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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교사 박정희와 문경 제자들

박정희를 둘러싼 증언, 미화 아닌 사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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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빠진 제자 구했다는 소문 사실… 평소 “선생님 덕에 살았다”
⊙ 제자 대부분 86~92세 사이. 거동 어렵고 청력 나빠 대화 불가능한 분 많아
⊙ 박정희, 일본 시조신神 위패 훼손… 학교 소사의 거짓말로 위기 모면
⊙ 박정희 책걸상과 책들, 만주 떠나며 동료 교사 유증선에게 맡겨
⊙ “박 선생님은 하늘에서도 조국통일 위해 잠 못 이루실 것”(제자 이응주)
문경초등 교장(아랫줄 가운데)과 교사들. 윗줄 오른쪽 첫 번째가 박정희 교사, 그 옆이 유증선 교사.
  경상북도 문경은 대구사범을 나온 스무 살 청년교사 박정희(朴正熙· 1917~1979)의 첫 부임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 문경읍’ 문경초등학교(당시엔 문경서부공립심상소학교)에서 1937년 4월부터 40년 3월까지 제자를 가르쳤다. 3년간 의무복무를 채우자마자 박정희는 만주(만주군관학교)로 떠났다.
 
  문경 사람들은 ‘교사 박정희’를 여태 기억한다. 박정희의 하숙집을 제자들과 청운의 꿈을 가꾸던 곳이라 해 청운각(靑雲閣)이라 부른다. 주민들과 제자들은 박정희가 서거한 1979년 10월 26일을 기억하며 해마다 추모행사를 갖는다. 대통령, 장군, 혁명가가 아니라 가난하던 시절 새까만 얼굴의 박정희를 추억하기 위해서다.
 
  청운각엔 살구나무가 있었다. 60여 년 된 살구나무 고목이 10·26 후 제철도 아닌데 연분홍 살구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고사했다. 당시 문경 사람들은 “서거를 비통히 여겨 몇 송이 꽃을 피운 뒤 순절했다”고 입을 모았었다. 고사한 나무는 현재 유리관 안에 보관돼 있다.
 
  살구나무가 죽었을 때만큼이나 요즘 상황이 엄중해서일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청운각을 바라보는 문경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400~5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40~5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기자가 문경을 찾은 것은 박정희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청운각 관계자는 “제자 상당수가 돌아가시고 대개 80대 후반, 86~92세 사이셔서 거동이 어렵고 설령 만난다 해도 청력이 나빠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헛고생 말고, 와도 반길 사람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정희의 제자 정극모(작고)의 아내 조복순 할머니(89)를 만나기 위해 굳이 문경으로 향했다.
 
 
  진남교 아래서 익사할 뻔한 제자 정극모의 숨겨진 이야기
 
문경읍 진남교. 한때는 물살이 거셌다고 하지만 지금은 수심이 얕고 물결은 잔잔했다.
  조갑제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조선일보》 刊)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지금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순옥(73) 할머니는 박 선생이 구해낸 물에 빠진 아이는 정극모였는데, 결혼도 않고 있다가 6·25 직전에 죽었다고 증언했다. 박정희의 이 용감한 행동은 그 목격자가 많이 살아 있어 ‘과장된 신화’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고 현장인 진남교에 가보았더니 그 밑을 흐르는 강은 폭이 약 100m이고 물살이 셌다. 상당한 수영 실력과 용기가 없으면 뛰어들기 어려운 곳이었다.(이하 생략)〉(2권 제5장 ‘산촌’ 중에서)
 
  정순옥의 회고에는 이런 증언도 덧붙어 있다.
 
  “우리가 장난을 하거나 줄이 삐뚤어지면 한 대씩 맞아가면서 목적지인 진남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과 점심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물에 빠져 죽는다고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순간 박 선생님은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희들은 선생님이 죽는다고 고함을 치며 다른 5, 6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둑에서 벌벌 떨고 있는데 한참 만에 박 선생님이 다 죽은 아이를 물속에서 건져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인공호흡을 해 물을 토하게 하니, 그제야 깨어나는 아이를 보니 선생님이 하느님같이 고마웠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박정희의 제자 정극모다.
 
제자 정극모와 아내 조복순의 젊은 시절.
원 안은 조복순 할머니.
  2016년 12월 중순 기자가 다시 찾은 진남교(鎭南橋)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안내판을 보니 2017년 5월 2일까지 공사가 진행된다고 적혀 있었다. 진남교 바로 옆에 콘크리트 다리가 높다랗게 세워져 차량이 쉴 새 없이 지나고 있었다. 진남교는 상대적으로 낡고 왜소해 보였다. 우기가 지난 겨울이어서 그런지 강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수심이 얕았고 물결은 잔잔했다. 문경읍 지곡2리로 차를 몰았다. 조복순 할머니는 6·25 때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정희의 제자 정극모의 아내다. 전사했다는 풍문과 달리 그는 6·25 당시 입대해 5년간 군복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1남3녀를 키웠다고 한다. 쉰둘 되던 1978년 중풍으로 사망했다.
 
  조 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아흔한 살”이라며 “생전 남편이 진남교 아래 강물에 빠졌다가 살아난 얘기를 자주 했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자꾸 물속으로 빠져들더래요. 그때 (박정희) 선생님이 물에 뛰어드셔서 살았다고 했어요.”
 
  ― 부모님도 기뻐하셨겠네요.
 
  “그럼요. (시)아버님이 9남매를 낳으셨지만 모두 죽고 슬하에 외아들뿐이었어요. 그 귀한 아들을 낳으려 살던 집도 버리고 영산(靈山)이라는 주흘산으로 들어가셨대요. 산의 정기를 받아 낳은 아들이 제 남편입니다. 아버님은 큰 눈이 오면 아들이 학교에 등교할 수 있게 주흘산에서 마을 입구까지 눈을 다 치우시던 분이셨어요. 그만큼 아들을 사랑하셨어요. 그렇게 귀한 아들인데, (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놀랐겠어요.
 
  아버님이 박 선생님을 찾아가 고맙다고 선물을 하셨대요. 그 시절, 선물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고욤나무 열매를 따다가 함지박에 둬 삭으면 노란 물이 배는데 그 물이 조청보다 달고 맛있어요. 그걸 사기 됫병에 담아 선물로 드렸대요.”
 
  조 할머니는 “(남편이) 평소 ‘죽었을 몸인데 (살아났으니), 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곧잘 했다”고 말했다. 조 할머니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청운각에서 열리는 10·26 추모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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