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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민 기자의 체험기

‘피·땀·눈물’ 별별 아르바이트의 세계

알바, “어디까지 해봤니?”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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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회장 서빙, 전단 살포, 주차 안내원, 공사장 인부, 김장철 배추 장사까지
⊙ ‘돈도 폼도 제법’ 인기 많은 건 진행요원… 대행·방청객 업종은 눈치 빨라야
⊙ 용돈·등록금 마련 나선 대학생부터 스타트업 창업자,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까지 알바생도 다양
⊙ 세상에 공짜는 없어… 힘든 만큼 깨닫는 것도 많아
2017년 7월 1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의 한 상점에 알바 직원을 구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조선DB
  “인형 탈, 택배 상하차, 주차요원…”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이 지난 6월 여름철 최고·최악 아르바이트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아르바이트생(이하 ‘알바’ ‘알바생’) 14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인형 탈 알바’가 최악의 알바(29.8%)로 꼽혔다. 2위는 택배 상하차(20.3%), 3위는 주차관리(19.9%), 4위는 빌딩 청소(14.1%) 순이었다.
 
  알바의 세계는 다양하다. 등짐을 지고 고층을 오르내려야 하는 고된 일부터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을 주는 신기한 일까지 있다. 분명한 건 ‘공짜는 없다’는 사실이다. 일하는 시간이 적고 보수가 많으면 노동 강도가 세고, 일도 편한데 시간마저 짧으면 보수가 적다. 기자가 여러 직종을 체험해 본바, 돈 많이 주고 일까지 편한 알바는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어도’ 확실히 드물다. 어떤 일도 정식 직장 못지않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용돈 벌이로 시작해 가정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현장. 기자가 과거 경험한 별별 알바의 세상은 ‘피·땀·눈물’이었다.
 
 
  1. 당당하고 의연하게!
  서빙·판촉 알바
 
2014년 8월 26일 서울 이마트 영등포점에서 알바생들이 택배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조선DB
  서빙과 판촉은 가장 무난한 알바다. 일감이 많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노동 강도도 큰 힘을 요구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어떤 상황에도 개의치 않는 태연함이다.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무릅써야 한다. 주점·식당·연회장 홀 서빙, 전단 살포와 현장 모객(募客)이 대표적이다. 기억 나는 일화가 있다. 첫째, 서울 강남의 모 웨딩홀 서빙이다. 기자는 처음 뷔페식의 피로연을 생각해서 요리 보충이나 하는 정도의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난감하게도 서양식 코스요리였다. 사전에 수십 명의 알바생이 동선과 경로를 정했다. 자기가 맡은 구간만 잘 처리하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소용없었다. 하객들이 모여들자 질서가 흐트러졌다. 홀 자체가 넓고 아이들이 뛰어다녀 복잡한데다, 식사 속도에 따라 손님들이 주문하는 메뉴도 각자 달랐다. 메인요리를 나르는데 디저트를 먼저 달라고 하는 분부터, 코스가 끝나 가는데 식전 빵과 와인을 보충해 달라고 독촉하는 분, 피로연장에 ‘소맥’을 왜 팔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분까지 있었다. 각자 맡은 구간이 다른데도, 직원만 보면 엉뚱한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문한 요리를 가져왔는데 이미 자리를 이동해 다른 사람들과 술판을 벌인 손님도 있었다. 심지어 기자에게 손짓을 하며 본인과 본인 딸에게 와인을 따라보라고 시키는 하객까지 있었다. 그러고선 느닷없이 본인 딸의 미모를 예찬하면서 가족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는 대학가에서 전단을 나눠줄 때다. 대부분의 알바생이 하고 있는 일이지만 그 어떤 일보다도 민망하게 느껴졌다. 의기소침하게 내밀면 아무도 안 받아준다. 팁이 있다. 먼저 전단에 적힌 가게 또는 행사에 오라고 구호를 크게 외친다. 행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는 길목에 서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문득 쳐다볼 때 순식간에 전단을 쥐여준다. 얼떨결에 받은 사람들은 전단을 훑어보며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친구·동료·애인과 함께 있는 행인들을 주시하는 것도 팁이다. 서로 지켜보는 눈이 많으면 전단도 무시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렇게 2시간 정도 하고 나면 나름 자신감이 붙는다.
 
  세 번째는 배추 장사다. 겨울 김장철에 배추를 트럭으로 떼어 오는 도매상과 함께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았다. 장갑을 주긴 하는데 핫팩이 따로 없어서 쉬는 시간에도 천막 아래서 몸을 떨었다. 배추도 의외로 무겁다. 3포기짜리 망 수백 개를 들고 나르면 허리가 뻐근하다. 어머님들의 억척스런 흥정 공세를 잘 받아내는 것도 실력이다. 마음이 약해 주저하다 보면 장사만 손해다. 당황하지 않고 역제안을 펼쳐 ‘윈윈(Win-Win)’ 거래를 하는 게 중요하다.
 
 
  2. “기다림의 역설”
  주차요원 알바
 
  상기한 설문 결과처럼 여름에 하기는 여러모로 불편한 알바다. 야외·지하 주차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더위나 장마철이면 하루만 일해도 피곤하다. 기자는 과거 서울 중심가 모델하우스에서 주차요원으로 몇 주 동안 일했다. 들고 나르는 일도 적어 웬일인지 쉬워 보였다. 한두 시간 정도 차량을 안내하고 주차장 빈 공간을 체크하다 보면 쉬는 시간 30분을 준다. 이 작업을 서너 번 반복하면 하루가 간다. 문제는 차량이 안 올 때다. 2시간을 그냥 서 있어야 한다. 대부분 편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은근히 고역이다. 감히 농땡이는 칠 수 없고, 가만히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하품이 절로 나온다. 그럴 때면 차라리 차량이 많은 게 낫다. 정신없이 일해야 시간도 잘 간다.
 
  활동 공간이 실내가 아니기 때문에, 지하면 답답하고 야외면 더운 게 단점이다. 그늘 아래 있어도 땡볕이면 땀이 비 오듯 한다. 부채질도 못하고 부채도 없다. 장대비가 내리면 우산 들고 우비 써도 옷이 다 젖는다. 차량 매연과 차주들의 담배 연기는 덤이다. 그래도 모델하우스로 찾아오는 차주들이 알바생들의 전단과 사은품 휴대용 휴지를 성의껏 받아주면 힘이 난다. 가끔 정중한 요청에도 무시하고 주차장으로 내달리는 ‘진상’ 차주들도 있다. “조경 문제로 전방주차 부탁드린다”고 말했는데도 뒤죽박죽 후방주차를 해놓는 차주들도 있다. 당당하게 들어와 장애인 주차 공간에 차를 대는 꼴불견 외제차도 있다. 경광봉을 휘둘러서 ‘만차(滿車)’ 상황을 표시해도, 끝내 들어와 빈 곳을 탐색하고는 쏜살같이 나가버리는 차량도 부지기수다.
 
  기자가 한창 일할 때는 태풍이 불고 있었는데 주차장 안내판이 수시로 쓰러져 고쳐야 했다. 대형 배너의 경우 직사각형 물통에 장대를 꽂아서 만든다. 물통을 들고 오다 엎어지면 흘린 물을 도로 채워야 한다. 큰 힘은 들지 않아도 약간씩 신경 써야 할 일이 조금 많은 알바다.
 
 
  3. “복불복 진기명기”
  진행요원 알바
 
2017년 9월 22일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서 알바생이 진열대의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행사 전후 과정을 돕거나 문지기 역할을 한다. 탁상·의자·비품 운반, 포스터 부착, 사은품 증정, 참석자 인솔, MC 보조, 배너 설치 및 천막 철수 등 여러 역할을 한다. 주로 지역은 서울에선 종로·강남·여의도 쪽이고, 장소는 코엑스·명문대·유명 호텔이다.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는 알바다. 양복 차림으로 고위급 행사장에 투입될 때면 약간 폼도 난다. 보수도 비교적 좋다. 행사 성격이 가지각색이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른바 ‘간접 공부’다. 여러 출신의 동료들과 교분을 쌓기도 좋다. 실내 근무라 고되지도 않다. 그만큼 구하기 힘들다. 알바 사이트에 공고가 뜨면 보통 1시간 안에 구인이 끝날 정도다.
 
  기자는 학회·축제·부동산·시상식·기업설명회·취업박람회 등 여러 성격의 행사에서 진행요원으로 근무했다. 업무는 대부분 비슷하다. 무엇보다 참석자들의 심기와 편의를 살피는 게 주된 일이다. 일례로 사은품을 2개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거절하지 말고 상사에게 보고 후 허락 여하에 따라 정중히 말씀드린다. 어떤 행사인지 내용과 식순을 설명해 주고 식사 시간, 종료 시간 등을 안내해 준다. 친절은 필수다.
 
  물론 진행요원에도 복불복(福不福)이 있다. 모든 행사가 다 편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 소재 유명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이었는데, 가수 등장 전 막간을 이용한 마술쇼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대 양옆으로 불꽃이 솟고 그 가운데 마술사가 미녀가 들어간 철제 상자에 칼을 꽂는 장면이었다. 네 명의 진행요원이 그 철제 상자를 가마처럼 들고 가야 했다. 상자 자체는 무겁지 않았다. 문제는 상자 겉에 쇠사슬을 여러 번 감아서 육중해졌다는 점이다. 미녀도 그 안에 미리 숨어 있었다. 쇠사슬을 걸고 사람을 태운 상자를 순식간에 계단으로 들고 나르자니 막막했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마술은 끝이었는데 순간의 협동심으로 무사히 운반했다.
 
  한번은 의학계열 학회 발표회장에서 듀얼 모니터 조종을 하다가 프레젠테이션이 오작동을 일으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발표자는 젊은 신입 연구원, 참석자들은 원로 의사·교수 신분이었다. 발표자가 엄숙하게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데 중요 대목에서 화면의 그래프가 움직이질 않았다. 당황한 발표자가 맨 뒷좌석에서 기계를 황급히 만지는 기자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그때 함께 뒤돌아본 수십 명 의사의 싸늘한 눈총을 잊을 수 없다.
 
  기자가 만나본 진행요원 알바생들은 출신이 다양했다. 한 수의대 학생은 새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겨울날 유명 IT 기업 행사장 옥상에서 집기를 운반하고 낙엽을 쓸었다. 부동산 관련 행사장에 전선을 깔던 동료 알바생은 액세서리 스타트업 창업자였다. 아직 수익이 나지 않아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알바를 하러 왔다고 했다. 고려대 취업설명회장에서 만난 한 알바생은 서른 살이 넘은 애널리스트였다. 대기업 증권사를 다니다 얼마 전 퇴사를 하고 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전도유망한 증권사를 왜 나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업무에 지쳐서 그렇다”고 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그날의 실적을 전광판에 띄워 놓고 압박하던 업무 시스템이 괴로웠다고 했다.
 
 
  4. “정신력! 젖 먹던 힘까지”
  운반·공사장 알바
 
2017년 4월 26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한 알바생이 인형 탈을 쓴 채 일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일감으로는 구하기 쉽지만 가장 힘든 알바다. 말 그대로 육체노동이다. 장기로는 지방 공사 현장이나 조선(造船) 현장 보조, 단기로는 택배 상하차가 대표적이다. 끈기와 경력이 쌓이면 대접의 수준도 올라가지만 이제 갓 등짐을 져본 알바생들에게 고액을 주는 곳은 드물다. 고된 만큼 다이어트(?)로는 제격이다. 한번은 ‘가벼운 집기 운반’이라는 말만 듣고 모델하우스 공사 현장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아파트 내부의 옵션 물품들을 들고 나르는 일이었다. 문제는 몇 번 들기에는 가볍지만, 몇 시간 동안 짐을 지고 3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중노동이라는 사실이었다. 침구류도 누구나 한 번 들기는 가볍다. 반복이 무서운 법이다. 때는 여름철, 땀에 젖은 알바생들이 헐떡이며 음료수를 몇 통씩 비워낸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체격이 좋은 기자에게 혼자 싱글침대를 들고 3층까지 가라는 지시도 있었다. 호기롭게 들어보니 무게가 애매했다. 품에 안았다가 머리에 이고 다시 등에 진 채 3층 현장으로 올라갔다. 계단에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중량은 마음만 먹으면 들고도 남았지만, 부피가 워낙 커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무게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내려놓고 오니 TV를 받치는 대리석 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로 길이 2m, 두께 3~4cm로 기억하는데 우습게 봤다가 발등이 찍힐 뻔했다. 돌이라 그런지 매우 무거웠다. 한 사람이 앞쪽에 붙어서 끙끙거리며 겨우 옮겼다. 그렇게 비품 트럭 여섯 대를 보내고 난 후 티셔츠를 쥐어짜니 땀이 흘렀다.
 
  서울 강동구의 모 창고로 기억한다. 그때도 여름이었다. 대형트럭에서 여행용 가방을 지하 1층으로 옮기는 작업인데 느낌상 개당 6~7kg 수준이었다. 성인 몸 크기의 박스로 크게 포장돼 있어서 제대로 들기가 애매했다. 그런 가방 수백 개를 계속 나르는 일이었다. 처음 몇십 개는 쉬웠다. 계단도 짧아서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뛰어 올라가 가방을 받았다. 문제는 역시 반복이었다. 2시간을 지속하자 숨이 막혔다.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 빼곡하게 쌓인 박스를 빼는 것도 고역이었다. 공기가 잘 안 통하는 곳에서 꽉 낀 박스들을 안간힘으로 빼야 했다. 그때 함께 일한 환갑의 고참 어르신이 “요즘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해서 걱정”이라고 탄식한 게 기억난다.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땀 흘리던 그분이 존경스러웠다.
 
  코엑스 홀 철거 현장에도 있었다. 포클레인과 불도저가 코엑스 전시홀로 들어와 부스를 뜯어낸 뒤 나머지 비품을 운반하는 일이었다. 각종 비품을 쌓아 한번에 옮기기 위해 손수레를 주는데 경우에 따라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원에 맞게 지급되는 것도 아니고, 온갖 쓰레기로 넘쳐나는 현장이 혼란스러워 수레를 잃어버리는 알바생이 많기 때문이다. 거대 유리판과 철제 물품들을 여기저기 들고 나르는 위험한 일이다 보니,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일도 봤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마초적인(?) 알바다.
 
  압권은 서울 모처의 한 지하공사장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구린내가 진동했다. 따로 화장실이 없고 위로 나오기에는 일정이 바빠, 인부들이 급한 대로 한곳에 용변을 본 듯했다. 고참은 “엊그제 철거를 마쳤으니 신참들은 간단히 폐기물만 운반하라”고 지시했다. 콘크리트 조각, 부러진 각목 더미, 쇠못, 막걸리병, 오물 등이 쌓여 있었다. 마대에 한가득 담아보니 돌무더기라 무게가 꽤 나갔다. 지고 끌고 지상으로 올라간 뒤, 용달차에 싣고 내려오길 몇 번 반복했다. 오전도 가기 전에 힘이 쫙 빠졌다.
 
  쓰레기를 퍼낼 때마다 매캐한 먼지가 코를 막았다. 꽤 무게가 나가는 길쭉한 합판과 일명 ‘파레트’(Pallet, 목재 화물 운반대)도 들고 날랐다. 각목에서 못을 빼고 따로 모아서 정리했다. 한 동료 알바생은 각목을 밟다 무릎 부위가 못에 긁혀 피가 나기도 했다. 그가 만일 세게 밟았더라면, 못이 무릎에 박혀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며칠을 하다 보니 씻어도 몸에서 구린내가 가시질 않아 난감했다. 뼈아프게 경험한 삶의 현장이었다.
 
 
  5. “섭외와 시간 배분 관건”
  대행·방청객 알바
 
1990년대 배추 장사 풍경. 기자도 과거 겨울 김장철에 배추를 트럭으로 떼어 오는 도매상과 함께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아본 적이 있다. 사진=조선DB
  쉽게 봐서는 안 될 알바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전략이 없으면 애매하게 시간만 날릴 수 있다. 급여는 일당·주급·월급 개념이 아닌 시급(출연료)이다. 시간과 장소를 고려, 일감을 어떻게 배분해서 이동하느냐가 관건이다. 섭외력도 중요하다. 방청객의 경우 스케줄에 따라 시간을 선택, 하루에 몰아서 돌아다니면 웬만한 직장인 일당을 거머쥘 수도 있다. 방송 선정도 중요하다. 음악 프로그램은 호응, 토론 프로그램은 집중, 예능 프로그램은 박수와 추임새가 중요하다.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 방송을 선택하면 피곤하다.
 
  언젠가 한 종교와 관련된 방송에서 방청객으로 일해본 적이 있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한 종교인의 강연을 몇 시간 동안 들었다. 강연자가 중간에 NG를 많이 내서 되풀이하는 내용이 많았다. 쏟아지는 졸음을 그렇게 참아본 적이 없다. 카메라가 돌고 있기 때문에 하품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를 악물고 다리를 꼬집어 가며 집중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업계의 고수는 어머님들이다. 그 어떤 방송에 출연해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모두가 착석하면 고참으로 보이는 어머니가 스태프와 협의 후 알바생들에게 주요 사항을 안내한다. 졸거나 딴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매섭게 지적한다. 군기를 몇 차례 잡고 녹화에 돌입하면 모두가 명료한 정신으로 방송을 경청하게 된다.
 
  인력 대행의 경우 주로 막 개업한 음식점에 투입된다. 업주들이 매장 광고 영상을 찍기 위해 손님으로 데려다 놓는 일종의 ‘엑스트라’다. 편안하게 음식도 먹고 돈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복병이 있다. 감독이 지목한 사람은 연기를 해야 한다. 연기를 잘하면 돈도 음식도 더 준다. 물론 적성에 맞아야 한다. 처음 본 남녀가 연인처럼 행동해야 하고, 서로 입에 음식도 넣어주고, 혼자서 촬영에 응한다고 해도 준비한 멘트를 자연스럽게 구사해야 한다.
 
  기자에게도 몇 번 제의가 왔지만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의 모 치킨집으로 기억한다. 한 알바생과 마주 앉아서 닭을 뜯는 연기를 했다. 카메라가 다가와 “지금 뭘 먹고 있냐”고 사전에 설정된 질문을 건넸다. 과장하면 어색하고 위축되면 재미가 없었다. 미리 외운 답변과 추임새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무사히 한 컷을 넘겼다.
 
  사실 대행·방청객 알바는 서빙·판촉 알바보다도 배짱이 두둑해야 한다. 결혼식 하객 대행의 경우 처음 본 사람(신랑 또는 신부 측)과도 오래 사귄 지인처럼 얘기하면서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일면 흥미롭다가도 낯설고 쑥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알바가 그렇듯, 고되지만 괴롭지는 않다. 서글픈 일이 아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본인이 피땀 흘려 번 돈은 귀하고 함부로 쓰기 어렵다.
 
  일확천금의 이면은 패가망신이다. 기자는 여러 종류의 알바로 사회를 먼저 배웠다. 그때 ‘세상에 부끄러운 직업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부끄러운 건 일하지 않고 얻으려 하는 우리의 ‘오만과 욕심’일 것이다. 오늘도 알바는 바쁘고 세상은 돌아간다. 일하는 것에 감사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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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jl    (2018-08-01)     수정   삭제 찬성 : 6   반대 : 4
쓰신 글 멋집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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