공학교 면회실 부근에 전에 없던
UH60이 있길래 기간병에게 물어보니 광주사태 때 총 맞은 헬기라고 설명하던데 . . .
감정적으로 심증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서로 원한이 없도록 신중하고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듯. .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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