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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제(日帝) 순사(巡査) 최태민과 그의 아버지 독립유공자 최윤성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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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태민(崔泰敏)은 30세 되던 1942년부터 1945년 8월 해방될 때까지 순사로 일했다. 당시 순사는 일본제국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안의 최일선에서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불령선인)을 잡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부리던 ‘수족(手足)’이었단 얘기다.
 
  일제는 사상적으로 ‘불온’하지 않은 이들을 순사로 뽑았다. 일제 시각에서 ‘건전한 사상’은 일제에 대한 충성과 체제를 위협하는 불령선인에 대한 적개심을 말한다. 최태민의 경우 황해도경찰국 고등과장 ‘서포’의 추천을 받아 순사가 됐다. 최태민의 일제에 대한 충성심을 일경 간부가 보증한 셈이지만, 그의 가계도를 보면 의아한 부분이 있다. 최태민의 아버지 최윤성(崔崙成)씨가 독립유공자란 점이다.
 
  최태민은 1990년 초 아버지 최윤성씨에 대한 공훈 심사를 국가보훈처에 신청했다. 국가보훈처는 1990년 7월 독립유공자 제1공적심사위원회를 열어 최태민의 신청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그해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최윤성씨에게 건국훈장 중 다섯 번째 등급인 애족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따르면 최윤성씨는 황해도 봉산군 출신으로 1919년 3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있었던 독립만세운동에 관여했고,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1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른 이의 아들인 최태민이 일경 간부의 추천을 받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후일 최윤성씨가 전향해 일제에 협조 내지는 충성했을 수도 있다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나중에 변절해 친일한 인사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등이 서훈을 박탈당했다. 최윤성씨가 후일 일제에 협조했다면, 독립유공자가 될 자격이 없다. 국가보훈처는 최태민이 순사가 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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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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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3-30) 찬성 : 31   반대 : 40
알고보면 독립운동가집안에 친일파자식이 생겨날수도 있고 친일파집안에 독립운동가자식이 생겨날수있다는것이 아이러니하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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