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최태민-최순실 스캔들

대구와 영진전문대학, 그리고 최순실·정윤회의 흔적

미국에서 학위 취득 후 대구서 조교수·강사 하다 서울로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정윤회, 옛 지인에게 미국서 대학(University of the Americas) 나왔다고 밝혀
⊙ 최순실이 다녔다는 대학(Pacific States University), 영진전문대학과 1982년 자매결연
⊙ 최순실·정윤회의 영진전문대학 재직은 ‘최태민·조순제·손윤호’ 손길이 작용?
2014년 9월 15일 대구 영진전문대학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과 권영진 대구시장.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찾은 전문대가 어딜까. 대구 영진전문대학이다. 과거 2년제 대학에 붙던 ‘전문대’란 명칭을 지금껏 고집하고 있다. “영진은 전문대학 중의 서울대”라 불린다. 국고지원에서도 4년제 주요 대학에 밀리지 않는다. 2014년 9월 15일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사립 전문대인 영진을 방문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발화하면서 ‘잘나가던’ 영진에 불똥이 튀었다. 이 대학에 최순실·정윤회가 재직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순실은 육영재단 유치원 원장을 했던 이력과 미국에서 취득한 유아교육 관련 박사 학위를 내세워 1988년 영진의 조(助)교수이자 대학 부설 유치원장 부원장으로 부임,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다른 교수들이 한 학기 동안 2~3과목을 가르치는 데 반해 최씨는 아동복지 1과목(유아교육과)만을 가르쳤다고 한다. 대학 측이 ‘배려’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학교 홈페이지엔 재직기간이 1988년부터 1993년 2월로 돼 있지만 한 해 전인 1992년 3월 사직서를 냈다.
 
  최씨가 학교를 떠난 직후 정윤회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정씨는 1993년부터 1년간 영진전문대학 관광과에 시간강사로 부임해 경영학 원론과 여행사 경영론을 가르쳤다. 당시 두 사람이 결혼(1995년 4월)하기 전이다. 정씨는 무슨 계기로 이 대학의 강사 자리를 구했을까.
 
  박 대통령에게 정씨를 소개해 준 사람이 최씨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진의 강사 자리도 최씨가 도움을 준 것일까. 영진 측에 따르면, 정윤회는 당시 관광과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시간강사로 임용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작 추천을 한 A 교수는 “추천서를 (썼는 지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확인된 정윤회의 미국 체류 흔적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15일 대구 영진전문대학을 방문해 신재생에너지 실습실을 둘러보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많은 언론이 정윤회의 과거를 추적하기 위해 애썼다. 1997년부터 국회의원 박근혜의 보좌관을 한 사실이 알려졌을 뿐 이전의 경력은 미스터리고 억측이 대부분이었다.
 
  정씨는 26세이던 1981년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해 1980년대 후반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고 1995년 4월 최순실과 결혼했다는 설이 그나마 사실에 근접하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정씨가 독일서 유학을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의 학력도 모호하다. 항간에 연세대로 알려졌지만 연세대 총동문회 명단을 확인한 결과, 그런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출신 고교 역시 서울고 출신으로 회자됐으나 서울 보인상고(현재는 송파구에 위치한 보인고)를 1974년 졸업한 사실이 확인됐다.
 
  언젠가 정윤회는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구체적 학력을 밝히지 않는 건 불필요한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지금까지 출신 학교를 언론에 확인해 주지 않았다.
 
  기자는 대구에서 그의 과거를 잘 아는 익명의 제보자 B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정씨는 1981년부터 미국에 체류했고 1983년 9월부터 1989년 9월까지 아메리카스대(University of the Americas)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B씨가 알려준 이 대학을 수소문했으나 확인하기 어려웠다. 30여 년 전 대학이니 교명이 바뀌었거나 폐교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비슷한 이름의 아메리카대(The University of America)를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메리카대는 캘리포니아주(州) 리버사이드 카운티(Riverside County)의 뮤리에타(Murrieta)라는 소도시에 있다. 현재 이 대학은 수업의 70%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30%는 과학과 예술 과목의 실습을 제공한다.
 
  따라서 원격(遠隔)대학 성격에 가까운 학교로 추정된다. 정씨는 또 이 대학에 다니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여행사(글로벌 여행사) 기획이사로 재직(1988~89년)한 것으로 전해져 학적관리나 수업이 엄격한 대학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1989년 12월부터 92년 4월까지 관광회사(○○ 국제관광)를 운영했다고 한다. 이 기간 중인 1990년 3월 경희대 관광대학원에 입학해 93년 2월 졸업했고 졸업과 함께 영진전문대학의 시간강사 자리를 잡았다.
 
  B씨는 “정씨가 경희대 관광대학원을 졸업하기 직전, 영진의 시간강사 지원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씨의 미국 체류 경력은 본인이 직접 밝힌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B씨가 언급한 정씨의 경력은, 지금까지 알려진 정씨의 행적과 크게 차이가 있다. 《조선일보》 2014년 11월 4일자 기사는 정씨가 1981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보안승무원으로 근무했고 입사 10년 만인 1990년 퇴사한 것으로 보도했다. 또 그가 회사 측에 밝힌 퇴사 이유는 ‘결혼’이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정씨의 재직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또 최순실·정윤회는 1995년 결혼한 것으로 드러나, 결혼이 대한항공 퇴사(1990년)의 직접 이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B씨의 제보가 사실이라 가정할 때, 정씨의 대한항공 입사 시점은 고교 졸업 직후에서 미국 체류 직전인 1974~1981년 사이로 보인다. 아니면 보안승무원으로 근무하며 미국의 원격대학에 다녔을 수도 있다.
 
 
  최순실이 졸업한 미국대학과 영진전문대학 자매결연
 
최순실은 1988년부터 92년까지 대구 영진전문대학에서 조교수와 유치원 부원장을 지냈다. 당시 모습이다.
  최순실 역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연구자정보시스템(KCI·국내 연구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는 온라인 시스템)에 등재된 프로필에는, 최씨가 1981년 미국 LA에 있는 ‘퍼시픽 스테이트대(Pacific States University)’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나온다. 1985년과 1987년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고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영진전문대학 최달곤 학장이 1982년 1월 8일부터 2월 9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PSU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메소디스트대학(Methodist College)’ 등 두 대학과 자매결연을 체결했다는 사실이다. 최씨가 PSU 대학원에 다닐 때다.
 
  최 학장이 미국의 그 많은 대학 중 하필 최씨가 다닌 학교와 결연을 맺었다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아주 드문 우연이다. 최씨가 영진과 PSU 간 결연을 맺는 데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최씨와 정씨 두 사람은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대학은 다르지만 함께 대학을 다닌 것으로 보인다. 학적 관리가 엄격한 대학이 아니었다고 가정할 때 한국과 미국을 자주 오갔으며 이 과정에 두 사람이 자주 만났을 수도 있다.
 
  정윤회의 아버지 정관모씨는 《주간경향》(10월 22일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애(정윤회)가 비행기 타다 우연히 다시 만난 걸로 들었어요. 처음에는… 저는 (최순실이 초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왔더라고요. 여기로. 이미 애를 낳아서 왔어요. 비행기 타다 만나서 잘못된 모양인데, 저희는 저 뭐, 성인이 된 다음에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 아닙니까.”
 
  정씨 아버지의 주장대로라면, 최순실·정윤회 두 사람은 고교 시절부터 아는 사이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인연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1980년대 행적은 종횡무진, 종잡을 수 없다. PSU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할 당시(1985년)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장을 맡고 있었다. 또 1982년부터 1985년 사이 인테리어점과 학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대학에 적(籍)을 두고 있었지만 주로 한국에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학위를 ‘원격’으로 취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PSU에 유아교육 관련 학과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씨가 졸업한 대학이 PSU가 아니라 샌디에이고에 있는 ‘퍼시픽 웨스턴 대학(Pacific Western University)’이라는 설도 제기된다. PWU는 미국에서 정식 학위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이다.
 
 
  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가 영진전문대학에 취업을 부탁
 
영진전문대학 최달곤 학장(가운데)이 1982년 1~2월 사이 미국을 방문해 최순실이 다닌 대학(Pacific States University)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또 하나의 궁금증은 최순실이 어떤 배경으로 영진전문대학에 가게 됐느냐는 것이다.
 
  영진 측은 “(설립자에게) 확인을 했지만 30년 전의 일이라 어떤 경로로 영진 부설 유치원에서 부원장을 지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관련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故) 최태민의 의붓아들인 조순제가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태민이 다섯째 아내 사이에서 낳은 네 딸 중 최순실은 셋째 딸이고, 최태민의 다섯 번째 처가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데려온 조순제는 최태민이 아낀 의붓아들이다. 즉 최순실의 의붓오빠가 조순제다.
 
  당시 조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로 있던 영남학원(영남대학교)이 투자한 영남투자금융(영투)의 전무였는데 1980년대 전후 영투가 영진에 수억 원을 빌려줬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조씨가 영진 측에 최씨의 취업을 부탁했고 금전거래 관계가 있던 대학 측이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씨는 과거 문공부 장관 비서관을 지낸 인물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 최병렬 전 노동부 장관과 비슷한 연배로 알려졌다. 그는 구국봉사단, 영남대, 육영재단까지 모두 관여한 인물로 최태민의 뜻에 따라 영남대 이사 시절의 박 대통령을 지근에서 도왔을 개연성이 높다. 이와 관련, 정두언 전 의원은 ‘허핑턴 포스트’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한 청문위원이 박근혜 후보에게 물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조순제씨를 아십니까?’ 그러자 박 후보는 ‘모른다’고 했는데 TV를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설마 박근혜가 조순제를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1980년대 당시 영남대에는 ‘박근혜와 4인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고 한다. 여기서 4인방은 김정욱(영남대 상임이사), 곽완석(영남대 사무부처장), 손윤호(영남의료원 사무부장), 조순제(영남투자금융 전무) 등을 말한다. 손윤호는 조씨의 외삼촌(최태민의 처남)이다.
 
  따라서 1988년 최순실이 영진전문대학에 들어간 것은 최태민·조순제·손윤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배경에서 정윤회 역시 영진에 적을 둘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진 방문과 최달곤 설립자의 집행유예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1998년 4월 13일 교육부의 첫 업무보고 자리에 영진의 최달곤 학장이 초청받기도 했다.
  최순실·정윤회의 재직 이후 영진전문대학은 승승장구했다.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커리큘럼인 ‘맞춤형 주문식 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전면에 내세운 덕택이다.
 
  그 결과 교육부의 1994년 전국 전문대학 평가에서 영진은 1위를 차지했고, 1995년도에는 종합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이듬해 1996년 역시 6개 전문대학과 함께 종합우수대학에 선정, 교육부의 행정·재정적 특별지원을 받았고 인허가와 관련한 우선권이 주어졌다.
 
  김영삼 정권이던 1996년 2월에는 청와대 박세일 대통령사회복지수석비서관이 영진을 찾았고 그해 6월 다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내방했다. 지방의 사립 전문대학을 청와대 수석과 교육부 장관이 번갈아 찾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1998년 4월 13일 교육부 첫 업무보고 자리에 영진의 최달곤 학장이 초청받기도 했다.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2주 뒤인 4월 30일 영진을 찾았다. 이후 영진은 전국 전문대학 중 가장 많은 정부지원금을 해마다 받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4년 9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 기업맞춤형 인재육성 현장 방문차’ 영진을 찾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방문한 첫 전문대였다. 당시 영진 설립자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해 7월 제2캠퍼스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학굣돈 수십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설립자 아들이 구속되고, 설립자 또한 교비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영진을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한 달 뒤 영진의 설립자와 아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영진전문대학 측은 “박 대통령의 영진 방문이 최순실과 관련 있다”는 루머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학 측 관계자의 말이다.
 
  “박 대통령이 우리 대학의 도제식 직업교육을 좋아했고 당시 다른 방문지인 대구창조경제센터와 가까운 점도 작용했습니다. 영진 바로 옆에 위치한 경북대는 당시 총장이 공석(空席)이어서 갈 수도 없었어요. 또한 (설립자의) 집행유예는 공금을 모두 환수한 데 따른 것입니다. 대통령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전 정부와 비교해 (현 정부의) 국비지원 사업규모가 줄었다”고 했다.⊙
조회 : 15798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909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