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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제독의 Periscope(잠망경) 〈3〉 ‘세월호·잠수함 충돌설’을 반박한다

맹골수로에서 잠수함 항해는 ‘자살 행위’ … 잠수함 충돌 주장은 궤변

글 : 유영식  전 예비역 해군 준장

정리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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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 이후 천안함 격침 때와 비슷한 유형의 음모론 쏟아져
⊙ “사고 직후 나타났다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물체는 잠수함일 가능성 커”(‘세월X’ 제작자 자로)
⊙ 맹골수로는 잠수함 항해에 치명적인 악조건 다 갖춰
⊙ 세월호 사고 해역의 잠수함 사고 및 해군의 잠수함 구조·인양·예인·수리 사실 없어

유영식
1962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39기로 졸업했다. 35년9개월간의 군 생활 가운데 17년간을 해군본부와 국방부 대변인실 등에서 정훈장교로 일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해군 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며, 최장수 해군공보과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해군 준장으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장(해군 대변인)을 지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인터넷에서는 ‘잠수함충돌설’ 등 괴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DB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뒤 미국은 전쟁을 개시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 ‘음모론’이 파고들었다. “9·11 테러는 개전 명분을 만들기 위한 미국 정부 자작극”이란 내용이었다. 2010년 3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격침됐을 때도 이와 비슷한 음모론이 제기됐다. “천안함이 암초에 부딪쳐 좌초했다” “미군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았다” “선체가 오래돼 ‘피로파괴’된 것이다” 등의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난무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천안함은 1988년 해군에서 인수해 22년(내구연한 25년)간 운용한 함정이다. 최근 5년간 69주에 걸쳐 총 14회 정비를 시행해 평균 선체 부식률은 3.22%였다. 즉 함정의 상태는 ‘피로파괴’가 발생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양호했다.
 
  천안함은 격침 당시인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15분쯤 백령도 서남방 해역(海域·수심 46m)을 지나고 있었다. 이곳은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해 있는 작전지역이었지만 이상 징후는 없었다. 그동안 천안함이 15번이나 기동했던 곳으로 암초도 없어 큰 무리 없이 정상 항로를 유지하며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국제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무력 도발의 결정적 물증인 북한제 어뢰 추진체가 발견됐다. 국제 합동조사단은 같은 해 5월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 30%가량은 이를 믿지 않았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은 2010년 4월 “천안함 침몰은 좌초 때문인데도 정부와 군이 북한 어뢰 공격인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는 글을 온라인상에 올렸다.
 
  인천중학교 1학년 재학 시절 ‘폭발 연구’에 전념했다는 알파잠수기술 대표 이종인씨 역시 ‘좌초설’을 주장했다.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폭발에 대해 객관적인 관련 경력과 지식이 검증되지 않은 이씨의 주장 탓에 ‘천안함 좌초설’은 한동안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됐다. 이씨는 4년 뒤 세월호 침몰 사고 때는 자신이 제작한 ‘다이빙벨’의 효능을 자신하다가 ‘잠수 시연’만 한 뒤 철수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이후 이에 대해 천안함 때와 비슷한 음모론이 제기됐다. 그중 대표적인 게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됐다” “학생들을 구조하려 했던 통영함(만재톤수 4700t, 수상함 구조함) 출동을 저지한 세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혹은 2016년 12월 ‘네티즌 수사대’를 자처하는 일명 ‘자로’란 이가 유튜브에 올린 ‘세월X’란 동영상을 통해 재확산됐다.
 
 
  ‘세월X’로 인해 또다시 부상한 ‘세월호 음모론’
 
  ‘세월X’의 핵심 주장은 세월호 사고 원인 중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을 배제할 수 없으며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잠수함과의 충돌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라는 것이다.
 
  ‘자로’는 동영상 공개 후 글을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아직 단 한 번도 괴물체가 잠수함이라고 단정한 적이 없다〉며 〈사고 직후 나타났다가 약 10분 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물체는 상식적으로 잠수함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뿐이다〉라고 강변했다.
 
  ‘자로’가 관련 자문을 구한 김관묵 이화여자대학교 나노과학부 교수는 “(세월호 사고) 당시 큰 파도도 없었고, 바람도 그렇고 고래라고 해도 그렇게 큰 피해를 줄 수는 없다”면서 “잠수함이 아니라고 하면 ‘외계 생명체’인데 그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동영상 공개 후 ‘잠수함 충돌설’이 확산되자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자로의 주장 대로라면 세월호와 충돌한 잠수함 잔해도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로는 2016년 1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했다면 잠수함도 남아나질 않는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오랫동안 잠수함 관련 업무를 해 오신 분께서 ‘세월X’를 보시고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직접 남긴 글을 소개합니다〉란 글과 함께 링크를 올렸다. 자신의 ‘잠수함 충돌설’의 논거로 해당 글의 일독을 권했다는 얘기다.
 
  ‘오늘의 유머’에 게재된 해당 글은 ‘잠수함 관련 업무를 오래 해 온 현직자’라고 밝힌 인물이 〈압력 선체는 웬만한 미사일을 맞아도 찢어지지 않고 그저 찌그러질 뿐〉이라며 〈세월호와 정면 충돌을 했다 하더라도 잠수함의 침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잠수함이 미사일을 맞더라도 찌그러지기만 할 정도로 강도가 높다면 잠수함 파괴용인 ‘대잠 어뢰’는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한 이들의 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얘기다.
 
 
  사고 발생 해역은 잠수함 항행 불가 지역
 
한국 해군이 운용 중인 214급 잠수함. 맹골수로는 잠수함이 항해할 수 없는 해역이다.
  필자는 세월호 사고 당시 해군 공보실장으로 2014년 4월 17일~5월 9일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초기 구조와 수색 작전 지휘부에 참가하며 언론 질의에 답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명명백백하게 사실 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세월호 침몰 원인과 인명 구조 방치에 대한 의구심을 방치하는 건 세월호 사망자 유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했다는 주장은 2014년에도 있었다. 세월호 구조작전 지원본부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많은 기자들이 ‘잠수할 충돌설’에 대해 문의했고, 그때마다 사실 관계를 설명했다.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그 시각에 진도 맹골수로를 항해한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은 없었다. 단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했을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된다.
 
  모든 잠수함은 항해 공역이 확인된 안전한 곳으로만 항해한다. 일정 규모의 작전 공간과 안정된 수심이 있어야 잠수함이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잠수함 함장이라도 작전 가능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해역을 항해할 수는 없다.
 
  우리 군은 209급 잠수함(1300t) 9척, 214급 6척(1800t) 등 잠수함 15척을 운용하고 있다. 주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도 잠수함을 운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우리 해역이나 공해상에서 작전 활동을 한다고 판단되지만, 맹골수로는 잠수함 항행 가능 해역이 아니다. 우리 군보다 규모 면에서 월등히 큰 주변국 잠수함은 물론 북한의 잠수정도 이곳에서 항해할 수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진도 맹골수로는 조류가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수중에서 저속으로 움직이는 잠수함은 조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센 조류는 잠수함 기동에 치명적인 악조건이다. 전시라고 해도 잠수함이 항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얘기할 수 있다.
 
  맹골수로는 수심이 낮다. 평균 수심이 37m에 불과하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도 50m에 불과하다. 해저 굴곡도 심하다. 잠수함이 항해할 때 확보해야 할 안전수심이 최소 50m인 점을 감안하면 맹골수로에서 잠수함이 작전 활동을 한다는 건 ‘자살 행위’인 셈이다.
 
 
  ‘레이더 괴물체’ 주장은 잠수함을 모르는 사람들의 궤변
 
  맹골수로는 다수의 상선·어선이 지나는 곳이다. 수상함보다 속력이 느린 잠수함이 최소 안전수심조차 확보되지 않은 항로로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항해한다고 해도 육안으로도 잠수함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낮은 곳이다. 이에 따르면 맹골수로는 은밀하게 기동해야 하는 잠수함 특성상 가장 피해야 할 해역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잠수함 충돌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주변에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괴물체’가 있었다면서 레이더 영상을 내세운다. “세월호 1/6 크기의 물체가 세월호가 지나간 자리에 나타났으며 이를 기존의 주장들처럼 ‘컨테이너’로 보기에는 크기가 너무 크다”고 얘기한다. 수중항해를 하는 잠수함은 탐지·식별이 어려운 ‘비대칭 전력’이다. 레이더에 잡히지도 않는다. 잠수함을 탐지·식별·추적할 수 있는 장비는 수중음파탐지기(소나, Sound Navigation And Ranging)인데 이마저도 완벽하게 잠수함을 잡아내지 못한다.
 
  잠수함이 수면으로 떠올라 항해하면 레이더에 잡히긴 하지만, 선체 특성상 물 위로 노출되는 부분은 함교탑과 선체 일부뿐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레이더에 잡힌 ‘괴물체’의 레이더 반사면적(Radar Cross Section)을 근거로 그 규모를 추정하고 이를 잠수함이라고 주장하는 건 잠수함과 레이더와 관련해 기초지식조차 없다는 걸 드러내는 것과 같다.
 
  만약 잠수함과 화물을 적재한 세월호(6800t)가 충돌했다면 잠수함(1200t 또는 1800t)은 산산조각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파괴까진 아니더라도 심한 손상을 입고 침몰했을 것이다. 해군이 잠수함 구조 작전을 하고, 해당 선체를 수리했을 테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자로 등이 주장하는 세월호 주변의 ‘괴물체’는 급변침 당시 쏟아진 세월호 적재 컨테이너 박스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에 대해 수면을 떠다니는 컨테이너 박스의 경우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해군 함정이 작전이나 항해를 할 때 냉장고 같은 소형 부유물이 레이더에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적들이 레이더에 나타나면 해군은 고속정을 출동시켜 육안으로 확인하고 있다.
 
 
  해군, 세월호 사고 직후 시운전 중인 통영함 투입하려 했지만 …
 
  통영함은 해군에서 약 30년 동안 운용한 광양함과 평택함을 대체하기 위해 2012년 9월 건조한 수상함 구조함이다. 전장 107m·전폭 16.8m·선박 중량 3500t급 규모의 통영함은 기존 수상함 구조함에 비해 탑재 장비 성능이 우수하다. 선체고정음파탐지기, 사이드스캔소나(Side Scan Sonar)와 수중 3000m까지 탐색할 수 있는 수중무인탐사기(ROV)를 탑재해 탐색능력이 향상됐고, 잠수요원이 수심 90m에서 구조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잠수지원 체계를 갖췄다.
 
  통영함은 또 최고 38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 해난사고 발생 시 보다 신속하게 구조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예컨대,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기존 수상함 구조함이 모항 진해항에서 출발하면 현장까지 가는 데 이틀이 걸리는 반면 통영함은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다. 통영함은 해군의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570t)을 인양할 수 있으며, 대형 수송함(독도함)을 예인할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한 직후 황기철 당시 해군 참모총장은 두 차례에 걸쳐 “구조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하고, 진해 해난구조대(SSU)와 각종 함정 등 전 구조 전력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여기엔 수중 탐색 및 구조 작전을 수행하는 잠수사를 지원하기 위한 챔버를 보유한 함정도 포함됐다. 2011년 천안함 피격을 경험한 해군은 잠수사들이 대규모로 잠수에 들어갈 것을 예상했고, 반드시 다수의 챔버 보유 함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해 3척을 우선 출동시켰다. 챔버란, 잠수사가 수중에서 각종 작업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잠수병 예방 및 치료 장비로, 잠수사들의 몸에 남아 있는 질소를 밖으로 서서히 빼내는 역할을 한다.
 
  황 총장의 지시를 받은 해군본부 각 부서에선 향후 지원 가능 분야를 점검했다. 그중 기획관리참모부는 챔버 고장 등 함정 운용상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고자 당시 대우조선해양에서 건조된 후 시운전 과정에 있던 통영함도 현장에 투입하려고 했다.
 
 
  해군 자체 종합 판단에 따라 통영함 투입 계획 철회
 
해군은 시운전 중이던 통영함 투입을 한때 고려했으나, 장비 오작동, 안전사고 등을 우려해 그만두었다(왼쪽).
해군은 잠수함 구조함인 청해진함을 세월호 구조작업에 투입했다. 사진=해군 제공
  황기철 총장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진도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한 황 총장은 국방부 지시에 따라 당시 사고 현장에 있던 정홍원 총리가 주관하는 상황 대책 점검회의에 참석했다. 이튿날부터는 해군참모총장으로서 구조작전 지원본부장 임무를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고 23일 동안 맹골수로에 배치된 상륙함 독도함에 올라 작전을 지휘했다.
 
  한편 황 총장은 4월 16일 밤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로부터 시험평가를 다 마치지 못한 통영함을 출동시키려면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수락했다. 이에 따라 해군본부, 방위사업청, 대우조선해양이 통영함 사용에 관한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이 기획관리참모부 1차장이 해군참모총장 명의(1차장 전결)의 공문으로 관련 부대 및 기관에 ‘통영함 투입 준비 지시’를 했다.
 
  해군이 통영함 투입을 준비한 건 앞서 밝혔던 ‘챔버’ 때문이었는데, 당시 세월호 사고 현장에는 각각 챔버 3개, 1개씩을 보유한 청해진함, 평택함, 다도해함이 배치돼 있었다. 이들 함정 세 척의 챔버들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통영함을 투입할 이유가 없었다. 무리하게 사고 현장에 배치할 경우 전력화 과정을 다 끝마치지 못한 통영함의 장비 오작동이나 항해 안전사고 우려도 있었다. 해군은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영함을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다.
 
  통영함이 세월호 구조 현장에 투입됐다면 실종자 탐색구조에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면서 통영함 미투입 논란은 점점 확산됐지만, 통영함은 구세주가 아니다. 통영함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고 해도 해당 함정이 그곳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임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통영함, 현장 배치된 청해진함과 임무 중첩 … 투입했어도 효용 없었을 것
 
  통영함의 기본 임무는 크게 네 가지다. ▲설계 능력 안에서 침몰 선박과 항공기 인양 ▲해상 기동 불가능한 함정 예인 ▲암초나 얕은 바다에 빠진 함정 이초(離礁) ▲수중 탐색 및 구조 임무 수행을 하는 잠수사의 잠수 지원(챔버) 등이다.
 
  이 중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필요로 한 통영함의 기능은 잠수사의 잠수를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이 임무는 이미 잠수함 구조함인 청해진함에서 하고 있었다. 이미 배치된 함정이 관련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영함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고 해도 별다른 효용이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혹자들은 “통영함이 최첨단 함정이고 통영함에 있는 선체고정음파탐지기와 수중무인탐사기가 정상 작동했다면, 이 두 장비로 실종자를 탐색하고 구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선체고정음파탐지기와 수중무인탐사기는 수중 물체를 탐지하는 장비다. 선체고정음파탐지기는 해저에 있는 물체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비인데, 이미 세월호의 침몰 위치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 사람이 카메라를 통해 조종을 하는 수중무인탐사기의 경우 세월호 선체의 세부 모습, 실종자 외부 탐색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장 여건상 활용하기 어려웠다. 사고 해역의 강한 조류 탓에 수중 이동이 어려울 뿐 아니라 시계(視界)가 20~50cm에 불과해 무인 조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 수색 작업에 참여한 미국 민간업체는 2014년 4월 21일 수중무인탐사기를 투입했지만, 강한 조류와 시계 불량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했다.
 
  많은 언론과 국민들이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해양경찰은 조직이 해체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당시 구조작전을 지켜보았던 필자는 정부나 군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허위가 역사가 되는 그런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기록을 남겨두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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