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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래서 태극기를 들었다

전주선 특전사 총연합회 회장

“전인범씨 때문에 特戰司 전투복 입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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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특별법으로 당시 투입된 특전사들은 모두 ‘폭군’ ‘살인마’로 낙인
⊙ 진실한 우리 목소리 내기 위해 태극기 집회 참여

※ 기사 게재 순서는 단체 이름의 가나다 순에 의한 것입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인 3월 1일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만난 전주선 특전사 총연합회 회장은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마자 “전인범(전 특전사령관) 때문에 화가 난다”는 말부터 했다.
 
  “문재인씨가 ‘특전사 출신인 저보고 종북(從北)이라는 사람들이 진짜 종북’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특전사 전우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도 ‘대통령 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분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종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진짜 종북이라니요. 그럼 문재인씨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우리 특전사 단체 회원들도 종북이라는 이야기입니까. 특전사의 애국심은 다른 군 조직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우리를 종북이라고 하다니요. 이런 상황에서 특전사령관을 역임, 누구보다 특전사에 대해 잘 아는 전인범씨는 우리를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분을 돕겠다고 갔습니다. 열 받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동생 지만씨와 육사 동기인 전 전 사령관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 전속부관으로 이 의장을 구조했고, 지난해 7월 전역식 때는 한국군 최초로 미군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2월 4일 ‘문재인 캠프’로 갔다. 전 전 사령관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것에 대해 보수 진영 일각에선 실망감을 피력했다.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2월 5일 페이스북에 남긴 ‘문 캠프’ 합류의 변(辯)을 통해 다소 황당한 주장을 했다.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을 (국회에서)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문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 이유’로 칼을 거론한 것이다. 전 전 사령관이 언급한 칼은 특전사에서 사용해 온 기존 ‘특전대검’보다 강도가 강해서 철조망 등을 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수풀을 베는 등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미 네이비실 등 해외 특수부대에는 많이 보급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해 국내에서는 보통 ‘람보 칼’로 통한다. 전 전 총장은 성신여대 총장인 아내가 횡령으로 법정구속 된 것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자 2월 11일 문 캠프에서 하차하고 연수차 체류 중이던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전 회장은 “원래 우리 회원들은 사복을 입고 집회에 참석했지만, 전인범씨가 문재인씨 캠프에 합류한 이후 전투복을 꺼내 입었다”며 “전씨가 캠프에서 하차했지만, 전투복은 계속 입을 것”이라고 했다.
 
  특전사 총연합회는 특전사 전우회 회원 중 태극기 집회 참석을 찬성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특전사 전우회 내에는 태극기 집회 참석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전사 전우회 이름으로 집회에 참석하면 내부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 특전사 전우회 경기 북부 지부장인 제가 특전사 총연합회를 구성해 집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신현돈 전 특전사령관님(특전사 전우회 회장) 등 장성 출신 전우회 간부들은 저에게 여러 번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1976년부터 1985년까지 황금박쥐 부대로 불리는 제11공수 특전여단에서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한 전 회장(공수 152기, 특수전 82차)은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다.
 
  “우리가 태극기 집회에 나오는 이유는 적법하게 선출한 대통령을 잔여 임기 1년 전에 쫓아내고, 변칙 대선을 치러 좌파·종북 정권을 세우려는 세력을 막기 위한 것도 있지만 1997년 뒤바뀐 5·18특별법 때문에 광주에 투입된 우리 특전사 선후배 모두가 ‘폭군’ 또는 ‘살인마’로 낙인 찍힌 것도 큽니다. 광주 5·18 때 현장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5·18 유공자’ 혜택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손가락질만 받죠.”
 
  ― 시민에게 총을 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제가 이야기하는 거 그대로 써주세요. 시민이 엽총을 쐈어요. 총소리가 나면 아스팔트가 파이더군요. 우리는 실탄도 없었어요. 팀장(대위나 소령급)에게만 경계용 실탄 20발이 지급됐죠. 대치하고 있는데 장갑차가 우리 쪽으로 돌진했어요. 깜짝 놀라 피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중대 권○○이라는 병사가 깔려 죽었습니다. 충남 당진에 사는 애였는데, 신입이었죠. 무섭지 않습니까. 그래서 팀장에게 실탄을 좀 나눠달라고 해서, 대응한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광주에서 철수하는데, 광주 여성 시민 한 분이 저희한테 ‘살려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탈출했죠. 만약 저희가 민간인을 막 죽이고 그랬다면 그분이 우리한테 살려달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 당시 계엄군의 잘못을 인정한 증언이 있던데요.
 
  “우리 동기 중 청문회 나가서 진술한 놈이 있습니다. 전남 나주 애죠. 동기 중에서도 좀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였습니다. 우리 동기들이 일 년에 부부동반으로 두 번씩 만나는데, 이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제 동기 중에 전라도 출신이 많은데, 이들도 거짓말을 한 이 동기를 욕했습니다.”
 
  전 회장은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며 “광주사태 희생자 가운데 우리가 쓴 M-16 소총이 아닌 카빈총에 의해 사망한 희생자도 많다. 그런데도 모두 우리에게 덮어씌웠다. 나와 특전사 동지들의 바람은 광주사태를 재조사해서 진실이 밝혀지는 것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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