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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세일 교수 타계

- 아이디어도, 나라 걱정도 많았던 선비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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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1월 13일 저녁 타계했다. 고인(故人)은 서울대 법대에서 법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들어갔다. 로스쿨 도입 등 ‘세계화 개혁’을 추진했다.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 정책위원회 의장 겸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냈다. 하지만 이듬해 한나라당이 ‘충청표’를 의식해 행복도시건설특별법(일명 세종시특별법) 통과에 찬성하자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면서 의원직을 던졌다.
 
  2006년 이후에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들어 선진화, 공동체 자유주의 등의 개념을 제시했다. 2012년에는 ‘정책정당’을 내세우며 ‘국민생각’을 창당, 서울 서초갑(甲)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년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기자를 동지로 생각해 주었다. 어떤 모임에서 기자 얘기가 나오자, 고인이 “아, 배진영 기자는 정말 애국자지!”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씀을 기자는 지금도 훈장처럼 생각하고 있다.
 
  작년 7월 〈보수 원로 10인의 ‘한국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오래간만에 고인을 뵈었다. 약속 장소에서 기자는 고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얼굴이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좀 아팠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기자에게 고인은 “이제 나아졌어. 북한산 기슭으로 이사했는데, 놀러와”라며 웃어 보였다. 이 인터뷰에서 고인은 “정당의 부실·빈곤이 모든 정치적 악(惡)의 근원”이라면서 “통일 이후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중국공산당과 국가경영, 국가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정당의 구조, 체질 등으로 볼 때,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걱정했다.
 
  최근 그분이 위중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지막 문병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청을 넣었지만, 이미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가족들이 외부 인사들의 방문을 모두 거절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향년 70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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