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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기념사업 왜 표류하나?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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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前) 기념사업회 관계자 등, “이인수 박사가 기념사업을 ‘패밀리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듯”
⊙ “유족들 명의로 되어 있어야 아버지(이승만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려는 권력자들로부터
    이화장 지킬 수 있다”(이인수 박사)
이승만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인사를 하는 양자 이인수 박사.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국민들로부터 잊힌 존재였다. 4・19로 하야(下野)한 후, 역대 정권들은 그를 부인하거나 멀리해 왔다. 국민들은 그를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4・19로 쫓겨난 독재자’ 정도로만 기억했다. 지식인 사회에서 좌파가 득세하고 이른바 386세대가 각 분야의 중심이 되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갈수록 심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재평가하는 노력이 자생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사는 1995년 ‘이승만과 나라세우기’전(展)을 개최했다. 유영익 전 한림대 교수, 손세일 전 국회의원 등은 이승만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신철식),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건국이념보급회(사무총장 김효선),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 뉴데일리 부설 이승만연구소 등이 만들어져 이승만 알리기에 나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養子)인 이인수(李仁洙) 박사는 1988년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私邸)였던 이화장(梨花莊)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책들도 여럿 나왔다.
 
  여기까지였다. 그다음에는 영 탄력이 붙지 않았다. 지금도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일과 기일(忌日)에 고인(故人)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한 달에 한 번 서울 정동감리교회에서 이승만포럼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그 이상의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개방됐던 이화장은 2011년 수해를 입은 후 공개를 중단했다. 그러는 사이에 불미스러운 얘기들이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이인수 박사가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사유화(私有化)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기념사업 단체들과의 불화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계했던 A씨는 “이인수 박사가 기념사업회를 ‘패밀리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수 박사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한 아들은 고시공부를 오래 하다가 실패했고, 다른 아들은 사업을 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때문에 이 박사 부부는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아들들에게 물려줘서 먹고살 수 있게 해주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화장을 꽉 붙들고 놓지 않고 있는 거죠. 오래전에 기념사업회의 모(某) 이사가 이인수 박사 부부에게 ‘이사들이 돈을 모아서 강남에 아파트를 하나 구해드릴 테니, 이화장을 공공(公共)의 재산으로 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가, 이 박사 부부와 사이가 나빠진 적도 있어요.”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들이 너무 전면에 나서서 일을 진행하려 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기념사업을 돕겠다고 나섰던 사람들 중에서 이인수 박사와 거리가 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진 전 국회의원은 기념사업회장을 맡았을 때,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단체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자발적 에너지를 가지고 기념사업을 추진해 보려 애를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체와 이인수 박사 간의 골이 메워지지 않아서 진척을 보지 못했어요.”
 
 
  “이화장 지키라는 것이 프란체스카 여사 뜻”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 내외와 프란체스카 여사.
  이인수 박사에게 “박사님 내외분이 기념사업을 ‘패밀리 비즈니스’로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박사는 “같이 일하다가 나가서 별소리 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일이 다 그러려니 하면서 산다”면서 “우리는 부끄러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아드님들이 기념사업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인수 박사는 “손자로서 응당 생각을 갖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말을 돌렸다.
 
  “이화장을 공공재단 소유로 해놓고, 이화장 내에 작은 전시관이라도 마련해 놓으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인수 박사 부부는 “이화장을 지키라는 것이 어머니(프란체스카 여사)의 뜻”이라고 말했다.
 
  “1992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화장은 나와 어머니가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상속을 포기했어요. 어머니께서 당신의 지분을 손자들 이름으로 물려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화장은 나와 아들들 명의로 되어 있어요.”
 
  부인 조혜자 여사는 “어머니는 유족들 명의로 되어 있어야 이화장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4・19 이후의 경험이 작용한 듯했다. 이인수 박사의 말이다.
 
  “원래 경무대(청와대)에 있던 물품 대부분은 국가 소유가 아니었어요.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이라 비품들을 나랏돈으로 마련할 수가 없었던 거죠. 아버지 생신 때 선물로 들어온 것들로 경무대를 꾸몄어요. 4・19 후에 아버지는 경무대에 있던 물품들을 두고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비서들이 ‘물건에 각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걸 놔두고 가면 후임자가 좋아하겠느냐’고 해서 할 수 없이 가지고 나왔어요. 그리고 그걸 정리할 틈도 없이 하와이로 떠나셨죠. 허정 과도내각 수반은 그것들을 모두 이화장 창고에 넣고 봉한 후, 열쇠를 경찰서에 맡겼어요. 아버지의 물건들을 잘 보존하려는 생각에서였죠.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한 후, ‘경무대가 왜 이렇게 썰렁하냐’면서 비서 김모씨를 보내서 이화장에 보관하고 있던 물건들을 다 경무대로 가져오게 했어요. 이화장을 지키던 황규면 비서가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때 경무대로 간 물건들은 결국 세월이 지나면서 유실(流失)되어 버렸어요. 일부는 윤 전 대통령의 안국동 사저로 갔다고 하기도 하고, 일부는 인사동 골동품상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고….”
 
  이인수 박사는 “유족들 명의로 되어 있어야 아버지(이승만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려는 권력자들로부터 이화장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부터 이인수 박사 부부를 만날 때마다 들은 얘기지만, 이인수 박사는 과거 권력자들에 대해 맺힌 게 많은 듯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를 만든 후에도 1970년까지 번듯한 묘비를 세우지 못했던 일, 1998년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라고 쓴 묘비를 세우려 했지만, 김대중 정권이 그 비석 대신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라는 묘석을 세웠던 일 등….
 
 
  “유족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으면…”
 
공사 중인 이화장의 모습. 2011년 수재로 위쪽 담장이 무너지면서 조각당, 본채 등이 침수됐었다.
  이화장은 2011년 수해 때 피해를 입었다. 본관과 조각당(組閣堂) 등이 침수되어 그곳에 전시하고 있던 유품들이 상했다. 이후 유품들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내졌다. 이화장은 문화재청에서 예산을 받아 종로구청에서 복구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매년 조금씩 나오는 바람에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인수 박사는 “복구공사가 마무리되고 유품이 돌아오면, 이화장 내에 작은 상설전시관이라도 꾸며서 ‘이곳이 대한민국 건국의 산실’이었음을 알리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조심스러워했다. 행여 이런 이야기가 나가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생적으로 발생해 이어져 온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 및 추모사업에 찬물을 끼얹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B씨는 “이인수 박사는 지난 50여 년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올바로 알리려고 애써 온 분으로 그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족들이 대승적 견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힘을 바탕으로 기념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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