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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의 Why?

“전두환 전 대통령 고향이 전라도라고?”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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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조용헌씨 처음 제기
⊙ 천금성씨가 쓴 전두환 전기 《황강에서 북악까지》에 잘 나와
⊙ 전두환 조상은 완산 인왕 전씨로 조선초 경상도로 이주
⊙ 도시조는 백제 온조왕의 공신, 중시조는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
⊙ 중시조 전섭이 홍건적 무찌르며 ‘완산군完山君’이란 칭호 받아
2015년 6월 29일, 황교안 총리가 취임 인사차 예방할 당시의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최근 《조선일보》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뿌리가 전라도라는 기사가 나왔다. 강호 동양학자를 자처하는 조용헌씨 칼럼에서다.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의 광주를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기사를 보고 이성으로 파악하기 힘든 업보의 순환고리를 느꼈다. 추적해 들어가면 전두환의 뿌리는 전라도이기 때문이다. …〉
 
 
  조용헌 “전두환 집안은 천안 전씨 대대로 전북 고부에 뿌리내려” 주장
 
  조씨의 글을 더 인용해 보기로 한다. 〈천안 전씨(天安全氏)인 전두환의 집안은 대대로 전북의 고부(古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진원지가 바로 고부 아니던가. 천안 전씨였던 전봉준(全琫準)이 앞장을 섰고 씨족사회였던 당시의 관습에서 전씨들은 동학에 적극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윗대는 전봉준과 같은 집안이었다. 증조부나 조부가 전봉준의 참모를 했는지도 모른다. 동학이 실패한 후 처절한 보복이 뒤따랐다. 일본군과 관군이 합동으로 동학 가담자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참혹하게 살육하였다. ‘일본군이 동학 집안 사람을 죽여 창자를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어 놓았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동학 후유증으로 전라도의 뿌리가 해체되어 버렸다. 전두환 집안은 고부에서 살 수가 없었다. 일단 20리쯤 떨어진 전북 부안군의 줄포(茁浦)로 피신했으나 여기도 안전하지 않았다. 결국 섬진강을 건너 경상도 합천(陜川) 산골로 도망갔던 것이다. 동학의 중심지인 전북 고창(高敞)에는 고려 말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70여 개의 성씨(姓氏)가 있었으나 동학 이후에 약 70%의 성씨가 사라져 버렸다. 멸문(滅門)이 되거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경상도로 도망가거나 성씨를 바꿔 버렸던 것이다.〉
 
 
  조용헌씨 “전씨 일가 동학혁명 때 경북 고령으로 피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뿌리와 관련된 조씨의 글은 매우 단정적이다. 다음 부분을 보면 더 그렇다. 〈필자(조용헌)가 파악한 바로는 경북 고령(高靈)에 살고 있는 고창 오씨들도 이때 피신한 것이고 지금도 상주에서 천도교를 신봉하는 서묵개(徐墨价) 집안도 고창의 미당 서정주 집안이었지만 동학 때 경상도로 이주하였다. 동학의 김개남(金開南) 장군은 정읍의 도강 김씨(道康金氏)였는데 24명의 이 집안 동학 접주가 몰살당하였다. 후손 중에는 성씨를 바꿔 박씨로 살다가 1955년에야 다시 김씨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원기, 정읍시장 김생기가 겨우 살아남은 ‘도강 김씨’들의 후손이다. 전두환은 정권 잡고 나서 동학군의 첫 전승지인 정읍 이평면(梨坪面)에다가 ‘황토현기념관’을 세웠다. 왜 전두환은 광주와 악연을 맺게 되었을까?〉
 
  조씨의 글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 그 방법은 전 전 대통령측에 문의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이런 질문에 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전 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자료에서 이 부분을 찾아내는 것인데 의외의 해법이 나왔다. 1981년 1월 출간된 《인간 전두환-창조와 초극(超克)의 길 황강(黃江)에서 북악(北岳)까지》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천금성씨로, 194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선장을 지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쓴 《황강에서 북악까지》는 용비어천가형 자서전의 전형으로 이런 스타일의 자서전을 써 달라는 요청이 다른 작가들에게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 “천금성씨에게 온갖 인물 다 찾아와”
 
소설가 천금성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기 《황강에서 북악까지》에 전 전 대통령 집안 내력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 책을 펴낸 동서문화사 고정일 사장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천금성씨는 광화문 인근 서린호텔에 머물며 집필을 했는데 찾아오는 이가 하도 많아 글 쓸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전두환’이라는 새 권력자가 등장하자 너도 나도 전두환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책에 한 줄이라도 이름이 들어가길 바라는 군상(群像)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비싼 양주를 수시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황강에서 북악까지》에 나오는 전두환씨 관련 이야기는 상당 부분 윤색되거나 미화된 것인 데 비해 전두환씨 집안과 관련된 팩트(fact)는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 본인은 물론 여러 사람의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책 33페이지에는 전두환씨의 부친과 장인이 우연히 만나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여기에 바로 전두환씨의 집안 내력이 나오며 이것이 조용헌씨가 제기한 ‘전두환의 고향은 전라도’라는 설에 대한 답이 될 듯해 그대로 인용해 본다.
 
  〈전두환의 장인(이하 장인)-“여보게 젊은이 길 좀 묻세.”
 
  젊은이(전두환의 부친)-“천지못(합천 황강 근처)으로 가시는 어르신들이시지요? 제가 모시지요. 저도 마침 산 위 삼나무 밭에 나가신 어머니에게 가는 길입니다.”
 
  장인-“젊은이의 이름자는?”
 
  젊은이-“저는 완산(完山) 인왕 전씨인 중시조 집(潗)자 어른신네의 22세손이 되는 상우(相禹, 또는 相祐)입니다.”
 
  장인-“완산 전씨면 완산 전씨지 완산 인왕 전씨라니?”
 
  젊은이-“사람들은 대개 완산 전씨라고 하면 들 입(入)자 아래 임금 왕(王)을 넣어 씁니다(全). 그러나 완산 전씨의 전은 사람 인(人) 아래 임금 왕을 넣어 써야 합니다.온전 전과 인왕 전은 다릅니다.”
 
  장인-“그럼 시조 어른께서는 뉘신지?”
 
  젊은이-“시조 집자 어르신네는 도시조(都始祖) 섭(聶)자 어르신네의 30세손이십니다. 도시조께서는 백제 온조왕의 공신입니다. 중시조 섭자 어르신네는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으로 계실 무렵 홍건적을 소탕한 공로로 삼중대광첨의 문하시중 평장사에 오르시고 완산군에 봉해지시면서 완산 인왕 전씨의 중시조가 되셨습니다.”
 
 
  “고려 망하자 완산 전씨가 경상도로 이주했다”
 
1982년 4월 10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생가를 방문했다.
  장인-“그래 어느 대부터 이 고을에 자리를 잡았는가?”
 
  젊은이-“(합천) 내동에 자리 잡은 것은 이조 첫 무렵이니 500년이 좀 넘었습니다. 스무 대째입니다. 고려 왕조가 쓰러지고 이씨 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조 때 경상도 목사였던 사(思)자, 흠(欽)자 어르신께서 애매한 정화(政禍)에 헛되이 목숨을 잃을까 보아 은거하시기로 하고 고령(高靈)고을로 오셨다고 합니다. 그 뒤 좀 더 깊은 지방에 은거하시는 것이 나을 듯싶으셨던지 바로 이 앞 황강 너머 쌍책면 하신리로 옮기셔서 번성하셨다 합니다. 이씨 조선의 기틀이 잡히고 모진 바람이 사라지자 집안은 다시 번성하여 치(致)자, 원(遠)자 어르신네는 기사관(記事官)을 지내셨습니다. 바로 이 조상께서 내천리 천지재의 천지못을 보시고 이곳 앞들이야말로 터를 잡을 곳이라고 말씀하시며 황강을 건너오셨다고 합니다. …”〉
 
  이것을 조용헌씨가 제기한 ‘전두환 고향 전라도설’에 대한 답이 될 것으로 보고 이후의 대화 인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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