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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 死鬪의 현장을 가다

대학병원 응급실

“‘우리 병원 와서 살았다’는 한마디 듣고 버틴다”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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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 환자, 하루 100명 안팎서 많게는 200명 넘게 來院
⊙ 뇌경색·심근경색·교통사고·알레르기 發病 ‘골든타임’ 지켜야
⊙ “CT 왜 찍었냐” 酒暴 행패에 간호사 희롱, 殺害 위협까지
⊙ 커피·컵라면 먹고 밤샘 근무… “우린 노동시간 취약계층”
⊙ 어린 시절 기자가 수없이 겪었던 응급실의 광경을 떠올리다
지난 2월 28일과 3월 4일 양일간 취재한 한양대병원과 인제대 상계백병원 응급실의 밤 풍경. 사진=신승민
  “눈 떠요! 눈 떠봐요!”
 
  “언제 왔어?” “방금이요. 이틀 전 ‘시저(seizure·발작)’로 온 환자예요.”
 
  정적(靜寂)이 짙게 깔린 새벽 1시.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야음(夜陰)을 가르며 들어온다. 구급차로 이송된 환자의 병상이 응급실 자동문을 향해 질주한다. 문이 열리고 병상 주위로 커튼이 빠르게 펼쳐진다. 중앙 통제소에서 전산 차트를 보고 있던 의사들과 링거 줄을 든 간호사들이 우르르 달라붙는다. 팔다리가 오그라든 환자의 호흡이 거칠다. 괴성(怪聲) 비슷한 것도 들린다. 괜찮을까. 담당 의사가 겨우 숨을 돌리며 말한다.
 
  “이틀 전에도 온 분이에요. 낮에 경기를 일으켜서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 갔다가 지금 여기로 다시 왔어요. 경찰 수사 중인 분인데, 경기가 일어난 것처럼 보여서 수사 지연을 유도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요. 또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전환장애’(심리적 갈등·부담으로 마비·경련·발작을 일으키는 질환)라고 볼 수도 있는데…. 더 살펴봐야죠.”
 
  응급실은 모든 병원의 최전선(最前線)이다. 경중을 미리 알 수 없는, 온갖 상처와 증세를 가진 환자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몰려든다. 술 마시다 넘어진 취객부터 목숨이 위태로운 중환자까지 다양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환자들 못지않게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긴장감·압박감에다, 일부 환자의 난동과 보호자들의 재촉까지 감당해야 한다. 밥도 건너뛰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그럼에도 ‘응급실 의료진’은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다. 지난 설 연휴 중 과로로 세상을 떠난 고(故) 윤한덕 전 중앙응급의료센터장도 그랬을 것이다. 환자도 의료진도 ‘생존’을 위해 분초를 다투는, 그 치열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기사는 서울 한양대학교병원과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의 협조를 받아 취재했다.
 
 
  진단·치료 先後는 선착순 아닌 重症度 차이
 
한양대병원 응급실은 경비가 삼엄했다. ‘진료 방해 행위 엄중단속’이라고 적힌 글씨는 물론, 불상사에 대비해 벽면 한편에 성동경찰서 전화번호가 걸려 있다.
  병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자가 현장에서 본 응급실의 운영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환자·보호자 등 내원객은 보안요원의 통제하에 1차 분류소로 보내진다. 분류소에서는 담당 의사가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체계에 따라 증세·병력(病歷)·나이 등을 고려, 1~5단계(숫자가 적을수록 중증)로 응급환자들의 중증도(重症度)를 분류한다. 비교적 경증(輕症)인 경우, 내원 순서에 맞춰 진단과 치료가 진행되지만 응급환자의 경우 상태가 위중한 정도에 따라 선후가 달라진다. 특히 가슴 통증, 호흡 곤란, 의식 저하, 발음 이상 등의 경우 기다리지 말고 의료진에게 말해야 한다. 중증도가 파악되면 환자들은 ‘중증구역’ ‘경증구역’으로 보내져 중앙 통제소의 전산 시스템하에서 집중 관리된다. 문진·촉진(問診·觸診) 결과, 환자의 병력 정보, 혈압·혈액 등 기본 검사 결과를 토대로 1차 처방을 낸다. X선·CT(컴퓨터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법) 등 영상 검사는 추가로 판단한다. 환자의 병증에 따라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물론, 일반내과 및 흉부·정형외과 등 타과 의사들도 함께 내려와 진단하기도 한다. 처방 이후 환자 상태에 따라 귀가·입원·연장치료 등을 결정한다.
 
  지난 2월 28일 현장 취재를 위해 찾아간 서울 성동구의 한양대병원 응급센터는 ‘서울 동남권역’ 권역응급의료센터였다. 권역응급센터란 특정 지역별로 발생하는 중증 응급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지정된 상급 종합병원이라는 뜻이었다. 한양대병원 응급센터는 그중에서도 동남권역(서울 송파·성동·광진·서초·강남·강동, 경기 구리·하남·양평)을 맡고 있었다. 1층은 응급실, 2층은 교수실, 3층은 응급중환자실, 4층은 응급병동으로 구성돼 있었다.
 
  응급실 정문에서 바라본 진입로는 경비가 삼엄했다. 관계자 외 출입을 엄금하고, 보호자도 1인 이상 드나들 수 없었다. 자동문이 있는 응급실 입구 양옆으로는 소생실과 외상처치실이 있었다. 기자가 현장을 가볍게 둘러볼 동안에도 피골이 상접한 환자들이 호흡기를 차고, 병상·휠체어에 몸을 기대어 소생실·응급실·감염진료구역 등으로 오가고 있었다. 조부모로 보이는 환자의 병상을 밀고 가는 학생부터, 보호자를 기다리며 우는 아이를 달래는 구급대원들도 있었다. 소생실에 위급한 환자가 당도하자 파란 가운과 마스크를 쓴 의사·간호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고, 녹색 커튼 안에서 ‘석션’(suction·吸引, 기도 내 분비물 및 소화관 내 혈액·가스 등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방법) 하며 외치는 소리와 기계음이 함께 들리기도 했다.
 
 
  “저녁 식사 때, 새벽 3시까지 환자 몰려”
 
한양대병원 응급실 중앙 통제소의 모습. 한 간호사는 “응급실은 환자의 수가 많고 적은 것보다 전체 중증도 관리가 중요하다. 총 환자가 네댓 명이라도 중증 응급환자들이면 중증도가 높게 올라간다”고 했다.
  보안요원의 도움을 받아 자동문을 열고 들어선 응급실은 대낮부터 바빠 보였다. 응급의학과(내과 일부)의 교수급 전문의와 전공의(레지던트·인턴),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이 중앙 통제소에서 각 환자가 있는 병상으로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곳곳에서 환자 신음, 아기 울음, 간호사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환자와 보호자가 서로 실랑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응급실은 중증·경증·소아구역 및 격리·처치·당직·CT·수술실 등으로 구분돼 있었다. 중앙 전광판에는 오늘의 중증도가 각 환자의 병세 현황 정보와 함께 떠 있었다. 빈 병상이 몇 개 보였지만 당일 응급센터 전체의 중증도는 낮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한 간호사는 “응급실은 환자의 수가 많고 적은 것보다 전체 중증도 관리가 중요하다. 총 환자가 네댓 명이라도 중증 응급환자들이면 중증도가 높게 올라간다”고 했다. 중증구역 담당 간호사는 “오늘은 (상태가 호전돼) 경증구역으로 가는 환자 비율이 낮은 편”이라고 했다.
 
  의료진 대부분은 “저녁 식사 때와 자정에서 새벽 3시까지 환자가 많이 몰려온다”고 했다. 실제 그랬다. 오후 6시가 지나자 기록판과 주사제를 들고 다니는 간호사들의 얼굴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간호사 9명이 일사불란하게 모여 비품 창고에서 일회용 주사기 박스를 정리하기도 했다. 구급차로 이송된 노소(老少)의 환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한 인턴 의사는 입에 펜을 문 채로 주사기 상태를 보며 분주히 움직였다. 서로 간의 대화도 빨라졌다. “○○○님, (영상검사) 찍었어요?” “종이, 종이 어디 있어!” “여기 있어요.” “응급의학과 (넘겨)줬어?” “타임, 타임, 타임!”
 
  환자 관련 전화를 받으며 물 반 통을 다 마시는 의사도 있었다. 신출내기 의사 5명은 환자의 상태가 심각한지, 기자의 물음에 대꾸 없이 환자 병세가 기록된 모니터만 긴장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 의사는 “지금 보통 인턴들이 (각 자리 모니터에서) 환자 주(主)증상 뜨는 거 보고, 술기(術技, 채혈·주사 등 각종 기본 처치술)를 하거나 (간호사와 함께) 심전도(心電圖·심장 수축에 따른 활동 전류를 곡선으로 기록한 것)를 찍는다”고 했다. 현장업무에 투입된 지 1시간30분밖에 안 됐다는 한 간호사는 초조한 기색으로 검사 줄이 주렁주렁 달린 심전도 기계를 끌고 환자 곁으로 갔다.
 
  식사는 제때 할까. 의료진은 “교대로 먹거나 바쁘면 건너뛴다”고 했다. 중간에 간식을 사 먹거나 야식으로 때우는 일이 많다고 했다. 응급실 맞은편의 편의점 주인은 “밤 12시 이후부터 새벽 4시까지 우유·김밥·도시락을 많이 사 간다”고 했다. 실제 기자가 지켜본 결과, 밤 10시에 응급실 의료진 몇몇이 즉석밥과 어묵·컵라면, 고깔 모양의 과자를 사 가기도 했다. 목이 타는지, 잠을 쫓기 위해서인지 자리마다 아이스커피가 놓여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夜食으로 끼니 때우고 당직실서 쪽잠
 
한양대병원 응급실 2층에 위치한 전문의·전공의의 당직실. 구겨진 옷가지와 청진기 등 어지럽게 쌓인 의료 도구들이 그들의 피로를 말해줬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응급센터 2층으로 올라갔다. 전문의·전공의 당직실이 있었다. 2층 침대에는 여러 옷가지가 헝클어져 있었고, 의자에는 의사 가운과 트레이닝복이 구겨져 있었으며, 바닥에는 슬리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거기서도 의료용 듀얼모니터가 책상 위에 설치돼 있었다. 프린터 위에 놓인 청진기와 마스크가 그들의 흔적을 말해줬다. 한 의사는 “(후배 의사들) 가끔 야식 시켜주는 걸로 피로를 풀곤 한다”며 “(의학)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연애도 하던데, 우리 의료진은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을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밤 11시가 되자 주취자(酒醉者) 몇몇이 들어왔다.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새벽 1시 전까지는 ‘주취자와의 전쟁’이라던 어느 의료진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주취자라도 어딜 다쳤을지 몰라 기본 검사는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실랑이가 싸움이 되기도 한다. 보통 보호자라고 온 사람도 주취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습이 쉽지 않다고 한다. 중증환자가 많은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면 큰일일 텐데 대처는 어떻게 할까. 한 보안요원은 “저도 들은 얘기인데, 예전에 (응급실로) 칼을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응급실에 있는) 자기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행패를 부렸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우리 선에서 마무리하는 편이다. 말로 타일러서 보내는 식”이라며 “최대한 진정할 수 있게 말씀드리지만, 심한 경우 1차 경고를 하고 나아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른다”고 했다. 실제 응급실에는 ‘진료 방해 행위 엄중 단속’이라는 문구는 물론, 벽면 한편에 성동경찰서 번호가 걸려 있었다.
 
  오재훈 응급의학과 교수는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이다. 예전에는 응급실이 거의 ‘시장통’이었다”며 “환자가 1명 오면 보호자가 많게는 10명씩 들어오기도 했다. 감염도 걱정이지만 서로 컨트롤이 안 돼서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오 교수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응급실 내부 환경이 (출입 통제 강화로) 많이 좋아진 편”이라며 “(그럼에도) 응급실임에도 중증 응급환자가 우선순위로 치료가 된다는 인식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週 52시간제 도입됐지만, 醫師는 80~100시간 근무”
 
강형구(왼쪽 사진)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응급실 의료진의 근무 여건 문제를 지적했고, 조석진 상계백병원 응급의학과장은 “人命을 살리는 건 자랑이 아닌 의료진의 本分”이라고 했다.
  “심폐소생술 하고 있는데도 ‘내가 먼저 왔고 지금 우리 사람이 아픈데’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문제로) 보호자들끼리 가끔 싸우기도 하죠. 권역응급센터는 중증환자를 책임지는 곳이니까, 오시는 분들도 (치료가) ‘접수 순서’가 아닌 ‘중증 순서’로 진행된다는 점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두 번째는 지원 문제예요. 응급실도 국가에서 많이 신경 써주고 있지만, 제가 봤을 땐 아직 많이 모자라요. 응급의학과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들, 어떻게 보면 ‘3D업종’이거든요. 긴박하고 긴장된 상황에서 매일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국가적 지원으로 투자를 해서 인력을 더 뽑아줘야 합니다. 우리 건강이 환자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24시간을 5명이 일하라니까 힘든 거지, 7~8명 되면 좀 낫잖아요. 사실 우리도 사람이고 가정이 있고 로봇이 아닌데, 주 52시간제가 도입됐지만 (의사는 예외적이라) 주당 80~100시간은 일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노동시간) ‘취약계층’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국민을 위한 공공의료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밤 근무 선다는 것도, 어느 정도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고요.”
 
  자정이 넘어가자 한 인턴 의사가 “기자님도 고생하신다. 나는 지금 퇴근한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기자가 낮부터 봐왔던 그는 또래 의사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인턴 의사는 동료들에게 “내일(3·1절) 다행히 (오전) 10시 출근인데, 24시간 근무가 잡혔다”며 “열심히 일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의 뒷모습에서 ‘오늘 피로 다 털어냈다’는 시원함과 ‘또 하루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응급실 의료진은 주로 어떤 고충을 겪고 있을까. 강형구 응급의학과장에게 물었다.
 
  ― 최근 세상을 떠난 고 윤한덕 센터장 사례를 통해 응급실 의료진의 과로 문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랑 2~3개월에 한 번씩 회의를 같이하던 분이었죠. 제가 (윤 센터장이 있던) 응급의료평가팀 TF에 권역센터분과장으로 들어가 있어서 같이 회의하고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했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부음을) 문자로 봐서 ‘이게 무슨 일인지’ 황망했어요. 정말 뭐 마음이 아파서 말을 다 못 하겠네요. 사실 병원에 있는 의료진이 지금 노동법 이상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수가 된) 전문의마저 80시간 이상 일을 해요. 우리만 해도 (응급실은 물론) 응급병동, 응급중환자실까지 합쳐서 의료진 175명이 교대근무를 통해 24시간 일하고 있지만, 앞으로 정부 지원 등을 통해 인력적인 부분들이 더 충원돼야 합니다.”
 
 
  “의료·노동 수준은 선진국 기준, 酬價나 정부 지원은 미비”
 
  ― 정부 차원의 인력 충원이 왜 필요하다고 봅니까.
 
  “예를 들어 심근경색 환자가 오면 빨리 관상동맥조영술(Ⅹ선으로 심장혈관이 막혔는지, 좁아진 부분이 있는지 진단하기 위한 검사)을 통해서 1시간 내로 막힌 혈관을 넓혀주거나, 스텐트(stent·혈관 폐색 등을 막기 위해 혈관에 주입하는 것)를 넣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심장내과 교수님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야간에 의사는 나와서 하겠다는데, (의사를 돕는 기능사 등) 다른 직원은 못 한다는 거예요. 노동법에 걸리니까요. 만약 새벽에 그 일을 하면 아침 근무는 법적으로 못 하게 되니까, 그 스케줄로 일할 수 있는 분들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올지는 모르겠지만 ‘야간만이라도 근무할 수 있는’ (임시) 인력을 더 뽑아야 하고, 병원은 그 인건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거죠…. 응급실에서는 24시간 3교대로 하나의 업무를 하는 데만 적어도 5명이 필요해요. 의료 수준이나 노동 규약들은 선진국에 맞춰가려는데, 의료 수가(酬價)나 정부 지원은 선진국보다 낮춰가니까 그게 문제죠.”
 
  ― 진단·치료 과정에서 일부 환자의 행패로 인해 겪는 고충도 클 것 같습니다.
 
  “사실 ‘환자다운 환자’ 보면 스트레스 안 받죠. 주폭(酒暴)이 문제죠. 어제도 술 취한 사람이 간호사 허벅지 만지고. 그런 분들 고소한다고 해서 큰 처벌받는 것도 아니고 다시 병원에 와서 똑같은 짓 합니다. 인권도 보호자 권리도 중요한데, 일하다 보면 너무 강조되니까 참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 거 몇 번 겪고 나면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란 생각 드는 친구들도 많을 거예요. 특히 간호사들은 3년 정도 일하면 결국 밤샘근무 없는 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어요. 환자분들이 딸 같은 사람들 좀 이해해줘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 한양대병원은 보통 응급실에서 홀대받는다고 알려진 ‘외상환자’ ‘자살 시도 환자’ ‘중독 환자’들도, 다 전원(轉院·환자가 치료받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 받아서 기대 이상으로 많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응급치료 기능’이라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병원이기에 과장으로서 보람도 있고 뿌듯합니다.”
 
 
  ‘기록→진단→치료→처방’ 協業의료 시스템
 
많게는 230명, 하루 평균 140~150명의 환자가 몰린다는 상계백병원 응급실 내 스테이션(중앙 통제소) 모습. 의사·간호사들은 이곳에서 환자의 病勢 기록이 담긴 전산 차트를 중심으로 서로 ‘원격 소통’하면서 환자를 관리한다.
  지난 3월 4일 찾아간 인제대 상계백병원 응급실은 입구부터 환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 대기 줄인 줄 알았는데, 경증환자들이 머무르는 복도형 임시구역이었다. 응급실 내부로 들어가자 무선 마이크가 놓여 있는 원형의 중앙 통제소를 시작으로 소생실·처치실·환자분류실·집중치료실에 ABC 세 곳으로 구획된 진료구역이 있었다. 백병원 응급실은 ‘스테이션’이라 불리는 중앙 통제소의 역할이 컸다. 의사들은 그곳 모니터에 뜬 차트에다 환자 병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기록하고, 간호사들은 해당 차트를 수시로 확인하며 치료를 진행했다.
 
  ‘환자 정보 기입→진단 및 처방→치료 결과 기입→재처방’ 이런 식으로 의사·간호사들은 서로 ‘원격 소통’하면서 환자를 관리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료진이 환자에게는 가지 않고 스테이션에만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간호사가 차트를 보고 현장으로 가면, 돌아온 다른 간호사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차트를 확인하고 있는 식이었다. 빈틈없는 협동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환자 정보가 차트에 누적·기록되는 만큼, 9명의 의사와 37명의 간호사가 합심해 철저한 ‘원격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속도도 생명이었다. 자리에 놓인 수화기가 딱 한 번 울리자마자, 2명의 간호사가 거의 0.5초 간격으로 동시에 받아들 정도였다. 가히 동물적 반응이었다. 소생실에서 보호자가 환자의 이름을 애달프게 부르자, 의료진의 눈빛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그들의 각 모니터에는 기본 차트부터 CCTV 영상, 환자들의 심전도 그래프, Ⅹ선으로 찍은 폐 사진, 복부 CT 사진 등이 어지럽게 떠 있었다. 쉴 새 없이 타자 소리가 이어졌다. 전원(轉院) 문제 때문인지,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지금 환자분들 누일 자리가 없어요.” “큰일이네!” “○○번 환자 전동기록지 없다!” “지금 ○○대 병원에서 전화 왔는데, 인턴 선생님 연락이 안 돼요!” 오후 8시가 지날 때까지도 저녁밥을 먹으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人命 살리는 것, 자랑 아닌 당연한 일”
 
  많게는 230명, 하루 평균 140~150명의 환자가 몰린다는 상계백병원 응급실. 한때 전국에서 환자를 가장 많이 보는 곳으로 꼽혔고, ‘메르스 파동’ 당시 환자 집중도가 서울에서 2위에 달했지만 방역이 뚫리지 않았다는 곳. 실제 응급환자는 15~20% 정도라지만 각자 절박한 상황에서 온 환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오면 살려낸다’는 정신으로 의료진은 ‘벼랑 끝에 선 하루’를 이겨낸다고 했다. 고경수 부원장은 “의료진도 계속 과로하지 않도록 시간표를 잘 짜서 교대 근무를 하고, 병원 차원에서도 (주 52시간제 도입 영향에 따라) 인력 충원을 충분히 해놨다”고 했다. 이곳 의료진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응급실 근무에 임하고 있을까.
 
  조석진 응급의학과장은 “아까도 오버베드(포화상태)가 나서 (환자) 13명 이상 침대를 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숨차서 온 환자가 밖에 앉아 있어야 하고, 열 나는 아이가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병의 경중을 떠나서 환자 본인은 힘들어하는데, 또 (중증도) 분류로 보면 (그런 분들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니까 그럴 때마다 (병을 고치는 의사로서) 많이 안타깝다”고 했다. 조 과장은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빨리 진단해서 안정화시키고 싶은데, CT 검사 같은 다른 요인 때문에 (치료가) 지연이 될 때 다급해진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우리에게 어떤 환자가 왔고, 어떻게 대처를 해서 환자 상태가 나아졌다는 건 우리가 결코 잘해서가 아닙니다. ‘응급실 사람’들이 위독한 환자를 구했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겁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환자가 나빠져서 안타까운 결과가 나오면, 그때 우리는 다시 처절하게 반성해야 하고요.”
 
  상계백병원 응급실 간호과장은 “옛날에는 응급의학과가 (예비의사들이) 기피하는 과였는데, 요즘은 전공의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며 “‘태풍처럼 왔다가 쓰나미처럼 빠져나가’는 응급현장의 치열함이 체질에 맞아서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우리 병원은 의사·간호사 간 의사소통이 잘 되고 항상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해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추태·꼼수·비참… 記者가 겪은 응급실 百態
 
  조석진 과장의 말처럼 그들에게는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당연하고도 막중한 일이겠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기자는 지금은 작고하신 어머니가 지병을 20년간 앓아 서울의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자주 출입한 바 있기에 그 사정을 조금은 안다. 그곳의 밤낮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 ‘천태만상(千態萬象)’이었다. 일례로 일반병동과 달리 응급실은 보호자 침대가 따로 없었다. 외래진료 대기석에 앉아 잠을 자다가 돌아와 보면, 우리 쪽 보호자 의자를 가져다 두 개씩 놓고 쓰는 몰상식한 아저씨가 있었다. 어린 기자와 어머니의 항의에도 꿈쩍 않던 그는 건장한 풍채의 보안요원을 부르자 물러섰다. 진녹색 플라스틱으로 된 환자용 대변기는 수량이 얼마 없어 항상 쟁탈전을 벌여야 했고, 의료용 전자레인지에 소시지를 돌려 먹다 걸린 보호자도 나타났다. 성인 기저귀를 갈면 커튼의 벌어진 틈 사이로 음험한 눈빛들이 멈춰 섰고, 의도가 불순한 한 환자는 간호사에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애원했다. 취객의 행패는 다반사였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도 이와 비슷했다. 중증도에 따른 치료 순서를 망각한 어느 보호자는 “응급실이 왜 빨리 일을 안 하냐. 이상 있으면 책임질 거냐”고 항의했고, 취기에서 깨어난 주취자가 “왜 CT를 찍었냐. 돈 물어내라”고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 폭언을 묵묵히 들어야 했던 간호사는 밤새 주취자의 얼굴에 묻은 토사물을 닦아주던 사람이었다. “거창한 자긍심보다는 하루하루 정확하게 실수 없기를 기도하면서 내 할 일을 할 뿐”이라던 어느 간호사의 마음가짐은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게 의료진은 모든 난잡한 언행을 뚫고 꿋꿋이 치료에 임해왔다. 7년 전 응급실에서 기자와 어머니를 도와주려 한 한 20대 청년의사도 그랬다. 당시 소생실에서 겨우 고비를 넘긴 어머니가 입원해야 했는데, 잡힌 건 1박에 50만원씩 하는 특실뿐이었다. 그 의사는 “형편이 어려운 환자가 6인실 여분이 버젓이 있는데도 왜 특실로 가야 하냐”며 원무과 측에 따져 묻기까지 했다.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 의분(義憤) 어린 목소리를 기자는 아직도 감사히 기억하고 있다.
 
 
  “일단, 살리고 봐야겠다”
 
상계백병원 응급의학과 4년 차 레지던트 박주형씨는 “‘환자가 우리 병원에 와서 살았다’ ‘내가 힘들지만 이 환자가 여기 들어와서 살았다’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내원한 환자 모두 극한의 고통을 느끼고 있겠지만, 응급실에서 치료가 가장 급한 환자는 누구일까. 의료진은 주로 ▲급성 뇌경색·심근경색 ▲교통사고 등에 의한 중증외상 ▲알레르기 ▲경련 환자들을 꼽았다. 한 의료진은 “뇌경색·심근경색은 ‘골든타임’이라고 해서 증상 발생 시 얼마나 빨리 응급실에 도착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병력이 없던 환자가 갑자기 (급성 심근경색으로) 가슴을 쥐어짜면서 걸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1시간 내로 혈관 조영술과 스텐트 삽입으로 처치하지 않으면 급사(急死)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의료진은 “환자들이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 유무(有無)를 모르고 먹다가 기도가 부어서 오는 경우가 있다. 이것 역시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산소 공급이 차단돼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상계백병원 응급의학과 4년 차 레지던트 박주형씨의 말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우리 병원에 오시면 살려드려요…. 우리 모든 의료진은 그 마음 하나로 여기 있는 겁니다. 우리 병원을 많이 믿어서 119대원들도 환자를 많이 이송해와요. 저도 연차가 낮을 때는 그게 가끔 원망스러운 적이 있었어요. 솔직히 짜증도 났고요. 그때는 전공의 수가 부족해서 3~5명이서 일해냈거든요. 환자 수는 지금과 똑같았고요. 이미 중증환자가 너무 많아서 다 치료하기도 벅찬데, (구급차로 이송된 환자가) 더 들어오게 되면 자리도 없고 짜증이 너무 나거든요. 그때의 짜증은 환자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대한 것이었죠. 그렇게 3년 차, 4년 차가 되면서 생각해보니까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 병원을 믿기 때문에 (환자들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사실 감사한 거잖아요. ‘환자가 우리 병원에 와서 살았다’ ‘내가 힘들지만 이 환자가 여기 들어와서 살았다’란 생각으로 버티는 거죠. ‘그래도 살았구나’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젊은 의사는 목이 멘 듯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응급실을 나오며 뒤돌아본 핏빛 구급등(救急燈)이 그의 붉어진 눈시울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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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철살인    (2019-04-06)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이런 게 진짜 기사다.
일간지, 주간지가 갖는 지면 분량의 제한이라는 약점을 뛰넘는 게 월간지다.

신승민 기자의 기사는 월간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사실 확인도 불투명한 카더라식 북한 기사보다, 아무 의미 없는 우라까이 기사보다 이런 기사가 수십, 수만 배 가치 있다.

월간조선 기자 일동은 신승민 기자를 보고 배워라.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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