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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최순실 스캔들

과거 구국봉사단 간부들의 수기(手記)

“최태민의 마수(魔手)에 구치소까지 가야 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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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리 거부하니, 진정서 냈다고 해임”
⊙ 최태민, 얼마나 돈이 많았는지 무조건 돈으로 해결하려 해
⊙ 최태민 부정축재 거론 이후 구치소행 … 사건 맡으려는 변호사 한 명도 없어
⊙ “최태민의 추악함 묻어 둘 수 없어 수기 썼다”
새마음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양이 최태민 구국봉사단총재의 안내로 걸스카우트 대원들을 돌아보며 격려하고 있다.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사이비종교 비판·고발에 애썼던 고(故)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소장이 최태민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이었다. 신흥종교 문제를 파고들던 탁 소장에게 당시 《대전일보》에 실린 광고는 충격적이었다.
 
  〈찾으시라! 들으시라! 대한민국은 ‘세계주인국’이 될 운세를 맞이했다는 칙사님의 권능과 실증의 말씀을. 더욱이 난치의 병으로 고통받으시는 분께 현대의학으로 해결치 못하여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난치병자는 즉시 오시어 상의하시라. 칙사님의 임시숙소는 대전시 대사동 케플카에서 200m 지점.〉
 
  당장 탁 소장은 칙사(勅使)가 있다는 대전 보문산 골짜기에 있던 감나무집을 찾았다. 최태민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뤄졌다. 탁 소장은 자신이 발행·편집인을 맡아 내던 월간 《현대종교》 1988년 4월호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에서 최태민의 첫인상을 이같이 밝혔다.
 
  “머리가 시원스럽게 벗겨진 문제의 칙사님인 원자경씨를 최초로 만났다. 그는 벽에다 둥근 원을 색색으로 그려 놓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나무자비 조화불’이란 주문을 계속 외우면 만병통치하고 도통의 경지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탁 소장이 최태민을 두 번째 만난 것은 2년 뒤인 1975년 5월이었다. 당시 교계 신문에는 일제히 ‘대한구국십자군’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총재가 최태민 목사였다.
 
  탁 소장을 만난 최태민은 “청와대를 무단출입한다”며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탁 소장은 그의 엄청난 변신에 대해 할 말을 잊었다. 최태민은 더 이상 감나무집의 초라한 칙사가 아니었다.
 
인천 선인체육관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시민궐기대회 및 구국여성봉사단 경기도 시·군지구합동결단대회에서 당시 명예총재인 영애 박근혜 양이 구국여성봉사단 지부장들에게 단기를 건네고 있다.
  탁 소장은 지인들에게 최태민의 변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엄청난 반응이 왔다. 당시 중앙정보부 종교담당 책임자였던 이○규 과장이 몸조심하라고 경고성 협박을 해 온 것이다. 최태민도 탁 소장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탁 소장! 당신이 구국선교단과 저를 모함한다는 이야기를 목사들한테 전해 듣고 심히 불쾌했습니다. 탁 소장이 순수한 반공단체를 부패한 교단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인물이라면 한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일차 상면을 원합니다.〉
 
  최태민을 사이비 교주로 확신한 탁 소장은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 기록했다.
 
  《월간조선》은 탁 소장의 장남 탁지일 부산 장신대 교수로부터 최태민의 영향력과 잔인성이 담긴 자료를 입수했다. 이 문건은 구국봉사단 ○○시(市) 단장이었던 김○○, 구(區) 단장이던 권○○씨가 작성한 수기다. 최태민은 1975년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조직했고, 1년 뒤 구국여성봉사단으로 개칭했다.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는 최태민이었고, 명예총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맡았다.
 
  구국여성봉사단은 1978년 12월 다시 구국봉사단이라는 이름의 사단법인으로 전환됐다. 김, 권씨의 기록은 월간 《인사이드 더 월드(1990년 2월호)》에도 실렸다. 《인사이드 더 월드》는 《경향신문》 기자와 논설위원, 미국 워싱턴 《한국신보》 편집국장 등을 거친 언론인 손충무(2010년 10월 19일 심장마비 별세)씨가 1989년 발행한 매체다. 손 발행인은 구국선교단, 대한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총재 등을 지내며 재벌들로부터 돈을 뜯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비리를 저지른 최태민을 집요하게 추적한 바 있다.
 
  수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소개한다.
 
 
  시(市) 단장 김씨의 수기
 
  “최태민 자금 횡령 문제 제기하니 당장 자르더라”
 
구국봉사단 간부의 수기가 실린 월간 《인사이드 더 월드(1990년 2월호)》.
  평소에 가족과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구청장으로부터, 구국봉사단에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당시 ‘구국봉사단’의 이미지는 굉장히 좋았다. 충·효의 기치를 내걸고 약자를 도왔는데, 여성단체로는 최고였다.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활동했다. 불우한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된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몇 달간 열심히 활동하니 본단에서 최태민이란 사람이 부른다는 전갈이 왔다. 당시만 해도 나는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본단에서 내가 열심히 일한 것을 알아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최태민은 나에게 ○○시 단장을 맡으라고 했다.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최태민은 포기를 몰랐다. 수차례 나에게 시 단장을 맡아 달라고 요구했다. 계속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왕 하는 봉사를 본격적으로 하자는 생각으로 시 단장을 맡아 달라는 최태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때가 1977년이었다. 시 단장으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최태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호텔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왜 호텔에서 만나느냐고, 사무실에서 보자고 했다. 그러자 최태민은 금전으로 유혹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고 생각했다. 최태민이 나에게 마수를 뻗을 시기 봉사단 내 그에 대한 여론은 최악이었다. 최태민이 봉사단을 위해 대기업이 낸 후원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상했다. 어마어마한 후원금이 들어오는데도 항상 돈이 모자랐다.
 
  나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봉사단의 돈 문제를 바로잡고 싶었다. 악을 뿌리 뽑아야 했기에 청와대 민정비서실에 진정서를 냈다. 이 문제로 봉사단이 시끄러워졌다. 전체회의가 열렸다. 최태민의 하수인 김도령이 이야기했다.
 
  “오늘 봉사단 긴급회의를 개최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근래에 문제가 된 진정서 건에 대해 토론을 했으면 해서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회의는 김도령이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갔고, 단원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를 자른다는 이야기를 빙빙 돌려 가며 했다.
 
  “단원 내분을 일으켜 불가피한 조처를 한 것에 대해 총재님도 가슴 아파하십니다. 추후 이와 같은 일이 없도록 단장 여러분이 더욱더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회의 직후 나의 시 단장 임기도 끝났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최태민은 사람을 파면시킬 때 ‘단원끼리의 내분’이라는 언제나 똑같은 이유를 댔다. 구국봉사단에서 활동한 영화배우 박○○씨도 같은 까닭으로 파면됐다.
 
  ‘그래 잘됐어. 사회에 봉사하는 곳이 아니라 불의로 가득한 곳이라면 일찍 떠나는 게 맞다’고 좋게 생각하려 했지만, 잘못도 없이 해임당하긴 너무 억울했다. 나의 억울함을 알았는지 내가 쫓겨나자 동료들이 들고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동료와 연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 전화는 이미 도청이 돼 있었고, 밖에는 나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최태민은 나의 운전기사까지 매수했다.
 
  그렇게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최태민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나에게 《○○일보》 뒤편에 있는 건물로 오라고 했다. 수십 개가 되는 최태민의 개인 사무실 중 한 곳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최태민이 들어왔다.
 
  “시 단장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만 한다면 ‘해임’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황당하고, 화가 났다. 나는 “당신이 물러나야 구국봉사단은 살 수 있다”고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최태민, 구국봉사단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사를 기다리는데, 최태민의 차가 내 앞에 섰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최태민이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시 단장님 이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제 성의로 생각하고 쓰십시오. 제 사비입니다.” 봉투가 꽤 두꺼웠다. 하지만 내가 거지도 아니고, 받을 이유가 없었다.
 
  “제가 이 돈을 왜 받습니까? 더구나 사비라니 더욱 받을 수가 없군요.” 거부하자, 최태민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
 
  최태민은 돈이 많았다. 들은 이야기로는 최태민은 가끔 손자들을 보면 과자값이라고 쥐여주는 돈이 100만원짜리 수표일 때가 있어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사람들이 과장해서 하는 말이라고 친다 하더라도 얼마나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살았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하고 의아해했다. 최태민의 딸이 결혼할 때는 정부 관리들이 떼거리로 모였다. 중이 염불에는 무관심하고 잿밥에만 정신이 가 있다는 속설처럼 최태민은 ‘구국’을 구호로만 외쳤지 사실은 축재(蓄財)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구(區) 단장 권씨의 수기
 
  “왜 계란으로 바위를 치나”
 
최태민씨의 파렴치한 행동을 수기로 남긴 구국봉사단 간부의 임명장.
  인천연수원에서 구국봉사단 본단 교육이 있었다. 동대문구 단장이던 나도 교육에 참석했다. 당시 구국봉사단 내부는 시 단장 김씨의 갑작스러운 해임에 대해 말이 많았다.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최태민의 하수인들이 듣지 못하는 곳에 숨어 “그 많은 돈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것을 지적했다고 해임되는 게 맞는지”를 이야기했다.
 
  구국봉사단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왔다. 굴지의 기업이 낸 기부금이 100억원을 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봉사단원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최태민이 불렀다.
 
  “조용히 있지 않으면 시 단장 꼴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나중에 파악한 것이지만 최태민 처제가 스파이 노릇을 했다. 최태민 처제도 봉사단 구 단장이었는데, 우리와 잘 어울렸다. 말이 통하는 것 같아, 그 앞에서 최태민을 비판하는 이야기도 했다. 별문제 없으려니 했는데, ‘가재는 게 편’이라고 우리와 나눈 모든 이야기를 최태민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시 단장 해임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최태민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음 날 새벽 4시쯤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이른 시간에 누구일까” 의아해하며 아파트 문을 여니, 낯선 장성 서넛이 들이닥쳤다.
 
  “당신들 누구세요?”
 
  “조용히 따라오시오.”
 
  반항할 틈도 없이 그들은 잠옷 차림인 나를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수갑을 채운 뒤 어디론가 끌고 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식구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내가 끌려간 곳은 청와대 지시사항만 맡아서 하는 대검특수부라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경찰서 근처에도 가 본 적 없는 나였다.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위안 삼아 참았다. 담당 검사는 한○○씨였다. 그는 나에게 긴급조치 위반과 여권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했다. 너무 황당했다.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최태민이란 사람을 잘 안다. 왜 당신은 바위에다 계란을 던지나.”
 
  그때 깨달았다.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대검특수부에서 서대문구치소로 이송됐다. 그곳은 정치사범들이 주로 가는 곳이었다. 대검특수부 수사관은 나를 서대문구치소로 이송하면서 형사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분은 윗분들의 지시가 있으니 잘 모셔라.”
 
  순진했다. 진짜 잘 모시라는 말인 줄 알았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가끔 부모님의 면회만 허락됐고, 변호사도 구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허사였다. 변호사들이 처음에는 사건을 맡는다 했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거절했다. 그들도 최태민이 개입한 사건에 손을 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지금(90년)도 최태민이라는 검은 악마는 사회에 물의를 빚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나의 마지막 바람은 최태민의 정체를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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